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끝이 하나님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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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출11:1-3(1-8) 제목: 사람의 끝이 하나님의 시작입니다.
인사-하나님은 대박 응답을 주십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새벽에 도와주시는 분이다.
이번 특새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박으로 응답해주실 것이다.
게스트를 크게 변화를 주실 것이다.
이 귀한 성회를 열게 하신 하나님께 영광 돌린다. 특새에 수고하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한다.
차량, 응원, 안내 하신 분들에게 감사드린다.
식사, 간식, 방송, 행정으로 수고하신 분들에게도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이 자리에 참석하신 모든 분들에게도 감사드린다.
또한 다음세대와 부모님들, 교사들을 축복한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하하 특새에 참여하고 있다.
하하하 특새는 이런 의미이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건져내기 위해서 싸우셨다.
그 전쟁을 통해 하하하 특새를 준비하였다.
하 어떤 문제를 하나님이 하신다. 하 그문제가 해결되었을 때 하나님이 하셨다.
하 그리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오늘은 첫날이다. 마지막 날까지 승리해주세요.
저는 특새 참여할 때 두가지를 결단하도록 한다.
개근해주세요. 하루 하루 한시간 한시간 중요하다.
절박한 기도를 드려주세요. 하나님 외에는 도울 분이 없다는 마음으로 참여해주세요.
큰 소리로 예배에 참여해주세요.
정훈 목사는 말한다.
만일 그리스도인들이 부르짖어 기도하고 말씀을 큰소리로 외치며 힘차게 찬송을 부르고 소리내는 기도습관을 들인다면 그는 곧 생기가 있고 활력이 넘치는 사람으로 변화될수 있을 것이다.
소리에서 구원이 시작된다. 소리에서 천국이 시작된다.
소리의 고백을 통해서 당신의 모든 삶은 바뀌게 될 것이다.
우리는 지난 하하하 특새때 이집트의 10가지 재앙중 9가지를 나누었다.
첫 번째 재앙이 피재앙이다. 두 번째 재앙이 개구리 재앙이다.
세번째 재앙이 이재앙이다. 네 번째 재앙이 파리 재앙이다.
다섯 번째 재앙이 돌림병이다. 여섯 번째이 악성종기 재앙이다.
일곱 번째 우박 재앙이다. 여덟 번째 메뚜기 재앙이다. 아홉 번째 흑암재앙이다.
마지막 10번째 재앙이다. 장자의 죽음이다.
오늘 말씀 제목은 사람의 끝이 하나님의 시작이다.
먼저 말씀을 듣기전에 할 일이 있다.
10번째 재앙으로 가기 전에 모세를 만나기전의 이스라엘 상태를 알아야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가 나타나기전에는 끝을 경험하고 있었다.
이들이 경험한 끝은 무엇인가? 3가지 끝을 경험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사람의 끝을 경험했다.
1) 이스라엘 백성들은 보호를 받지 못했다.
(출 1:11) 감독들을 그들 위에 세우고 그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워 괴롭게 하여 그들에게 바로를 위하여 국고성 비돔과 라암셋을 건축하게 하니라
바로왕 때문에 노예가 되어 버렸다. 건축하는 일에 끌려갔다.
또한, 남자 아이가 태어나면 나일강에 버려야 했다
(출 1:16) 너희는 히브리 여인을 위하여 해산을 도울 때에 그 자리를 살펴서 아들이거든 그를 죽이고 딸이거든 살려두라
자신과 자녀들을 보호할 방법이 없었다. 자녀들을 키울 길이 없었다.
우리는 힘든 세상을 살고 있다. 나 자신을 보호할 방법이 없다.
자녀를 잘 키울수 있을까? 나는 잘 살수 있을까? 자녀를 보호하기 힘든 세상이다.
2) 일을 해도 헛수고하고 있다.
(출 5:13) 감독들이 그들을 독촉하여 이르되 너희는 짚이 있을 때와 같이 그 날의 일을 그 날에 마치라 하며
이스라엘백성들은 바로를 위해 일을 많이 했다. 하지만 헛수고이다.
아무리 일을 해도 몸만 힘들다.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다. 고통만 더 가중되고 있다.
물질적 어려움이다. 열심히 일을 해도 헛수고가 있다. 일이 안풀린다.
몸만 힘들다. 살길이 막막하다.
3) 바로에게 노예로 붙잡혀 있다.
(출 8:32) 그러나 바로가 이 때에도 그의 마음을 완강하게 하여 그 백성을 보내지 아니하였더라
바로왕이 이스라엘을 노예로 만들었다.
이들은 붙잡고 놓지 않고 있다. 이들은 무시 당했다.
현재 우리를 붙잡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 사람인가? 염려인가? 중독인가? 질병인가?
이스라엘은 이 세가지 때문에 끝을 경험하고 있다.
성도 여러분, 우리도 끝을 경험한다.
사람으로 끝을 경험한다. 자녀가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다.
열심히 살아도 헛수고가 같다. 염려와 중독, 질병이 붙들고 있다.
그런데 하나님이 어떻게 하셨는가?
2. 사람의 끝은 하나님의 시작이다.
1) 이스라엘을 보호하셨다.
(출 11:7) 이스라엘 자손에게는 사람에게나 짐승에게나 개 한 마리도 그 혀를 움직이지 아니하리니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과 이스라엘 사이를 구별하는 줄을 너희가 알리라 하셨나니
10번째 장자재앙이다. 그 재앙중에 이스라엘의 자녀를 구별했다.
성도 여러분, 벼랑끝이 서 있는가? 위험한 환경에 있는가? 자녀들이 힘든 상황에 있는가?
다음세대 여러분, 지금 끝을 보고 있는가?
자신이 끝을 만났는가? 걱정하지 말라. 하나님이 지킬 것이다.
하나님이 구별할 것이다. 하나님이 자녀를 책임질 것이다. 하나님이 보호할 것이다.
2) 수고의 댓가를 받게 했다.
(출 11:2) 백성에게 말하여 사람들에게 각기 이웃들에게 은금 패물을 구하게 하라 하시더니
이들은 일을 열심히 했다. 그러나 일한대로 보상을 받지 못했다.
그런데 하나님은 마지막 재앙이후 많은 재물을 가지고 출애굽하게 하였다.
그동안 밀렸던 임금을 다 받게 하였다.
이스라엘은 원래 노예가 아니었다. 그런데 노예 취급을 받았다.
그런데 이제 역전되었다. 위대하게 보이게 하였다.
(출 11:3) 여호와께서 그 백성으로 애굽 사람의 은혜를 받게 하셨고 또 그 사람 모세는 애굽 땅에 있는 바로의 신하와 백성의 눈에 아주 위대하게 보였더라
그렇다. 부당하게 물질적 손해를 본적이 있는가? 무시당하고 있는가?
하나님은 반드시 역전시켜 줄 것이다. 반드시 모든 것을 회복시켜줄 것이다.
3) 이집트에서 풀려나게 하셨다.
(출 11: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이제 한 가지 재앙을 바로와 애굽에 내린 후에야 그가 너희를 여기서 내보내리라 그가 너희를 내보낼 때에는 여기서 반드시 다 쫓아내리니
이스라엘은 드디어 풀려났다. 그들을 묶고 있는것들에게서 풀려났다.
이와같이 하나님은 염려의 사슬을 끊어줄 것이다. 중독의 사슬도 끊어줄 것이다.
질병의 사슬도 끊어줄 것이다.
이제 어떻게 해야할까요?
3. 부르짖는 기도가 하나님의 시작을 주신다.
(출 2:23) 여러 해 후에 애굽 왕은 죽었고 이스라엘 자손은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그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된지라
(출 2:24) 하나님이 그들의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부르짖어 기도했다. 하나님이 그들의 고통의 소리를 들으셨다.
마지막 재앙을 앞두고 하나님이 직접 이집트로 내려가신다.
(출 11:4) 모세가 바로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밤중에 내가 애굽 가운데로 들어가리니
하나님은 직접 오신다. 그래서 고통을 끝내버리신다.
언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역시 부르짖어 기도할때였다.
(롬 8:15) 너희는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새번역
여러분은 자녀로 삼으시는 영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그 영으로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다.
그러면 하나님이 어떻게 기도하라고 했는가?
하나님,, 아버지... 라고 부르짖으라고 말씀한다.
이게 무슨 기도냐고 생각할수 있다.
하지만 그것도 역시 기도이다. 매우 아름다운 기도이다.
어린아기들은 말을 배울만한하면 하루에 수도 없이 엄마를 부른다.
별로 할말이 없어도 엄마를 부른다.
주여.. 기도도 그와 같은 것이다. 그것은 아주 단순한 부름이다.
하지만 계속 반복하여 주의 이름을 부를 때 놀라운 기쁨이 있다.
마음을 다해 100번쯤 해보라. 마음이 움직인다. 시원해진다. 감동에 사로잡힌다.
부르짖는 기도는 성경적이다. 성경에 약220번이 나온다.
부르짖는 기도는 원초적이고 기초적인 기도이다. 앞뒤 없이 살려달라고 죽을힘을 다해 호소하는 기도이다. 하나님은 부르짖는 기도를 기뻐하신다. 이것은 하나님을 향한 간절함이고, 사랑이고 믿음이다.
부르짖는 기도를 강조하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이다.
성도 여러분, 주의 이름을 부를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마 18:20)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막 16:17)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행 3:6)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벧전 4:16)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예수님의 이름을 부를 때 고통이 떠나간다. 악한영이 얼씬도 못한다.
고통이 끝나고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일을 시작하신다.
빌가써드 목사는 말한다.
성경에 나오는 성도들의 기도와 오늘날 우리의 기도 사이의 가장 중요한 차이점은 무엇일까?
그것은 성경에 나타난 성도들의 기도는 대부분 소리를 높여 열정적으로 드린 기도였다는 점이다.
이제 말씀을 맺겠다.
사람으로 인해서 자녀를 지킬 방법이 없는가? 자녀를 키울 용기가 없는가?
이 험한 세상에서 자신을 지킬 방법이 없는가?
열심히 일을 한다. 하지만 헛수고이다.
살길이 막막하다. 염려와 질병이 사로잡고 있다. 중독이 나를 사로잡고 있다.
그래서 끝을 경험하고 있다.
하지만 부르짖자. 주의 이름을 부르자. 주님이 임할 것이다. 일할 것이다.
보호해줄 것이다. 수고의 댓가를 받게 할 것이다. 풀려나고 존귀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끝나는 자리는 하나님이 시작하는 자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