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하나님이 오신다 (마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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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Handout
Handout
고백 : 겸손한 마음을 가지자 / 내 죄를 있는대로 고백하자
헌금 :
예배를 위하여
하나님 아버지, 오늘 예배를 통해 영광 홀로 받아 주옵소서. 우리 청년부가 주님을 예배합니다.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예배하기 원합니다. 우리의 예배를 받아 주옵소서.
봉헌을 위하여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가진 돈과 수입의 일부를 주님께 다시 돌려드립니다. 교회와 이 민족과 열방의 복음화를 위해 내어드립니다. 우리의 드리는 헌금을 받으시고, 부흥의 역사가 충만케 하여 주옵소서.
기도 찬양 : 보혈을 지나
본문 : 마 3:1-17 (1-10)
1 그 때에 세례 요한이 이르러 유대 광야에서 전파하여 말하되
2 회개하라 천국가까이 왔느니라 하였으니
3 그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말씀하신 자라 일렀으되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가 오실 길을 곧게 하라 하였느니라
4 이 요한은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음식은 메뚜기와 석청이었더라
5 이 때에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요단 강 사방에서 다 그에게 나아와
6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 요단 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니
7 요한이 많은 바리새인들과 사두 개인들이 세례 베푸는 데로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8 그러므로 회개합당한 열매를 맺고
9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10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11 나는 너희로 회개하게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12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13 이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로부터 요단 강에 이르러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려 하시니
14 요한이 말려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서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15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시니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
16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17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자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리고
하늘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는데,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요단 강에서 세례 요한이 세례를 베풉니다.
5절과 6절입니다.
“이 때에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요단 강 사바엥서 다 그에게 나아와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 요단 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니”
방향성이 중요한데,
요단 강 서편이 아니라,
요단 강 동편에서.
왜냐하면,
장소가 중요한데,
약속의 땅은 서쪽에 있는데,
약속의 땅을 벗어나,
동쪽에서,
마치 여호수아 장군이,
약속의 땅을 정복하지 못했던 것처럼,
요단 강 동편에서, 세례를 주었다는 것은,
니들, 아직 천국 백성 아니다.
아직 하나님의 자손이 아니다.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했다.
아직 땅을 상속받지 못한 광야의 백성들이다.
라고 하는 소리와 같기 때문인데,
그래서 장소가 중요한데,
많은 사람들이 세례를 받으러 나아왔는데,
요한이 어디에서 세례를 베풀었느냐?
바로 요단 강 동쪽편에서 세례를 베풀면서,
그제야,
죄를 회개하고,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고 나서야,
너는 천국 백성이다.
하나님의 자녀다.
라고 이야기 했기 때문인데,
사실은,
이미 성전이 있어요.
예루살렘에 헤롯이 지었던 거대한 성전이 있었고,
거기에서
사두개인 출신
제사장들이 제사를 드리고 있었고,
바리새인들도 있었고,
이미 모든 종교 시스템이 완비된 상태에서,
황홀한 예배를 드리면서,
마치 천국 백성이 된 것과 같은 황홀감을 느끼면서 예배할 수 있었어요.
요단 강에서 세례를 베풀었다는 것은,
죄사함의 장소,
열왕기상, 8장에
주께서 계신 곳 성전에서 누구나 와서 죄를 고백하고 기도하거든, 주께서는 그들의 죄를 용서하시고, 그들의 기도에 응답하여 주옵소서.
죄사함의 장소,
기도응답의 장소,
구원의 장소는,
열왕기상 때부터 성전이었는데,
지금 세례 요한이 자기에게 찾아오는 자들에게,
요단 강에서 세례를 받으라.
요단 강에서 죄를 씻고, 죄를 고백하고 세례를 받으라고 하니까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무척 화가 났던 것입니다.
*여러분 그래서
얼마나 자기 죄에 민감하십니까?
얼마나 자기 죄에 대해서 두려워하며, 하나님의 임재를 두려워하고 있습니까?
이게 있어야 구원받은 사람인 것입니다.
본문 5절을 다시 보세요.
“이 때에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요단 강 사방에서 다 그에게 나아와”
세례 요한의 설교 사역이 탁월했던 것입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
나는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목소리다.
너희는 하나님이 오시는 길을 준비하라.
하나님이 곧 오신다.
그가 오실 길을 준비하라.
그의 설교가 얼마나 탁월하였는데,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 요단 강에 나아와서, 온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요단 강 사방에서 세례 요한을 통해 세례 받고자 했던 것이죠.
*여러분, 그래서
얼마나 자기 죄에 민감하십니까?
타인이 아니라,
자신의 죄를 말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죄에 대해 민감한 사람은, 자기 주장을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자기 권리를 내세우지 않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세례 받을 때,
물에 잠깁니다.
나는 이제 없다는 것입니다.
나는 이제 죽었고, 이제 예수로 산다는 고백입니다.
내가 살아 있어서, 펄펄 살아 있어서, 아직도 자신을 주장하고, 자기를 내세우고 다닌다면, 세례 받은 사람이 아닌 것이죠.
*요한이 말합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그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 예언된 사람이었는데,
이사야, 40장 3절입니다.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
고대 시대에는
왕이 오시는 길을
미리 준비했습니다.
고속도로를 깔듯이,
높이 솟은 지역은 평평하게 낮추고,
아래로 움푹 들어간 지역도 흙으로 메워서 평평하게 고속도로를 만들어서,
왕이 오시는 길이 불편하지 않도록.
그 길을 미리 준비해야 했습니다.
이사야, 40장 3절 말씀이 그것입니다.
외치는 자여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왕이신 여호와가 오시는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이 오시는 대로, 고속도로를 평탄하게 하라
골짜기마다 솟아나마, 산마다 언덕나마 낮아져서, 고루고루 평탄하게 만들어라.
이것이 이사야, 40장 3절과 4절의 말씀인 것입니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와서,
마태복음, 3장 3절에서,
그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 예언된 사람이다.
누가?
바로 세례 요한이
하나님이 오시는 대로,
하나님이 오시는 고속도로를 준비하는 광야의 외치는 소리라고 적용하고 있는 것이죠.
무슨 말입니까?
지금 세례 요한은 고속도로를 닦는 노동인부이고,
하나님이 곧 오신다.
하나님이 곧 심판하러 오신다.
임박한 심판이 도달할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허리 띠를 띠고,
죄를 자복하고,
하나님이 오시는 길을 준비하라.
하나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라.
*다시 예수님 이야기입니다.
요단 강에서 세례를 받으시자,
하늘에서 음성이 들리며,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라고 하시며,
성령이 비둘기 같이 하늘에서 임하고,
하늘이 열립니다.
하늘이 커튼이 젖혀지듯이 열리면서,
마치 하나님이 땅으로 임재하시듯이,
죄로 물든 땅,
죄악으로 가득한 땅에,
임재하시듯이,
하늘이 열리면서,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땅 아래로 내려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이 오신다.
회개하라 하나님이 오신다.
하나님이 곧 오셔서, 세상을 다스리시고 심판하실 것이다.
누가 하나님이라는 말입니까?
바로, 예수가 세례 요한이 설교하던 그 하나님이라는 말이고,
예수가 이사야, 40장 3절에서 예언된 그 하나님이라는 말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오신다.
외치는 자의 소리여,
하나님이 오시는 길을 준비하라.
그런데 하나님이 누구입니까?
13절을 보니까,
예수께서 오셨다! 예수가 하나님이다. 하나님이신 예수께서 세례 요한이 닦아놓은 길을 통해 이 땅에 심판하러 오셨다!
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얼마나 죄에 대하여 민감하십니까?
얼마나 자신의 죄를 자복하고 계십니까?
예배를 드리고,
교회를 다니고,
이런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자신의 죄를 아파하며, 애통하며, 회개하고 있느냐?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 죄를 자복하고 요단 강에서 세레를 받았는데,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은,
그저 외식하면서,
교만하고 자만심에 빠져있었던 것이죠.
그들은 항상 교만에 빠져 있어서 다른 사람들의 죄는 잘 지적했지만,
정작 자신이 얼마나 더러운지
얼마나 오염되어 있는지는 깨닫지 못했던 것이죠.
그래서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에게는
세례 요한이 뱀 새끼라고, 독사의 자식이라고 비난하고 욕을 했던 것입니다.
7절입니다.
요한이 많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세례 베푸는 데로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누가 너희에게 가짜 복음을 전하였느냐?
누가 너희에게 거짓 가르침을 전파하였느냐?
너희가 어떻게 임박한 심판을 피하겠느냐?
회개 안한다고?
회개 안하는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을 맞이할 수 있겠느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
여러분, 열매가 무엇입니까?
세례 받는 것입니다.
나는 죽고, 이제 내 자아로, 내 중심으로 살지 않는 것이 열매입니다.
*얼마나 죽어 있습니까?
내 생각, 내 감정, 내 의지가 얼마나 죽어 있습니까?
나는 없고 하나님만 있고,
나는 없고 다른 사람만 있고,
얼마나 하나님을 위해서, 타인을 위해서 살고 있습니까?
이게 회개에 합당한 열매인 것입니다.
9절에서는 독특한 언어유희가 나오는데,
히브리어로 돌이라는 단어와, 자손이라는 단어의 발음이 비슷한데,
돌은 에벤이라고 읽고,
자손은 벤이라고 읽는데,
너희가 속으로
나는 아브라함의 자손이다.
나는 아브라함의 벤이다.
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결코 착각하지 말아라.
하나님이 능히 이 에벤으로도 아브라함의 벤이 되게 하실 수 있다.
돌로도 벤이 되게 하실 수 있다는 것을.
굉장한 발음 유사함.
언어 유희를 통해 풍자하고 있는 것이죠.
이미 도끼는 나무 뿌리에 놓여 있다.
과수원을 키웠는데
3년 동안 키웠는데,
아무런 열매가 없다.
그러면 과수원 주인이 어떻게 하겠느냐?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바로 찍어서 불에 태워버릴 것이다.
*말씀을 맺습니다.
세례, 요한은 하나님이 대로, 하나님이 오시는 길을 준비하는 사람이었고,
마태는
그 하나님이 누구냐?
바로 예수 그리스도 이시다!
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를 고백하고 회개할 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더럽고 오염된 세상에 살지라도,
남과 비교하지 말고,
말씀이라는 거울 앞에 서서 자신의 죄를 보고 자복하고, 하나님 앞에서 죽을 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게 열매입니다.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여 있습니다.
이미 농부가 손에 키를 들고, 알곡과 쭉정이를 구분하여, 알곡은 창고에 보관하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지옥불에 던져넣기로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지금 누가 세례를 받습니까?
하나님이신 예수께서,
성부와 성령이 함께 하시는 가운데,
왕으로 임명 받는,
왕의 대관식이 열리게 된 것입니다.
예수를 믿고 죄를 회개하면 구원을 받는 것이요,
자신의 죄를 부인하고 끝까지 예수를 거부하는 사람에게는, 구원이 없는 것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서,
나는 얼마나 겸손한가?
내 죄에 대해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가?
말씀이라는 거울 앞에서 날마다 나를 되돌아보고 있는가?
자신의 죄를 보고 아는 사람은, 자기를 내세우지 않습니다.
자기 주장을하지 않습니다.
그저 죽어 있는 것이죠.
왜요?
하나님 앞에서 사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겸손함이 저와 여러분에게 충만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찬양합시다)
우리는 모두 죄인입니다. 그러나 이 고백이 진실되지 않은 것은, 아직도 나 자신을 정확하게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통해 내가 죄인임을 깨달을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찬양하겠습니다.
(기도합시다)
예수님은 이미 오셨고, 다시 오실 것입니다.
초림 때는 구원하러 오셨지만, 재림의 때에는 완전한 심판이 있을 것입니다.
죄를 회개하는 자에게는 천국이 보장되지만,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처럼 끝까지 예수를 거부하는 자에게는 심판만이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 내 죄를 깨닫게 해주십시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정확하게 알 수 있도록 도와 주십시오. 그래서 진심으로 회개하고 예수 믿고 천국가게 해 주십시오. 같이 기도합시다.
이제 여름엠티가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금요일부터 토요일까지 1박 2일 간 진행되는 모든 일정들 가운데 주의 지키시는 은혜와 보호하심이 충만하게 해달라고 기도합시다. 말씀 전하시는 우리 윤석우 전도사님 붙들어 주시고, 모든 일정을 준비하고 계획하고 진행하고 있는 임원들과 행사부 가운데 하나님의 크신 능력과 지혜가 충만케 해달라고, 참석하지 못하는 지체들에게도 함께 하시고, 참서거할 수 있는 마음과 환경을 허락해달라고, 여름엠티를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죄인입니다. 온갖 더러운 죄와 욕심이 가득한 죄인입니다. 순수하지 않고 거룩하지 않은 죄인입니다. 이 죄인이 주님께로 나아갑니다. 오직 주의 거룩하신 보혈로 말갛게 씻으시고, 주를 예배하는 기쁨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말씀이 기준이고 답입니다. 늘 말씀을 가까이하며, 말씀을 방패로 삼는 저와 모든 지체들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 ㄱ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인물
세례요한

교회에서 세례의 유형에 대해 설명하는 역사적인 논쟁이 있지만, 세례의 의미는 물의 사용과 상징적 변형 또는 변화의 한 가지 유형 사이의 연관성을 분명히 가리킨다. 신약에서 사용된 용어는 단순한 침수 또는 담그기의 의미적 경계를 확장한다. 각 문맥은 다양한 음영으로 용어를 명확하게 채색한다. '침례'는 이집트에서 이스라엘의 출애굽 경험을 의미할 수 있으며 십자가형의 상징으로도 나타난다(고전 10:2; 비교 눅 12:50). 이 단어는 대개 요한의 세례,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의 초기관행, 또는 위에서 언급한 은유적 사용과 관련 있다.

70인역에서, 동사βάπτω(밥토우) 대개 히브리어 טָבַל (타발), “담그다”에 대한 번역이고, 정결예식을 가리킨다 (Judith 12:7). 대안적으로, 동사βαπτίζω(밥티조)는 약간 더 미묘한 뉘앙스와 함께 네 차례 발생한다. 이사야 21:4에서 그것은 은유적으로 파괴에 사용되지만, 열왕기하 5:14에서는 중간태 (즉, 헬라어 동사체계의 한 측면)로 사용되어 나아만의 요단 강 침례를 묘사한다. “이 경우 나아만의 멸망에 대한 암시가 없기 때문에 중요하다. 나아만 이야기의βαπτίζω(밥티조)의 사용은 정화를 위한 의식적 목욕을 의미하는 이후의 용례에 결정적인 것일 수 있다” (Ysebaert, Greek Baptismal Terminology).

신약에서의 동사βαπτίζω(밥티조), “세례하다”는 식전의 정결의식 및 죄 사함 둘 다 지칭할 수 있다(눅 11:38). 마태복음 15:2과 누가복음 11:38의 유사성은βαπτίζω(밥티조)νίπτω(닙토우), “손 씻기”에 대한 일반 그리스어

Lexham 성경사전 예언적 본문의 사용

복음서에서 확인 된 바와 같이 요한의 신분은 당혹스러웠고 종종 예수 또는 엘리야와 얽혀 있었다(비교 눅 9:7–9; 마 11:1–19; 16:13–14). 그 기사들은 각자 긴장 속에 있다. 예수는 마태복음에서 세례 요한을 엘리야로 언급하지만, 요한복음에서 세례 요한은 자신이 그 선지자임을 부인한다(마 17:11–13; 요 1:19–22).

요한은 자신이 육체적으로 선지자 엘리야라는 사실을 부인하지만, 사복음서 내러티브가 그들을 서로 연관 시킨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Lexham 성경사전 예언적 본문의 사용

세례 요한에 대한 묘사는 분명히 그를 엘리야의 전통에 위치시켰다. 요한은 요단 강 근처 유대 광야에서 낙타 털옷과 가죽 띠를 한 은자로 나타난다. 그는 메뚜기와 역청을 먹었다(막 1:6; 비교 왕하 1:8). 요한과 예수처럼, 엘리야 또한 제자를 “부른다” (왕상 19:19–21). 엘리야의 승천 전에, 그와 함께 머물게 해달라는 엘리사의 간청에 대한 대답으로, 우리는 “너는 여기 머물라 여호와께서 나를 요단으로 보내시느니라”를 읽게 된다(왕하 2:6).

Lexham 성경사전 (예언적 본문의 사용)
요한은 요단 동편, 예루살렘 반대쪽에서 세례를 주었다(요 1:28). 엘리야의 예언 활동 상당 부분이 요단 동편에서 이뤄졌고, 그의 승천도 거기서 이뤄졌다 (왕상 17:5). 바벨론 포로에서 예루살렘 귀환 길에 그들은 요단 동편에 왔을 수 있다 (Webb). 요한의 세례는 상징적으로 “유배에서 귀환” 또는 “새로운 출애굽”을 의미하는 것일 수 있다(Stegemann, Webb).
Lexham 성경사전 요한과 초기 유대교의 맥락

상징적인 새로운 (영적) 출애굽으로서 요한의 세례에 대한 상기 해석은 그의 활동을 더 큰 초기 유대교 배경에서 관찰할 때 추가적인 신빙성을 얻는다. 요세푸스는 드다란 이름의 자칭 선지자의 활동을 기술하며, 그는 외관상 출애굽을 모방한 방식으로 요단 강에서 운동을 주도했다 (Josephus, Antiquities 20.5.1). 또다른 유대인 선지자는 예루살렘 포획을 위한 운동을 이끌었고, 여리고 성 붕괴 모방을 시도했다(Josephus, Antiquities, 20.8.6; Jewish War 2.13.5). 1세기 팔레스타인의 다른 선지자들은 심판의 신탁을 통해 자신들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AD 70, 티투스에 의한 예루살렘 파괴 전야에, 한 선지자는 정기적으로, “동쪽에서 한 소리, 서쪽에서 한 소리, 네 바람에서 한 소리; 백성들을 대적하는 한 소리”라고 외쳤다(Jewish War 6.5.3). 따라서 요한의 사역이, 특히 예수와의 관계에 있어서 독특하고 조형적인 궤도를 취하지만, 1세기에 일반적으로 예언적 활동은 결코 이례적이지 않았다.

Lexham 성경사전 마태복음

요한에 대한 첫 언급은 마태복음 3:1에서, 예수의 족보와 탄생 기사 후에 나타난다.

요한의 종말론이 마태복음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다—그의 세례는 사람들에게 회개하거나 아니면 “임박한 심판”을 맞을 것을 요구한다. 마태복음 3:14에서, 요한은 예수께서 자신에게 세례 받는 것을 막고자 했으나, 예수는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고 답하신다. 요한은 체포 되고, 마태복음 11:3에서 우리는 그가 예수의 메시아 신분에 대해 불확신한 것을 볼 수 있다. 그는 자신의 제자들을 예수께 보내,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라고 묻는다. 예수는,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못 듣는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고 답하신다(마 11:5).

예수는 사람들에게 그들이 요한에게 찾아가는 의도에 대해 질문한다: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마 11:7). 이 질문의 함의는 요한이 이스라엘 다른 어느 곳에서도 없는 그 무엇을 제공했다는 것에 대한 확증이다. 요한은 마태복음 14:10에서 참수 된다.

Lexham 성경사전 (정치적 측면)
요한의 세례에 대한 전통적 이해—마가복음에 따르면 “죄 사람을 위한”—는 다른 곳에서는 얻을 수 없는 어떤 것에 대한 제공이 분명하다. 정결예식은 지리적으로 제한적이지 않았다; 이론상 그것은 어느 곳에서든 일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죄 사함은, 예루살렘 성전과 엮인 것이다. 요한의 세례는 기존 성전과 대립각을 이루는 것이었다. 세례 요한과 기성 선전 간의 대립은, 그가 제사장 가문 출신이고 성전이 아닌 광야에서 의식을 행했기에, 추가로 강화되었을 수 있다
바리새인, 사두개인
Lexham 성경사전 바리새파

바리새파(Φαρισαῖος, 파리사이오스). 모세 율법에 따라 엄격한 경건생활을 수행한 유대 정당의 당원들이었다. 바리새파 사람들은 초기 유대교 내부에서 나온 종파로서 약 BC 150년경 활동하기 시작했고, 약 AD 135년경 랍비 운동때 별개의 정당으로 분리됐다.

Lexham 성경사전 마태복음

마태의 이야기는 바리새파에게 경멸을 표한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마태복음에는 마가가 바리새파를 대하는 많은 이야기가 포함되며, 이를 더 확대해 말한다. 예를 들어, 마태는 세례자 요한의 사역에서, 요한이 세례를 받으러 온 바리새파와 사두개파 사람들에게 한 말을 유일하게 기록했다.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지노를 피하라 하더냐"(마 3:7). 마태복음서의 결론에 가까운 예수의 말에는 위의 언어가 반영돼 있다"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마 23:33). 마태복음에서는 일부 바리새파의 신앙과 실천이 예수의 참된 의로움을 드러내기 위한 역할을 하도록 사용된 듯 하다.

예수는 바리새파 사람들이 경건하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진정한 의로움이란 단지 외식하는 형태의 의와 반대되는 내적인 성질의 것이라고 말한다. 예를 들어 산상설교(마 5:1–7:29)에서 예수는 자신을 따르는 이들에게 진정한 제자가 되려면 바리새파 사람보다 더 의로움을 증명해내야 한다고 경고하면서(마 5:20), 외식하는 의로움은 진정한 내적 의로움이 상실된 것이라고 제시한다. 바리새파는 예수가 형성한 긴장에 반대하며 분개한다(마 15:1–20, 특히 15:12). 예수는 자신을 따르는 이들에게 바리새파가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그들의 행위는 본받지 말라고 말한다(마 23:2–3).

이어지는 담론에서, 바리새파 사람들의 관행을 비판하는 예수의 말들이 이어진다. 다음과 같다.

• 바리새파는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한다. 예를 ㄹ들어 경문 띠를 넓게 하거나 옷술을 길게 한다(마 23:5)

• 회당의 높은 자리를 요구한다(마 23:6)

• 구별된 호칭을 요구한다(마 23:7)

마태복음 23:8–12에서 예수는 다른 경건의 모형을 제시하며 이런 관행들을 모두 뿌리뽑는다. 예수는 바리새파 사람들에게 일련의 "분노"의 진술을 늘어놓는다.

• 예수는 사람을 모집하려는 그들의 관행을(마 23:15), 맹세하는 짓을 (마 23:16), 십일조 행위를(마 23:23) 규탄한다.

• 예수는 그들이 율법의 더 중요한 면은 무시하면서 사소한 것들을 강조하는 모습을 비판한다(마 23:23–24)

• 예수는 그들이 내면에는 헛된 것들로 사로잡혀 있으면서 겉으로는 거룩한 채 한다고 고발한다(마 23:25–28).

Lexham 성경사전 사두개인

사두개인(Σαδδουκαῖος, 사두카이오스)이다. 헬레니즘 시대(하스몬)와 로마 시대, 주요 세가지 유대 사상 학파 중 하나이다. 사두개인의 저술이 더는 존재하지 않으며, 사두개 운동 외부의 빈약한 텍스트에 의존해 재구성한 것이 전부다. 이전 세대들의 구전 전통 외에는 사두개인이 성경에 대한 최고 권위를 가졌다. 사두개인들은 부활과 숙명의 존재를 부인했다.

사두개인(-人, Sadducees) B.C. 2세기경 하스모니안 왕조 때 사독의 후예임을 자처하는 다수 제사장들에 의해 형성된 유대교의 당파 중 하나. 종교와 정치의 구심점이라 할 수 있는 대제사장을 중심으로 귀족들의 권익을 대변하는 일종의 정치 집단이었다. 따라서 이들은 철저히 현실주의자들이었다. 동시에 종교적으로 보수적이고 로마 정부에 대해 비판적이며 대중들의 인기를 한몸에 받았던 바리새파와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었다. 사두개인은 성문화된 율법(모세 오경)만을 받아들이고 구전(장로의 전승)은 거부하였으며, 부활이나 천사나 영생, 영혼 등을 믿지 않았다(막 12:18; 눅 20:27; 행 23:8).

사두개파는 유대 정치의 중심에서 중요한 권력 핵심 세력이었으며, 현 체제 유지를 긍정하는 종교 지도층에 속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사두개파는 종교와 정치가 분리될 수 없었던 주후 1세기 유대교 내에서 종교적-정치적 '정당'으로 지칭하는 것이 가장 적절합니다.
두개파는 신약에서 공관복음과 사도행전에만 언급되어 있습니다. 마가복음에 한 번 등장하는데, 부활 교리를 반박하려는 수수께끼를 가지고 예루살렘에 있는 예수님께 다가갑니다. 예수님은 부활을 확증하고 그들이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한다고 비난하며 대응합니다(막 12:18-27 // 마 22:23-33; 눅 20:27-38).’
마태복음만이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을 나란히 놓고 예수님을 반대하고 있습니다. *세례 요한은 두 그룹을 모두 "독사의 무리"라고 부르며 다가올 *심판에 대해 경고합니다(마 3:7-10).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누룩"(마 16:6, 11, 12)에 대해 반복해서 경고하셨는데, 이는 아마도 그들의 교만과 위선이 스며든 영향에 대한 언급일 것입니다.
예수의 죽음과 부활이 이스라엘의 염원인 회복을 시작했다는 사도들의 메시지는 이스라엘의 권위가 로마 당국과 정치적 현상에 의존하고 있던 사두개파에게 위협적인 것이었습니다. 사도행전 5장 17절에서 대제사장은 "대제사장과 그의 모든 동료"를 "사두개파 당원"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사두개파가 예루살렘의 제사장 귀족의 일부였다는 가장 좋은 증거입니다. 갈릴리에서 예수의 주요 반대자는 서기관과 바리새인이었던 반면, 예루살렘에서 초대 교회는 사두개파와 나머지 제사장 지도자들의 가장 큰 반대에 직면했습니다.
다양한 출처를 비교하면 사두개파는 유대 제사장 귀족 상류층 사이에서 하스모니아 시대에 발생한 종교적-정치적 정당이라는 대략적인 초상화를 그릴 수 있습니다. 그들은 제사장직과 산헤드린 내에서 상당한 권력과 영향력을 가졌습니다. 적어도 두 명의 대제사장(행 5:17; 요세푸스, Ant. 20.199)과 다른 대제사장들도 사두개파 출신이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들은 주요 라이벌인 바리새파와 권력을 놓고 경쟁했지만, 일반 민중들 사이에서는 그다지 인기가 없었습니다(모든 곳의 부유한 엘리트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일반적인 유대 귀족과 마찬가지로 그들은 정치적으로 보수적이었고 친로마적이었으며, 자신의 지위와 권위를 유지하기 위해 현상 유지를 지지했습니다. 당시 대부분의 상류층 유대인과 마찬가지로 그들은 아마도 평균적인 유대인보다 더 헬레니즘화되었을 것이지만,이 점은 출처에서 강조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신앙과 관련하여 사두개인들은 자유 의지를 믿었고 부활과 최후의 심판을 부인했습니다. 그들은 바리새인들의 구전 전통을 모세의 기록된 율법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거부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모세의 율법"이 오경을 가리키는지 아니면 히브리어 성경 전체(선지서와 서신서)를 가리키는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만약 사두개파가 오경만을 전적으로 권위 있는 것으로 받아들였다면, 히브리어 성경의 후반부에만 명시적으로 가르치는 영혼 불멸과 죽은 자의 부활을 부인하는 등 그들의 독특한 교리 중 일부를 설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단 12:2-3 참조).
이사야, 40장 3절
40:3은 하나님의 백성이 모든 육체가 하나님을 만날 때를 위해 적절한 준비를 하도록 격려합니다(40:5; 비슷한 주제가 62:10-11에 있습니다). 준비의 과정은 곧 위대한 황제가 오실 것이므로 도로를 보수하라는 왕의 칙령에 비유하여 설명됩니다. 청중은 도로의 높고 낮은 부분을 평평하게 하고 거친 부분을 매끄럽게 하여 "길을 준비"하고 "곧게"(둘 다 명령형 동사) 하나님을 위한 고속도로를 만들라는 권고를 받습니다.
이 권고를 문자 그대로 이해해서는 안 되는데, 그 누구도 하나님의 길이 물리적 장애물에 의해 방해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선지자들은 그들의 메시지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기 때문에 "목소리"였습니다. 그들은 국가가 그분과의 올바른 관계로 돌아가도록 부르고 있었습니다. 복음서 기자들은 이사야 40:3을 세례 요한에게 적용했습니다(마 3:1-4, 막 1:1-4, 눅 1:76-78, 요 1:23).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길을 예비하고 광야에서 그분을 위한 고속도로를 만든 사막의 선지자였습니다(참조, 마 3:3). 그러나 여기 이사야서에서는 온 나라가 영적인 광야에 있었고, 이스라엘 백성 각자는 주님의 임재와 그분의 영광을 위해 영적으로 준비해야 했습니다.
골짜기를 높이고 산을 낮춘다는 것은 고관대작이 한 지역을 방문할 때 이동할 길을 평평하게 하거나 평탄하게 만드는 일을 과장되게 표현한 것입니다. 오늘날에는 "레드 카펫을 깔다"라는 표현이 이에 해당합니다. 이사야 시대에 이사야는 주님께서 이스라엘에 오셔서 통치하실 수 있도록 이스라엘을 "평탄하게" 하라고 부르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들일 수 있게 준비하라.
묵상
유대교는 ‘자기들이 생각했던 천국’이 자기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은, 당연히 자신이 천국에 들어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다.
세례 요한은, 아니라고 말했다.
그들은 자신의 종교와 천국을 동일시했다.
그러나 ‘회개의 열매’를 맺지 않는 사람은 천국 백성이 아니다.
회개의 열매란 무엇인가?
회개의 열매를 맺어야 천국 백성이다.
성경에서 ‘열매’맺는 자는 누구인가?
마태복음에서 ‘천국에 합당한 자’는 누구인가?
예수의 제자
예수를 따르는 자.
예수를 믿는 자.
예수를 믿는 세리와 이방인, 죄인, 창녀들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지 않고, ‘자기 의’를 믿는 사람들은, 천국 백성이라고 할 수 없다.
시간이 갈수록, 자기 의는 작아지고, 예수 그리스도의 의가 커져야 한다.
우리는 이미 ‘예수님의 사람’이다.
그리고 우리가 앞으로 ‘예수님의 사람답게’ 변화되어갈 것이다.
개요
왕의 길을 준비하는 자는 누구인가?
세례 요한 vs 바리새인과 사두개인
왕이 하실 일은 무엇인가?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푸실 것
알곡은 모으시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실 것
왕이 준비된 길을 따라서 오심. (왕의 즉위식 / 왕의 세례식)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심
성부께서 공인하시고, 성령께서 내려오셔서 예수 위에 임하심
16절
하늘이 열렸습니다. 하늘은 하나님의 계시를 위해 열릴 수 있습니다(겔 1:1). 비둘기. 비둘기는 고대 자료에서 다양한 상징적 기능을 수행했는데, 아마도 유대인 청중에게 가장 널리 퍼져 있고 관련성이 높은 것은 창 8:8-12에 나오는 새로운 세계의 선구자로서의 비둘기의 역할일 것입니다.
Genesis 8:8–12 NKRV
그가 또 비둘기를 내놓아 지면에서 물이 줄어들었는지를 알고자 하매 온 지면에 물이 있으므로 비둘기가 발 붙일 곳을 찾지 못하고 방주로 돌아와 그에게로 오는지라 그가 손을 내밀어 방주 안 자기에게로 받아들이고 또 칠 일을 기다려 다시 비둘기를 방주에서 내놓으매 저녁때에 비둘기가 그에게로 돌아왔는데 그 입에 감람나무 새 잎사귀가 있는지라 이에 노아가 땅에 물이 줄어든 줄을 알았으며 또 칠 일을 기다려 비둘기를 내놓으매 다시는 그에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더라
옛 세상은 지나가고, 세 세상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역할을 했음.
하늘이 갑자기 열리고 ... 하나님의 영이 강림하고 ... 하늘에서 소리가 나니 (3:16-17). 하늘의 보이지 않는 문이 열린 것은 하늘 위에 계시는 하나님(계 4:1 참조)의 면전으로 들어가는 문으로 생각했습니다. 이 경우 문이 열리고 하나님의 영이 지상에 임하여 선지자로부터 방금 세례를 받은 예수님에게 기름을 부으십니다. 하늘의 음성은 성경을 인용하여 예수님이 하나님의 "기름 부음 받은 자"(메시아)임을 확인시켜 줍니다(이 경우 시 2:7과 사 42:1의 합성어).
하늘의 문이 열린 것이다.
하늘의 문이 열려서, 성령께서 지상에 임재하시고, 이제 사람도 하늘로 통할 수 있게 되었다.
마태복음은 예수님의 세례 자체보다는 그 직후에 일어난 일을 묘사합니다. 예수님이 강에서 올라오실 때 하나님은 두 가지 방법으로 예수님에게 승인 도장을 찍어 주십니다. 첫째, 성령이 "비둘기처럼" 내려오셨는데, 이는 실제 새가 나타나지 않았지만 성령의 어떤 가시적인 현현이 관찰자들로 하여금 하나님이 창조를 관장하고(창 1:2 참조), 평화를 주시고(창 8:10), 7-12절의 심판과 대조되는 온유함 또는 "신성한 생명 자체의 사랑스러운 성품"과 같이 비둘기와 정기적으로 관련된 속성을 통해 자신을 계시하고 있음을 인식하도록 이끌었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두 번째 승인 신호는 "하늘에서 들려오는 음성"입니다. 하늘의 음성은 종종 히브리어 바스 쿌("음성의 딸")이라는 개념과 연결되는데, 이는 성전 시대의 유대인들이 예언이 중단된 후 하나님께서 자신들과 대화하셨다고 믿었던 방식입니다. 이 목소리는 이스라엘과의 신성한 소통이 재개되고 있다는 신호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성령이 비둘기처럼 내려오심
하늘에서 음성이 들려옴
예수님의 세례식을 통해, 성령의 역사와 하늘의 음성이 들리기 시작함.
잊혀졌던 성령 사역과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음.
3:16 세례의 행위는 내레이션으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대신 예수님이 물에서 나오신 직후에 일어나는 일로 초점이 이동합니다. 주의를 끄는 "보라"는 하늘이 열리는 장면에 초점을 맞춥니다. 그런 다음 예수님은 비둘기처럼 하나님의 영이 자신에게 내려오는 것을 봅니다.
랍비 전통에 따르면, 예언이 중단된 이후로 하나님은 때때로 하늘에서 들려오는 음성으로만 말씀하셨는데, 그들은 그것을 바욧콜("음성의 딸", 즉 "선지자들을 통해 말씀하신 성령의 메아리"; 참조, Str.-B. 1권, 125-34쪽) 이라고 불렀습니다.
그가 약속된 메시아 왕일 뿐만 아니라 고난 받는 종의 역할을 맡음으로써 사역을 완수할 것임을 나타냅니다.
온 나라가 기대감으로 들썩였습니다.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수백 명의 유대인들이 요한을 따라 요단강 물속으로 들어가 국가적, 개인적 죄를 고백하고 그들을 정결케 하시고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게 만들어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하는 전례 없는 발걸음을 내딛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에스라 시대 이후, 아니 어쩌면 그 이전에도 이처럼 국가가 하나님께로 향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본문
1 그 때에 세례 요한이 이르러 유대 광야에서 전파하여 말하되
2 회개하라 천국가까이 왔느니라 하였으니
3 그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말씀하신 자라 일렀으되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가 오실 길을 곧게 하라 하였느니라
4 이 요한은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음식은 메뚜기와 석청이었더라
5 이 때에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요단 강 사방에서 다 그에게 나아와
6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 요단 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니
7 요한이 많은 바리새인들과 사두 개인들이 세례 베푸는 데로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8 그러므로 회개합당한 열매를 맺고
9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10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11 나는 너희로 회개하게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12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13 이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로부터 요단 강에 이르러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려 하시니
14 요한이 말려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서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15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시니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
16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17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등장인물의 “대화”를 통해 등장인물의 “성격”을 묘사하고 있다.
세례 요한 :
바리새인과 사두개인 : 이들은 죄인들과 자신을 동일시 하지 않는다.
“난 죄가 없는데?”
예수 그리스도 : 예수 그리스도는 죄인들과 자신을 동일하신다.
“내가 너희들과 함께 할게.”
진정한 종교인은, 자신을 위하는 사람이 아니라, 타인을 위하는 사람이다.
‘온다’는 이미지
세례 요한 :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
무리들이 나아옴 : 그들은 회개하고 세례를 받음
바리새인들이 나아옴 : 그들은 회개하지도 않았고 세례를 받지도 않았음
예수님이 나아오심 :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데도 세례를 받으심
성령께서 오심 : 예수님이 세례 받으실 때 성령께서 가까이 오심
결국, 예수님을 통해 천국이 가까이 오게 되었음.
무리들과 바리새인들은 천국을 가까이 오게 하지 못함.
하나님이 오시는 대로를 준비하는 사람은,
당연히 종교지도자들이어야 했음
그런데 종교지도자들은 회개의 열매도 없었고, 오히려 세례 요한이 하나님이 오시는 길을 준비하였음.
온다고 하니까, 사람들이 기대하였을 것임.
2절, 7-12절 “세례 요한의 말”
14절 “세례 요한의 말”
15절 “예수님의 말”
17절 “성부의 말씀”
삶의 적용 주석
1 살던 시절을 느슨하게 지칭합니다. 그러나 요셉이 어린 예수와 마리아를 데리고 이집트에서 이스라엘로 돌아온 후 28년에서 30년이 지났습니다. 그는 유대에 정착하지 않고 북쪽으로 이동하여 갈릴리와 나사렛 도시로 향했습니다.
유대 광야(사해 서쪽의 험준한 땅)에서 중요한 사건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세례 요한이 설교하러 온 것입니다.
Joel 2:28–29 NKRV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그 때에 내가 또 내 영을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Malachi 3:1 NKRV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준비할 것이요 또 너희가 구하는 바 주가 갑자기 그의 성전에 임하시리니 곧 너희가 사모하는 바 언약의 사자가 임하실 것이라
Malachi 4:5 NKRV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마태는 요한을 오실 왕, 메시아에 대한 소식을 선포하는 전령으로 묘사했습니다. "세례자"라는 칭호는 이 요한을 같은 이름을 가진 다른 많은 사람들과 구별해 주었는데, 세례는 그의 사역에서 중요한 부분이었기 때문입니다(3:6).
2 요한은 사람들에게 회개, 즉 죄에서 돌이켜 하나님께로 향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진정으로 회개하려면 두 가지를 모두 행해야 합니다.
스스로를 이미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여겼던 유대인들에게 회개는 급진적인 개념이었습니다. 구약성경에서 "회개"는 하나님과의 언약을 어긴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급진적으로 돌아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요한은 이 단어를 이런 식으로 사용했습니다.
왜 이렇게 급진적인 회개가 필요했을까요? 천국이 도래했기 때문입니다.
태복음에만 하나님의 나라를 언급하는 구절이 50번 등장하며, "천국"이라는 구절은 33번 등장합니다.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는 신자들의 마음속에서 다스리시지만, 천국은 세상의 모든 악이 심판받고 제거될 때까지 완전히 실현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먼저 고난 받는 종으로 이 땅에 오셨고, 온 땅을 승리로 다스리기 위해 왕과 심판자로 다시 오실 것입니다.
하나님께로 향하는 첫 번째 단계는 요한이 촉구한 대로 자신의 죄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받아주시고 그분이 원하시는 방식으로 살도록 도와주실 것입니다.
3 이사야는 유배자들을 바벨론에서 고향으로 데려오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기록했습니다. 또한 메시아의 오심과 그 오심을 선포할 사람인 세례 요한에 대해서도 기록했습니다(이사야 40:3).
Isaiah 40:3 NKRV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
요한은 이사야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에게 죄를 고백하고 하나님을 위해 살 것을 촉구한 선지자였습니다. 두 선지자 모두 회개의 메시지는 하나님의 사랑의 치유와 용서를 구하는 사람들에게는 좋은 소식이지만, 듣기를 거부하여 유일한 희망을 끊어버린 사람들에게는 끔찍한 소식이라고 가르쳤습니다.
이 그림은 고대 중동의 관습에서 유래한 것으로, 왕이 행차할 때 신하들을 앞서 보내 길을 평평하게 하고 정리하여 통행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왕과 메시아를 간절히 기다리기 위해 마음을 준비해야 했습니다. 이 동사들은 명령형으로 되어 있어 요한은 군사 장군이 명령을 내릴 때처럼 주저 없이 즉시 순종하라는 의미로 말했습니다. 요한을 하나님의 참된 선지자로 받아들인 사람들은 이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해하고 자신을 낮추고 회개하며 세례를 받고 메시아가 자신의 삶을 붙잡을 수 있는 '길'을 열었습니다.
이사야가 "광야"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은 이스라엘 자손이 이집트에서 가나안으로 출애굽할 때 겪었던 광야의 경험을 암시합니다. 광야는 하나님께서 다시 한 번 그의 백성을 구출하고 그분과 교제하기 위해 행동하실 장소를 상징합니다.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짐처럼 여기는 율법 문자주의자들이었고, 사두개인들은 구약의 많은 부분을 부인하는 "자유주의자들"이었습니다(행 23:8 참조).
바리새인들은 세례 요한과 예수님에 의해 세 번이나 "독사의 새끼" 라고 불렸습니다(12:34, 23:33). 사탄은 뱀이며, 이들은 사탄의 자녀들입니다(요한복음 8:44). 바리새인들은 그리스도의 적이었고 마태복음에 자주 등장합니다. 16:1과 22:23, 34에서 그들이 다시 연합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아브라함과의 인간적 관계에 의존하여 구원을 기대했습니다(롬 9:6ff갈 3:7 참조). 요한복음 3장에 나오는 니고데모처럼 그들은 거듭나야 한다는 진리에 걸려 넘어졌습니다. 열매가 뿌리를 결정하기 때문에(8절) 하나님은 우리 삶의 뿌리에 도달하십니다(10절).
예수님과 요한 (13-15절). 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이 세례를 받으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여섯 가지 이유를 제시합니다: 1. 목적 - "모든 의를 이루기 위해"(참조, 요한복음 8:29). 2. 성별 - 구약의 제사장은 씻음을 받은 후 기름을 부었습니다. 예수님은 물세례에 몸을 순종하셨고 성령은 비둘기처럼 임하셨습니다. 출 29장 참조. 3. 승인-예수님은 요한의 사역을 승인하셨고, 따라서 백성들은 요한의 말을 듣고 순종할 의무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종교 지도자들은 요한의 세례를 거부했습니다(21:23-27). 4. 선언 - 이것은 요한이 유대 민족에게 예수님을 공식적으로 소개한 것입니다. 요한복음 1:31을 참조하세요. 5. 예표 - 이 물세례는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고난의 세례를 받으실 예수님을 내다보는 것이었습니다(눅 12:50). 예수님은 갈보리에서 희생적인 죽음을 통해 모든 의를 성취하셨습니다. 6. 동일시 - 예수님은 죄 많은 사람들과 자신을 동일시하셨습니다. 그 직후 성령께서 그분을 광야로 이끄셨습니다. 여기에는 민족의 죄를 상징적으로 광야로 옮긴 "희생양"의 그림이 있을 수 있습니다(레 16:1-10).
예수님과 성령(16절).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식별하기 위해 요한에게 주기로 약속하신 표징이었습니다(요 1:31-34).
John 1:33–34 NKRV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베풀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는 이인 줄 알라 하셨기에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언하였노라 하니라
예수님과 아버지(17절).
이것은 아버지께서 하늘에서 아들에게 말씀하신 세 번의 경우 중 첫 번째입니다(마 17:5요 12:28 참조). 아들은 세례를 받고, 성령은 비둘기처럼 내려오며, 아버지는 하늘에서 말씀하시는 삼위일체가 여기에 계시되어 있습니다. 아들은 사역을 시작하면서 아버지로부터 인정을 받으셨고, 십자가에 다가갈 때(17:5) 다시 한 번 그 칭찬을 받으셨습니다.
Matthew 17:5 NKRV
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시는지라
문학적 개요
마태복음 3장의 문학적 특징과 반복되는 단어를 강조하는 개요를 소개합니다: 제목: 세례 요한의 사역과 예수님의 세례 I. 세례 요한의 소개(마태복음 3:1-6) 문학적 특징: 대화(요한의 설교와 회개의 메시지) 요한의 모습과 생활 방식에 대한 묘사 반복되는 단어: "회개"(마태복음 3:2, 6) II. 세례와 회개(마태복음 3:7-10) 문학적 특징: 대화(바리새인과 사두개인에 대한 요한의 책망) 설교와 같은 구조(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는 요한의 부르심과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경고) 반복되는 단어: "회개"(마태복음 3:2, 8, 11) "열매"(마태복음 3:8, 10)
III. 예수님의 세례 (마태복음 3:11-17) 문학적 특징: 대화(예수의 우월성에 대한 요한의 인정) 세례 장면에 대한 설명(요한의 세례에 대한 예수의 복종) 신현(성령의 강림과 하늘로부터의 음성) 반복되는 단어: "세례"(마태복음 3:11, 13, 14) "성령"(마태 3:11, 16) "천국"(마태 3:16, 17) "아들"(마태복음 3:17) IV. 인물 대조 (마태복음 3:7-12) 문학적 특징: 대화(요한의 겸손과 진정성 대 종교 지도자들의 위선) 반복되는 단어: "독사의 무리"(마태복음 3:7) "도끼"와 "나무"(마태복음 3:10) V. 메시아의 사역에 대한 예표 (마태복음 3:11-12) 문학적 특징: 예언적 언어(예수님의 큰 세례와 메시아적 심판에 대한 요한의 예언) 반복되는 단어: "세례"(마태복음 3:11) "불"(마태복음 3:11, 12) VI. 결론 (마태복음 3:13-17) 문학적 특징: 대화(요한에 의한 예수의 세례) 신격화(예수님을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아버지의 확증) 반복되는 단어: "세례"(마태복음 3:13, 14, 15) Translated with DeepL
주석3
예수에 앞서 사역한 요한에게는 ‘세례자(the Baptist)’라고 하는 별명이 붙여졌다. 세례를 베푼다는 것이 현대의 성도들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기독교 의식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지만, 당시로서는 매우 특이한 일이었다. 당시로서는 종교 의식과 관련하여 씻는 것은 결례 의식을 따라 씻는 것과, 이방인이 유대교로 개종할 때 씻는 것이 있었으나 이는 모두 스스로 씻는 것이었다. 누구도 다른 사람에게 세례를 베풀지 않았으며, 또 타인의 회개에 대해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았다. 따라서 회개를 강력히 촉구하며 세례를 베푼 요한의 사역은 한마디로 새롭고도 충격적인 것이었다.
세례 요한이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심판의 임박성을 경고하며 즉각적인 회개를 촉구한 것은, 요한 자신이 메시야의 길을 예비해야 하는 자신의 사명을 분명히 인식했기 때문이다. 요한은 자신이 베푸는 물의 세례(Baptism with water)와,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베푸실 성령과 불의 세례(Baptism with the Holy Spirit and fire)를 대비 시킴으로써, 자신에게 쏠리는 관심을 그리스도께로 돌렸다. 결국 요한의 사역은 물세례를 베풂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회개케 하므로 그리스도를 맞을 마음의 준비를 시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회개를 통해 준비된 심령만이 그리스 도께서 오실 때에 심판을 면하고 성령의 죄씻음의 은혜를 받을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틴데일
틴데일 신약주석 마태복음 1) 세례 요한의 사역(3:1–12)

임박한 하나님의 심판과 ‘더 위대하신 이’의 오심에 대한 선포

틴데일 신약주석 마태복음 1) 세례 요한의 사역(3:1–12)

요한의 사역은 예수님의 사역보다 더 상세하게 요세푸스의 문헌(Ant. xviii 116–119)에 기록되어져 있다.

틴데일 신약주석 마태복음 1) 세례 요한의 사역(3:1–12)

러나 마태에게 있어서 요한의 중요성은 단지 예수님에 대한 그의 관계에 놓여있고, 요한에 대한 마태의 설명은 연관성을 강조하고 있다(참조, 2절). 마태복음에서 요한이 언급되는 곳은 어디든지 그것은 예수님의 사역에 대한 조명을 위해서 그렇게 된 것이다. 여기서 요한의 설교는 예수님의 사역을 위한 길을 예비하는 것이고, 예수님의 사역의 시작을 위한 배경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틴데일 신약주석 마태복음 1) 세례 요한의 사역(3:1–12)

대의 전기 작가는 자신의 주인공의 삶의 상당한 분량을 그런 식으로 침묵하며 건너뛰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마태는 서둘러서 의도적으로 자신이 진정으로 말하려는 주제인 메시아의 생애, 죽음, 부활로 거침없이 나아간다.

틴데일 신약주석 마태복음 1) 세례 요한의 사역(3:1–12)

그의 종말론적 설교(참조, 8절과 11절)와 세례뿐만 아니라(참조, 6절) 그의 금욕적인 삶은 어떤 학자들에게 그가 쿰란 공동체의 회원으로서 성장했음을 시사하는 것으로 보였다(참조, 눅 1:80).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이것은 추측 이상의 것을 의미할 수 없다), 세례 요한은 그가 선지자적인 사역을 감당할 즈음에는 쿰란으로부터 분리되어졌음을 의미한다.

틴데일 신약주석 마태복음 1) 세례 요한의 사역(3:1–12)

그의 종말론적 설교(참조, 8절과 11절)와 세례뿐만 아니라(참조, 6절) 그의 금욕적인 삶은 어떤 학자들에게 그가 쿰란 공동체의 회원으로서 성장했음을 시사하는 것으로 보였다(참조, 눅 1:80).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이것은 추측 이상의 것을 의미할 수 없다), 세례 요한은 그가 선지자적인 사역을 감당할 즈음에는 쿰란으로부터 분리되어졌음을 의미한다.

틴데일 신약주석 마태복음 1) 세례 요한의 사역(3:1–12)

마태는 (홀로) 세례 요한의 설교를 예수님의 설교와 같은 단어들로 요약하고 있다(4:17; 참조, 10:7; 예수님의 제자들의 설교). 또 다른 유사성에 관해서는 3:7, 8, 9, 10, 12 등을 보라. 그러므로 마태에게 있어서 요한은 예수님의 경쟁상대가 아니라 같은 메시지를 전하는 설교자이다.

틴데일 신약주석 마태복음 1) 세례 요한의 사역(3:1–12)

이 단어는 구약성경 선지자들이 빈번히 이스라엘로 하여금 그들의 반역을 버리고 언약적 순종으로 회개함으로써 하나님께 ‘돌아가라’로 외쳤던 것을 생각나게 한다.

회개 : 반역을 버리고 언약적 순종으로 돌아오라!
틴데일 신약주석 마태복음 1) 세례 요한의 사역(3:1–12)

이사야가 사용한 표현인 ‘하나님의 대로’라는 표현대신 마태에서 사용된 ‘주의 길’이라는 표현은 독자들로 하여금 ‘주’를 예수님으로 인식하게 만든다. 바로 이 예가 마태복음에서(그리고 신약성경 전체에서) 구약성경의 하나님의 오심에 대한 본문들이 예수님 안에서 성취된 것으로 이해되는 본문이다

구약에서 “여호와께서 오신다” 라고 되어 있는데, 그것이 “예수가 오심”으로 성취되었다.
틴데일 신약주석 마태복음 1) 세례 요한의 사역(3:1–12)

세례 요한의 금욕적인 의복은 엘리야를 모델로 하고 있는데(왕하 1:8) 세례 요한은 엘리야의 갑작스러운 등장, 독신생활, 타협하지 않는 메시지, 그리고 궁극적으로 ‘왕’과 그의 아내와 충돌한 것까지 엘리야의 모습을 닮아 있다.

워드 플레이
"이 돌들에서 아브라함을 위하여 자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마 3:9, LEB)
이 말장난은 그리스어 용어가 아니라 히브리어 명사 "돌"(τῶν λίθων 툰 리톤)과 "자녀"(τέκνα 테크나)의 번역을 기반으로 합니다. 히브리어로 번역하면 명사 '돌'(τῶν λίθων 톤 리톤)은 '돌'(אֶבֶן, ʾeben)이 되고, 명사 '자녀'(τέκνα 텍나)는 '아들'(בֵּן, bn)이 됩니다. 히브리어에서는 명사 '돌'(אֶבֶן, ʾeben)과 명사 '아들'(בֵּן, bn) 사이에 소리와 철자가 유사합니다. 두 명사가 복수인 경우, '돌'(אֲבָנִים, ʾăbānîm)과 '아이들'(בָּנִים, bnym) '아이들'은 자음과 모음이 같기 때문에 매우 유사하게 들립니다.
마태복음 3:10 πᾶν οὖν δένδρον μὴ ποιοῦν καρπὸν καλὸν ἐκκόπτεται "그러므로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마다 찍히느니라"(마 3:10, LEB) "모든"(πᾶν pan)에 사용된 자음이 "그러므로"(οὖν oun)에서 반복됨으로써 운율이 만들어집니다. 그 밖에도 Alliteration에 관련된 단어와 구는 다음과 같습니다: - "생산"(ποιοῦν 포이오운) - "나무"(δένδρον 덴드론) - "좋은"(καλὸν 칼론) - "과일"(καρπὸν 카르폰) - "잘리다"(ἐκκόπτεται 에크 옵 테타이) 자음 πᾶν οὖν δένδρον μὴ ποιοῦν καρπὸν καλὸν ἐκκόπτεται "그러므로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히느니라"(마 3:10, LEB) "그러므로"(οὖν oun)에 사용된 모음이 "생산하다"(ποιοῦν poioun)에서 반복됨으로써 자음이 만들어집니다. 자음과 관련된 다른 단어와 구는 다음과 같습니다: - "나무"(δένδρον 덴드론) - "과일"(καρπὸν 카르폰) - "좋은"(καλὸν 칼론)
마태복음 3:11
πνεύματι ἁγίῳ καὶ πυρί⸃-
"성령과 불"(마 3:11, LEB)
비슷한 소리를 내는 단어 "성령"(πνεύματι ἁγίῳ 뉴마티 하기오)과 "불"(πυρί 피리)이 결합하여 하나의 아이디어 또는 개념을 만들어냅니다. 소리의 유사성과 개념의 결합이 헨디아디스를 만들어냅니다.
마태복음 3:14
Ἐγὼ χρείαν ἔχω
"나는 필요하다"(마 3:14, LEB)
"나는 필요하다"(χρείαν 크레이아)에 사용된 자음이 "나는 필요하다"(ἔχω 에코)에서 반복됨으로 인해 모든음이 만들어집니다.
자음
Ἐγὼ χρείαν ἔχω
"나는 필요하다"(마 3:14, LEB)
자음은 "필요해"(Ἐγὼ 에고)에 사용된 모음이 "필요해"(χρείαν 크레이안)에서 반복되어 만들어집니다.
자음에 관련된 다른 단어와 구는 다음과 같습니다:
- "필요해요"(ἔχω 에고)
개요
I. 요한이 많은 무리를 대상으로 사역하다(3:1-12) A. 요한이 설교하는 내용 (3:1-4) 1. 그의 메시지 (3:1-3) a. 선포된 내용(3:1-2):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b. 예언대로 (3:3): 선지자 이사야는 약 700년 전에 요한의 사역과 메시지를 예언했습니다(사 40:3). 2. 그의 겉옷(3:4): 그는 낙타 털로 만든 옷과 가죽 띠를 두르고 메뚜기와 야생 꿀을 먹습니다. B. 요한이 설교하는 대상(3:5-10) 1. 이스라엘 백성에게(3:5-6): 많은 사람들이 그의 메시지를 받아들이고 죄를 회개하고 세례를 받습니다. 2.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들에게 (3:7-10) a. 이 악한 자들에 대한 요한의 묘사 (3:7): 그는 그들을 독사 새끼라고 표현합니다! b. 요한이 지도자들에게 요구하는 것(3:8-10): 그는 그들에게 진정으로 회개하고 선한 일을 행하지 않으면 멸망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C. 요한이 설교하는 대상(3:11-12): 그는 메시아의 오심을 위한 길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II. 메시아를 섬기는 요한 (3:13-17) A. 세례요한에 의한 계약 (3:13-15) 1. 요한의 반대(3:13-14): 요한은 처음에 세례를 베풀어 달라는 그리스도의 요청을 거절하며 자신이 세례를 베풀 자격이 없다고 느낍니다. 2. 요한의 순종 (3:15): 두 번째 요청 후에 그는 구세주께 세례를 베풉니다. B. 성령의 기름 부으심(3:16): 성령이 비둘기처럼 예수님 위에 내려오십니다. C. 아버지의 승인(3:17): 하늘에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가 그를 심히 기뻐하노라"는 음성이 들려옵니다.
I. 요한이 많은 무리를 대상으로 사역하다(3:1-12) A. 요한이 설교하는 내용 (3:1-4)
B. 요한이 설교하는 대상(3:5-10)
C. 요한이 설교하는 대상(3:11-12): 그는 메시아의 오심을 위한 길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II. 메시아를 섬기는 요한 (3:13-17) A. 세례요한에 의한 수락 (3:13-15)
B. 성령의 기름 부으심(3:16): 성령이 비둘기처럼 예수님 위에 내려오십니다. C. 아버지의 승인(3:17): 하늘에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가 그를 심히 기뻐하노라"는 음성이 들려옵니다.
주석
마태복음 3:1-17
마태복음은 이제 예수가 성인으로서 공적 사역을 시작하게 되는 사건으로 넘어갑니다. 다른 세 복음서와 마찬가지로 세례 요한의 소개를 시작합니다. 마태복음 전체에서 구약성경이 명시적으로 인용된 유일한 구절입니다. 3장은 시작 부분(3절)에 나오지만, 본문 전체는 요한이 어떻게 이 예언을 성취하고 주님의 길을 준비하는지를 보여줍니다. 그 준비에는 구약의 대표적 예언 주제인 이스라엘의 회개를 촉구하는 것이 포함되며, 이는 요한 사역의 특징인 세례로 상징됩니다(3:1-12). 이 주제는 요한이 예수님에게 직접 세례를 베풀면서 절정에 이릅니다(3:13-17).
3:1-12
유대 광야(3:1)는 유대인 독자들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로 인도하는 모세를 떠올리게 할 것입니다(특히 민수기 참조). 하늘나라의 임박함(3:2)은 메시아 시편에서 다니엘서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왕 통치가 미래에 더욱 완벽하게 확립되기를 고대하는 다양한 본문을 떠올리게 할 수 있습니다.
요한의 옷차림은 의도적으로 엘리야(왕하 1:8, 슥 13:4 참조)를 모델로 한 선지자(3:4)의 옷차림입니다. 그의 식단은 광야 금욕주의자의 식단이었다(출 16:31, 메뚜기를 음식으로 먹은 것은 레 11:22 참조).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는 것(3:7)은 슥 14:5과 같은 언어를 반영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민족이 영적 안전을 보장한다는 생각(3:9)은 하나님께서 언약을 맺은 세계 유일의 국가로서 이스라엘의 선택된 지위를 연상시키지만(특히 신명기 참조), 구약 전체에 걸친 심판과 구속의 주기를 보면 그러한 안일함이 정당하지 않다는 것이 분명해졌을 것입니다. 나무 뿌리에 놓인 도끼의 은유 (3:10)는 이사야 10:34을 반영 할 수 있습니다 (Bauckham 1995).
Zechariah 14:5 NKRV
그 산 골짜기는 아셀까지 이를지라 너희가 그 산 골짜기로 도망하되 유다 왕 웃시야 때에 지진을 피하여 도망하던 것 같이 하리라 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임하실 것이요 모든 거룩한 자들이 주와 함께 하리라
Leviticus 11:22 NKRV
곧 그 중에 메뚜기 종류와 베짱이 종류와 귀뚜라미 종류와 팥중이 종류는 너희가 먹으려니와
유대인이 아닌 사람들이 아브라함을 통해 축복을받을 수 있다는 것은 창 12 : 1-3 초기에 족장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반영합니다. 3:11의"내 뒤에 오는 자"는 아마도 시 118:26을 암시하고 아마도 시 40:7을 반영하는 메시아 적 칭호로 이해되어야합니다 (Kirchevel 1994 참조). 물 세례는 겔 36:25-27과 같은 본문에서 예언 된 영적 정화를 떠올리게합니다.
Psalm 118:26 NKRV
여호와의 이름으로 오는 자가 복이 있음이여 우리가 여호와의 집에서 너희를 축복하였도다
Psalm 40:7 NKRV
그 때에 내가 말하기를 내가 왔나이다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이 두루마리 책에 있나이다
Ezekiel 36:25–27 NKRV
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 숭배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Isaiah 40:1–5 NKRV
너희의 하나님이 이르시되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너희는 예루살렘의 마음에 닿도록 말하며 그것에게 외치라 그 노역의 때가 끝났고 그 죄악이 사함을 받았느니라 그의 모든 죄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손에서 벌을 배나 받았느니라 할지니라 하시니라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언덕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아니한 곳이 평탄하게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 이는 여호와의 입이 말씀하셨느니라
이사야 40 장은 이사야가 야훼 자신이 왕으로 이스라엘로 돌아 오는 다른 사람을 언급하고 있음을 암시하지만 (골딩 게이 2005 : 5-7), 사 7-9 장의 특별한 아들들과 사 11 장의 메시아 지부에 대한 언급은 아직 오지 않은 종의 노래 (사 42 장에서 시작)와 함께 하나님이 특별히 기름 부음받은 대리인을 통해 자신을 계시하신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40:11과 같이 우리와 유사한 본문의 "목자" 이미지는 메시아적 인물이 목자에 비유되는 다른 예언들(특히 겔 34장)과도 일치합니다.
Isaiah 40:11 NKRV
그는 목자 같이 양 떼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
유대교의 매우 다른 바리새파 분파인 Pss. 솔. 8:17은 정복자 로마 장군 폼페이우스가 예루살렘에 입성할 수 있는 길을 준비하기 위해 유대 지도자들이 예루살렘으로 가는 거친 길을 (아마도 문자 그대로) 평탄하게 닦은 것을 언급할 때 이 본문을 암시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왕이 외국 침략자였기 때문에 아이러니하지만 왕을 환영하는 이 부분은 왕에게 적절했습니다.
3:13-17
이 두 구절은 함께 예수의 이중적 역할에 대한 하늘 아버지의 이해를 반영합니다. 나중에 왕이 되실 메시아이시지만 지금은 고난 받는 종이며, 둘 다 신성한 아들이라는 예수의 독특한 정체성에 합당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은 새로운 창조물을 만들고 계십니다 (앨리슨 1992).
여기서 마태는 예수님이 이스라엘의 역할, 특히 실패한 부분을 성공적으로 반복하는 것을 봅니다.
주석2
세례 요한의 설교 (3:1-12) 세례 요한은 눈에 띄는 인물입니다. 엘리야처럼 옷을 입은 그는 400년 만에 이스라엘에 나타난 최초의 선지자입니다. 그의 낙타 털 옷은 이스라엘의 부드럽고 교양 있는 종교 지도자들의 고급스러운 옷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요한의 메시지는 그의 외모만큼이나 강렬하고 인상적입니다. 그는 유대인들에게 회개하고 그들의 하나님이 오실 것을 준비하라고 촉구합니다. 곧 내릴 큰 심판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추수하는 밭이나 썩은 과수원을 개간하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유대인의 혈통이나 종교적 신분이 보호해 줄 수는 없습니다. 오직 깊고 실제적인 회개만이 가능합니다. 요한은 자신의 설교에 응답하는 사람들에게 요단강 물에 세례를 베풉니다. 이것은 죄를 씻어내는 것, 즉 옛 삶을 익사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메시아가 오실 때 행하실 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분은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십니다 (3:13-17) 어느 날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러 오십니다. 요한은 예수님을 자신보다 훨씬 위대하신 분으로 인정합니다. 그에게 세례를 주어야 할 사람은 예수님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요한의 개종자들과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기다리는 모든 사람들과 함께 그 자리를 대신합니다. 예수님은 세례를 받음으로써 참 이스라엘에 속한 모든 사람들, 즉 하나님께 마음으로부터 순종하는 사람들과 함께 서십니다. 예수님은 세례를 받으신 후 하나님의 영이 비둘기 한 마리가 내려와 자기 위에 머무는 것처럼 내려오는 것을 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사랑하고 기뻐하는 아들이라고 선언하십니다. 다윗 시대에 하나님이 택하신 왕은 그의 아들로 묘사되었습니다(시편 2:7). 이것은 메시아를 지칭하는 방식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향한 하나님의 기쁨은 고난 받는 종에 대한 이사야의 묘사와 일치합니다. 이 종은 흠 없는 삶을 살다가 다른 사람들을 위해 죽습니다(이사야 42:1). 성령의 강림과 하나님의 확고하고 사랑스러운 말씀은 예수님에게 평생의 사역을 위임합니다. 이제부터 그는 하나님의 종 왕인 메시아의 사명과 사역에 착수합니다.
Isaiah 42:1 NKRV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자 곧 내가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영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정의를 베풀리라
주석3
"세례 요한이 설교를 시작했을 때"(3:1), 사람들은 흥분했습니다. 그들은 요한을 위대한 선지자로 여겼고, 간절히 기다리던 메시아의 시대가 왔다고 확신했습니다. 요한은 옛 선지자들처럼 백성들이 형벌을 피하려면 죄에서 돌이켜 하나님께로 돌아와 그분의 자비와 승인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 메시지는 모든 시대와 장소를 위한 것이지만, 요한은 특별히 긴급하게 말씀을 전한 이유는 오실 메시아를 위해, 그리고 그분의 왕국을 위해 백성들을 준비시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3:1 그 당시 세례 요한은 유대 광야에서 설교를 시작했습니다. 마태는 누가가 더 자세히 기록할 이야기를 이 몇 마디로 요약했습니다(눅 1:5-25, 39-45, 57-80 참조). 요한은 회개의 메시지를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설교"로 번역된 단어는 "전령이 되다, 선포하다"라는 뜻의 그리스어에서 유래했습니다. 마태는 세례 요한을 오실 왕, 메시아에 대한 소식을 선포하는 전령으로 묘사했습니다. "세례자"라는 칭호는 이 요한을 같은 이름을 가진 다른 많은 사람들과 구별했으며, 세례는 그의 사역에서 중요한 부분이었습니다(3:6).
3:2 "천국이 가까웠으니 너희는 죄에서 돌이켜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세례 요한의 설교는 특별히 한 가지 메시지, 즉 오실 메시아를 위해 마음을 준비시키는 데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준비는 회개를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었습니다.
왜 이렇게 급진적인 회개가 필요했을까요? 천국이 가까웠기 때문입니다. 이 구절은 현재의 현실과 미래의 희망을 나타냅니다.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는 신자들의 마음속에서 통치하고 계시지만, 천국은 세상의 모든 악이 심판받고 제거될 때까지 완전히 실현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고난 받는 종으로 먼저 이 땅에 오셨고, 왕과 심판자로 다시 오셔서 온 땅을 승리로 다스리실 것입니다.
3:3 이사야는 요한에 대해 "그는 광야에서 외치는 목소리입니다. '주님이 오실 길을 준비하라! 그를 위해 곧은 길을 만들어라! " 이사야는 구약의 가장 위대한 선지자 중 한 명이자 신약에서 가장 많이 인용된 선지자 중 한 명입니다. 이사야는 유배자들을 바빌론에서 고향으로 데려오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기록했습니다. 또한 메시아의 오심과 그 오심을 선포할 사람인 세례 요한에 대해서도 기록했습니다(이사야 40:3). 요한은 이사야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에게 죄를 고백하고 하나님을 위해 살 것을 촉구한 선지자였습니다. 준비라는 단어는 무언가를 준비한다는 뜻이며, 경로라는 단어는 "길"이라고도 번역할 수 있습니다. 이 그림은 고대 중동의 관습에서 유래한 것으로, 왕이 행차할 때 신하들을 앞서 보내 길을 평평하게 하고 정리하여 통행할 수 있도록 하는 것에서 유래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왕과 메시아를 간절히 기다리는 마음을 준비해야 했습니다. 3:4 요한의 옷은 낙타 털로 짠 것이었고, 그는 가죽 띠를 매었습니다. 요한은 선지자 엘리야(열왕기하 1:8)처럼 하나님의 길을 준비하는 사자로 여겨지는 옷을 입었습니다(말라기 3:1, 4:5 참조). 요한은 눈에 띄는 옷차림으로 자신의 지위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냈던 종교 지도자들과 다른 강렬한 메시지를 전했습니다(12:38-39). 당시의 악과 위선으로부터 자신을 분리한 요한은 자신의 메시지가 새롭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살았습니다. 메뚜기와 야생 꿀을 주식으로 하는 그의 식단은 광야 지역에서 생존을 위해 흔히 볼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3:5 예루살렘과 유대의 모든 지역, 요단 계곡 곳곳에서 사람들이 그의 설교를 듣기 위해 광야로 나갔습니다. 요한은 400년 만에 처음으로 진정한 선지자였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헤롯과 종교 지도자들을 모두 고발하는 그의 대담한 행동은 일반 사람들을 매료시켰습니다. 그러나 요한은 청중의 다른 사람들에게도 회개해야 할 죄인이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그의 메시지는 강력하고 진실했습니다.
3:6 그들은 자신들의 죄를 고백했습니다. 고백은 단순히 자신의 죄를 인정하는 것 이상의 의미로, 죄에 대한 하나님의 판결에 동의하고 죄를 없애고 하나님을 위해 살고자 하는 열망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더러운 손을 씻으면 그 결과가 바로 눈에 보입니다. 그러나 회개는 당장 눈에 보이지 않는 정화와 함께 내면에서 일어납니다. 그래서 요한은 사람들이 볼 수 있는 상징적인 행동, 즉 세례를 사용했습니다. 세례를 베풀기 위해 요한은 물이 필요했고 요단강을 이용했습니다.
3:7 요한은 죄를 고백하고 하나님을 위해 살기를 소망하며 찾아온 많은 회개하는 사람들에게 기꺼이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그러나 요한은 많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을 보고 종교 지도자들의 위선에 분노를 폭발시켰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유대인이 아닌 모든 것에서 자신을 분리하고 구약의 율법과 수세기 동안 전해 내려오는 구전 전통을 모두 주의 깊게 따랐습니다. 사두개인들은 오경(창세기~신명기)만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었습니다. 요한은 그들을 비난했습니다. "이 뱀 같은 무리들아!" 그가 외쳤습니다. 요한은 바리새인들이 율법의 진정한 의도는 무시한 채 율법의 문자를 따르는 율법주의적이고 위선적인 사람들이라고 비판했습니다. 그는 사두개인들이 종교를 이용해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한다고 비판했습니다.
그는 세례를 받으려는 그들의 열망의 진정성을 분명히 의심했습니다. 요한은 그들을 뱀 무리라고 불렀는데(예수님도 이 용어를 사용하셨음 - 12:34, 23:33 참조), 이는 그들이 얼마나 위험하고 교활한지, 그리고 그들이 사탄의 자손임을 암시하는 것이었습니다(창세기 3장, 요한복음 8:44 참조). "누가 하나님의 다가오는 심판을 피하라고 경고했습니까?"라는 비꼬는 듯한 질문도 던졌습니다. 종교 지도자들은 항상 다가오는 심판을 이방인에 대한 심판에 적용했지만, 요한은 종교 지도자들에게 적용했습니다.
Matthew 12:34 NKRV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Matthew 23:33 NKRV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3:8 진정한 회개는 회개에서 나오는 행동과 성품으로 알 수 있습니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은 자신들이 의로움의 한 구석에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들의 삶의 방식은 그들의 실제 성품을 드러냈습니다. 그래서 요한은 "너희가 정말로 죄에서 돌이켜 하나님께로 돌아섰는지 너희의 삶의 방식으로 증명하라"고 말했습니다. 세례 요한은 사람들에게 말이나 의식을 넘어 행동을 바꾸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죄에서 돌이켜 하나님께로 향했다면, 우리의 말과 종교 활동이 우리의 말을 뒷받침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말을 그에 수반되는 행동으로 판단하십니다.
3:9 요한은 그들에게 아브라함을 조상으로 의지한다고 해서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갈 자격이 주어지지 않는다고 설명했습니다. 요한은 강바닥에 있는 돌을 가리키며 "하나님께서는 여기 있는 이 돌들을 아브라함의 자녀로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3:10 "지금도 하나님의 심판의 도끼가 준비되어 있고, 너희 뿌리를 자를 준비가 되어 있다.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모두 잘려서 불에 던져질 것입니다." 구약성경 이래로 하나님의 메시지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비생산적인 삶으로 인해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과일나무가 열매를 맺어야 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백성은 선행을 베풀어야 합니다(3:8).
3:11 "나는 죄에서 돌이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에게 물로 세례를 베푼다." 요한은 세례가 회개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세례는 헌신의 '외적' 표시였습니다. 세례가 효과적이려면 변화된 삶으로 이어지는 '내적' 태도 변화가 수반되어야 했습니다.
요한은 메시아가 자신의 뒤를 이어 오실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요한은 400년 만에 처음으로 진정한 선지자였지만, 메시아 예수는 요한보다 훨씬 더 위대하신 분, 즉 "내가 그의 종이 되기에 합당하지도 않을 정도로 훨씬 더 위대하신 분"이실 것입니다. 요한은 장차 오실 분에 비하면 자신이 얼마나 보잘 것 없는 존재인지 지적하고 있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그는 점점 더 커져야 하고 나는 점점 더 작아져야 한다"(요 3:30)고 말했습니다. 요한이 시작한 일은 예수님이 끝내셨습니다. 요한이 준비한 것은 예수님이 성취하셨습니다.
3:12 "그는 타작마당에 가서 쭉정이와 알곡을 분리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런 다음 그는 탈곡장을 깨끗이 청소하여 곡식은 헛간에 보관하고 쭉정이는 끝없는 불로 태울 것입니다." 타작이란 밀 알갱이와 왕겨라고 불리는 쓸모없는 겉껍질을 분리하는 작업이었습니다. 이 작업은 보통 타작마당이라는 넓은 공간에서 이루어졌는데, 농부가 타작한 밀을 공중에 던지면 바람이 가벼운 왕겨를 날려버릴 수 있는 언덕 위에 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타작 포크는 밀과 쭉정이를 분리하기 위해 밀을 공중에 던질 때 사용하는 갈퀴입니다. 밀은 모아지고 쭉정이는 태워집니다. 요한은 회개에 대해 말했지만 회개를 거부하는 사람들에 대한 심판에 대해서도 말했습니다.
3:13 갈릴리는 팔레스타인 북부 지역의 이름입니다. 이때 예수님은 아마도 서른 살 정도 되셨을 것입니다(눅 3:23). 예수님은 세례 요한을 만나 세례를 받으러 먼 길을 걸어서 오셨습니다.
3:14-15 그러나 요한은 그에게 세례를 주고 싶지 않았습니다. "당신에게 세례를 받아야 할 사람은 바로 나입니다." "그런데 왜 나에게로 오십니까?"라고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요한은 예수님이 회개를 위해 세례를 받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는 모든 옳은 일을 해야 하므로 반드시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삶의 모든 면에서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옳은 길이기 때문에 세례를 받으러 오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셨기 때문에 죄를 고백할 필요가 없었습니다(요한복음 8:46, 고린도후서 5:21, 히브리서 4:15, 요한일서 3:5).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신 이유는 (1) 민족을 대신하여 죄를 고백하기 위해, (2) 하나님의 사명을 완수하고 세상에서 하나님의 일을 진전시키기 위해, (3) 모든 사람에게 구원의 메시지를 전하는 공적 사역을 시작하기 위해, (4) 요한의 사역을 지지하기 위해, (5) 회개하는 하나님의 백성, 즉 인간성과 죄와 동일시하기 위해, (6) 우리가 따라야 할 본을 보여주기 위해였습니다. 완전한 분이신 예수님은 아버지께 순종하는 마음으로 세례를 받으셨고,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승인을 보여주셨습니다.
하늘이 열린 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인간으로 임재하심을 통해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개입을 보여주었습니다. 마치 하늘이 뒤로 젖혀져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보좌가 드러나는 것과 같았습니다(이사야 63:19-64:2). 하나님의 영이 비둘기처럼 내려오신 것은 예수님이 메시아이시며 선지자들이 예언한 성령의 시대가 공식적으로 시작되었다는 신호였습니다(이사야 61:1).
Isaiah 61:1 NKRV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3:17 하늘에서 소리가 나며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신자는 결국 "하나님의 아들"(또는 "하나님의 자녀")로 불릴 것이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다른 독특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그분은 유일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내가 그를 온전히 기뻐한다"는 구절은 아버지께서 아들을 통해 큰 기쁨과 즐거움, 만족을 느끼신다는 뜻입니다. 이 구절은 구약성경의 두 구절(시편 2:7, 이사야 42:1)을 반영합니다. 하늘 보좌에서 들려온 음성은 고난을 받고 죽을 종으로서, 그리고 영원히 통치할 왕으로서 예수님의 지위를 묘사했습니다.
3:16-17에서는 삼위일체의 세 위격이 모두 현존하고 활동하십니다. 교회 역사에서 훨씬 후에 발전한 삼위일체 교리는 하나님은 세 위격이시지만 본질적으로는 한 분이라고 가르칩니다. 성부 하나님은 말씀하시고, 성자 하나님은 세례를 받으시고, 성령 하나님은 예수님에게 강림하십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지만 동시에 세 위격이십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이해할 수 없는 신비 중 하나입니다.
BST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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