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어가 맛있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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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의 유익을 위해 힘쓰는 하나님 나라의 일꾼

디도서 3:2–8 NKRV
아무도 비방하지 말며 다투지 말며 관용하며 범사에 온유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낼 것을 기억하게 하라 우리도 전에는 어리석은 자요 순종하지 아니한 자요 속은 자요 여러 가지 정욕과 행락에 종 노릇 한 자요 악독과 투기를 일삼은 자요 가증스러운 자요 피차 미워한 자였으나 우리 구주 하나님의 자비와 사람 사랑하심이 나타날 때에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그 성령을 풍성히 부어 주사 우리로 그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상속자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이 말이 미쁘도다 원하건대 너는 이 여러 것에 대하여 굳세게 말하라 이는 하나님을 믿는 자들로 하여금 조심하여 선한 일을 힘쓰게 하려 함이라 이것은 아름다우며 사람들에게 유익하니라
반갑습니다. 드림인 중고등부 예배에 나오신 모든 분들을 환영합니다. 여러분은 생선을 좋아하는가? 나는 왠만하면 다 좋아하지만 특별히 연어를 좋아한다. 왜냐하면 살이 부드럽고 붉은 빛깔에 단백질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분이 좋지 않을 때 생연어를 먹으면 기분이 풀릴만큼 너무나 맛있는 생선이다. 여러분은 다들 아시다시피 태평양에 사는 연어는 태어나 3년 정도 민물에서 살다가 바다로 내려가서 성장한 다음 원래 살았던 강에 돌아와 알을 낳는 습성이 있다. 바다로 가는 과정에서 다른 물고기와 새들에게 잡아먹히고, 오염된 물로 인해 죽기도 하며, 거대한 저수지를 빠져나가려다가 많은 수가 죽는다고 한다. 이 때문에 자신이 태어난 민물을 떠난 어린 연어 중 일부만이 바다에 겨우 도착한다. 그러다가 알을 낳을 때가 다가오면 자신이 태어났던 강으로 간다. 그곳으로 가기 위해 거친 물살과 소용돌이를 거슬러 올라가면서 높이가 3M나 되는 폭포도 뛰어넘는다고 한다. 그러면서 곰이나 낚시꾼들과 오염수를 피해 수천km를 헤엄쳐서 강 상류에 도착하면 연어의 몸은 이미 거슬러 올라오면서 생긴 상처들로 가득하다. 그렇게 알을 낳고 연어의 생은 마감한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 어떤가? 연어가 태어나고 바다에 가는 것도 쉽지 않은데, 자신의 대를 이어가기 위해 살았던 곳으로 거슬러 도착하는 것 또한 어떤 상황이 닥칠지 모르는 험난한 과정들을 겪어야한다. 이토록 어렵게 살아가는 연어를 생각할 때마다 입 안에서는 눈물이 가득해진다.
오늘 말씀의 본문은 디도서이다. 디도서 배경은 이렇다. 크레타 섬에 사는 디도에게 바울이 쓴 편지이다. 디도가 살았던 곳은 그레데, 요즘 말로 크레타 섬이다. 현대에도 크레타섬은 관광지로 정말 유명하다. 편지를 쓴 당시 디도가 살았던 크레타 섬의 상황은 성적인 타락과 폭력, 거짓말쟁이로 가득한 곳이었다. 그리하여 크레타섬 사람 같다는 말은 곧 거짓말쟁이라고 불릴만큼 거짓말이 난무한 곳이다. 자신들이 사는 곳이 어린 제우스가 살았던 섬이라고 자부하면서 여자들을 유혹하고 거짓말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취하는 제우스를 자랑스럽게 여겼다. 또 그 곳에 살고 있던 크레타섬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은 잘못된 가르침으로 할례를 강조하며 율법을 지켜야 구원을 얻는다고 가르치면서 은혜의 수단이 아니라 자신들이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 지도자 자리에 앉아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사도 바울은 제우스와 예수님은 완전히 다른 분이고, 술을 즐겨하지 말며, 폭력하지 말고, 할례와 율법을 통해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로 얻음을 디도를 통해 크레타 섬 사람들에게 거룩함을 쫒아 잘못된 가르침을 전하는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을 꾸짖으며 복음의 올바른 교훈을 전하라고 말한다.
요즘 시대도 바라보면 어떤가? TV프로그램에서도 결혼을 하지 않은 두 남녀가 1박2일 여행으로 놀러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시대 아닌가? 혼전순결을 지키는 사람을 놀리고 바보같다며 조롱한다. 그러면서 대부분 남자친구와 여행을 가기 위해 부모님께 어쩔 수 없이 거짓말을 하게 된다. 뉴스를 보게 되면 묻지마 폭행이나 칼부림 등 영화 범죄도시만 보더라도 우리 사회에 멀지 않게 주변에서 물리적 폭력 뿐만 아니라, 언어폭력도 쉽게 일삼는다. 내가 청소년기 때에도 친구들 사이에 욕이 없으면 대화가 안됐었다. 요즘 시대에도 마찬가지라면 참으로 가슴 아픈 현실이다. 세상의 사람들의 인스타그램을 보게 되면 술이 빠지지 않을만큼 술을 좋아하는 시대이다. 우리는 이러한 세상 속에서 어떻게 그리스도인으로써 거룩한 삶을 살아야할까? 그전에 거룩함이란 무엇인가? 세상과 구별됨이다. 세상과 구별된다는 것은 어디 산 속에서 혼자서 예배하며 살아가는 삶이 아닌 세상 속에서 사람들과 함께 있지만 세상과 완전히 다른 하나님 말씀을 삶의 기준 삼는 가치관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원래 거룩하다는 표현은 하나님 밖에 사용할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 하나님과 같은 분이 없으시기 때문이다. 그 하나님은 온 세상을 지으시고, 만물을 다스리시고, 하나님보다 강한 존재가 없는 유일한 분이다. 그러니 오직 주님만이 거룩하시다. 그러나 우리에게도 주님이 명령하신다. 레11:45
레위기 11:45 NKRV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거룩은 즉 선 그 자체이시고, 죄가 아예 없으신 주님을 닮아 우리도 죄에서부터 완전히 분리되는 삶인 것이다. 더 나아가 죄를 미워하는 하나님을 닮아가는 삶, 주님 안에 거하는 것, 어두운 세상에서 빛이신 주님께 들어가 살아가는 것,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하며 말씀대로 순종하는 모습이 우리가 지켜야할 ‘거룩’이다.
그렇게 거룩한 삶은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절제하며 경건하며 신중해야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무분별한 세상에서 여러 가지의 소리에 받아들이기 쉽다. 또한 사람들은 좋은게 좋은거라며 자신의 만족을 위해 살아가는 것을 적극적으로 지지한다. 혼전순결도 술도 마찬가지이다. 세상 사람들은 가치의 기준을 자신들이 좋다고 생각대로 살아간다. 그러나 예수님을 따라가는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살아간다. 나중에 연애에 대한 설교 시리즈로 함께 자세하게 이야기하고자 한다. 우리는 왜 혼전순결을 해야하는가? 그것은 곧 우리가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거룩하고 신실하게 믿음을 굳건히 지키며 세상을 따라가지 않기 위해 그 날을 기다리는 것처럼, 혼전순결은 앞으로 만날 배우자는 누구인지 모르지만, 결혼할 배우자와 함께할 시간들을 위해 스스로 성욕을 절제하며 결혼하기 전까지 하나님이 짝주어주실 배우자를 기다리는 것이다. 왜냐하면 결혼은 부부라는 것은 한 몸이 되는 것, 가정의 연합이기 때문에 성관계는 오직 결혼을 한 부부를 위한 것이다. 그렇기에 연애할 때 입맞춤 또한 신학적으로, 정치적으로도 연합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연애 중일 때 입맞춤과 성관계는 안되는 것이다. 결혼을 준비하는 단계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드라마나 영화에서 주인공이 연애를 하는 장면에서 키스신을 보고 아름답다고 감탄할 것이 아니라 성경하고 반대되는 것을 하고 있다고 바라보아야 한다. 미디어에 속지 말길 바란다. 그렇기에 우리의 행동은 신중하며 절제와 경건하기를 힘써야한다.
술도 마찬가지이다. 어떤 학생이 나에게 그리스도인은 술을 마셔도 되냐고 물어보았다. 대부분 그 질문에 이미 술을 마시고 싶다는 마음의 전제가 밑바탕에 깔려있다. 어떠한 사람도 농약이나 청산가리를 먹어도 되냐고 물어보는 사람은 없다. 왜냐하면 먹으면 죽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디도서를 읽다보면 술을 즐기지 말라고 한다. 또 술의 노예가 되지 말라고 한다. 중독은 심리학에서 무언가에 매이고 묶인 것, 즉 무언가의 노예라고 표현한다. 우리가 술을 마시고 싶다고 생각이 들었다는 것은 이미 그곳에 마음이 간 것이고, 그러면서 호기심이나 알고 싶어하는 마음이 생길 것이다. 이것을 성경에서는 정욕이라고 한다. 정욕은 욕심, 탐심, 갈망을 뜻한다. 그 술에 대한 마음이 이미 술의 노예의 첫 단계라고 볼 수 있다. 예수님을 만나고 그를 사랑하기로 작정하면 주님에 대해 알고자 하는 것 처럼, 그렇기에 20살이 되는 고3친구들은 술에 대한 갈망이 아닌 하나님을 더 알아가고자 하는 거룩한 갈망이 넘쳐나길 소망한다.
에베소서 5:18 NKRV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나의 사촌형이 할머니 장례식에서 술을 먹지 않는 나에게 왜 술을 먹지 않냐고 물어보았다. 술먹으면 기분도 좋아지고, 사람들과 금방 친해질 수 있으면서 분위기도 좋게 만드는데 도대체 왜 교회다니는 애들은 술을 안먹냐고 말이다. 나는 형의 그 말을 전적으로 동의했다. 술을 먹으면 사람이 기분이 좋아지는 것 같아 보였다. 그러면서 사람들과 어색해서 못했던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 분위기도 열심히 술게임하면서 재밌게 노는 것 같아 보였다. 그러다 집가는 길에 비둘기에게 밥도 주고, 다음날 고통스럽게 일어나는 모습을 드라마나 영화에서 많이 등장한다. 그렇게 형에게 한마디를 했다. 술 마시는 것보다 더 좋은게 있는데 그것은 성령충만이다. 여러분이 수련회에서 셀러브레이션으로 경배와 찬양을 할 때의 모습이 성령충만한 모습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여러분이 술을 마셔서 그렇게 기쁘게 찬양한 것인가? 아니다. 술 없이도 우리는 이미 어마어마한 기쁨을 누렸다는 것을 보았고, 몸소 경험을 해보았다. 그렇게 세상이 줄 수 없는 기쁨을 하나님께서 이미 성령님을 통해 우리에게 주셨다는 것을 기억하기 바란다. 여러분은 이 세상의 잠깐의 쾌락을 선택할 것인가, 주님이 주시는 영원한 기쁨을 선택할 것인가? 이 세상의 화려한 물질을 소유하고자 하는가, 영원히 무너지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하고자 하는가? 세상 사람들과 같이 술의 취함을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성령으로 취할 것인가?
디도서 3:2–3 NKRV
아무도 비방하지 말며 다투지 말며 관용하며 범사에 온유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낼 것을 기억하게 하라 우리도 전에는 어리석은 자요 순종하지 아니한 자요 속은 자요 여러 가지 정욕과 행락에 종 노릇 한 자요 악독과 투기를 일삼은 자요 가증스러운 자요 피차 미워한 자였으나
오늘 읽었던 본문에서는 사도바울이 아무도 남을 헐뜯거나 욕하지 않고 모든 사람과 사이좋게 지내며 부드럽고 공손하게 대하도록 가르치라고 한다. 우리는 어느 누구도 잘못에 대해서 비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왜냐하면 예수님 조차도 잘못한 사람을 정죄하시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또한 하나님을 만나기 전에는 불순종한 사람이었다. 예수님께서는 누군가를 음란한 생각으로 바라본 것도 이미 마음속으로 그 사람과 간음한 것이고, 누군가를 미워하는 것은 살인한 것과 같다고 했다. 어떤 목사님은 지나가는 여자를 보고 예쁘다고 생각한 것 또한 간음한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나는 연예인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아름답게 창조해주신 것을 볼 수 있어서 감사하다고 영광 올려드린다. 이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기 전에는 누구나 순종하지 않고 잘못된 행동을 하며 육체의 즐거움을 따라 세상 일에, 학업에 노예처럼 살았고, 악한 일을 하면서 남을 미워하고 질투하며 살았던 사람들이었다.
디도서 3:4–5 NKRV
우리 구주 하나님의 자비와 사람 사랑하심이 나타날 때에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되었을 때, 예수님을 만났을 때, 나의 어떤 의로운 행위로 구원을 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불쌍히 여기셔서 그의 선물로 구원함을 얻었다. 여기서 중생의 씻음이란 거듭남이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죽으시고 다시 사셨기 때문에, 예수님이 우리를 너무나 불쌍히 여기셔서 그 귀하신 피 값으로 우리는 죄씻음을 받아 주를 믿는 모든 자에게 그리스도인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주셨다. 이는 곧 내가 잘먹고 잘살기 위해서 살던 사람이 주님을 위해서, 교회를 위해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살기로 결단하며 살아가는 삶이다. 그러니 나는 완전히 죽고 예수님을 위해 사는 삶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 얼마나 기쁜 일인가? 613개의 율법을 완벽하게 지킬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이 세상 어느 누구도 마음으로 짓는 죄까지 생각한다면 율법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 밖에 없다. 그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예수님이 율법의 완성이시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우리는 율법을 지켜야, 교회 생활을 잘해야, 경건 생활을 잘해야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 구원을 받은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고 싶어하고,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섬기고 싶어하고, 경건 생활을 하려고 하는 것이다. 예배를 드려야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고, 구원받은 백성은 예배하고 싶어한다. 우리가 누군가와 연애하고 싶어할 때 데이트를 해야 마음이 생기는 것인가? 아니다. 호감이 먼저 생겨야 관심이 생기고, 데이트를 하고 싶어지고 알아가면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며 함께 있고 싶어진다. 이처럼 신앙생활하는데 있어, 우리의 마음이 어디를 향해 있는지 점검해보아야하고, 사랑의 마음을 예수님께 온전히 쏟아내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소망한다.
디도서 3:6–7 NKRV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그 성령을 풍성히 부어 주사 우리로 그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상속자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에수님이 승천하시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선물로 성령님을 주셨다. 우리 구주 예수님을 통해 우리에게 이 성령님을 풍성히 주셔서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도록 하신다.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는 성령을 통해 영원한 생명을 소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성령님을 우리에게 풍성히 부어지신 이유가 무엇인가? 공동체 안에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기 위한 것이다. 세상의 어떠한 강력한 왕도 영생을 얻지 못했다. 중국의 진시황도 영생을 얻기 위해 불로초를 전세계적으로 찾아다녔지만, 그는 무덤에 묻혀있다. 세상에 어떤 통치자도 힘이 쎈 사람도 대국을 이뤘던 국가도 결국에는 멸망한다. 그러나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무덤이 없으시다. 이처럼 어느 누가 예수님보다 강력하다고 증거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그런 주님께서 주님을 따르고 믿는 우리에게도 영원한 생명을 주셨고 무너지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는 일, 그 역사 안에 우리가 있음을 기뻐하고 감사하며 기억하길 원한다.
디도서 3:8 (NKRV)
이 말이 미쁘도다 원하건대 너는 이 여러 것에 대하여 굳세게 말하라 이는 하나님을 믿는 자들로 하여금 조심하여 선한 일을 힘쓰게 하려 함이라 이것은 아름다우며 사람들에게 유익하니라
내가 군생활하던 때에 기독교를 혐오하는 동기가 있었다. 나와 일과를 매일 보내서 자주보는데 목사님이 꿈이 나에게 항상 기독교는 진짜 재수없다며 손사래를 쳤다. 나는 그 친구가 기독교를 혐오하는 것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다. 어느 날부터 그 친구와 헬스를 시작했는데, 나는 단지 동기가 정말 몸이 좋아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가득했다. 항상 그가 운동 목표에 성취하면 함께 기뻐하고, 달라진 몸의 변화에 진심으로 축하하면서 오히려 내가 덩달아 신났다. 그렇게 기독교를 혐오하던 동기가 일년이 지나고 어느 날 갑자기 나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여전히 기독교를 싫어하지만, 기독교인이 다 형같으면 교회 다녀보고 싶긴해.” 그때 나는 깨달았다. 나의 행동이 곧 교회라는 것이다. 여러분이 만나는 믿지 않는 사람은 여러분을 보고 교회를 생각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내가 교회를 다닌다는 것을 안다면 우리의 행동을 조심하여야 한다.
오늘 말씀의 제목은 ‘활어가 맛있는 이유이다.’ 활어의 뜻이 무엇인가? 살아있는 생선이다. 여러분은 활어회를 먹었을 때, 맛이 어땠는가? 짠맛이 아니라 감칠맛이 넘친다. 그러나 죽은 생선의 부패 방지를위해 무엇을 뿌리는가? 소금을 친다. 그러면 생선구이를 먹을 때 짠맛이 난다. 그러나 아무것도 치지 않고 그냥 가만히 냅두면 어떻게 되는가? 썩은 비린내와 악취가 가득할 것이다. 음식을 할 때도 가장 중요한 것은 재료의 신선도이다. 제 아무리 유명한 쉐프가 요리를 한다고 해도 음식이 신선해야 본연의 맛을 느낄 수가 있는 것이다. 요리를 해본 사람들은 공감을 할 것이다. 여러분은 갓잡은 생선이 맛있겠는가? 아니면 1년 냉동한 생선이 맛있겠는가? 당연히 갓잡은 생선이 가장 맛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신선하기 때문이다. 또 그 물고기들은 물살에 따라 사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거친 물살을 이겨내며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죽은 물고기는 물살에 둥둥 떠다닐 뿐이다. 그러면서 악취와 함께 썩어 없어지는 것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도 마찬가지이다. 살아있는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맛을 내고 아픈 세상의 사람들과 함께 기쁨을 누리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세상과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지 않고 세상의 가치관대로 살아간다면 죽은 물고기처럼 물살에 따라 둥둥 떠다니며,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향기가 아니라, 세상의 썩어질 향으로 가득하게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거룩함이란 다시 한번 이야기하지만, 세상의 거친 물살 속에서 저항하며 죄와 어두움 안에 사는 것이 아니라 빛과 생명 안에 살아가는 삶이다. 그렇기에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은 세상을 저항하는 사람들이다.
서두에 이야기했던 연어 이야기는 결국 알을 낳으려고 작은 생명들을 위해 자신이 먼 바다에서 자신이 살았던 고향으로 험난한 여정을 겪어가며 살아가다가 끝을 맞이한다. 이처럼 그리스도인 또한 마찬가지이다. 저 부패한 세상 속에서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온유함과 인내함으로 참 생명이시고, 복음이신 예수님을 전파해야하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과 깊은 관계를 맺다보면 그들이 필요한 것을 알게 된다. 그럴 때 내가 잘되기 위해서 살아가는 삶이 아니라 믿지 않는 친구가 정말 잘되기를 기도하고, 무엇보다 영생을 함께 소유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들을 바라보아야한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처럼 남을 미워하고 욕하고 헐뜯고, 다투는 모습이 아니라 밉더라도 내 힘으로 그들을 사랑할 수 없기 때문에, 이전에 주님께 불순종했던 우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미워하는 친구를 용서할 수 있는 마음을 달라고, 그들이 하나님을 알고 함께 주님을 예배하는 날이 속히 오도록 기도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세상 사람들에게 모든 일에 부드럽고 친철하게 대할 때, 참 하나님의 자녀다운 모습으로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삶인 것이다. 세상 가운데, 내 주변 이웃들에게 지금도 살아계시고 선하신 하나님의 은혜의 맛을 풍성하게 나타내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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