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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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유월절인가?

요한복음2:13 “13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더니”
요11:55 “55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우매 많은 사람이 자기를 성결하게 하기 위하여 유월절 전에 시골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더니”
요12:1 “1 유월절 엿새 전에 예수께서 베다니에 이르시니 이 곳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가 있는 곳이라” 요13:1 “1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요18:28 “28 그들이 예수를 가야바에게서 관정으로 끌고 가니 새벽이라 그들은 더럽힘을 받지 아니하고 유월절 잔치를 먹고자 하여 관정에 들어가지 아니하더라”
요한복음은 다른 복음서와 달리 3번의 유월절이 등장합니다. 그만큼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는 뜻입니다. 유월절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절기라는 의미가 우리 삶과는 무관하기 때문에 요한복음을 읽을 때 그 의미가 와닿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설날 그러면 세배하고 용돈을 받는 / 추석 그러면 긴 휴가, 민족의 대이동 이렇게 연결이 됩니다. 그렇지만 그 의미는 모르는데 설날, 추석에 직접 참석함으로 몸으로 배우는 거죠. 하지만 지금처럼 세배나, 휴가나, 잔치같이 다른 의미만 남게 되는데 18:28절에도 유대인들은 ‘유월절 잔치를 먹고자 하여’라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나나도 설날. 추석에는 차례라는 제사를 지냅니다. 설날은 한해를 시작하면서 조상신에게 잘보이는 제사를 ‘차례’라고 합니다. 정의적으로 “설날에 조상에게 올리는 제사, 매달 초하루와 보름. 명절 조상의 생일 등에 간단히 지내는데 ‘차사’, ‘다례’라고 하고 설차례는 설날 아침 조상에 대한 세배로서 이를 정조다례라고 하고 떡국을 올렸다하여 설차례’라고 한다. 당연히 추석은 한 해의 농사를 짓고 그 수확의 처음 시기에 감사를 조상신에게 제사를 하는 거죠.
1. 유월절은 무엇인가? 유대인의 유월절은 구약 그러니까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 때까지 올라가는 정말 오래 전통을 가진 절기인데 창세기, 출애굽기 할 때 아브라함이 기근을 피해서 이집트로 들어가게 되고 그곳에서 430년을 살았는데 그들의 종이 됩니다. 갈수록 종된 삶의 고통이 극심해지자 구원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게 되고 우리가 잘 아는 모세가 등장합니다. 모세는 당시의 애굽 왕에게 이스라엘 백성이 떠나겠다고 했지만 반대하고 10가지 제앙을 내립니다. (피.개.이.파/ 악질, 독종/ 우박, 메뚜기, 흑암/ 장자 재앙) 마지막 10번째 재앙은 모든 처음난 것들이 죽음을 맞이하는데 피하는 방법이 어린양을 잡아서 먹고, 피를 문설주에 바름으로 죽음이 그렇게 한 집을 ‘넘어간다’는 의미에서 유월되었다는 의미가 유월입니다.
그리고 애굽을 탈출한 백성들이 광야에 모여서 일종의 제사법및 생활법을 여호와 하나님께로 부터 지시를 받는데 유월절이 여기에 포함됩니다. 출23:14 “14 너는 매년 세 번 내게 절기를 지킬지니라” 세 번에 해당되는 절기가 유월절(무교절), 맥추절(오순절, 칠칠절), 초막절(수장절, 장막절)이 되고 전체적으로는 7가지의 절기가 되는 셈이죠.
먼저 출애굽기 12, 13 살펴보아야 하는데 11장에서 애굽 왕에게 ‘애굽 땅에 있는 모든 처음 난 것은 왕이든, 종이든, 모든 가축이든 다 죽는다’고 경고했고 12장에서 이러한 죽음을 피하는 방법을 알려줍니다. 3절에 이 달 열흘에 너희 각자가 어린 양을 취할지니 각 가족대로 그 식구를 위하여 어린 양을 취하되
6절 이 달 열나흘날까지 간직하다가 해 질 때에 그 양을 잡고 7절 그 피를 양을 먹을 집 좌우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고 8절 그 밤에 그 고기를 불에 구워 무교병과 쓴 나물과 아울러 먹되 여기 무교병은 누룩을 넣지 않는 밀가루 떡입니다. 삶아서 먹으면 안되고 내장까지 다 불에 구워 먹어야 하며 아침까지 남겨두면 안되고 혹시 남은 것은 다 불살라 없애야 합니다. 먹을 때 준비사항이 있는데 11 이렇게 먹을 지니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으로 이것이 여호와의 유월절이니라 12절에 ‘내가 그 밤에 애굽 땅에 두루 다니며 사람이나 짐승을 막론하고 애굽 땅에 있는 모든 처음 난 것을 다 치고 애굽의 모든 신을 내가 심판하리라 나 여호와라. 이 심판에서 살아 남는 방법은 오직 ‘그 피가 너희가 사는 집에 있어서 너희를 위하여 표적이 될지라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하리라’ 그들의 행실의 문제, 살아온 삶의 문제가 아니라 유일하게 ‘피’가 칠해졌는지 그것이 죽음과 삶의 경계를 이루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14절에 ‘너희는 이 날을 기념하여 여호와의 절기를 삼아 영원한 규례로 대대로 지킬지니라’ 그러니까 아직 애굽을 떠나지 않고, 10번째 재앙이 시작되기 전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렇게 심판을 피하면서 말씀하신 유월절의 의미는 말 그대로 삶과 죽음 그리고 출애굽의 시작을 알리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유월절 이 시작되면서 7일동안 무교절로 이어지는데 무교병 - 누룩을 넣지 않는 밀가루 떡을 일곱째날까지 먹는 것이고 혹여 누룩을 넣어 먹는 자는 이스라엘에서 끊어진다는 엄청난 경고가 함께 있습니다. 지금도 이들은 유월절을 지나면서 무교절에는 집안에 작은 누룩을 담은 것을 숨겨두고 아이들로 하여금 찾도록 하면서 의미를 되새긴다고 합니다.
출12:18 “18 첫째 달 그 달 열나흗날 저녁부터 이십일일 저녁까지 너희는 무교병을 먹을 것이요”
이렇게 행하고 열번째 재아이 시작되고 12:29절에 “밤중에 여호와께서 애굽 땅에서 처음 난 것 곧 왕위에 앉은 바로의 장자로부터 옥에 갇힌 사람의 장자까지와 가축의 처음 난 것을 다 치시매’ 30절 ‘그 나라에 죽임을 당하지 아니한 집이 하나도 없었음이었더라’
그제서야 애굽 왕은 이스라엘 백성이 떠나도록 허락을 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12:39 애굽으로부터 가지고 나온 발교(발효)되지 못한 반죽으로 무교병을 구웠으니… 애굽에서 쫓겨나므로 지체할 수 없었..아무 양식도 준비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기록합니다.
그리고 13장에서 이러한 유월절과 무교절을 앞으로 들어갈 가나안 땅에서 이러한 절기를 지키라고 명령하십니다. 이 때 저음난 것에 대한 모든 것이 ‘여호와의 것’으로 구별됩니다.
2. 유월절은 잔치인가요?
지난 시간 우리는 가나의 혼인 잔치를 살피며 표적이 믿게 하는 의도라고 말씀을 드렸고 당시 유월절에 대한 유대인들의 생각은 ‘유월절의 잔치를 먹고자’하는 행위만 남았습니다. 어떤 경우는 본질이 훼손되면 의식에 집중해서 깨닫도록 할 수 있습니다. 세배돈이 설날의 핵심이 되었다면 오히려 교회를 다니지 않는 사람들은 제사에 집중하면 되겠죠. 그러면 설날의 의미를 알고 죽은 조상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살아있는 부모에게도 감사해서 절을 하고 절을 하는 자녀에게 약간의 돈은 부모 공경에 대한 보다 깊은 의미를 전달하게 되겠지만 그리스도인 들은 부모 공경의 의미를 늘 안다고 말하면서도 실상은 너무 약하다 싶은 것이 사실입니다.
아무튼 그렇다면 유월절은 잔치인가요? 분명하게 아닙니다. 그날에 먹은 발효되지 않는 밀가루 떡은 텁텁하기 그지 없고, 함께 먹은 쓴 나물 역시 그렇습니다. 오로지 구워서 내장까지 먹어야 하고, 먹기 위해 허리에 띠를, 신발을 신고 지팡이까지 잡고 허겁지겁 먹어야 하는 일은 잔치의 의미와는 사뭇 거리가 있습니다. 막상 그렇게 실행하던 때에 애굽 나라 전체는 첫 째 곧 장자를 잃은 통곡으로 난리가 나던 시간입니다. 상상이 안되죠. 세월호 참사로 인해 고통받던 시기에 어느 한 부모가 단식 농성을 할 때 바로 옆에서 피자를 시켜 먹으며 조롱했던 사건이 있었고 우리는 그런 모습을 보며 치를 떨고 짐승만도 못했다고 말합니다.
생사가 오가는 현장에서 벌어진 이 사건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어떠하신 분이신가를 드러내는 말 그대로 ‘하나님이심’을 역사의 현장에 드러내는 사건입니다. 그러니까 신약의 유월절에서 예수님이 어떠하신 분인가를 드러내는 사건과 같이 연결되는 것이죠. 하나님이심을 보여준 표적, 예수님 이심을 앞으로 보여주실 표적과 연결되는 것이죠. 구약에서 애굽 왕은 앞선 9가지의 재앙을 보고서도 여호와 하나님을 믿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10번째 재앙을 맞고 자신의 첫째를 잃고서야 ‘그 밤에 바로와 그 모든 신하와 모든 애굽 사람이 일어나서 애굽에 큰 부르짖음이 있’고서야 이스라엘 백성을 보냅니다. 그러나 알다싶이 얼마되지 않아 마음이 변하여 애굽의 군대를 동원하여 이스라엘을 쫓게 됩니다.
유월절은 말 그대로 여호와 하나님의 진노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피할 유일한 방법으로 어린 양을 잡고 그 피를 좌우문설주와 인방에 바름으로 죽음이 넘어가는 삶과 죽음의 날카로운 경계에 있는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은 마땅히 진노 아래 있는 우리에게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를 넘어가는 유일한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이 나오겠죠. 우리가 뭘 잘못했다고 ‘진노’ 아래 있습니까?
요한복음에서는 빛이 어둠에 비취되 깨닫지 못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어리석은 것은 진노 아래 있는 사람들의 첫 번째 특징입니다. 애굽 왕처럼 9가지 재앙을 먼저 보여주었지만 ‘여호와 하나님’을 알지 못했습니다. 요한복음은 그래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보여주는 것입니다.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된 것을 보여주고 앞으로도 6가지를 더 보여주고 다시 7번을 설명까지 합니다. 그러니까 이미 유월절의 본래 의미를 잃어버리고 ‘잔치를 먹는 날’로 퇴색되어 버린 유대인들에게 유월절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요한복음의 이야기는 오늘 우리에게도 마찬가지로 다른 나라의 명절을 알아야 할 필요라든지, 요한복음을 읽으면서 왜 유월절이 계속해서 나오는지를 모른 체 ‘나는 예수님을 믿으니까 별 문제 없는것 같은데’하고 뭉뚱거리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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