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 샬롬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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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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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나타나 이르되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하매 (사사기 6장 12절)
서론(어제 내용을 복습)
서론(어제 내용을 복습)
우리는 어제 우리 주님께서 에덴동산에서 임한 ‘샬롬’을 회복하시기 위해 가나안 땅과 그 땅에서 지켜야 할 율법을 허락하셨다는 것
그리고 그 땅에 들어간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땅에 비록 들어가기는 하였으나 그들에게 주님이 허락하신 ‘샬롬’이 어떠한 이유로 임하지 못하고 축복의 땅이 되어야 할 그 땅이 어떻게 저주의 땅이 되었는지 살펴보았습니다.
이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이 드디어 자신들의 죄를 인식하고 우리 주님께 자신들을 살려달라 부르짖게 되었다는 것을 나눴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주님을 기억하고 부르짖는 데까지는 7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우리 주님은 자신의 백성의 부르짖음에 바로 응답하십니다. 왜냐하면, 우리 주님이 가나안 땅으로 자신의 백성을 들여보낸 것은 그들을 괴롭게 하기 위함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에게 주님 안에서 주어지는 ‘샬롬’을 허락하기 위해서였기 때문입니다.
본론1(주의 사자가 기드온을 찾아가다!)
본론1(주의 사자가 기드온을 찾아가다!)
드디어 이스라엘 백성은 여호와께 부르짖었고, 우리 여호와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기드온을 찾아가십니다. 그런데 본문을 살펴보면 기드온을 찾아가셨습니다. 그런데 그 기드온을 찾아가서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하매”(삿6:12)
기드온이 지금 뭐 하고 있는데 큰 용사는 무슨 큰 용사입니까! 미디안에게 곡식을 뺏길까 봐 숨어서 작대기 가지고 이렇게 가닥가닥 타작하고 있는데요.
큰 타작마당에서 하는 것도 아니고 무서워서 작대기 몇 개 가지고 이러고 있는데 무슨 용사입니까!
그런데 실은 이 구절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책망하시는 의미도 있습니다.
무슨 의미냐 하면 이스라엘은 원래 용사여야 돼요. 그렇죠? 왜요? 하나님의 백성들이니까 원래는 큰 용사여야 해요.
그런데 지금 용사가 아니잖아요. 미디안에게 그냥 아주 그냥 주눅이 들어가서 숨어 있잖아요. 그러니까 이건 어떤 의미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반어법으로 책망하시는 말씀일 수도 있어요.
그러나 본문에서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하매” 이렇게 번역이 돼 있지만, 원문상은 순서가 바뀌어 있어요. 본문을 뉘앙스를 살려서 말하자면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하시니 큰 용사가 돼라!” 이렇게 말씀하시는 겁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기드온과 함께하심으로 미디안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할 수 있다고 말씀을 하시는 겁니다. 그런데 그 대답 그 말씀을 들은 기드온이 뭐라고 얘기했어요?
“하나님이 계시면 우리가 왜 이 모양 이 꼴로 살고 있는데요” 항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미 기드온 시대만 해도 하나님에 대한 체험을 상실한 거예요.
본론1(하나님을 상실한 시대)
본론1(하나님을 상실한 시대)
하나님에 관한 이야기가 옛날이야기가 돼버린 겁니다. 옛날에 하나님은 그러셨을지 모르지만, 오늘 하나님은 우리에게 안 그렇다는 거예요.
그래서 기드온이 뭐라고 표현했냐면
“이제 여호와께서 우리를 버리사 미디안의 손에 우리를 넘겨 주셨나이다 하니”(삿6:13)
여쭤보겠습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을 여호와께서 “우리를 버리사 미디안의 손에 우리를 넘겨주셨나이다.” 맞습니까? 틀립니까?
기드온이 그러잖아요.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하시니 너 큰 용사야 이랬더니 무슨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기는 웃기는 소리를 하고 계시는구만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면 뭐 우리가 이러고 있겠어요. 여호와께서 우리를 버리사 미디안의 손에 우리를 넘겨주셨어요.” 맞습니까? 틀립니까? 반은 맞고 반은 틀렸습니다.
미디안에 넘겨주신 건 맞아요.
지난 시간에 저랑 살펴보신 것처럼 분명 6장 1절에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칠 년 동안 그들을 미디안의 손에 넘겨 주시니”(삿6:1)
누가 넘기셨어요? 하나님이 넘기셨어요.
근데 하나는 틀려요. 여호와는 아직 버리지 않으셨어요.
그러니까 기드온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몰라요. 이미 선지자를 통하여 어떻게 말씀하셨어요.
율법을 떠나면 그것이 곧 고통과 괴로움이 되는 거예요. 하나님이 버린 게 아니에요. 쉽게 얘기해서 지들이 집을 나간 거지.
본론1(사랑 받은 아버지의 비유/ 탕자의 비유)
본론1(사랑 받은 아버지의 비유/ 탕자의 비유)
예수님의 비유에서 사랑받은 아버지의 비유 일명 탕자의 비유 잘 아시죠?
아버지가 아들을 내보냈어요. 아들이 지 발로 기어나갔어요. 지 발로 기어나갔죠.
그래서 집 나가서 뭐 했어요. 집 나가면 고생입니다. 그러니까 지 발로 나간 거지. 언제 아빠가 떠밀었어요?
그러니까 보세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했기 때문에 그로 말미암아 자신들이 괴로워진 것인데 기도는 이거는 생각을 안 하는 겁니다.
자신들이 하나님을 떠났다는 사실은 생각을 안 하고 자신들의 죄로 인해 징계받는다는 사실만 기억하고는 이거 하나님이 우리 넘기신 거 아니냐 책임을 누구에게 넘기죠? 하나님께 넘기죠.
제가 전에도 많이 말씀드렸잖아요. 죄의 가장 중요한 본성은 떠넘기는 거예요.
제가 전에도 많이 말씀드렸잖아요. 죄의 가장 중요한 본성은 떠넘기는 거예요.
떠넘기는 거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너 왜 먹었니? 그랬더니 아담이 뭐래요?
저 여자 때문에 내가 그랬어요. 하나님이 하와에게 물으셨죠. 너 왜 그랬니? 하와가 뭐래요?
저 뱀 때문에 그렇대요. 이게 원래 죄의 본질이에요. 그리고 하와에게 떠넘긴 것도 아니고요. 뱀에게 떠넘긴 것도 아니에요.
결국, 누구에게 떠넘긴 거예요?
뱀을 만드신 하나님 여자를 창조하여 자신에게 갖다 주신 하나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만드신 하나님 누구의 문제라는 거예요?
하나님의 문제라는 오늘 가슴에 무슨 원망과 불평이 있는지 잘 살펴보셔야 합니다.
그 원망과 불평의 끝이 누군지 아십니까?
바로 하나님이에요. 결국은 하나님에 대한 원망이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는 것뿐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불만의 입술을 닫아야 합니다.
기드온의 불평
기드온의 불평
이처럼 기드온이 여호와께 불평을 하나님께 떠넘기니까 하나님이 14절에서 이렇게 다시 답변하십니다.
“여호와께서 그를 향하여 이르시되 너는 가서 이 너의 힘으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라 내가 너를 보낸 것이 아니냐 하시니라” (삿6:16)
보세요. 하나님께서 너 큰 용사가 되라고 말씀하시니까 기드온이 이렇게 말합니다.
“이상한 소리 하지 마시라고 하나님이 우리 버린 거 아니냐고” 그랬더니
하나님이 다시 답변하시는 겁니다. “아니야 내가 버린 거 아니니까 그러니까 너 이제 큰 용사로 가서 미디안 쳐”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예요.
특별히 이 “너의 힘으로” 여기서 너의 힘이란 기도원의 힘을 얘기하는 게 아니라
분명히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기드온을 뭐라고 부르셨어요? 큰 용사 왜 큰 용사예요?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면 큰 용사라고요.
그러니까 이 너의 힘이란 무슨 얘기를 하는 거냐 하면 “그래 내가 너와 함께 하니까 이제는 더는 미디안 두려워하지 말고 가서 쳐”
그러나 여전히 기드온은 마음이 불안합니다. 그러니 15절에서
“그러나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오 주여 내가 무엇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리이까 보소서 나의 집은 므낫세 중에 극히 약하고 나는 내 아버지 집에서 가장 작은 자니이다 하니”(삿6:15)
하나님께서 다시 말씀하시는 거예요.
그래 “이제는 내가 너로 하여금 승리하게 할 테니까 내가 너와 함께하니까 네가 미디안을 치러가!” 그랬더니
기드온이 뭐래요? “하나님 난 안 돼요. 왜냐하면, 우리 집은 이스라엘에서 제일 약하고 나는 우리 형제 중에서도 제일 약해요.”
겉으로 보면 되게 겸손한 것 같아요. 근데 이게 거짓말이야 거짓말 무슨 얘긴지 아시겠어요?
기드온의 거짓말(하나님의 전쟁은 인간의 수와는 상관없다.)
기드온의 거짓말(하나님의 전쟁은 인간의 수와는 상관없다.)
“그러나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오 주여 내가 무엇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리이까 보소서 나의 집은 므낫세 중에 극히 약하고 나는 내 아버지 집에서 가장 작은 자니이다 하니” (삿6:15)
거짓말이에요. 지금 기드온이 사는 오브라 땅이 누구 건지 아세요?
그의 아버지 요아스에 겁니다. 바로 다음 장면으로 들어가면 기드온이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바알의 재단을 훼파하러 가는데 누구 데리고 가는지 아세요?
종을 데리고 가요. 몇 명 데리고 갔는지 아세요?
열 명이나 데리고 가요. 그러면은 남들은 쫄쫄 굶고 있는데 집에 적어도 종이 몇 명이 있어요? 열 명이 있어요. 그럼 돈이 있어요. 없어요? 거짓말이라니까요.
이건 그러니까 이 얘기의 핵심을 이해하셔야 합니다.
“싫어요. 내가 왜 해요!” 이 얘기예요. 하나님께서 기드온을 하나님의 사사로 세우셔서 하나님께서 사용하기 원하신다고 밝히셨으나 기드온은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 부인하는 거예요. “저는 안 할래요. 그냥 조용히 살고 싶어요.” 이렇게 얘기하는 거죠.
그래서 하나님께서 16절에 다시 말해 16절 저랑 한번 같이 16절 같이 읽겠습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하리니 네가 미디안 사람 치기를 한 사람을 치듯 하리라 하시니라” (삿6:16)
그래서 보세요. 하나님의 말이 강도가 조금 더 세져요.
“어떻게 해요. 하나님 저는 못 해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걱정하지 마. 근심도 많고 걱정도 많은 거 내가 다 아는데 걱정하지 마. 내가 꼭 너랑 함께할 거야.”
게다가 미디안 사람 치기를 몇 사람 치듯? 한 사람 치듯 이 표현이 왜 중요하냐 하면 6장 5절을 저를 한번 읽어보시겠어요?
“이는 그들이 그들의 짐승과 장막을 가지고 올라와 메뚜기 떼 같이 많이 들어오니 그 사람과 낙타가 무수함이라 그들이 그 땅에 들어와 멸하려 하니”(삿6:5)
미디안 사람들에 대한 표현이 뭐예요? 메뚜기 떼 같이 많대요. 하다못해 그 사람과 낙타가 무수하대요. 셀 수 없대요. 이게요. 지금 미디안을 표현하는 굉장히 중요한 표현이거든요.
숫자가 무지무지 많아요. 그런데 숫자가 중요하지 않아요.
나중에 기드온이 몇 명 데리고 싸우는지 아시죠? 300명입니다. 보세요. 하나님의 싸움은 숫자에 있지 않다는 걸 하나님이 말씀하세요.
처음부터 아무리 미디안의 숫자가 많아도 몇 사람 다루듯이 한 사람 다루듯이 싸움은 숫자에 있지 않다는 사실을 하나님이 아주 정확히 말씀하시는 거예요. 하나님이 함께하시느냐 하나님이 함께하시지 않느냐가 중요한 거예요.
우리의 인생은 뭘 가졌느냐 뭘 내가 쥐고 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니까요. 하나님과 동행하느냐 아니면 하나님과 상관없이 나 혼자 가고 있는가. 이게 중요한 거예요. 하나님과 함께하고 있으면 우리는 강한 용사가 되는 거예요. 그러나 하나님을 잃어버리면 아무리 이 세상 것을 갖다가 덧붙여놔도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거예요. 원래 기드온의 얘기는 이 싸움을 우리에게 굉장히 중요하게 설명을 그러니까 보세요
믿음의 확신
믿음의 확신
하나님이 계속 말씀하시잖아요. 그러니까 기도원이 설득을 좀 당해요. 그래서 17절로 18절 같이 한번 읽어보겠어요.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만일 내가 주께 은혜를 얻었사오면 나와 말씀하신 이가 주 되시는 표징을 내게 보이소서내가 예물을 가지고 다시 주께로 와서 그것을 주 앞에 드리기까지 이 곳을 떠나지 마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니 그가 이르되 내가 너 돌아올 때까지 머무르리라 하니라” (삿6:17-18)
기드온의 마음이 좀 움직였어요. 그래서 마음이 움직이긴 좀 했지만 그래도 분명한 증거를 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말씀 잘 알아들었으니까 그러면 주되시는 표정을 내게 보여주세요.” 이 얘기는 무슨 얘기냐 하면 나에게 하신 말씀이 진짜라고 내가 확신할 수 있는 증거를 좀 하나 달라는 거예요.
그러면서 기드온이 자기가 예물을 가지고 올 테니까 잠깐만 좀 기다려 달래요. 사실 기드온이 지금 하는 행동은 한편으로는 하나님을 믿기는 하지만 아직 확신은 없는 상태를 보이는 겁니다.
그래서 그렇게 얘기할 때 여호와의 사자가 뭐라고 말씀하셨냐면
“이르되 내가 너 돌아올 때까지 머무르리라 하니라” (삿6:18)
이게 무슨 얘긴지 아시겠어요?
“그래 네 마음대로 한번 해봐. 나는 너 기다려 이렇게 얘기하시는 거예요. 그러니까 네가 마음이 갈팡질팡하지 괜찮아 다 알아. 너 하고 싶은 대로 해. 나는 여기서 너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오늘 본문이 지금 무슨 얘기를 하는지를 좀 이해를 하셔야 해요. 보세요.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큰 용사라 부르셨죠. 그런데 뭐래요?
하나님이 우리 버렸잖아요. 항변하죠 그래서 다시 하나님이 답변 주시는 거예요.
“야 아니야 이제 내가 너 사용해서 네 민족 구원할 거야. 내가 그래서 너 부르잖아. 네 나가서 싸워”
그랬더니 또 뭐래요?
“저는 안 돼요. 저는 하기 싫어요.”
그랬더니 다시
“아니야 아니야 내가 꼭 너랑 같이 있을 거야.”
기드온이 “좀 미덥지 근에 제가 좀 믿도록 해볼 테니까 여기 조금 계시겠어요?” 그랬더니 뭐래요?
“걱정하지마 난 너 절대 안 떠나!”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사랑
이 광경을 좀 이해를 하셔야 이게 지금 뭐 하는 것 같으세요? 하나님이 끊임없이 기드온을 설득하시며 참아주시는 거예요.
큰 용사여 내가 너와 함께하더니 왜 이러세요. 그럴 때 이런 너밖에 없는 줄 알아 네가 알아서 해 안 이루신다니까 기드온을 데리고 뭐 하는 거죠?
끊임없이 끊임없이 달래고 계시는 거예요.
제가 아들이 하나 있습니다. 이 애가 잠을 안 자요! 온종일 놀았는데 잠을 자는 게 싫데요. 어느 정도냐면 새벽에 애가 혼자 일어나 있어요. 그래서 “시안에 왜 안 자고 이러고 있어”라고 말하면 아들 말이 해를 기다린 데요! 자기는 밤이 너무 싫어서 해를 마중하는 거래요. 아니 아침에 해야 할 일들이 있는데 애가 이래요. 그래서 자라고 하면 웁니다. 아침을 기다려야 한다고, 이렇게 한 30분을 엄마랑 실랑이하면 그때야 다시 잡니다. 이런 일이 자주 있어요. 그런데 이때 우리 애 엄마는 아들을 달래요. 잠 안 자고 투정 부린다고 버리지 않아요! 왜요? 아들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아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불평하고, 말을 듣지 않는다고 버리지 않아요. 그래서 저는 이 모습을 보면서 그래서 너무너무 가슴이 뿌듯해요.
하나님은 오늘도 뭐 하고 계시는지 아세요? 우리와 씨름하고 계세요 그렇게 참 말 안 듣고 미련한 우리를 데리고 씨름하고 계시다고요.
잊지 마세요. 하나님은 기드온 없이도 하나님의 일 하실 수 있어요. 기도원이 필요한 게 아니에요. 하나님은 기드온을 사랑하시는 거예요. 왜요?
그의 아들로 부르셔서 그의 믿음의 사람으로 사용하고 싶으신 거예요.
이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보셔야 해요. 얼마나 끈기 있게 자기 자녀들을 이끌어내시는가 그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에 얼마나 순종하기를 원하시는지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의 달래시는 모습을 보여주는 거죠.
그래서요 하나님이 끝까지 참으시니 실은 기드온이 사역할 수 있었던 거예요. 그래서 기드온은 아직 그 하나님의 사랑을 모르지만, 집에 가서 나름으로 열심히 준비했어요.
그래서 와요. 그게 19절로 21절을 같이 읽으시겠습니다.
“기드온이 가서 염소 새끼 하나를 준비하고 가루 한 에바로 무교병을 만들고 고기를 소쿠리에 담고 국을 양푼에 담아 상수리나무 아래 그에게로 가져다가 드리매하나님의 사자가 그에게 이르되 고기와 무교병을 가져다가 이 바위 위에 놓고 국을 부으라 하니 기드온이 그대로 하니라 여호와의 사자가 손에 잡은 지팡이 끝을 내밀어 고기와 무교병에 대니 불이 바위에서 나와 고기와 무교병을 살랐고 여호와의 사자는 떠나서 보이지 아니한지라” (삿6:19-21)
기드온이 가져온 것을 여호와의 사자가 제물로 받아주셨습니다. 그걸 어디서 알죠?
놀랍게 불로 태우십니다. 불로 태우는 사건은 아주 잘 아시는 사건 있잖아요. 엘리야가 갈멜산에서 재단을 쌓고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에 어떤 일이 일어나요? 하늘로서 불이 내려와 그 모든 재단을 살라버렸잖아요. 그러니까 보세요. 기드온의 제물을 제물답게 하나님이 받으셨다는 사실을 기드온에게 보여주셨어요.
그러니까 보세요. 그러니까 기드온이 어떤 반응을 하는지 아세요? 22절, 22절 같이 읽겠습니다.
“기드온이 그가 여호와의 사자인 줄을 알고 이르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내가 여호와의 사자를 대면하여 보았나이다 하니”(삿6:22)
보세요. 기드온이 그가 여호와의 사자인 줄을 알고 그러면 이전에 알았다는 얘기예요.
몰랐다는 얘기예요? 몰랐다는 얘기예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종이거나 어떤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자라는 사실을 인정은 했으나 그가 친히 제물을 받으시는 하나님인 줄은 몰랐어요.
그런데 재물을 확 받아버리시잖아요. 그러니까 뭐라고 얘기해요?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내가 여호와의 사자를 대면하여 보았나이다.” 이미 이스라엘 백성은 알아요.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뭐라고 말씀하셨어요. 나를 본 자마다 죽을 거라 그랬잖아요. 그러니까 기도원이 이게 하나님의 어떤 사람일 것은 예상했지만 진짜 하나님일 거라고는 전혀 생각을 못했거든요.
하나님이었으면 그렇게 막 대들었겠어요. 하나님이 버린 거 아니냐고 그러니까 기도는 전혀 생각을 못 했던 거예요.
그래서 아이코 큰일 났다. 이거 어쩌지? 이랬어요. 23절 24절 같이 읽겠습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안심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죽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기드온이 여호와를 위하여 거기서 제단을 쌓고 그것을 여호와 살롬이라 하였더라 그것이 오늘까지 아비에셀 사람에게 속한 오브라에 있더라” (삿6:23-24)
보세요. 기드온이 속으로 죽을 거라고 생각을 했어요.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세요.
그러니까 이게 정확하지 않은데요. 여호와의 사자가 제물을 태우면서 사라지셨거든요. 그런데 여기 보면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잖아요.
사라졌는데 이러시잖아요. 그러니까 아마 이것은 기도의 마음속에 어떤 감동으로 주셨든지 아니면 정말 하늘에서 음성이 들렸든지 어떤 건지 모르겠어요.
근데 분명히 말씀하셨어요. 너는 안심하라. 이게 우리 말로 이제 너는 안심하라 이렇게 돼 있는데 정확하게 히브리어로 보면 내게 샬롬이 있을지어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예요. 샬롬 평안을 선포하시는 거예요. 두려워하지 말래요. 뭐 할 거래요 너 죽지 않을 거래요.
그래서 그다음 구절에 기드온이 여호와를 위하여 거기서 제단을 쌓고 뭐라고 불러요? 여호와 샬롬이라고 불러요.
여호와 샬롬
여호와 샬롬
왜요? 하나님이 뭐라고 말씀하셨어요. 하나님이 샬롬 이렇게 말씀하셔서 기드온이 그걸 받아서 그것을 여호와 샬롬이라 이렇게 이름을 붙이는 거예요.
왜요? 보세요. 하나님께서 기드온을 찾아오셔서 결국 기드온에게 허락하신 건 뭐냐 하면 샬롬이에요. 샬롬. 원래는 하나님을 보면 뭐 해야 해요? 죽어야 해요.
왜냐하면, 하나님은 거룩하고 공의로우신 분이니까. 그런데 그 거룩하고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시되 샬롬의 은혜를 베푸셨어요.
하나님은요. 우선 그 샬롬을 이루시기 위해 오래 참으셨어요. 오래 참으셨어요 만일 노아의 홍수 아시죠? 소동과 고모라성 아시죠?
하나님이 마음만 먹으면 요즘 그런 일 없을까요? 아니에요. 그때의 죄나 지금의 죄나 죄의 본질은 다르지 않아요. 그때 사람들이 끔찍한 일을 했던 거나 지금의 사람들이 끔찍한 일을 했던 거나 다르지 않아요. 그런데 하나님이 뭐 하시는 거예요?
오래 참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 오늘 우리는 이 하나님의 오래 참음을 기억하면 뭐 해야 하는지 아세요? 저를 좀 따라 하시겠어요? 이제라도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오래 참아주셔서 지금까지 오신 거예요.
그러니까 이제라도 믿음으로 응답하시라는 거예요. 더 이상 끌지 마세요.
이 정도면 충분하시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끝내시려면 아마 이제 짐작에 끝내셨을 터인데 하나님이 지금까지 끌고 오셨잖아요.
아까도 이미 말씀드렸던 것처럼 하나님은 기도원이 없어도 하나님의 일을 하세요. 그런데 하나님은 기드온을 사랑하셨기 때문에 참고 기다리신 것이고 기도원만이 아니라 이스라엘을 참고 기다리신 것이고 이스라엘만이 아니라 이 세상에 택하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참고, 참고 참아주시는 거예요. 하나님이 참아주신 결과 오늘 우리가 믿음 안에 이 복을 누리고 있는 거죠.
그런데 아는 것으로 끝나지 않아요. 시간이 지나면 기드온의 이름을 ‘여룹바할’이라고 말해요! 왜냐면 이 핑계와 거짓과 두려움이 많은 사람이 결국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바알 신상을 뿌시거든요. 여호와께서 함께하시니 강한 용사가 되는 거예요. 잘났기 때문에 강한 용사가 되는 게 아니라 여호와께서 함께하시니 강한 용사가 되는 거죠. 그러니 보세요. 다시 믿음으로 응답하시되 언제든 평안을 주실 수 있는 하나님 앞에 엎드리십시오. 하나님은요 우리에게 평안 주는 것을 굉장히 기뻐하세요. 그래서 실제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평안을 허락하셨어요.
기드온에게 오셔서 뭐라고 말씀하셨죠? 샬롬이 있을지어다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샬롬을 주셨어요. 하나님 본 적 있으세요? 없으세요? 하나님 본 적 있으세요? 없으세요? 보고 싶으세요. 안 보고 싶으세요? 보고 싶으세요? 보면 죽는데, 아니에요. 안 죽어요.
왜요? 하나님을 육신의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본 자들이 되었죠. 우리 안에 평안이란 뭘로부터 온 건지 아세요?
그리스도 안에서 오는 거예요.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는 죄인들이 그리스도의 그 보혈의 공로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보세요. 이 수련회에 여러분들이 오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저와 이성주 목사님을 보기 위해서 오신거 아니라는 말입니다. 여러분들이 이 자리에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그 말씀의 은혜를 간절히 사모하여 오셨잖아. 근데 그건 내가 사모하기 전에 그리스도께서 나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셨기에 불안과 초조와 떨림으로 오는 것이 아니라 감사와 감격으로 오실 수 있는 거예요.
보세요 기드온의 제물이 완전했어요? 안 완전했어요?
무슨 얘기인지 잘 모르시겠죠? 쉽게 설명해 드릴게요. 기도원이 하나님인 줄 알았어요? 몰랐어요? 몰랐다니까요.
그러니 그의 재물이 하나님께 드리기에 합당했겠어요? 안 합당했겠어요? 안 합당했죠! 이게 하나님께 드릴 그것으로 생각하고 가져온 게 아니라 분명히 여호와의 사자라고는 인식을 했지만, 하나님이라고는 생각을 안 했다니까요. 근데 하나님이 받아주셨어요? 안 받아주셨어요? 하나님이 받아주시면 끝이에요. 하나님이 인정하는 게 최고예요. 하나님이 받으시면 그걸로 우리에겐 복된 거예요. 근데 우리는 하나님이 받으시는 방법을 알아요.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하며 하나님이 받으시고 그 받으심뿐만이 아니라 우리에게 평안을 선포하시죠. 그러니 기드온의 이야기가 어떻게 시작됐는가를 잘 떠올리셔야 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백성답지 못하게 사는 그 현실 그것도 너무너무 초라하게 사는 현실을 하나님은 그걸 깨뜨리고 싶으신 거예요. 왜냐하면, 자기 백성을 너무 사랑하시거든요.
그래서 참고 참고 참아주시고요. 결국은 그들에게 평강을 허락하세요. 그러니 참아주시는 하나님 앞에 오늘도 진심으로 마음을 쏟아 놓으십시오. 아이고, “전도사님 나는 안 돼 알아요! 누가 내 이름으로 하시래요?” 그리스도의 이름을 의지하여 그 은혜를 간구하실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평강을 선포하십니다. 그러니 오늘 이 날에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편강을 마음에 품고 기쁨으로 돌아가시는 수련회가 되시기를 우리 주님 이름으로 권면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