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광야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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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도하심으로 예배드리겠습니다.
사도신경으로 우리의 신앙을 고백합니다.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찬송가 364장, 통일찬송가 482장
‘내 기도하는 그 시간’ 찬양하시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주신 말씀은
누가복음 5장 15~16절말씀입니다.
15 예수의 소문이 더욱 퍼지매 수많은 무리가 말씀도 듣고 자기 병도 고침을 받고자 하여 모여 오되 16 예수는 물러가사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시니라
이시간 드려진 예물을 위해서 기도드리겠습니다.
좋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도 새벽에 나아와 하루를 시작하며
말씀앞에 서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이시간 하늘로부터 오는 신령한 은혜를 사모합니다.
성령의 임재를 충만하게 부어주셔서 능력으로 함께하여 주시옵소서.
건강의 문제로 기도하는 성도님들 있습니다.
오장육부, 관절, 골수, 마디, 세포마다 성령의 기름부으심으로
회복되어 다시 살아나고, 강건해지는
놀라운 역사를 경험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연약함, 피곤함, 아픔과 질병, 고통과 고난, 어려움 속에 있는
상황과 환경 모두 떠나가게 하여주시고,
마음의 모든 염려, 근심, 걱정, 불안, 두려움 사라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인생의 무거운 짐들이 가벼워지도록 주님의 평안을 내려 주시옵소서.
하나님 앞에 나오며, 받은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과
주실 은혜를 사모하는 심령으로 귀한 예물 드리는 손길들 있습니다.
감사헌금, 일천번제, 00헌금, 00헌금을 올리오니
받으시고, 만복을 내려 주시옵소서.
더욱 드릴 것이 넘치게하여 주시옵소서.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성령의 지혜로 깨닫게하시고,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아갈 수 있는 능력과 믿음도 부어주소서.
이 모든 말씀을 지금도 살아서 역사하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할렐루야~ 우리 앞뒤 옆사람들과 인사합시다.
잘 오셨습니다. 큰 은혜 받으세요. 축복합니다. 사랑합니다.
오늘은 누가복음 5장 15-16절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의 광야기도 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오늘부터 일주일동안 예수님의 기도에 관해서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지난 주에는 예수님의 세례기도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오늘부터는 예수님의 광야기도, 철야기도, 변화산 기도, 중보기도,
그리고 마지막 금요일에는, 마지막 기도를 함께 살펴보려고 합니다.
한주동안 예수님의 기도를 살펴보며, 예수님을 본받아
기도생활에 승리하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보통 예수님의 광야기도라고 하면,
예수님의 40일 광야시험을 떠올립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을 통해 다루려는 광야기도는
예수님이 평소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셨던 장면을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16 예수는 물러가사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시니라
여기서 ‘한적한 곳’은 헬라어 ‘에레노스’라는 단어로
‘한적한 곳, 황량한, 광야, 사막’ 이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광야로 가셨다고 보아도 무관합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을 살펴보기에 앞서,
먼저 문법 번역이 잘못되어서 수정해야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15절의 “모여오되”와 16절의 “기도하시니라” 입니다.
두 단어는 모두 헬라어 원문에서 미완료 시제로 사용되었습니다.
미완료 시제는 과거의 습관적이고 반복적인 행동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됩니다.
그런데 개역개정판 번역은 습관적이고 반복적인 표현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치 예수님께서 광야에 가서 기도하신 것이
이 본문 속에서는 한번의 사건인 것처럼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광야 기도는 일시적이 아니고,
반복적이며 습관적인 기도였습니다.
이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 헬라어 원문은 미완료 시제를 사용했습니다.
그래서 원문의 느낌을 살려서 번역하면
“예수의 소문이 더욱 퍼지매 수많은 무리가 말씀도 듣고
자기도 병도 고침을 받고자 하여 모여 오면,
예수는 종종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곤 하셨다.”
본문의 저자는 이 점이 매우 중요했습니다.
예수님께서 한적한 곳에 가셔서 기도하신 것이 예수님의 생애 가운데
어쩌다 한번 예외적으로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과거의 습관적 행동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런 관점을 중심으로 예수님의 광야기도를 통해 얻을 수
3가지 교훈을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예수님의 광야기도는 지속적이며 반복적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반복적으로 기도하기 위해 한적한 곳을 찾으셨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본받아서
기도하기 위해 한적한 기도처소를 찾아야 합니다.
새벽예배를 드리는 예배당이 될 수도 있고,
집에서, 직장에서, 아무도 없는 시간에 조용히 하나님께
집중할 수 있는 기도처소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인간이기 때문에 연약합니다.
어제 기도하고 결단했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무뎌집니다.
강하게 결단했던 마음이 약해지고, 세상의 유혹에 다시 변질됩니다.
그래서 매일 습관을 따라 하루하루 유혹을 이길 수 있게
새 힘을 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둘째, 예수님이 광야로 기도하러 가신 시점입니다.
예수님은 인기가 고조될 때 광야로 나가셨습니다.
사람들이 구름 떼처럼 그에게 몰려오는 것을 보고,
이에 도취되어 유혹을 받지 않으시려고 기도하셨습니다.
기도에 전념하시려고 광야로 나가셨습니다.
우리는 대체적으로 일이 안 될 때 기도하고,
일이 잘 풀릴 때는 기도를 게을리 합니다.
아니요. 기도를 아예 안하는 경우가 대다수입니다.
우리는 스스로를 돌아봐야 합니다.
과연 나는 일이 잘 풀릴 때 기도하는가?
기도한다 할지라도, 일이 잘 되고 있을 때
더 간절하게 하나님을 찾으며 기도하는가?
빌 하이벨스 목사님이 쓴 ‘너무 바빠서 기도합니다’라는
유명한 책도 있습니다.
왜 이 책이 베스트 셀러가 되었을까요?
우리가 기도할 때 놓치고 있는 부분을 잘 짚어주었기 때문입니다.
구약의 역사를 볼 때, 실패와 역경으로 인해서 망한 경우보다
성공과 번영으로 인하여 망하게 된 경우가 더 많습니다.
하나님은 늘 이스라엘 백성들이 풍성함을 인하여
교만해질까봐 염려하셨습니다.
14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염려하노라 여호와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이끌어 내시고
이스라엘과 유다 왕 가운데 너무 잘돼서 망한 왕들이 많습니다.
아사왕, 요아스왕, 아마샤왕, 웃시야왕...
그리고 우리가 잘 아는 아합왕은 영적으로 타락했지만
경제적으로는 아주 부강한 나라를 이루었습니다.
절대 성공과 영성은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런 사실을 볼 때, 다윗왕이 위대한 이유는
이스라엘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면서도 하나님을 향한
정직과 신실함을 잃어버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대부분 성도들은 평안할 때보다 어려울 때 더 간절히 기도합니다.
저도 예외는 아닙니다.
너무 힘들때는 눈물 흘리며 간절히 기도했다가도
문제가 해결되면, 어느 순간 눈물이 말랐던 것을 기억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성경에 말하는 바른 기도의 자세가 아닙니다.
근본적인 문제는 어려울 때 기도하느냐 안하느냐가 아닙니다.
모든 일들이 원만하게 돌아갈 때에도 간절하게 끊임없이
기도할 수 있는가 입니다.
이런 기도의 정신을 놓치고 있기 때문에,
기도의 깊은 세계로 들어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신의 외적인 환경을 아무리 살펴보아도
울거나 통곡할 만한 이유가 없음에도,
영적인 문제를 위해서 애통하며 부르짖는 기도를
할 수 있는 성도가 영적으로 풍성한 복을 누립니다.
저는 아직도 기억나는 사람이 한명 있습니다.
제가 20대 초반에 청년부 셀리더를 할 때,
이제 막 대학교를 입학한 20살 청년이 저의 셀원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대학교 첫 M.T를 다녀오더니 셀모임 때 펑펑 울었습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대학생들이 M.T에 가서
1박2일 동안 계속 술만 마시고,
남녀 모두가 술취해서 한 공간에서 쓰러져 누워있는 모습을 보면서,
그 영혼들이 너무 불쌍해 보인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을 향해 울고있는 하나님의 마음이 느껴져서
펑펑 울며 그들을 위해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매일 대학교를 위해서 울며 기도했던 자매는
선교단체 간사가 되었고, 지금은 목회자와 결혼해서 사모로서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받고 있습니다.
같은 대학교를 다니지만,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느낄 수 있는 환경 속에서도
영혼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느끼면,
영혼을 향한 긍휼함과 가난한 심령을 부어주셔서
영적으로 풍성한 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광야란, 나의 상황과 환경의 가난함이 아닌,
나의 영혼이 하나님을 향한 갈망함으로 가난한 심령이 되는 것입니다.
셋째, 예수님은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가장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예수님은 가르침과 치유 사역보다 하나님과의 교제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대로 허다한 무리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치료받으려고 모여들었습니다.
수많은 영혼에게 하나님 나라를 가르치고,
그들의 아픔을 고쳐주는 일이 얼마나 중요합니다.
그로 인해 예수님을 따르고,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이 많아지면
얼마나 하나님이 기뻐하시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말씀과 치유의 사역을 포기하고,
하나님과 교제하기 위해서 무리로부터 도피하였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아온 시간은 낮이었습니다.
그들이 밤 중에 무례하게 예수님을 찾아온 것도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이 밤이 되어, 기도해야되는 시간이 되어서
기도시간에 방해받지 않으려고 피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분명히 예수님은 무리들을 의식하여 그들을 피하기위해
하나님께 나아갔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이 많은 무리들에게 행할 사역을 뒤로 미루고
하나님과의 교제시간을 가졌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예수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가르침과 치유사역보다
하나님과의 끊임없는 교제라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기도를 통한 하나님과의 교제가 예수님에게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오늘날 우리는 교회에서 기도의 중요성에 대해서 많이 듣습니다.
기도해야 삽니다! 기도는 호흡입니다!
기도할 때 하나님이 일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를 살기 위한 수단으로,
하나님이 역사하시기 위한 방편으로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기도가 성공적인 사역의 수단이 될 때,
목표했던 성공을 거두면, 기도는 설자리를 잃게됩니다.
기도는 말씀 사역, 치유 사역을 성공적으로 감당하게 하지만,
그것만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해서는 안됩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교제입니다.
우리의 모든 사역은 하나님의과 친밀한 교제가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와 교제하기 위해서 창조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가족 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관계입니다. 부모와 자녀, 형제 자매 간의 관계입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고, 무슨 일을 하느냐가 우선이 아닙니다.
내가 훌륭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부모가 필요한 게 아니라
부모로서, 자녀로서, 형제 자매로서 관계가 중요합니다.
가족의 구성원으로서 서로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사회에서 각자의 직업도 갖고, 좋은 사람이 되려고
서로 노력하며, 교제 속에서 가족을 이루어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에게 맡겨진 사역이 누구의 것입니까?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이 맡겨주신 것이고, 하나님의 사역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과의 교제를 그 사역의 성공을 위한 도구로 생각한다면,
사역의 주체이시며, 우리와 교제하시려고 우릴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얼마나 마음이 서운하시겠어요.
예수님에게 기도는 성공적 목회, 전도를 위한 수단이 아니라
삶 그 자체였습니다.
이 사실이 예수님의 기도생활에 나타난 것입니다.
예수님은 인기가 절정에 도달하여 주목받을 때에
유혹에 빠지는 길을 피하기 위해서 하나님께 나아갔습니다.
인기가 높아져서 사람들의 우상이 되고, 결국에는
하나님의 종이 아니라 사람들의 종이 되는 것을 원치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늘 말씀보다 기도를 앞세우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만 인정받는 종이 되길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성공적인 사역보다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선택했습니다.
기도는 우리의 목적을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것보다 하나님과의 교제를 가장 중요하다고
고백하는 행위입니다.
“나는 하나님이 제일 좋아요. 하나님 없이는 나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나는 성공보다, 출세보다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가 더 좋아요.”
이런 고백이 하나님을 향한 바른 기도의 내용인줄 믿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기도 앞에서, 너무 바빠서 너무 할일이 많아서
기도할 수 없다는 변명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기도가 설 자리 없는 삶은 하나님이 중요하지 않는 삶이요,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는 것에 무관심한 삶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광야기도를 통해
인간이 하나님을 향해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 가르쳐줍니다.
오늘도 우리가 예수님의 기도생활을 본받아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겨
세상의 성공을 바라보지 않고, 교만해져 하나님을 멀리할까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매일 매일 더 가까이 주님께 다가가는
아름답고 복된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예수님처럼 세상에서 성공할 때, 일이 잘 풀릴 때, 높아지려 할 때
하나님을 먼저 찾게 하시고, 하나님과의 교제가 삶의 가장
우선순위가 되어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는 삶이 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