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고민하는 우리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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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니니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
무릇 시장에서 파는 것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
이는 땅과 거기 충만한 것이 주의 것임이라
불신자 중 누가 너희를 청할 때에 너희가 가고자 하거든 너희 앞에 차려 놓은 것은 무엇이든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
누가 너희에게 이것이 제물이라 말하거든 알게 한 자와 그 양심을 위하여 먹지 말라
내가 말한 양심은 너희의 것이 아니요 남의 것이니 어찌하여 내 자유가 남의 양심으로 말미암아 판단을 받으리요
만일 내가 감사함으로 참여하면 어찌하여 내가 감사하는 것에 대하여 비방을 받으리요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라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하나님이 기뻐하는 일?
하나님이 기뻐하는 일?
우리는 계속해서 일과 사랑을 주제로 말씀을 나누고 있는데요. 오늘은 ‘일’의 마지막 시간입니다
지난 시간 말씀을 나누면서 ‘일’에 대한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봤었는데 일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축복이고, 그 일의 동기는 하나님의 사랑을 누리는 우리가 감격과 감사의 표현으로 사랑을 흘려보내는 ‘사랑’이 동기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을 통해 나눴었습니다.
오늘은 일의 의미는 알았으니 우리 안에 정말 자주 일어나는 중요한 고민을 나눠보려고 해요. 항상 기도제목을 나눌 때 종종 등장하는 기도제목이기도 합니다.
그 내용은 이런 것이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하고 싶은데, 어떤 일을 해야할 지 모르겠어요” 라는 정말 중요한 ‘선택’의 문제입니다.
의미도 알고 했지만 그래서 내가 어떤 일을 하면서 사는 부분에서 참 고민이 많죠. 일을 선택하는 부분은 참 많이 복잡해서 쉽게 답을 내릴 수 가 없습니다. 각자가 처한 상황도 다르고 삶의 모습, 바라보는 관점 다 다르기 때문에 하나로 정의 하기가 쉽지 않죠. 하지만 하나님께 기쁨이 되고 싶은 우리의 마음은 통하는 것 같아요.
저도 여러 일을 하면서 항상 고민했던 부분이 있었습니다. 내가 하는 일이 하나님이 허락하신 일일까? 내 뜻대로 욕심따라 이걸 하는 건 아닐까?
그래서 때로는 그냥 ‘기도’만 하면서 하나님이 알아서 인도해주실거야 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던 시기도 있었고, 또 때로는 “아 몰라! 하나님이 답도 안 줄 것 같은데 일단 해보지 뭐!” 하면서 저질러보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오늘은 이 키워드를 던지고 시작해보려고 해요.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인도하시고 하나님의 계획은 정확하십니다.” 여러분은 이 사실을 믿으시나요?
저는 이런 고민 속에서 말씀을 통해 깨닫고 알아갔던 하나님의 신비한 섭리와 인도하심을 통해 ‘일’의 선택에 대한 기준점이 세워졌었는데요. 오늘 말씀을 나누면서 ‘일’을 선택할 때 우리가 고민해야할 기준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선한 일, 악한 일 (이원론)
선한 일, 악한 일 (이원론)
오늘 말씀이 시작되는 고린도 교회가 있는 고린도는 매우 특별한 지역이었습니다. 고린도는 항구도시였습니다. 그 당시에 항구도시는 경제의 중심지였었죠. 그렇다보니 고린도라는 지역은 매우 풍요로운 지역이었습니다. 경제가 활발하니 교육이 발달되어 그 당시 유행하던 수사학, 철학들의 영향을 많이 받던 도시였죠. 항구도시의 특성상, 우상숭배나 향락과 여러 문화들이 다양하게 섞여 있던 도시가 바로 고린도였습니다.
바울의 2차 전도여행으로 복음을 접하고 세워진 고린도 교회에는 문제가 많았는데, 그 문제는 대부분 이 지역의 특성을 그대로 받아들여 발생했었죠. 그래서 고린도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이 세상의 지혜들과 섞이며 일어난 교회의 문제들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되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오늘 말씀에 등장한 문제는 믿음의 두 가지 형태로 인한 문제였습니다.
당시 그리스 로마 철학자 중 ‘플라톤’이라는 철학자의 사상은 굉장히 영향력이 있었는데, 그의 철학의 핵심은 ‘이데아’ 입니다. ‘이데아’란 간단하게 말하면, 현실의 나는 진짜 내가 아니라 영혼의 세계, 저 너머에 진짜 내가 있다. 라는 관점인데요. 영혼의 세계가 투영된 것이 현실 세계이며 투영된 육신의 존재는 영혼의 길을 방해하는 존재라서 영적인 지혜에 대한 통찰과 정결한 삶을 추구 하며 육체를 무시해야 한다는 사상이었죠.
이 사상은 또 다른 철학으로 발전하여 두 가지 모습으로 나타났는데, 하나는 어차피 현실은 가짜니 마음껏 즐기자는 지나친 방종과 또 하나는 영혼의 길에 다다르기 위해 육체를 완전히 무시하고자 모든 것을 절제하는 금욕주의의 모습이었습니다.
고린도 공동체안에도 이러한 세상의 지혜가 믿음과 섞이기 시작했는데, 하나님의 은혜로 얻은 이 구원을 얻은 자녀로서의 특권과 자유를 이 땅에서의 모습과 구분하려고 하는 이분법적인 모습이 생겼습니다. 이렇게 고린도 교회 안에서 자연스럽게 파벌이 생기게 되었는데요
하나의 무리는 어차피 나는 구원을 받아 자유를 얻었으니 내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지나친 방종으로 믿음이 약한 자들을 시험들게 하는 무리들이고, 또 하나는 구원된 백성으로서 아예 세상과 구분되어야 한다는 인식으로 세상의 모든 것을 악하다 바라보며 금욕을 추구하며 그렇게 살지 않는 사람들을 정죄하는 무리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서로를 정죄하고 다투는 가운데 시장에서 팔리던 우상에게 올려졌던 고기를 먹는 문제를 놓고 바울에게 답을 구하고 있던 것입니다.
무엇이 옳은가? 모든 것이 옳다.
무엇이 옳은가? 모든 것이 옳다.
바울은 이런 문제를 놓고 이렇게 말합니다.
고전 10:23-24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니니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
바울이 제시한 첫번째 답은 모든 것이 가능하지만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이 아니니, 개인의 유익만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며 신중히 고민하라고 말합니다.
오늘 날 우리 안에 고린도 교회안에 섞인 이분법적인 구분이 어떤 선택을 하는데 있어서 여전히 작용하고 있습니다. 당시 그리스로마의 철학가들은 세상의 모습들을 존귀한 것, 존귀하지 않은 것으로 구분했습니다.
플라톤도 마찬가지고 유명한 아리스토 텔레스는 ‘정치학’에서는 노예를 보고 “개중에는 노예가 되도록 태어난 인간이 존재한다.”라는 말을 했죠. 똑똑하고 지혜로운 시민몇몇이 이들을 다스리는 건 당연한 것이다 라고 구분했었죠.
팀켈러는 일과 영성에서 현대의 노동관을 이렇게 짚고 넘어갑니다.
“현대에서 문자적인 노예 개념은 사라졌다 해도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 이면에 숨은 마음가짐은 지금도 여전히 살아 왕성하게 작용하고 있다. 오늘 날 크리스천들이 물려받은 건 이런 사조가 듬뿍 배어든 노동관이다. - 팀켈러 ‘일과 영성’ 중에서”
고린도 교회 안에 있었던 세상의 지혜와 섞인 이분법적인 구분, 세상적인 것과 영적인 것, 또는 선한 것과 악한 것을 완벽히 나눌 수 있다고 여기는 이 구분이 우리가 ‘일’을 구함에 있어서, 일을 함에 있어서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서도 어떤 일을 선택할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라고 하지만 실은 그 안에 내가 좋게 여기는 일과 좋게 여기지 않는 일이 이미 나눠져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이죠.
내가 좋게 여기는 일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 이라고 나누고 있는 상태에서 기도제목을 올리고 묻는 것은 아닌가하는 질문이 우리안에 있습니다.
바울이 내어 놓은 첫번째 해답을 놓고 우리가 먼저 생각할 것은 ‘모든 일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선하다.’ 라는 것입니다.
고전10:25-26 “무릇 시장에서 파는 것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 이는 땅과 거기 충만한 것이 주의 것임이라”
고린도 교인들은 저마다의 이익과 이유로 한 쪽은 방종을, 한 쪽은 금욕을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이익과 반대되는 그룹을 정죄하고 자신들이 옳다고 하기에 바빴었죠.
바울이 보기에는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습니다. 그런 표면적인 것, 땅에 있는 어떤 것이든, 하나님이 보시기에 선한데, 진짜 중요한 핵심은 하나님의 마음을 알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에 있던 것이죠. 각자가 자신만 생각하기 바빴던 것이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고, 서로 사랑으로서 먼저 모든 것이 선하다는 것을 제시한 것입니다. 둘다 추구하는 관점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중요한건 ‘내 유익’이 아니라 ‘서로의 유익’, 하나님의 사랑의 관점에서 서로를 이해하고 품어주며 사랑을 위해 힘쓰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말하고자 했던 것이죠.
우리는 어떤 것이든 선택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 것이든 선택할 수 있다. 그러나,
바울은 이어서 이렇게 말합니다.
고전 10:27-28 “불신자 중 누가 너희를 청할 때에 너희가 가고자 하거든 너희 앞에 차려 놓은 것은 무엇이든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 누가 너희에게 이것이 제물이라 말하거든 알게 한 자와 그 양심을 위하여 먹지 말라”
하나님안에서 자유함을 얻은 우리는 어떤 것이든 거리끼지 않고 행할 수 있습니다. 고기를 먹는 문제는 하나님앞에 큰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죠. 그런데 만일 함께 하는 그 누군가가 그게 우상에게 드려졌던 음식이라고 한다면, 알게 한 그 사람과 그 양심을 위해 먹는 것을 자제하라는 것입니다.
바울이 말하는 중요한 포인트는 ‘내가’ 아니라 ‘그 사람’ 입니다.
이어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고전10:29-30 “내가 말한 양심은 너희의 것이 아니요 남의 것이니 어찌하여 내 자유가 남의 양심으로 말미암아 판단을 받으리요 만일 내가 감사함으로 참여하면 어찌하여 내가 감사하는 것에 대하여 비방을 받으리요”
바울이 말하는 양심이란, 자기 자신의 양심이 아닌 그 제물을 말하는 그들의 마음을 위해서 선택하라는 것입니다.
당시에는 시장에서 고기를 파는데, 신전에서 제사로 쓰였던 고기들중 남는 것들은 아주 싼 값에 시장에 나왔었습니다. 그래서 상인들은 그 고기를 싼 값에 사서 좀더 가격을 얹고 다시 되파는 경우가 많았었죠. 지금으로 말하면 수입산 고기같은 개념인거죠.
이러한 상황 때문에 사람들은 고기 = 우상숭배 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던 거에요. 그런데 바울의 말은 이렇습니다. 시장에서 고기를 샀다고 해서 그게 우상 제물인지, 그냥 팔려고 내놓은 고기인지 당장알 수 없는 것에 너무 연연하지말고 자유함을 누리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죄라는 것을 명확하게 알게 된다면 알게 한 그 사람의 양심, 그가 시험에 들거나 마음이 어렵지 않도록 자제하라고 하는 것이죠.
자신의 선택과 자유, 감사함으로 누리는 것에는 어느 누구도 비방할 수 없는 자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죄로 인해 시험받을 수 있는 그를 위해 자제하는 것이죠.
이걸 우리의 ‘일’의 선택으로 가져와보면 이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 이라고 생각할 때 어떤 직업군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아까의 이분법처럼, 상대적으로 예수님을 직접적으로 전하는 직업군과 그렇지 않은 직업군을 나눌 수도 있죠. 하지만 바울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모든 직업군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다 가능한 것들입니다. 하지만 한 가지 예외가 있죠. 그것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명백한 ‘죄’라는 사실이 확인될 때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입니다. 죄된 마음을 가진 인간이 모인 어떤 그룹안에서, 심지어 우리가 선하다고 보는 직업군 내에서도 죄된 모습에 대한 딜레마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건 어느 곳도 예외가 없는 영역입니다. 일을 하고 계시는 분들, 일을 해본 분들은 누구나 느낄 거에요. 어떤 일이든지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모습이, 내 안에서 하나님이 정말 이런 모습을 기뻐하실까 하는 갈등이 일어날만한 요소들이 나의 일속에서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이에요.
바울이 말하는 것의 핵심은 바로 이것입니다.
죄라는 것이 명확할 때, 당신은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 신중하게 생각하라는 것이죠. 무엇이든지 해도 됩니다. 하지만 그 안에서 ‘죄’를 만날 때, 어떻게 반응할지 신중히 선택해야하는 것은 ‘나의 몫’이라는 것입니다.
모든 일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는 것
모든 일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는 것
바울이 말하는 것은 보이는 어떤 도구들,형태들은 절대 죄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도구와 형태(직업군)들을 사용하는 우리의 죄악된 요소들이 더 중요한 것이죠.
아무리 선한 의도로 시작되었어도 그것이 죄된 인간의 선택에 넘어가면 ‘악’이 될 수 있습니다.
노벨상을 만든 노벨은 다이나마이트를 개발했습니다. 그의 목적은 동굴을 좀더 수월하게 뚫을 수 있도록 돕기 위해 개발되었죠. 하지만 어떤 악의적인 사람들은 그걸 전쟁의 학살용으로 사용하는 것을 보며 노벨은 죄책감을 느낍니다. 그렇게 벌게 된 막대한 돈들로 훗날 사람들을 이롭게 하는 연구나 업적등을 격려하는 노벨상을 만듭니다.
현대 사회의 문제가 되는 마약성 약품들은 전쟁으로 인한 상처, 외상, 암등 심각한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개발되었으나, 큰 고통을 덜어주는 만큼 너무 중독성이 강하고 부작용이 심해, 전문가가 일정량만 투여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악의적인 의도로 그것을 쾌락의 용도로, 탐욕의 도구로 바꿔버렸습니다.
이렇듯이 직업군들도 마찬가지 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인 인간의 존엄성을 무너뜨리는 어떤 것을 제외 하고 대부분의 직업군은 선한 의도로 시작됩니다. 하지만 우리의 죄성으로 왜곡되어 탐욕으로 인해, 개인의 악의적인 목적으로 인해 변질되는 경우가 많죠.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고민해야 합니다. 우리가 고민해야할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직업(일)”이라는 어떤 직업군, 형태라기 보단, 내가 어떤 일을 할때 일을 행하는 선택의 기준점을 놓고 고민해야 합니다.
바울은 그 점을 명확하게 설명해주는데요.
고전 10: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은 어떤 일을 선택하기 보다, 어떤 일이든 선택이 가능하고 할 수 있지만, 그 안에서 어떻게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돌릴 수 있는지를 생각해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일 속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가?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고전10:32-33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첫번째는 내가 스스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바울이 말한 것처럼, 나를 통해 누군가가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구원의 기쁨을 누릴 수 있게 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죠.
모든 것이 가능하지만, 하나님께 영광이 되기 위해 내가 선택한 다양한 일속에서 죄된 모습을 만났을때, 옳은 선택을 하며 그들에게 ‘다름’을 보여줌으로써, 드러내야한다는 것이죠. 어떻게 우리는 그들에게 ‘다름’을 보여줄 수 있나요? 바로 바울의 마지막 권면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고전 11:1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이 질문을 내가 일하는 모든 환경에서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내가 일을 선택하는 기준점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라면 이 사회에 어떤 부분을 안타까워하셨을까? 나에게 주신 은사로 할 수 있는 것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의 모습을 닮아 ‘사랑’을 동기로 일을 선택하고 내가 받은 사랑을 흘려보내며 그들에게 본을 보이는 것이죠.
그렇게 하나님의 사랑을 흘려보내면서 세상과 다른 관점, 선택을 통해 그들로 여러분을 통해 하나님을 알게 하고 그 사랑을 느끼게 하며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나의 유익이 아닌 다른 사람의 유익, 즉 예수님의 사랑의 방식을 담아 일을 선택하고 그 안에서 고민하며 본이 되며 살 것을 가르치는 것이죠.
지금 우리가 하는 일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일
지금 우리가 하는 일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일
사랑하는 여러분, 말씀을 정리하려고 합니다.
일의 선택에서 중요한 것은 선하고 좋은 일을 구분하고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일이든 선택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건 그 선택한 일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어떤 선택을 하며 행동할 것인가에 대한 방향성이 더욱 중요합니다.
종교개혁자 칼빈은 일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부르심에 순종하도록 주어진 세상의 그 어떤 일도 너무 지저분하고 천해서 빛이 나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지 않으며 하나님의 눈에는 한없이 소중하게 비쳐질 것이다. - 존 칼빈”
그래서 우리가 지금 하는 모든 것이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모든 과정을 소중하게 여겼으면 좋겠습니다. 알바를 하고 있든, 취업을 준비하고 있든, 어떤 공부를 하고 있든 “하나님의 눈에는 한없이 소중하게 비쳐집니다.” 왜냐하면 그 모든 과정은 우리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고민하며 기도하며 하나씩 하나씩 선택한 것들이니까요.
하나님은 그 모습 전부를 기뻐받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가지는 하나님을 향한 비전이 ‘어떤 직업, 도구’를 갖는 것으로 축소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예를 들어 교사나 사업가, 목회자 또는 도구로서는 건물주, 돈많은 백수 같은 어떤 틀을 꿈으로 잡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왜냐하면 이렇게 한정된 틀로서의 비전은 이루고나면 더이상 방향이 없어 헤매고, 안이뤄지면 안이뤄진대로 하나님께 버림받은 느낌에 헤매고 어떤 쪽이든 나를 무너지게 하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우리의 비전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 그리스도의 사랑의 모습을 닮아 흘려보내기 위해 나는 어떤 것을 하고싶은가” 라는 질문에서 시작된 명확한 방향성이 비전이 되길 소망합니다.
그 선택의 기준점이 무엇이라고 했죠?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예수님이라면 어떤 부분을 안타까워 하셨을까, 내가 가진 은사로 지금, 앞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은 어떤게 있을까?” 끊임없이 고민하고 선택해 가는 것입니다.
이렇듯, 방향성이 여러분의 비전이 된다면, 여러분은 어떤 선택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왜냐면 어떤 직업이 아닌 방향이기에, 그 방향성과 맞기만 하다면 여러분은 무엇이든 될 수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고, 그 방향성이 하나님의 영광이기에 그리스도를 본받는 길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 예수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한 방향을 정하고 방향과 엮이는 어떤 것이든 도전해보는 겁니다.
때론 하나님의 가치로 선택하고 사랑을 흘려보내다. 부당한 대우를 받을 수도 있고 이용당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모습이 두려워 대우 잘받는 직업, 어떤 모습을 꿈꿀지도 모릅니다.
처음 질문을 기억하시나요?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인도하시고 하나님의 계획은 정확하십니다.” 여러분은 이 사실을 믿으시나요?”
하나님이 우리가 선택하는 모든 일을 허락하시는 과정은 때론 억울하고 아픈 결과를 겪지만 허락된 모든 과정은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을 배우고 예수그리스도의 사랑을 느끼며 더욱 귀하게 성장하고 나아가도록 이끄시는 하나님의 확신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선택과 도전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그리스도의 사랑을 본받아 그 사랑을 전하기 위해 기도하며 결정하는 그 어떤 일도 하나님은 기뻐하시고 우리는 그 모든 과정을 통해 하나님이 각자를 향한 멋진 계획들을 이뤄가실 것입니다.
롬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하나님은 여러분과 함께 하시고 여러분을 누구보다 사랑하시며 인도하고 계십니다. 그 분이 지금 우리를 하나님의 계획으로 부르십니다.
찬양
나를 부르신 주 - F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