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겠나이까?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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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생을 원하는가?

영생을 원하냐? 라고 묻는 사람이 있다면 여러분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요즘 시대에 참 안어울리는 질문이다 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인류는 역사상 한번도 영생을 얻는 것을 포기 한적이 없습니다.
우르크의 왕 이자 영웅 길가메시(Gilgamesh)
길가-노인
메시-젊은이
“노인이 젊어지지 못하고, 젊은이가 노인이 된다"는 뜻
그 정해진 인간의 운명을 거스르기 위해 ‘영생'의 비밀을 찾아 떠나는 여정을 담은 이야기가 <길가메시 서사시> 입니다.
길가메시도 불로초를 찾아 여행을 떠납니다.
중국의 진시황도 불로초를 찾아 각국에 사신을 보냈습니다.
인간의 ‘영생불사'의 꿈은 17세기가 되어 의학과 과학의 영역으로 옮겨졌습니다.
요즘은 어떨까요? 네 여전히 인간은 영생을 꿈꿉니다.
인간의 노화는 세포가 죽어가는 과정이라고 표현 합니다.
그 세포의 노화를 막으면 노화를 막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최상급 포도주는 비옥한 땅이 아니라, 메마르고 척박한 땅에서 생산된다고 합니다.
그 성분을 조사하니까 척박한 환경에서 스트레스를 받으며 포도가 자라면서 세포를 보호하는 성분을 분비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런 포도나 과일이 맛이 좋다는 것입니다.
그 성분을 먹인 늙은 쥐가 모든 신체 기능이 젊어졌다는 연구 결과를 하버드 대학의 데이비드 싱클레어 교수팀은 발표 했습니다.
현대판 불로초로 불리는 이 약성분을 많은 부자들은 이미 먹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부작용을 줄이고 인간에게 효과가 있게 하기 위해 구글이나 아마존 같은 회사들은 영생 하는 기술을 연구하는 회사를 차리거나 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다행인게 이런 약을 먹지 않고도 이 성분이 우리 몸에서 나올 수 있게 할 수 있다고 합니다.
세포를 보호하는 성분이 나오기 위해서는 긍정적인 스트레스를 줘야 하는데,
격렬한 운동, 적당한 추위, 간헐적 단식 하면 이 성분이 분비 됩니다.
이것이 약먹지 않고 젊음을 유지하는 비결 이라고 합니다.
운동 열심히 하시고 너무 따뜻하게 하지 마시고 종종 금식기도 하시면 건강의 축복 주실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이렇게 누구나 무병장수 한다면 기분 나쁠 사람이 없습니다.
하물며 영생의 삶을 살 수 있다면 마다 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영생에는 두 가지 영생이 있습니다. 영원한 벌을 받는 영벌과 영원히 하늘나라에서 사는 영생이 있습니다.
육신의 불로장생은 의학의 힘으로 어느정도 가능하고 이미 눈앞에 와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영의 영생은 어떻게 해야 얻을 수 있을까요?
오늘 우리 주님이 말씀 하시는 영생의 의미와 그 영생을 얻는 방법에 대해 은혜 나눌때,
금은 보화로도 살 수 없는 귀한 영생에 대한 깊은 깨달음 있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1.말씀 대로 ...

영의 영생을 얻기 위해서는 말씀 대로 믿어야 하고 살아야 합니다.
주님은 공생애 동안에 많은 도전에 직면 했습니다.
주님의 행보와 언행은 당시의 기득권을 형성하고 있는 종교지도자들에게는 파격적이고 기존 질서를 위협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당시에 반대자를 제재 하는 방식 중에 공개토론이 있었습니다. 로마시대 였지만 헬라적인 정치제도와 문화를 선망하는 사회 분위기는 폭력성과 야만성을 바로 들어내기 보다는 고상한 토론을 통해 여론을 얻어 민주적인 절차로 정적을 제거하는 방식을 선호했습니다.
로마의 카이사르도 원로원 회의장에서 암살 당했습니다. 카이사르를 암살한 후 부르투스는 암살의 정당성을 연설하지만 군중들은 그의 연설에 누구도 호응 하지 않았고 결국 그는 도망자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 당시 공개토론 방식이 악용되는 경우도 있었다 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예수님도 당시 종교지도자들의 거센 반발과 도전을 만났고 공개적인 장소에서 악의적인 난해한 교리에 대한 질문을 받았습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첫번째 질문이 바로 그런 질문 중 하나였습니다.
“어떻게 해야 ‘영생'을 얻겠 나이까?”
인간은 제한적인 수명으로 살다가 육신의 시간은 어느 날 종말을 맞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죽음을 맞는 것이 당연 합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영생의 삶 이라고 믿는 것이 신앙 입니다.
어떤 영생을 얻을 것이냐?
성경을 믿고 신앙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죽음 뒤에 심판이 있다는 것을 압니다.
히브리서 9:27 NKRV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율법학자가 불순한 의도로 주님께 질문 하였다고 본문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누가복음 10:25 NKRV
어떤 율법교사가 일어나 예수를 시험하여 이르되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님 당시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서기관, 바리새인, 대제사장, 사두개인, 장로들 등이 있었는데,
율법학자는 그야 말로 율법을 해석하고 판결하는 위치의 사람들이었으니 누구보다 모세오경에 밝고 그외에 사후에 추가된 율법조항에 대해서도 박식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의 주된 관심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율법의 조항들을 어기지 않고 잘 따르고 있는가? 였을 것 입니다.
그런 그가 율법 조항에 대한 질문을 하지 않고 왜 영생에 대한 질문을 하였을까?
그는 아마도 답을 가지고 질문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자신의 답과 주님의 답이 다른지 같은지 시험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이런 질문은 마가복음에도 나옵니다.
바리새인들이 율법의 의도와 반대되는 이혼증서 문제로 주님을 시험하여 묻던 상황과 비슷합니다.
사회적으로 통용되고 허용된 관습을 반대하면 여론의 공격을 받을 것이고 사회관습의 손을 들어주면 율법에 어긋나서 올무에 걸리게 되는
악의적인 질문으로 주님을 시험 했습니다. 그들은 진리를 원한 것이 아니라, 시험이 목적 이었습니다.
적용
: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종종 궁금해한 점이 생길 때가 있습니다. 그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기도도 하고 성경도 볼것입니다.
그럴때, 내 마음 속에 나만의 정답을 가지고 있으면 진정한 답을 찾기가 어렵고 내 입맛에 맞는 답만 옳게 보이게 됩니다. 이것을 확증편향 이라고 부릅니다. 신앙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설교도 이런식으로 듣게 됩니다.
하지만 성경이라는 것은 읽을 때마다 새롭고 신앙생활은 하면 할 수록 모르는 것입니다. 항상 초신자의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말씀을 보며, 주님 앞에 겸손한 마음으로 기도해야 하고 또한 자칫 우리의 교만이 주님을 시험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이 율법학자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율법학자의 공격적이고 불순한 질문에 주님은 직답을 하지 않으시고 지혜롭게 대처 하십니다.
그가 율법학자 라는 것을 감안하여 그에게 오히려 되묻습니다.
누가복음 10:26 NKRV
예수께서 이르시되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율법책에서는 뭐라고 기록되어 있고 네가 아는 것을 말해 보아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랬더니,
누가복음 10:27 NKRV
대답하여 이르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신명기 6:5 NKRV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율법학자는 아주 깊이 있고 정확한 답변을 내놓습니다.
주님은 너는 율법학자니 율법학자 답게 대답해 보아라 했더니,
예상과 달리, 아주 신령한 대답을 내놓습니다.
아주 심오한 답변이고 성경의 핵심을 정확히 꿰뚫는 대답 입니다.
왜냐하면, 율법에는 수많은 조항이 있지만, 사실 그 모든 조항의 목적은 한 점을 향하고 있기 때문 입니다.
율법의 요약이라고 말할 수 있는 십계명은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1계명 - 4계명 까지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의 언약,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하나님 앞에 어떻게 행해야 하는지
5계명 부모공경, 장수 하리라 언약
6계명-10계명 명령, 사람들과의 관계, 윤리, 도덕
율법의 핵심을 잘 설명한 신명기 말씀을 인용한 아주 학자 다운 명쾌한 대답 입니다.
이렇게 훌륭한 대답을 한 그에게 주님은 아주 짧은 말로 의미 있는 말씀을 주십니다.
누가복음 10:28 NKRV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하시니
그래 너의 대답이 학자로서 신앙인으로서 훌륭하다
이제 그 아는 것을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질문의 의도에 가장 충실할 때 가장 좋은 답변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영생에 대한 이야기를 물은 율법학자에게 주님은 영생하는 법을 알려 주십니다.
“살리라" 라는 단어는
율법학자가 26절에서 사용한 생명(조에) 이라는 단어의 동사형 입니다.
우리 말로 표현 하자면
영원한 - 아이오니온
영생- 영원한 삶- 명사
살리라- 살다- 동사
왜 영원히 사는 법을 알려 달라는 사람에게 사는 법만 알려주셨을까?
그 답은 그가 인용한 신명기에 답이 있습니다.
신명기 6:2 NKRV
곧 너와 네 아들과 네 손자들이 평생에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내가 너희에게 명한 그 모든 규례와 명령을 지키게 하기 위한 것이며 또 네 날을 장구하게 하기 위한 것이라
“장구하리라"
하나님의 규례를 잘 지키면 가나안 땅에서 사는 날이 장구 하리라 라는 말씀 입니다. 영생은 그 축복을 그대로 사후에도 연장 시켜서 복을 누리는 영원한 삶을 말합니다.
율법학자가 인용한 말씀에 의하면 영생이 아니라, 장구함 입니다.
신명기의 복은 이 땅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으며 복받고 잘 사는 것을 의미 합니다.
율법학자와 유대인들이 가진 영생에 대한 한계가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를 앞에 두고도 메시야로 알아보지 못하는 그들의 한계 입니다.
그 당시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같은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바울 사도가 많은 지면을 할애 하여 율법과 복음의 차이를 진지하게 열의를 다하여 설명해야 했던 이유가 이런 유대인들의 생각을 깨우치기 위해서 였습니다. 율법은 그저 장차 올 일의 그림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강조해야만 했던 이유 입니다.
영생과 살리라
율법학자의 “영생”과 주님이 “살리라” 하신 의미는 같은 어근의 단어를 사용했지만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성경을 많이 아는 율법학자의 답변에 중대한 오류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네가 인용한 그 말씀에서 하나님의 뜻은 영생이 아니라 장구하리라 이다.
영생의 의미는 이 땅에서 누리는 복을 똑같이 천국에 가서도 누리게 된다는 차원 아니라, 전혀 다른 차원의 영원한 삶 입니다.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율법학자를 깨우쳐 주시는 말씀이 바로 “살리라" 한 단어 입니다.
영생은 복을 받기 위해 신앙생활 열심히 하고 의무를 다하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며,
진정한 거듭남을 의미 합니다.
거듭남
니고데모를 만난 주님은 ‘거듭나야 할 것'을 말씀 하십니다.
율법학자도 거듭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장구함에서 벗어나 진정한 영생함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영생이라는 것은 몸이 죽고 영이 사는 것.
유대인들의 생각의 틀에서 탈피해서 예수를 만나야 영생을 얻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모세에서 벗어나서 예수를 만나야 영생을 얻습니다.
거듭남은 배속에 다시 들어가서 다시 태어나는 것을 의미 하는 것이 아닙니다.
헬라어 요한복음3장3절에서 “거듭나다" 라는 단어를 보면 관사 하나가 생략되서 한국어로 번역 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제네떼' 낳다
‘아노뗀' 위로 부터...
아노뗀이 생략되었습니다.
거듭나다는 것은 어머니 자궁으로 다시 들어가서 다시 낳는 것이 아니라, 위로 부터 … 즉, 하늘로 부터 다시 태어나는 것을 말합니다.
거듭남은 그저 생각을 바꾸거나 더 많은 지식을 얻고 더 많은 의무를 짊어지는 수준이 아니고 다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하늘로 부터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하늘로 부터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는 하늘에서 오신 분을 믿어야 합니다.
요한복음 3:13 NKRV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하늘에서 오신 분은 오직 예수님 뿐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요한복음 3:14–15 NKRV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들린다는 것은 십자가에 달리시는 것을 말하는 것이요. 주님의 십자가를 믿는 자가 영생을 얻는 다는 것을 말씀 하시는 것입니다.
이제 가장 유명한 구절이며 인류 구원의 역사를 가장 잘 설명하는 구절이 등장 합니다.
그것은 바로 요한 복음 3장16절
요한복음 3:16 NKRV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해야 하는 것을 그저 아는 것으로 부족하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여 무슨 일까지 하셨는지 알아야 영생으로 가는 길을 만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셔서 그 독생자를 십자가에 죽이시기 까지 우리를 사랑했다는 것을 믿어야 영생이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율법에 대한 지식과 성경에 통달하는 것이 믿음의 전부라는 착각을 버려야 합니다.
잘 믿는 것은 지식이 아니고 하나님의 사랑의 깊은 의미를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더나아가, 하나님의 마음을 절절하게 느껴서 하나님의 마음으로 내 이웃을 내몸과 같이 사랑하는 데까지 이르러야 한다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믿음으로서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영으로 거듭나야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다.
주님은 율법학자에게 말씀 하십니다.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2.선한 삶을 살아가라

주님은 율법학자에게 짧지만 충만한 의미를 설파 하셨습니다. 그 이후에 이 율법학자의 두번째 질문이 이어집니다.
그런데 이 질문도 순수하지 못한 의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누가복음 10:29 NKRV
그 사람이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예수께 여짜오되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니이까
유대인들의 기부문화 Tzedakah 체다카
원죄를 용서받을 수 있는 3가지 행동으로 teshuvah(뉘우침), tefilah(기도), 그리고 Tzedakah(체다카)
자선을 굉장히 중요시 하는 전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옳게 보이려 주님에게 질문을 했다는 것은 스스로 ‘선한 사람' 처럼 보이고 싶어 한 것입니다.
보통 이웃이라고 하면 중립적인 단어 이지만 여기서 율법학자가 말하는 이웃은 진정한 이웃을 의미 합니다.
유대인들의 이웃은 동족과 그 땅에 사는 외국인 정도 였습니다. 나머지는 이방인 이라고 분류 했습니다.
진정한 의미에서 선한 이웃은 어떤 사람 입니까? 라고 묻는 것입니다.
자신을 옳게 보이려고 했다는 기록은 아마도 이 사람이 선행을 행하는 사람이었을 것이라는 것을 암시 합니다.
자기가 율법에 따라 온정을 배풀며 살고 있다는 것을 어필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주님은 진정 선한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려주시기 위해 그 유명한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들려 주십니다.
이 비유를 다 아시겠지만 짧게 요약하자면,
길가다가 강도를 만난 사람이 다 죽어가며 길에 누어 있는데,
지나가던 제사장, 레위인은 “피해 돌아갔다" 하지만 여행하던 사마리아인이 그를 지극정성으로 도와 주었다.
진정한 이웃은 저 사마리아인 같은 사람이다. 라는 이야기 입니다.
율법학자는 자신은 의무를 다하는 종교인으로서 충분히 선하게 살고 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을 보입니다.
하지만 주님은 진정한 선함은 종교적 의무를 다하고 할 수 있을때 이웃을 돕는 것으로는 하나님께 선하다 인정 받을 수 없다는 것을 말씀해주신는 것입니다. 그런 선함은 영혼을 구원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해주시는 것입니다.
주님이 말하는 선함과 영생을 얻는 길 즉, ‘사는 방법'은 단지 율법을 잘 지키는 차원이 아니라는 것을
마가복음의 우리는 젊은 관원 일명 부자 청년과의 대화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마가복음 10:17–22 (NKRV)
17예수께서 길에 나가실새 한 사람이 달려와서 꿇어 앉아 묻자오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18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19네가 계명을 아나니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 하지 말라, 속여 빼앗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
20그가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켰나이다
21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이르시되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22그 사람은 재물이 많은 고로 이 말씀으로 인하여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가니라
이 젊은 관원이 선하신 선생님이신 주님께 “영생의 길"을 물으니
주님이 먼저 십계명을 말씀 하십니다.
그랬더니 이 청년이 어려서 부터 다 지켰습니다. 라고 대답합니다.
이 청년 관원은 신앙 좋은 청년 입니다. 율법도 잘 지키며 건실하게 남에게 피해 주지 않고 선하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고 하십니다.
“전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주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십계명은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부분과 가족과 내 이웃과의 관계에 대한 부분으로 나뉩니다.
주님은 젊은 관원에게 의도적으로 십계명 제 5계명 부터 제시 하셨습니다.
주님을 선한 선생님이라 부르던 그 청년은 선한 삶이 영생으로 가는 길이라고 생각 하였기 때문 입니다.
그 청년의 질문은 율법학자의 두번째 질문과 결이 같은 질문 이었습니다.
자신이 옳다는 것을 내면에 품은채 주님께 겸손과 의로운 가면을 쓰고 찾아와 질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청년이 악하여서 그렇게 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우리 모두는 이 청년 처럼 신앙의 가면, 인격의 가면을 쓰고 세상을 살아갑니다.
하지만 최소한 주님 앞에서는 세상의 가면은 무용지물이 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주님은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한다는 것은
이웃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라고 말씀 하시는 것입니다.
어찌 보면 사회를 살아가면서 당연한 의무 인데, 그것이 어찌 내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냐 반문 하시는 것입니다.
제사장, 레위인
보고-피하여-지나가고: 당연한 도리도 하지 않음. 종교적 규례만 지킴
선한 사마리아인
보고-가까이 가서- 가던 길을 멈추고- 응급처치(기름과 포도주) :당연한 도리
+ 짐승에 태워서 주막으로 … + 돌보아주고 + 두 데나리온을 주고 + 다시 돌아오겠다 함
주님의 선함은 ...
마태복음 5:39–42 (NKRV)
39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40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41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42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진정으로 선한 일을 한 사람들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 이라는 말을 합니다.
하지만 자신을 옳게 보이고자 하는 사람들은 선한 일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으로서 당연한 일을 하고도 선한 사람이라고 인정 받는 세상이라는 것을 보면, 세상이 얼마나 어두워지고 있는지 새삼 실감 합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혜에 비한다면
우리가 교회에서 맡은 일들에 헌신 하는 것과
나의 소중한 시간과 노력과 물질을 드리는 것이 어떻게 선한 일이 되겠습니까?
누가복음 17:10 (NKRV)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
우리가 주님 앞에 헌신 하면서도 우리가 할 수 있는 말은 그저 “무익한 종입니다" 뿐 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헌신 봉사를 해도 하나님의 선하심과 사랑하심에 비할 바가 아니라는 것을 율법학자와 부자청년은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진정 선하게 산다는 것은 바로 예수처럼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때, 아무런 죄가 없으신 분이 대신 죽어주시는 삶을 유일하게 선한 삶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만약에 우리가 영생을 얻기 원한다면 그분의 삶을 한절이라도 닮기 위해 오늘 온 마음을 다해 따라야 합니다.
내 모든 것을 아낌 없이 주시는 십자가의 사랑을 알고 그렇게 살길 원해야 합니다.
그런 진정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삶을 영생으로 가는 여정 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나는 오늘 하나님의 사랑을 얼마나 깊히 이해하고 있나요?
나는 오늘 하나님의 사랑으로 얼마나 선하게 살고 있나요?
오늘 우리 곁에 있는 천하보다 귀한 그 영혼들을 위해 가던 길을 멈추고
곤경에 빠진 강도 만난 우리의 이웃에게 기름과 포도주를 발라주고 거기서 멈추지 말고
더 깊은 보살핌과 나눔을 실천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내 옆에 앉아 있는 이웃을 위해 기도해줍시다. 또한 나의 것을 아낌 없이 나눕시다.
이것이 하나님 사랑,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삶을 살며
영생으로 나아가는 길입니다. 예수를 따르는 삶입니다. 기도 이 시간 다같이 기도 하겠습니다.
주님 내 주변에 혹시 강도 만나 거진 죽게 된 이웃이 있는지 보게 하소서
혹시 그 이웃을 보고도 피해 지나가지는 않았는지 회개 하게 하소서
십자가의 사랑을 깊히 알고 그 사랑으로 이웃을 사랑하게 하소서
축도
이제는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넓으신 은혜와 하나님의 한량없는 사랑하심과 성령의 감동감화 역사 하심이 우리교회와 주님의 귀한 자녀들과 그들의 생애 위에 이제로부터 영원까지 함께 있을찌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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