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 열망, 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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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장 나의 기쁨 나의 소망 되시며
436장 나 이제 주님의 새생명 얻은 몸
* 기도 - 찬송가 - 기도(정순희 권사) - 광고(전교인 100일 감사노트 쓰기/ 일본단기선교 // 8월 새벽기도 십일조 14일 월요일부터 16일 수요일까지) - 성경봉독
디도서 2:11–14 (NKRV)
11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12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하지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신중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
13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
14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어제 경기도 파주에서 한 손님이 부산에 놀러왔습니다. 경기도 파주에서 여기까지 5시간을 달려서 왔는데 얼굴 한번 안보고 놀다가시라고 하기가 그래서 시간을 내어 만나고 왔습니다. 해운대에서 점심을 먹고 광안리를 들렀다가 영도에 흰여울길을 간다고 해서 저는 흰여울길에서 만나기로 하고 서둘러 광안대교를 타고 넘어갔습니다. 그때가 오후 2시쯤이었는데 한참 더울 때지 않습니까? 어제 낮기온이 35도라고 했는데 성도님들도 아시는 분들은 아시다시피 거기 영도 흰여울길은 햇빛이 직빵으로 내리쬐는 길이다보니 체감온도는 40도가 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흰여울길 저 아래쪽까지 내려갔다가 또 올라오니 땀이 흠뻑 젖어가지고 어쩔 수 없이 근처 카페에 들어가서 땀을 식혔습니다. 에어콘이 빵빵하게 틀어져있는 카페에서 아이스 한잔 시원하게 마시고 나니까 좀 살아나는 것 같았습니다. 성도님들께서도 이런 여름에 가족들끼리, 또 우리 동역자들끼리 어디 놀러가면 땡볕에 걸어다니고 하실때가 있지 않습니까? 그럴 때면 시원한 팥빙수나 아이스 커피, 얼음 동동 띄운 수박화채를 먹으면 참 좋겠다 싶으실 겁니다. 그런데 더위를 피해 들어간 가게가 돈을 아낀다고 에어콘도 안키고, 얼음도 몇알 넣지도 않고, 그러면 얼마나 짜증이 나고 화가 나겠습니까? 다시는 거기 안 가야겠다고 생각하는게 당연합니다. 더운 여름에는 시원한 것이 땡기고, 추운 겨울에는 따끈따끈한 것들이 땡기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 않습니까? 이와 비슷하게 그리스도인들한테도 당연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마음을 속 시원하게 해드리는 것, 그리고 뜨거운 신앙의 열심으로 하나님을 섬기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잠25:13 은 이렇게 말합니다.
13 충성된 사자는 그를 보낸 이에게 마치 추수하는 날에 얼음 냉수 같아서 능히 그 주인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느니라
또 롬12:11 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11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충성된 자로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는 ‘내가 너 때문에 속이 다 시원하다!’라고 말씀해주시지 않습니까? 자꾸 애먹이고,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고, 하라는 일은 안하고 딴 짓이나 하고 다니고, 게을러서 집에서 누워있기만 좋아하는 사람들 때문에 속이 깝깝하신데 ‘충성된 너로 인해서 속이 시워언하다’라고 우리한테 말씀해주신다면 그게 얼마나 뿌듯하겠습니까? 저는 너무 즐겁고 기쁠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딱딱 알아듣고 바로바로 실행하는 사람, 애먹이지 않고 오히려 애먹이는 사람들을 케어해주는 사람, 얼마나 하나님 보시기에 든든하고 예쁘겠습니까? 우리가 그런 사람들로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또 날마다 하나님 말씀 앞에 나오고, 말씀대로 살아가려고 애쓰고, 섬김의 자리에서도 날마다 힘쓰면서, 하나님 모르는 사람들한테 하나님 사랑 전하려고 하는 열심을 가진 사람들은 얼마나 하나님의 기쁨이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열심으로 주님을 섬기는 자들을 너무나도 기뻐하시고,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하라고 말씀해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도 그런 인정받는 일꾼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주님께서는 우리가 얼마나 수고하는지, 얼마나 주님을 사모하여 열심을 내는지 모두 알고 계십니다. 우리는 얼마나 주님을 위해 열심을 내며 살아왔습니까? 주님께서 아시고 칭찬해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얼마나 더 열심을 내어 주님 나라를 위해 살고 있습니까? 주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아시고 우리에게 다시 거룩한 열심으로 살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말씀 14절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딛2:14
14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이 말씀은 우리에게 구원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말해줍니다. 이 말씀에 의하면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하는 것이 구원의 목적입니다. 조금 더 말씀의 내용을 통해 구체적으로 표현해보겠습니다. 여기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은 이렇게 바꿔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의 형벌 받아 비참함과 수치와 말할 수 없는 고통과 버림받음과 절망 가운데 자진하여 자신의 목숨을 버리신 것은 죽어야만 하는 죄인인 우리를 대신하시기 위함이다'라고 말입니다. 예수께서 그렇게 대속하신 목적이 무엇이라고요?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고요. 예수님께서 대속하신 이유가 그것이라면, 그분의 십자가 사랑으로 구원받은 백성들은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백성'이 되어야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기까지 내셨던 그 수많은 수고와 열심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우리가 조금이라도 알게 되었다면 우리도 예수님의 열심을 본받아 열심으로 주를 따라 살아가는 삶이 되어야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그리스도인들에게 뜨겁거나 차거나 한 두가지, 곧 충성된 삶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케 해드리고, 십자가의 사랑이 목적했던 것처럼 열심으로 살아가는 백성이 되는 것이 우리에게 마땅한, 그 사랑에 마땅한 삶입니다. 우리가 곧 그러한 사람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아멘!
그렇게 살기 위하여 우리는 몇가지 사항에 대해서 숙고하며 스스로를 점검해야 합니다.
1. ‘사랑으로써 타오르는 열심’
이러한 삶을 살기를 원하는 열심은 사랑으로써 불타오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한 감격이 아니면 무엇이 우리를 그토록 희생적인 열심으로 살게 하겠습니까? 그렇기에 우리가 주를 위한 어떤 열심을 내기를 원한다면 먼저 우리는 주님의 사랑에 더욱 깊숙하게 들어가야만 합니다. 그분의 사랑에 더욱 깊이 우리의 마음이 감화되고, 그 사랑이 우리의 모든 것을 사로잡으며, 우리의 의지가 하나님의 사랑으로 불타오르기 시작할 때, 결코 가만히 있을 수 없다고 느끼게 될 때 우리는 그리스도를 향한 열망을 가지고 살아가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무언가 주님의 큰 일을 감당하고 싶으시다면, 그리고 많은 것을 내려놓고 물러나있던 모습에서 벗어나 주님의 영광을 위해 다시 한번 분투하며 살고 싶다면 우리는 그렇게 결단하며 나아가기에 앞서 주께서 우리를 위하여 먼저 무엇을 하셨는지를 깊이 묵상하며 기도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요일 4:19 말씀은 이렇게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19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우리의 사랑은 언제나 주님의 사랑으로부터만 시작된다는 것을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사랑함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원천은 오직 그리스도의 사랑 밖에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더욱 힘써 주님의 백성으로 살길 원한다면 우리는 먼저 주님의 사랑 가운데 깊이 들어가 그분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를 경험해야만 할 것입니다. 얼마만큼 주님의 사랑이 여러분의 마음 안에서 커지고 있습니까? 우리의 삶의 영역에서 주님이 차지하시는 영역이 얼마나 커지고 계십니까? 주님의 사랑의 높음과 그 너비와 깊이가 얼마나 큰지를 날마다 더욱 깨달아 알게 되어지고 있습니까? 이러한 질문들로 우리는 스스로를 점검하며,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의 사랑에 깊이 들어가고 있지 못하는지, 그리고 얼마나 그 사랑 아래 내 삶을 드리지 못하고 있는지를 깨닫고 주님의 사랑을 더 알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2. ‘무엇을 위한 열심인가’
두번째로는 이 열심이 무엇을 위한 열심인가를 우리는 생각해야만 합니다. 열심의 근원은 그리스도의 사랑이며, 열심의 목표는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돌리고 그분의 영광 가운데 영원토록 하나님을 즐거워하며 살도록 부름받았습니다. 인간이 지음을 받은 목적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영광이 아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도록 지어진 존재들입니다. 우리의 영광은 금세 색이 바래고, 티끌과 같이 되어 공중에 날려 사라져버리지만 하나님의 영광은 영원토록 찬란하게 빛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며, 그 영광을 즐거워하고 기뻐하며 영원 가운데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가장 가치로운 것을 위해 살기를 원하도록 지어졌기 때문에 가장 가치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감이 마땅합니다.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영광은 우리에게서 얼마나 아름답게 빛납니까? 하나님은 가치없는 자들을 부르셔서 가치있는 자들로, 하나님의 자녀로 만드십니다. 그리고 구원을 통해 하나님이 얼마나 아름다우시며, 긍휼이 많으시며, 사랑이시며, 그분의 여러 속성들이 얼마나 탁월한지를 보이시지 않습니까? 우리는 그분의 탁월하심을 노래하고 높이며 영광을 돌려야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가장 탁월하고 가치있는 것인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열심을 내야합니다.
3. ‘어떤 열심을 내야하는가?’
12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하지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신중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
13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
그리스도인들은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에서 그 어떤 열심을 내야하는지를 찾고 그것을 따라 행해야 하겠지요. 이 말씀은 우리에게 버려야 할 것과 가져야 할 것을 말해줍니다. 먼저 우리는 ‘경건하지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려야만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이러한 것들을 내려놓지 않고 계속해서 마음에 꼭 품고 있으려고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뜻에 정확하게 반하는 일입니다. 마찬가지로 ‘신중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서 살아가야만 하는데, 우리가 그렇게 하지 않는 것 또한 하나님의 원하심에 정확하게 반하는 일입니다. 말씀은 분명하게 하나님의 뜻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버려야 할 것과 가져야 할 모습 말입니다. 잠6:27 은 이렇게 말합니다.
27 사람이 불을 품에 품고서야 어찌 그의 옷이 타지 아니하겠으며
불을 품에 품고서 옷이 타지 않을 수 없는 것처럼, 우리가 죄악을 품에 품고서 어찌 해를 입지 않을 수 있다고 말하겠습니까? 우리는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죄악들을 결코 품지 말아야 하며, 자신에게서 완전히 떼내어 버려야 합니다. 우리는 경건하지 않은 것이라면 그것이 어떤 것이든 행동은 물론 생각조차 하지 않으려고 해야 합니다. 세상의 정욕 곧 특징적으로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들, 안목과 육신의 정욕과 세상 자랑이라는 정욕을 버려야만 합니다. 보는 것도 행동하는 것도 말도 세상의 욕심에서 벗어나야하고, 특히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는 것을 버려야만 합니다. 그러한 세상 정욕들은 우리에게 마치 품에 품은 뜨거운 불처럼 우리를 태울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버리라고 하시는 것을 버려야만 합니다. 또한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러하시듯 자신을 통제하고 절제하며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여 행하는 ‘신중함’으로,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러하시듯 ‘의로움'으로, 그리고 하나님께서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명령하시듯 ‘경건함'으로 살아가기를 힘써야 합니다. 요구되어지는 이러한 모습들은 모두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그리고 우리가 어떤 존재가 되었는지를 말해주기 때문에 우리는 이것이 합당하다고 말해야만 합니다. 이러한 모습들은 하나님께서 그러하신 분이시며, 그것을 요구하시고, 그것을 기뻐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말해줍니다. 또한 이러한 삶이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에 그분을 닮은 모습으로 살아야 함을 말해줍니다. 우리가 사탄의 자식들이라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을 거절하면 됩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에 하나님을 닮은 모습으로 살아가게 되어야만 한다는 것이 당연합니다. 자녀는 부모를 반드시 닮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존재가, 성품이, 말과 행동이, 삶이, 하나님을 닮은 거룩한 자녀의 모습이 되기를 바라며, 이를 위해 날마다 힘써야 합니다.
4. ‘열심의 방향을 확인해야 한다’
William Fenner(1600-1640)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가 하나님께 열심을 내지 아니하면 이 세상 것을 좇음이니라.” 우리는 열심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그 방향을 확인해야 합니다. 열심이라는 것은 항상 두가지 방향을 가집니다. 우리의 ‘마음이 끌리는 것을 하는 열심’, 그리고 우리가 ‘싫어하는 것을 하지 않으려고 하는 열심’이 바로 그것입니다. 원하는 것을 하려는 열심과 원하지 않는 것을 하지 않으려는 열심을 우리는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면 거룩을 원하고, 죄를 원하지 않는 마음을 가진 자들이어야 합니다. 스스로를 돌아볼 때 우리는 얼마만큼 거룩을 위한 열심을 가지고 있습니까? 우리는 얼마만큼 죄를 미워합니까? 우리는 우리 마음이 향하는 열심의 방향을 확인할 때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을 닮아가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 나라를 갈망하고 있습니까? 우리의 모습이 더욱 예수님의 인격을 닮기를 원합니까?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살고 있습니까? 거룩을 위해 자신을 쳐서 말씀 아래 복종시키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거룩하신 하나님을 닮은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 우리는 스스로를 돌아보면 우리의 열심이 어느방향으로 향하고 있는지를 확인해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입니까? 아니면 하나님께서 그렇게나 싫어하시는 죄악입니까? 우리는 무엇을 원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것을 미워하고,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을 싫어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과 같은 방향을 향하는 자들이 되기를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5. ‘열심을 낼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많은 경우에 우리는 좋아하면 열심히 한다고 생각합니다. 맞습니다. 어떤 것을 너무 좋아하면 어렵고 힘들어도 그것을 어떻게든 하려고 참고 인내하고 힘을 쏟습니다.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주변을 둘러보면 좋아하기는 좋아하는데 그정도까지는 아니라서 슬쩍 손 대봤다가 금방 포기하는 그런 경우를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역경과 수고를 감당할만큼 충분히 원하지 않는 것입니다. 제가 바라는 것 중에 하나는 그런 상태에 놓여져 있는 사람들을 도와주는 것입니다. 넘어야 할 허들을 약간만 낮춰주거나, 뒤에서 조금만 더 밀어주고 같이 해주면 충분히 해낼 수 있는 경우가 대다수이기 때문입니다.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잘 없고, 누구나 시행착오를 겪지 않습니까? 먼저 그 길을 걸어간 사람들이 조금만 잘 도와주면 얼마든지 잘 해낼 수 있게 되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온갖 역경과 고난을 넘어서는 그런 열심을 가지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그렇게까지 강렬한 열망이 늘 주어지는 것은 아니죠. 처음부터 열정 가득하고 열망으로 가득찬 마음으로 시작할 때도 있지만, 많은 경우에는 조금씩 해나가면서 작은 것부터 승리를 쌓아가고, 재미를 느끼고, 함께 즐거워하며 점점 더 열심을 내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만약 우리가 열심을 내고 싶은 방향이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방향과 일치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할 수 있도록 해야합니다. 자기자신이, 그리고 주변 사람들이 그렇게 살 수 있도록 도와야합니다. 순간의 지나친 열정은 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 무리한 요구를 삶에 부과합니다. 당연히 높은 확률로 실패할 수 밖에 없고, 그것은 좌절로 이어지게 되어있습니다. 우리는 자기자신이 어느정도 감당할 수 있는지를 조금씩 간보면서 성장할 수 있는 적절한 수위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해야합니다. 또한 주변의 형제,자매들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감당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은 사람마다 기준이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나이도 같고, 경력도 같고, 직분도 같지만 더 많은 것을 감당할 수 있고, 어떤 사람들은 같지만 더 적은 것을 소화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자신을 기준으로 평균을 정하고는 이정도는 할 수 있다고 다른 사람들을 판단해선 안됩니다. 우리는 상대가 얼마만큼 감당할 수 있는지를 확인하며 성장을 위해 열심을 낼 수 있도록 조절해주어야 합니다. 작은 것부터 승리를 맛보고 즐거움을 느낄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합니다. 필요한 것이 있으면 아낌없이 조언과 기도과 지원을 해주며,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합니다. 믿고 일을 맡겨주기도 하고, 실패했을 때에 복돋아주기도 해야합니다. 그렇게 지혜롭게 서로를 도울 때에 우리는 점차 서로 성장하게 되고, 점차 주님 안에서 믿음으로 살아낼 수 있게 됨을 경험하게 됩니다. 주님께서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갈6:1)라고 사도를 통해 말씀해주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리고 갈6:4-6
4 각각 자기의 일을 살피라 그리하면 자랑할 것이 자기에게는 있어도 남에게는 있지 아니하리니
5 각각 자기의 짐을 질 것이라
6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리고 갈6:7-10
7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8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10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
주께서 말씀하시지 않습니까? 각각 자기의 일을 살피며 자기의 짐을 질 뿐 아니라, 짐을 서로 져주며, 가르침을 받는 자와 말씀을 가르치는 자가 좋은 것을 함께 하며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열심으로 심은 것에 때가 이르면 열매를 맺고 거두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6. ‘소망이 열심으로 살게 한다’
말씀을 맺으며 딛2:13 을 보겠습니다.
13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
우리가 열심을 내게 되는 것은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소망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아무것도 성취할 수 없고, 노력해서 이루어도 어차피 언젠간 사라져버릴 것들이라면 우리는 허무함 가운데 아무 소망이 없다고 외칠 수 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소망 가운데 살도록 부르셨습니다.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행한 모든 것들, 더욱이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열심히 행한 모든 삶은 하나님 앞에 올려드리는 거룩한 산제사이며, 하늘에 상급을 쌓는 것임을 주님께서는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주님께서는 약속하신대로 다시 오실 것이며, 하나님 나라가 완전해 도래하게 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죄와 사망이 더이상 없는 하나님 나라에서 영생을 누리며 살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완전한 복락 가운데 주님과 함께 영원히 살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행했던 모든 주님을 위한 것들, 열심으로 행했던 모든 것들을 주께서 칭찬하시고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하라 하실 것입니다. 그러한 소망이 우리를 열심으로 살게 하지 않는다면 무엇이 우리를 열심으로 살게 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 함께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주님의 마음을 시원케 해드리는 충성된 종이 되어,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주님의 백성으로, 주님의 자녀로 거룩하게 살게 하여주시옵소서’ 날마다 믿음 더하여 주시고, 거룩히 살아갈 힘을 주소서! 주님의 기쁨되게 하소서! 우리 그렇게 함께 기도하며 나아가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