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일을 지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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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선지자가 활동하던 시대의 남유다는 영적으로 굉장히 혼탁하고 타락한 시대였습니다. 바알과 아세라를 예루살렘 거리에서 마음껏 숭배하고, 위정자들은 권력의 힘에 취해 사회적인 약자들을 유린하고 착취하며, 자신들의 배를 불려 나가는 데에만 집중했습니다. 하나님의 공의로우심과 정의로우심과 자비로우신 성품을 적극적으로 드러냄으로써 하나님 나라의 모형을 갖추어야 하는 남유다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방 국가들의 모습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던 상황이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하나님은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명령하십니다. 예레미야 17장 19절과 20절 말씀 보세요. “여호와께서 내게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는 가서 유다 왕들이 출입하는 평민의 문과 예루살렘 모든 문에 서서 / 무리에게 이르기를 이 문으로 들어오는 유다 왕들과 유다 모든 백성과 예루살렘 모든 주민인 너희는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예레미야 선지자가 어디에서 누구에게 말씀을 전해야 합니까? 유다 왕들이 출입하는 문과 예루살렘 성전의 모든 문에서 유다의 왕들과 모든 백성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떤 말씀을 전해야 합니까? 21절 말씀 보세요.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스스로 삼가서 안식일에 짐을 지고 예루살렘 문으로 들어오지 말며”
일반적으로 21절 말씀을 볼 때, 안식일에만 초점을 맞추게 됩니다. 안식일에 무엇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에 관해서만 집중하는 것이죠. 오늘 본문에서 안식일을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의 문제가 부각되지만, 우리는 먼저 21절 말씀에 기록되어 있는 전제조건을 명확하게 확인해야만 합니다. 21절 중간 부분에, “너희는 스스로 삼가서”라는 말씀을 보십시오. 여기서 “스스로 삼가다”라는 말씀이 무엇을 의미할까요. 우리말로 “스스로 삼가다”라는 말은 스스로 조심하다. 언행이나 몸가짐을 조심하다. 이런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개역개정에서 “스스로 삼가다”라는 번역은 오역에 가깝습니다. 히브리어로 직역하면, 이 말은 “너희의 생명을 잃지 않으려면”이라고 읽을 수 있습니다.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지 않으면 어떻게 된다는 것입니까? 생명을 잃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예루살렘 성전의 모든 문에서 모든 백성에게 생명과 직결되는 가장 중요한 사안에 대해서 말씀을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남유다의 왕과 모든 백성은 생명을 잃을지도 모르는 안식일의 문제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이 문제는 두 가지의 항목을 올바르게 지키면 완만하게 해결됩니다.
먼저 첫 번째 항목은, 안식일에 경제활동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21절 하반절 말씀을 보시면, “안식일에 짐을 지고 예루살렘 문으로 들어오지 말라”는 명령으로 시작됩니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이 당시에 남유다가 안식일을 어떤 마음과 어떤 자세로 지켰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남유다 백성들은 그들 나름대로 안식일을 지켰다고 생각했겠습니다만,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남유다 백성들은 안식일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안식일에 경제활동을 지속했기 때문입니다. 이어서 22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안식일에 너희 집에서 짐을 내지 말며 어떤 일이라도 하지 말고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명령함 같이 안식일을 거룩히 할지어다”
안식일에 짐을 지고 예루살렘 문으로 들어오지 말라는 명령이 구체적으로 나타나는데요. 이 말씀은 안식일에 어떤 종류의 노동이든지 하지 말라는 명령으로 확장됩니다. 그렇다면 안식일에 노동만 하지 않으면 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냥 가만히 숨만 쉬는 것으로는 부족합니다. 22절 하반절 말씀을 보시면, 이 명령은 “안식일을 거룩히 할지어다”라는 말씀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안식일을 거룩히 할지어다. 어디서 많이 들어보셨죠? 네. 십계명에서 네 번째 계명에 해당하는 말씀이죠. 출애굽기 20장 8절 말씀,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는 명령을 반복해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명령은 하나님의 창조 섭리에 근간을 두고 있습니다. 6일동안 세상을 창조하시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신 하나님의 창조섭리에 따라, 하나님의 백성은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켜야만 하는 의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거룩한 의무를 성실하게 수행했을까요? 23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그들은 순종하지 아니하며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며 그 목을 곧게 하여 듣지 아니하며 교훈을 받지 아니하였느니라” 아멘. 하나님께서는 남유다의 조상들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았으며, 귀를 기울이지도 않았고, 목을 곧게 하여 듣지 않았다고 평가하십니다. 다시 말해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는 것이 백성된 도리이자 의무인데, 이를 지키지 않는 모습에서 무엇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모습,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모습, 그들 자신의 고집을 꺾지 않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단순하게 안식일을 한 번 지키지 않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안식일을 지키지 않음으로써, 하나님을 거역하는 죄악된 마음가짐이 있는 그대로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과거의 한국교회는 주일을 온전하게 지키기 위해서 나름의 규제를 만들어서 엄격하게 지켰습니다. 예컨대, 주일에 드리는 모든 예배에 참석하는 것이 주일을 성수하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주일 1부 예배 또는 2부 예배를 드리고 저녁까지 남아서 교제하다가 저녁 7시 또는 7시 30분 즈음에 저녁 예배를 드리고 귀가했죠. 주6일 근무를 하는 직장인들이 하루종일 교회에서 예배드리고 봉사하고 섬기고 교제하다가 밤늦게 귀가해서 다시 6일 동안 직장생활하면서 생활했던 것입니다. 이는 전업주부도 마찬가지였죠. 일주일에 딱 하루만 남편과 쉴 수 있는데, 어디 바람 쐬러 나가더라도 주일에만 나갈 수 있는데, 그런 기회를 포기하고 주일에 하루종일 교회에서 열심히 열심히 섬기면서 지냈습니다.
또 경제활동은 어떻습니까? 노동을 하지 않는 것은 기본이거니와 의식적으로 돈을 사용하지 않고 주일을 보냈습니다. 물론 요즘은 그렇게 엄격하게 지키지 않습니다만, 어떻게든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고자 했던 노력들이 오늘날에는 너무나 희석화되어 안식일을 거룩히 지킨다는 개념이 예배 한번 드리는 것으로 만족하는 시대가 되어버렸습니다. 주일에 한두 번 예배드렸다는 것으로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는 명령을 충족시켰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이러한 부분은 오늘날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심각하게 고민해야 하는 부분입니다.
자, 다시 본문으로 돌아와서,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서 살펴볼텐데요. 24절 하반절 말씀을 보시면, “안식일을 거룩히 하여 어떤 일이라도 하지 아니하면”이라는 조건절이 등장합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관점에서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면 어떤 일이 일어난다는 겁니까? 25절과 26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다윗의 왕위에 앉아 있는 왕들과 고관들이 병거와 말을 타고 이 성문으로 들어오되 그들과 유다 모든 백성과 예루살렘 주민들이 함께 그리할 것이요 이 성은 영원히 있을 것이며 / 사람들이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에 둘린 곳들과 베냐민 땅과 평지와 산지와 네겝으로부터 와서 번제와 희생과 소제와 유향과 감사제물을 여호와의 성전에 가져오려니와” 아멘.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면 두 가지의 유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유익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왕국에서 평안한 삶을 영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25절 말씀 하반절 말씀을 보시면, 이 성은 영원히 있을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자 그런데,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남유다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이스라엘이라는 국가가 세워진 이래로 이방 민족과의 전쟁을 치룬 적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있습니다. 전쟁에서 패배한 적도 많습니다. 심지어 사무엘 시대에는 언약궤까지 빼앗긴 적이 있습니다. 이러한 역사를 인간적인 관점에서 복기할 때, 왕국이 평안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군사력이 강해야 합니다. 국가 정세를 지혜롭게 판단해서 견고한 외교관계를 통해 전쟁을 억제해야만 합니다. 부국강병이 평안함의 핵심적인 요소라고 볼 수 있는 것이죠.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적인 관점에서 비롯된 어리석은 판단에 불과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인 예레미야 17장 24절과 25절 말씀에 따르면 어떻습니까. 이 성이 영원히 있으려면, 남유다가 평안함을 누리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켜야만 합니다. 서두에서 살펴보았듯이,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은, 주님의 백성들의 생명이 달려있는 문제인 것입니다.
이어서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킬 때 누릴 수 있는 두 번째 유익은, 하나님께 제사를 올려드림으로써 하나님과 마음껏 교제하고, 그 안에서 풍성한 은혜를 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영이시기 때문에 사람의 육안으로 하나님을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임재와 역사하심과 섭리를 매순간 피부로 체험하는 것은 쉽지 않죠.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공식적인 루트를 만들어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제사이며, 오늘날의 예배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제사와 예배를 온전히 드릴 수 있는 날을 안식일로 제정해 주신 것이죠. 어떻게 보면 이 두 번째 유익이라는 것은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려면 당연히 제사를 드려야 하는 것이 아닌가? 너무나 당연한 인과관계가 아닌가. 이렇게 생각하실 수 있겠습니다만, 그렇지 않습니다. 26절 말씀 하반절을 다시 보시면, 번제와 희생과 소제와 유향과 감사제물을 하나님께 드릴 수 있다고 합니다. 번제와 희생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본인이 정성껏 구별하여 준비한 제물에 자신의 죄악을 전가함으로써 하나님께 죄사함 받는 것을 의미하죠.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고 해서 지킨 것 뿐인데, 제사를 드리라고 해서 드린 것 뿐인데, 그 안에서 본인의 씻을 수 없는 더럽고 추악한 죄악을 용서받을 수 있다는 것이, 사람의 편에서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죄를 지으면 죗값을 받는 것이 인지상정인데, 죗값을 치루지 않고 죄사함을 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이뿐만 아니라 유향과 감사제물을 하나님께 드림으로써, 하나님께서 자신의 삶에 역사하시고 복 주신 그 은혜를 더욱 충만하게 누릴 수 있다는 것 역시 엄청난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매일 매일 동행해 주시는 그 은혜에 감격하여, 감사한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얼마나 값지고 복된 일입니까. 이보다 더 귀한 일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자 이렇게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는 것은, 하나님 편에서만 좋은 일이 아니라, 그분의 백성들, 그분의 자녀들의 복된 삶을 보증하고, 하나님과의 아름다운 영적인 관계를 영위하는 데 있어서 엄청난 유익을 가져다 준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지 않을 경우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살펴보고 말씀을 맺도록 하겠습니다. 예레미야 17장 27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그러나 만일 너희가 나를 순종하지 아니하고 안식일을 거룩되게 아니하여 안식일에 짐을 지고 예루살렘 문으로 들어오면 내가 성문에 불을 놓아 예루살렘 궁전을 삼키게 하리니 그 불이 꺼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다 할지니라 하시니라”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지 않으면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하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 문에 불을 붙여서 예루살렘 성전 전체를 삼키게 하신다고 합니다. 참으로 두려운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건물에 불이 날 때, 출구와 비상구에 불이 붙으면 탈출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탈출할 수 없습니다. 건물에서 뛰어 내려도 죽고, 건물에 남아있어도 질식해서 죽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 문에 불을 붙이시면,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지 않은 사람들, 안식일에 경제 활동하는 사람들은 모두 예루살렘 안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말씀은 유다 사람들의 교만한 마음을 깨부숩니다.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성전이기 때문에 안전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지 않더라도, 안식일에 예루살렘 성전에서 장사하고 돈 벌면서 자신의 배를 계속해서 불려 나가더라도, 본인이 위치한 곳은 예루살렘 성전이기 때문에, 무슨 일이 있어도 자신은 안전할 것이며, 더욱 부유해질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이 산산조각나게 될 것이라는 겁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예루살렘 성전이라고 하더라도, 예루살렘 성전은 건축물에 불과합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아무리 거대하고 휘황찬란하다고 하더라도 건축물 따위가 하나님의 존재를 담아낼 수 없습니다. 따라서 예루살렘 성전이 지니고 있는 상징성과 그 의미가 대단히 중요할지라도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거하는 처소라 불리는 예루살렘 성전에 불을 놓아 성전 전체를 불태우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우리 성도님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아주 단순해 보이는 말씀입니다. 신앙생활에 익숙하신 분들에게 안식일을 지키라는 명령은 그리 중요하게 보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또한 오늘 본문 말씀의 시대적인 상황을 감안해 볼 때, 남유다에게 가장 적실한 말씀은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명령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 당시 남유다는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를 상실한 사회였으며, 우상숭배로 얼룩진 죄악된 사회였습니다. 물론 이러한 문제는 앞선 문맥에서 이미 여러 차례 지적되었기 때문에, 예레미야 17장에서 안식일 준수를 요구하는 것은 다소 의아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 말씀에 따르면,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의 생명이 달려있는 문제임을 살펴보았습니다. “스스로 삼가서”라는 말이 “너희가 생명을 잃지 않으려면”이라는 표현이라고 했죠. 이뿐만 아니라, 안식일을 지키지 않으면, 예루살렘 성전에 불이 붙을 것이며, 그 불이 절대로 꺼지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남유다가 다시금 상기해야 할 것은,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사회를 깨끗하게 만들고, 경제적으로 성장 발전하고, 군사력을 강화시키는 것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우리 성도님들, 성도님들은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고 계십니까? 하나님 한분만을 바라보며, 하나님 한분만을 높여드리고, 그분 안에서 충만한 은혜를 누리는, 거룩한 주일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기대하는 마음으로 지내고 계십니까? 그리고 그 주일을 맞이할 때, 감사가 넘치는 마음으로 이곳으로 나아오고 계십니까?
오늘 살펴본 말씀에 따르면, 우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이라는 사실을 살펴보았습니다. 우리 인생에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함을 마음껏 누리고, 빛과 소금된 역할을 감당하며, 우리의 삶으로 하나님께 영광 올려드리려면, 자신의 생명처럼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켜야 할 것입니다. 앞으로 남아있는 여생을 우리 주님과 온전히 동행하며 살아가실 때, 생명처럼 귀중한 주일을 온전히 지키심으로써, 영적인 유익을 풍성히 누리시는 모든 화평의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감사를 드립니다. 죄악으로 얼룩진 우리의 전인격을 주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새롭게 하여주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없이, 주님의 은혜가 없이, 성령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없이는 단 하루도 거룩하게 살아갈 수 없는 죄인임을 고백합니다. 이러한 우리에게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고 말씀하시는 주님, 우리의 생명과도 같은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며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제의적으로, 의식적으로 주일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찬양받으시기에 합당하신 주님 한분만을 온전히 높여드리며, 주님 안에서 충만한 기쁨과 은혜를 누리며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한 평생 살아가는 동안, 주일을 온전히 거룩하게 지키며, 주님과 동행하기를 원하오니, 주님의 자녀들을 주님의 뜻가운데 선한 길로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