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825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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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택하신 좋은 무화과

여러분! 오늘도 함께 만나 말씀을 나누게 되어 너무나도 반갑습니다.
이제 8월도 마지막을 향해가고 있습니다. 우리 재학생들은 다들 개학을 하면서 2학기를 시작했구요, 아마 여기 계신 대학생들도 돌아오는 주부터 2학기를 시작하게 되리라 생각을 합니다. 저 역시도 마찬가지입니다.
2학기가 시작됨으로 인해 우리는 이제 2023년의 하반기를 맞이하게 되죠. 1년이 반이 지나갔다는 거니까 정말 많은 일들을 올해 했다고 할 수 있겠죠.
저 역시도 생각해보면, 올 한해 여려분들과 정말 많은 사역들을 한 것 같더라구요. 제가 처음 와서 했던 고3데이 사역이 작년이고, 그 이후로는 다 2023년 사역이니까, 따지고 보면 캠프도 두번 했고, 국내 선교도 두번 했고, 그 외에도 수많은 사역들을 여기서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어쩌면 이 하반기는 새롭게 힘내야 하는 시기이면서도, 많이 지친모습이 우리 가운데 있게 되기도 합니다.
사실 지난 수요일에 하늘고를 방문해서 재학생들을 만났는데요, 좀 많이 안타까운 모습들이 있더라구요. 학생들이 평소에 비해 많이 오지를 않아서, 물어보니 코로나에 걸린 학생들도 많고, 그 외에도 몸이 좋지 않고 아픈 이들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참석한 친구들도 대체로 많이 지쳐있는 모습들이 있더라구요. 물론 2학기를 시작하고, 곧 9모가 있다는 부담감도 있겠지만, 2023년의 반환점을 돌고있다는 시점에서 어쩌면 지치는 것이 당연하기도 한 것 같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떠신가요? 어쩌면 여러분들도 동일한 상황에 처해있을지도 모르겠어요. 지금까지 달려왔기에 관성에 따라 달려가지만, 그 모습이 활기찬 모습보다는 어쩔수 없이 가는 모습들이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그 달려가야 할 길의 모습은 어떤가요? 학생들은 수강신청을 하면서 실라버스를 보고 이게 이번학기에 내가 해야 할 과제라니 라고 생각하면서 많은 걱정과 부담을 느끼게 됩니다. 제가 그랬거든요.
직장인들도 마찬가지일겁니다. 늘 그렇듯이 내가 수행해야할 일들이 산더미처럼 있죠.
우리는 이러한 상황에서 주님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심정적으로 쉽지 않은 모습들이 우리 가운데에는 존재하죠.
하지만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은 세상에서 두려움에 있고, 고난을 겪고 있는 우리에게 오늘 말씀을 전달해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주셨던 그 말씀을 우리가 함께 보면서 하나님께서 고난 중에 있는 백성들을 향해 어떤 말씀을 주시는지, 또 우리에게 어떤 말씀을 주시는지를 함께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말씀은 첫 구절인 1절에서 그 배경을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뭐라고 하죠? 느부갓네살 왕이 유다왕 여호야김의 아들 여고냐, 즉 여호야긴을 포로로 잡아가고, 또 다른 신하들과 공업자들을 포로로 잡아간 후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즉 이 시기는 유다왕국이 거의 망하기 직전인 시기였다는 거에요. 포로로 잡혀간 여호야긴 왕 다음 왕인 시드기야가 마지막 유다의 왕인 것을 보면, 나라의 명운이 기울고 있었다는 것이죠.
그러한 상황 속에서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환상을 보이십니다. 어떤 환상이었냐면, 바로 무화과 환상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성전 앞에 무화과 두 광주리가 놓여있는데, 하나는 극히 좋은 무화과였고, 다른 광주리에는 먹을 수 조차 없는 나쁜 무화과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물어보시죠. 네가 무엇을 보느냐, 그러자 대답합니다. 무화과가 있는데, 하나는 너무 좋고, 하나는 먹을 수 없을 정도로 나쁩니다. 라고 말이죠.
그러자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유다 땅에서 포로로 잡혀간 이들을 좋은 무화과 처럼 잘 돌볼 것이며, 그들을 다시 유다 땅으로 돌아오게 하여 그들의 마음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그들을 자신의 백성으로 삼을 것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반대로 유다에 남아있는 시드기야 왕과 그 신하들, 그리고 미리 애굽 나라로 피한 이들은 나쁜 무화과와 같이 버리셔서 환난과 조롱과 저주를 받게 되며, 조상들의 땅에서 멸절하게 할 것이라고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결국 예레미야가 본 환상의 무화과들은 하나님께서 회복시키실 백성들과 버리실 백성들을 가리켰던 것입니다.
사실 이 무화과가 성전 앞에 놓였다는 것은 이 광주리들의 무화과를 하나님께 바쳐야 한다는 의미였겠죠. 그러면 당연히 좋은 무화과만이 남고 나쁜 무화과는 버려져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에게 바쳐질 좋은 무화과들을 누구로 말씀하신 거에요? 바로 포로로 잡혀간 백성들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자. 우리가 한번 생각을 해보자구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떤 백성들이에요? 자신들의 민족을 너무나도 사랑하는 백성들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신 가나안 땅을 또한 너무나도 사랑하죠.
그런데 그 땅에서 떠나 이방인의 땅으로 끌려간다는 것은 그들에게 어떤 의미겠어요? 최악의 의미, 즉 하나님께 버림받은 사람들이라고 생각이 되었을거에요.
그리고 어쩌면 포로로 택함받지 않고, 가나안 지역에 남게 된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택했다고 생각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렸을 수도 있을거에요.
하지만 현실은 달랐습니다. 오히려 바벨론 이방나라의 땅으로 팔려간 백성들을 하나님은 택하셨습니다. 왜 그런 것일까요?
그 이유는 하나님의 뜻이 이미 가나안 땅에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 21:8–9 NKRV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보라 내가 너희 앞에 생명의 길과 사망의 길을 두었노라 너는 이 백성에게 전하라 하셨느니라 이 성읍에 사는 자는 칼과 기근과 전염병에 죽으려니와 너희를 에워싼 갈대아인에게 나가서 항복하는 자는 살 것이나 그의 목숨은 전리품 같이 되리라
예레미야 22:18–19 NKRV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유다의 왕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에게 대하여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무리가 그를 위하여 슬프다 내 형제여, 슬프다 내 자매여 하며 통곡하지 아니할 것이며 그를 위하여 슬프다 주여 슬프다 그 영광이여 하며 통곡하지도 아니할 것이라 그가 끌려 예루살렘 문 밖에 던져지고 나귀 같이 매장함을 당하리라
예레미야 22:24–27 NKRV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나의 삶으로 맹세하노니 유다 왕 여호야김의 아들 고니야가 나의 오른손의 인장반지라 할지라도 내가 빼어 네 생명을 찾는 자의 손과 네가 두려워하는 자의 손 곧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의 손과 갈대아인의 손에 줄 것이라 내가 너와 너를 낳은 어머니를 너희가 나지 아니한 다른 지방으로 쫓아내리니 너희가 거기에서 죽으리라 그들이 그들의 마음에 돌아오기를 사모하는 땅에 돌아오지 못하리라
하나님은 여러차례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 지금의 왕들이 이끄는 유다 나라가 스스로의 죄악으로 인해 반드시 멸망할 것이며 끌려가게 될 것을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냐, 바로 다윗으로 시작되어 이어졌던 이 유다 나라가 더이상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서 있을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왜냐, 그들의 하나님으로부터 너무나도 멀리 떠나버렸기 때문이죠.
그리고 하나님의 그 말씀과, 예레미야가 전한 예언 그대로 유다 나라는 시드기야를 끝으로 바벨론에게 완전히 멸망하고, 수많은 백성들은 포로로 끌려가게 됩니다.
여기서 많은 유대인들은 충격을 받게 됩니다. 분명히 하나님께서 자신들의 조상인 다윗을 통해 그의 나라가 강건할 것임을 말씀하셨기 때문이죠.
사무엘하 7:8–16 NKRV
그러므로 이제 내 종 다윗에게 이와 같이 말하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목장 곧 양을 따르는 데에서 데려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삼고 네가 가는 모든 곳에서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 모든 원수를 네 앞에서 멸하였은즉 땅에서 위대한 자들의 이름 같이 네 이름을 위대하게 만들어 주리라 내가 또 내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한 곳을 정하여 그를 심고 그를 거주하게 하고 다시 옮기지 못하게 하며 악한 종류로 전과 같이 그들을 해하지 못하게 하여 전에 내가 사사에게 명령하여 내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때와 같지 아니하게 하고 너를 모든 원수에게서 벗어나 편히 쉬게 하리라 여호와가 또 네게 이르노니 여호와가 너를 위하여 집을 짓고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누울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네 씨를 네 뒤에 세워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리라 그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의 나라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리라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니 그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의 매와 인생의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내가 네 앞에서 물러나게 한 사울에게서 내 은총을 빼앗은 것처럼 그에게서 빼앗지는 아니하리라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 하라
그들은 수없이도 한쪽으로는 다른 이방과 우상들을 섬기면서도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주셨던 언약의 말씀이 있기 때문에 자신들과 자신들의 나라가 온전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믿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자신들의 수도 예루살렘이 바벨론 이방 나라에 의해 짓밟히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것으로 하나님이 자신들을 버렸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버리시지 않았습니다. 바로 좋은 무화과들을 남겨놓으셨죠. 오늘 말씀에 등장했던 포로로 잡혀간 백성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말씀 그대로 그들을 다시금 가나안, 이스라엘 땅으로 부르십니다. 그리고 다시금 말씀을 가르치시고, 성전과 성벽을 재건하게 하십니다.
그것이 바로 에스라와 느헤미야에 기록된 포로귀환의 역사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7절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그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시고, 하나님은 백성들의 하나님이 되어주십니다.
이 말씀이 중요한 것은 무엇이냐면요, 이 구절이 바로 하나님과 백성들이 언약을 맺을 때 등장하는 구절이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17:5–8 NKRV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함이니라 내가 너로 심히 번성하게 하리니 내가 네게서 민족들이 나게 하며 왕들이 네게로부터 나오리라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및 네 대대 후손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네가 거류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온 땅을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하나님께서 이 언약의 말씀을 이 구절에서 하셨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하나님께서 좋은 무화과로 남겨두신 그들과 함께 새 언약을 맺으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상숭배와 죄로 물든 잘못된 백성들, 즉 나쁜 무화과들을 버리고, 포로 귀환을 통해 다시금 하나님께로 나아온 이들을 남기시어 그들과 함께 새 언약을 맺으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 새 언약은 또다른 예레미야의 예언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예레미야 23:5–6 NKRV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때가 이르리니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 그가 왕이 되어 지혜롭게 다스리며 세상에서 정의와 공의를 행할 것이며 그의 날에 유다는 구원을 받겠고 이스라엘은 평안히 살 것이며 그의 이름은 여호와 우리의 공의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이 말씀에 등장하는 다윗의 한 의로운 가지, 메시야는 누구일까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죠.
그를 통해 유다와 이스라엘, 그 뿐만 아니라 우리 모든 이들이 새 언약의 백성으로 구원을 얻게 되었고, 지금 우리에게까지 그 구원이 임하게 된 것이죠.
분명 유다의 백성들이 포로로 끌려가게 되었을 때, 그들은 각 사람의 시선으로는 어떻게 보였나요? 실패한 사람들, 버려진 사람들로 여겨졌습니다. 왜냐, 그들의 삶에 앞으로 고난만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겠죠.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바벨론 포로로 잡혀간 유다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보호하심 아래 잘 성장하였고, 에스라, 느헤미야, 다니엘과 같은 엘리트로 성장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다시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와 회복의 기틀을 만들어내는 귀한 역할을 감당하게 됩니다.
분명 그들의 삶은 우리의 눈으로는 고통만이 보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시선에서 그 고통은 정말 큰 은혜를 이루시기 위한 준비과정에 불과했습니다.
여러분들의 삶은 어떤가요? 우리가 지금 보았을 때에는 수없이 많은 고통과 고난으로 보일지 모릅니다.
자신의 고국을 잃고 떠나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길을 걷는 것처럼, 출구가 보이지 않는 터널과 같이 여겨질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우리를 그 곳으로 인도하시는 것은, 포로들을 통해 새 언약의 기틀을 닦으셨던 것처럼, 우리를 통해 이루실 하나님의 크신 뜻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는 초행길을 갈 때 무엇을 사용하죠? 네비게이션을 활용합니다. 이 네비게이션을 사용하면 어쩔 때에는 왜 이런 길로 알려주지 싶을 정도로 이상한 길을 갈 때도 있죠.
하지만 네비가 그 길로 인도하는 것은 무슨 이유겠어요? 그 길이 가장 우리에게 빠르고 유익하기 때문이죠.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걷는 이 길을 통해 그의 뜻을 가장 완벽하게 이루실 것입니다.
비록 우리 앞에 놓여진 길이 포로의 행군과 같은 고난의 길처럼 보일지라도, 결국 우리를 통해 이루실 하나님의 크신 뜻이 있음을 기대하며, 하나님을 온전히 믿고 우리의 삶을 맡기고 의지할 수 있는, 그래서 우리의 앞길을 담대히 나아갈 수 있는 모든 하임 공동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함께 찬양하겠습니다. 주님을 보게 하소서 함께 찬양하면서, 우리 앞의 놓인 길을 보기보다는 인도하실 주님을 바라보게 해달라고 함께 찬양하며 고백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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