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ity with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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엡4:1-6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주도 한 분이시요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위더스 첫 모임 때 나눈 시편 말씀은 “연합의 기쁨”에 대해서 다룹니다.
시133:1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여기서 “연합"이라는 말은 “unity”라는 말인데, 같은 의미를 가진 곳이 신약에 세군데 더 나옵니다.
에베소서 4장3,13절, 벧전3:8절입니다.
한 학기가 지나고 하반기를 앞둔 지금, 다시 한번 “연합" “하나됨"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감옥에 갇혀 있던 에베소에 편지를 보내면서 특히 “하나됨" “통일"을 강조합니다. 에베소는 당시 그리스 문명의 중심지였습니다. 오늘날 터키의 이즈미르 지방에 여전히 그 유적이 남아 있습니다. 동부로는 육로가 잘 발달했고, 서부로는 해양길이 잘 발달해서 천혜의 항구도시였습니다. 당연히 상업이 발달했겠죠.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달의 여신이었던 “아데미"를 섬겼습니다. 지금도 터가 남아있는 아데미 신전은 세계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일 만큼 웅장함을 자랑합니다. 사도바울은 3년 동안 에베소를 복음의 중심지로 삼고 전도를 했습니다. 그렇게 태동한 것이 에베소 교회죠.
그런데 에베소가 지리적으로 어떤 곳이라고 했죠? 상업이 발달한 도시입니다. 그러다보니, 세계 여러 국가에서 온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아프리카 대륙에서는 흑인이, 터키 지역에서는 황인이, 유럽 쪽에서는 백인이 모여들었던 곳입니다. 에베소 교회에도 다양한 인종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교회의 하나됨과 신자의 연합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통해 만물을 통일하시고,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 생명을 얻었습니다. 하나님의 값없는 선물, 즉 사랑은 모든 장벽을 허물어 버립니다. 그분께서 주신 화평으로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담이 무너졌습니다. 따라서 모든 사람이 교회 안에서 한 몸을 이룹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서로 다른 양측이 한 성령 안에서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열었습니다. 성도는 이렇게 연결되어 한 몸으로 빚어져 갑니다.
이후 바울은 (다른 서신에도 그렇게 하는 것처럼) 실제적인 삶의 지침을 줍니다. 바울은 언제나 서신의 초반에는 교리에 대하여 설명하고, 후반에는 그것을 어떻게 적용할지를 가르쳐 줍니다. 에베소서도 1-3장은 교리, 4-6장은 실천에 대하여 다룹니다. 그래서 4장 1절은 “그러므로"로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구원의 경륜 안에서, 만물이 통일 되었다. 유대인과 이방인의 담도 허물어졌다. 모든 사람이 교회에서 한 몸을 이룬다. “그러므로…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는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말씀하고 있는 “부르심"에는 크게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유대인과 이방인이 대등하게 구성된 “한 백성"
세상과는 다른, 하나님께 속하도록 구별된 “거룩한 백성"
그리스도 안에서 인종과 출신에 상관없이 한 백성이 되었기 때문에, 거룩한 교회 공동체로서 행하라는 것입니다. 우리 위더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태어난 곳이 다르고, 자라온 환경이 다르고, 현재도 서로 다른
직업과 상황 가운데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런 모든 다름과 상관없이 주안에서 우리는 “하나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영적인 가족이며, 한 몸을 이루어갈 거룩한 하나님 나라 공동체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한 몸을 이루어가기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삶의 자세는 무엇일까요? 2절이 알려줍니다.
엡4:2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겸손"은 고대 사회에서 대단히 멸시되었습니다. 헬라인들은 겸손이라는 단어를 비굴하고 굴욕적이고 추종적인 태도를 담아 사용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겸손"은 “마음의 겸손"을 말합니다. 다른 사람의 값어치와 진가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겸손은 우리 하나됨에 필수적입니다. 교만은 모든 불일치와 반목의 배후에 자리잡고 있지만, 겸손은 일치를 이루는 가장 큰 비결입니다.
“온유"는 “약함"과 같은 의미가 아닙니다. 강한 자가 힘을 통제할 줄 아는 “온화함"입니다. 강한 인격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신을 잘 억누르고 다른 사람들의 종이 되는 사람의 자질입니다. 하나님 앞이건 사람 앞이건 개인적인 권리를 주장하는 성향이 없는 것을 말합니다.
“겸손"과 “온유"는 자연스러운 한 쌍을 이룹니다. “겸손한 사람이 자신의 개인적인 장점을 작게 여기듯이, 온유한 사람은 자신의 개인적인 권리를 작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겸손하고 온유하신 분임을 우리에게 알려주셨습니다.
마11: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사랑하는 여러분. 이러한 겸손과 온유는 “다름"을 인정할 때 드러납니다. “다른 것"과 “틀린 것"의 차이를 아시죠? 하나됨을 세워가는데 있어서 “틀린 것"은 없습니다. “다를 뿐”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잘 조화시켜나가는지가 중요한 것이죠.
(적용)
위더스를 시작하면서 저도 처음이고, 국장님도 처음이고, 모든 스탭도 처음이고, 여러분도 처음이었기 때문에 생각해 보면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습니다. 스트레스 때문에 잠을 못이루던 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때로는 여러분이 양보해 주시기도 하면서 지금까지 잘 이어왔습니다. 이제 함께 이 자리를 지켜가고 있는 여러분을 중심으로 하반기에는 더 많은 지체들이 모일 수 있도록 힘써야 겠습니다.
“겸손”과 “온유"가 쌍을 이루는 것처럼 “오래 참음"과 “서로 용납"하는 것도 쌍을 이룹니다. “오래 참음"은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오래 참으신 것처럼), 화나게 만드는 사람을 향하여 인내심을 발휘하는 것입니다. 이미, 고린도전서 13장을 통해 “오래 참음"을 살펴보았었습니다. 참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됨을 위해서는 참을 수 있어야 합니다. 참기 힘들 때는 나 같은 죄인이 주님께 나갈 때까지 참으신 우리 예수님의 인내를 먼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서로 용납"하는 것은 “오래 참음"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오래 참을 때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고 용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적용)
부부간의 관계에 있어서도 이 요소가 정말로 중요합니다. 제가 13년의 결혼 생활을 하면서 느낀 것은, “참음이 하나됨을 이루는데 참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부부는 닮아간다는 말을 아시죠? 삶의 양상이 비슷해 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냥 비슷해지지 않습니다. 서로가 서로에 대하여 “오래 참을 때" 가능한 것입니다. 가끔 아내와 언쟁을 할 때 “서로가 얼마나 서로를 참아주고 있는지"에 대하여 말할 때가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나만 참는 것이 아니라 아내도 많이 참고 있는게 맞더라구요.
위더스 가운데도, 나와 잘 맞지 않는 지체가 있을 수 있고, 어떤 특정한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는 지체의 모습이 보일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럴 때 그냥 패싱하거나, 어느 정도 적당한 거리를 두고 마음을 닫지 마시고, 끈질기게 참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지체의 모습은 틀린 것이 아니라 나와는 다른 것입니다. 그렇게 참음이 쌓일 때 서로 용납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 공동체가 더욱 하나되고 온전하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겸손, 온유, 오래참음, 서로 용납을 하나로 묶는 것은 “사랑"입니다. 이 사랑이 모든 것을 포괄합니다. 공동체 안에 2절과 같은 이런 강력한 기초가 높이면, 하나됨이 세워질 수 있다는 충분한 소망이 생깁니다. 하반기 우리 서로 겸손히, 온유함으로 대하고, 오래참음으로 서로 용납하여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어 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어지는 3~6절에서는 “하나"라는 말이 7번이나 나옵니다. 좀 더 주의 깊게 자세히 읽어보면, 일곱 번 중 세 개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세 위격을 말씀하고, 네 개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나타냅니다. 이것은 “연합"으로 묶여 있습니다.
성령도 한 분, 몸도 하나
엡4:4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성령도 한 분"이기 때문에, “몸이 하나"라는 것입니다. 한 몸은 교회를 말합니다. (이미 말씀드렸듯이, 유대인 신자와 이방인 신자가 함께 있었던 에베소 교회의 하나됨은, 그 안에 내주하시고 생기를 불어넣으시는 한 성령으로 되는 것이다.
2. 주도 한 분, 믿음도, 세례도 하나
엡4:5 “주도 한 분이시요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
예수님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믿음의 대상이다. 그리고 우리는 한 분 주님과 연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는다. 우리가 믿는 것은 예수님이며, 우리가 세례를 받음으로 예수님과 하나된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도 하나 된다.
3. 하나님도 한분, 만유를 포함하는 하나의 그리스도인 가정
엡4:6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만유의 아버지이신 하나님께서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십니다. 이 말은, “만유"를 포함하는 하나의 교회가 있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온 세계와 열방 가운데 있는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만유의 교회가 하나, 예수님 안에서 한 믿음으로 세례를 받고, 성령께서 하나된 교회의 소망이 되십니다. 하나님을 여럿으로 나눌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교회를 여럿으로 나눌수 없습니다. 한 분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교회도 단 하나입니다. 하나님을 나눌 수 없는 것처럼, 교회도 나눌 수 없습니다. 우리 공동체도 여러개로 나눌 수 없습니다. 이렇게 삼위 하나님과 교회는 통일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이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켜야” 합니다.
엡4:3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성령께서 하나 되게 하신 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입니다. 우리를 하나로 묶으시고, 결합시키시고, 연합시키셨다는 사실은 변치 않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과제는 무엇일까요? 그렇게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는 것"입니다. 어떻게요? “평안의 매는 줄로"입니다. 즉, 우리를 한데 묶어 주는 평안으로, 구체적인 사랑의 관계 속에서 말입니다.
“힘써"라는 말은 노력을 아끼지 말라는 뜻입니다. 지속적으로, 부지런히(현재분사) 그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서로 소리를 내며 반목하고, 분열하는 것이 아니라, 화평케 하는 자가 되어 성령의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이루어갈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힘차게 시작한 위더스 젊은 부부 모임은 이제 곧 하반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새순교회 안에 세워진 우리 공동체가 더욱 연합하고 하나됨을 힘써 지킬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의 몸을 세워가기를 소망하는 우리 교회 올해의 표어처럼, 빠르다고 먼저가는 것이 아니라, 나와 맞지 않는다고 손놓고 가는 것이 아니라, 느리고 어려울지라도 함께 손잡고 그리스도의 하나된 몸을 세워갈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제목
다른 고향, 다른 환경, 다른 직업, 다른 상황을 가지고 있지만, 우리 위더스는 만유를 통일하신 하나님 안에서 하나된 가족이며, 연합된 공동체입니다. 이 사실을 늘 기억하고 겸손히 나를 낮추고, 온유함으로 다른 지체를 대하게 하여주옵소서. 나와 잘 맞지 않는다고 해서 패싱하거나 마음을 닫는 것이 아니라 오래 참음으로 용납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 위더스가 사랑으로 행하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님을 여러 하나님으로 나눌 수 없는 것처럼, 하나된 교회도 나눌 수 없는 하나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모든 것이 통일되고, 예수님 안에서 한 믿음을 소유하며, 성령 안에서 한 소망을 이루어가는 끈끈한 위더스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성령이 하나되게 하신 것을 부지런히 힘써 지켜가게 하옵소서. 새순교회를 세워가는데 있어서 우리가 필요한 자리에서 기꺼이 사역하고, 헌신할 수 있는 우리 공동체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위더스 모임 대상자이지만 아직 함께 하지 못하고 있는 분들이 있습니다. 청년 대학부에 아직 남아있는 부부, 육아와 분주함으로 인하여 여유가 없는 부부. 하반기에는 모두가 나아와 함께 하나됨의 유익을 누리며, 삶의 애환을 공유하고 서로 기도할 수 있는 믿음의 공동체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