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를 포기하다(호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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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 2023년 8월 20일 주일 청년부
제목 : 포기를 포기하다
본문 : 호세아 14:1-9
결단 : 주님 말씀하시면 + 나의 하나님(후렴)
# 설교 전 중보기도 제목
1) 예배를 위해서 : 연약한 우리의 삶에 모든 것 위에 뛰어나신 주님을 보는 시간 되게 하소서
2) 2학기를 위해서 : 이어진교회 2학기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준비되어지며, 채워지는 시간 되게 하소서
1. 사랑을 말하는 호세아서
1) 성경은 저주가 아닌 “사랑”을 말한다
인간은 본래 악한 자라서 그런지,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을 보면 죄성이 가득한 자들의 모습이 일거수일투족 담겨 있음을 보게 됩니다. 만약 성경에 기록될 수 있는 근거가 “죄성이 많음”을 기준으로 한다면, 저 역시 성경의 후보군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성경은 끝내 죄성을 “악하다” 그리고 마침표를 찍어 끝내지 않습니다. 우리의 죄성은 악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원”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의 죄를 끊어낸다 말합니다. 다시 말해, 성경의 핵심은 곧 사랑이며, 이를 가장 잘 나타낸 구절이 바로 요한복음 3장 16절 아니겠습니까?
호세아도 그런 하나님의 사랑이 잘 드러난 성경 입니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하나님의 사랑을 호세아를 통해 피부로 느끼게 하셨습니다.
2. 하나님의 사랑, 예수님의 순종
1) 최악의 상황에서 보여주는 호세아의 순종
그런데, 호세아의 삶을 보면 “정말 하나님이 호세아를 사랑했을까?” 의문이 듭니다. 호세아 1장 2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처음 호세아에게 말씀하실 때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가서 음란한 여자를 맞이하여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 이 나라가 여호와를 떠나 크게 음란함이니라 하시니”
만약 제 삶에, 물론 이제는 그럴 일은 없겠다만 하나님께서 “음녀를 만나 결혼하고, 너의 자녀들은 음란한 자녀들이 될 것이라” 말씀하신다면 상당히 마음이 어려울 것만 같습니다. 다른게 아니라 이게 진짜 파국 아닙니까?
그런데 저는 음란한 배우자를 얻는 것도, 음란한 자식들을 낳는 것보다 더 알 수 없는 말씀이 2절 끝자락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 너는 가서 음란한 여자를 맞이하여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 이 나라가 여호와를 떠나 크게 음란함이니라 하시니”
음란한 여자를 만나는 이유가 “이 나라가 여호와를 떠났다” 라는 겁니다. 그런데 마치 호세아가 한 나라의 대표성을 띄고있어, 모든 것을 떠안고 책임지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호세아 입장에서는 충분히 억울할 만한 상황입니다. 우선 내가 아닌 다른 이의 죄로 “대신 댓가를 치르는” 상황이 펼쳐진 것이고, 그리고 내가 선택한 최악이 아닌, 이미 만들어진 최악의 상황 가운데 놓여졌기에 너무 억울할 것만 같습니다.
하지만 호세아는 그렇게 합니다. 하나님이 “음녀 고멜을 아내로 삼으라” 말씀하심에 순종하고 아내로 삼지요. 또 자녀를 셋이나 낳는데, 이름의 뜻이 다 부정적 입니다. 최악의 상황 가운데 호세아는 하나님 앞에 전적으로 “순종” 합니다.
2) 죄악 가운데 보여주는 예수님의 순종
최악에서 순종하는 호세아를 보면 예수님이 절로 떠오르게 될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 또한 대표성을 띄고 모든 것을 지고 십자가에 죽음을 당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도 본인 스스로 선택한 최악의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주님도 이렇게 말씀하셨죠. “내게서 잔이 떠나가게” 해 달라고 말입니다.
심지어 죄도 없으셨습니다. 호세아야 인간이기에 죄성을 지닌 자였으니, 스스로도 죄를 범한 자에 속하지만, 예수님은 죄도 없지만서도 죄인들을 대표하셨습니다.
도대체 왜? 왜 이런 최악을 예수님은 순종하셨을까요? 무엇을 보셨을까요? 주님은 최악 넘어에 있는 최고의 상황을 보았습니다. 바로 “구원”을 보셨습니다.
3) 우리의 막연한 순종
지금까지의 호세아를 보며, 또 예수님의 모습을 떠올리며 내릴 수 있는 결론과 적용은 “그래, 나도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야지”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문제가 생깁니다. “도대체 무엇을 순종할 것인가?” 어디서부터, 무엇을, 어떻게 순종할 것인가에 대한 대답에 막막하기만 합니다.
3. 백 투 더 본질
1) 성경이 말하는 불순종의 결과
왜냐하면 우리가 순종해야 하는 이유를 “최고를 준비하시는 하나님”에서 찾기보다, 불순종 했을 때의 결과가 얼마나 참혹한가 거기로부터 이유를 찾기 때문일 것입니다.
성경은 불순종의 결과가 유복함이라 말하지 않습니다. 불순종의 결과가 기쁨과 감사와 자유가 넘치는 곳이라 말하지 않습니다.
몇 가지 사례를 볼까요?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는 말씀에 불순종하니 “죽음”이라는 결과를 얻게 되었고,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두 나라로 분리되는 슬픔을 겪게 하시고, 신명기 28장 20절을 보니 불순종하여 받는 저주가 “..모든 일에 여호와께서 저주와 혼란과 책망을 내리사 망하며 속히 파멸하게 하실 것이며”
성경은 불순종에 있어서 축복과 희망이 아닌 절망과 저주를 이야기 하기 때문에, 우리는 이런 저주로부터 벗어나고자 “순종하기 위해” 애씁니다. 무엇이 순종인지 명확히 알지는 못해도 말이지요.
2) 순종을 위해 포기해야 하는 것 = 나
오늘 본문은 우리게 있어 “순종은 무엇인가?”를 알게 합니다.
먼저, 순종에 앞서 우리가 포기할 것이 있습니다. 최악의 상황과 위기 속, 가장 먼저 꺼내보는 카드들을 우리는 내려놓고 포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대게 그런 상황 속 먼저 꺼내는 카드로는 ‘욕심’, ‘주관’, ‘내 생각’ 그리고 ‘내 판단’일 것입니다. 이를 한 단어로 축소시키면, 결국 ‘나’만 남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나’를 내려놓아야 비로소 ‘순종의 길’을 걸어갈 수 있다는 겁니다.
호세아를 보십시오. 만약 그가 하나님의 말씀에 ‘나’라는 카드를 꺼냈다면, 당연 음녀를 아내로 맞이하지 않았을 겁니다. 또 자신의 자녀가 음란한 자들로 성장하게 된다면 어쩌면 낳고자 하지 않았을 것이며, 낳아도 한 명에 족하지 않았을까 합니다.
하지만, 그는 순종합니다. 나를 포기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봅니다.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선 먼저 “나를 포기해야” 합니다. 하나님보다 내가 앞서는 것을 우리는 포기해야만 합니다. 그렇게 살아낼 때, 비로소 우리는 “순종하라”는 하나님 말씀에 자유로워질 것입니다.
3) 순종이란, 여호와께 돌아가는 것
나를 포기하기 까지가 된다면, 다음 스텝은 순종에 대해서 아는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 호세아 14장 1절은 순종이 무엇인가를 보게 합니다.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네가 불의함으로 말미암아 엎드러졌느니라”
순종이 무엇입니까? 바로 “여호와께 돌아오는 것” 즉 “내가 아닌 하나님을 보는 것” 입니다.
그리고 저는 오늘 “돌아오다”를 통해 우리의 순종이 왜 하나님을 보는 것인가를 설명하며 말씀을 마무리하려 합니다.
4. C에서 B로, B에서 A로
1) Cancel & Change
돌이키다. 흔히 우리는 왔던 길을 돌아가는 것을 생각합니다. A를 지나 B를 지나 C를 왔다면, 돌이키기 위해서는 C에서 B로, 그리고 B에서 A로 가야 “제대로 돌이켰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쉽지 않을 겁니다. 왜냐, “내가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 라는 생각에, 지금까지 내가 해온 것이 아까워서라도 쉽게 돌아가지 못합니다.
신앙도 그렇습니다. 계속해서 신앙의 연차를 쌓아가면 아는 것이 많아지고, 그것에 대한 나만의 주관이 생겨서 말씀보다 내가 우선시 되는 모습이 보이죠.
그래서 돌이켜야 함을 알지만, 돌이킨다는 것이 아쉬워, 쉬운 결정은 아닐 겁니다. 그런데, 돌이킨다는 것은, 물론 ‘돌아감’의 의미도 있지만 가장 큰 의미는 “취소”와 “방향을 바꾸다”의 의미가 더 크다는 사실을 우리는 보아야 합니다.
오히려 내가 지금까지 걸어온 길들을 통해 “다시는 하나님을 떠나지 않겠다.”는 결단을 가지고, 지금까지의 모습을 지워버리는 겁니다. 지금까지의 내 모든 생각을 취소 시키는 겁니다.
그리고 바꾸는 겁니다. 무엇을요? “앞으로의 방향성”을 바꿔버리는 겁니다. 지금까지 내가 선택하고 바라본 목적지를 하나님의 생각으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목적지를 바꾸는 것입니다.
2) Bible
이제 내 생각을 지우고, 내 목적지를 바꾸려 합니다. 근데 무엇을 근거로요? 바로 “성경”이 그 근거가 됩니다.
군대에 처음 훈련병들이 입소하면 초반에는 모든 것이 낯설고, 또 나름의 패기를 가지고 옵니다. ‘조교 따위 내가 짓누르겠다.’ 등의 모습들을 정말 많이 보여줍니다.
누군가는 낯설어 두려워 하고, 누군가는 신기해 하고, 누군가는 패기를 가지고 떵떵 거리고, 누군가는 고분고분 한 그 모습을 전체적으로 보면 화음 하나 안맞는 오케스트라가 따로 없습니다.
그런데, 그런 그들이 1주일만 지나면 호흡이 점차 맞아 떨어지고, 훈련소를 떠날 때 쯤이면 어벤져스가 따로 없습니다.
이들이 40일이라는 시간을 통해 오합지졸에서 장성한 군인의 모습을 보일 수 있는 이유는, ‘나를 지우고, 내 생각을 내려놓고 조교의 안내를 따라, 또 교육을 따라 바꾸는 것’이 이유가 됩니다. 그리고 조교들이 가르치는 것은 하나 입니다. ‘군인 정신’
이처럼 우리의 신앙에 나를 지우고, 내 목적지를 바꾸려 한다면, 하나님이 우리를 가르치려는 그 하나님의 말씀을 보아야 합니다.
하루 아침에 바뀌기를 기대하지 마십시오. 10년이 걸려도 안바뀔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을 기준삼아야 하는 것은 최악 넘어 최고, 즉 하나님의 말씀으로 구원의 길을 제시했기 때문입니다.
포기하지 마십시오. 끝까지 하나님 말씀 붙들고 걸어가야 합니다. 언제까지요? 에베소서 4장 13절에 기록된 바 처럼, 우리가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 까지 노력해야 합니다.
3) Amen
말씀을 근거로 내 생각을 지우고, 내 목적지를 바꾼 우리가 마지막으로 선택해야 하는 것은 ‘순종’ 입니다. 인도하심의 끝이 무엇이든 그것에 아멘으로 순종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의 생애를 보면 순종이 참 습관화 되셨습니다. 죽음을 앞둔 상황 속에서도 순종 했습니다.
5. 결론
청년 여러분. 예수 믿는 거, 어렵죠. 어려운게 맞습니다. 예수 믿는거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보다 ‘내’가 먼저 드러납니다. 어쩌면 당연한 이치겠지만, 지금껏 “하나님의 인도를 포기해 왔다면, 그것을 오히려 포기하시고 하나님의 인도를 택하는” 그런 삶을 살아내시는 저와 여러분 되길 소망합니다.
[결단찬양 : 주님 말씀하시면 + 나의하나님(후렴)]
#말씀을 가지고
1) 나로 사는 것이 아닌 주로 살아가는 우리 되게 하소서
2) 날마다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며, 그 말씀 인도하심 따라 순종하는 우리 되게 하소서
[축도]
지금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변치 않으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크고 놀라우신 사랑과
성령 하나님의 감동 감화 역사 임재 충만하심이
주님 말씀하심에 아멘으로 순종하며 담대히 나아가겠노라 다짐한 자들과
말씀 없이 살 수 없음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기로 결단한 자들과 삶과 가정과 교회와 세계 열방 위에
지금부터 영원토록 함께 있을지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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