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본질을 보라(렘17:1-18)

예레미야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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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 2023년 8월 9일 수요일 새벽
본문 : 예레미야 17장 1-18절
찬송 : 438장 내 영혼이 은총입어
지난 이틀 간 “예수동행일기”를 쓰며 한 가지 공통점이 있는데, “제가 무능 하다는 점”
오늘도 새벽에 일어나 준비를 하며, 만약 하나님께서 새벽 중에 “너의 삶은 여기까지 였다.” 말씀하시면 어떤 대비도 하지 못한 채 주님 곁에 가는 것 아닌가? 그러니, 오늘 새 하루를 허락하신 주님 앞에 기쁨으로 오늘 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 은혜에 보답하는 길이구나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를 믿는 우리의 삶에, 예수 없는 삶은 곧 저주나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하루를 살아감에 있어 “내게 은혜를 허락하신 하나님 앞에 겸손으로 나아갈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을 떠난 자가 감당해야 할 결과”가 무엇인지를 먼저 선포하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5절과 6절을 보면, 이렇게 기록합니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무릇 사람을 믿으며 육신으로 그의 힘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 / 그는 사막의 떨기나무 같아서 좋은 일이 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광야 간조한 곳, 건건한 땅, 사람이 살지 않는 땅에 살리라”
여호와를 떠나니 그들에게 임하는 결과는 바로 ‘저주’ 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게 저주만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바라봄에 어떤 은혜를 누릴 수 있는가 알게 하셨습니다.
[Point Message : 1. 저주도 복도 다 하나님께 있음을 기억하라]
7절과 8절입니다. “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 그는 물가에 심어진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
오늘 본문이 주는 첫 번째 은혜는, “저주도 복도 다 하나님께 있음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저주를 받음도 어떤 이유에서 였습니까? 이들이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 아닙니까? 동시에 이들이 복을 누릴 수 있는 방법 또한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의지했기 때문” 입니다.
이스라엘 백성 외에도 성경에 이방 국가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심판을 받고 저주를 참 많이 받았습니다. 그들 또한 자신의 국가에 맞는 규율과 법도를 잘 지켜 행했을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이들이 심판을 받았습니까? 이유는 그저 하나 입니다. “하나님을 떠났다.”
그럼 반대로, 아브라함도, 모세도, 여호수아도 이들이 하나님의 복을 누릴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 또한 하나 아닙니까? “하나님을 의지했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신앙은 참 단순한 것 같습니다. 여러 이단과 이방은 해야 할 과정들이 참 많습니다. 얼마만큼의 봉사도 해야 해, 헌금도 해야 해, 전도도 해야 하는 등 여러 조건이 있습니다. 이 조건들을 채우지 못하면 이들이 말하는 ‘구원’을 누릴 수 없습니다.
하지만 기독교는 참 단순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가?” 이에 “네” 라고 대답한다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하지만 너무 단순해서 일까요? 우리는 그 단순함을 넘어 외부적인 요소들로부터 구원을 인정 받으려 합니다. 섬김과 배려로, 봉사와 실천으로 말입니다. 그럼 자연스레 우리는 하나님이 아닌, 내 힘, 내 능력, 내 기준을 가지고 움직이려 합니다. 그렇게 하나님보다 다른 무엇인가를 의지합니다. 마치 이방국가처럼 말입니다.
저 역시 이로부터 자유롭지 못합니다. 오늘 날 목사는 참 많은 것을 해야 합니다. 찬양도 잘 해야 하고, 방송, 음향도 잘 다뤄야 하고, 정치, 경제, 문화로도 빠삭해야 합니다. 사회적 이슈에 민감해야 하고 때론 예체능 계열에 있어서도 감각이 뛰어나야 합니다. 그렇게 하나 하나 다 잡으려다 보니 “하나님을 잃게 될 때”가 많습니다. 본질을 잃어 버리는 것이지요.
그런 측면에서 우리는 점검과 회개를 통해 돌아가야 합니다. 복도, 저주도 아니 조금 더 넓게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다 하나님께로부터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바라옵기로는 저와 여러분들의 오늘 하루는 본질로 돌아가 하나님의 절대적 진리를 다시금 붙잡아 나아가는 시간이 되길 소망합니다.
[Point Message : 2. 하나님께 간구하라]
예레미야는 복도 저주도 다 하나님께 있음을, 그 본질을 다시금 언급하며 간구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행동입니다. 본질을 깨달았는데, 그 본질로부터 간구하는 행동은 당연한 이치 아니겠습니까?
오늘 본문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두 번째 은혜는, “하나님께 간구하라”는 것입니다.
제 핸드폰은 아이폰 입니다. 아이폰에는 어떤 기술이 들어 갔는지, 또 왜 이 핸드폰을 개발하여 만들게 되었는지, 어찌 디자인을 하게 되었는지 등의 이유를 알고자 하면, 누구를 찾아가야 합니까? 당연히 애플 본사 또는 최고 담당자를 찾아가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 누구도 아이폰의 원리를 삼성 이재용 회장에게 묻지 않을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삶에 문제를 깨달고 본질을 찾게 되었다면, 우리는 누구 앞에 나아가 구해야 합니까? 바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 간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주님을 찬송했습니다. 주님을 높였습니다. 그리고 17절, 18절과 같은 간구로 하나님 앞에 엎드렸습니다. “주는 내게 두려움이 되지 마옵소서 재앙의 날에 주는 나의 피난처시니이다 / 나를 박해하는 자로 치욕을 당하게 하시고 나로 치욕을 당하게 마옵소서 그들은 놀라게 하시고 나는 놀라게 하지 마시옵소서 재앙의 날을 그들에게 임하게 하시며 배나 되는 멸망으로 그들을 멸하소서”
그가 간구함은 “이스라엘의 보호하심” 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떠나 심판과 저주가 뒤덮일 이들이 그 상처로부터 자유하도록 간구합니다.
욥도 그랬습니다. 본질을 깨달자 하나님 앞에 간구하지 않았습니까? 본질을 깨달은 자는 그 본질 앞에 자연스럽게 나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도 본질을 잘 압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 있음을 참 잘 압니다. 그렇기에 오늘 하루 그 본질 앞에 간구하며 엎드려지는 하루길 소망합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가 오늘 우리게 또 한 번 임함에 참 감사한 하루 입니다. 그 은혜를 누리되 무엇보다 복 주시는 주님을 보는 하루길 소망합니다. 우리가 누리는 은혜와 복이 하나님께 있음을 말입니다.
더 나아가 그 분 앞에 진실됨으로 간구하며 묻고 나아가는 하루이길 소망합니다. 주께 물어 걸어가는 그 한 걸음은 고난 중에도 승리가 될 것입니다.
[기도제목]
1) 우리 이 시간 들은 말씀을 가지고
- 본질의 회복이 오늘 우리 삶 가운데 주어지게 하소서
- 모든 일에 간구하는 자 되게 하소서
2) 한 번 더 기도하겠습니다. 교회를 위해서 그리고 각자 가지고 나오신 기도제목을 가지고
- 2학기 진행되는 사역훈련과 일대일 및 많은 신앙강좌들이 하나님의 인도함 가운데 준비되어지고 진행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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