제목: ‌하나됨을 이루어 가려면 빌립보서 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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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06주일새벽
제목: ‌하나됨을 이루어 가려면
‌‌​본문: 빌립보서 2:1-4
찬송: 95장 나의 기쁨 나의 소망되시며
1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2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
3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4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1. 도입
복음서에 보면 예수님과 바리새인들이 대립하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됩니다.
어느 날 예수님께서 귀신들려 말 눈멀고 말 못하는 사람을 고쳐주십니다. 그때 주변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놀라게 되자 바리새인들이 주변에서 말하기 시작합니다. “이것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의 힘”으로 쫓아낸 것이다. 소리를 칩니다.예수님을 모함하는 소리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이렇게 대답합니다.
마 12:25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마다 황폐해 질 것이요. 스스로 분쟁하는 동네나 집마다 서지 못한다. 만일 사탄이 사탄을 쫓아내면 스스로 분쟁하는 것이니 그 나라가 설 수 없다”
예수님은 이 말씀을 통해 사탄의 힘으로 쫓아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행한 것임을 말씀하십니다.저는 새벽 말씀을 준비하면서 “분쟁하는 나라마다 황폐해 진다, 설 수 없다”라는 말에 집중해 보았습니다.
분쟁하는 나라는 설수 없다.
“반대로 말하면 하나 된 나라는 설 수 있다”라는 말로 바꿔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이 지난해 2월에 시작되었고, 1년반이 지나는 동안 계속되고 있습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에서 러시아가 사방에서 침략해 들어갔을 때 많은 사람들이 전쟁이 금방 끝나겠구나 생각했습니다. 그 이유는 러시아의 기습적인 침략과 우크라이나는 전쟁을 제대로 준비하지도 못했던 것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군사력 차이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러시아는 미국 다음으로 세계 군사 2위의 군사 강국입니다. 그런데 우크라이나는 22위에 정도라고 합니다. 힘에서 어른과 어린아이의 차이입니다.
그런데 우크라이나는 1년 반이 넘는 기간 전쟁에서 버텨내고 또 반격을 해 나가고 있습니다. 어떻게 가능할 수 있을까요? 확연한 힘의 차이가 있는데도 말입니다.
전쟁이 시작되고 “우크라이나의 젤린스키 대통령이 나라를 탈출했을 것이다”라고 사람들이 생각했고, 또 미국과 같은 나라들이 탈출을 돕겠다고 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전쟁 중 죽음의 위협 속에서 불구하고 나라에 머물며 전쟁을 지휘하는 모습을 영상을 통해서 중계해 주었습니다. 세계의 사람들이 감동을 받고 무엇보다 자국민들이 감동을 받게 되죠. 나라가 하나되어 국난을 극복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하나가 되니 확연한 힘의 차이를 극복하고,
하나가 되니 어려움 가운데에서도 승리해 나가고 있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의 말씀을 다시 기억해 볼까요?
분쟁하는 황폐해진 나라마다 어떻게 된다고 했나요? 황폐해 진다했습니다. 그런데 연합하고 하나되는 나라는 승리하고 있습니다.하나됨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그러면 그리스도인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될 때 믿음의 힘을 발휘하고 하나 될 때 함께 승리하게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나 됨을 이루어갈 수 있을까요? 본문의 말씀을 중심으로 세 가지로 살펴보겠습니다.
2. 본론
첫 번째 하나 됨을 이루기 위해서 마음을 같이하여 한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1절과 2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1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2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
아멘.
2절을 보시면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여 한 마음이 되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를 1절에서 말하고 있는데요.
1절 말씀을 필립스 번역성경으로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1 이제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격려와 든든한 사랑을 알았다면, 그분의 영과 교제하는 것과 긍휼과 깊은 공감이 무엇인지 알았다면,
아멘.
여러분이 왜 한마음을 품어야 합니까?
, 우리가 그리스도의 격려와 든든한 사랑을 알았다면, 예수님께서 우리를 격려하시고 그분의 사랑을 조금이라도 알았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깊은 공감, 예수 그리스도의 격려와 든든한 사랑을 아는 자라면 한 마음을 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우리를 깊이 공감하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누군가로부터 깊은 공감을 받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치유와 회복이 일어납니다. 응어리진 마음이 풀어집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인생의 아픔과 상처를 함께 아파해 주시는 우리를 깊이 공감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의 사랑과 그분의 긍휼과 그분의공감하심을 우리가 조금이라도 알았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 한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예수님 안에서 마음을 같이하고, 뜻을 합하여, 한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한 마음으로 예수님의 깊은 공감을 실천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소망합니다.
두 번째 하나됨을 이루어 가기 위해서는 겸손한 마음으로 남을 자기보다 낫게 여겨야 합니다.
3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3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3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아멘.
여러분 우리의 마음이 높아지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우리의 마음이 허영심으로 가득차게 됩니다.
허영심이 가득한 사람의 시선은 바르게 삶과 사물을 바라보지 못합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이 명품 하나씩은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15살에 첫 명품을 구매했다고 기사에 나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또 어떤 기사에는 “과거 10년 전 일본이 명품이 한창 유행할 때 ‘빚내서 명품 사는 풍토’가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 우리의 모습이 딱 그 모습이다. 명품 업계에서 ‘한국은 온 국민이 VIP라는 이야기가 떠돌 정도다’라고 합니다.
명품을 소비하는 것이 무조건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허영심으로 가득찬 마음이 잘못되었다는 문제라는 거예요. 허영심이 가득찬 시선은 올바른 소비를 하지 못하게 합니다.건강한 소비를 하지 못하게 하죠. 허영심이 그 마음을 가리워 버렸기 때문입니다.
3절에 ‘허영으로 하지 말고’라는 구절을 필립스 신약성경에서는 “허영심으로 채우려고 행동하지 말고”라고 번역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허영심이 하나됨을 방해하기 때문이빈다.
한 기사에서 예능프로그램에서 나온 한 사연을 소개했습니다.
“독서모임에서 만난 고민녀의 사연”이라고 합니다. 그 사연을 잠시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지적인 남자가 이상형이었던 고민녀는 독서 모임에서 알게 된 남자와 사랑에 빠졌다. 하지만 남자친구는 지적 허영심이 많은 데다가 실제로 많은 걸 아는 사람이 아니었다고. 남자친구는 고민녀에게 교양을 기르라며 막말했고, 자신이 모르는 내용은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라도 알아내 고민녀에게 면박을 줬다. 이에 고민녀가 참지 못하고 남자친구의 잘난 척을 지적하자, 남자친구는 고민녀가 유학파라 자신을 무시한다며 오히려 화를 냈다.
정말로 지적인 것이 아니라, 지적인 허영심이 가득하니 자신이 아는 지식으로 상대방을 면박을 주고 우위를 점하고자 합니다. 그것도 안 되니 화를 냅니다. 허영심은 사랑하는 남녀의 사이에도 분쟁을 일으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라
라고 말씀합니다.
오직 겸손한 마음을 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허영심으로 가리웠던 눈의 덮개를 걷어내는 것이 겸손한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겸손한 마음을 가지게 되면, 상대방을 인정해 주게 됩니다.
깊은 공감을 바탕으로 상대방의 마음을 세워가게 됩니다.
예수님의 마음이 그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 됨을 이루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축복드립니다.
마지막 세 번째 하나 됨을 이루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한번 예수님의 십자가를 묵상해 보면 좋겠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묵상해보면 십자가의 죽음도 있지만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의 언덕을 오르시는 과정이 있습니다. 여러분 그 올라가시는 장면을 한번 상상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여러분 누구를 위해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고 있습니까?
도대체 누구를 위해 지쳐 넘어졌던 무릎을 세우가며, 조롱과 채찍에 맞아가며 그 길을 올라가고 있습니까? 그가 지신 십자가라는 짐은 누구를 위한 짐입니까?
예수님의 짐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위한 십자가가 아닙니다.
온 세상을 위한 십자가입니다.
4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4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4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라고 기록합니다.
자기의 일을 하면서도 무엇을 하라고 합니까?
다른 사람이 하는 일에도 관심을 갖고 돌아봐주라는 것이죠.
한 영상을 보니 마라톤 경기에서 한 선수가넘어져서 일어나지 못하니 다른 선수가 그를 부축해서 결승선 까지 가주었습니다.
또 다른 영상에서는 결승선을 앞두고 선두가 넘어지자, 일으켜 세워 그를 앞세워 들어가게 합니다.
히브리서 12장 1절에서 우리는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믿음의 경주는 일등을 뽑고 가리는 경주가 아닙니다.
함께 뛰어 함께 들어가야 하는 믿음의 경주입니다.
우리가 넘어진 누군가의 손을 놓아버린다면, 그 사람의 경주는 거기서 끝이 나겠죠.
그런데 우리가 누군가의 넘어진 손을 붙들고 일으켜 준다며 그는 함께 경주하는 사람이 됩니다.
함께 믿음의 경주를 세워갈 수 있는 든든한 우편을 만드는 일입니다.
함께 서로를 위해 기도의 짐을 져 주심으로,
함께 서로를 위해 용기를 더해주심으로
하나됨을 이루어 예수님을 기쁘시게 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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