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열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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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설교 무용론이 제기되고 있다. 설교로는 안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성경은 설교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는 채널 중 하나라고 말씀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 성경을 통해서 분명히 말씀하시지만 성경이 없는 선교지에서는 때로 꿈과 환상으로 찾아가시기도 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분명하게 말씀하시는 또 다른 채널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설교다.
본문설명
오늘 본문은 니느웨 사람들이 요나의 설교를 듣고 회개하는 장면이다. 이 대목에서 우리안에 자연스럽게 드는 질문은 어떻게 콧대 높고 잔인한 민족이 요나라는 유대에서 온 선지자의 메시지를 듣고 하나님 앞에 회개 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거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수 있겠지만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 믿지 않는 사람들을 믿게 하실때 복음설교를 사용하신다는 것이다.
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에는 능력이 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힘이 있다. 그런면에서 복음을 선포하는 설교자에 대해서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성령께서 복음 설교를 통해서 일하실 때, 죄인이 회개하고 하나님을 믿게 하신다고 할 때, 그 말씀을 전하는 설교자를 사용하시기 때문이다.
주장제시
그렇다면 설교자는 타고나는 것인가? 아니면 만들어지는 것인가? 나는 설교자는 태어나는 것이며 동시에 만들어 진다고 믿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설교자는 만들어져 가는가?
설교자를 부르신다.
요약
A. 설교자는 태어나는 것이라고 할 때 그것은 하나님의 부르심과 관련이 있다. 설교자는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사람이다. 요나서 1장 1절은 “여호와의 말씀이 아밋대의 아들 요나에게 임하니라” 라는 말씀으로 시작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부르심이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메신저다. 요나는 메신저로써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다. 그러나 요나가 선지자로 부름을 받은 것은 그 자신이 특별한 능력이나 자질을 가졌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열심에 달려있었다.
[욘3:1-2]
1 여호와의 말씀이 두 번째로 요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2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내가 네게 명한 바를 그들에게 선포하라 하신지라
3장 1절과 2절 말씀은 1장 1절에서 하나님께서 요나를 부르실 때 하신 말씀과 동일하다. 바뀐것이 있다면 니느웨를 대항해서 말씀을 전하라는 말에서 니느웨를 향해서 말씀을 전하라고 하신것 밖에는 없다. 하나님께서는 왜 동일한 말씀으로 요나에게 말씀하시는가? 하나님의 열심이 오늘 실패한 선지자 요나를 다시 세우기 때문이다.
예화
박영선 목사님이 쓰신 <하나님의 열심>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씀한다. “하나님은 인간을 설득해 오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보여 주시지도 않은 채 일단 믿어보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믿음은 요행을 바라며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한 번에 내걸게 하는 도박이 아닌 것입니다. 그렇다면 믿음은 무엇일까요? 믿음은 우리를 설득하시는 하나님의 넘치도록 은혜로운 사랑의 열심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하나님에게 설복되는 만큼 우리의 믿음도 성장합니다. 하나님에게 우리의 삶을 간섭해 달라고 기도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하나님의 설득과 간섭으로 자라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 중 놀라운 속성은 그 위대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설득하신다는 사실입니다. "
성도의 견인
B. 요나가 하나님의 선지자로 부르심을 받고도 불순종한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의 삶에 간섭하고 계시다는 것을 믿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다시스로 도망치려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포기하지 않으셨다. 비록 요나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정 반대의 길을 택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를 놓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스올에까지 내려가 그를 붙드시고 결국 구원이 하나님께 속했다는 고백을 받아내고 마셨다. 이것이 하나님의 열심이다.
적용
[롬8:30-32]
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31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오늘 우리가 이 자리에 있는것은 하나님의 열심 때문이다. 하나님의 열심이 오늘 내 삶에 함께하고 있다는 것을 믿는다면 우리는 주저할 필요가 없다. 오늘 하나님께서 내 삶에 적극적으로 간섭해 주시기를 간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요나 선지자처럼 예수를 믿고도 비겁한 인생, 늘 좌절하는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
II. 설교자를 헌신하게 하신다.
요약
A. 하나님께서 요나를 다시 부르신 것은 요나에게 헌신을 요구하시기 위해서였다. 2장에 나타난 요나의 기도에서 요나는 이렇게 고백했다.
“주 앞에서 약속한 것들을 이행할 것입니다.” 요나는 분명 하나님 앞에 자신의 인생을 드리기로 결단했다. 그러나 거기에서 멈춰서는 안됐다. 그는 하나님께 약속한대로 헌신해야 했다. 3장에서 하나님은 그것을 묻고 계신 것이다.
해석
B. 우리가 흔히 오해하는 것이 있다. 하나님의 열심을 말하면서 우리의 책임을 간과하는 것이다. 박영선 목사님이 하나님의 열심에서 말하는 것은 믿음이 요행을 바라며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한 번에 내걸게 하는 도박이 아니라는 것이다. 요행이 무엇인가? 뜻밖의 행운이다.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무언가를 얻어내기 위해서 하는 열심은 믿음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열심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헌신은 무엇인가? 부름받은 자로써의 책임을 다하라는 것이다. 맡겨진 책임을 다하는 인생을 사는것이 바로 헌신된 삶이다.
예화
신앙생활 가운데 믿음에 대해서 깊은 고민을 해본 분이라면 박영선 목사님이 쓰신 <하나님의 열심>이라는 책을 한번 쯤은 다 읽어봤을 것이다. 그런데 박목사님은 단 한번도 설교 원고를 들고나와서 말씀을 전하신 적이 없다. 가끔씩 작은 쪽지 하나 가지고 말씀을 전하신다. 그래서 흔히 박영선 목사님을 설교의 천재라고 말한다. 목사들이 존경하는 목사님이라고 말한다. 많은 목사님들이 박영선 목사님의 설교를 따라하려고 하지만 번번히 실패한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아는가? 그 뒤에 감춰진 박목사님의 헌신은 보지 않기 때문이다. 박목사님은 신학교를 다닐때 도서관에 있는 논문들을 거의 하나도 빠짐없이 다 읽으셨다고했다. 솔직히 수업 따라가기도 힘든데 논문을 써야할 때를 제외하고 일부러 논문을 찾아보는 일은 흔치 않다. 게다가 박목사님은 불면증이 있으셔서 새벽에 자주 깨신다. 자다가 새벽 2시 3시에 깨면 다시 잠이오지 않으니까 그때마다 뭘 하셨냐면 성경을 읽으신 것이다. 그래서 내가 듣기로 박목사님은 성경을 100독쯤 하셨다고 들었다. 그러니까 성경 전체가 줄줄이 꿰서 나오는 것이다. 그것이 하루 아침에 된 일일까? 그렇지 않다.
최근에 활발하게 목회하고 계시는 마커스 찬양단의 김남국 목사님도 마찬가지다. 이분이 책을 참 잘 쓰신다. 그리고 나름대로의 깊은 통찰력도 있으시다. 그런데 이분이 뭐라고 하셨냐면 개척하고 10년 동안 마커스로 어느정도 알려졌는데도 지하에서 성도가 50명을 못 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 같이 하신 일이 있다. 신학교 도서관에가서 하루에 10시간씩 성경을 연구하신 것이다. 그러면서 언젠가는 하나님이 아까워서라도 쓰실것이라는 믿음으로 그렇게 하셨다고 한다. 지금은 그 교회 출석이 2000명이 넘는다. 그런게 사람들은 겉으로 보여지는 화려함만 볼 뿐 그분이 10년 동안 하루에 10시간씩 성경을 연구하신 것에 대해서는 간과한다.
사람들은 장경동 목사님을 웃기는 목사님으로 안다. 하지만 그분은 신학교를 다닐때 3년 동안 매일 설교 개요를 하나씩 작성했다고 한다. 그리고 박영선 목사님, 곽선희 목사님 같은 분의 설교를 수도 없이 받아섰다고 한다. 그러다 어느날부터 자기만의 색깔, 자기만의 설교가 나오게 된 것이다.
미국 대각성을 이끌었던 조나단 에드워즈는 하루에 11시간씩 말씀을 연구했다고 한다. 이것 때문에 성도들과 갈등이 생겨서 목회에 어려움이 있기도 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조나단 에드워즈를 미국 부흥의 역사에 귀하게 사용하셨다.
내가 존경하고 좋아하는 팀 켈러 목사님은 뉴욕에 개척하기 전에 시골교회에서 6년간 사역하시면서 성경 전체를 두 번 설교하셨다고 했다. 그러고나서 뉴욕에 갔는데 무엇을 어떻게 해야하는지가 보였다고 말한다.
존 파이퍼 목사님은 어떤가? 우리나라에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초반이지만 이분은 이미 내가 태어나기도 전인 1974년에 독일에서 신약학 박사를 마치셨다. 그리고 1980년에 미국 미네소타에 그가 평생을 목회했던 베들레헴 교회를 개척했다.
나는 단순히 겉으로 보기에 성공한 목회자에 대해서 말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단순히 숫자적인 증가를 말하려고 하는것도 아니다. 대형교회 목회자 가운데는 믿음이 없는 분들도 있다. 최근에 들었던 이야기인데 어떤 중형교회 목회자가 친구 목사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나는 은퇴할 때까지만 믿는다.
적용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자로써의 책임을 다 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문제다. 오늘 하나님은 우리가 부름받은 자로써 결단에서 그치지 않고 헌신하기를 원하신다.
설교는 기도와 마찬가지로 어려운 노동이다. 기쁨을 전한다는 점에서 설교는 설교자에게 가장 큰 축복이다. 감추어진 보화를 찾는것과 같다. 그러나 과정은 결코 쉽지 않다. 얼마전에 아내가 코로나에 걸렸을 때 아이들 돌보느라 말씀을 준비할 시간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 농담으로 선교사님께 이번주 설교는 누워서 설교를 준비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선교사님은 누워서 준비한 설교에 은혜가 있었다고 하셨다. 그러나 사실 누워서라도 말씀을 준비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미 본문에 대한 묵상과 연구를 충분히 해놨기 때문이다. 결국 그 주일에도 주일 새벽이 되서야 원고를 마무리 했다.
바울은 고린도후서 11장에서 이렇게 말한다.
[고후11:1-2]
1 원하건대 너희는 나의 좀 어리석은 것을 용납하라 청하건대 나를 용납하라
2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을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고후11:1-2, 새번역]
1 여러분은 내가 좀 어리석은 말을 하더라도 용납해 주시기 바랍니다. 꼭 나를 용납해 주십시오.
2 나는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열렬한 관심으로, 여러분을 두고 몹시 마음을 씁니다. 나는 여러분을 순결한 처녀로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여러분을 한 분 남편 되실 그리스도와 약혼시켰습니다.
오늘 내 삶이 하나님께 쓰임받는 사람이 되기 원한다면 결단과 함께 헌신해야 한다.
III. 설교자에게 복음을 설교하신다.
요약
하나님은 헌신된 요나를 설교자로 사용하셔서 니느웨 사람들이 회개하도록 하셨다. 요나의 저자는 누구인지 알 수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요나서의 내용은 요나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하다는 것이다. 성경의 저자가 인간과 하나님이라고 할 때, 하나님은 요나의 인생을 설교하고 계신다.
해석
B.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의 인생을 설교하기 원하신다. 당신은 묘비에 무엇을 남기고 싶은가?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생을 설교하시도록 우리는 계속해서 성장해 가기 원한다. 그러려면 결단만으로는 부족하다. 하나님께 헌신하는 것이 필요하다. 헌신은 단순히 열심히 일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그것을 원하는 자리에 까지 가는것이 진정한 헌신이다.
예화
나는 요즘 맨발 걷기에 헌신했다. 건강을 위한것도 있지만 더 나은 설교자로 살기 위함이다. 사무실에서 무거운 책들을 읽고 성경 본문을 놓고 씨름하는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자연과 더불어 걸으며 머리를 식히고 예배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예수님을 전하는 것도 중요하다. 교회를 개척하고 지난 2년 동안은 어떻게 하면 설교를 잘 할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설교에 관한 택들은 거의다 섭렵했다. 그러나 그것은 대체로 원리나 방법에 관한 것들이다.
설교는 내용이 중요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설교자 자신이 그 말씀을 사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 나의 질문은 이렇게 바뀌었다. 어떻게 하면 성도들에게 더 좋은 말씀을 전할 것인가에서 어떻게하면 좋은 설교자로 남을 것인가? 하는 것이다.
오늘 어머니의 나눔은 20년 전의 일이다. 아직 갈길은 멀다. 그러나 하나님은 오늘도 나를 만들어가고 계신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오늘 여러분의 인생을 써내려가고 계신다. 여러분의 인생 가운데 비록 실패와 좌절이 있더라고 하나님이 기억되기 원한다면 방법론적인 접근이나 헛된 기대를 내려놓고 진지하게 묻기를 바란다. 어떻게하면 주님이 기뻐하시는 그리스도인이 될 것인가?
적용
설교자는 누구인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름받은 모든 자들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의 성공과 실패는 우리 자신에게 달려있지 않다.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달려있다. 그러나 이 은혜를 믿는 사람은 오늘도 자신의 삶을 헛되게 보내지 않는다. 오히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으로 헌신하기 위해 몸부림을 칠 것이다. 나는 오늘 우리 모두 각자의 인생이 요나의 이야기치럼 하나님이 써내려가시는 하나님의 이야기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