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8.10. 새벽예배. 안식일, 어떻게 지켜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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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 383 장 - 사도신경 - 성경봉독

예레미야

19 여호와께서 내게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는 가서 유다 왕들이 출입하는 평민의 문과 예루살렘 모든 문에 서서

20 무리에게 이르기를 이 문으로 들어오는 유다 왕들과 유다 모든 백성과 예루살렘 모든 주민인 너희는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21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스스로 삼가서 안식일에 짐을 지고 예루살렘 문으로 들어오지 말며

22 안식일에 너희 집에서 짐을 내지 말며 어떤 일이라도 하지 말고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명령함 같이 안식일을 거룩히 할지어다

23 그들은 순종하지 아니하며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며 그 목을 곧게 하여 듣지 아니하며 교훈을 받지 아니하였느니라

24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가 만일 삼가 나를 순종하여 안식일에 짐을 지고 이 성문으로 들어오지 아니하며 안식일을 거룩히 하여 어떤 일이라도 하지 아니하면

25 다윗의 왕위에 앉아 있는 왕들과 고관들이 병거와 말을 타고 이 성문으로 들어오되 그들과 유다 모든 백성과 예루살렘 주민들이 함께 그리할 것이요 이 성은 영원히 있을 것이며

26 사람들이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에 둘린 곳들과 베냐민 땅과 1)평지와 산지와 네겝으로부터 와서 번제와 희생과 소제와 유향과 감사제물을 여호와의 성전에 가져오려니와

27 그러나 만일 너희가 나를 순종하지 아니하고 안식일을 거룩되게 아니하여 안식일에 짐을 지고 예루살렘 문으로 들어오면 내가 성문에 불을 놓아 예루살렘 궁전을 삼키게 하리니 그 불이 꺼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다 할지니라 하시니라

서론

뉴스를 보다가 한 기사의 제목이 한동안 계속해서 눈길을 끌었는데요, 그 기사의 제목은 바로 “24시간이 부족한 현대인”이었습니다. “24시간이 부족한 현대인”, 요즘의 현실을 정확하게 관통하는 참 슬픈 말입니다.
혹시 N잡러라는 말을 들어보신 적 있으신가요? N잡러는 여러 수를 의미하는 N과 잡(job), ~하는 사람이라는 영어 표현(er) 이 한데 붙은 신조어로 '여러 직업을 가진 사람'이라는 뜻이다. 7년차 직장인이지만 작가, 크리에이터, 일러스트레이터, 강사, 디자이너로 연봉을 뛰어넘는 부수입을 벌고 있는 사람도 있고, 취미로 시작한 다이빙에 푹 빠져 프리다이빙 강사로 활동하고 있는 회계사도 있다. 
여러 통계를 살펴보니 현재 경제활동을 하는 인구 중의 대략 30~40퍼센트 정도는 이렇게 N잡러의 삶을 살아간다고 합니다. 퇴근 이후에도 또 다른 일을 하고, 주말에도 또 다른 일을 하는 등 조금의 시간과 체력의 여유가 되면 일하기를 멈추지 않는 자들이 이미 10명 중에 3~4명은 된다는 것이고,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는 추세입니다.
재미있는 설문 결과가 있는데요, 부업을 하는 N잡러들의 목표 수입은 최소 월 70만원 이상이었습니다. 본업을 제외하고 추가적으로 70만원 이상은 벌기를 바랬던 것이지요. 열심히 시간을 쪼개서 일하면 70만원 정도는 더 벌 수 있을 것이라고 장담하던 그들이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목표와 달리 본업을 제외한 부업에서 버는 소득은 많이 적었습니다. 설문에 응한 사람 중에 절반이 사실은 70만원 미만의 수입을 올리는데 그쳤지요. “24시간이 부족한 현대인”들은 그렇게 몸이 부서져라 열심히 살지만 사실은 쥐꼬리만큼의 수입을 위해 몸을 축내고 수명을 갉아먹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교회에도 이런 세속적인 물결이 계속해서 들이닥치고 있습니다. 주일을 온전히 주일답게 지키는 성도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지요. 참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사실 이 문제는 영혼이 병들어 생기는 문제라고 보아야 합니다. 주일을 온전히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모습대로 지키지 못한다는 것은 주일을 지킬 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에 대한 신뢰가 사라져가고 있음을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하긴 하지만, 하나님은 내 삶과 형편을 책임지실만큼 능력있는 분은 아니라고 말하고 있는 셈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에 두 부류의 사람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어제 본문 말씀에 그 내용이 나오는데요, 5절부터 8절까지를 다시 한 번 보겠습니다.
예레미야 17:5–6 NKRV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무릇 사람을 믿으며 육신으로 그의 힘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 그는 사막의 떨기나무 같아서 좋은 일이 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광야 간조한 곳, 건건한 땅, 사람이 살지 않는 땅에 살리라
예레미야 17:7–8 NKRV
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그는 물 가에 심어진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
세상에는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자와 사람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자, 이렇게 두 부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주를 의지하며 살아가는 자에게는 승리와 형통이, 사람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자에게는 실패와 저주가 따르게 될 것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지요.
오늘 우리는 하나님 앞에 어떤 사람일까요?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자입니까? 아니면 사람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자입니까? 주일을 보내는 나의 모습을 보았을 때 나는 과연 어떤 사람일까요?
예레미야서에 나오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오롯이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가기에 실패했습니다. 이 세상에 속한 것들을 신뢰하며 사람을 의지하며 살아가던 이스라엘에게 저주와 환난이 찾아왔습니다.
직전의 본문에서 예레미야는 이스라엘이 실패한 이유를 고백하며 하나님께로 돌아가겠다는 결단과 함께 회복을 간구한다.
예레미야 17:13–14 NKRV
이스라엘의 소망이신 여호와여 무릇 주를 버리는 자는 다 수치를 당할 것이라 무릇 여호와를 떠나는 자는 흙에 기록이 되오리니 이는 생수의 근원이신 여호와를 버림이니이다 여호와여 주는 나의 찬송이시오니 나를 고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낫겠나이다 나를 구원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구원을 얻으리이다
우리 또한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살아가는데 실패했다면 예레미야처럼 결단하고 하나님 앞에 마땅히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그에 대한 응답으로 오늘 본문이 시작한다.

본론

〈19–20〉 또 다른 설교(7장과 11장을 보라)가 다시 전략적인 장소인 예루살렘의 문들 가운데 하나에서(7:1–2 참조) 모든 백성, 곧 왕들, 관리들, 도시와 유다의 거주민들 전반에 선포된다.

〈21–23〉 문제가 되는 이슈는 안식일이 한 주의 나머지 날들로부터 구별되어 거룩하게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안식일에도 사업이 그냥 보통의 날처럼 수행되고 있다. 이것은 심각한 문제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언약을 확정하시고 그들에게 십계명을 주셨을 때 안식일을 특별하게 지키도록 명하셨기 때문이다(출 20:8–10).

21절이 말하는 것처럼 이것은 생명과 죽음의 문제이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NRSV; 스스로 삼가서-개역개정). 백성들은 처음부터 이 규례를 무시해 왔다. 현재의 세대들처럼 조상들도 완고했다(7:24, 26; 11:8을 보라).

안식일을 거룩하게 하라
어떤 일이라도 하지 말라
하지만 신약에서 예수님은 안식일임에도 일로 여겨지는 것을 한 자들을 두둔하신다.
마가복음 2:23–28 NKRV
안식일에 예수께서 밀밭 사이로 지나가실새 그의 제자들이 길을 열며 이삭을 자르니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말하되 보시오 저들이 어찌하여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다윗이 자기와 및 함께 한 자들이 먹을 것이 없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그가 아비아달 대제사장 때에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제사장 외에는 먹어서는 안 되는 진설병을 먹고 함께 한 자들에게도 주지 아니하였느냐 또 이르시되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
마가복음 3:1–5 NKRV
예수께서 다시 회당에 들어가시니 한쪽 손 마른 사람이 거기 있는지라 사람들이 예수를 고발하려 하여 안식일에 그 사람을 고치시는가 주시하고 있거늘 예수께서 손 마른 사람에게 이르시되 한 가운데에 일어서라 하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하시니 그들이 잠잠하거늘 그들의 마음이 완악함을 탄식하사 노하심으로 그들을 둘러 보시고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내밀매 그 손이 회복되었더라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킨다는 것은 단순히 아무 일도 안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주신 목적은 무엇인가?
창세기 2:2–3 NKRV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창세기에서 하나님께서는 6일간 세상을 창조하시는 노동을 하시고 일곱 째 날에는 안식하셨다고 말씀하신다. 여기서 등장하는 “안식하다”라는 단어의 원래 히브리어가 샤바트인데, 이 단어로부터 안식일을 뜻하는 샵바트가 나왔다. 안식일은 말 그대로 안식하는 날인 것이다.
이 일곱째 날은 이전의 엿새와 분명히 다르다. 첫째, 이 일곱째 날은 하나님께서 복되게 하신 날이다. 하나님께서 동물들을 창조하실 때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할 수 있도록 복을 주셨던 것처럼, 이 일곱째 날도 창조하시며 번성하고 충만할 수 있도록 복을 가득 쌓아두신 날인 셈이다.
둘째, 이 일곱째 날은 하나님께서 거룩하게 구별하신 날이다. 이 일곱째 날은 하나님께서 처음으로 거룩하게 구별하셨다고 말하는 것인데, 여기서 사용된 “구별하다”라는 단어의 원래 히브리어는 카다쉬이다. 이 단어는 성경에서 대부분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사람이나 사물을 구별하는 데에 쓰이는데, 그중에 날과 관련해서는 안식일과 절기들을 가리키는데에만 사용된다. 다시 말해서 일곱째 날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날로 구분되었다는 것이다.
요약해보면, 하나님께서는 모든 인간들에게 엿새간의 노동의 날 뒤에는 반드시 하루를 안식하라고 말씀하셨는데, 이 날은 지난 엿새와는 다르게 하나님을 예배하며 하나님이 예비하신 은혜와 복으로 충만하게 채워져야 하는 날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구약 시대에서는 이것이 안식일이었고, 신약 시대에는 이제 우리 주님께서 부활하신 이후 주일이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위해 안식의 날을 주셨다. 우리의 육체적인 노동으로부터의 쉼과 예배를 통한 우리의 영적인 회복을 위해, 이 날을 선물로 주신 것이다. 이사야는 이 날에 대해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였다.
이사야 58:13–14 NKRV
만일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내 성일에 오락을 행하지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하게 여기고 네 길로 행하지 아니하며 네 오락을 구하지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네가 여호와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내가 너를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 네 조상 야곱의 기업으로 기르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
안식일은 단순히 아무 일도 하지 않는 날이 아니라, 엿새간 하였던 일을 하지 않는 날이 되어야 한다. 우리 자신의 기쁨이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추구하는 날이 되어야 한다. 주일이 되면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를 가득 채웠던 일들은 잠시 뒤로하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데 온 하루를 전념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방식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의도하신 안식을 경험하는데, 이 안식은 정말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이기적이고 나태한 휴식이 아니라, 우리를 우리의 가장 큰 기쁨과 즐거움의 대상이신 하나님께로 이끄시는 휴식이며, 하나님을 예배하며 누리는 휴식이다.
주일에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이 가득채워져야 한다. 혹 한가지 더 허락되는 일이 있다면, 자비와 긍휼을 베푸는 일이다.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병든 자들과 장애인들을 고치심으로써 그들에게 긍휼을 베푸셨다. 예수님의 본을 따라 우리 또한 주일에 우리의 삶 속에서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자들과 마주하게 된다면 우리는 힘써 여기에 응해야 한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 자비와 긍휼을 베푸는 일, 두가지 모두는 현대인의 정서에 맞지 않는다. 세속적인 사람은 결코 주일을 이 두가지 일로 가득 채워 보낼 수 없다. 그 시간에 일을 하는 것이 더 낫기 때문이다.
낭비와 희생 bur 거룩한
어제와 오늘 물으신다.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인생을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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