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rn Again

Yechan Park
John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40 views
Notes
Transcript

혹시 오늘 읽은 본문 기억하는 사람?? 막 사랑의 다섯가지 언어 하면서, 예은이가 설교문 미리 훔쳐봐가지고 아주 민망했던 기억이 나는데, 동일한 본문으로 피프리 예배에 다시금 서게 되었습니다.
작년 크리스마스에 이 본문을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이다’라는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때는 요한복음 3:16절에 보다 초점을 맞추어서 말씀을 살펴보았다면 오늘은 예수님과 니고데모의 대화에 초점을 맞추며 오늘 본문을 살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니고데모는 어떤 사람일까요?? 기억나는 사람??
니고데모는 오늘 말씀 1절을 보니까 ‘바리새인’이었으며 ‘유대인의 지도자’라고 성경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유대인의 지도자라는 말은 ‘산헤드린 공회원’이었다는 말입니다. 산헤드린 공회원이었다는 말은 당시 사회속에서 정치적으로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었다는 뜻 입니다. 즉 사회 속에서도 영향력있고 인정받는 니고데모라는 바리새인이 예수님을 찾아왔다고 성경이 기록하고 있는 것이죠.
니고데모가 언제 예수님을 찾아왔는가 살펴보니까 ‘밤’에 예수를 찾아왔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가 왜 밤에 찾아왔는가?에 대해서 여러가지 의견이 있지만 요한복음이라는 성경 안에서 ‘밤’은 부정적인 의미로 계속해서 사용되어 집니다. 즉 니고데모가 밤에 찾아왔다는 것은 ‘유대인의 지도자였고 바리새인이었지만 그의 영적인 상태는 어두운 상태였다’는 것을 보여주는 표현인 것이죠.
그런 니고데모가 예수께 찾아와서 “당신이 행하시는 표적을 보니까 당신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자라는 것을 알겠습니다”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여기서 니고데모가 말하는 표적은 직전 본문인 2장 23절에 나타나는 표적입니다. 예수께서 유월절에 예루살렘에서 여러 표적들을 행하셨고 이 표적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었습니다. 하지만 2:24절을 보니까 그런 그들에게 예수께서는 자신의 몸을 의탁하지 않으셨다라고 말씀하시는데, 이는 그들의 믿음이 예수를 향한 헌신의 믿음이 아니라 그저 예수께서 행하시는 일들이 놀라워 따르는 그런 감탄에 불과한 믿음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니고데모 역시 이런 믿음을 가지고 예수께서 행하신 표적을 보고 예수께 나아온 것이죠. 다른 이들과 동일하게 예수께서 행하시는 표적을 보니 아 이분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분이구나! 하는 감탄에 머무른 믿음을 가지고 예수께 나아온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은 이러한 니고데모의 영적인 상태를 ‘밤’에 빗대어 어둠 가운데 있는 믿음임을 분명하게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런 니고데모를 향해서 예수께서는 ‘사람이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거듭난다”라는 단어의 헬라어를 보면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야 한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라야 하나님 나라를 보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라고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것이죠.
이러한 예수님의 말씀은 유대인인 그리고 바리새인인 니고데모에게 크나큰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4절에 니고데모가 예수께서 말하기를 ‘사람이 어떻게 다시 태어난다는 말입니까? 다시 어머니의 뱃속에 들어가야 합니까?’라고 이야기를 함을 통해서 그의 충격을 알 수 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유대인인 니고데모 입장에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이 생각했을 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유대인’이면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즉 니모데모에게 하나님 나라란 ‘유대인’이기에 당연히 들어갈 수 있는 곳인데 예수께서는 유대인이어서가 아니라 ‘거듭나야만’ 들어갈 수 있다고 말씀하시니 니고데모 입장에서는 큰 충격으로 다가오는 것이죠.
그래서 니고데모가 이 ‘거듭남’에 꽂혀서 질문을 던지는 것입니다. 그는 당연히 유대인이기 때문에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아니라 ‘거듭나야’ 들어간다 말씀하시니 ‘도대체 거듭나는것이 무엇이냐?’라는 의문이 든 것이죠. 예수께서는 분명하게 거듭남에 대해서 ‘하나님으로부터 나는 것’이라는 의미로 말씀하셨는데 니고데모는 그것이 아니라 ‘두번째 태어나는 것’으로 거듭남을 이해하고 받아들입니다. 이는 그의 영적인 상태가 여전히 ‘밤중’에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그렇게 영적인 어둠 가운데 있는 니고데모가 ‘거듭남’에 대해서 꽂혀서 거듭남이 무엇인지? 어머니 뱃속에 다시 들어갔다가 태어나야 하는 것인지? 예수께 묻자 예수께서는 그것이 아니라 ‘물과 성령으로 말미암는 것’임을 말씀하십니다. 물과 성령으로 난다는 것은 ‘죄 씻음’과 ‘성령세례’를 이야기하는데 이는 예수를 나의 구주로 영접할 때 일어나게 되는 일들이죠. 즉 거듭남의 의미를 다시 태어나는 것에 초점을 두고 있는 니고데모에게 예수께서는 그것이 아니라 ‘물과 성령’을 통해 나야함을 말씀하시면서 ‘하나님으로 부터 시작되고, 하나님으로부터 나야한다’라는 말씀을 전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면서 예수께서는 성령으로 나는 것은 ‘바람이 어디서와서 어디로 가는지 다 알 수 없는 것과 같다’ 말씀하시며 성령을 통해 거듭나는 것을 사람이 다 이해할 수 는 없지는 것임을 말씀하여 주시죠. 하지만 바람이 어디서와서 어디로 느껴지는지 다 알 수는 없지만 분명하게 바람이 느껴지는 것처럼 성령을 통한 거듭남은 분명히 경험되어지는 사건임을 주님을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러한 예수의 말에 니고데모는 도대체 그런 일이 어떻게 일어납니까? 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이러한 니고데모의 질문 하나 하나는 여전히 그가 ‘밤중’에 거하며 영적인 어둠 가운데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그런 니고데모를 향한 예수님의 대답에 주목해야하는데, 그분의 대답을 한번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14-15절 입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하려 하심이니라” 아멘
예수께서 내놓은 대답이 뭐에요?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었듯 인자도 들려야한다 말씀하십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든 뱀은 ‘민수기 21’장의 사건을 이야기하는 말씀입니다. 민수기를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마음이 상하여 하나님을 원망할 때 하나님께서 불뱀을 푸셔서 그들이 불뱀에 물려죽게 하십니다. 이 때 유일한 살 길을 하나님께서 제시해주시는데 바로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높이 들었을 때 그 놋뱀을 쳐다보면 누구나 살 수 있다는 구원의 방법을 제시해주십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이 이처럼 들려야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해요?? 바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를 의미하는 것이죠.
이 예수를 보는자,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를 믿는자가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라고 니고데모를 향해 주님께서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즉 거듭남의 비결은 ‘하늘로부터 성령을 통해 나야하며,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를 보고 믿어야한다’는 것이죠.
사랑하는 피프리 여러분, 이것이 이스라엘의 선생이라 이야기하나 영적으로 밤중에 거하는 니고데모를 향해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복음의 본질입니다.
니고데모는 표적을 보고 주를 찾아왔습니다. 2장 23절의 말씀처럼 많은 사람들이 예수의 표적을 보고 그분을 따랐지만 그저 감탄에 불과한 믿음으로 따른 것 처럼 니고데모 역시 예수를 향해 그저 감탄의 믿음을 가지고 나아왔습니다. 내가 보니까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분입니다!’라는 감탄에 불과한 믿음으로 예수 앞에 나아온 것이죠.
하지만 그렇게 감탄에 불과한 믿음을 가진 니고데모에게 예수께서 제시하시는 것이 무엇이에요? 바로 ‘십자가에 달릴 예수’ 인 것입니다.
니고데모는 유대인이기에 당연히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고 생각했고, 산헤드린 공회원으로서 종교적으로 사회적으로 높은 위치에 거하며 나름대로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눈에, 그는 그저 영적으로 어둠 가운데 있는 사람에 불과했습니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유대인’이라는 신분이 아니라 ‘하나님으로 부터 거듭나는 것’ 이 필요했습니다. 그렇기에 그에게 ‘십자가의 예수’라는 복음의 본질을 제시하며 유대인이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성령을 통하여’ 거듭나야함을 말씀하고 계신 것이죠.
사랑하는 피프리 여러분 저는 이 예수님의 말씀을 여러분이 결코 가볍게 여기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특별히 여기모인 여러분 대부분이 다 ‘모태신앙’일 거에요. 저도 그렇고 부모님이 교회를 다니셔서 어려서부터 자연스레 교회에 나아오게된 사람들이죠. 그런데요 여러분 ‘구원’은 모태신앙이여서 받는 것이 아님을 기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이 기독교 집안에 태어나 어려서부터 교회에 다녔기에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오늘 거듭남에 대해서 어떻게 설명하세요?? ‘네가 유대인이기 때문에, 모태신앙이기 때문에 구원을 받는 것이다’라고 설명하시나요?? 아니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분을 믿는 믿음을 통해 성령을 말미암아 구원을 받는다!라고 말씀하고 계세요!! 우리가 기독교 집안에 태어나서 구원을 받는게 아니라, 여러분 개개인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고백하고 믿었기에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기억하시길 부탁드립니다.
혹시 지금까지 ‘나는 구원 받았어요!’라고 생각했던 것이 ‘내가 예수 믿는 집 안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구원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면 오늘 말씀을 기억하면서 여러분 개개인의 신앙 고백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하는 여러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특별히 오늘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리신 자신’을 설명하실 때 ‘민수기 21장’의 불뱀과 놋뱀 사건을 가지고 비유적으로 설명하십니다. 여러분이 민수기 21장의 상황을 잘 한번 상상하며 나아가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향한 원망으로 하나님께서 그 공동체 안에 ‘불뱀’을 푸셨어요. 사람들이 불뱀에 물려서 죽어나가는 아비규환의 상황이라고요. 지금 내 옆에서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죽어나가는 사람들의 비명소리와 죽은 가족들로 인해 슬퍼하는 울음 소리와 나 역시 불뱀에 물릴까 두려워 떠는 공포의 비명 소리들이 사방에서 울려퍼지는 그런 아비규환의 지옥과 같은 상황이라고요.
그런 지옥과 같은 사방에서 비명과 울음소리가 울려퍼지는 상황 속에서 모세가 놋뱀을 들고 소리칩니다. ‘이 뱀을 쳐다보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라고.
이렇게 소리치는 모세의 말이 잘 들렸겠습니까?? 그 당시에 스피커가 있었겠어요? 마이크가 있었겠어요?? 이 당시 이스라엘의 인구가 약 200만명이라고 하는데 200만명의 비명 소리 앞에 모세 한사람의 소리침이 얼마나 작았겠습니까?? 그런데, 그 작고 작은 소리를 듣고 놋뱀을 쳐다본 사람들은 그 지옥 같은 상황 속에서 ‘구원’을 받았단 말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어려서부터 교회를 다니면서 ‘예수를 믿어야 구원을 받는다’라는 말을 얼마나 많이 들었겠습니까?? 목사님들을 통해서 전도사님들을 통해서, 선생님들을 통해서 수도없이 들은 말이 ‘예수를 믿어야 구원을 받는다’는 말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을 통해서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계속해서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의 마음에 예수를 나의 구원자로 영접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200만명의 비명 소리에 귀가 닫혀, 놋뱀을 바라보면 산다고 소리쳐 외치고 있는 모세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고 있는 자’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저는 오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다시금 여러분 앞에 저를 ‘모세와 같은 자’로 세우셨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수도없이 들었던 이야기를 다시금 여러분에게 말씀케 하시는 이유는 아직 200만명의 비명 소리에 귀가 닫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를 바라보라’는 메시지를 듣지 못한 자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피프리 여러분, 여러분의 영적인 상태가 니고데모와 같이 한 밤중에 거하고 계시진 않은지 돌아보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이 교회에 나오는 이유가 그저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목사의 아들이고, 집사님 권사님, 장로님의 아들 딸이기 때문에 나아오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시길 바랍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예수께서는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유대인이어서!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를 믿음으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임을 말이죠.
사랑하는 피프리 여러분, 이 예수님의 음성이 귀 기울입시다. 여러분의 귀를 막고 있는 200만명의 비명 소리가 무엇입니까?? 세상의 가치관, 세상의 소리? 또는 여러분이 기독교 집안에 태어났다는 그 사실? 그것이 무엇이든, 우리의 귀를 막고 있는 것에서 돌이켜 우리를 향해 목놓아 외치고 있는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시길 바랍니다.
십자가에 달린 예수를 바라보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너희의 유일한 구원의 길이다!!라고 목놓아 외치고 계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시고 그 음성에 반응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사랑하는 피프리 여러분, 예수께서 2000년 전에 여러분의 모든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이제 이 예수를 믿는 자는 영원히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구원을 얻습니다. 이 시간 그 하나님의 음성에 귀기울여 반응하시길 원하시는 분은 한번 저를 따라 같이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영접기도”
예수님, 나는 주님을 믿고 싶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나의 죄의 대가를 치러주시니 감사합니다. 나는 지금 내 마음의 문을 열고 에수님을 나의 구원자, 나의 하나님으로 영접합니다. 나의 죄를 용서하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심에 감사합니다. 나를 다스리시고 주님이 원하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사랑하는 피프리 여러분, 여러분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를 바라보고 믿음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었습니다. 이 사실을 잊지마시고, 항상 예수님을 더 깊게 알아가고 사랑함으로 나아가는 여러분이 되시길 부탁드립니다. 저도 여러분이 더 예수님을 알고 사랑할 수 있도록 돕도록 하겠습니다.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
Earn an accredited degree from Redemption Seminary with Log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