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하나님 일하면 하나님은 내 일 하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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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하나님 일하면 하나님은 내 일 하실까요?
‘내가 하나님 일하면 하나님은 내 일하신다’
신앙생활 어느 정도 하신 분들은 이 말을 모두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하나님 일을 열심히 하면 하나님이 내 일을 해주실거니 걱정하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이 말은 마치 우리에게 더 큰 믿음을 요구하는 것처럼 들립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어떤 집사님이 이 말을 믿고 열심히 교회에 충성 봉사했습니다.
거의 1년 365일 교회에 가지 않는 날이 없었습니다.
기본적으로 새벽예배 다 나가고, 화요일은 찬양팀 모임가고, 수요일은 수요 예배갑니다.
목요일은 주일학교 교사 기도회가고, 금요일은 금요예배갑니다.
토요일은 교회 청소한다고 가고, 김장담근다고 갑니다.
주일은 주일성수 한다며 저녁까지 교회에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자녀가 아직 어린데 비오는 날 학교 앞에서 다른 부모들처럼 우산 한번 들고 서있지 못했습니다.
교회 일때문에 남편과 자식 저녁식사도 제대로 챙겨주지 못한 적이 많았습니다.
어느날 자식의 일기장을 보니 이런 말이 자주 등장합니다.
‘학교 다녀오니 엄마는 집에 없었다. 역시나 교회 가셨다.’
어느날 학교 선생님이 엄마를 부릅니다.
가보니 선생님이 하시는 말씀이 자녀에게 신경좀 더 쓰라는 말이었습니다.
이때 그 집사님 마음 속에 이 문구 하나가 떠오릅니다.
‘내가 하나님 일하면 하나님은 내 가정을 책임져주실거야’
어떻습니까?
우리는 이 분의 이런 믿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본론]
오늘 말씀이 선포되는 장소는 힌놈의 아들 골짜기입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이곳에 가서 심판의 말씀을 선포하게 하십니다.
항아리를 하나 사서 그곳에 백성들 대표인 장로 몇 사람, 나이든 제사장 몇 사람을 데리고 가라고 하십니다.
1-2절입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토기장이를 찾아가서 항아리를 하나 산 다음에, 백성을 대표하는 장로 몇 사람과 나이든 제사장 몇 사람을 데리고, ‘하시드 문’ 어귀 곁에 있는 ‘힌놈의 아들 골짜기’로 나아가서 내가 너에게 일러주는 말을 거기에서 선포하여라.
여기서 말하는 ‘하시드문’이란 ‘항아리 조각’을 의미합니다.
그 근처에 깨진 항아리를 버리는 곳이 있는데 그곳으로 통하는 문이 ‘하시드 문’입니다.
그리고 그곳 바로 옆에 있는 곳이 힌놈의 아들 골짜기인 것입니다.
그럼 힌놈의 아들 골짜기는 어떤 곳일까요?
먼저 힌놈의 아들 골짜기는 힌놈의 아들이 사는 골짜기가 아닙니다.(하하하)
힌놈의 아들 골짜기는 예루살렘 아랫쪽에 있는 골짜기 이름입니다.
이 골짜기의 이름이 나중에는 ‘지옥’을 뜻하는 단어로 사용됩니다.
이 곳에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기 때문입니다.
이 사진 보시면 이곳이 어디인지 알수 있습니다.
고대 예루살렘 지도인데요.
아랫쪽에 힌놈의 아들골짜기가 위치해 있습니다.
그럼 하나님은 왜 이곳에서 심판의 말씀을 선포하라고 하셨을까요?
이곳이 유다 백성들이 범죄한 대표적인 장소이자 가장 역겨운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4-5절입니다.
이것은 그들이 나를 저버리고 이 곳을 남의 나라처럼 만들어 놓고, 그들 자신뿐만 아니라 그들의 조상이나 유다 왕들도 전혀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에게 분향하고, 이곳을 죄 없는 사람들의 피로 가득 채워 놓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제 자식들을 바알에게 번제물로 불살라 바치려고, 바알의 산당들을 세움으로써, 내가 그들에게 명한 적도 없고, 말한 적도 없는, 내가 상상조차도 하여 본 적이 없는 죄를 지절렀기 때문이다.
예레미야를 읽다보면 하나님이 유다의 죄를 지적하실때 가장 많이 언급되는 죄가 있습니다.
바로 우상숭배입니다.
끊임없이 말씀하십니다.
이 때문에 설교하는 입장에서는 참 힘듭니다.
저번에 예레미야 2장 설교할때 우상숭배 이야기 거의 다 했는데 또 우상숭배라니…
참 힘들었지만 그만큼 우상숭배가 예레미야에서 중요한 주제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정말 힘들게 준비했으니 잘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유다 백성들은 힌놈의 아들 골짜기에서 우상숭배의 죄를 저질렀습니다.
물론, 앞서 말씀드린 적 있는 높은 언덕이나 푸른 나무 밑에서도 우상숭배를 저질렀습니다.
그런데 이곳은 그 중에서도 가장 역겨운 형태의 우상숭배인 인신제사가 일어난 곳입니다.
유다왕 아하스나 그의 아들 므낫세 왕같은 경우는 이 곳에서 자기 아들을 불에 태워 제사를 지냈습니다.
왕이 이 정도였으니 백성들은 어땠을까요?
수없이 많은 인신제사가 이 곳에서 행해진 것입니다.
이 사진을 보시면 그들의 인신제사가 어떻게 드려졌는지 짐작할수 있습니다.
황소 머리를 한 우상을 세워놓고 자식들을 바쳤습니다.
다음 사진 보시면 이것은 최근에 발굴된 인신제사에 바쳐진 아이들의 뼈 항아리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이러한 죄를 저지른 현장을 다 보고 계셨습니다.
또한 그 근처에 가시면 인신제사뿐만 아니라 쓰레기 소각장이 있습니다.
깨진 항아리같은 쓰레기와 짐승이나 사람의 시체를 불태우는 소각장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곳에 가면 어떤 냄새를 맡게 될까요?
쓰레기 타는 냄새, 시체 타는 냄새가 뒤섞여 역겨운 냄새로 가득했습니다.
그럼 하나님이 왜 여기서 심판을 선포하게 하셨는지 짐작할수 있습니다.
그들의 역겨운 죄를 심판하시겠다는 의지를 시각적, 후각적으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럼 도대체 왜 유다는 이 지경까지 우상숭배를 하게 된 것일까요?
자식을 바친다는게 말이 쉽지 이게 얼마나 어려운 일입니까?
부모가 자기 자신보다 더 소중하게 여기는게 자식인데 이럴수가 있는 것일까요?
마치 정신나간 사람들같아 보입니다.
처음부터 이렇게까지 우상숭배를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가 예배하는 대상을 닮아갑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면 하나님을 닮아가지만 우상을 예배하면 우상을 닮아갑니다.
우상이 어떤 존재인가요?
그냥 아무것도 아닙니다.
인간이 만들어놓은 조각품일 뿐입니다.
머리가 있지만 지각능력이 없고, 눈이 있지만 보지 못하고, 귀가 있지만 듣지 못합니다.
그런것처럼 우상을 숭배하게 되면 백성들도 그렇게 닮아갑니다.
예레미야 5장 21절입니다.
이 어리석고 깨달을 줄 모르는 백성아, 눈이 있어도 볼수가 없고, 귀가 있어도 들을수가 없는 백성아, 너희는 이제 내가 하는 말을 잘 들어라.
우상을 섬기면 마치 생명이 없는 우상처럼 변해버립니다.
영적 생명이 죽어버려서 무엇이 하나님의 뜻인지 분별하지 못합니다.
영적 길치가 되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타락의 길로 빠져버린 것입니다.
이것이 그들이 자식까지 바치게 된 이유입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사실이 있습니다.
5절을 자세히 보시면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들은 제 자식들을 바알에게 번제물로 불살라 바치려고, 바알의 산당들을 세움으로써, 내가 그들에게 명한 적도 없고, 말한 적도 없는, 내가 상상조차도 하여 본적이 없는 죄를 저질렀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분명히 번제물이라고 말하고 계십니다.
번제는 레위기에서 하나님께 제사지내는 다섯가지 제사법중 하나입니다.
바알에게 제물을 바치면서 이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게 이상하지 않습니까?
또한 하나님은 인신제사를 한번도 말씀하신 적도 없고, 상상조차 해보신 적이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백성들은 인신제사를 하나님이 명령하신 것으로, 말씀하신 것으로 믿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다 백성들이 바알 신상을 세워놨지만 실상은 하나님께 드리는 것으로 여겼다는 의미입니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금송아지를 만들어놓고 그 금송아지를 하나님이라고 여겼던 것과 같습니다.
여호와 신앙이 완전히 짬짜면같은 종교로 변해버린 것입니다.
본질은 소 머리를 한 우상인데 하나님으로 포장된 것입니다.
그래서 4절에 보시면 하나님은 이러한 그들의 모습이 마치 이 땅을 이방 나라처럼 만들어 놓았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내 백성이 더이상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이방 나라, 이방 백성이라는 것입니다.
아마도 백성들은 이런 식으로 변질되었을 것입니다.
가나안 사람들이 바알에게 자식을 바치는 것을 보니 그 정성과 열심이 너무 대단해 보인 것입니다.
자신들은 기껏해야 흠없는 소나 양을 바치는데 말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종교적 열심은 결국 짐승에서 사람을 바치는 것으로 변해버린 것입니다.
그들의 생각은 이렇습니다.
내가 드릴수 있는 최고의 것을 하나님께 바치자.
나 자신보다 더 귀한 것은 내 자식이니까 내 자식을 하나님께 바치자.
최고 귀한 것을 하나님께 바치면 마일리지 1000점을 한방에 쌓은 것 아닐까?
최고 귀한 것을 드렸으니 하나님도 분명히 최고 좋은 것으로 응답해 주실거야.
너무나 사랑하는 자식이지만 이 자식 하나만 희생하면 농사도 풍년들고, 자식도 더 많이 낳게 될거야.
이러한 나름대로의 믿음을 보인 것입니다
이들의 모습을 보니 어떻습니까?
혹시 기시감이 들지 않으십니까?
떠오르는 사람이 있지 않으십니까?
맞습니다.
제가 설교 처음에 언급한 한 집사님의 모습과 비슷하지 않습니까?
‘내가 하나님 일하면 하나님은 내 가정을 책임져 주실거야’
과연 우리가 하나님을 열심히 섬기면 하늘에 상급이 마일리지처럼 쌓이는 것일까요?
그래서 어느 정도 마일리지가 쌓이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내려 주시는 것일까요?
넌 열심히 나를 위해 일했으니 자식 스카이 대학중에 하나 들어가게 해줄께.
넌 열심히 나에게 충성했으니 니 남편 직장에서 진급시켜 줄께.
이러실까요?
이런게 기독교 신앙이라면 그것은 다른 종교와 다를바 없는 우상에 불과합니다.
본질은 우상숭배이면서 하나님으로 포장한 것일 뿐입니다.
이러한 그들의 죄악에 대해서 하나님은 어떻게 그들을 심판하실까요?
우상을 숭배하면 우상의 형상을 닮는 것처럼 심판도 우상과 똑같이 받게 됩니다.
그러니까 우상숭배자들은 우상과 운명을 같이 하는 것입니다.
6절입니다.
그러므로 보아라, 그 날이 오면, 다시는 ‘도벳’이나 ‘힌놈의 아들 골짜기’라고 부르지 않고, 오히려 ‘살육의 골짜기’라고 부를 것이다. 나 주의 말이다.
여기서 ‘도벳’은 힌놈의 아들 골짜기에 있는 인신제사를 드리는 제단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풍요와 다산의 장소로 여기던 힌놈의 아들 골짜기를 살육의 골짜기로 만들어 버리실 것입니다.
축복과 번영을 상징하던 곳이 멸망과 죽음의 상징이 될 것입니다.
우상이 심판받아 멸망하는 것처럼 그들 역시 멸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7-8절은 그들의 심판이 어떻게 일어날지 보여줍니다.
내가 이 곳에서 유다와 예루살렘의 계획을 좌절시키고, 그들이 전쟁할 때에 원수들의 칼에 찔려 죽게 하고, 그들의 목숨을 노리는 사람들의 손에 죽게 하고, 그들의 시체는 공중의 새와 들짐승의 먹이가 되게 하겠다. 내가 이렇게 이 도성을 폐허로 만들 것이며, 비웃음거리가 되게 하겠다. 그러면 이 도성을 지나가는 사람마다, 이 곳에 내린 모든 재앙을 보고 놀라며, 비웃을 것이다.
하나님은 유다의 계획을 좌절시키십니다.
자신들의 지혜를 의지하여 강대국에 빌붙어 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상을 숭배하며 우상의 텅빈 머리를 닮은 그들의 지혜가 진짜 지혜일까요?
우상의 머리처럼 허망하고 어리석은 생각일 뿐입니다.
주님은 생명과 축복의 장소였던 예루살렘을 죽음과 저주의 장소로 바꿔 놓으십니다.
더이상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말할수 없고, 하나님의 땅이라고 말할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 곳은 축복과 자랑의 장소가 아닌 저주와 비웃음의 장소가 되어버릴 것입니다.
힌놈의 아들 골짜기가 쓰레기와 시체로 가득한 것처럼 예루살렘과 유다를 그렇게 만드실 것입니다.
9절은 더욱 충격적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목숨을 노리는 원수에게 포위되어 곤경에 빠지면, 그들은 제 자식들을 잡아먹고, 이웃끼리도 서로 잡아 먹을 것이다.
사람을 먹는 것을 ‘카니발리즘’이라고 말합니다.
실제 열왕기하 25장 3절에 따르면 바벨론 군대에 포위된 예루살렘은 일년반이상 버팁니다.
그러다가 기근이 들어 양식이 떨어졌지만 그들은 성에 갇혀 양식을 얻지 못합니다.
굶주림을 견디지 못해 사람들은 자식을 잡아먹고, 이웃을 잡아먹는 끔찍한 일을 저지르게 됩니다.
이것이 우상을 숭배하여 우상을 닮은 그들의 끔찍한 모습입니다.
백성들은 우상에게 자식을 음식으로 바쳤습니다.
그러자 결국 자신들이 우상처럼 자신들의 자식들을 음식으로 먹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우상을 숭배한 그들에게 내린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우상을 숭배하다가 우상을 닮게 되면 영적, 도덕적 감각이 마비됩니다.
자신의 욕망을 위해 이웃을 우상에게 제물로 바칩니다.
자신의 우상을 만족시키기 위해 가족과 친구, 이웃을 희생시킵니다.
돈이 우상인 사람은 돈을 더 벌기 위해 이웃을 착취합니다.
직원들 고혈을 짜내 자신의 배를 채웁니다.
성공이 우상인 사람은 성공하기 위해 자신의 가족을 희생시킵니다.
우상숭배는 이토록 우리의 영혼을 파괴합니다.
그러므로 돌이킬수 없는 시간이 되기 전에 돌이켜야만 합니다.
그러나 너무나 완고한 유다에게는 더이상 기회가 없습니다.
10-12절입니다.
이렇게 말하고 나서 너는 데리고 간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그 항아리를 깨뜨리고, 그들에게 이렇게 전하여라. ‘만군의 주가 말한다. 토기 그릇은 한번 깨지면 다시 원상태로 쓸수 없다. 나도 이 백성과 이 도성을 토기 그릇처럼 깨뜨려 버리겠다. 그러면 더이상 시체를 묻을 자리가 없어서, 사람들이 도벳에까지 시체를 묻을 것이다. 내가 이곳과 여기에 사는 주민을 이처럼 만들어 놓겠다. 나 주의 말이다.
하나님이 예레미야에게 항아리를 가지고 힌놈의 아들 골짜기로 가라고 하신 이유가 이제서야 드러납니다.
그 항아리는 유다 백성들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깨뜨려 더이상 회복의 기회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주님 손에 들려있을때에는 다시 빚을수 있지만 유다는 이제 하나님의 손을 떠났습니다.
깨진 항아리는 다시 붙여서 쓸수 없습니다.
다시 회복할수 없을만큼 철저히 유다를 심판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의지입니다.
깨진 항아리와 시체를 버리는 힌놈의 아들 골짜기처럼 유다가 그렇게 심판받게될 것입니다.
유다 전체가 역겨운 힌놈의 골짜기처럼 변하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13절을 보십시오.
유다 전역에서 사람들이 집집마다 지붕위에 올라가 우상숭배를 하였기 때문입니다.
유다의 우상숭배는 돌이킬수 없을 정도로 깊숙이 푹 빠져있던 것입니다.
[결론]
이제 오늘 말씀을 마무리 하겠습니다.
‘내가 하나님 일하면 하나님은 내 일하신다’
그렇지 않습니다.
내 일을 하나님의 일처럼 해야만 합니다.
가정을 돌보는 것도 교회를 섬기는것과 똑같은 하나님의 일입니다.
지식이 없는 열심은 우상숭배입니다.
자기 의를 열심히 쌓는 열심도 우상숭배일 뿐입니다.
박노해씨의 경주마라는 시가 있습니다.
이 시를 소개하고 마치겠습니다.
너는 초원을 달리는 야생마
어느날부터 경주마로 길러지고
너는 지금 트랙을 달리고 있다
경주마가 할일은
좋은 사료를 먹고 좋은 기수를 만나
레이스에 앞서는 게 아니다
경주마가 할일은
자신이 달리고 있는 곳이 결국
트랙임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그리고
트랙을 빠져나와
저 푸른 초원으로 걸어가는 것이다
어쩌면 세상사람들뿐만 아니라 우리도 마냥 달려가는 경주마일지 모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은 초원을 향해 달리는 야생마처럼 자유와 생명을 누리는 삶입니다.
우상 숭배를 그만두고 하나님을 예배하면 하나님을 닮아갑니다.
하나님을 닮아 자유와 풍성한 생명을 누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