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처소에서 땅끝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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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렘 25:30-38 (봉독 렘 )
제목: 거룩한 처소에서 땅끝까지
오늘 본문 말씀인 예레미야 25장 30절에서 38절까지의 말씀은 전우주적인 심판을 선포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이 나타나 있습니다. 이 시간 우리는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온 세상을 심판하시겠다고 선포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바라보며,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심판의 영향력과 심판의 비참한 결과가 무엇인지 함께 묵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열방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살펴볼텐데요. 예레미야 25장 30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그러므로 너는 그들에게 이 모든 말로 예언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높은 데서 포효하시고 그의 거룩한 처소에서 소리를 내시며 그의 초장을 향하여 크게 부르시고 세상 모든 주민에 대하여 포도 밟는 자 같이 흥겹게 노래하시리라”
하나님은 사자가 사냥을 나서기 전에 우렁차게 포효하는 것과 같은 모습으로 하늘 보좌에서 큰 소리를 내십니다. 30절 중간 부분에서 “포효하다”라는 표현은 30절에서 세 번씩이나 반복해서 사용된 단어입니다. 우리말 성경에서는 “그의 초장을 향해 크게 부르시고”라고 기록되어 있는데요. 여기서 “크게 부르시고”라는 표현은 히브리어에서 “포효하다”라는 단어가 두 번 반복해서 사용된 표현입니다. 그래서 이 부분의 히브리어 뉘앙스를 살려서 읽으면, “하나님께서 자신의 땅을 향해 힘차게 포효하신다.”라고 읽을 수 있습니다. 우리말로 읽으면 확 와닿지 않지만, 히브리어로 읽으면 사자가 포효하는 것과 같은 시적인 이미지가 선명하게 나타납니다. 따라서 우리는 30절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사자로 비유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자 그런데, 지난달부터 예레미야서를 착실하게 묵상하신 우리 성도님들의 경우에는 하나님이 사자로 비유되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지실 겁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레미야서에서 “사자”로 비유되는 말씀이 몇 번 등장한 적이 있었는지만, 사자가 하나님으로 묘사된 적은 한번도 없었습니다. 세 구절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예레미야 2장 15절 어린 사자들이 그를 향하여 부르짖으며 소리를 질러 그의 땅을 황폐하게 하였으며 그의 성읍들은 불타서 주민이 없게 되었으며”
예레미야 4장 7절 사자가 그 수풀에서 올라왔으며 나라들을 멸하는 자가 나아 왔으되 네 땅을 황폐하게 하려고 이미 그의 처소를 떠났은즉 네 성읍들이 황폐하여 주민이 없게 되리니
예레미야 5장 6절 그러므로 수풀에서 나오는 사자가 그들을 죽이며 사막의 이리가 그들을 멸하며 표범이 성읍들을 엿본즉 그리로 나오는 자마다 찢기리니 이는 그들의 허물이 많고 반역이 심함이니이다.
예레미야서에 따르면, 사자라는 동물은 일반적으로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도구로 등장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인 예레미야 25장 30절에서는 하나님의 포효하시는 소리가 온 우주에 널리 퍼집니다. 하나님은 높은 곳에서도 포효하시고, 거룩한 처소에서도 소리를 내시며, 자신의 땅을 향해서도 힘차게 포효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행동하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어느 누구에게도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들에 관해서 숨길 필요도 없고, 은밀하게 행동하실 필요도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자신이 행하는 심판에 대해서 떳떳합니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정의와 공의의 실현으로서의 심판이며 오래참음 이후에 행해지는 심판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온 우주만물이 들을 수 있도록 높은 곳에서, 자신의 처소에서, 또 자신의 땅을 향해서 힘차게 포효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심판 길에 나선 하나님이 어떻게 행동하십니까? 30절 하반절 말씀을 보시면, 세상 모든 주민에 대해서 포도 밟는 자 같이 흥겹게 노래하실 것이라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은유는 굉장히 섬뜩하고 공포스러운 은유입니다. 포도를 밟는다는 것은 포도즙 틀을 밟아서 포도를 짠다는 것인데, 포도즙을 짜내는 틀을 밟는 행위를 할 때마다 포도즙이 쭉쭉 짜내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피가 그렇게 쏟아질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굉장히 두려운 말씀이죠.
이어서 31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요란한 소리가 땅 끝까지 이름은 여호와께서 뭇 민족과 다투시며 모든 육체를 심판하시며 악인을 칼에 내어 주셨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0절에서는 하나님이 사자로 표현되면서 사냥에 나서기 전의 모습으로 비유되었다면, 31절에서는 법정에서 죄인들을 기소하는 재판자으이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그렇다면 31절의 죄인은 누구입니까? 많은 민족과 모든 육체입니다. 다시 말해 역사 속에 실존했던 모든 인류와 오늘날 실존하는 모든 인류와, 주님 다시 오실 그날까지 생존해 있을 미래의 모든 인류를 모두 포괄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마지막 날에 어느 누구도 예외 없이 전우주적인 심판을 거행하실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심판의 결과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사자가 포효하고 법정에서 죄인들을 기소하고. 이런 식으로 아무리 표현해봐야 실제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그냥 겁만 주는 것처럼 볼 수 있는 것이죠. 따라서 우리는 심판의 결과가 어떠할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본문 말씀에서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심판의 결과는 두 가지로 나타나는데요.
첫 번째 결과는, 비참한 죽음의 결과입니다. 오늘 본문 33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그 날에 여호와에게 죽임을 당한 자가 땅 이 끝에서 땅 저 끝에 미칠 것이나 그들을 위하여 애곡하는 자도 없고 시신을 거두어 주는 자도 없고 매장하여 주는 자도 없으리니 그들은 지면에서 분토가 되리로다”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우주적인 심판에는 예외가 없습니다. 숨으려고 해도 숨을 수 없습니다. 심판이 시작되고 나서 죄인이 하나님께 회개하려고 해도 회개할 수 없습니다. 마지막 때의 심판이 시작되면 그 어느 누구도 심판을 멈출 수 없습니다. 33절 상반절 말씀 다시 보세요. “그날에 여호와에게 죽임을 당한 자가 이 끝에서 땅 저 끝에 미칠 것이나.” 하나님의 심판은 땅끝에서 땅끝까지 영향을 미칩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곳까지. 저런 곳에도 사람이 살까? 하는 곳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이죠. 그렇게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해 목숨을 잃은 사람들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합니다. 하나님께 죽임 당한 자들을 위해 슬퍼하는 사람도 없고 그들의 시신을 거두어주는 사람도 없으며, 장례를 치러주는 사람도 없습니다. 그렇게 죄인의 시신은 길바닥에서 나뒹굴면서 시체의 악취를 풍기며 지면의 분토가 되어 버립니다.
이어서 심판의 결과 두 번째는, 정치적인 지도자들과 종교적인 지도자들 모두가 완전한 파멸에 이르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34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너희 목자들아 외쳐 애곡하라 너희 양 떼의 인도자들아 잿더미에서 뒹굴라 이는 너희가 도살 당할 날과 흩음을 당할 기한이 찼음인즉 너희가 귀한 그릇이 떨어짐 같이 될 것이라”
여기서 “목자들아”라는 표현은 종교적인 지도자와 정치적인 지도자 모두를 포괄합니다. 남유다가 바벨론에게 멸망당하게 된 근본적인 이유가 우상숭배에 있다고는 하지만, 하나님의 심판이 불가피하도록 백성들에게 직접적으로 또는 간접적으로 영향을 준 사람들이 바로 종교적인 지도자들과 정치적인 지도자들이었습니다. 유다의 지도자들이 요구받는 것은 단 하나,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여금 신앙의 순수성을 지키고, 거룩함과 경건의 길을 따라가도록 인도하는 것. 이것이 전부였습니다. 지도자들은 오늘날과 같이 무슨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외교와 같은 골머리 앓는 문제들에 있어서 하나님께 하나 하나 일일이 책망받지 않았습니다. 그런 먹고 사는 문제는 하나님의 입장에서 엄밀히 말하면 그저 부차적인 문제에 불과합니다. 예컨대, 유다의 왕이 하나님을 향한 신실한 믿음을 져버리고 국가를 잘 먹고 잘살게 만들면, 후대에 어떤 왕으로 평가받습니까? 악한 왕으로 평가받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적인 기준이요. 성경적으로 건강한 잣대인 것이죠.
그런데 남유다의 경우에는 신앙의 순수성도 져버리고, 국가를 건강하게 이끌어 가는데에도 실패했습니다. 하나님께 심판받는 일만 남아 있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하나님은 유다의 목자들을 향해, 그리고 열방의 목자들을 향해 말씀합니다. “너희 목자들아 외쳐 애곡하라. 너희 양 떼의 인도자들아 잿더미에서 뒹굴라.”
이들이 어떤 이유에서 애곡하고 잿더미에서 뒹굴러야 합니까? 38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그가 젊은 사자 같이 그 굴에서 나오셨으니 그 호통치시는 분의 분노와 그의 극렬한 진노로 말미암아 그들의 땅이 폐허가 되리로다 하시니라” 평화로운 목장이 어떻게 됩니까? 폐허가 됩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 풍요롭고 평화롭고 안전한 땅이,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해 황폐해진다는 것입니다. 재력과 권력만 있으면 무슨 일이 있어도 안전할 것처럼 여겨지는 지상 천국이 철저하게 폐허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심판의 비참한 결과입니다. 목숨만 잃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힘으로 이루어냈다고 생각하는 인생의 결과물이 한순간에 잿더미가 되며 폐허가 된다는 것이죠.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성도님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오늘 함께 살펴본 말씀은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전우주적인 심판에 관한 말씀이었습니다. 본문에서 하나님은 젊은 사자로 비유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높은 곳에서 포효하시고, 그분의 거룩한 처소에서 소리를 내시며, 자신의 땅을 향해 큰 소리로 힘차게 포효하심으로써 심판의 시작을 알리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남유다 뿐만 아니라 모든 나라를 법정에서 기소하시고 모든 육체를 심판하십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을 두 가지로 내용으로 나눠서 살펴보았는데요. 첫 번째 심판은 무엇입니까? 땅 끝에서 땅끝까지 모든 죄인들의 목숨을 거두시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이러한 표현은 종국에 임할 마지막 심판과 완전히 동일하게 여기시면 안 됩니다. 마지막 날에 임할 심판은 단 한번의 죽음으로 끝나는 간단한 심판이 아닙니다. 하지만 예레미야서는 유다를 포함한 전 우주적인 심판을 상징하기 때문에, 그 내용이 상징적으로 나타나는 것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물론 그 심판이 실제로 유다와 바벨론에 일어나는 것은 사실입니다만, 오늘날 우리가 이 말씀을 볼 때에는 상징적인 심판으로서 마지막 그 날에 임할 심판의 성격과 실재를 깨달아야 하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는 오늘 말씀을 깊이 묵상하면서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엄중한 심판에는 예외가 없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돈이 많든 적든,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 죄인으로 취급되며, 엄중한 심판의 대상이 됩니다.
천문학적인 재화를 가지고 이 세상을 천국보다 더 나은 천국이라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대통령이라고 하더라도, 장관이라고 하더라도, 국회의원이라고 하더라도,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 예외없이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을 받게 됩니다. 반대로 일평생 누릴 것 하나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경제적으로 어렵게 살았다고 해서 하나님께 무죄 선고를 받는 것도 아닙니다.
이러한 사실은 심판의 말씀이 얼마나 크고 두려운지를 깨닫게 하지만, 심판의 이면에는 주님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시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주님의 자녀 된 우리는 심판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날이 다가오는 것은 우리에게 축복입니다. 인간의 인생은 죽음을 향해 달려간다고 하지만, 신자의 인생은 결국 천국의 실재에 근접해가는 것입니다. 눈으로 보지 못하고, 손으로도 만지지 못했던 우리 주님을, 영적인 눈으로만 바라봐야 했던 우리 주님을, 완전해진 하나님 나라에서 만나 뵐 수 있고, 또 죄악된 세상으로부터 우리의 영혼이 완전히 자유로워지며, 하나님 앞에서 영화로운 상태를 만끽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우리 주님과 영원히 교제하고 안식할 수 있는 하나님의 나라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소망의 마음을 품어야겠습니다.
이어서 오늘 본문에 나타난 두 번째 심판이 무엇이었습니까? 종교적인 지도자들과 정치적인 지도자들이 하나님께 심판받는다는 것이었죠. 삼위일체 하나님을 전인격적으로 믿는 우리로서는 이 말씀의 대상이 타인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만, 여기서 우리는 지도자 위치에 있는 자들을 엄격하게 다루시는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을 상고해야만 합니다. 이 말씀은 무슨 대통령이나 고위급 위정자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혹시 성도님은 누군가에게 지시할 수 있는 위치에 계십니까? 후배 직원이나 가족이나 친척 중에 성도님들의 권면을 받고 순종하는 분이 계십니까? 그런 사람이 한 사람만 있어도 하나님 보시기에 우리는 지도자 위치에 있는 사람으로 여겨질 수 있습니다. 직장에서 가정에서 어떤 공동체에서, 지도자 위치에 있는 사람으로 하나님께 여겨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하나님께 심판 받는 지도자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의 결과가 우리의 삶을 폐허로 만드는 일이 없도록, 하나님의 공의로우심과 정의로우심을 온전히 드러내며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이 말씀을 보면서, 악인들이 번성하고, 부귀영화 누리는 모습에 배 아파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수백억짜리의 건물과 수천 평, 수만 평의 금싸라기 땅을 소유한들 하나님께 구원받지 못한다면 그런 소유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가 젊은 사자 같이 그 굴에서 나오셨으니 그 호통치시는 분의 분노와 그의 극렬한 진노로 말미암아 그들의 땅이 폐허가 되리로다.” 이 말씀을 떠올려 보면, 악인이 누리는 부귀영화는 하나도 부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소유가 언젠가는 분명히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해 황폐해질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성도님들, 오늘 말씀을 기억하시면서, 우리가 호흡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하나님의 전우주적인 심판이 다가온다는 사실을 기억하시면서, 우리 자신이 본문에 심판받는 자들과 같지는 않은지 말씀에 비추어보시기 바랍니다. 또한 주님의 자녀로서 심판의 날을 두려워하기보다 주님 다시 오시는 그날을 향한 진정 어린 소망을 품으시기 바랍니다. 그러한 마음으로 오늘 하루도 온전히 주님과 동행하시는 우리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공의로우시고 자비로우신 하나님 아버지 감사를 드립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주님의 은혜로 건져내 주시고, 영원한 생명을 허락해 주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아무런 자격이 없는 우리에게 풍성한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날마다 주님의 말씀을 사모하며, 기도로 간구하는 인생을 살아가게 하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특별히 오늘 말씀을 기억하며, 주님 다시 오시는 그날을 진심으로 소망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원합니다. 이 땅에서의 삶에 집착하는 것이 아닌, 청지기로서의 삶에 충성되이 헌신하는 주님의 자녀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목자들을 책망하시는 말씀을 바라보며, 과연 우리는 타인에게 지혜롭고 따뜻한 지도자인지 돌아보게 하시고, 언제 어디서든 주님의 사랑을 풍성하게 나타내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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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P
사자(2:15)는 적대국이 아니라 여호와로 표현됨(암 3:8)
렘 2:15 어린 사자들이 그를 향하여 부르짖으며 소리를 질러 그의 땅을 황폐하게 하였으며 그의 성읍들은 불타서 주민이 없게 되었으며
렘 4:7 사자가 그 수풀에서 올라왔으며 나라들을 멸하는 자가 나아 왔으되 네 땅을 황폐하게 하려고 이미 그의 처소를 떠났은즉 네 성읍들이 황폐하여 주민이 없게 되리니
렘 5:6 그러므로 수풀에서 나오는 사자가 그들을 죽이며 사막의 이리가 그들을 멸하며 표범이 성읍들을 엿본즉 그리로 나오는 자마다 찢기리니 이는 그들의 허물이 많고 반역이 심함이니이다
사자 = 심판의 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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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커 (pp.280-)
심판은 끔찍할 것. 하늘 보좌에 주권자로 앉아 계신 하나님께서 사자처럼 포효하실 것. 포도틀을 밟으면서 포도 수확을 경축하는 자들처럼 소리치실 것. 하나님의 심판이 포도를 밟는 것에 비유되기 때문에(사 63:3; 욜 3:13), 이 은유는 섬뜩함. 하나님은 자신의 강한 칼로 인류에게 심판을 내리실 것이며, 인류는 파멸을 면치 못할 것. 33절 심판의 결과는 끔찍함. 심판이 휩쓸고 간 길거리에는 매장되지 못한 시체더미로 가득하게 될 것. 하나님께서는 열방의 지도자들을 목자들에 비교하시면서, 그들이 죽음을 맛보게 될 것이라고 선언하심. (34-35절) 하나님은 초장을 황무지로 만드실 것이며, 미친 듯이 날뛰는 사자처럼 양 떼(인류)를 공격하실 것(36-3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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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BC (pp.229)
진노의 술잔 문맥과 연결되는 본문.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하나님의 진노의 잔을 마신 여러 나라들을 향해 이어지는 내용을 선포하라고 명령하심. 30-31절은 열방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전하면서 하나님의 포효와 외침이 그들을 겨냥한다고 묘사함. 포효는 사자의 포효임. 시온이 구체적으로 언급되는 아모스에서처럼(1:2), 하나님은 높은 곳에서 포효하심. 아모스서 본문도 하나님의 부르짖음을 언급하고, 이로써 폭풍과 사자를 모두 나타내는데, 이 은유는 자기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파괴적인 진노를 가리킴.
하나님이 심판 대상을 향해 내시는 시끄러운 소리를 가리키는 은유는 포도 밟는 자의 외침임. 이는 진노 혹은 위협의 외침이 아닌 흥겨운 외침임. 하나님이 심판하시는 자들의 시신과 포도 사이에 유사성이 제시되기 때문에, 이 은유는 현재 문맥과 잘 어울림. 자신에게 범죄한 자들의 시신을 밟으실 때 하나님은 기쁨으로 외치심. 포도에서 즙이 흘러나오듯, 피가 그들의 시신에서 흘러나옴. 포도를 밟는 것과 죄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사이의 유사성은 이사야 63:2-6에서 아주 상세하게 전개됨. 이사야 본문은 계 19;15에 나오는 최후의 심판 그림의 문학적 배경을 제시함. 하나님의 심판 대상은 그의 거룩한 처소와 그의 땅에서(개역개정: 그의 초장) 뭇 민족과 온 인류(개역개정: 모든 육체)로 확장되는 것을 보게 됨.
32-33절은 독자적인 신탁처럼 보이는 내용의 서론으로 시작함. 예레미야는 파괴적인 바람이 낳는 재난의 확산에 청중의 시선을 돌리라고 요청함. 우리는 이 바람을 일차적으로 바벨론 군대의 대행을 통해 수행되는 하나님의 심판과 동일시해야 함. 이 대참사는 너무나 엄청나고 급작스러워서, 어디에나 시신이 있을 것이고, 그들을 전부 장사할 시간이 없을 것.
25장을 마무리하는 심판의 시(33-38절)는 목자 은유에 집중함. 여기서 목자는 분명히 하나님의 백성(양 떼)의 정치적, 종교적 지도자들을 가리킴. 그들이 현재의 위기에 특별한 책임을 지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죽음이 자세히 설명됨. 그들의 임무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여금 순수성을 유지하고 경건의 길을 걷게 하는 것이었지만, 그들은 정반대로 행동했음. 다시 사자로 비유되신 하나님이 목자와 초장(양 떼)을 파괴하실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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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KC
우주적인 심판이 선언됨(25:30-38)
예레미야는 열국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주제를 계속해서 예언함.
먹이를 덮치기 전에 강하게 포효하는 사자처럼, 하나님께서도 거룩한 하늘 보좌로부터 지상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을 향해 소리치실 것. 하나님께서 모든 열국들에게 벌을 주시기로 작정하셨음. 그분의 심판은 유다를 거쳐 모든 족속에게까지 미칠 것. 이 심판은 모든 열국을 삼켜버릴 강한 폭풍으로 묘사됨. 그런 다음 살육이 모든 곳에 퍼지게 될 것. 그들의 시체는 유다의 시체가 땅에 묻히지 못한 채 남아있듯이 그렇게 될 것.
25:34-38
목자들로 묘사된 열국의 지도자들은 울고 울부짖으며 재에서 뒹굴게 될 것. 또한 그들은 그들 자신의 생명으로 인해 곡을 할텐데 그것은 그들의 생명이 살육당할 때가 왔기 때문. 목자들로부터 그릇으로 그의 상상을 바꾸면서 예레미야는 이런 지도자들의 완전한 파멸을 서술하고 있음. 그들은 정교한 그릇이 마루 위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나듯이 그렇게 될 것.
지도자들(목자들)이 아무리 도망가려 할지라도 도망갈 곳이 없을 것. 하나님이 그들의 땅(초목)을 파멸시킬 것. 양 가운데 사자처럼 이리저리 찾아다닐 것. 열국의 모든 땅들은 황폐하게 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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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W
여호와의 거처에서 시작되어 온 땅에 미칠 심판(30-38절)
렘 25장 마지막 단락에서 예레미야는 지금까지 예고한 여호와의 심판을 집약적으로 선포함. 30-31절에서 여호와의 심판은 하나님이 거주하시는 거룩한 처소에서부터 시작됨을 알려줌. 여호와의 거룩한 처소는 하늘과 지상 모두에 있음. 지상의 장소는 예루살렘 성전이 있는 시온. 그러나 본문이 의미하는 바는 하늘에 있는 여호와의 거처가 더욱 강조되어 나타남. 하늘에 계시는 하나님의 모습이 강조되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이 종말론적이며 우주적인 세계 심판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음을 보여줌. 31절의 ‘모든 육체’라는 표현이 이러한 사실을 잘 말해줌. 여호와께서 발하시는 큰 소리는 포도즙 틀을 밟는 자의 소리와 같음(사 16:9-10).
32-38절은 재앙이 각 나라에 임하는 모습을 보여줌. 각 나라에 미칠 재앙이 땅 끝에서 일어나는 큰 폭풍에 비유됨(32절). 오늘날 태풍이나 회오리바람이 휩쓸고 지나가면 모든 것이 파괴되어 폐허로 변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면 그런 모습으로 변하게 될 것임을 보여줌. 그런 심판 가운데 부각되어 묘사되는 것이 목자들임. 목자들은 당시 각 나라들의 왕을 가리킴.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때 그들은 도망갈 수도 없고 숨을 수도 없음. 죄악에 대한 책임자로서 자신들의 지위에 상응하는 벌을 받아야 함.
** 적용
1) 열방을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모습
하나님의 심판은 유다에 국한되지 않고 주변 나라들에 확장됨. 하나님의 심판 도구로 사용된 바벨론 역시 죄악에 대한 징벌을 받게 됨. 31-32절에서 묘사된 하나님의 모습은 당대의 역사 속에서만 생각되는 하나님의 심판이 아니라 역사의 종말에 ‘모든 육체’에게 임할 하나님의 총체적인 세계 심판을 미리 생각할 수 있게 함.
2) 자기 백성을 더욱 엄격히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모습. 열방을 심판하시는 것은 자신의 백성을 심판하시는 모습의 연장선상에 있음. 하나님이 가장 큰 관심을 기울이시는 것은 자신의 백성 유다이며(2-11절), 심판의 대상이 된 자들이 반드시 잔을 마셔야 함은 하나님의 심판이 자신의 백성에게서부터 시작되기 때문(27-29절). 자신의 백성을 더 엄격히 다스리시는 모습을 아모스서에서의 열방 예언에서 확인할 수 있음(암 1:3-2:8). 전쟁이나 살인과 같은 무거운 죄목을 근거로 심판하시는 열방과는 달리, 이스라엘과 유다에 대해선 율법을 멸시하고 가난한 자들의 정의롭게 대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심판하신다고 말하심. 이같이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에게 더 높은 수준의 윤리와 책임을 요구하심.
3) 책임자들을 문책하시는 하나님의 모습. 25장 마지막 단락에서 심판의 주요 대상이 목자들 즉 지도자들임을 보여줌. 주어진 권한이 크면 클수록 감당해야 할 책임도 큼. 그런 의미에서 지도자들은 역할의 중요성을 깨닫고 자신에게 맡겨진 일에 충실해야 함(렘 23; 겔 34장). 지도자가 문책당하면 그와 관련된 모든 사람들에게 그 영향이 미침. 하지만 지도자가 바로 서면 그의 영향권 아래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행복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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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게 (pp.551-)
겔 33:11 너는 그들에게 말하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악인이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의 길에서 돌이켜 떠나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돌이키고 돌이키라 너희 악한 길에서 떠나라 어찌 죽고자 하느냐 하셨다 하라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고 죄인이 죽지 않고 회개하여 살아남기를 원하심.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았음. 이때 하나님은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않을 것이라 말씀하시며, 인간의 수명이 120년 정도 될 것이라 말씀하셨음. 120년이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 수 있지만, 기간의 길고 짧음을 떠나서 그 기간 동안 회개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신 것이라 볼 수 있음.
이후에 하나님은 진노의 심판을 내리시기 전에 죄인들에게 유예 기간을 주셨음. 예컨대, 노아는 방주를 완성하기 전까지 복음을 전했음. 예수님은 3년 반동안 복음을 전하셨음. 사도들은 예루살렘 멸망 이전에 40년 가까이 복음을 전했음. 이렇게 하나님은 사랑이 많으신 모습, 인자와 자비가 풍성하신 모습을 분명하게 나타내셨음. 그러나 이러한 하나님의 손길을 무시한 채로 본인의 정욕대로 살아가면 비참한 결과를 맞이하게 됨.
하나님의 정의롭고 공의로운 심판은 온땅에 적용됨. 예외는 없음. 하나님께서 거주하신다고 일컬음 받는 성전에서부터 심판이 시작됨. 그로부터 심판이 온 천지로 뻗어나감. 진노의 심판은 초자연적인 방식으로 임하기도 하고 이방 민족의 손을 통해 임하기도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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틴데일 (로고스)
모든 나라들을 향한 심판은 다시 시적인 언어를 통하여 생생하게 표현됨. 하나님은 ‘포효하는’ 사자에 비교됨(49:19; 호 5:14; 11:10; 암 1:2; 3:8을 보라). ‘소리를 내시며’(20절, NRSV)가 TNIV에서는 천둥을 발하시며로 번역됨(즉 하나님이 경고를 땅 위의 백성들에게 보내시며 심판을 선언하심). ‘포효하다’는 말이 세 번 사용되며 두 번째 예는 힘차게 포효하다로 번역됨(크게 부르다-개역개정). 하나님이 자신의 땅을 대항하여 포효하심. ‘자신의 땅’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단어는 37절에서처럼 또한 ‘자신의 우리’(NRSV; 초장-개역개정)를 의미할 수 있음. 이 단어의 복수 형태는 TNIV에서 목초지들로 번역된다. 30절의 단어 ‘우리’ 혹은 ‘초장’은 풀을 뜯고 있는 양들을 사자가 잡아먹는 은유를 시사함.
포도 밟는 자는 대개 일을 가능한 빨리 마치기 위하여 서로 격려하며 기쁨의 소리를 지름. 15–29절의 문맥은 또한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가리킴(사 63:3; 욜 3:13; 계 14:19–20을 보라).
하나님이 나라들을 데려오도록 명하심. 하나님이 그들을 재판정으로 소환하시고 모든 사람을 심판하심. 이 주제는 요한계시록에 자세하게 설명됨. 이 절들에는 종말론적인 요소가 있음. 하나님의 진노가 강한 폭풍 같음(32절; 23:19; 30:23). 장사되지 못하는 것(33절)은 오싹하고 수치스러운 운명임(7:33; 8:2; 9:22을 보라).
〈34–38〉 34절의 목자들은 지도자들로 특별히 나라들의 왕들임(유다의 지도자들에 대하여 23:1–4을 보라). 지도자들을 가리키는 단어는 또한 ‘강한 자들’을 의미할 수 있음. 그러나 이들의 힘은 끝이 날 것이다. 9:17–21에서 유다 백성들에게 요청되었던 것과 같이 이들에게도 애곡하고 울며, 애곡의 표시로 땅에서 뒹굴라고(잿더미에서 뒹굴라-개역개정) 요청됨. 힘 있는 지도자들이 ‘좋은 도기’처럼 깨질 것이다(NIV).
TNIV의 번역은 70인역에 근거한 번역을 선호한다(가장 좋은 양이 떨어짐같이 될 것). TNIV의 번역은 목자들과 양들의 그림을 계속 이어 가려고 시도하는 것. 그러나 도기의 은유로 바꾸는 것도 문제가 되지는 않음. 예레미야 19장을 보면, 거기에는 옹기를 깨뜨리는 것이 다가오는 심판의 상징으로 되어 있음.
평화로운 목장들, 곧 평화롭고 사치스럽게 사는 나라들이 하나님의 진노로 파괴될 것(37, 38절).
38절은 히브리어를 바꾸어서 읽었음. 히브리 본래의 문자적인 독법은 ‘엄한 불꽃 때문에’(호통치시는 분의 분노로 말미암아-개역개정)인데 TNIV는 압제자의 칼 때문에로 번역함. 룬드봄(Lundbom 2004a: 280)은 ‘압제의 폭염’(the oppressive burning)으로 읽음. 70인역은 ‘불꽃’이란 단어가 ‘칼’로 되어 있고 이것을 46:16과 50:16에도 적용하고 있음(압제자의 칼).
하나님의 불타는, 격렬한 진노에 대하여 또한 4:4, 26, 15:14, 21:12, 44:6을 보라. 38절은 하나님을 사자에 비유하는 30절의 은유를 반복함. 주제적으로 이 두 절은 인클루지오(inclusio)를 형성한다. 그 사이에 있는 절들을 ‘포함하면서’ 이들은 같은 방식으로 시작하고 마침.
의미
예레미야는 ‘나라들의 선지자’로 임명되었다. 그리고 이것은 25:15–38의 나라들을 대항하여 언급된 예언의 말씀들 속에서 분명하게 된다. 메시지는 심판의 메시지로 예루살렘과 유다를 포함한다(18절).
하나님은 온 땅을 다스리는 주권적인 심판자로 나타나는데, 이는 소위 나라들에 대한 신탁(Oracles Against the Nations, OAN)에서 발전됨(46–5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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