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의 기쁨, 승리의 맛
Notes
Transcript
믿음의 싸움
믿음의 싸움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4장
4 하나님 앞과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가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2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3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4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
5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신중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자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6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7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사랑합니다. 드림인 중고등부에 오신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여러분은 격투기 선수 중에 정찬성이라는 선수를 알고 있는가? 그 선수의 별명은 ‘좀비’이다. 이유는 격투기 시합에서 맞아도 맞아도 쓰러지지 않고 파고들어 이러한 모습에 불리게 되었다. 그가 자신의 이름으로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데, 컨텐츠 중 하나로 ‘좀비트립’이라는 것을 진행해서 전국에 있는 싸움을 잘한다는 사람과 실제 프로로 활동하는 선수와 격투를 벌여서 훈련없이 성장한 진짜 파이터를 찾는 컨텐츠이다. 참가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소년원에도 다녀오며 여러 싸움에 한번도 진적이 없다고 스스로 자랑한다. 그러면서 날카로운 눈빛으로 프로 격투가를 바라본다. 여러분은 결과가 어떨 것 같은가? 진정한 파이터를 찾았을까? 이 싸움은 결론적으로 아무도 훈련된 격투가를 이긴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이 영상을 본 댓글에는 파이터를 찾는 것이 아니라 양아치를 참 교육한 컨텐츠가 되어버렸다며 통쾌하게 보게 되었던 것이다. 이들은 진정으로 싸움을 잘한다기 보다는 약자들과 싸워서 이기며 스스로가 싸움을 잘한다고 착각하며 프로 격투가에게 우쭐대며 덤볐던 것이다. 동네에서 아무리 싸움을 잘한다고 해도 훈련된 선수 앞에서는 쉽게 그것도 가볍게 무너지고 만 것이다.
오늘 본문에는 바울의 마자막 편지이다. 그가 디모데에게 편지를 쓸 당시 로마 감옥에 갇혀 있으며, 질병까지 걸려 상황이 더욱 악화된 상황이다. 그러면서 교회 안에 거짓교사로부터 경계하라고 이야기하며 그들이 잘못 가르치고 있는 것을 진리를 가르칠 수 있도록 고쳐주라고 말한다. 이 때 바울이 편지를 쓰고 있는 상황을 어땠을까? 이 당시 강대국은 어떤 나라인가? 그렇다. 로마가 통치하고 있는 시대이다. 속담에 모든 길은 어디로 통하는가? 그렇다. 로마로 통할 정도로 당시 세상은 로마를 중심으로 무역과 군사적으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런 시대 속에서 로마 사람들은 황제를 숭배하고 황제가 신이며 그가 로마에서 절대 권력을 잡고 있을 때, 로마 황제가 주님이 아니라 예수님이 주님이라고 말하게 되면 바로 사형에 처할 만큼 아주 무시무시한 시대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사도 바울은 목숨과 자신의 몸을 사리라는 말이 아닌 말씀을 전파하라고 말한다. 왜 사도 바울은 시대와 상황이 다른 이야기로 우리에게 도전하고 있는 것일까?
사도 바울은 디모데후서 3장에서 말세에는 이러한 모습이라고 이야기한다.
(딤후3:1-5, 쉬운성경)
1 마지막 날에 많은 고난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2 그 때에는 사람들이 자기 자신과 돈만 사랑하며, 뽐내고 교만하며, 다른 사람들을 헐뜯고, 부모에게 순종하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감사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람이 되려고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3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도 없고 용서도 없으며, 나쁜 말을 일삼으며, 절제하지도 못하고 잔인하며, 선한 것을 싫어할 것입니다.
4 가까운 친구를 배반하고 성급하게 행동하며, 교만하고 쾌락을 즐기며,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5 겉으로는 하나님을 섬기는 체하나 실제로는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사람들을 멀리하기 바랍니다.
오늘 사도 바울은 당시 교인들에게 뿐만 아니라 오늘 우리에게도 도전하는 이야기인 줄을 믿어야 한다. 여러분 이 말씀을 보면 어떤가? 그렇다. 마지막 날이 멀지 않았다는 것을 이 말씀을 통해 느끼게 된다. 여러분은 ‘선하다’와 ‘악하다’의 기준을 어떻게 두고 있는가? 내 말을 잘 듣는 사람, 법을 잘 지키는 사람, 화를 안내는 사람 등 각자만의 ‘착하다’의 기준이 다를 것이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선함은 오직 하나님 말씀에 순종할 때 선하다고 한다. 그 근거는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선함의 기준을 우리에게 보여주셨다.
(창세기 1장 24-25절, 쉬운성경) 24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땅은 온갖 생물을 내어라. 가축과 기어다니는 것과 들짐승을 각기 그 종류에 따라 내어라." 그러자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되었습니다. 25 하나님께서 온갖 들짐승과 가축과 땅 위에서 기어다니는 생물을 각기 그 종류대로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았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하신 대로 되었던 것이 결국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았다고 한다. ‘좋다’라는 뜻은 히브리어로 ‘선하다’라는 뜻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가 무엇을 먹고 에덴동산에 쫒겨났는가? 선과 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고 하나님의 말씀의 불순종하게 되어 세상에 악이 들어오게 된 것이다. 그렇기에 이 어두운 세상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는 자들에게 주님의 말씀을 전파하는 것이 너무나 중요하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애쓸 때, 사람들은 우리에게 미련하다고 왜 그렇게 교회에 열심이냐고 손가락질 할 것이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이렇게 이야기 한다.
(고전1:26-27, 쉬운성경) 26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부르셨을 당시, 여러분의 모습이 어떠했는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세상의 표준으로 볼 때 지혜 있는 사람이 많지 않았고, 권력 있는 사람도 많지 않았으며, 가문 좋은 사람도 많지 않았습니다. 27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지혜로운 것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선택하셨고,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선택하셨습니다.
여러분 여기서 강한 것들은 누구인가? 하나님 없이도 나 스스로 잘 살 수 있다고 자신만만하며 살아가는 사람이다. 반대로 미련한 것들은 누구인가? 하나님 없이 단 한 순간도 살 수 없다고 날마다 기도하며 매달리는 사람이다. 여러분 이 말씀이 얼마나 기쁜 일 일까? 세상에서 볼품없고, 쓸잘데기 없어 보이는 내가 하나님이 함께 계셔서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모른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려고 노력하지만, 생각대로 되지 않을 때가 너무나도 많다. 수련회가 끝나고 진짜 제대로 하나님을 열심히 섬기고, 말씀대로 살면서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려야지 다짐해도 넘어지는 때가 너무나도 많다.
여러분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를 생각해보십시오. 그는 예수님의 수제자였고, 예수님의 말씀에 아주 충성적인 제자였다. 그가 절대로 예수님을 배반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어떻게 되었는가? 그는 세 번이나 예수님을 부인한 것도 모라자 예수님을 저주하며 모른다고 말했다. 그렇게 기세등등했던 베드로가 다시 고향에 가서 자신의 본업이었던 고기잡이했으나 밤새 허탕을 친 베드로에게 찾아오셔서 배 오른편에 그물을 던지라 명령하시고 처음 베드로를 부르셨던 때와 동일하게 그물이 찢어질 만큼 153마리의 수확을 다시금 거두었다. 이 때 요한복음 21장 5절 말씀에 “애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라고 하신 말씀은 제자들에게 찾아오신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 것이나 다름이 없다. ‘네가 나 없이 잘 될 것 같았어?’, ‘애들아 너희는 나 없으면 안돼’라고 말이다. 그렇게 예수님이 제자들을 위해 거하게 모닝 다이닝, 아침밥상을 차려주시고 제자들을 꾸짖지 않으시며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세 번 물어보셨다. 그 때 3번이나 예수님을 배반하고, 3년동안 함께했던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을 것이다. 그렇게 넘어져있던 베드로를 일으켜 세워주시며 참 된 복음전도자로 이끌어가신다. 요한복음은 20장 31절로 끝나야 하는데, 21장이 추가로 뜬금없이 실패한 제자들과 베드로의 이야기가 나타난다. 우리가 실패 가운데 넘어졌다고 생각할 때, 어두움 가운데 있다고 느끼는 사람이 있는가? 우리 삶에 어두움이 짙어져갈 때, 작은 빛이 그 공간 안에 있을 때 그 빛은 더욱 강하고 선명하게 나타난다. 그렇기에 여러분, 기뻐하십시오. 우리는 세상이 보았을 때 미련하게 보일지라도 우리의 연약함을 가장 잘 아시는 주님이 우리와 함께하시고 무너진 나의 삶을 다시 일으켜 세우시는 주님을 경험하시기를 소망한다. 그렇기에 주님을 따르고 믿는 자의 고백은 날마다 ‘주 없이 살 수 없다’고 고백할 수 밖에 없게 된다.
여러분, 노아의 방주 이야기 아는가? 산 정상에 큰 방주를 만드는 노아를 보면서 당시 사람들은 조롱하며 멍청하다고 손가락질 했을 것이다. 날이 이렇게나 쨍쨍한데 바다에 배를 만드는 것도 아니고, 산 꼭대기에 배를 만드는 노아가 세상에서 가장 미련해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때가 임박하면서 비가 내리고 배의 문이 닫히면서 물이 산을 덮게 되는 대홍수 사건이 일어났다. 여러분 그렇다면 이때 진정한 승리자는 누구인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여 배를 지었던 노아와 그의 가족들만이 구원을 얻게 되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도 않고 행하지도 않은 사람들은 그대로 물 속에서 죽음을 맛보게 되었다.
요즘 세상을 바라볼 때도 마찬가지다. 세상 사람들은 황금같은 주말에 놀러가거나, 쉬거나, 자기개발을 위해 시간을 보낸다. 그렇기에 저와 여러분처럼 교회에 가서 예배하는 모습이 정말 미련하게 보일 것이다. 그러나 오늘 본문 말씀 첫 구절에 사도바울은 분명하게 이야기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분이시고, 그분은 이 땅에 다시 오셔서 그의 나라를 세우실 것이다. 우리가 날마다 주기도문에 이렇게 고백하지 않는가? ‘하늘의 뜻이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시고, 부활하시면서 이미 하늘에서는 주님의 모든 뜻을 이루시고 완성하셨다. 그러나 아직 예수님이 이 땅 가운데 오시지 않았기 때문에 주기도문에서 이와 같이 고백하고, 하늘에서 이미 이루신 뜻과 땅에서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뜻 가운데의 긴장 속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그러나 그때가 언제인지는 아무도 알 수 없으나 그 주님이 다시 오실 때, 믿는 우리에게는 영원한 생명이 주어지고, 그렇지 않은 자는 영원한 죽음이 기다린다. 그렇기에 주님 오실 그 날까지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는데 힘써야한다. 이것은 곧 내가 원하는 때가 아닌 하나님이 이루시는 때를 말한다.
그렇기에 우리가 예수님의 명령을 따라 복음을 선포하고 전파하기만 하면 된다. 믿지 않는 자가 돌아오는 역사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때에 반드시 이루실 것이기 때문에, 친구가 교회에 오지 않는다고 낙심하고 내가 전도를 잘못하고 있는지 생각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복음을 전하고 이후에 삶은 하나님께 맡겨드리며 주어진 명령에 순종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누군가를 말씀으로 전파하고 가르치려면 무엇을 알아야 하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배워야한다. 말씀으로 훈련을 받아야 한다. 여러분들뿐만 아니라 나도 마찬가지다. 누군가에게 일차방정식을 가르치려면 먼저 무엇을 알아야 하는가? 일차방정식을 알아야 가르칠 수 있다. 영어 문법도 배운 사람이 가르칠 수 있듯이 말씀에 대해 배우지 않고 전파하고 가르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서두에 언급한 정찬성 선수가 스스로 싸움을 잘한다고 말하는 길거리 파이터들이 프로선수 앞에서 무참하게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하고 그대로 K.O를 당한 것처럼 훈련없이 저 악하고 어두운 세상에 겁도 없이 나간다면 우리는 그저 쓰디쓴 실패만 맛볼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항상 말씀 앞에서 겸손하게 배우고 훈련하며 성령의 충만함을 구하고 앞서 싸우고 승리하신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저와 여러분들 되길 원한다.
어느 날 길을 걷다가 여자 아이돌 노래가 흘러나오는 것을 들었다. 10년 전만해도 대부분의 걸그룹의 노래는 상큼한 사랑 노래와 함께 애교가 가득한 노래였다. 그러나 요즘 노래의 가사가 사랑 노래가 아닌 ‘나는 최고야’, ‘누가 뭐라고 하든 나는 정상에 올라갈거야’와 같은 가사들로 가득하다. 그래서 요즘 여자 아이돌을 비판하고자 대표로 고른 걸그룹으로 르세라핌이라는 걸그룹의 이름이 무슨 뜻일까 나무위키에 찾아보았다. 그 뜻을 알게된 저는 깜짝 놀라게 되었다. 검색한 그대로 말하자면 구약성경에서 천사들이 신의 명령으로 인간 앞에 나타날 때 처음 했던 말이 "두려워하지 말라"였다. LE SSERAFIM은 ‘IM FEARLESS’를 애너그램 방식으로 만든 이름으로, '세상의 시선에 흔들리지 않고 두려움 없이 앞으로 나아가겠다는 자기 확신과 강한 의지'를 내포한다. 저는 그래서 그 걸그룹 회사의 대표인 방시혁씨가 크리스찬일까 검색해보았지만, 그는 무종교였다. 이렇게나 좋은 이름을 믿지 않는 사람이나 이단들이 다 가져다 쓰는 것 같다. 오늘 본문 3-4절에 사도 바울은 사람들이 참된 진리는 들으려고 하지 않고, 오히려 자기들을 즐겁게 해주며 마음에 드는 말만 하는 선생들을 찾으려는 때가 올 것이라고 하며, 그들은 진리에 귀기울리기보다는 거짓된 이야기와 가르침을 따를 것이라고 말한다. 요즘 세상에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을 보게될 때, 다양한 정보들이 쏟아져 나온다. 그러한 정보의 홍수 시대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가까이 가게 하기보다 내가 보고 싶고, 듣고 싶고, 소유하고 싶은 욕망이 가득한 이 세상의 즐거움, 쾌락에 집중하게 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SNS에 시간을 순식간에 뺏앗게 만든다. 저 또한 이러한 문제에서 늘 고민이고 어려운 부분이다. 그러면서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세상의 가치관이 우리의 생각에 가득차게 된다.
여러분, 다이어트를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가? 사람들이 그거 아무나 하는거냐며 비웃고, 단짠단짠 야식을 먹자고 하고, 달달한 디저트 먹자고, 다이어트는 다음에 하는 온갖 달콤한 말로 유혹하면서 다이어트에 방해되는 여러가지 방법으로 다이어트에 대한 결심을 흔들리게 만든다. 그러나 당장의 눈앞에 치킨에 대한 즐거움을 버리고 꾸준하게 오랜 기간의 다이어트에 성공할 때 주어지는 성취감은 이로 말할 수 없다. 그 성취의 기쁨은 야식, 달달한 디저트보다 훨씬 더 즐겁고 인생에 자신감을 준다. 세상의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는 눈빛도 달라진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삶도 이와 같다. 내가 듣고 싶은 달콤한 말만 듣는 것은 결코 나를 성장시킬 수 없다. 다이어트를 할 때 먹고 싶은 음식이 땡길지라도 닭가슴살과 절제된 식단으로 살아가야하는 것처럼, 그리스도인의 성장은 하나님과의 교제를 방해하는 세상의 달콤한 소리를 따라 사는 것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하고 들으며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되기를 기다리면서 살아가는 삶이다. 르세라핌은 세상의 시선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노래한다면,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세상의 시선에 흔들리지 않고 두려움 없이 복음을 전파하며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삶이다. 20살 때 친했던 목사님이 항상 저를 혼내시기 전에 하셨던 말씀은 ‘달콤한 말을 기뻐하지 말고, 쓴 말을 기뻐하라’고 늘 신신당부하셨다. 그렇게 목사님께 혼나가면서 내 안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부족한 모습으로 하나님께로 나아가 통회하며 회복시키시는 주님을 경험하며 살았다. 그러한 반복을 통해 지금까지 계속 성장의 길을 걸을 수 있었다. 날마다 성장하며 주님 다시 오실 때를 기다리며 주님 오실 때, 영원한 기쁨을 누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원한다.
여러분 운동선수가 올림픽을 준비할 때 얼마나 치열하게 준비하는지 아는가? 전국에서 각 지역대표로 나온 사람들과 겨루어서 최종적으로 국가대표로 선발된 후에 보통 4년 정도 진천선수촌에서 고도의 훈련을 한다. 그렇게 극강의 훈련을 마치고 경기장에서 승리를 거둘 때 표정을 보았는가? 여기 사진을 보면 지난 2018년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획득해 군면제를 받고 기뻐하는 손흥민 선수의 모습이다. 한국의 많은 남자 선수들이 올림픽 또는 월드컵과 같은 세계 무대에서 1등을 차지해 군면제를 받으려고 악착같이 경기에 임하며 최선을 다해 싸운다. 오늘 본문 7절에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 말씀에서 싸움이라는 단어의 뜻은 원어로 경주, 분투라는 뜻도 있다. 더 나아가 싸우다는 동사로 힘쓰다, 애쓰다, 분투하다 라는 원어의 뜻이 포함된다. 그렇기에 우리가 싸워야할 선한 싸움은 무엇인가? 그것은 예수님의 명령과 약속을 붙들고 고난과 시련이 찾아와도 끝까지 믿음을 놓지 않고 고군분투하며 살아가는 삶이다. 예수님의 명령은 무엇인가? 마태복음28:18-20
마태복음 28:18–20 (NKRV)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우리는 저 어두운 세상의 사람들이 교회 안에 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푸는 것은 믿지 않는 자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하여 믿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들에게 가르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야하고, 그것이 단순히 지식을 쌓는 앎이 아닌 인격적으로 만난 하나님과 예수님 성령님을 전해야하는 것이다. 여러분에게 각자 삼위일체 하나님을 향한 신앙고백이 있는가? 그 신앙고백을 하나님께 하면 신앙 고백이지만 그 고백을 사람들에게 전하고 말하는 것은 곧 전도이다. 사도 바울이 예수님을 다메섹이라는 동네에서 그동안 예수님을 따르는 무리들을 핍박하던 중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지 않았는가? 그가 예수님을 만나고 삶의 방향이 180도 예수님을 전하는 삶으로 바뀌어 복음을 전 유럽에 전하고 다니면서 오늘 함께 읽은 디모데후서에서는 자신의 삶이 얼마 남지 않음을 이야기하며 그가 받을 의의 류관을 기다리며 삶을 끝맺어간다. 올림픽에서도 금메달을 획득한 선수에게 월계관을 씌어주면서 영광의 자리를 축하한다. 바울의 삶도 이처럼 고백한다. 디모데후서4: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여러분은 만약에 브라질과 대한민국이 축구 경기를 한다고 하면 어느 팀이 이길 것 같은가? 당연히 브라질이 이길 것이라고 확신하며 베팅할 것이다. 왜냐하면 누가봐도 브라질 선수들의 연봉 총합이 억단위가 아닌 조단위이기에 세계 곳곳에 실력있는 선수들만 있다. 지난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한국과 독일전을 볼 때 당연히 대한민국이 패배하고 독일이 무조건 승리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결과가 어땠는가? 2:0으로 독일이 득점하지 못하고 지는 상황이 와서 대한민국과 독일이 본선에 진출을 못하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났다. 이번 2022년 카타르 월드컵을 기억하는가? 그 당시에도 포르투칼 또한 축구 강대국이다. 그러나 경기 결과가 어땠는가? 2:1로 극적으로 대한민국이 승리하여 16강에 진출했다. 대한민국은 위기에 강한 나라라는 것을 다시금 느끼게 된다. 이처럼 세상의 스포츠는 무조건 선수가 좋다고 해서 승리와 패배의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만약에 여러분은 99:1의 후반전 5분 남은 상황이라면 어느 팀이 이길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축구 경기에서는 그렇게 되기가 거의 불가능하지만 당연히 99점을 획득한 팀이 우승할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왜냐하면 5분 동안 어떻게 하더라도 절대 이길 수 없는 싸움이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다시 오겠다는 약속을 주신 것 또한 이와 같다. 이미 사탄 마귀가 이길 수 없는 싸움, 언제 끝날지 모르는 후반전과 같은 상황이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종말의 시점이다.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하나님의 마음은 인류 모두가 멸망하지 않고 주님께 회개하고 돌이키길 원하신다. 당시 초대교회 성도들은 예수님이 승천하시고 다시 오시겠다고 약속했는데, 주님이 오시지 않자 도대체 언제 오냐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두가 돌이킬 때까지 오래 참고 있다. 하나님의 시간은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으시다. 이것은 유한한 인간이 하나님의 때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애타게 잃어버린 자들을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안다면 어떻게 우리가 잠잠할 수 있겠는가? 이 때문에 교회는 전도하지 않으면, 선교하지 않으면 이 땅에 존재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전도하는 일은 결코 우리에게 힘든 일이 아닌 세상을 승리하신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이미 다 이긴 싸움을 사람들에게 전하며 그 가운데서 예수님이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항상 함께 있을 것이라고 약속하셨기에 전도하는 것은 승리하신 예수님과 함께 전리품을 취하며 다니는 것이다. 주님 오실 날은 언제 오실 지 모르지만, 우리의 삶은 예수님의 명령을 따라 복음이 필요한 곳에 믿지 않는 자들에게 가서 그들이 주님을 영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여러분이 수련회에서 많은 인원이 함께 예배한다면 얼마나 행복하겠는가? 그렇게 자신의 모든 삶을 각자의 영역 속에서 복음을 전하는데 살다가 주님 품에 가게 된다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오시어 의의 면류관을 씌어주시면서 ‘수고했다, 잘하였다, 나와 함께 쉬자’라고 말씀하실 그 날을 함께 꿈꾸길 원한다. 그럴 때 주님이 다시 오시는 날 손흥민 선수가 군면제를 받아 기뻐했던 것보다 30배, 60배, 100배의 승리의 기쁨을 누릴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