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실함을 지키는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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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교회 7편지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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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프리 공동체는 주일 오전예배 때 외부 강사님이 오시거나, 또는 오늘 처럼 통합 예배를 드릴 때 요한계시록 초반에 나오는 7교회를 향한 그리스도 예수의 편지를 하나 하나 다루며 살펴보고 있습니다. 이미 에베소 교회를 향한 편지를 살펴보았고 오늘은 2번째 편지인 ‘서머나 교회’를 향한 편지입니다.
특별히 예수께서는 7교회를 향해서 ‘7촛대’라는 성전의 촛대를 비유로 사용하시는데요. 먼저는 7이라는, 성경이 이야기하는 완전하고 충만한 숫자를 통해서 이 7교회, 7촛대를 향한 편지는 초대교회 당시의 교회를 향해서만 쓰는 편지가 아니라 초대교회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까지의 모든 교회를 향해 쓰시는 편지임을 우리에게 말씀하여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편지의 성격이 마치 ‘성전의 대제사장이 7촛대를 관리하듯’ 교회의 주인되시고 우리의 대제사장되시는 예수께서 당신의 촛대되는 교회들을 관리하시고 다스리시는 것이 7편지임을 말씀을 통해 확인하게 됩니다.
이처럼 오늘 우리가 살펴볼 서머나교회를 향한 편지는 ‘서머나교회’를 위한 편지를 넘어서 우리의 대제사장되시는 예수께서 당신의 촛대되는 우리 교회를 향해 말씀으로 권면하고 있는 편지가 우리가 살펴볼 본문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며 나아가았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말씀 9절을 보니까, 서머나 교회에는 한가지 어려움에 직면하여 있었음을 보게 됩니다. 바로 ‘환나과 궁핍’이라는 어려움에 직면하였음을 말씀을 통해서 확인하게 되는데요. 이러한 어려움은 유대인을 말미암은 어려움이었음을 보게 됩니다. 9절 하반부를 보니까 자칭 유대인이라하는 자들의 ‘비방’이 서머나교회를 향해있었고 이런 유대인들을 향해 예수께서는 그들이 ‘사탄의 회당’이라고 말씀하시며 서머나 교회의 ‘환난과 궁핍’은 유대인의 비방을 말미암은 어려움이었단 사실을 보게 됩니다.
사실 초기 기독교는 유대교와 크게 구분이 되지 않았습니다. 정확하게는 초기 기독교는 유대교라는 우산 아래에서 어느정도의 보호를 받고 있었습니다. 로마 당국이 보기에 기독교와 유대교가 크게 구분되지 않았었고, 당시 로마 당국 역시도 어느정도 유대교의 독특성을 인정해주었기 때문에 초기 기독교는 유대교의 그늘 아래에서 어느정도의 보호를 받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네로 황제 이후 유대교와 기독교는 점차 구분이 되기 시작했고 이로 인해 유대교는 기독교인들을 로마 당국에 고발하였습니다. 오늘 말씀 9절에서 이야기하는 ‘유대인의 비방’이 로마 당국을 향한 유대교의 고발인 것이죠. 이러한 고발로 인해 서머나 교회는 ‘환난과 경제적인 궁핍’을 겪고 있었던 것입니다.
특별히 유대교의 고발로 인해 ‘서머나 교회’가 환난과 궁핍에 처하게 되는 당대 사회 속에서의 이유가 있었습니다. 당대 사회 속에서 황제 숭배는 도시 전역에 스며들어있었고, 사람들은 어떤 식으로든 황제숭배에 가담해야만 사회 속에서 지위와 경제적 위치를 보장받으며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서머나’ 지역에는 황제숭배를 위한 신전이 하나 이상으로 건축되었음을 보게 됩니다.
즉 서머나 교회는 이러한 ‘황제 숭배’가 도시 곳데에 스며든 상황 속에서, 그리고 이 황제 숭배에 가담해야만 사회적으로 지위와 경제적인 위치를 보장받으며 살아갈 수 있는 상황 속에서 ‘예수를 향한 믿음’을 인해 그것들을 거부하고 있었고, 유대교는 이러한 서머나 교회를 로마 당국에 고발함으로 인해 ‘환난과 궁핍’이 교회 가운데 임하게 된 것이죠.
이러한 교회를 향해 예수께서는 ‘내가 너의 환난과 궁핍을 알지만 실상은 부요한 자다’라고 9절에서 말씀하십니다. 온갖 환난과 경제적인 어려움 가운데 있는데 이들을 향해서 ‘실상은 부요한 자다’라고 말씀하시는 주님의 이 말씀이 과연 어떤 의미일까요?? 이들은 어찌하여 부요한 자일까요??
이에 대한 질문의 답을 우리는 8절에서 서머나 교회를 향해 편지하시며 자신을 소개하시는 예수의 소개 문구에서 그 답을 발견하게 됩니다. 8절 말씀 한번 같이 읽어볼까요??
“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처음이며 마지막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이르시되” 아멘
예수께서 자신을 무엇이라 설명하고 있나요?? “처음이며 마지막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라고 소개합니다. 즉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말씀하시는 것이죠. 주님이 죽으셨다가 부활하심은 모든 고난과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승리하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주께서 유대인의 고발로 인해 환난과 경제적으로 여러움 가운데 처해있는 서머나 교회를 향해서 하시고픈 말씀은 ‘지금의 고난을 뛰어넘는 그리스도의 승리’를 말씀하고 싶으신 것입니다.
그렇기에 자신을 “처음이며 마지막이라고 설명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이사야 44:6절 말씀을 한번 찾아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이스라엘의 왕인 여호와, 이스라엘의 구원자인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는 처음이요 나는 마지막이라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6절)
이외에도 41:4절, 48:12절에서도 하나님은 자신 스스로를 ‘처음이요 마지막’이라고 묘사하시는데요. 예수께서는 자신을 처음과 마지막이라고 소개하시며 ‘이사야’의 말씀 속에 여호와 하나님의 자기 묘사를 취하시고 인유 하시는 것은 먼저는 죽으시고 부활하신 당신 자체가 ‘여호와 하나님’과 동일한 본질이심을 나타내시는 것이며 둘째로는 ‘유대인들이 아니라 서머나 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이 지금 진정한 의미의 이스라엘로서, 하나님께서 이사야가 활동하던 당시에 이스라엘에게 신실하셨듯이 서머나 교회를 향해서도 신실하시다’라는 것을 말씀하고 싶으신 것입니다.
그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서머나 교회를 위해서 일하고 계시며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과 부활하심으로 모든 승리를 이루셨기에 환난과 궁핍 속에서도 두려워말것을 말씀하시는 것이죠.
그러면서 되려 이러한 환난과 궁핍의 상황 속에서 ‘서머나 교회’를 향해 예수께서는 요구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10절 말씀을 같이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에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10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아멘
예수께서 무엇을 말씀하고 계시나요?? 마귀가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여 10일 동안 환난을 받을 것인데 그 가운데에서 죽도록 하나님께 충성할 것을 요구하고 계십니다.
여기서 10일 간의 환난은 단순한 문자적 의미의 10일이 아닙니다. 이는 다니엘의 말씀의 인유입니다. 요한계시록은 곳곳에 구약 성경의 인유가 정말 많이 나오는데요. 이 인유를 제대로 파악해야만 요한계시록의 의미를 제대로 알 수 있습니다.
특별히 다니엘의 말씀에서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유명한 이야기가 있죠?? 바로 다니엘과 세친구들이 왕의 음식을 먹지 않음에 대한 시험이었습니다. 왕의 음식과 포도주로 자신들의 믿음과 거룩을 더럽히고 싶지 않았던 다니엘과 세친구들은 뜻을 정하여 먹지 않기로 결단하였고 10일 동안 물과 채식만 하는 시험을 받게 됩니다.
오늘 계시록에 사탄이 받게할 10일의 환난은 바로 이 다니엘과 세친구들의 시험을 의미하는 표현입니다. 황제 숭배를 거절하여 ‘환난과 경제적 궁핍’ 가운데 놓여있는 서머나 교회를 ‘다니엘과 세친구들’의 모습과 상황에 빗대어 설명하며 그들과 같은 주를 향한 ‘신실함’을 예수께서 요구하시는 것이죠. 죽도록 충성하라는 10절의 말씀은 ‘다니엘과 세친구들’과 같이 “하나님을 향한 뜻을 정하고 주를 향한 믿음의 신실함을 지키라”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당부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제가 서두에 이 편지는 단지 서머나 교회를 향해서만 쓰여진 편지가 아니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계시록에 등장하는 숫자들은 단순히 문자적 의미로 접근해서는 안됩니다. 분명하게 7이라는 완전하고도 충만한 숫자를 사용해서 편지를 쓰고 있다는 것은 초대교회를 넘어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까지의 모든 교회를 의미합니다. 즉 오늘 이 서머나 교회를 향한 편지는 분명하게 ‘피플스교회’를 향한 예수 그리스도의 편지라는 것이죠.
오늘 편지 가운데 예수께서는 교회를 향해 ‘신실함’을 요구하십니다. 황제 숭배를 해야만 사회적인 지위와 경제적 안정을 누릴 수 있는 사회 속에서 그 흐름을 거슬러 믿음의 싸움을 싸우고 있는 ‘서머나 교회’를 향해서 다니엘과 세친구들과 같은 ‘신실함’을 요구하십니다. 그리고 이들이 이러한 고난 중에도 신실할 수 있는 이유는 ‘이사야 시대’에 이스라엘에게 신실하셨던 하나님이 ‘서머나 교회’의 하나님이 되시며 동일하게 신실하게 역사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처음이며 마지막이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심으로서 모든 승리를 이미 쟁취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신실하시고, 신실하신 하나님이 오늘 우리의 하나님이 되시기에 하나님의 교회는 주를 향한 ‘신실함’을 요구 받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렇다면 이시간 우리를 향해 ‘신실함’을 요구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요청 앞에 서서 한가지 질문을 던져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도대체 하나님을 향한 신실함이란 무엇일까요??
다니엘 1:12-13절을 한번 같이 읽겠습니다.
“청하오니 당신의 종들을 열흘 동안 시험하여 채식을 주어 먹게하고 물을 주어 마시게 한 후에 당신 앞에서 우리의 얼굴과 왕의 음식을 먹는 소년들의 얼굴을 비교하여 보아서 당신이 보는 대로 종들에게 행하소서 하매” 아멘
오늘 서머나 교회를 향해 신실함을 요사하시며 예수께서 인유하신 본문의 말씀이죠?
다니엘과 세 친구들이 10일 동안 채식과 물만 먹게 해달라고 환관장에게 요청하면서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나요??
‘환관장님 우리에게 10일 동안 물과 채식만 먹게 해보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얼굴 빛을 다른 사람들 보다 더 강건하게 하실 것입니다!’ 이렇게 이야기 하나요???
아니요!! 이들은 되려 ‘10일 동안 물과 채식을 먹게 하시고, 이후에 당신이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여 본 후에 당신의 판단이 서는대로 하십시요!’ 라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물과 채식만 먹으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다른 사람들 보다 더 강건하게 하셔서 우리를 건져내실거야!! 가 이들의 신실함이 아니라, 이들의 신실함은 설령 우리가 물과 채식만 10일 동안 먹었다가 환관장의 판단에 의해 죽게 된다고 할지라도, 그 과정 속에서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지켜간 이야기가 있기에 괜찮아!’ 이것이 다니엘과 세친구들의 신실함이라는 것입니다.
제가 지난 몇 개월 동안 하나님 앞에 개인적인 삶의 어려움을 두고 씨름했던 부분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간절히 붙잡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말씀을 통해서 도대체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지 물으며 씨름했던 이야기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삶의 개인적인 어려움들은 여전히 진행중에 있는데요. 그 가운데에서 하나님께서 계속 침묵하시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시며, 되려 상황은 더욱 악화되어가는 것만 같은 상황이 펼쳐질 때 정말 하나님을 많이 원망하며 나아갔습니다. 나는 하나님을 믿고 신뢰함으로 하나님을 향한 신실함을 지키며 말씀과 기도로 이 문제 가운데 씨름하며 나아갔다고 생각했는데, 하나님께서 되려 일하지 않으시니 제 입술에서 터져나오는 것은 불평과 원망 뿐이었던 것이죠.
그런데 하나님께서 오늘 말씀을 준비하게 하시면서, 또 잠잠히 다니엘서를 보게 하시면서 제게 주신 마음은요, 제가 이렇게 하면 하나님께서 이렇게 역사하실 거야라는 결과에 초점을 둔 ‘신실함’을 주께 드리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신실함은 결과에 초점을 둔 신실함이 아니라 ‘과정’에 초점을 둔 신실함을 요구하시고 원하신다는 것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다니엘과 세친구들이 10일 동안 채식과 물만 먹어도 다른 사람들 보다 얼굴 빛이 더 좋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환관장이 보기에 역시나 채식과 물로는 어림도 없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결과가 어떠하든 중요한 것은 그 과정 속에서 다니엘과 세친구들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이야기를 지키며 나아갔다는 것’이죠. 여기에 하나님의 초점과 마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저의 개인적인 삶의 어려움이 제가 원하는 모습과 모양으로 풀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결과가 어떠하든 그 과정 속에서 하나님을 붙잡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나아갔던 그 믿음의 이야기를 하나님은 원하고 계시다는 것이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것이 오늘 우리 교회를 향해 요구하시는 ‘신실함’의 모습이라는 것을 기억하였으면 좋겠습니다. 특별히 여러분 개개인의 삶 가운데 마주하고 있는 크고 작은 어려움들이 있습니까?? 그리하여 고통 중에 하나님께 신음하며 나아가지만 하나님께서 더디 일하시는 것만 같아 저와 같이 불평과 원망의 고백을 드리고 계신 분들이 계신지요? 또한 우리 교회가 겪고 있는 아픔의 시간들 속에서 하나님의 더디 일하심이 자꾸만 우리의 마음을 괴롭게 하고 있진 않으신지요?
제가 감히 여러분 개개인의 아픔과 고통을 다 알 수도 없고, 헤아릴 수도 없지만 그리고 우리 교가의 아픔을 두고 이렇다 저렇다 이야기할 수 없지만, 말씀을 통해서 이야기할 수 있는 분명한 한가지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 신실함을 요구하시며, 이 신실함은 우리가 결과 값을 설정해놓고 될때까지 버티는 것이 신실함이 아니라 모든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며 결과가 어떠하든 하나님 안에서의 믿음의 이야기를 써가는 것이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신실함이라는 것’ 이란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모든 결과를 하나님께 맡기고 그 과정 속에서 우리의 믿음의 신실함을 지키며 나아가는 자들에게 ‘다니엘과 세친구들’ 처럼 예상치 못한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하심을 베푸실 것임을 확신합니다.
지금 주 앞에 신음하며 기도하고 계신 기도제목들이 있으시다면, 계속해서 간구하십시오.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라’ 말씀하시며 이사야 시대에도 신실하게 역사하신 하나님이 오늘도 변치않고 여러분의 하나님이 되신다는 주의 말씀을 기억하며 포기하지 말고 간구하십시오! 이러한 여러분의 믿음의 간구가 하나님을 붙잡고 의지하는 주를 향한 신실함의 표현입니다.
하지만, 결과를 정해둔 신실함은 경계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이렇게 역사하실 때까지 버티겠습니다는 ‘신실함’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자유롭게, 그리고 간절히 여러분의 기도의 제목들을 간구하되 모든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시며 간구하시는 여러분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이것이 주를 향해 보일 우리의 ‘신실함’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신실함의 열매는 ‘결과’에 있지 아니하고 ‘과정’에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길 부탁드립니다. 10일 동안 채식만 하다가 결국 죽는다고 할지라도 그 과정 속에서 주를 향한 믿음을 지켰기에 괜찮아!라는 이 다니엘과 세친구들의 마음, 황제 숭배를 거부하여서 환난과 궁핍이 우리를 힘겹게 만들지만 그래서 그 과정 속에 순교할 수 도 있지만! 그래도 괜찮아! 우리에게는 예수를 향한 믿음을 지킨 이야기가 있으니까!! 라는 서머나 교회의 고백이!! 우리의 삶과 교회 가운데 넘쳐나길 소망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에서 이렇게 ‘신실함’을 지키는 자에게 ‘생명의 관’을 약속하시며 ‘둘째 사망의 해에서 보호 받을 것’을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십니다. 이 영생의 약속은 ‘하나님의 역전’의 약속 입니다. 이땅에서 패배한 것 같을 지라도, 하늘에서는 승리자로 여김 받을 것이라는 ‘역전의 약속’ 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신실함의 열매를 맺어가는 자들을 향한 ‘역전의 약속’을 단단히 붙잡으십시오. 특별히 성경은 우리에게 ‘선지자적 시점’을 항상 제시 합니다. 대표적으로 아브라함에게 허락하신 하늘의 별과 같은 바다의 모레알과 같은 자손에 대한 약속을 보면, 가시적으로는 이스라엘을, 궁극적으로는 저와 여러분과 같은 하나님의 교회를 의미하죠. 이것이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본 시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역전의 약속을 선지자의 시점으로 바라보시며 나아가실 바랍니다. 하나님을 향한 신실함을 지키는 자들에게 궁극적으로 구원이라는 역전의 약속을 주심과 더불어 가시적으로 우리를 아픔 가운데 몰아넣는 상황과 환경 속에서의 역전을 약속을 단단히 붙잡으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결과를 정해둔 버팀이 아니라, 모든 결과를 하나님께 맡기고 과정 속에서 신실함의 이야기를 써가며 나아갈 때, 그리고 우리의 이 모습을 하나님께서 긍휼이 여기신다면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이 우리에게 임하여 우리의 모든 상황을 역전시키리라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함께 여러분이 처한 상황과 환경 속에서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며 주를 향한 신실함의 이야기를 써갑시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서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잠잠히 바래봅시다. 설령 주께서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우리는 주를 향한 신실함의 이야기를 써갔기에 그것을 우리의 기쁨 삼는 믿음의 사람들이 됩시다. 그리하여 우리 교회가 예수께 서머나 교회 처럼 칭찬 받는 교회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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