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823 새벽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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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선지자냐 옳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보다도 훌륭한 자니라
27 기록된 바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앞에서 네 길을 준비하리라 한 것이 이 사람에 대한 말씀이라
28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요한보다 큰 자가 없도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 하시니
29 모든 백성과 세리들은 이미 요한의 세례를 받은지라 이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의롭다 하되
30 바리새인과 율법교사들은 그의 세례를 받지 아니함으로 그들 자신을 위한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니라
31 또 이르시되 이 세대의 사람을 무엇으로 비유할까 무엇과 같은가
32 비유하건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서로 불러 이르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하여도 너희가 울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33 세례 요한이 와서 떡도 먹지 아니하며 포도주도 마시지 아니하매 너희 말이 귀신이 들렸다 하더니
34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너희 말이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35 지혜는 자기의 모든 자녀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
36 한 바리새인이 예수께 자기와 함께 잡수시기를 청하니 이에 바리새인의 집에 들어가 앉으셨을 때에
37 그 동네에 죄를 지은 한 여자가 있어 예수께서 바리새인의 집에 앉아 계심을 알고 향유 담은 옥합을 가지고 와서
38 예수의 뒤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닦고 그 발에 입맞추고 향유를 부으니
39 예수를 청한 바리새인이 그것을 보고 마음에 이르되 이 사람이 만일 선지자라면 자기를 만지는 이 여자가 누구며 어떠한 자 곧 죄인인 줄을 알았으리라 하거늘
4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시몬아 내가 네게 이를 말이 있다 하시니 그가 이르되 선생님 말씀하소서
41 이르시되 빚 주는 사람에게 빚진 자가 둘이 있어 하나는 오백 데나리온을 졌고 하나는 오십 데나리온을 졌는데
42 갚을 것이 없으므로 둘 다 탕감하여 주었으니 둘 중에 누가 그를 더 사랑하겠느냐
43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내 생각에는 많이 탕감함을 받은 자니이다 이르시되 네 판단이 옳다 하시고
44 그 여자를 돌아보시며 시몬에게 이르시되 이 여자를 보느냐 내가 네 집에 들어올 때 너는 내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아니하였으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그 머리털로 닦았으며
45 너는 내게 입맞추지 아니하였으되 그는 내가 들어올 때로부터 내 발에 입맞추기를 그치지 아니하였으며
46 너는 내 머리에 감람유도 붓지 아니하였으되 그는 향유를 내 발에 부었느니라
47 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그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그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
48 이에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49 함께 앉아 있는 자들이 속으로 말하되 이가 누구이기에 죄도 사하는가 하더라
50 예수께서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니라
두 아이가 밖에 나가서 놀고 들어왔습니다. 한 아이는 옷을 더럽히기 싫어서 적극적으로 장난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어린 아이니 홁 장난도 하고 살짝 바닥게 무릎을 꿇기도 하였습니다. 반면 한 아이는 하고 싶은 장난을 다하고 바닥에 털썩 주저 앉으며 놀아 먼지가 가득하게 옷을 더럽혔습니다. 그리고 집에 들어옸을 때 어머니는 두 아이 중 더 더러운 아이만 씻기고 옷을 갈아입히지 않습니다. 두 아이 모두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옷을 갈아입고 씻어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옷을 덜 더럽힌 아이는 자기는 그래도 깨끗하게 놀았다고 칭찬해달라고 할지 모르지만, 엄마의 입장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이 바로 이와같은 상황입니다. 바리새인 시몬이 예수님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였습니다. 그때 한 여인이 등장합니다. 그 여인을 표현하는 단어는 ‘죄인' 이었습니다. 이 여인은 예수님이 자신의 마을에 오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향유 한병을 가지고 예수님을 만나러 왔습니다. 이 여인은 말 그대로 죄를 지은 여인이었습니다. 다시말해 자신만 아는 죄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마을 모든 사람들이 그여자의 죄를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학자들은 마을 사람들이 이 여자를 죄인으로 간주한 것을 볼 때 창녀 혹은 음행한 여자일 수도 있다고 추측합니다. 이렇게 추측은 하지만 이 여인의 정확한 죄가 무엇인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정확한것은 마을의 모든 사람들이 알 정도로 이 여인은 죄를 지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누구도 부인 할 수 없는 죄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여인은 지금 예수님을 찾아와 예수님의 발을 눈물로 닦고 옥합을 열어 향유를 부었습니다. 당시 향유는 귀한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귀한 것을 지금 예수님의 발에 붇는 것입니다. 이러한 행위는 통회일 수도 있고, 감사일 수 있으며, 경외의 표현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 여인은 예수님을 만났고, 예수님을 통해 놀라운 경험을 하였고, 스스로 돌이키는 상징적인 행동을 했습니다. 모두가 죄인으로 여겨 멸시하고 무시하였지만, 예수님은 이 여인을 용납하셨습니다.
놀아운 용납과 회심의 시간입니다. 하지만 유독 한 사람만은 그 감동에 합류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바로 바리새인 시몬입니다. 이러한 모습을 본 시몬은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만일 이 사람이 예언자라면, 선지자라면 자기를 만지는 이 여자가 누구라는 것 쯤은 알텐데...” 이 말의 뜻은 “정말로 예수님이 탁월한 하나님의 사람이었다면 자신을 만지고 있는 이 여자가 부정한 여자인 줄 알아서 그렇게 하지 못하게 했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바리새인의 이런 마음은 어디서 비롯된 것인가? 그것은 바로 자신의 교만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시몬의 마음 속에는, 스스로 의롭다는 의식이 가득했습니다. 자신은 그 부정한 여인을 정죄할 수 있을 만큼 의롭다고 생각했고, 또 자신이 예수님의 행동이 옳고 그르다고 판단 할 수 있을만큼 분별력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바리새인은 그 여인 뿐 아니라 예수님까지도 판단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리새인 시몬은 자신이 가진 기준이 뚜렷했습니다. 그래서 그 기준에 어긋났기 때문에 예수님 마저 틀렸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도 그럴것이 당시 바리새인 존경받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유대인들 중에 특별히 구별된 성직자와 같은 사람들이 바리새인이었습니다. 이들은 안식일을 지키고, 십일조를 철저히 하며, 율법을 지키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사람들에게 모범이 되고 모델이 되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러기에 바리새인 시몬은 자신이 의인이 되는 줄 생각하였습니다.
하지만 바리새인 시몬이 놓치고 있는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지금 자기가 얼마나 큰 은혜를 누리고 있는지를 모른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 자기 집 근처로 오신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이 사람은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예수님께 함께 식사할 것을 요청하였습니다. 이 모습을 예수님의 시각으로 본다면 교만에 찌든 한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 세상을 말씀으로 창조하셨던 창조주에게 함께 식사할 것을 요청한 것과 같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예수님이 자신과 함께 식사하기 위해 자신의 집에 들어오신 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 줄을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다른 사람을 정죄하고 예수님의 행동을 판단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리새인은 지금 스스로 의롭다 생각하기에 예수님이 자신의 집을 방문하신 것이 그리 감격스럽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시몬에게 예수님은 빚을 탕감해주는 비유를 들으며 많은 빚을 탕감 받은 사람이 더욱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본문 41,42절 입니다.
41 이르시되 빚 주는 사람에게 빚진 자가 둘이 있어 하나는 오백 데나리온을 졌고 하나는 오십 데나리온을 졌는데
42 갚을 것이 없으므로 둘 다 탕감하여 주었으니 둘 중에 누가 그를 더 사랑하겠느냐
예수님의 질문에 시몬은 43절에 많이 탕감을 받은 사람이 더욱 사랑 할 것이라고 대답을 하였습니다. 여기서 사랑하겠느냐의 원 뜻은 사랑이 아니라 감사입니다. 아람어나 히브리어에는 ‘감사하다'에 해당하는 단어가 없습니다. 그래서 종종‘사랑하다, 축복하다, 찬양하다, 영광을 드리다'와 같은 단어를 ‘감사하다'라는 뜻으로 사용합니다. 그러기에 ‘더 사랑하다'라는 표현은 ‘더 감사하다'를 뜻이 됩니다. 그러기에 빚을 많이 탐감받은 사람이 더 많이 감사할 것이라고 말 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말을 반대로 생각하면 감사를 더 많이 하는 사람은 더 큰 빚을 탕감받은 사람이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바리새인 시몬은 지금 예수님께서 자신의 초대에 응한 것에 대해 감사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에 반해 죄를 지은 여인은 자신의 마을에 예수님이 오신 것만으로 감사하며 예수님 앞에 나와 눈물로 예수님의 발을 씻으며 마음 속으로 용서를 구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있어 가장 비싼 것을 기꺼이 주님 앞에 드리는 것입니다. 이 여인은 왜 이렇게까지 하는 것입니까? 자기가 얼마나 큰 은혜를 받은 죄인인지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이에 반해 바리새인 시몬은 이 여인을 판단하고 정죄하면서도, 예수님께 발 씻을 물 조차 주지 않았고, 그 흔한 감람유도 붓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바리새인 시몬의 모습과 여인의 모습을 비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자신이 죄인임을 아는 죄인과 자신이 죄인임을 모르는 죄인입니다.
앞서 이야기 한 것과 같이 덜 더럽다고 씻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니고, 빚을 조금 졌다고 빚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지금 우리의 삶속에서 하나님을 향한 감사함이 없고 주변 사람들을 향해 손가락질하고 판단하고 정죄만 한다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오늘 본문에 나오는 바리새인 시몬과 같은 사람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개미를 볼 때 개미가 아무리 커도 개미는 개미 입니다. 개미가 아무리 크다고 해서 개미가 사람이 될 수 는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볼 때 어떻게 보시겠습니까? 물론 좀 더 나은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조금 더 믿음이 좋은 사람이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 모두는 예수님의 은혜가 필요한 죄인들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신앙생활을 오래했어도, 맡고 있는 직분이 많아도, 헌금을 아무리 많이 해도, 또 많은 봉사를 한다 해도, 그리고 이렇게 새벽기도회에 한번도 빠지지 않는다 할지라도 우리는 예수님의 은혜가 필요한 죄인들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죄인들임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은혜로 우리가 이자리에 있는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미 우리는 받은 은혜가 많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 믿고 복 받는게 아니라 이미 우리는 복을 받았기에 예수님을 믿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비록 내 삶이 내가 원하는대로 되지 않을지라도 이미 복받아 예수님을 믿고 있음에 감사하는 성도님들이 되길 바랍니다.
그리고 이 감격과 은혜를 나만 아는 것이 아니라 매일같이 우리의 연약함을 주님 앞에 낮낮이 고백하여 죄 사함의 감격과 기쁨을 주위 사람들에게 간증하는 오늘 하루가 되길 주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