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 사명 알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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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구원 계획으로

The Gospel of Matthew: A Socio-Rhetorical Commentary A Canaanite Woman’s Faith (15:21–28)

She is a descendant of the ancient Canaanites, the bitter biblical enemies of Israel whose paganism had often led Israel into idolatry (cf. Jub. 22:20–22).

The Gospel of Matthew: A Socio-Rhetorical Commentary A Canaanite Woman’s Faith (15:21–28)

If “Tyre and Sidon” (15:21) lead some readers to recall Jezebel, others must recall instead the widow who supported Elijah (1 Kings 17:8–24; Lk 4:26). The narrative thus constitutes another Matthean invitation to the Gentile mission (e.g., 2:1–11; 8:5–13), reinforcing the message of 11:21–24 (where Tyre and Sidon were more open to repentance than Chorazin and Bethsaida).

예수님 첫번째 거부의 의도: 예수님 선교의 정체성을 가나안 여인이 오해하지 않기 위해.
연중 20주일 동검도 미사 강론
: 예수님의 사명 알기 > 기적 > 하느님의 구원계획 실천
예수님께서는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좋지 않다.” 하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바로 즉시 가나안 여인의 청을 들어주시지 않는다. 오히려 분명하게 자신이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선교 사명과 그 사명에 따라 선교 전략을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왜 그렇게 하셔야만 했을까?
당시 고대 근동 지방에는 지역 곳곳을 떠돌며 마술행위를 하거나 구마행위를 하는 이들이 있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여인은 티로와 시돈 지방, 즉 유다인이 아니라 해양민족들이 사는 지역에서 온 가나안 출신의 이방인 여인이였기 때문에, 아마도 예수님은 아버지 하느님의 사명을 수행하는 자신의 정체성을 명확히 할 필요성이 있으셨을 것이다 (Keener).
여기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하느님의 세상구원의 계획은 하느님꼐서 손수 세우시는 것이다. 일의 우선순위가 있다. 우리가 함부로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왜 유다인이 먼저이고 이방인이 나중이어야 하는지 우리는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나안 여인처럼 자신의 처지가 강아지와 같이 보잘 것 없는 신세일지라도 그분께 간절히 도움을 청하면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은총을 내려주신다는 것이다. 감사한 것은 나중에 받은 은총이라고 해서 더 적게 받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가나안 여인이 이미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이라고 부른 것처럼 그분의 하느님의 사명을 수행하시는 우리의 왕이시자, 메시아로서 하느님의 사명을 수행하시는 분이시다. 우리는 그분께 은총과 축복을 청하기 전에 그분의 누구이신지 먼저 알아야 한다. 그분이 하느님의 사명을 어떻게 수행하셨는지 알아야만 한다. 그것이 신앙인의 자세인 것이다.
하느님의 사명은 우리 인간이 때때로 이해하기 너무 어렵다.
32 사실 하느님께서 모든 사람을 불순종 안에 가두신 것은, 모든 사람에게 자비를 베푸시려는 것입니다.
왜 내가 이런 시련을 겪어야 할까? 저 사람은 왜 나에게 저럴까? 빠져 나갈 수도, 극복 하기도 막막하기만 하다. 그러나 우리는 사도 바오로가 스스로를 모범으로 내세운 것처럼 그분의 혜안을 배워야 한다. 바로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자비를 베풀기 위해 그분의 계획이 있으시다는 것. 우리는 이 계획을 알아듣고 또 현실에서 살아가기 위해 그분의 정체성을, 그분이 누구이신지 이 미사에서 우리의 신앙 생활에서 더욱 힘써야 할 것이다.
“나는 그들을 나의 거룩한 산으로 인도하고 나에게 기도하는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하리라.‌”
The Gospel of Matthew: A Socio-Rhetorical Commentary A Canaanite Woman’s Faith (15:21–28)
She is a descendant of the ancient Canaanites, the bitter biblical enemies of Israel whose paganism had often led Israel into idolatry (cf. Jub. 22:20–22).
The Gospel of Matthew: A Socio-Rhetorical Commentary A Canaanite Woman’s Faith (15:21–28)
If “Tyre and Sidon” (15:21) lead some readers to recall Jezebel, others must recall instead the widow who supported Elijah (1 Kings 17:8–24; Lk 4:26). The narrative thus constitutes another Matthean invitation to the Gentile mission (e.g., 2:1–11; 8:5–13), reinforcing the message of 11:21–24 (where Tyre and Sidon were more open to repentance than Chorazin and Bethsai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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