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위대한 믿음 체계

요한복음 강해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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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우리는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언하노라 그러나 너희가 우리의 증언을 받지 아니하는도다

12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13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15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17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18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19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20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21 진리를 따르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

1. 아는 것이 힘이다? 그러나 믿음으로 알게 된다. (11-12절)

“아는 것이 힘이다” by 프란시스 베이컨
우리는 이 말을 잘 알고 있습니다.
17세기 프란시스 베이컨이라는 이 말을 남긴 철학자는 인간의 경험에 의한 이성을 우리의 인식과 판단의 기준에 가장 우위로 두게 됩니다.
그말을 대변해주는 말이 바로 프란시스 베이컨의 “아는 것이 힘이다”입니다.
여러분 아는 것이 힘이 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한번 생각해봐야 할 것은 과연 우리가 무언가를 알 때 1차적으로 생생한 정보를 알게될까요?
그렇지 않죠. 우리는 우리에게 형성된 어떤 믿음 체계에 의해서 무언가를 받아들이고 알게 됩니다.
어떤 인간도 생 정보를 그냥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 사람의 믿음 체계에 의해서 한번 해석된 정보를 받아들입니다.
쉽게 예를 들면 똑같은 것을 보거나 경험하고도 다르게 받아들이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저희 아내랑 D.P를 보는데 이게 제가 D.P를 보면서 느끼는 것하고, 아내가 D.P를 보면서 느끼는 것하고 똑같은 영상을 보면서도 많이 다릅니다.
왜요? 저에게 있는 믿음 체계 안에서 군대의 내용들을 해석하는 것과 군대를 접해보지 않은 사람의 입장에서 군대의 내용들을 해석하는게 달라질 수밖에 없거든요.
만약 제가 미필자라면 또 제 해석이 달라질 수도 있겠죠.
생 정보를 받아들이고도 다르게 받아들이는 것을 보면 우리에게 알기 전에 우리의 믿음 체계가 해석을 해낸다는 것을 알 수 있죠.
그것처럼 오늘 11-12절에서 니고데모도 믿음 체계가 다르기 때문에 생기는 예수님과 제자들과의 앎의 차이가 생기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뭐라고 말씀하시나요?
요한복음 3:11–12 (NKRV)
11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우리는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언하노라 그러나 너희가 우리의 증언을 받지 아니하는도다
12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예수님은 니고데모가 똑같이 들어도 믿음 체계가 해석을 다르게 하기 때문에 실상 하늘의 일을 모른다고 얘기하고 계십니다.
니고데모는 믿고싶은대로 알았죠. 우리는 지난 주에 그것을 확증 편향이라는 단어로 표현했었죠.
니고데모는 믿고싶은대로 예수님을 알려고 했던 자였습니다.

2. 믿음의 차이가 별거 아닌게 아니다. (16-18절)

그런데 우리가 이 믿음 체계의 차이를 결코 쉽게 생각할 수 있지가 않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믿음 체계가 다른 사람들을 정말 많이 만나지 않습니까? 그러면서 우리가 크게 문제가 될건 없는 것 같은데…? 라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정말 중요한 사실은 이 믿음 체계가 최종적으로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가? 입니다.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3장)
18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예수님은 “그” 그러니까 예수님 자신을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않은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는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지금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사실을 생각해봐야하는데, 니고데모는 정확히 말하면 믿음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그만의 믿음 체계가 분명히 존재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것은 믿음이 있느냐, 없느냐가 아닙니다. 사람이라면 다 믿음이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것은 “무엇을 믿느냐”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무엇을 믿는지”에 대해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믿음의 차이에 대한 결과는 무엇인가요? “심판”입니다.
여기서 심판은 법정 용어입니다. 법정에서 판결대 앞에 서서, 그 믿음의 차이가 이 사람이 유죄인가, 무죄인가를 판결받는 것입니다.
법정에서 유죄 판결을 받으면 어떻게 됩니까? 판결에 따른 죄값을 치루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의 유죄 판결의 결과는 무엇일까요? “죽음”이죠.
로마서를 보면요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6장)
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죽음입니다.
믿음의 차이가 “죽음”을 판가름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믿음 체계가 있는데,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살고, 믿지 않는 자들은 죽습니다.
믿음 체계가 다른 것이 별거 아닌게 아닌 겁니다.
우리가 예상하는 바하고는 전혀 다르죠. 그게 별거 아닌 것처럼 우리가 살아가지만 실제로는 그것이 별거 아닌게 아닌 겁니다.
우리는 지금 우리가 사사로히 생각하며 살아가는 “믿음 체계”가 우리에게 생명과 같다는 얘기를 하고 있는 겁니다.
예수님이 오늘 니고데모에게 그것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3. 우리의 믿음 체계는 “죽음”과 “생명”을 결정한다.

니고데모에게 예수님이 믿음 체계에 따라서 심판의 결과가 나뉘는 것을 왜 얘기하고 계실까요?
니고데모의 믿음 체계가 예수님을 향해서 가지 않았기 때문에 니고데모의 믿음의 결과는 “죽음의 심판”이었기 때문에 예수님은 말씀하시는 겁니다.
언제나 예수님은 우리에게 올바른 것을 말씀하여 주십니다.
지금 우리에게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도 같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믿음 체계는 “죽음”과 “생명”을 결정하는 우리의 삶을 좌우하는 가장 큰 요소입니다.
여러분들이 죽음과 생명을 결정하는 삶의 가장 큰 요소가 믿음이 아닌 다른 것이라고 생각할 때도 여전히 예수님은 믿음이 우리의 삶을 좌우하는 가장 큰 요소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우리 삶의 핀트를 잘못 맞추고 있을 때가 많습니다.
우리의 삶의 죽음과 생명을 판가름짓는 요소를 오해할 때가 많다는 거에요.
우리가 죽고 사는 것은 결코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들이 정해주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나도 자주, 그리고 많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들이 우리의 죽고 사는 문제에 달려있는 것처럼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정말 많죠.
제가 동기 전도사님들이 있는 카톡방에 “우리 시대에 우리가 죽고 사는 문제처럼 생각하는 것들이 무엇이 있을까요?” 하고 물어봤더니 아주 좋은 답변들이 쏟아지더라고요.
그 전도사님들 중에 결혼한 분들 절반이 안되고 다 결혼 안한 30대 근처에 있는 사람들이니까 그분들도 사실 청년에 가깝겠죠?
많은 분들이 “돈”에 대해서 얘기합니다. 그렇죠. 우리의 삶이 돈의 유무가 마치 우리 생명의 문제처럼 여기는 분들 많습니다.
또 어떤 전도사님은 “이성”이라고 얘기하더라고요. 정말 심한 분들은 마치 내가 사랑하는 내 이성친구가 내 삶의 존재의 이유로 여기는 분들 많죠. 결국 생명이 이성 관계에 달려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그 관계를 잃게 되면 정말 삶을 잃은 것이라고 생각하고요.
그런데 어떤 전도사님이 이 얘기를 하는데 제가 뒤통수 맞은 것 같았습니다. 그 전도사님이 “교회 직분”이라고 말하는 거에요.
전에 어떤 교회에서 한 분이 장로라는 직분이 되기 위해서 목숨 걸고 집착을 하더라는 겁니다.
여러분 우리의 삶에서 우리는 언제나 생명이 무언가에 달려있는 것처럼 살아갈 때가 있죠.

4. 예수님은 최고의 믿음 체계를 주시기 위해 나무에 달리심 (14-16절)

우리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믿음에 사실 생명이 달린 것인데도 우리가 다른 것들에게 생명이 달려있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습니다.
니고데모도 그랬고, 우리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정말 많은 면에서 니고데모를 닮았죠. 지난 주 설교에도 그랬지만 현대에는 정말 많은 니고데모가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렇게나 많은 니고데모들에게 그저 “예수님을 믿는 믿음 체계”에 생명이 달려있다고 말씀만 하시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그 믿음 체계가 정말 가장 위대하고 생명과 죽음을 가르는 심판이 되게 하기 위해서 무언가를 하십니다.
예수님이 하신 일이 14절에 나옵니다.
요한복음 3:14 (NKRV)
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예수님이 니고데모들에게 예수님을 믿는 믿음 체계가 생명을 좌우한다는 것을 알게 하시고, 그게 효력을 발휘하게 하기 위해서 하신 일은 무엇인가요?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똑같이 예수님도 들리시는 것이었습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사건은 너무 유명한 사건이죠.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할 때 광야에서 하나님께 계속해서 반역과 불신의 죄를 짓습니다.
하나님은 불뱀을 보내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반역과 불신의 죄에 대한 심판을 내리시죠.
그러나 모세가 하나님에게 간구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생명을 놓고 기도하니까 하나님께서 살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십니다.
그것은 긴 장대에 놋으로 만든 뱀 형상을 만들어 달고, 그것을 바라보면 살 것이라고 선포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선포를 듣고 바라보면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서도 그 선포를 듣고도 불신하여 바라보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죽었죠.
그런데 이 놋으로 만든 뱀처럼 예수님이 장대에 달려야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것을 예고하시면서, 십자가에서 희생된 예수님을 바라보는 믿음을 가진 자들은 생명을 얻게 되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은 놋으로 만든 뱀인 생명없는 뱀을 보고 육체의 생명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셔서 하나님의 생명을 희생시키고 나서 그것을 바라보는 자들은 그저 육체의 생명만을 얻겠습니까? 인류의 모든 죄악으로 인한 영혼의 죽음에 대한 생명을 얻겠죠.
여러분 그런데 이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는 것이 어떻게 생명을 주는 위대한 믿음 체계일 수 있는겁니까?
그에 대한 답이 바로 우리가 너무나도 잘알고 있는 요한복음 3:16입니다
요한복음 3:16 (NKRV)
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님의 십자가의 희생이 모든 자들에게 생명을 줄 수 있는 이유는 그 동기가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먼저 사랑하셔서 그 아들을 십자가에서 희생시키셨기 때문에 그 믿음 체계가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믿음 체계가 됩니다.
우리에게 생명이 달려있다고 헛되게 믿는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사랑 앞에서 가치를 잃게 됩니다.
이 세상 가장 아름답고 존귀한 가치이신 하나님이 그의 가장 아름답고 존귀한 가치였던 예수님을 희생시키십니다. 왜요? 사랑하셔서죠.
사랑하셔서 그 존귀한 가치를 희생시킨만큼 그 희생된 예수님을 믿는 믿음 체계가 이 세상 가장 가치로운 믿음 체계가 되는 것이라는거죠.
우리에게 가장 가치있는 믿음체계를 알리시고, 확신시키게 하기 위한 예수님의 행동은 “그 자신을 희생시키시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입장에선 그 아들을 희생시키시는 것이었고, 예수님의 입장에선 자신이 희생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믿는 믿음의 체계가 이 세상 가장 위대한 믿음 체계가 되게 된 방식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 체계만이 우리에게 생명을 가져오게 된 원리인 겁니다.
우리의 생명이 정말 가치있는 것이라면, 우리의 죄값은 너무나도 크죠.
그 가치있는 생명을 죽음으로 몰아가게 되는 죄값은 정말 크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그 막대한 죄값, 우리의 생명을 죽음으로 향하게 한 그 죄값을 치루려면 “가장 가치있는 것이 희생되어야만” 가능하겠죠.
그 가장 가치있는 것이 바로 예수님이었던 것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셔서 그랬죠.
하나님의 사랑이 가장 위대한 것은 바로 이 속에 담겨있는 의미인 겁니다.

5. 예수님을 믿는 믿음 체계의 위대함을 인정하고, 예수님을 믿자.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 믿음 체계가 왜 위대한지, 어떻게 위대하게 되었는지 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그 고귀한 가치를 희생시켰던 믿음 체계가 여러분들 마음과 머리에 동의가 되신다면, 여러분들 예수님을 믿는 믿음의 체계대로 살아가시기 원합니다.
여러분들이 예수님을 믿습니다. 물론 모두가 믿는 것은 아니지만 예수님을 믿는 분들이 계시잖아요.
그런데 그 예수님을 믿는 분들 그 믿음이, 이 세상에 수많은 믿음의 체계들 속에서, 심지어 정말 많이 아는 니고데모가 가진 믿음 체계일지라도
예수님을 믿는 믿음 체계와 결코 비교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닌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소중합니다. 왜요? 예수님을 믿음의 체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간다는 말이 결코 가볍지 않은 겁니다.
가장 위대한 믿음 체계를 가지고 살아가는 이들로써 우리는 살아가는 겁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결코 소홀히 하지 않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믿음으로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시고, 그 믿음 위에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삶이 가치 있는 이유는 우리가 생명을 얻었기 때문인데, 그 생명을 얻은 이유가 바로 예수님을 믿는 믿음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의 삶이 큰 가치를 지니게 된 자로서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 믿음 체계를 가지고 살아가야하는 겁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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