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땅에 물이 고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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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드리겠습니다.
사랑의 주님 감사합니다.
오늘 하루도 지켜주시고, 은혜로 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오늘도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그 뜻대로 살아갈 수 있는 지혜와 용기,
능력과 믿음의 담대함을 주시옵소서.
말씀을 사모하여 주 앞에 나온 우리 영혼을 불쌍히 여기사
성령으로 기름부어 주시고, 내일을 살아갈 새 힘 허락하여 주옵소서.
오늘도 받은 은혜에 감사함으로, 주실 은혜 사모함으로
드리는 예물 있습니다. 00 헌금, 00 헌금으로 하나님께 올려 드리오니
받으시고 만복을 내려 주시옵소서.
감사하여 드린 만큼, 더 큰 감사가 넘쳐나도록
풍성한 은혜 부어 주시옵소서.
부족한 종이 말씀을 대언할 때, 저의 연약함은 감추시고
하나님의 지혜만 나타나게 하옵소서.
그렇게 일하실 주님을 찬양합니다.
이 모든 말씀 오늘도 살아서 우리와 함께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할렐루야~ 앞뒤 옆사람과 인사하겠습니다.
잘 오셨습니다. 큰 은혜 받으세요. 축복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은
고린도후서 12장 1~10절 말씀입니다.
1 무익하나마 내가 부득불 자랑하노니 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하리라 2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그는 십사 년 전에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3 내가 이런 사람을 아노니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4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5 내가 이런 사람을 위하여 자랑하겠으나 나를 위하여는 약한 것들 외에 자랑하지 아니하리라 6 내가 만일 자랑하고자 하여도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아니할 것은 내가 참말을 함이라 그러나 누가 나를 보는 바와 내게 듣는 바에 지나치게 생각할까 두려워하여 그만두노라 7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8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9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10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오늘은 고린도후서 12장 1~10절말씀을 통해
“낮은 땅에 물이 고인다”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만드실 때 목적 있는 인생으로 만드셨습니다.
그러므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3가지 문제를 확인하고 싶어합니다.
첫째, 정체성의 문제입니다. 나는 누구인가?
둘째, 중요성의 문제입니다. 내가 과연 중요한 존재인가?
셋째, 영향력의 문제입니다. 삶에서 나의 위치는 무엇인가?
이와 같은 질문의 해답은 바른 목적을 찾는 것에 있습니다.
인생의 근본적인 문제로 고민하던 욥은
자신이 어떠한 존재인가를 분명하게 고백을 했습니다.
10 모든 생물의 생명과 모든 사람의 육신의 목숨이 다 그의 손에 있느니라
사람은 하나님이 만드신 존재로 하나님에 의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따라서 목적 있는 인생을 살려면 하나님의 목적을 따라야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주도권을 인정하며, 하나님의 목적에 맞게
나의 삶을 맞추며 살아가는 삶입니다.
가장 완벽하게 하나님의 주도권을 인정한 사람을 뽑으라고 한다면,
아마도 사도 바울일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생명과 운명을 하나님께 맡기고 헌신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20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21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24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바울은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 평생 생명을 바쳤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사람에겐 하나님이 복을 주시되
넘치도록 축복을 하셔야 당연하고 상식적으로 맞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복이 무엇입니까?
물질의 축복? 떠돌이 천막장사였습니다.
가정의 축복? 독신의 은사를 받았습니다.
명예의 축복? 매맞고 다니면서 비난을 받았습니다.
오히려 바울은 형통하고 기쁜 날보다 고생의 날이 훨씬 많았습니다.
그렇다면 건강의 축복이라도 받아야 하는데
본문에 의하면 심한 질병으로 고통을 받았습니다.
바울은 이 병이 얼마나 고통스러웠든지
육체의 가시, 사탄의 사자라고 불렀습니다.
이런 절망스런 고통과 아픔을 당하는 것을 보면 하나님이 불의하시고
도저히 이치에 맞는 것 같지 않아 납득이 가질 않습니다.
주님을 부인하며 비겁하게 행동했던 베드로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다면 이해가 됩니다.
가룟 유다에게 이런 병이 있었다면
벌을 받은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온전히 주를 위해 생명을 내놓고
물, 불 가리지 않고 주의 일이라면 앞장섰던 하나님의 종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사실에 때론 실망감이 듭니다.
혹여나 내가 하나님의 일을 위해 수고하고 헌신한 대가가
사도 바울처럼 육체의 질병과 고통으로 주어지는 것은 아닐지
두려워서 망설여지기까지 합니다.
목사는 목회를 하면서 때때로 고통에 처한 교인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의 문제 해결을 위해 기도를 합니다.
그러나 때로는, 하나님이 야속하게 생각들 때가 있습니다.
불치의 병이나 사업 실패, 사랑하는 가족들과 어쩔 수 없이
사별하는 경우, 더 살아도 될 분이 먼저 떠나는 교우들을 보면서
어째서 저렇게 견디기 힘든 육체의 가시를 주시는가...
하나님의 음성을 기다리며 안타까운 마음으로 기도하며
간절하게 매달릴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그런 문제들을 안고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의 대답은 늘 같습니다.
제가 무지해서 모를 뿐이지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것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모두가 괜찮아 보이지만,
누구나 차마 말할 수 없는 쓰라린 고통을 안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제목들이 있습니다.
가정 문제, 예상하지 않았던 돌발사고, 관계의 문제, 육체적인 질병,
신앙의 싸움, 자기 자신과의 갈등 등...
신자는 매일 고통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어떤 문제는 하나님을 믿지 않았더라면 하지 않아도 됐을 문제들로
기도하며 평생을 씨름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사람 바울이라 해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들이 풀어야될 믿음과 가시의 관계입니다.
바울은 이런 일이 왜 일어나는가를 모르기 때문에
고통의 골짜기에 서서 가시가 떠나기를 세번이나 간절히 구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울에게 이런 응답을 주셨습니다.
8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9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심정을 살펴야합니다.
고통이나 아픔을 당할 때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
그 대답을 여기서 찾을 수 있습니다.
분명히 바울은 육체의 질병을 치료해 주시길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응답은 전혀 다른 방향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오히려 그 병을 은혜로 평가하셨습니다.
불치의 병에 걸리면 사람들은 상식적으로 이것을
하나님의 저주나 심판으로 생각합니다.
어떻게 육체의 가시가 은혜입니까?
어떻게 아픔을 겪는 것이 은혜입니까?
7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육체의 가시는 사랑의 가시이며 은혜의 가시였습니다.
나를 너무 교만하지 않도록 만드시기 위하여
나를 조절하게 만드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가시가 ‘조절기능’을 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동안 너무 많은 은혜를 하나님으로부터 받았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특별한 계시도 받았습니다.
삼층천도 보았습니다. 환상도 보았고, 기적도 경험했습니다.
그러나 너무 많은 은혜를 받으면 나쁜 교만의 병이 생깁니다.
그러므로 그동안 받은 은혜가 은혜로 남기 위해서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가 사명으로 열매 맺기 위해서
육체의 가시를 남겨두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에게 육체의 가시는 오히려 축복이고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증거이고 표적이며 은혜였습니다.
가시 속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느낍니다.
8 곧 헛된 것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 9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둑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
하나님으로부터 계속된 축복이 있기 위해선
끝까지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하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오히려 축복이 나를 무너지게 하는
올무가 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신자들에게 나타나는 ‘가시 신드롬’이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처음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을 때 가시의 사건을 만나면
겁에 질린 것처럼 하나님 앞에 엎드리고 무릎을 꿇습니다.
자신의 믿음이 약할수록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게 됩니다.
그러나 신앙생활의 기간이 길어지고, 믿음이 자라면서
스스로 성숙한 신자가 되었다고 생각할 때부터 문제입니다.
전에는 어떤 가시에 찔려도 자신에게 부족한 것이 있다고
예민한 반응을 나타내며 하나님께 무릎을 꿇었는데,
어느 순간 신앙의 연륜이 쌓이고, 직분을 받고, 교회의 어른이 되면서
그 가시의 정체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가시킵니다.
자신은 가시에 찔릴 이유가 없는 것처럼 회피합니다.
내가 신앙생활을 몇년을 했는데...
하나님은 절대 나에게 그러실 분이 아니다. 스스로 자만합니다.
이것이 신자를 무너지게 하는 무서운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을 보십시오.
바울은 자신을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내가 겸손하기 위해서는 가시가 필요한 것을 깨닫고 인정합니다.
그동안 바울도 이 문제 때문에 고민했습니다.
27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바울은 자신의 약점, 얼마나 잘못되었는지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쳐보고, 가혹하게 대합니다.
때리기도 하고, 억지로 자신을 묶기도 해봅니다.
그러나 내 몸이 말을 듣지 않습니다.
내 스스로 겸손하려 했지만, 겸손해지는 일에 실패했습니다.
쓴 뿌리가 빠지지 않습니다. 못된 자아가 뽑히지 않습니다.
그러니 이제는 도리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쳐 복종시키는 길만이 나를 겸손하게
만들 수 있는 방법임을 깨달은 것입니다.
이런 가시의 축복, 가시의 능력에 대한 깨달음이
은혜 중에 은혜라는 것입니다.
낮은 땅에 물이 고인다는 말이 있습니다.
스스로 낮아진 자리에 하나님은 은혜의 단비를 내리십니다.
높은 곳에는 물이 고이지 않습니다.
너무 교만해지면 어떤 은혜도 받지 못합니다.
교만하면 하나님과 멀어집니다.
스스로 자신이 잘났다고 하는 사람 곁에는 사람이 모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잘났어도 잘나지 않은 자처럼 사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예수를 닮은 사람입니다.
예수님처럼 잘난 사람이 이 세상에 또 어디 있습니까?
그러나 침을 뱉어도 용서합니다. 얼굴을 때려도 맞습니다.
창에 찔려도 당합니다.
다른 사람들을 억울하게 하고, 상대방을 넘어뜨려 승리하기 보다는
스스로 짐을 지고, 고통을 당하는 쪽을 선택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능력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상대방의 자존심을 밟고 눈물나게 만들면서 얻는 기쁨은
세상 사람이 하는 짓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다릅니다. 믿는 사람은 다릅니다.
나의 자존심은 밟히면서도 상대방이 높아지고, 위대해지고,
세워지는 것을 보면서 웃는 사람이
능력 있는 신자이며, 믿음 좋은 신자입니다.
그러므로 겸손은 축복 중의 축복이며 믿음의 보화입니다.
우리는 겸손의 도구인 육체의 가시, 질병의 가시를
은혜로 볼 수 있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성도 중에 아프거나 어려움을 당하면,
문제가 있어서 하나님이 주신 벌이라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오히려 하나님께 크게 쓰임받기 위하여 가시의 은혜 중에 있다라고
믿어주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고통을 당하는 본인은 바울처럼 이것이 나를 낮추고
겸손하게 하기 위한 은혜의 가시라고 여기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15 지극히 존귀하며 영원히 거하시며 거룩하다 이름하는 이가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높고 거룩한 곳에 있으며 또한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있나니 이는 겸손한 자의 영을 소생시키며 통회하는 자의 마음을 소생시키려 함이라
하나님은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하시며
겸손한 자의 영을 소생시켜 주십니다.
내가 녹아질 때 하나님은 쓰십니다.
쇳덩어리가 녹아야만 연장이 될 수 있듯이
겸손해야 하나님은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이것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 육체의 가시를 주셨습니다.
만약 바울에게 육체의 가시가 없었다면,
그는 그렇게 큰 일들을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표적을 나타낸 특별한 사람이고, 영적 명성을 얻기에
충분한 인물이었기에 얼마든지 교만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교만하여 하나님의 일을 그릇 치지 않도록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어주셨습니다. 그것이 육체의 가시입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은 후
바울의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10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바울은 스스로 약할 때가 가장 강할 때임을 알았습니다.
내가 약해질 때, 그리스도의 능력이 나와 함께 하고,
내가 눈물 흘릴 때,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고,
내가 낮아질 때, 그리스도의 엄청난 사랑이 내게 온다는 것을 보았기에
내가 약한 그때가 강할 때라는 비결을 깨달았습니다.
베토벤은 천재적인 음악가였습니다.
운명 교향곡, 전원 교향곡 등 수많은 불후의 작품을 남겼습니다.
그러나 그가 그렇게 위대한 곡들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은
시각과 청각을 잃은 다음, 즉 육체의 가시로 심오한 번뇌 속에서
비로소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었고, 그 하나님의 영감을 받아
위대한 작품을 남길 수 있었던 것입니다.
베토벤은 육체의 가시로 인한 약함을 느낄 때
오히려 하나님을 발견하는 강함을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약할 때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육체의 가시로 고통을 느낄 때,
하나님이 일하시는 기회임을 놓치지 마십시오.
믿음으로 살아가는 성도의 위대함은
약할수록 하나님 편에 선다는 것입니다.
5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무릇 나의 소망이 그로부터 나오는도다 6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요새이시니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어려운 일을 당하는 때가 하나님을 바라보는 기회입니다.
어려움 중에서 눈을 들어 하나님을 보십시오.
그때에 온전케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내게 빛으로 임할 것입니다.
어려움이나 고통과 절망은 성도를 파멸시키는 도구가 아니라
더욱 하나님을 붙잡고 살아가도록 만드는 도구입니다.
때문에 어려울수록 하나님을 바라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야곱이 약해져서 어찌할 수 없을 때
얍복강의 기도 소리를 기억하십니까?
환도 뼈를 얻어맞아 부러지기까지 하나님의 사자와 씨름하며
응답을 기다렸던 야곱을 보십시오.
결코 포기하지 않으면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기도의 열정은
죽을 각오로 기도하는 모습입니다.
밤을 세워가며 부러진 갈비뼈를 움켜쥐며
이대로 물러서면 죽는다는 절박함으로 기도했던 야곱의 결심이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게 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야곱이란 이름대신 이스라엘이라는
승리자의 이름, 기도의 챔피언이라는 축복을 받지 않았습니까?
야곱의 기도는 생명을 담보로 하는 기도였습니다.
문제 있을 때, 단순히 기도하라는 차원을 넘어
생명을 걸고 기도할 때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합니다.
가시 때문에 기도를 하든 은혜 때문에 기도를 하든
언제나 생명이 담겨있는 간절한 기도는 능력이 있습니다.
믿음으로 살기를 원하십니까?
육체의 가시냐, 환경의 가시냐, 가시의 종류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약하다고 실망하지 않고,
찔린 상처 때문에 슬퍼하고, 고민하는 것을 넘어서야 합니다.
오히려 지금이 하나님을 찾는 절호의 기회이며
그 기도 속에서 나의 약함이 곧 강함임을 알게 되고
나의 교만이 무너지며 하나님의 은혜가 보이는 것입니다.
15 그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그에게 응답하리라 그들이 환난 당할 때에 내가 그와 함께 하여 그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9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 만일 네가 너희 중에서 멍에와 손가락질과 허망한 말을 제하여 버리고
믿는 자의 간절한 기도, 환난 때에 부르짖는 기도를
하나님은 응답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육체의 가시 때문에 괴롭습니까?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은 치료해주십니다.
만일 치료하지 않는다면 그 어떤 어려움도 이길 수 있는
강한 능력을 부어 주십니다.
사탄의 사자로 인해 괴롭습니까?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이 물리치실 것입니다.
우리들에게 일어나는 모든 사건의 배후에는
하나님이 바라시는 목적이 있습니다.
그것을 아는 길은 기도하는 방법 뿐입니다.
오늘도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 속에
하나님의 은혜가 있음을 바라보고, 믿고, 기도하며
능력 있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약할 때 믿음으로 더 강해지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믿음의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작은 문제로도 휘청거리는 교회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폭풍 속에서도 꿋꿋하게 서있는 강한 신자, 강한 교회가 되기 위하여
간절하게 생명을 건 믿음의 기도를 해야 합니다.
교회는 겸손한 믿음의 사람들에 의해서 세워집니다.
교회는 육체의 가시를 지니고 하나님께 나아가 은혜로 깨달으며
기도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세워집니다.
하나님은 응답하시는 분이십니다.
간절한 기도로 육체의 가시를 은혜로 깨달았던 바울에 의해서
수많은 교회가 세워진 것처럼,
오늘도 믿음으로 육체의 가시를 바라보며
나의 약함을 통해 강함으로 일하실 주님을 의지함으로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받는 거룩하고 복된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기도제목
물은 낮은 곳으로 흐릅니다. 낮은 곳에 하나님의 은혜가 머뭅니다.
우리가 약할 때 하나님을 더 간절히 부르짖음으로
우리의 연약함, 육체의 가시가 우리의 자랑이요, 은혜요,
믿음의 근거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겸손한 믿음으로 하나님의 교회를 든든히 세워 주시옵소서.
수능이 85일 남았습니다.
주보와 수험생 기도카드에 있는 명단과 기도제목을 참고하셔서
남은 시간동안 최선을 다하여 공부하고,
좋은 결과 맺게 하여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