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 안에서 살아갈 이유 1(골 2: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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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 안에서 살아갈 이유 1(골 2:8-15)
<서론>
동양 사회에서 가장 존경받는 인물이라 하면 ‘공자’를 들 수 있습니다. 특히 우리 문화는 중국이 이미 버린 공자사상 유교사상에 여전히 붙들려있습니다. 심지어 교회까지 그렇습니다.
그래서 여전히 ‘공자가 살아야 우리가 산다!’는 슬러건을 외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공자가 이시대의 문제들을 확실하게 풀어 줄 수 있을까요?
未미知지生생焉언知지死사
어느 날 계로라는 제자가 공자에게 ‘선생님! 죽음이 무엇입니까?’라고 질문합니다.
공자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내가 삶을 알지 못하는 데 어찌 죽음을 알겠는가?’
이 단 한마디로 공스(공자선생님)의 사상과 삶을 매도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인간 윤리와 철학의 한계를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6절에서 ‘그리스도안에서 행하라’ 고 말한 바울은, 8절에서 성도들에게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사로잡을까 주의하라”(8a)고 말합니다.
세상 철학의 헛된 속임수, 공허하고 속이는 이단 사상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경계하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골로새 교회 안에 있던 거짓교사들의 철학과 이단 사상은 궁극적인 대답을 제시하지 못하고, 인간존재에 대한 초보적인 물음; ‘나는 누구이며, 어디에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라는 질문에서 멈추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철학과 헛된 속임수를 따르는 것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8b)을 따르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나는 누구이며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 지를 분명히 밝히고, 타락하고 완전 부패한 인생이 살 수 있는 유일한 길, 죄 용서와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예수 안에서 살아가라!’고 당부합니다.
이어지는 2:9-15은, 예수를 주와 그리스도로 영접한 성도가, 예수 안에서 살아갈 이유를 설명합니다.
<본론>
1. 성도는 예수 안에 충만한 하나님의 성품으로, 예수 안에서 예수로 충분합니다(9, 10).
세상의 속이는 철학에 빠져들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갈 첫 번째 이유는 우리 ‘성도는 예수 안에 충만한 하나님의 성품으로, 예수 안에서 예수로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온갖 충만한 신성이 몸이 되어 머물고 계십니다, 여러분도 그분 안에서 충만함을 받았습니다. 그리스도는 모든 통치와 권세의 머리이십니다”(9, 10 새번역)
바울은 성도가 왜? 속이는 철학과 사람의 전통 같은 ‘초등학문’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살아야 하는지 이유를 설명합니다.
베드로의 표현대로,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신성한 성품에 참여한 자’(벧후 1:4)이기 때문입니다.
9절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인간의 몸을 입으신, ‘예수님 안에 모든 하나님의 신성이 충만하다’고 말씀합니다.
이는 사랑과 공의, 거룩함과 순결, 전능 전지 편재 영원, 등과 같은 하나님의 모든 속성이 육체가 되신 예수님 안에 충만하게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이 곧 하나님이시다’는 것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10절은, “너희도 그 안에서 충만하여졌으니”(10a)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신성으로 충만하신 예수 안에 있는, 우리 성도도 충만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우리는 구원의 복음으로 충만하게 되었고, 예수 그리스도만이 하나님께 이르는 유일한 구원의 길이라는 지혜와 지식으로 충만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완전한 형상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우리의 구원을 위해 무엇을 하셨는지도 충분히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 거룩하심과 영광을 충만하게 발견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예수 그리스도의 충만은 “그는 모든 통치자와 권세의 머리시라”(10b)라고 말합니다.
피조물에 불과한 모든 영적 육적 통치자와 권세자들을 다스리시는 분이 ‘예수’라는 것입니다.
‘충만’은 ‘가득 찼다’는 말입니다. 기름을 가득 채운 차는 더 이상 기름이 필요 없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성품을 그대로 ‘충만’하게 가지고 계십니다. 그리고 성도인 우리는 ‘예수 안에서 충만합니다.’
예수로 충만한, 우리에게 더 이상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님 한분이면 충분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이신 예수님, 세상의 머리이신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충만하면 다 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우리 안에 충만함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더 이상 속이는 철학의 유혹 사람들의 전통 세상의 초등학문에 빠져들지 않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살면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예수로 충분한 성도입니다.
우리는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한 자’들 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모든 것이 충만한데, 다른 데를 기웃거릴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예수 말고, 다른 더 보충할 것이 있다고 말하는 모든 것은, 모두 속이는 것들입니다.
경제적 시간적으로 더 여유가 있으면 하나님을 더 잘 섬길 것 같다는 착각 속에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을 잘 섬기지 못하는 것은 돈과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예수 말고 더 좋은 것이 있다’고 속이는 ‘믿음 아닌 욕심’ 때문입니다.
‘경제적 여유’라는 ‘실용주의와 물질만능주의의 가르침’이 우리를 속이는 것입니다.
삶의 자리에서 ‘예수면 충분하다’고 믿는 ‘예수 안에서 살아가는 연습’을 계속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더 좋은 환경, 더 여유로운 환경에서도 여전히 예수님 안에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바라기는 지금은 비록 삶의 자리가 척박하다 할지라도, ‘나는 예수로 충분하다!’는 믿음으로,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성품으로 충만해져서 예수 충분한 삶이 되어, 예수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성도는 죄악 된 본성 벗는 그리스도의 할례를 받았습니다(11).
우리가 세상의 속이는 철학에 빠지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갈 두 번째 이유는, ‘예수 믿는 성도는 육신의 몸을 벗는; 죄악 된 본성을 벗는 그리스도의 할례를 받았기’때문 입니다.
“그분 안에서 여러분도 손으로 행하지 않은 할례, 곧 육신의 몸을 벗어버리는 그리스도의 할례를 받았습니다”(11 새번역)
11절의 말씀대로, 우리는 육체의 할례 정도가 아니라, 우리의 죄악 된 본성을 제거하는 그리스도의 할례를 받았기 때문에 다른 것에 빠질 필요 없이 예수 안에서만 살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육체의 할례는 언약의 증표(sign)였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당신이 맺은 언약의 증표로 그 집안에 있는 모든 남자들에게 할례를 행할 것을 명령하셨습니다(창 17:1-14).
이후 이스라엘 백성들은 할례를 통해 자신들이 하나님의 선택 받은 백성이라는 사실을 후손들에게 가르쳤습니다(레 12:3).
그런데, 골로새교회 안에 육체와 관련된 잘못된 교훈을 가르치는 두부류의 거짓교사들이 있었습니다.
우선, 유대 신비주의자들은 여전히 할례가 구원 받은 백성의 표시라며 계속 육체적으로 할례를 행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비록 예수를 믿었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택한 백성의 표시인 할례와 율법이 있어야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부류, 헬라철학에 영향을 받은 영지주의자들은 불안정한 육체는 신성한 영혼의 감옥과도 같은 악한 것이기에 계속 괴롭게 해야 할 대상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따라서 이들은 고행과 수행을 통하여 몸을 잘 다스려야 몸과 혼의 조화로운 구원을 이룰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 두부류의 가르침은 기원을 다르게 하기 때문에 서로 다른 가르침인 것 같지만, 결국 육체를 구원의 조건과 하나님 백성의 증거로 삼는다는 것에는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런 잘못된 가르침들에 대하여, 사도바울은 골로새교회 성도들에게, ‘너희는 몸의 특정부분을 제거하는 손으로 한 할례 정도가 아니라, 죄악 된 본성을 완전히 제거하는 그리스도의 할례를 받은 존재다’라고 말합니다.
손으로 행하는 할례는 남자들의 몸 특정부분을 제거하는 것이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할례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든 믿는 자들의 ‘죄악 된 본성’을 제거하는 할례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육체의 몸을 벗는 그리스도의 할례를 받았다는 것은, 죄의 노예로 살아가던 우리가 이제는 죄로부터 해방되어 생명의 성령의 법 아래 살아가는 새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는 육체의 할례를 넘어서는 ‘마음의 할례’를 받은 것입니다(신 10:16, 30:6; 롬 2:28-29).
몸을 어떻게 해서 외모를 좀 바꾸는 가짜 할례가 아니고, 인생을 바꾸는 심령을 새롭게 하는 진정한 할례를 받은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처럼 죄악 된 육체의 정과 욕심을 제거하는 그리스도의 할례를 받은 신분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곧 성령에 의하여, 우리 영과 몸 전체가 새롭게 되는 할례를 받았습니다.
따라서 이제는 어떻게든 성공하고 출세만 하면 된다는 성공지상주의의 가르침에 따라서는 안 됩니다.
지금부터는 마음껏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다 할 수 있다는 욕망의 우상을 따라가서는 안 됩니다.
우리를 속이려는 헛된 가르침의 세상 물결 속에서, 더 이상 죄 된 육체의 욕망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법을 따라 거룩하게 살아야 할 ‘그리스도의 세례’를 받은 새로운 신분임을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는 더욱 견고하게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계속 살아갈 수 있습니다.
바라기는 죄악 된 본성을 벗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예수가 주신 생명의 법을 따라 예수 안에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성도는 그리스도 세례를 통하여 모든 죄를 용서 받았습니다(12-15).
우리가 속이는 철학에 빠지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갈 세 번째 이유는, ‘예수 믿는 성도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살아나는 그리스도 세례를 통하여 모든 죄를 용서 받았기’ 때문입니다.
마치 목욕하고 새 옷으로 갈아입은 사람이 진흙탕에 들어가지 않듯이, 성도는 죄와 사망의 사슬로부터 완전히 해방된 자들이기에, 더 이상 죄 가운데 살지 않고, 예수 안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 세례의 의미’를 골 2:12~15(쉬운말성경)에서 여러 각도에서 자세하게 설명합니다.
“여러분은 세례를 받음으로써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고, 또한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살리신 하나님의 권능을 믿음으로써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습니다.”(12)
이것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상징하는 믿음의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우리도 동참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전에는 죄와 할례 받지 않은 육신의 욕망으로 인해 죽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셔서,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해 주셨습니다.”(13)
‘그리스도의 세례’는 마치 물에 빠져 죽은 것처럼, 죄와 육신의 욕망을 따라 죽었던 우리를,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하여 살리셔서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 하신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거슬러 대적하는 각양 율법의 조문들이 적혀 있는 빚 문서를 말끔히 제거하셨는데, 곧 그것을 십자가에 못 박아 아주 없애 버리셨습니다.”(14)
마치 노비문서를 불태워 노비를 해방시키듯, 죄와 사망의 노예로 살았던 우리, 하나님과 마음으로까지 원수 되었던 우리, 그래서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던 우리를 완전히 해방시켜주셨습니다.
“나아가 하나님께서는 모든 통치자들과 권력자들의 무장을 완전히 해제시키시고, 그들을 그리스도의 십자가 개선 행진에 내세워, 많은 사람들의 구경거리로 삼으셨습니다.”(15)
고난과 수치와 죽음을 상징하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세상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과 같은 악한 영적 세력을 무력하게 하고, 세상의 구경거리로 만드셨을 뿐만 아니라, 그들을 이기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믿음의 세례를 받은 성도라면, 우리가 받은 그리스도 세례의 영적 의미를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동참되며, 나를 죽음에서 살리시고 용서하셨으며, 나를 죄의 노예에서 해방시키셨으며, 세상을 이기신 ‘그리스도의 사역을 내가 믿는다’는 고백은,
더 이상 과거의 나로 살지 않겠다는 믿음의 고백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이제는 완전히 새로운 삶을 살겠다는 결심입니다.
화려했던 지난날의 나의 모든 자랑도, 입에 올리기조차 거북한 나의 모든 잘못이나 실수도,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못 박도록 다 내어놓겠다는 다짐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내 안에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살게 하겠다고 고백하는 것(갈 2:20),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할례; 믿음의 세례를 받은 우리의 마땅한 삶의 모습입니다.
이런 확실한 진리가 있는데도, 죄에서 해방되고 구원을 얻기 위해 아직도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또 다른 그 무엇이 필요하다는 사탄의 유혹에 귀가 솔깃해지지는 않습니까?
여전히 진화론과 과학의 발달이 인류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달콤한 주장에 속고 있지는 않습니까?
마음과 몸의 수양을 강조하며 다른 여타 종교에도 구원이 있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종교다원주의의 그럴싸한 말에 동조하지는 않습니까?
아니면 혹시나 해서 하나님이 주시는 복도 받고 우상들이 주는 복도 받자는 종교혼합주의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러한 세상의 악한 영적 세력에, 그 어떤 철학에, 세속적인 세계관이나 문화를 따르지 않고, 예수 안에서만 살아야 할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미 십자가로 그 모든 것을 이기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통해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고, 함께 살아난 존재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죄와 사망의 노예; 죄악 된 본성에 매여 있을 수 없는 존재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살아나는 세례를 통하여 모든 죄를 용서 받았다는 믿음으로, 언제나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시대는 다양한 매체를 통하여 여러 이단이나 사이비, 무신론자들과 과학과 진화론들이 우리에게 다가와 거짓 진리로 우리를 미혹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어떤 거짓 가르침에도 속지 않아야 합니다.
예수 안에 충만한 하나님의 성품으로, 예수 안에서 예수로 충분합니다.
죄악 된 본성을 벗는 그리스도의 할례를 받았습니다.
그리스도 세례를 통하여 모든 죄를 용서 받았습니다.
주님 앞에 서는 그날까지 이 진리를 견고하게 붙들고 예수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