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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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목
1. 제목
책 제목 ‘출애굽’은 ‘나감’ 또는 ‘출발’을 의미하는 헬라어 단어 ‘엑소더스’에서 파생되었다. 이 책은 애굽에서 이스라엘이 떠나는 중심적인 사건에서 이름을 가져왔다.
출애굽기의 히브리어 제목은 ‘그리고 이것들이 그 이름들이다’이다. 이 제목은 이 책이 창세기와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연결 접속사 ‘붸’는 창세기 내러티브의 연속임을 보여주며, 책의 서두에서 창46:8의 문구를 반복하고 있다. 이 문구는 요셉의 때에 애굽으로 내려간 이스라엘의 아들들의 이름을 언급하고 있다. 창세기 마지막 에피소드인 요셉의 유언도 출애굽기와의 연결을 보여주는데, 죽기 직전 요셉은 자기 뼈를 애굽으로부터 옮겨가 줄 것을 부탁한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출애굽시 요셉의 뼈는 챙긴다(출13:19).
창세기와 출애굽기의 사이에는 상당한 시간 간격이 있다. 창세기가 막을 내릴 때 야곱의 가족들은 적당한 크기의 대가족이었지만, 출애굽기가 시작하면서 이스라엘은 거대한 나라가 되었다.
2. 역사적 배경
2. 역사적 배경
1) 저작권 및 형성과정의 문제
전통적인 비평학계는 출애굽기에 대해서 J, E, P로 나누고자 하지만, 노트(noth)에 따르면 ‘이러한 구분은 매우 난감하다’고 한다. 출애굽기와 관련해서 중요한 문제 중 하나는 율법과 네러티브 사이의 관계이다. 한 때 사람들은 십계명이 E문서로부터 나왔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대부분 율법이 먼저 생겨나고 그 뒤 네러티브로 삽입되었다고 생각한다.
반면 멘덴홀(Mendenhall) 이후의 학자들은 힛타이트 조약에서 율법과 역사적 서언이 통일되어 있다는 점을 들어서 두 부분 사이의 통일성을 주장했지만 최근에 와서 힛타이트 조약 모델은 장르상의 유동성 때문에 비판 및 배척을 받았다. 하지만 율법이 역사로부터 생겨난다는 기본적인 요점은 변함이 없다.
우리는 창세기와 마찬가지로 출애굽기도 모세가 기술했다고 보며 이를 증거해주는 출17:4, 24:4, 34:4, 27-29 등의 말씀들이 분명히 나타나고 있다.
2) 출애굽의 성격과 연대
출애굽기는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애굽에 들어와 거대한 민족을 이루어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는 모습을 보게 된다. 민1:46에서 20세 이상의 남자만 60만명에 이르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 민족은 현재 노예 상태에 있으며, 모세라는 지도자를 통해서 애굽의 압제로부터 구원하셨다. 출애굽기는 광야 방랑의 초기, 그 중에서도 시내산에서의 율법 전수와 성막 건설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
출애굽 연대에 대해서는 왕상 6:1과 삿11:26이 중요한 근거로 제시된다. 가장 직접적이며 역사적인 증명을 할수 있는 본문은 왕상6:1으로 이 본문은 솔로몬 제 사년 성전을 건축하기 시작한 때로부터 480년 전을 출애굽시기로 보고 있다. 학자들은 솔로몬 통치 4년을 주전 967년으로 확실히 보고 있다. 따라서 출애굽시기는 주전 1447년이며 어림수의 가능성으로 보았을 때도 그 쯤된다.
삿11:26에서 사사 입다가 암몬 왕과 외교적인 의견교환을 하며서 모압지역은 자신들이 가나안으로 돌아온 지 300년이 되었으며 그때부터 그 땅을 차지하고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입다의 통치 시기는 왕상6장의 본문보다 정확하지 못하다. 사사기서의 연대적인 언급들을 통해 면밀히 연구해보면 출애굽 연대가 주전 15세기 정도인 것으로 파악할 수있다.
현대에 와서 출애굽 시기가 15세기라는 주장은 의문시되고, 수정되거나 배척되었다. 어떤 학자들은 성경적인 증거보다 고고학적 증거를 제시하며 15세기보다 더 과거였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출1:11의 ‘비돔과 라암셋 건축’을 근거로 이 두 성을 텔 엘 마스쿠다와 타니스로 본다. 이 두 장소는 15세기에 사람이 살지 않았으며 엘 마스쿠타가 라메세스 2세(주전 1290-1224)에 의해 지어졌다는 것을 증명했다. 그래서 그들은 출애굽 시기를 주전 13세기로 본다.
또한 올브라이트, 라이트, 야딘 등의 학자들은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지역을 정복했을 때 생긴 유적층이 13세기의 것으로 추정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빔슨(Bimson)은 ‘라암셋과 비돔을 타니스와 텔 엘 마스쿠타와 연결시키는 것은 불확실한 증거이며 현재 학계는 칸틸을 피 라아메세와 연결시키는 설을 상당히 선호한다’고 밝혔고, 비돔도 텔 엘 레테바 또는 헬리오폴리스 등으로 볼 가능성이 있다. 타니스와는 달리 칸틸에는 15세기 사람이 거주하였고, 엘 레테바와 헬리오폴리스도 13세기보다 이른 시기의 역사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출애굽 후대 연대설을 지지해주는 또 다른 증거는 트랜스 요르단 지역을 조사한 넬슨 글뤽(Nelson Glueck)의 주장이다. 그는 요르단 건너편 지역에서 표면 탐사 작업을 진행하였고, 그 결과 주전 1900-1300년까지 이 지역에 영구적인 거주지가 존재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의 작업은 단순히 조사팀을 파견하여 그곳에서 유적지의 지도를 그리고, 유적지의 가장 위에서부터 토기조각의 유형들을 선택해서 그것을 가지고 거주시기를 추정하였다. 이는 현재의 조사 기준으로 보았을 때 원시적인 방법으로서 표본을 추출하는데 어떤 특정한 유형의 토기 조각들에 이끌려 결국 추정연대를 심각하게 왜곡할 수 있다.
글뤽의 조사 결과와는 상반되는 확실한 증거가 암몬 주변 지역의 청동기 중기 시대 무덤 및 고고학 구조물들로부터 발굴되었다. 글뤽의 조사결과는 이제 더이상 출애굽 초기 연대설을 반대하는 증거로 사용될 수 없다.
결론적으로 출애굽 후기 연대설을 주장하는 일부 학자들의 근거는 받아들이기에 의심스럽거나 잘못된 것들이다. 빔슨의 비판 작업은 고고학적인 연구 결과들에 대해 보다 나은 시각을 얻게 해주었다. 이러한 증거들은 성경 내용이 반드시 따라가야하는 기정 사실이 아니며, 성경 내용을 승인하거나 기각하는데 사용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 증거들도 성경과 마찬가지로 해석을 할 필요가 있다.
고고학적 증거들은 해석에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어떠한 주장을 독단적으로 따를 수 없다. 그렇기에 이러한 증거들을 볼 때에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하며 정복연대에 대한 왈키(Waltke)의 입장을 가져야 할 필요가 있다.
“아무런 의문 없이 정복활동의 연대를 확정할 수있는 보다 많은 자료들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판단을 유보해야 한다. 그리고 이처럼 판단 유보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옳다고 한다면 두가지 연대설이 모두 하나의 임시 가설로서 받아들여 질 수 있으며, 둘 중 그 어느 것도 교조주의적으로 주장되어서는 안된다.”
성경의 내적인 증거를 의하면 출애굽 시기는 주전 1447년이며 이 당시 바로는 투트모세 3세(bc 1479-1425)였다. 모세가 태어났을 때 요셉을 알지못하는 왕은 이집트의 새로운 왕조였던 18왕조의 창시자 아흐모세 1세(bc1550-1525)였다. 이들은 기존 힉소스 왕조에 반기를 들고 일어난 신 18왕조이다.
힉소스 왕조는 대부분 가나안에서 온 이방인으로서 기존 왕권을 무너뜨렸다. 그들은 이방인이었기 때문에 이방인인 요셉이 관직에 오르기가 비교적 쉬웠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정권은 오래가지 못했고, 기존 정권세력들이 원주민들과 힘을 합쳐 그들을 쫓아냈고 새로운 18왕조가 들어섰다.
18왕조는 전부터 특권을 누린 이스라엘을 경계했으며 그래서 국고성 비돔과 라암셋을 건축하며 그들을 종으로 노역시켰다.
모세를 발견한 공주는 18왕조의 창시자 아흐모세의 무남독녀 하셉수트였다. 그녀는 이복형제와의 사이에서 외동딸을 낳았기 때문에 모세가 바로의 후계자가 될 가능성이 있었다.
하셉수트의 남편 투트모세 2세는 첩에게서 낳은 투트모세3세가 있었는데, 하셉수트는 자신의 외동딸을 투트모세3세와 결혼시켜 자신의 왕위를 굳건히 한 뒤 남편이 죽자 투트모세 3세를 제치고 자신이 왕좌를 차지했다.
하셉수트의 통치가 끝난 뒤 투트모세 3세가 왕위에 등극했고 그는 자신이 경계해야 할 1순위 대상인 모세를 제거하려고 하였다. 그때 마침 모세가 감독관을 살해하였고 이를 구실 삼아 모세를 죽이고자 하였다.
모세는 투트모세3세를 피해 광야로 도망가고 40년이 지난 뒤 아멘호텝2세 때 하나님의 부르심으르 받아 애굽으로 돌아오게 된다.
3. 문학적인 분석
1) 구조
더럼(Durham)이라는 학자는 장소에 따라 출애굽기를 구분한다.
제 1부: 애굽에서의 이스라엘(1:1-13:16)
재2부: 광야에서의 이스라엘(13:17-18:27)
제3부: 시내산에서의 이스라엘(19:1-40:38)
이러한 구분도 좋은 방식이지만, 내용상의 구분이 보다더 적절해 보인다.
제1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의 압제에서 구원하심(1:1-18:27)
제2부: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주심(19:1-24:18)
제3부:하나님꼐서 이스라엘에게 성막을 지으라고 명령하심(25:1-40:38)
이 구조를 활용할 때, 우리는 구원과 율법, 예배에 대해 이 책이 말하고자하는 바를 확인할 수 있다.
(1)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의 압제에서 구원하심(1:1-18:27)
첫번째 부분은 출애굽기에서 가장 활발한 부분이다.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노예생활을 하고 있었으며, 바로는 그들을 두려워하여 무자비한 인구 통제정책을 시행하였다. 그런 상황에서 모세가 태어났고 바로의 집에서 길러지게 된다.
3장에서 모세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게 되고 그의 소명을 확인하게 된다. 그래서 바로에게 나아가 이스라엘을 구원하고자 한다. 모세와 바로의 대결은 여호와 하나님과 이집트의 신과의 대결이다. 하나님께서는 애굽을 벌하시며 그 강도를 점점 더하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호하시며 애굽인들은 공포에 질리게 하신다. 이는 열번째 재앙인 장자의 죽임을 통해 더 극명하게 나타난다.
그러나 첫부분의 하이라이트는 홍해 사건이다. 홍해 사건에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압제에서 구출시키시며, 애굽에게는 죽음을 가져다주셨다. 홍해를 통해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고, 애굽 군대를 심판하셨다.
그 뒤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생활하게 되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하나님 자신들과 함께 하신다는 것을 확인하지만 또한 불평을 토로한다. 이러한 모습이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2) 제2부: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주심(19:1-24:18)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을 떠나 삼개월만에 시내산에 도착해서 거의 이년간 머무르게 되는데, 이 곳은 출애굽기 후반부와 레위기, 민수기의 초반부까지의 배경이 된다. 시내산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불과 연기 가운데 임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게 되고 그곳에서 율법을 받게 된다.
(3) 제3부: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성막을 지으라고 명령하심(25:1-40:38)
출애굽기는 성막에 큰 관심과 집중을 기울인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성막에 대해 매우 자세하게 말씀하시고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말씀을 실행에 옮긴다. 이 것은 광야 세대들에게 성막의 중요성을 강조해주며, 이러한 내용들은 하나님께서 성막에 계신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2) 장르
출애굽기는 네러티브와 시, 율법 등 다양한 문학양식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가장 우선적인 장르는 선지자적, 혹은 신학적 역사로 볼 수 있다. 이 책의 저작 목적은 독자들에게 하나님께서 과거에 하신 위대한 행위들에 대해 알려주는 것이다. 이 기록은 그 행위들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속성을 드러내고자 하는 특별한 의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선지자적’ 또는 ‘신학적’이라고 불린다. 이런 역사적 기록은 신학적이고 교육적인 기능도 갖고 있다.
출애굽기가 다른 역사서와 다른 특징이 있다면 그것은 율법이 이 책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율법이 단지 이 책의 부록이나 분리된 부분이 아니라 구속사 가운데서 함께 나타나고 있다.
4. 신학적인 메세지
1) 애굽으로부터의 탈출
이스라엘은 값싼 노동력으로 착취를 당하며 억압을 받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님을 잊고 살고 있었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기억하고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기억하고 계셨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기 위해 한 구원자를 세우셨고 열재앙과 홍해사건을 통해서 그들을 구원하셨다. 출애굽 사건은 단순히 그 사건에만 그치지 않고 미래의 구원들을 위한 하나의 패러다임으로 활용되어진다. 출애굽 사건은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오게 될 사건과 이스라엘의 궁극적인 회복을 고대할 때 다시 설명되어진다.
이 사건은 예수님의 사역과도 많은 부분에서 겹치는데, 예수께서는 광야에서 세례를 받으시며 사역을 시작하셨다. 이 장면은 이스라엘이 홍해를 건넌 장면과 연결이 된다. 그가 받은 40일간의 시험과 그 시험에서 신명기의 말씀으로 승리하신 장면은 예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는 과거 이스라엘의 모습을 닮지말고 하나님께 순종하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또한 산상수훈은 시내산에서의 율법 수여와 관계가 있으며, 예수님께서 직접 유월절 어린양이 되시며 그의 지상사역을통해 출애굽을 완성하시고 성도들에게 진정한 출애굽의 안식을 바라보며 광야의 삶을 위로하신다.
2) 시내산-하나님의 율법(19-24장)
하나님께서는 노예의 땅인 애굽에서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가는 여정에 항상 함께하셨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를 통해 그분이 자신들을 구원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주신 율법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이미 맺어진 관계를 지속시키고 풍성하게 하는 것이다.
율법은 십계명과 언약의 책으로 나뉘는데 20장에 기록된 십계명은 이후 나머지 24장까지의 부분인 언약의 책에서 풀어 설명된다.
현대에는 사회가 세속화되는 것을 염려하여 율법을 철저하게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신율론이 제기되는데, 이러한 움직임은 고대 이스라엘과 현대의 문화적 차이, 그리고 구속사적 차이를 전려 고려하지 않고 있다.
물론 신약의 시대가 율법을 전혀 무시하지 않는다. 예수께서도 산상수훈에서 율법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넓혀주셨다. 그러면서 또한 그분이 율법 그 자체임을 알려주셨고, 당신을 따르는 자들에게 율법의 저주를 풀어주셨다. 따라서 율법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이루는 수단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자신의 삶에서 이루는 지침이 되었다.
3) 성막-하나님께서 자기 백성 가운데 거하심(25-40장)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셨을 때, 사람은 하나님과 만나기 위한 특별한 장소가 필요없었다. 하지만 타락으로인해 하나님과 물질적인 거리가 생겼고, 하나님은 그들과 더이상 함께 할 수 없었다. 타락 이후에도 사람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었지만 특정한 장소를 통해서 가능했다.
출애굽한 이후 이스라엘은 거대한 민족 집단으로서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이에 맞는 성막이라는 장소를 허락하셨다. 그곳은 하나님의 현현의 장소로서 거룩한 땅이었다. 고대 근동의 전통에 따르면 진 가운데 배치된 부분은 왕의 천막이 위치하는 곳이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하나님은 진 가운데 계시는게 마땅했다.
또한 성막은 뜰, 성소, 지성소로 나뉘는데 이는 거룩성의 차이가 있었다. 하나님께서 계시는 지성소로 가까워 질수록 귀중한 재료가 사용되었고 접근하는 사람의 차이도 있었다. 이를 통해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함께 하고 계심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지상의 성막과 성전은 일시적인 제도이며 진정한 성전이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심을 예비하고 있다. 이 일시적 제도는 궁극적으로 신약에서 하늘과 땅이 새로이 나타나는 것을 고대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