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룸과 여호야김

예레미야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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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시야의 죽음 2. 여호야김과 여호야긴 3. 우리는 어디에서 안정과 만족을 찾는가?

Notes
Transcript

요시야의 죽음

오늘 본문에는 4명의 왕이 등장합니다.
사실 우리와 아무런 연관 없는 왕들입니다. 우리나라의 왕이 아닌 이스라엘의 왕을 왜 우리가 살펴보아야 하는가? 하는 생각들을 해보시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저도 오늘 본문을 묵상하면서 좀 난감했습니다.
왕 한 명씩만 다루는데도 부족한데 4명의 왕을 함께 살펴봐야 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네 왕의 대한 정보를 너무 압축 시켜놓았습니다.
왕들에 대한 사전배경이 없으면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본문이었기에 묵상을 시작할 때 난감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묵상을 할 수록, 왕들의 삶을 살펴볼수록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아니 저에게 하신 말씀이 ‘이 것이구나’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나는 어디에서 만족과 안정을 찾고 있었는가?’를 돌아보게 하셨습니다.
오늘 새벽 예배에 참여하신 모든 분들에게도 하나님께서 깨닫게 해주시는 깨달음과 은혜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쉬고)
예레미야가 사람들에게 “죽은 왕을 위해 애곡하지 말고 잡혀간 왕을 위하여 슬피 울라!” 말합니다.
여기에서 말한 “죽은 왕”은 요시야입니다.
요시야는 남유다에서 나온 선한 왕들 중에서도 선한 왕이라 불리는 사람이었습니다. 종교개혁을 실행하면서, 하나님을 잊고 살아가던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이 누구인지를 확실하게 각인시켜준 왕이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선한 일을 행하던 그가 한 전투에 참여하게 됩니다.
사실 요시야는 이 전투에 참여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참여하지 않아도 전혀 무방한 전투였습니다. 하지만 전투에 나갔고 그는 죽음을 맞이합니다.
바로 므깃도 전투입니다.
므깃도 전투는 패권자로 떠오르고 있던 바벨론과 그 것을 인정할 수 없었던 애굽 사이에 벌어졌던 전투였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두 나라가 붙으면 승자는 없습니다.
이긴 쪽도 굉장히 큰 타격을 입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그저 전투를 지켜보고 결과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오히려 더 나았습니다.
그런데 요시야가 그 전투에 참전합니다.
남유다에게 병력을 보내달라는 어떤 요청도 없었는데, 므깃도에 올라가 싸웁니다.
왜 요시야가 므깃도 전투에 참전했는지 정확한 이는 알 수 없습니다만, 이집트가 바벨론을 이겨 패권을 잡는 것을 원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는 자신이 거기에서 죽을 것이라 전혀 예상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이집트의 북상을 막기위한 목적으로만 갔을 뿐인데 그 곳에서 죽음을 맞게 되었습니다.
므깃도에서의 죽음은 남유다에게 엄청나게 큰 위험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쉬고)
예레미야가 “죽은 왕” 요시야가 아닌 “잡혀간 왕”을 위해 울라고 말합니다. 여기에서 말한 “잡혀간 왕”이 바로 요시야의 아들. 살룸. 여호아하스입니다.
열왕기에는 여호아하스를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한 왕”이라 평가합니다만, 예레미야에서는 그를 선한 왕으로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그를 위해 “울어야 한다.” “그는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죠.
아버지 요시야가 갑자기 죽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여호아하스가 왕 위에 오릅니다.
그는 아버지와 같은 반애굽적 입장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애굽 왕 느고는 바벨론과의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전투를 마치고 돌아오던 중, 무조건 승리할 수 있었는데 승리하지 못한 이유가 바로 남유다 때문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돌아오면서 살룸. 여호아하스를 강제로 폐위시키고 애굽으로 끌고 갑니다. 그러면서 반애굽적 정책이 아닌 친애굽정책을 펼치는 둘째 아들이었던 여호야김을 왕으로 세웁니다.
여호야김은 외국 세력이 세운 첫번째 유다 왕이면서, 예레미야에게 가장 악독하게 굴었던 왕이기도 합니다.
예레미야에게 주셨던 하나님의 말씀은, 여호야김을 설득시켜서 바벨론에게 항복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여호야김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둘째였던 자신을 왕으로 세워준 것이 애굽이었기 때문도 있었겠지만, 바벨론에게 무릎을 꿇는 것을 싫어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마음과는 다르게 그들은 바벨론에게 공격을 받았고, 느부갓네살 왕에게 공물을 바쳐야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공물을 바치다가 어느 순간 슬그머니 공물을 바치지 않았습니다. 여기에 느부갓네살이 대노합니다. 예루살렘을 공격하기 위해 먼 곳에서부터 병력을 보냅니다.
그런데 바벨론이 도착하기 직전에 여호야김이 죽고 여호야긴이 왕이 됩니다. 이름이 비슷해서 헷갈리실텐데, 여호야김이 죽고 여호야긴이 왕이 되었습니다.
(쉬고)

여호야김과 여호야긴

왕이 죽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슬퍼하지 않습니다.
왕이 죽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그를 묻어주지 않습니다.
왕의 품위에 맞는 애곡장례도 그에겐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백성들은 그의 죽음을 좋아했고, 잘되었다! 라고 말하기까지 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아무리 못됐어도 왕이었는데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사람이 한명도 없었던 것일까요?
(쉬고)
여호야김이 상상 이상으로 악한 왕이었기 때문입니다.
권력을 남용하는데, 유다 시민들에게 불법적 강제 노동을 강요했습니다. 그가 사는 왕궁은 왕족들이 즐기는 붉은색으로 도배 되었습니다.
그것을 짓느라 백성들이 피눈물을 흘렸는데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을 위해서 백성들을 마음대로 움직였습니다.
여호야김을 누가 왕으로 세웠죠? 애굽 왕 느고입니다.
여호야김은 바벨론 뿐만 아니라 애굽에게도 조공을 바쳐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 조공의 양이 엄청 났습니다. 온 나라의 세금왕궁의 수입을 끌어모아도 감당하기 어려운 양이었습니다.
나라에 돈이 없어서, 파산하기 직전입니다.
이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여호야김은 백성들을 갈아내면서 사치스러운 궁궐을 지었습니다. 일에 대한 어떠한 임금도 주지 않고 오로지 강제적으로 폭력적으로 그들을 다그쳐 왕궁을 지었습니다.
(쉬고)
14절. “백향목으로 입히고 붉은 빛으로 칠하도다”라고 말합니다. 지금 제가 들고 있는 이 십자가는 “백향목으로 만든 십자가”입니다. 무슨 색깔이죠?
이 색깔의 백향목을 붉은 빛으로 물들게 하려면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 할까요?
염료도 만들어야 합니다. 이 것을 위해서도 엄청난 재정이 투입이 되었을 것입니다. 나라의 빚이 늘어나고 백성들의 눈에 피눈물이 나고 있지만 여호야김 왕은 신경 쓰지 않습니다.
17절. “네 두 눈과 마음은 탐욕과 무죄한 피를 흘림과 압박과 포악을 행하려 할 뿐이니라”
(쉬고)
여호야김에게 사치스러운 왕궁“바벨론과 애굽에게서 오는 압박감을 이겨낼 수 있는 장소”였습니다. 그는 그 곳에서 “평안함”을 느꼈습니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백성의 대표인 왕이 여호야김인데, 하나님이 아닌 다른 곳에서 만족과 안정을 찾고 있는 것이죠.
압박감이 생기면 생길수록 그는 하나님이 아닌 세상에서, 자신이 쥐고 있는 보물에서, 자신이 머물고 있는 왕궁에서 평안함을 찾고자 했습니다.
백성의 삶. 하나님 앞에서의 자신의 삶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자기 자신만을 위해기 살기 위해 아둥바둥 했다는 것이죠.
(쉬고)
여호야김이 죽고 여호야긴이 왕이 되었습니다만 그의 재직기간은 3개월 뿐이었습니다.
여호야김으로 인해 화가 났던 바벨론이 군대를 보냈다 말씀드렸죠? 군대가 도착하고 나니 여호야김에서 여호야긴으로 왕이 바뀌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쟁 없이, 아무런 소득없이 돌아갈 수는 없었습니다.
먼 거리를 왔기에 전리품을 챙겨야 했습니다.
여호야긴이 왕이 되고 3개월만에 바벨론의 공격을 받았고, 거의 모든 것을 다 빼앗겼고 그는 바벨론에 끌려갔습니다.

우리는 어디에서 만족과 평안을 찾는가?

우리는 이 왕들을 통해 무엇을 배워야 할까요?
그들을 통해 우리가 오늘 하루 곰곰히 생각해봐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쉬고)
서두에 결론을 미리 말씀드렸습니다.
“나는 어디에서 만족과 안정을 찾고 있었는가?’
(쉬고)
요시야는 선한 왕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했고 그 분을 이스라엘에게 돌려주기 위해 정말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하나님께 물으며 왕의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그랬던 그였는데, 므깃도 전투에 나갔습니다.
하나님께 어느 것도 묻지 않았습니다. 애굽이 바벨론과의 전투에서 이기게 되면 외교적으로 압박 받을 것이 분명했기에 그 상황을 보고 싶지 않아 전투에 나갔습니다.
그는 결정적인 순간에 하나님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보았고, 왕으로써 해야 할 일을 선택했습니다.
므깃도에서 애굽만 저지하면 이스라엘이 평안할 것이라는 생각. 그 것에 잡혀 전투에 나갔고 죽임을 당했습니다.
여호아하스와 여호야긴은 어떤 것도 해보지 못하고 각 나라의 포로로 끌려가서 그 곳에서 죽었습니다.
그들이 그 곳에서 하나님을 찾았을까요? 저는 그러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포로로 끌려가서 오히려 더 나은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여호야김은 어떠했죠?
그는 하나님이 아닌 재물, 왕궁 등 눈에 보이는 것에서만 평안함을 찾으려고 애를 썼습니다.
하나님은 생각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애굽과 바벨론 사이를 왔다갔다 하면서 자신의 잇속만 챙기려 했습니다.
(쉬고)
네 왕은 결정적일 때 하나님이 아닌 “세상 혹은 다른 것에서 만족과 안정을 찾으려 했습니다.”
(쉬고)
“저는. 여러분은 어디에서 만족과 안정을 찾고 있었나요?”
이 것을 떠올리고 회복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들 중 한가지가 바로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에 마음을 두고 있지는 않았는가?”입니다.
(쉬고)
기도하는 이 시간. 그리고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아갈 오늘 하루를 통해 치열하게 고민하며 묻고 답을 찾아내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에 마음을 두고 있었거나” “하나님보다 앞서는 다른 것들이 있었다면” 그 것을 하나님 앞에 고백하고, 하나님이 내 삶의 유일한 안정과 평안함이 되게 해달라고 그리고 하나님이 삶의 맨 앞자리에 있기를 원한다고 기도하는 시간 되기를 소망합니다.
(쉬고)
네 명이 왕들과는 다른 “나의 안정과 평안은 오직 하나님에게서 옵니다”라는 삶의 고백을 올려드리는 사랑하는 모든 제2가족들이 되기를 소망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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