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 앞에서서 지팡이를 잡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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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팡이를 들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그대로 행해야 한다.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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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umbers 20:6–9 NKRV
6 모세와 아론이 회중 앞을 떠나 회막 문에 이르러 엎드리매 여호와의 영광이 그들에게 나타나며 7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8 지팡이를 가지고 네 형 아론과 함께 회중을 모으고 그들의 목전에서 너희는 반석에게 명령하여 물을 내라 하라 네가 그 반석이 물을 내게 하여 회중과 그들의 짐승에게 마시게 할지니라 9 모세가 그 명령대로 여호와 앞에서 지팡이를 잡으니라

서론

주님의 이름으로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항상 평안하시고 항상 건강하시고 항상 은혜로 충만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예화 사람이 하루에 몇번이나 거짓말을 하나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에서 사람이 하루에 몇 번이나 거짓말을 하는지 조사한 적이 있습니다. 조사 결과 사람은 8분에 한 번꼴로, 하루에 200번의 거짓말을 한다고 합니다.
20명의 몸에 소형 마이크를 부착하고 조사를 했는데, 가장 많이 하는 거짓말 1위가 약속에 늦었을 때 “차가 막혀서”입니다. 다들 한번 쯤은 해보셨을 것 같습니다.
가장 거짓말을 많이 하는 직업으로는 점원, 정치인, 언론인, 변호사, 세일즈맨, 심리학자 순으로 나타났습니다.
거짓말 뿐만 아니라 사람들은 참말보다는 나쁜 말을 더 많이 하고 사는 것 같은데, 사람들은 서로 사랑해서가 아니라 같이 미워해야 할 사람이 생기면 금방 친해지는 것을 봐도 사람에게는 확실히 악한 본성이 있습니다.
언제든지 악하게 말할 수 있고, 또 악하게 반응할 수 있는 것이 사람이라는 어느 정도의 이해를 가지고 있으면, 신앙생활 하면서 사람과 관련된 여러 가지 문제를 만났을 때 신앙적으로 극복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상황을 나쁘게 만드는 그 이면에 무엇이 있는지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치 함정이나 늪과 같은 상황에 빠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물론 그 이면에 무엇이 있는지 안다고 해도 잘 되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오늘 모세의 경우가 그런 경우에 해당이 되는 것 같습니다.
오늘 본문의 배경은 이스라엘 민족의 광야 생활 40년이 끝나가는 시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신 광야의 가데스에서 물이 없다는 이유로 모세에게 원망과 불평을 거침없이 쏟아냈습니다.
‘물이 없다’는 상황에 대해서 나쁜 말과 감정이 더 증폭되고 있는 느낌이 듭니다.
백성들의 아우성을 들은 모세가 어떤 기분이었을지 상상이 됩니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매번 다툼을 일으키는 백성의 모습을 보면서, 아무리 온유함의 대명사인 모세라고는 하지만 정말 참기 어려운 못마땅한 감정을 가질 수밖에 없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세가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 말씀 그대로 순종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라는 큰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가지게 되는데, 그 이유는 오늘 사건 때문에 모세는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본론

오늘 모세의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는 우리가 처해져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까’에 대한 성경적인 교훈을 얻기를 원합니다.
백성들의 원망과 불평의 소리를 듣고 나서 모세와 아론은 성막 입구로 가서 엎드렸습니다.

그때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났고, 하나님은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민 20:8 절 말씀입니다.
Numbers 20:8 NKRV
8 지팡이를 가지고 네 형 아론과 함께 회중을 모으고 그들의 목전에서 너희는 반석에게 명령하여 물을 내라 하라 네가 그 반석이 물을 내게 하여 회중과 그들의 짐승에게 마시게 할지니라
이 말씀에서 “너희는 반석에게 명령하여 물을 내라 하라” 는 이 부분을 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반석에게 명령하여 물을 내게 하라’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이제 모세는 여호와 앞에서 지팡이를 잡았습니다.
이 순간 모세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반석아 물을 내라” 라고 반석에게 명령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명령하라고 주신 말씀 그대로 따라야 합니다.
그런데 모세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민 20:11 절 말씀에서,
Numbers 20:11 NKRV
11 모세가 그의 손을 들어 그의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치니 물이 많이 솟아나오므로 회중과 그들의 짐승이 마시니라
모세는 “반역한 너희여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 라고 오히려 자신의 불편한 감정, 상한 감정이 담긴 말을 했고, 그의 손을 들어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쳤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건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지 않고 모세가 임의적으로 반석을 두 번 쳤는데 반석에서 물이 나왔습니다. 반석에서 물이 많이 솟아 나와서 회중과 그들의 짐승이 마시게 되었습니다. 기적은 일어났습니다.
어떻게 해서 기적이 일어나게 된 것일까요?
결론은 하나님께서 직접 자신의 거룩함을 나타내신 겁니다.
모세를 통해서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시려고 했는데, 어쩔 수 없이 하나님이 친히 자신의 거룩함을 나타내셨습니다.
만약 모세가 지팡이를 들고 반석에게 물을 내라고 명령했다면, 모세는 하나님의 지팡이로 기적도 행하고, 하나님의 거룩함도 나타낼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반석을 지팡이로 두 번 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거룩함은 나타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직접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여기서 깨닫게 되는 영적인 교훈은,
하나님의 거룩함은 하나님의 명령,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 할 때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함까지 나타내는 신앙인이 되고자 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에 그대로 순종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한가지 질문을 해보겠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는 것이 얼만큼 중요한가?’ 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는 것을 정말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가? 라는 것입니다.
모세에 대한 하나님의 처분을 보면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는 것이 어느 정도로 중요한지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못한 모세에게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처분의 무게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는 것은 중요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는 것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습니까?
‘만약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는 것을 정말 중요하다’ 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입장에서 이 부분을 다시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여호와 앞에서 지팡이를 들고 반석에게 명령할 것인가
아니면 지팡이를 들고 반석을 두 번 칠 것인가?
하나님이 세우신 종들에게 하나님은 하나님의 지팡이를 주십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종들이니 하나님이 주신 하나님의 지팡이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권위를 상징하는 지팡이가 바로 장로님들 손에 있습니다.
이 지팡이를 어떻게 사용하고 계십니까?
하나님의 명령대로 사용하고 계십니까?
아니면 나의 생각과 감정을 가지고 사용하고 계십니까?
사실 모세는 그동안 자신의 손에 들고 있었던 하나님의 지팡이를 거의 모든 상황에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사건에서만은 그렇게 하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안타깝게도 하나님은 이 므리바 사건, 이 다툼 사건에서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지팡이를 사용하기를 원하셨습니다. 반석을 두 번 치는 것이 아니라 ‘반석아 물을 내라’ 라고 지팡이를 들고 명령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명령과 지팡이를 잡고 있는 모세 사이에 사람의 감정이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결론

여기서 깨닫게 되는 또 하나의 영적인 교훈이 있습니다.
결국 믿음도 거룩함도 하나님과 나 사이에 있는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지팡이를 잡고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사용하느냐의 문제인 것입니다.
어떤 경우는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방법대로 해야 할 때가 있는데, 그때 필요한 것은 나 자신을 비우고 철저히 순종하는 자세입니다.
그럴 때에 비로소 하나님의 일을 이루게 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함도 나타낼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기 위해서 하나님이 주신 그 지팡이를 잡고 하나님 명령하신 대로 행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루시겠다고 약속하신 역사도 이루고, 하나님의 거룩함도 나타내는 귀한 주님의 종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동시에 누군가를 인도하는 사람들입니다.
어느 것이 먼저입니까?
하나님을 따르는 것이 먼저입니다.
하나님을 잘 따르면서 성도들을 잘 이끄는 귀한 지도자가 되셔서 하나님 앞에서, 사람 앞에서 존귀히 여김 받으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지팡이를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명령대로 사용하셔서 이 시대를 향한, 교회를 향한, 그리고 동작지방을 향한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거룩함 모두 온전히 이루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참고 자료1

https://blog.naver.com/glowkim91/223018693989
마라에서 쓴 물을 대했던 이스라엘 백성은 원망에 그쳤습니다(15:24백성이 모세에게 원망하여 이르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매). 그러나 르비딤에 도착한 이스라엘 백성은 그곳에 물이 없는 것을 확인했을 때 반응을 보십시오.
2 백성이 모세와 다투어 이르되 우리에게 물을 주어 마시게 하라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나와 다투느냐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를 시험하느냐
"물에 빠진 사람 구해주니 내 보따리 내놓으라 한다"라는 옛 속담처럼 이제는 그저 불평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물을 주어 마시게 하라"라며 당당하게 마치 자신의 권리인 양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 얼마나 뻔뻔하고 파렴치한 모습입니까? 그런데 이러한 모습은 초신자뿐 아니라 오래 신앙생활을 한 신앙인들의 모습에서도 종종 발견되는 모습입니다. 세상이라는 애굽에서 탈출하여 교회에 나오게 되었는데, 막상 기대했던 것만큼 형편이 풀리지 않을 때 교회를 원망하고 나아가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입니다. 잘되면 내 탓, 안 되면 조상 탓인 것입니다.
교회나 개인적인 문제에 봉착하게 되었을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겸손히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것인데, 무턱대고 지도자에게 책임을 전가하거나 심지어 종교를 잘못 선택했다고 불평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모든 불평은 모세가 말한 것처럼 곧 하나님에 대한 불평입니다(16:8, 너희의 원망은 우리를 향하여 함이 아니요 여호와를 향하여 함이로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불평이 끊이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십일조를 하지 않는 사람이 십일조에 대해 불평합니다. 선교헌금을 하지도 않는 사람이 선교비 지출에 대해서 불평합니다. 교회에 대해 헌신하지 않는 사람이 교회 일에 사사건건 불평합니다. 심지어 주일예배가 은혜가 되지 않는다고 불평하기도 합니다. 저는 목회의 길을 걷기 전 평신도 시절에 예배 시간에 목사님 설교를 통해서 도전을 받고 생각하는 계기는 있었지만, 은혜를 받았다고 느낀 적은 별로 없습니다. 오히려 성경을 읽으면서 말씀 한 구절을 가지고 몇 시간을 묵상하기도 했고, 어떤 때는 기도와 찬양 시간에 은혜에 감사하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습니다.
교회에서 불평과 원망이 그치지 않는 사람은 밖에 나가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집에서 새는 바가지는 들에 가도 새는 법입니다. 그것은 그 사람의 인격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바울은 진리를 잃고 경건을 이익의 방도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라 하였습니다(딤전 6:5-6, 5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 버려 경건을 이익의 방도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 일어나느니라 6그러나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은 큰 이익이 되느니라).
다른 누구는 멍청하고 생각이 없어서 불편함을 모르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몸 되신 공동체이기에, 사랑하는 가족이기에 감수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믿음으로 현실의 결핍을 결핍으로 여기지 않고, 불편을 불편으로 여기지 않으며 자족하는 것입니다.
'4~조금 있으면 내게 돌을 던지겠나이다'; 이스라엘 백성의 원망은 '하늘을 찌를 듯'했습니다. 참으로 이 표현은 적절한 것 같습니다. 오죽했으면 모세가 위협을 느꼈을 정도였겠습니까? 이에 모세는 하나님께 부르짖었고, 하나님은 모세에게 명령하십니다. 그 명령은 나일강을 쳤던 지팡이를 손에 잡고 가라는 것입니다(5절). 무엇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애굽에 9번의 기적을 일으켰던 능력의 하나님을 기억하고 신뢰하라는 것입니다.
나일 강물을 쳐서 죽음의 피로 변하게 했던 그 지팡이를 통해서 이제 하나님께서는 반석을 깨뜨려 생명의 생수가 솟아나게 하실 수 있음을 시사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삶의 현장은 광야와 같은 삶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영혼이 기갈로 인해 부르짖고 있습니다. 이 황량한 영혼의 광야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그것은 오직 경험한 믿음의 지팡이를 잡고 기도하며 선포하는 것입니다.
우리 각자의 경험은 제한적이고 부분적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자신이 경험한 것을 가지고 하나님을 제한하곤 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했음에도 새로운 문제에 봉착하면 그 문제는 이전에 경험한 하나님의 능력과는 무관한 것처럼 여기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크고 작은 기적을 경험했음에도 종종 현실의 새로운 문제 앞에서 실망하곤 합니다. 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모세처럼 하나님 앞에 엎드려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우리 손에 쥐어졌던 지팡이를 기억나게 하시고 새 힘을 주시는 것입니다.
7 그가 그 곳 이름을 맛사 또는 므리바라 불렀으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다투었음이요 또는 그들이 여호와를 시험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안 계신가 하였음이더라
민수기 20장에서는 모세가 지팡이를 두 번 두드린 것으로 인하여 하나님이 분노하신 것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후에 모세가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게 된 것에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민수 20:24). 그러나 본문에서는 이에 대해서는 언급하고 있지 않습니다. '맛사'는 시험하다는 뜻이고, '므리바'는 다투다라는 의미가 보여주듯이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시험하여 대적하였던 것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 기도
불평불만은 하나님의 대한 원망의 소리임을 늘 기억하게 하소서.
하나님께서 기적을 경험하게 하셨음에도 늘 새로운 문제에 두려워 떠는 쥐의 심장이 아니라 여호수아처럼 담대한 심장의 소유자가 되게 하소서.
[출처] 므리바 사건와 아말렉과의 싸움_출애굽기 17:1-16|작성자 우리안

참고자료2

가데스 바네아​
출애굽 당시 시내 산을 출발한 이스라엘 백성은 11일만에 이곳에 당도하였고(신 1:2) 여기서 가나안 탐지를 위해 12정탐꾼을 파견하였다(민 13:25-26).
그러나 정탐꾼들의 보고를 듣고 소요를 일으키며 애굽으로 향하려 하다 하나님으로부터 큰 노여움을 사서 38년 간 광야를 방황하는 무서운 형벌을 받기도 하였다(민 33:36-37).
38년 간의 방황을 끝낸 후 이스라엘은 다시 한번 가데스 바네아에 머물게 되었는데, 이때 모세의 누이 미리암이 여기서 죽어 매장되었다(민 20:1).
또한 모세는 물이 없다고 원망하는 백성들로 인해 분을 내면서 반석을 지팡이로 두 번 침으로써 하나님의 분노를 사기도 했는데(민 20:2-13), 이는 ‘르비딤 물 사건’을 연상케 한다(출 17:1-7).
또한 모세가 에돔 왕에게 사자를 보내어 영토 통과를 요청했으나 거절당한 곳도 바로 이곳이다(민 20:14-21).
후에 여호수아는 가나안 정복 전쟁을 통해 가데스 바네아를 점령하였다(수 10:41).
본문을 해석하는 관점 ; '므리바 물' 사건을 통해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나타내시고자 하신 자신의 거룩함이란 무엇이었을까? 그것이 무엇이었길래 자신의 충직한 종 모세까지 가나안 땅에 들이시지 않으셨을까?
백성들의 원망은 모세를 향한 원망이었는가 아니면 여호와를 향한 원망이었는가?​
​므리바에서의 반석에서 물을 내게 한 사건은 모세와 아론에게 치명타를 날린 사건입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모세와 아론은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되는 결정적인 사건이 되고 말았다.
힘든 광야 생활로 인해 백성들이 불만, 항의하는 것에 모세도 지칠대로 지쳐서 언약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간혹 의심하였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불신앙을 각성시키기 위해서 그에게 하나님의 능력을 상징하는 "아론의 지팡이를 취하라"고 하셨습니다(9절).
그리고 "반석에게 명령하여 물을 내라"(8절)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이러한 하나님의 의도와 전혀 다르게 행동하여 정죄받았습니다(12절).
학자들은 그 원인을 다양하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모세가 이처럼 정죄받은 구체적인 이유를 모세의 성급함, 반석을 두 번 내리친 것, 교만과 불순종, 불신앙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시편 106:32,33을 보면, 모세는 그 입술로 하나님의 주권을 무시하는 말을 망령되이 했다고 언급하였습니다.
​그들이 또 므리바 물에서 여호와를 노하시게 하였으므로 그들 때문에 재난이 모세에게 이르렀나니 이는 그들이 그의 뜻을 거역함으로 말미암아 모세가 그의 입술로 망령되이 말하였음이로다(시편 106:32,33)
또한 마치 자신이 이스라엘에게 물을 공급하는 이스라엘의 구원자인 것처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물을 내랴"하며 행동했습니다(10절).
모세와 아론이 회중을 그 반석 앞에 모으고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반역한 너희여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 하고(민 20:10)
그는 단지 하나님의 대표자였지 하나님은 아니었습니다.
모세의 과오는 신정 정치의 기초를 근본적으로 흔들어 놓는 것으로 출애굽 세대들의 반역 행동과 같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그들과 똑같은 언약의 저주를 받게 됩니다.
그 저주란 신정 정치가 확고하게 뿌리 내릴 약속의 땅인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12절).
​익숙함에서 오는 모세의 판단 미스에서 온 결과일 수도 있습니다.(익숙함에 오는 하나님의 뜻과 의도에 대한 오판의 결과)
백성들의 원망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원망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긍휼히 여겨 물을 주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의도를 제대로 읽지 못한 결과였다고 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믿지 않고, 그의 거룩함을 드러내지 못했기 때문에 모세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40년 광야 생활로 인해 고생이 많았구나. 힘들었지? 이제 그 생활이 끝나가고 있어. 이곳에 오면 물이 많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물이 없구나. 그러나 우리를 가나안 땅으로 인도해 가시는 하나님의 계획이 분명히 있을거야. 이 일을 통해 이루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자. 기다려보자."​

참고 설교3

우리들도 이러한 결과를 가져올 경우가 많습니다.
오늘 하루 익숙함에서 오는 실수를 범하지 않도록 기도하며 점검해 보는 새벽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르비딤과 므리바에서의 물 사건 비교(한글 설교문 확인)
이스라엘 백성들의 입장은 어떠했을까?
​출애굽 후 곧 바로 가나안으로 인도하실 줄 알았는데 광야에서 모두 죽게 만들었으니 불평 불만이 나오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들은 모세와 같은 실수를 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가데스 바네아!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의심하다가 광야 40년의 방랑 생활을 하게 되었고, 모세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는 상황이 연출되었습니다.
우리도 가데스 바네아에 서 있음을 명심합시다.
다 된 밥에 코 빠뜨리는 일이 없도록 합시다.
모세와 아론에게 내려진 비극적인 결과
본문의 므리바 사건은 이스라엘의 출애굽 이후 40년 가데스에서 발생한 사건입니다.
신 광야에 있는 가데스는 가나안 남부 지대와 인접한 지역으로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한 직후에 가나안 입성을 준비하기 위해 모였던 곳입니다(13:26).
거기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정탐의 결과를 놓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죄를 저질렀습니다. 그 결과로 그들은 4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광야에서 방황해야 했습니다.
결국 40년의 광야 생활을 거치면서 자신들의 범죄로 말미암아 가나안으로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한 채 다시 가데스로돌아 오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불평하는 습관은 여전히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범죄함으로 비롯된 40년 광야 생활을 가까스로 마친 이스라엘 백성들은 또다시 가데스의 므리바에서 불평과 원망을 늘어놓기 시작하였습니다.
단지 물이 없다는 이유로, 애굽의 고통에서 구원해 줄 하나님을 원망하고, 출애굽의 영도자 모세에게 불평한 것입니다. 40년간이나 광야에서 연단받았으며,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하심을 체험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불평하는 버릇은 고쳐지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므리바에서도 물이 없자 예외 없이 하나님을 원망하고 모세에게 불평을 퍼부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을 위해 물을 주시기로 하셨습니다.
“지팡이를 가지고 네 형 아론과 함께 회중을 모으고 그들의 목전에서 너희는 반석에게 명령하여 물을 내라 하라 네가 그 반석으로 물을 내게 하여 회중과 그들의 짐승에게 마시울지니라."(8절).
​그러나 물을 내는 과정에서 모세는 그만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고 말았습니다.
백성들의 불평에 마음 상한 모세는 반석으로 명령하여 물을 내라는 하나님의 지시를 따르지 아니하고 반석을 두 번이나 침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죄를 범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모세와 아론은 이 범죄로 말미암아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하나님의 선고를 듣게 되었습니다. 곧 그 동안의 수고에도 불구하고 가나안 입성을 하지 못한 채 광야에서 죽을 수밖에 없는 처지에 이르고 말았던 것입니다.
​본문에는 아론이 생을 마감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아론의 죽음은 스스로의 노를 억제하지 못하고 하나님 앞에서 범죄한 두 지도자 모세와 아론에게 내려진 징계의 시작이었습니다.
하나님의 택한 종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면 이러한 형벌을 받게 됩니다.
그럼 여기서 계속되는 불평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해 변함없이 사랑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그들의 지도자 모세와 아론에게 내려 비극적인 결과의 근본적인 원인을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1. 백성들의 원망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가데스는 본래 물이 끊이지 않았던 오아시스 지역으로서 예로부터 대상(隊商)들의 야영지였습니다.
그래서 약 40년 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데스에 머물 때만 해도 그들은 물이 없어서 곤란을 겪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지금 가데스에는 말라 버린 오아시스만 있을 뿐 물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생각지 않은 곳에서 어려움을 만나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와 하나님을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생각지도 못했던 곳에서 신앙의 시련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총을 체험했음에도 불구하고 뜻밖의 어려움 앞에서 실족하여 넘어집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 동안이나 거친 광야에서 생존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하심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이 당도한 가데스에 물이 없는 것을 보자 40년간 누려 온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고 오히려 하나님을 원망하였습니다.
이들은 약 40년 전에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나서 하나님을 대적하고 원망한 결과 광야에서 40년이란 긴 세월 동안 연단받았습니다.
그럼에도 자신들의 옛 습성을 버리지 못하고 다시 하나님 앞에서 불평함으로 죄를 범한 것입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전혀 변화되지 않은 백성들의 모습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의 필요를 채워 주심으로 그들에게 놀라운 은총을 베푸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전히 하나님을 원망하였지만,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연약함을 불쌍히 여기시고 오히려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신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우리의 거듭되는 허물과 죄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변함없는 사랑과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2. 모세는 지도자로서 자기 감정에 치우쳤습니다.
므리바에 도착했으나 그들의 생각괴는 달리 물이 없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또다시 원망하고 불평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연약함을 아시고 그들에게 물을 주시기로 하셨습니다. 그러나 백성들이 전혀 변화되지 않은 모습으로 또 다시 하나님을 원망하자 모세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폭발했습니다.
40년간이나 광야의 훈련을 받았음에도 전혀 변화되지 않은 채 여전히 불순종을 거듭하는 백성들을 보고서 그만 노를 발한 것입니다.
이런 경우 보통의 지도자라면 누구라도 화를 낼 것입니다.
모세처럼 인내와 애정을 가지고 백성들을 지도한 지도자라면 더욱 그러할 것입니다.
모세가 백성들의 불평하는 태도를 보고 분노한 것도 바로 백성들에게 많은 애정을 쏟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모세의 조급하고 분기에 찬 어투는 비록 하나님께 불평하는 백성들을 책망하고 있는 행동이긴 했지만 결코 그들보다 나은 행동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의 불평에 몇 번이나 너그럽게 용서하셨습니다.
그러나 지도자 모세는 계속되는 백성들의 불평에 인내하지 못했습니다.
모세는 40년의 연단에도 백성들이 변할 줄 모른다고 생각했겠지만, 결국 모세 자신도 변한 것이 없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의 분노에 대해 벌을 내리신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이스라엘의 영도자로서 백성들을 인도하되 인내와 사랑을 가지고 백성들의 연약함까지도 포용하기 바라셨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백성들의 불평을 참지 못했고, 백성들의 연약함을 포용하지도 못했습니다. 더구나 모세는 백성들의 불평이 자기를 향한 것인 줄 알고 더욱 화를 냈습니다.
결국 모세는 이스라엘의 지도자로서 백성들의 연약함을 포용하지 못하고 하나님 앞에서 자기 감정을 앞세우다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벌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격노하는 자는 일의 전후를 살피지 않고 화부터 내기 때문에 실수하기 쉽습니다.
3. 모세는 하나님의 지시에 따르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분노로 인하여 순간 판단력을 잃은 모세는 마치 백성들에게 물을 줄 수 있는 권한이 자기에게 있는 것처럼 행동했습니다.
그는 백성들을 향하여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1O절)라고 말한 것입니다.
모세는 ‘반석에게 명령하여 물을 내라"(8절)는 하나님의 지시를 마치 자기의 권한에 의해서 물을 낼 수 있는 것처럼 말하고 '반석을 두 번 쳐서' 물을 내는 이적을 행했습니다(11절).
이는 ‘반석에게 명령하여 물을 내라”는 하나님의 지시와는 다른 방법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행동은 모세의 격한 감정과 지도자로서의 우월감 등이 혼재된 상태에서 나온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모세의 행동은 하나님의 지시를 어기고 자기 감정에 치우쳐 행한 불순종의 죄였습니다. 모세의 이와 같은 행동은 백성들의 무지 몽매한 모습을 보고 격분한 사소한 과오라 할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자기 감정을 억제하지 못한 것이나 자기 힘으로 물을 내겠다고 생각하여 바위를 두 번 친 행위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세운 지도자로서 보일 행동이 아니었습니다.
모세의 행동은 일종의 자기 과시의 발로였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를 자기의 노력의 결과로 얻은 것이라고 생각할 때 교만은 시작되고 그것은 다시 불순종으로 이어집니다.
즉 교만으로 인한 방자한 행동은 하나님의 지시대로 반석에게 명령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두 번 침으로써 응당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할 영광을 자신이 취하는 죄로 드러납니다.
그리고 모세와 아론은 출애굽 이후 40년 동안이나 갖은 수고를 다했지만, 일순간의 실수로 말미암아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죽음을 맛보는 비극을 초라하게 되었습니다(24절).
이때의 모세의 행위는 지도자로서 품위를 잃은 행동이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불순종의 죄를 범한 행동이었습니다. 이 같은 모세의 행동은 하나님만을 전적으로 의존해야 하는 우리에게 경각심을 심어 줍니다.
하나님의 뜻보다 자신의 감정을 앞세워 하나님의 지시대로 행하지 않음으로 모세는 불순종하였습니다.
이것은 성도가 피해야 할 태도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은 인간중심적인 사고, 자기 자신만을 의지하는 삶을 살 때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참된 신앙을 견지하기 위해서 자신의 정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고 온전히 하나님께 의지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갈 5:24).
​성도 여러분!
​모세와 아론은 일순간 하나님의 지시를 따르지 않고 자기 감정에 치우쳐 혈기를 내다가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는 벌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 동안 보여주었던 모세의 수고와 아론의 봉사를 살펴보십시오.
얼마나 백성들과 하나님 사이에서 헌신적으로 일했습니까?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의 지도자로서 하나님께로 부터 율법을 받아 백성에게 가르치고 성막을 건축하는 등 참으로 막중한 일들을 감당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 불순종하면 누구라도 그에 대한 대가를 반드시 지불해야 합니다. 과거의 노력이나 봉사가 불순종을 덮어 주지는 못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은혜와 거룩함을 마치 자기 것인양 행동하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심각한 죄가 됩니다. 모세는 므리바에서 그와 같은 죄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 불순종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돌아갈 영광을 그 자신이 취했던 것입니다.
그 결과로 그들은 40년 동안 목매어 기다리던 가나안 입성을 목전에 두고도 그 염원을 이루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하늘 가나안을 향해 나아가는 성도 여러 하나님 앞에서 봉사하며 헌신하는 가운데 한순간의 불순종으로 인해 하늘 가나안을 바라보면서도 들어가지 못하는 불행한 일이 여러분 가운데 일어나서는 안 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전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귀기울여 순종해야 합니다. 그러할 때 우리는 하늘 가나안에 입성하여 승리의 개가를 부르게 될 것입니다(딤후 4:5-8).
​출처 ; 카리스 주석. pp. 648-651.
[출처] 설교, '므리바 물' 사건이 주는 교훈(민수기 20:1-13) 모세는 왜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는가?|작성자 청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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