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도문05_마06:12_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o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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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6:12 (NKRV)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라는 제목으로 하나님 말씀 증거하겠습니다.

intro

_배경 인물 상황
5살쯤 된 남자아이가 엄마랑 같이 놀이터에서 놀고 있었습니다. 플라스틱 삽으로 흙을 퍼서 그릇에 담으면서 그렇게 좋다고 웃고, 다시 그릇을 뒤집고는 재밌다고 박수를 칩니다. 그런데 놀이터 입구에 퇴근하고 돌아온 아빠가 보였습니다. 그 아이는 들고 있던 삽을 내던지고 곧장 일어나 함박웃음을 지으며 아빠~ 하고 뒤뚱뒤뚱 제깐에는 뛰어갔고, 폴짝 안겼습니다. 아빠는 피곤함도 잊은채, 하루 중에 가장 행복한 얼굴을 하고 아이가 이뻐서 어쩔줄을 몰라했습니다. 아이 신발에 한가득 묻어 있는 진흙때문에 깨끗했던 양복이 금새 엉망진창이 되었습니다. 옆에 있던 엄마는 눈살을 찌푸렸습니다. 그렇게 아무 생각없이 흙묻은 애를 안으면 어떻게 하느냐고, 한 마디 하고 싶었지만, 아빠와 아들의 모습을 보면서 한숨만 쉬었습니다.
흙묻은 신발로 아빠에게 뛰어들던 꼬마남자아이가 어느 새 목사가 되어, 하나님 말씀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처음 죄용서 받은 날
저는 25살에 교회라는 곳에 처음 관심이 생겼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그렇듯이 교회라는 종교단체에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은 넓고 재미있는 것이 지천에 널려 있기 때문입니다.
돈 쓰는 것도 재미있고, 연애로멘스는 항상 좋았습니다. 친한 친구 몇 명 끌고다니면서 골목대장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여행은 언제해도 재미있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새로운 관점을 주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미 알고 있던 것들을 다른 각도로 이해하게 될 때 재미를 느꼈습니다. 몰랐던 것을 새롭게 알아갈 때도 너무나 신났습니다. 세상이 얼마나 크고 즐거운 것들이 많은지, 아마 교회를 일찍이 알았다고 해도 세상에서 지내느라 시간이 없어서 성실히 다닐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26살에 뜻밖에도 눈에 보이지 않는 신비한 세상이 있다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때까지도 성경을 읽어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었기 때문에 그냥 차원높은 존재가 있을 수 있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구체적으로는 알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몇 날이 못되어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고, 뜬금없이 내가 저 분을 죽인 사람이라고 느꼈습니다. 동시에 그것은 잘못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누가 뭐라고 한 것도 아닌데, 내가 잘못했습니다. 내가 잘못했습니다. 저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다만 제가 잘못했으니 좀 도와주십시오. 뭐가 뭔지도 모르고 계속 사죄를 하고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누구에게 용서를 빌어야 하는지도 몰랐습니다. 왜 용서를 구해야 하는 지도 몰랐습니다. 무엇을 잘못한 것인지도 잘 몰랐습니다. 그냥 하염없이 눈물만 줄줄나고 가슴이 답답했습니다. 그 즈음에 은혜라는 단어를 실감했습니다. 덜덜 떨고있는 사람에게 위에서부터 덮어주시는 보자기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 덮어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사라는 것을 그냥 본능적으로 느꼈습니다. 보자기에 덮이니 10년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것처럼 속이 편안해졌습니다.
좀 전까지만해도 뭘 잘못했는지도 모르면서 잘못했다고 눈물이 줄줄흘렀는데, 이제는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행복감이 밀려들어오니 눈물이 줄줄흘렀습니다. 덮어주신 보자기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라는 것도 성경을 읽으면서 알았습니다.
사람과는 차원이 다른 존재가 있다는 것과, 그 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시고, 그 아버지 하나님이 저를 사랑하시기때문에 덮어주셨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기독교의 내용은 방대하지만, 가장 기본은 이 내용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아들을 못 박아 죽인 당사자인 것을 알았는가? 그리고 그 죄를 덮어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했는가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하늘 위에 올라가서 경험하는 것이 아닙니다. 영적인 다른 세상에 접속해서 깨닫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지금 내 안에서 체험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보고 하늘로 올라오라고 하시지 않고, 스스로 우리에게 내려오셨기 때문입니다.
신명기 30:11–14 NKRV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한 이 명령은 네게 어려운 것도 아니요 먼 것도 아니라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니 네가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위하여 하늘에 올라가 그의 명령을 우리에게로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들려 행하게 하랴 할 것이 아니요 이것이 바다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니 네가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위하여 바다를 건너가서 그의 명령을 우리에게로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들려 행하게 하랴 할 것도 아니라 오직 그 말씀이 네게 매우 가까워서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은즉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느니라
전환문장
주님께서는 기도하려거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라고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영원히 용서 받은 사람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내가 못박아 죽였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들입니다. 그 죄를 덮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알게 된 사람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와 여러분은 우리 각자의 경건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지 않습니다. 덮어주신 주님의 이름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누구도 저와 여러분을 죄로 책잡지 못합니다. 우리에게 죄가 없기 때문이 아니라 죄의 댓가를 치뤘기 때문입니다. 놀랍게도 죄는 여전히 우리 안에 그대로 있습니다.
깜짝놀라는 것 중에 하나가 주님을 그렇게 오래 믿었어도, 별로 변한 것이 없다는 현실입니다. 이게 맞나 싶을 정도로 진전이 미미하다는 사실에 다들 놀라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이전에는 다른 사람 면전에다 거침없이 육두문자를 쏟아내던 사람이 이제는 속으로 조용히 남들 욕하는 정도가 되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이상으로 나아가지를 못합니다.
이전에는 하나님을 믿느니 자기 주먹을 믿는다고 교만했던 사람이 이제는 개과천선하여, 예배도 드리고, 기도도 하는 좋은 사람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기 잘난 맛에 사는 본성은 바뀌지가 않았습니다.
이전에는 돈이든 건강이든 뭐든 두 손 가득, 더 가지면, 더 나아질거라고, 믿었던 허탄한 사람이, 이제는 한 손에만 갖고도 하나님 안에서 만족할 수 있는 성숙한 성도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불타는 정욕때문에 어쩔줄을 모르는 것입니다.
누가 기가막힌 노래로 표현을 했습니다. 내가 왜 이러는지 몰라, 도대체 왜 이런지 몰라.
저와 여러분은 은혜를 받고 천사가 되지 않았습니다. 은혜로 덮어놓았을 뿐이지, 여전히 세상에 사는 사람들 중에 하나일 뿐입니다. 남들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우리에게도 여전히 일어납니다. 세상 사람들이 해야 하는 일은 여전히 우리도 해야 합니다. 다만 운명이 다를 뿐이지 현실은 똑같습니다.
저와 여러분에게 있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특권은 하나님처럼 행동할 수 있는 특권입니다. 우리의 타고난 본성을 거스릴 수 있는 사람들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아들이 아버지를 어쩔수 없이 유전적으로 닮듯이, 저와 여러분은 어쩔 수 없이 하나님을 닮는 사람들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처럼 행동을 하십시오. 덮으십시오. 하나님의 덮으심에 동참을 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나를 덮으신 심정을 알기 위해서 나도 하나님처럼 다른 사람을 덮으시면 됩니다. 하나님처럼 용서하시면, 하나님께서 나를 용서하신 심정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좋아서 덮는 것이 아닙니다. 괜찮아서 용서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덮으시니까 덮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괜찮지 않으십니다. 하나님도 좋아서 덮어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덮어주는 것이 하나님의 성품이시기 때문에 참으시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은혜로 덮어주신 사람들은 반드시 고쳐내시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사람은 사람 못 고칩니다. 하나님이 고치십니다. 고치는 것은 하나님께 자리를 내어 드리고, 우리는 덮어야 합니다.
우리는 의사가 아닙니다. 내 상처든 남의 상처든, 우리는 상처를 벌리고 소금을 치는 것은 잘해도, 상처를 아물게는 잘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의사이십니다. 상처를 치료해주십니다. 부모의 사랑을 받는 것이 자식의 특권인 것처럼, 하나님께 사랑 받는 것이 저와 여러분의 특권입니다.
주님께서는 기도하려거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라고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용서하지 않으면, 하나님도 우리를 용서하지 않으시겠다는 뜻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다른 사람을 잘 용서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갈라서고, 역정내고, 관계를 끊고, 부셔버리는 것은 전문가들이지만, 화해하고 사과하는 일에는 인색한 사람들입니다.
주님께서는 이제부터라도 하나씩 해보자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덮어주셨으니, 우리도 그와같이 해보자는 것입니다. 어색하더라도 화해를 시도해보고, 인생에 몇 번 안해봤겠지만 사과도 해보고, 그렇게 함으로써 하나님께서 열어 놓으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자고 하십니다.
가서 자녀들에게 말하십시오. 잘 커줘서 고맙다.
가서 부모님에게 말씀을 드리십시오. 잘 못해드려서 죄송합니다.
그렇게 말하는 마음 안에서 율법이 완성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모이면 하나님 나라를 보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7:21 NKRV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_
하나님의 사랑은 실제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거듭났기 때문에 느낄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 사랑을 느끼는 방법은, 하나님과 비슷하게 행동하거나, 생각하다보면 어느 새 찾아들어 옵니다.
“내가 이 사람을 위해서는 죽을 수도 있겠다” 싶은 느낌이 있을 때, 나를 위해 죽는다는 주님의 심정이 이런 것이었나 싶은 것입니다.
“이 사람이 나를 속인다면, 나는 그냥 속으리라. 이 사람이 나를 배신한다면, 나는 그냥 배신당하리라 그럴지라도 나는 이 사람을 놓치고 싶지 없다”는 생각이 있을 때, 어떤 일이 있어도 나를 놓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마음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결론은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에 있는 것을 가지고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알려주십니다. 저와 여러분이 구원을 받고다 여전히 삶이 지속되고 있는 이유는, 내 이 세상 삶을 가지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게해주시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너를 사랑한다고 말씀하실 때, 종종 놀이터에서 아빠에게 흙발로 안기는 제 어린시절을 생각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사랑하시는지 그 심정을 느낄 수 있게 하셨습니다.
내가 너의 영원한 아버지라고 하실 때, 종종 육신의 아버지가 저에게 베풀어주셨던 배려와 인내, 사랑, 위로, 격려의 장면들을 생각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랑으로, 어떤 위로로, 어떤 인내와 격려로 함께 하시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주시는 것만 같았습니다.
저는 운이 좋게도, 좋은 육신의 아버지가 있습니다. 영원한 하나님 아버지를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없었던 이유는 좋은 육신의 아버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저에게 그렇다는 것입니다. 저희 어머니에게 좋은 남편이었는지는 더 생각해봐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이 많으신 아버지시라고 하셨는데, 무슨 말씀인지 쉽게 알아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사랑이 많으신 육신의 아버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랑으로 나를 용납하시는지를 심정적으로 가르쳐주실 때면, 육신의 아버지가 나를 어떻게 용납하셨는지를 생각나게 하셨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기 전에, 하나님께서 먼저 나를 사랑하셨다는 진리도 쉽게 알았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선택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서 나를 선택하셨다는 진리도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에서 쉽게 깨달았습니다.
왜냐하면 비슷한 사랑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좋은 아버지가 되십시오. 좋은 기억을 남겨주시는 아버지가 되십시오. 자녀에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심을 깨닫게 해주는 통로가 되십시오. 천국에 가면 결혼도 안하고 부모자식도 없다고 하는데, 왜 이 세상에는 부모자식이 있을까요. 하나님을 알게 되는 가장 좋은 관계이기때문이 아니겠습니까.
부모부터 시작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누구나 자식부터 시작해서 부모가 됩니다. 그래서 다 알게 되는 것입니다. 자식의 마음이 어떤지, 부모의 마음이 어떤지,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 어떤지, 하나님 자녀들의 마음이 어떤지 다 이해하고, 알고, 서로 용납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찌 육신의 아버지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같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흠이 많고 연약한 육신의 아버지 사랑과 흠없고 점도 없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같이 비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불완전한 사랑의 조각을 가지고도 얼마든지 영원한 하나님의 사랑을 가르쳐주시는 것입니다.
_갈등해결
주님께서는 기도하려거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라고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조건없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진리를 느끼고 싶다면, 조건없이 사랑해 보십시오. 그나마 쉬운 대상이 자식입니다.
전환문장

body

point
우리는 하나님께 갚아야 할 빚이 있습니다.
reason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낳으셨기 때문입니다.
example
point again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께 낳아주신 빚을 갚아야 합니다.
늘 마음에 하나님을 간직하십시오.
용돈을 드리는 것은 항상 중요하지만, 생색내지 마십시오. 할만큼 했다고 부모님께 성내지 마십시오. 부모님과 자식 사이에 건널 수 없는 강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자식이 아무리 부모님께 효도한다고 애를써도, 부모님이 자식을 생각하는 것에는 비길 수가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기도를 하려거든,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시길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point
우리는 하나님께 갚아야 할 빚이 있습니다.
reason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낳으셨기 때문입니다.
example
point again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께 낳아주신 빚을 갚아야 합니다.
늘 마음에 하나님을 간직하십시오.
부모님께 용돈을 드리는 것은 항상 중요하지만, 생색내지 마십시오. 할만큼 했다고 부모님께 성내지 마십시오. 부모님과 자식 사이에 건널 수 없는 강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자식이 아무리 부모님께 신경을 쓴다고 할지라도, 부모가 자식을 생각하는 것에는 도저히 비길 수가 없습니다.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은, 다만 그것이 자식의 도리이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직접 흘러내리는 통로가 부모이기 때문입니다.

outro

pr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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