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함으로 그 앞에 나아가며
0 ratings
· 173 views하나님을 즐거이 찬양하라 감사함으로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라
Notes
Transcript
기도
항상 지극한 사랑으로 위를 보호해주시는 아버지 하나님, 오늘도 이 새벽에 주의 전으로 인도해주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주의 전으로 인도함을 받은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을 만나게 하시고, 귀하고 복된 은혜 안에 거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 생명의 빛을 비춰 주셔서 참된 회복이 이루어지게 하여 주시고, 우리의 모든 상황과 문제 가운데 진리의 영을 보내주셔서 하나님의 참된 뜻이 이루어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100일 감사 일천번제를 드리고 있습니다. 구체적인 감사를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하시고 진실한 마음으로 아버지 하나님께 더 깊은 감사를 드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베풀어주신 모든 은총에 감사함으로 헌금을 드리오니 주님 받아주시고, 이 모든 것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하옵소서.
찬양팀을 축복합니다. 새벽마다 찬양을 드릴 때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옵시고 기쁨과 뜨거움으로 가득하게 하옵소서.
말씀을 듣습니다. 주께서 주관하여 주시고 주장하여 주셔서 거룩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뜻을 알게 하시고 믿음과 능력을 얻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1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 노래하며 우리의 구원의 반석을 향하여 즐거이 외치자
2 우리가 감사함으로 그 앞에 나아가며 시를 지어 즐거이 그를 노래하자
3 여호와는 크신 하나님이시요 모든 신들보다 크신 왕이시기 때문이로다
4 땅의 깊은 곳이 그의 손 안에 있으며 산들의 높은 곳도 그의 것이로다
5 바다도 그의 것이라 그가 만드셨고 육지도 그의 손이 지으셨도다
6 오라 우리가 굽혀 경배하며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자
7 그는 우리의 하나님이시요 우리는 그가 기르시는 백성이며 그의 손이 돌보시는 양이기 때문이라 너희가 오늘 그의 음성을 듣거든
8 너희는 므리바에서와 같이 또 광야의 맛사에서 지냈던 날과 같이 너희 마음을 완악하게 하지 말지어다
9 그 때에 너희 조상들이 내가 행한 일을 보고서도 나를 시험하고 조사하였도다
10 내가 사십 년 동안 그 세대로 말미암아 근심하여 이르기를 그들은 마음이 미혹된 백성이라 내 길을 알지 못한다 하였도다
11 그러므로 내가 노하여 맹세하기를 그들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도다
서론
서론
예화 : 새옹지마
예화 : 새옹지마
옛날 북쪽 변방에 한 노인이 살고 있었는데, 이 노인이 기르던 말이 어느 날에 도망가자 사람들은 “말이 도망가서 어쩌니까? 정말 안되셨습니다.”하고 위로 했더니 이 노인은 오히려 “글쎄요, 이 일이 복이 될지 어찌 알겠소?”라며 낙심하지 않고 덤덤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러다가 얼마 뒤에 도망갔던 말이 다른 말을 이끌고 노인에게로 돌아왔습니다. 사람들이 이 소식을 듣고 축하하자 이 노인은 “글쎄요, 이 일이 재앙이 될지도 모르지요.”라며 기뻐하지 않고 덤덤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런데 말타기를 좋아던 노인의 아들이 그 말을 타고 달리다가 다리를 크게 다치고 절름받ㄹ이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아드님이 다리를 다쳐서 저 기졍이 되었으니 어떡합니까? 정말 안됐습니다.” 하고 걱정하며 위로하자 노인은 “글쎄요. 이게 다시 복이 될지 어찌 알겠습니까?”라며 덤덤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얼마 뒤, 오랑캐들이 쳐들어와 많은 남자들이 징집되어 대부분 전장에서 전사하였고, 그나마 살아남은 이들 역시 상당수가 장애를 안고 돌아왔습니다. 그렇게 마을 내에서 아들이나 남편을 잃은 가족들의 울부짖음과 장애를 가진 이들의 가족의 탄식이 끊이지 않았지만, 노인의 아들은 다리를 못 쓰게 된 것이 오히려 약이 되어서 징집되지 않고 살아남았습니다. 그제서야 사람들은 노인이 왜 그리 모든 일에 덤덤했는지를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노인은 이때 “인생만사란 새옹지마이니라”라고 답했습니다.
세상 일의 좋고 나쁨을 예측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좋은 일이 생겼다고 너무 자만할 것도, 불행한 일이 생겼다고 너무 낙심할 것도 없습니다. 살다 보면 먹구름 뒤에 햇볕이, 햇볕 뒤에 먹구름이 몰려 올 수 있으니까요.
“인간만사 새옹지마가 아닌가~” 참 괜찮은, 좋은 삶의 철학인 것 같습니다.
(인간만사 새옹지마 구나~ 이 말이 가장 크게 기억에 남으시면 안됩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말하는 감사하는 삶은 이런 삶의 철학과는 분명히 다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의 삶은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믿고 감사할 수 있습니다.
감사는 하나님께 드리는 더 긍정적이고 더 적극적인~ 좀더 나아가 신앙적인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의 고백이요 우리 마음의 표현입니다.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만큼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모습은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감사함으로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원합니다.
본론
본론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1. 감사함으로 찬양합니다.
1. 감사함으로 찬양합니다.
1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 노래하며 우리의 구원의 반석을 향하여 즐거이 외치자
2 우리가 감사함으로 그 앞에 나아가며 시를 지어 즐거이 그를 노래하자
오늘 말씀은 구원받은 백성들을 하나님을 찬양하는 자리로, 감사하는 자리로 초청하고 있습니다. 시인이 백성들에게 ‘오라’ 라고 초청하고 있기에 본시를 가리켜 초청시라고도 합니다.
여기서 ‘노래하며’ 로 번역된 히브리어 ‘나리아’는 음성이 되었든지 악기가 되었든 간에 어떤 소리를 크게 내는 것을 뜻합니다. 즉 이것은 하나님을 예배하는데 있어서 악기와 노래를 연합하여 찬양하라고 요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악기와 노래를 연합하여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는가? 그 이유는 하나님이 구원의 반석이시기 때문입니다. 즉, 이 백성들에게는 구원의 감격이 있는 것입니다. 노예의 신분에서 구원받았고, 광야에서 굶주림과 목마름으로부터 구원받았고, 생명을 위협하는 여러 적들로부터 구원받았는데, 이 구원의 감격은 실로 큰 감격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인은 구원받은 백성들에게 구원의 반석을 향하여 즐거이 외치자 라고, 감사함으로 그 앞에 나아가며 시를 지어 즐겁게 노래하자 라고 초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찬양과 감사의 자리로 초청받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 뿐이 아닙니다. 이 세상 모든 그리스도인들 역시 하나님을 향한 찬양과 감사의 자리로 초청받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통해서 죄에서 구원을 받았고 영생을 선물로 받았기 때문에,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이 구원의 감격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구원의 감격이 있는 그리스도인이라면 감사의 자리로 초청받을 때 언제든지 기쁨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 있는 우리는 성령의 초청을 받아 이 새벽 시간에 주의 제단에 나왔습니다. 그렇다면 바로 이 시간에 구원의 반석이신 하나님께 우리는 큰 즐거움으로 감사의 찬양을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 줄 믿습니다.
여러분~ 삭개오를 아시지요?
여러분~ 삭개오를 아시지요?
삭개오는 특별한 감사를 드렸다고 생각됩니다.
삭개오 이야기, 우리가 잘 아는 얘기이지만 다시 한번 생각해보기를 원합니다. 그 당시로 돌아가 생각해보면, 그는 세리장입니다. 로마사람이 유대나라만 아니라 온 세계를 지배하고 있을 때입니다. 로마를 떠나서는 살 수 없구요. 로마를 피해서 살 수가 없어요. 로마 권력이 온 세계를 지배하는 때에 유대나라 역시 로마 권력하에 있었습니다.
바로 이런 때에 정치적 상황에서 대세를 잘 이용한 사람이요, 그래서 나름대로 성공한 사람입니다. 세속적으로는 그는 세리의 장이요 권력자요 요새 말로 실세입니다. 그리고 부자입니다. 로마를 대표한 총독 이하 군인들은 이 세리장 같은 사람을 결코 무시할 수 없었습니다. 이들의 도움이 꼭 필요했습니다.
자 그런데 이런 세리들에게 고민이 있습니다. 그것은 종교적 고민입니다. 물론 모든 세리들은 아니었을 겁니다. 그들 중에 일부였겠지요. 어떤 고민이냐? 신앙적으로 하나님을 등진 것 같은, 죄를 짓고 사는 것 같은 그런 고민이 있구요. 또 하나는 많은 사람들이 반민족주의자라고 저를 부르고 있습니다. 로마 사람을 위해 일하고 있으니까요. 또 그리고 로마 사람의 힘을 빌어서 자기 권력과 자기 부를 취하고 있으니까 그 마음속에 갈등이 있습니다. 민족을 배반한 고통이 있습니다. 적어도 이만한 고통이 있는 삶입니다.
그래서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나려고 했습니다. 더 큰 부자가 되기 위해서도 아닙니다. 더 큰 세력을 얻기 위해서도 아닙니다. 더 잘 살기 위해서 예수를 만나러 가겠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그 누구처럼 병 고치려고 예수를 만나겠다는 것도 아닙니다. 그가 예수를 만나려 하는 생각은 좀 달랐습니다. 예수님은 세리와 죄인의 친구, 세리와 죄인의 친구라고 하는데, 그런 예수님이 오신다는 소문을 듣고 예수님을 정말 만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키가 작았어요. 많은 사람이 옹위해가지고 밀어닥치는데 도저히 예수의 얼굴을 볼 수가 없어. 그는 뭐 체면이고 뭐고 불구하고 뽕나무로 기어올라갔어요. 그리고 지나가는 일행 속에 있는 예수님을 내려다보게 됩니다. 그는 이 기회를 놓칠 수가 없어요. 뽕나무에서 예수님을 멀리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그 다음 어떻게 되었나요? 예수님이 뽕나무 위에 있는 삭개오를 보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시기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세리의 집입니다. 온 유대 사람이 상종하지도 않고 인사하지도 않고 심지어는 거지도 세리의 돈은 받지 않았답니다. 받았다가도 도로 던져 버렸답니다. 이렇게 더럽게 취급하는 세리의 집에 예수님은 가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삭개오는 바로 이 시간, 이 은혜 가운데서 첫째가 “즐거워했다” 그랬어요. 기뻐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집에 오신다는 것 때문에 그는 기뻐하고 있습니다. 임마누엘 때문에 기뻐하고 있습니다. 삭개오는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정성을 다하여 영접했습니다.
그런 삭개오의 모습을 보신 예수님은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삭개오의 감사는 예수님으로 인한 즐거움의 감사요, 기쁨의 감사였습니다.
오직 예수님으로 인하여 기뻐하며 감사할 때 예수님께서 삭개오에게 구원을 선포하셨습니다.
대지 1의 결론
대지 1의 결론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구원하심에 대한 감사는 가장 본질적이고 가장 중요한 감사입니다.
구원받음에 대한 감사는 기쁨과 즐거움이 넘치는 감사입니다.
우리를 살리시고 우리를 새롭게 살게 하신 하나님께 더 큰 기쁨의 감사로 찬양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여호와께 노래하며 우리의 구원의 반석을 향하여 즐거이 외치고
우리가 감사함으로 그 앞에 나아가며 시를 지어 즐거이 그를 노래하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2. 감사함으로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2. 감사함으로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6 오라 우리가 굽혀 경배하며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자
6절 말씀을 보면, “오라 우리가 굽혀 경배하며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자” 라고 나와 있습니다. 여기서 ‘굽혀 경배하며’ 라는 단어와 ‘무릎을 꿇자’ 라는 단어를 통해서 귀한 신앙의 자세를 배우게 되는데, 이것은 단순히 자신을 낮춘다는 의미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높으심과 위대하심을 인정하고 그것을 몸으로 표현하는 신앙 고백적인 의미를 지닌 행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겸손과 섬김을 나타내는 자세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겸손히 섬기는 자세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또 다른 면에서 7절에서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는 우리의 하나님이시오 우리는 그가 기르시는 백성이며 그의 손이 돌보시는 양이기 때문이라.”
그는 우리의 하나님이시며 우리는 그의 기르시는 백성이며 그의 손이 돌보시는 양이기 때문에 굽혀 경배하며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한다는 겁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이시며, 타락한 영혼들을 구원하시는 구원의 하나님이시며, 그의 백성을 기르시고 돌보시는, 끝까지 책임지시는 목자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대지 2의 결론 : 무릎 끓음
대지 2의 결론 : 무릎 끓음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 우리를 기르시고 돌보시는 하나님 앞에 온전한 믿음과 감사로 무릎을 꿇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고 진실하게 모든 찬양과 경배와 기도를 올려드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원합니다.
이런 무릎 꿇음이 우리에게 있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한다고 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진정으로 무릎 꿇지 못하고 뻣뻣하게 서 있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 앞에 온 믿음 다하여, 온 마음 다하여 무릎을 꿇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되기를 축원합니다.
시 95:1-11 앞의 내용과 상반되는 말씀
시 95:1-11 앞의 내용과 상반되는 말씀
그런데 조금 의아한 것은 감사와 즐거움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갈 것을 초청하면서 8절 이후의 말씀에서는 과거 출애굽할 때 광야에서 이스라엘의 조상들이 범했던 불신앙에 관해서 언급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뼈아픈 불순종의 기억을 후반부에 담았는지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기에 아주 중요한 교훈이 있는데 8~11절 말씀입니다. 앞에서는 구원의 감격과 감사를 가지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아주 밝은 내용이 나와 있는 것에 반해서 8절 이후부터는 불신앙과 불순종에 대한 어두운 내용을 말하고 있습니다. 왜 갑자기 이렇게 분위기가 확 바뀌게 되었을까요?
이것을 알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바로 7절 마지막 부분에 나와 있습니다.
“너희가 오늘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가 오늘 그의 음성을 듣거든”
사실 이 말씀을 정확하게 번역하면 이렇습니다.
“만약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는다면”
그러니까 시인은 여호와 앞에 나아가서 그분께 무릎 꿇고 경배하며 송축하는 자들에게 이제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들을 순서가 되었다고 내용을 전환하고 있는 것입니다.
정말 중요한 전환의 순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순간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이 분명히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여기서 시인이 강조하는 것은 이것입니다.
“만약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는다면 마음을 완악하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너희 마음을 완악하게 하지 말지어다” 라는 말씀을 정확하게 해석하면 ‘늘 항상 깨어 있어 마음이 완악해지는 것을 지속적으로 막으라는 것’입니다.
그들의 조상들은 광야에서 물이 없을 때 하나님을 시험하며 마음을 완악하게 가졌고, 그때뿐만 아니라 무려 40년동안 하나님을 근심하게 만들었지만 지금 너희는 그렇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항상 깨어 있어서 혹시 오늘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면 그 말씀 그대로 믿으라는 것이고 그 말씀 그대로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제대로 가르쳐주기 위하여 과거의 어두웠던 조상들의 불순종의 사건을 다시 상기시켜서 기억하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3장 12-19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12 형제들아 너희는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한 마음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조심할 것이요
13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
14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신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고 있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가 되리라
15 성경에 일렀으되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격노하시게 하던 것 같이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하였으니
16 듣고 격노하시게 하던 자가 누구냐 모세를 따라 애굽에서 나온 모든 사람이 아니냐
17 또 하나님이 사십 년 동안 누구에게 노하셨느냐 그들의 시체가 광야에 엎드러진 범죄한 자들에게가 아니냐
18 또 하나님이 누구에게 맹세하사 그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느냐 곧 순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에게가 아니냐
19 이로 보건대 그들이 믿지 아니하므로 능히 들어가지 못한 것이라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구원의 감격이 무뎌질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무뎌지는 것과 완악하게 되는 것은 다릅니다. 악한 마음을 품는 것은 많이 다릅니다.
마음이 완악해지면,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믿지 않게 되고 순종하지 않게 되고, 그러면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갈 수가 없게 됩니다.
안식에 들어간다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을 의미하고, 오늘 우리에게는 지금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에게 임하는 것이고, 또한 장차 누릴 천국의 영원한 안식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결코 마음이 완악해지면 안됩니다.
영적으로 타락하지 말고 항상 깨어 있어서 주의 음성을 듣는 하나님이 기르시는 백성이 되기를, 그의 손이 돌보시는 양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결론
결론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즐겁게 기쁘게 찬양하고 감사하는 우리가 되기를 원합니다.
구원의 반석이신 하나님을 향해서 구원의 감격을 가지고 감사하는 우리가 되기를 원합니다.
무릎을 꿇고 겸손하고 진실하게 하나님께 감사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