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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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의 길이 다르다
각자의 길이 다르다
지난 주 오후예배 때 여러분이 있어서 후덜거리지 않을 수 있었어요. 그래서 꼭 고맙다고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고마웠어요!
(쉬고)
오늘은 특별히 고등부 ing 찬양팀에서 우리와 함께 예배를 드리게 되었어요. 수련회 끝난지 얼마 안되서 가장 뜨끈뜨끈 할 때인데, 그 은혜를 함께 나누어주어서 ing에게도 고맙다고 이야기 하고 싶어요.
(쉬고)
9-10월달은 야곱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나누면서 야곱이라는 한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 앞에서 변화되어갔는지를 살펴보려고 해요.
야곱의 삶을 통해 저와 여러분의 삶을 돌아보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깨닫는 시간들이 되었으면 해요.
(쉬고)
오늘은 야곱 이야기를 하기 전 프롤로그 형식으로 야곱의 아버지였던 이삭의 삶에 대해 나누려고 해요.
아버지 아브라함과 아들 야곱 그리고 손자 요셉에 대한 이야기는 성경에 굉장히 길게 기록이 되어 있는데, 이상하게도 이삭에 대한 이야기는 짧아요.
아브라함의 약속을 이어받은 자녀이면서, 또한 아버지의 손에 죽을뻔한 자녀이기에 굉장히 큰 역할을 감당해야 할 사람처럼 보이는데 그에 대한 기록이 별로 없어요.
기록은 별로 없지만 사실 이삭도 굉장히 중요하고도 독특한 삶을 살았고, 우리에게 던져주는 메시지가 꽤나 강렬해요.
이삭의 삶을 통해 한주를 살아갈 힘이 여러분에게 주어지는 이 시간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쉬고)
이삭이 아버지 아브라함의 인생과 비슷한 길을 걸어갔다는 것 알고 있나요?
그도 아버지처럼 자녀를 낳지 못했어요.
창세기 25장 21절 “이삭이 그의 아내가 임신하지 못하므로"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처럼 아이를 낳지 못했어요.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 약속의 땅에 왔는데, 꽃길만 걸을 것 같았던 그의 앞에 펼쳐졌던 것은 흉년이었어요.
축복을 기대하고 왔는데 그에게 주어진 것은 nothing 아무 것도 없었어요.
이삭은 선택권 없이 아버지에게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에서 살게 되었어요. 태어나보니 광야였어요. 시간이 지나 아브라함이 그랬던 것처럼 흉년을 만나게 되죠.
이 흉년은 거의 100년만에 일어난 큰 사건이었어요.
아버지 아브라함이 약속에 땅에 도착했던 나이가 75세였는데, 그 때 흉년이 있었고, 175세가 되어 아브라함이 죽은 이후 흉년이 또 생긴거죠.
아브라함은 흉년을 맞았을 때 애굽으로 도망을 갔어요. 이삭은 아버지에게서 그 이야기를 들었었고, 아버지처럼 애굽으로 가려고 준비를 하고 있었어요.
그 때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애굽으로 가지 말고 그랄로 가서 머물러라! 라고 말씀하셔요.
하나님은 흉년이라 해도 약속의 땅에 그가 머물기를 바라셨던 것이죠.
(쉬고)
사실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에요.
약속의 땅에 흉년이 생겼어요. 애굽을 가면 먹을 것이 있어요.
일반적이라면 먹을 것이 있는 곳으로 이사를 가야하잖아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흉년이 든 땅에 있어야 한다. 그랄로 가라.” 라고 말씀하세요.
그랄에 먹을 것이 있었을까요?
어차피 그 땅이 그 땅이에요. 똑같이 흉년이고 먹을 것이 없는데 하나님은 일반적이지 않은 말씀을 하고 계셔요.
(쉬고)
왜 하나님은 그에게 애굽으로 가지 말고 흉년이지만 약속의 땅에 머물고 있으라고 하셨을까요?
(쉬고)
아브라함은 믿음의 1세대 였어요.
애굽으로 내려갈 때 하나님께 묻지 않았고, 그 곳에서 아내를 누이라 속이며 왕에게 넘기면서 위험에 처하기도 했어요.
아브라함은 믿음을 삶으로 살아내는 책임을 갖고, 우당탕탕 했지만 믿음을 키워 나갔어요.
이삭은 믿음의 2세대에요.
아버지가 살았던 삶들을 듣고 복기하면서 그가 지켜낸 믿음을 이제는 잘 간직해야하는 세대에요.
3세대. 자신의 자녀들에게 그 신앙을 물려주어야 하는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맡았어요.
하나님은 그가 약속의 땅을 떠나지 말고, 흉년이지만 그 속에 일하실 하나님을 이삭이 지켜보기를 원했어요.
왜냐하면 아직 하나님은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었지, 이삭의 하나님이 아니었거든요.
하나님을 나의 구세주로, 나의 신으로 고백하지 않은 상황이었거든요.
이삭이 신앙을 다음세대에 물려주려면, 아버지의 하나님이 아닌,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하는 것이 필요했어요. 하지만 아직 이삭은 하나님에 대해 듣기만 했을 뿐, 간접적으로 체험했을 뿐 본인이 인격적으로 직접적으로 만나지는 못한 상태였어요.
(쉬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셔서 그랄로 가기는 하지만 이삭에게는 확신이 없었던 것 같아요.
‘여기나 저기나 먹을 것이 없는 것은 똑같은데 왜 가라고 하시는 것일까?’라는 불확실한, 그리고 해결되지 않은 마음으로 순종을 하려고 했어요. 그 때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세요.
3-4절 같이 읽어볼까요?
“이 땅에 거류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내가 네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어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하게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하셨던 그 말씀이 지금 이삭에게 전달되고 있어요. 아버지에게만 주셨던 언약이 재확인되고 있는거에요.
이삭의 마음이 어떠했을까요? 기쁘지 않았을까요?
굉장히 불확실한 미래 속에서, 그랄 땅으로 이사를 가야 하는데 하나님께서 아버지에게 하셨던 그 약속을 지금 본인에게 직접하고 계시잖아요.
아버지 아브라함이 고향을 떠나 불확실한 미래였지만 하나님만 붙들고 약속의 땅에 온 것처럼, 이삭도 동일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하나님께 듣고 있는거에요.
(쉬고)
하지만 그 약속이 지금 흉년을 해결하고 먹을 것을 많이 주는 것은 절대 아니죠.
그 약속이 이루어질 때까지 이삭은 그 땅에서 외국인으로 살아야 해요. 약속이 언제 이루어질지도 모르기에 기약 없이 차별을 받으며 살아야 했어요.
하나님을 만난 이삭은 이제부터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나가는 싸움을 하며 살아야 해요.
아버지가 그리했던 것처럼 이삭도 믿음에 대한 공격이 시작될 것이고, 불확실한 미래 속에서 하나님을 붙잡는 치열함이 생길거에요.
(쉬고)
이건 사실 우리의 삶과 똑같아요.
예수님을 믿고 구세주로 고백한 순간부터, 익숙했던 것들이 거북해지기 시작했을 것이고 너무나 당연하게 익숙하게 해왔던 것들이 죄라는 것을 알게 되었잖아요.
인격적으로 그 분을 만난 순간부터 우리는 절대 세상에서 편안하게 살 수 없는 존재들이 되어버렸어요.
세상은 우리를 주목하고 있고, 언제든 비난하고 무너뜨리려고 혈안이 되어 있거든요.
(쉬고)
이삭이 믿음에 대한 공격을 받는 것처럼 저도 여러분도 매일의 삶 속에서 내 믿음을 뒤흔드는 공격들을 받게 될거에요.
(충분히 쉬고)
하나님이 아무리 약속하셨어도, 삶은 해결되지 않았어요.
“이삭아. 너 애굽으로 가지 말고 그랄로 가라"
“OO아. 너가 생각하는 그 것 아니야. 잠시 멈춰 그리고 기다려. 내가 해결할게"
(쉬고)
정말 이 말씀을 믿고 싶지만 내 눈 앞에 현실은 그대로이기에 사실 그 것을 믿고 신뢰하는 것은 쉽지 않다는 것이죠.
하나님께서 왜 애굽이 아닌 그랄에 있으라고 하셨을까요?
(쉬고)
하나님은 지금 이삭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거에요.
“기꺼이 고난을 선택하라"
“그 길이 험난해 보이고, 광야와 같아 보인다 해도 나랑 함께 하면 된다"
“믿음의 싸움을 하라. 그러면 내가 너의 방패와 상급이 되어 주겠다"
(쉬고)
저는 믿음을 고난.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생각해요.
믿음의 가치를 좇는 것은 어려울 수밖에 없어요.
저와 여러분이 죽을 때까지 붙들고자 하는 그 가치는 세상의 가치와 다른 것이기 때문에, 세상이 말하는 기준을 역행하는 것이거든요.
하나님의 흔적을 지워가는 세상 속에서,
하나님이라는 가치를 붙는다는 것.
과학으로 신은 없다를 증명하려고 하는 세상 속에서,
이성적으로 모든 것들을 판단하는 세상 속에서,
이성을 아득히 뛰어넘는, 설명할 수 없는 가치를 믿겠다 라는 것의 의미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기꺼이 고난을 선택하겠습니다.” 라는 것이거든요.
하지만 우리는 그 고난을 받고 싶어하지 않아요. 고난 없이 신앙 생활하기를 바라죠.
(충분히 쉬고)
이삭이 드디어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어요. 그래서 그 말씀에 의지해서 그랄로 갔어요. 하지만 그 곳에서 마주한 삶은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았어요.
하나님을 의지하고 간다! 라는 그의 입술의 고백과 마주한 삶의 고백이 달라지기 시작해요.
세상을 보고 또 다시 흔들려요.
(쉬고)
이 대목을 주목해야 해요. 저도 여러분도 결단만큼, 기도한만큼 살아내지 못할 때가 많죠.
왜요?
“한 번의 결단이 나의 믿음을 보장하지 않기 때문”이에요.
이삭은 지금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는 마음 상태에요.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고, 아버지에게만 선포되었던 하나님의 약속이 지금 자신에게 계승이 되었단 말이에요.
“세상아 덤벼라!!! 1도 무섭지 않아!!!”라고 외치면서 그랄로 갔단 말이에요.
결단과 외침으로 그랄에서 만나는 모든 일들을 다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쉬고)
그가 그랄에 도착하자마자 한 일이 뭔줄 아세요?
7절. “그 곳 백성이 리브가로 말미암아 자기를 죽일까 하여 그는 내 아내라 하기를 두려워함이었더라"
“야 다 덤벼!!”하고 가놓고 “리브가는 제 아내가 아니라 누이에요.”라고 자기 살자고 거짓말을 하고 있어요.
“한번의 결단이 나의 믿음을 보장하지 않는”거에요.
(쉬고)
그렇기 때문에 절대 좌절하면 안돼요.
여러분이 예배를 통해 받은 은혜대로 결단하고 나갔는데, 말씀대로 살지 못한다고 해서 좌절하거나 넘어져서 “나는 쓰레기야"라고 하면 안돼요.
왜냐하면 믿음은 “끊임없는 위기 속에 하나님을 붙잡고 싸워나갈 때 비로소 자라기 때문"이에요.
어떠한 저항 없이 믿음은 자라지 않아요.
이삭과 저 그리고 여러분은 믿음의 단계를 밟아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꼭 기억하고 좌절하지 마세요.
비로소 이삭의 하나님을 만나다
비로소 이삭의 하나님을 만나다
13절.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여기에서 말하고 있는 ‘왕성하다"라는 뜻은 “계속 진행되는 상태"를 의미해요.
결단 해놓고 바로 실패하고 넘어진 이삭에게 하나님께서 “계속해서 복을 주고 계신다.”라는 거에요. 하나님께서 우리가 결단한데로 살지 못한다는 이유로 복을 거두어 가는 분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거죠.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삶을 계속해서 살아가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믿음을 포기하지 않고 붙잡으려는 사람"의 인생을, “약속의 땅을 떠나지 않고 나그네로 살면서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기로 작정한 사람의 인생"을 책임지고 계신다는거죠.
하나님께서 그를 계속해서 “왕성하게 만들자" 원래 그 땅에 살던 사람들의 반응하기 시작해요.
14절. “블레셋 사람이 그를 시기하여”
블레셋 사람들의 기준에서 지금 이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아요. 양을 치는 목축업을 하던 이삭이었던 말이죠. 농사를 지어본 적 없는 그가 농사에 도전했는데, 100배의 결실을 맺은거에요.
블레셋 사람들의 기준으로 “저렇게 농사를 지으면 백퍼 망해야 해요"
그런데 100퍼 망하기는커녕 100배의 결실을 맺는 이삭을 보면서 충격을 받았고 그 것이 곧 시기 질투로 이어지게 된 것이죠.
(쉬고)
그래서 그들의 우물을 막아버리기로 선택해요. 아버지 아브라함이 제 값을 주고 사서, 이젠 이삭의 소유가 된 우물을 막아버리고 “우리보다 크게 강성해졌으니 떠나라!”고 반협박을 해요.
16절의 말씀처럼 이삭이 정말로 블레셋의 왕보다 강해졌을까요?
이삭이 100배의 결실을 맺었어도 아직 그는 한 가정에 불과해요. 하지만 블레셋의 왕은 블레셋 전체를 다스리는 사람이죠. 아무리 이삭이 강성해졌어도, 아비멜렉보다 강해질 수 없어요.
그런데도 아비멜렉은 “우리보다 커졌으나 떠나라!”라고 이야기해요.
(쉬고)
지금 이삭이 우리보다 강하다가 아니라, 앞으로 그가 더 강해질 것이라 예상하고 먼저 떠나라고 이야기 한 것이죠.
그래서 이삭은 그랄을 떠나 블레셋의 직접적인 영향권을 벗어난 그랄 골짜기로 이주하고 거기에서 15년을 살아요. 사람들이 살려면 물이 필요하기에 우물을 파고 그 이름을 18절. “그의 아버지가 부르던 이름으로 불렀어요"
이스라엘 문화권에서 이름은 곧 그 사람 혹은 사물의 본질을 의미한다는 인식이 있었는데, 이삭이 아버지가 불렀던 이름으로 그 우물을 불러요.
이 것은 비록 하나님의 약속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여전히 나그네로 살아가고, 삶은 변하지 않았지만 하나님을 신뢰하겠습니다.
아버지의 하나님이 아닌,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라는 고백이에요.
(쉬고)
그런데 문제가 생겨요.
그랄 골짜기에 살던 목자들과 이삭의 목자들 사이에 다툼이 일어나는데, 이 것은 단순한 언쟁이 아니라 치고 박고 싸우는 실제 싸움이에요.
상황과 환경은 바뀌지 않지만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나그네로 살아가던 이삭이 터전을 빼앗기고 다시 이사를 가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이죠.
정당하게 땅을 파는 노동의 댓가로 얻게 된 우물을 다시 빼앗기게 되어요.
다른 곳으로 이동해서 땅을 파서 우물을 다시 얻어요.
그런데 또 거기에서 싸움이 일어났어요. 너무나 억울했지만 이삭을 싸우지 않고 피해서 또 다른 곳으로 가 우물을 파요. 그리고 거기서 또 우물이 터져요.
첫번째 빼앗긴 우물은 다툼이라는 의미의 에섹
두번째 빼앗긴 우물은 사탄의 어근이 되는 대적, 원수라는 의미의 싯나
세번째 우물은 장소가 넓다라는 의미의 르호봇이라는 이름을 지어요.
(쉬고)
굉장히 억울하고 말도 안되는 상황을 계속 겪게 되어요. 하나님을 믿는 것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굳이 믿어야 하나? 라는 생각이 드는 삶을 살고 있어요.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것은 시간낭비이다. 라고 생각해도 할 말 없는 이 사건들을 통해 이삭이 깨닫게 된 것이 있었어요.
(쉬고)
여러분 사막에서 우물을 파는 것이 쉬울까요? 그냥 땅을 파면 물이 콸콸콸 쏟아질까요?
이삭은 너무나 억울했지만, 참고 육적인 다툼을 피해 다니며 우물을 팠는데, 파는 곳마다 잭팟이 터지는거에요.
아무리 100배의 결실을 맺는 기적을 보았다지만, 우물은 이성으로 해석이 되지 않는 문제에요.
손을 대는 곳마다 물이 쏟아진다는 것은 둘 중 하나겠죠.
수맥탐지 능력을 가졌거나 혹은 누군가의 개입이거나.
(쉬고)
이삭은 이해할 수 없는, 불확실한 미래를 걸어가면서 순간순간 일하시며 개입하시는 하나님이라는 존재를 삶에서 만나게 된거에요.
맨날 자빠지고 버둥거리고 말씀대로 살아가지 못하고 또 이런 나를 사랑하실까? 라는 의문이 계속해서 있었지만, 그럼에도 그 길을 포기하지 않고 걸어간 것이죠.
더디더라도 내딛는 그 한걸음 한걸음을 하나님께서 주목하고 계셨던거에요.
저와 여러분이 걷고 있는 그 길이 바로 이삭이 걸었던 길이에요.
(쉬고)
우리도 신앙의 길을 걸어가며 하나님이라는 존재를 매일 알아가고 있는거에요.
그렇게 우리의 믿음도 매일 매일 성장하고 있는거죠.
(충분히 쉬고)
25절. 세번째 우물을 확보한 이삭은 브엘세바로 내려가서 하나님 앞에 제단을 쌓고 그 분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해요.
브엘세바는 아브라함이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장소이자, 이삭이 처음으로 제단을 쌓은 곳이에요.
처음으로 그가 제단을 쌓았어요.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한다는 의미를 깨달았고, 깊이 체험한거에요.
아브라함의 신앙이 이삭에게 이어졌고, 이삭의 신앙이 되었어요.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여기까지 오면서 이삭은 아무 것도 하지 않았어요.
에섹과 싯나, 르호봇에 이르기까지 그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계속 마주했고 다투었고 미움을 받았어요.
억울했어요. 가서 따지고도 싶었고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었어요.
대나무 숲이, 에타가 필요했어요.
하지만 이삭은 다툼을 피하고 조용히 하나님을 찾는 것을 선택했어요.
에섹!! 싯나! 라고 외치며 그 자리를 피할 수밖에 없었어요.
자신의 가족을 먹여 살리는 그 우물들을 두고 떠나면서 “다투었다" “이 대적놈들!!”라는 이름을 붙였어요. 얼마나 억울하고 답답했겠어요.
하지만 그는 싸우지 않았어요.
(쉬고)
브엘세바에서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하자 블레셋의 왕과 친구 그리고 군대 장관이 찾아와요.
블레셋 왕이 “떠나라고 했고" 블레셋 사람들의 의해 “우물을 두번 빼앗겼어요”. 이제 그들의 왕과 군대 장관이 찾아왔어요.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지금까지의 상황들을 보면 “또 쫓겨나게 되겠죠"
긴장하고 있는 이삭에게 그들이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해요.
28절. “우리가 분명히 보았다"
29절. “이제 너는"
여호와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는 것을 내가 주목해서 지켜보았는데,
“너의 뒤에 있는 그 하나님이 너무 두렵다"
“우리와 평화 조약을 맺자"
“여호와께 대단한 복을 받은 사람이 너라는 것을 이젠 확신"한다.
(쉬고)
이삭 아무 것도 하지 않았어요.
늘 미움 받았고 빼앗겼고, 자신의 모든 노력의 댓가를 부정당하는 삶을 강제로 살아야 했어요.
갑작스럽게 급변하는 상황들을 이해 할 수 없었어요.
그의 속은 늘 불편했고 억울함으로 가득 차 있었고 낙심으로 가득 차 있었어요.
하지만 그는 속에선 욕하고 싸웠을지언정, 그 상황을 만들어 낸 사람들하고 다투지 않았어요.
(쉬고)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에요.
갑작스럽게 급변하는 상황들을 마주할 때가 있고, 싸우고 싶을 정도로 답답함이 찾아올 때가 있고, 내 마음을 쏟아내고 싶을 정도로 울고 싶을 때도 있어요.
여러분 그 때 “사람들의 말에 휘둘리지 마세요" “상황에 휘둘리지 마세요"
(쉬고)
휘둘리면 나만 아플 뿐이에요.
상황을 만들고 나를 힘들게 하는 그 사람들은 “내 감정에 관심이 없거든요"
그러니까 말려들지 마세요.
(쉬고)
이삭은 말려들지 않았어요.
그리고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하나님께 다 쏟아내면서 오히려 한 걸음 뒤로 물러섰어요.
잠잠히 입을 다물고 그 분만 붙잡았어요.
하나님은 이삭의 마음을 다 알고 계셨어요.
이삭이 한 발 물러나 하나님의 일하심을 붙잡기 시작하자 하나님께서 일하고 계셨음을 알게 되었어요.
(쉬고)
그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어요.
그저 묵묵히 참는 것을 선택했어요.
속이 뒤집혀도 제단을 쌓고 하나님을 불렀어요.
그랬더니 그를 괴롭히던, 힘들게 하던 사람들이 찾아와 그에게 “용서를 구했어요"
(쉬고)
지금 내가 걷고 있는 그 믿음의 발걸음이 어떤 열매와 결과를 맺을지 우린 아무도 몰라요.
믿음은 모든 일들 속에서 하나님이 행하실 것을 믿는 것이잖아요.
내 삶을 바꾸어 의미있게 만드는 것은 하나님 밖에 없어요.
(충분히 쉬고)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빼앗기고 피하는 삶을 살았을 뿐인데 하나님은 이삭의 그 믿음에 주목하셨고 그를 세우셨고 그를 통해 결과를 만들어 내셨어요.
(쉬고)
사랑하는 여러분. 저도 여러분도 마찬가지에요.
지금은 잠잠히 있을 때에요. 참을 때에요. 그리고 그 답답함을 하나님께 가져가야 할 때에요.
그러면 나도 모르게 인생의 르호봇을 고백하고 있는 여러분 자신을 발견할 수 있게 될거에요.
(쉬고)
이번 주 우리의 미션은 “아무 것도 하지 않기"에요.
핵이득 큐티 안해도 된다. 찬양도 안들어도 된다. 기도 하지 말아야지!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 없죠?
좀 불안한디..
내 마음을 헤집고 뒤집어 엎는 상황 속에
“하나님을 부르며 아무 것도 하지 않기"
“내가 일하지 않고 하나님이 일하시도록 두기" 이번주 미션이에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하나님이 일하실 자리를 내어 드림을 통해"
상황 속에서 주시는 은혜와 위로 그리고 이겨나갈 힘을 얻어내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그래서 이삭처럼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내 삶이 의미있게 변해가는 모습을 볼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소망하며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