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리스타 행26: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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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s
Transcript

설교제목
‘종'과 ‘증인'으로서 사명에 순종하는 성도
LTC제목: 이 땅을 살아갈 분명한 이유
서론- 이제 바울은 그처럼 기독교를 박해하던 사람이 어떻게 예수님을 믿게 되었는지를 진술한다.
사도행전에서 바울의 회심 사건은 9장에 기록되어 있다.
예수님은 바울을 콜링 하신다. 바울을 부르신다. 그 목적은 무엇인가?(14-16절)
사도행전 26:13–23 DKV
정오쯤에, 오 왕이여, 길을 가고 있는데 하늘로부터 해보다 더 밝은 빛이 저와 제 일행을 둘러싸며 비추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땅에 엎드러졌습니다. 그때 제게 히브리 말로 말씀하시는 음성이 들렸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 가시 채찍을 뒷발질해 봐야 너만 다칠 뿐이다.’ 그래서 제가 물었습니다. ‘주여, 당신은 누구십니까?’ 그러자 주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다. 이제 일어나 똑바로 서거라. 내가 네게 나타난 것은 너를 내 일꾼으로 삼아 네가 본 것과 앞으로 내가 네게 보여 줄 것을 사람들에게 증언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내가 이 백성과 이방 사람들에게서 너를 구원해 이방 사람들에게로 보낼 것이다. 이제 너는 그들의 눈을 뜨게 하고 그들을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해 그들이 죄 용서를 받고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사람들 가운데 기업을 얻게 할 것이다.’ 아그립바 왕이여, 그래서 저는 하늘에서 보여 주신 이 환상에 거역하지 않고 먼저 다메섹 사람들에게, 다음으로 예루살렘 사람들과 온 유대 사람들에게 그리고 이방 사람들에게까지 그들이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와 회개에 합당한 행동을 보이라고 선포했습니다. 바로 이 때문에 유대 사람들이 성전에서 저를 붙잡아 죽이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바로 이날까지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 왔기에 여기 서서 높고 낮은 모든 사람들에게 증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모세와 예언자들이 앞으로 일어나리라고 예언한 것 외에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고난을 당하셔서 죽은 사람들 가운데 가장 먼저 부활하심으로 이스라엘 백성과 이방 사람들에게 빛을 선포하시리라는 것입니다.”
1. 부르심을 받은 바울
1)묵상질문: 예수님이 바울에게 나타나신 목적은 무엇인가요?
13절을 보니 정오시간쯤에 하늘로부터 해보다 더 밝은 빛이 둘러싸며 비췄다고 말한다. 정오의 해는 매우 밝고 쨍할 시간이다. 그런데 바울은 그 태양보다 더 밝은 빛이 비추었다고 말한다. “하늘로부터 내려온 빛"은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를 가리킨다. 에스겔도 1장에 이 하늘의 빛, 영광의 광채를 보았다고 말하고 있고, 사도요한도 예수그리스도를 ‘참 빛'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의 영광의 빛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였다고 표현한다.
전에 교수님이 신학교 교수님이 이런 질문을 한적이 있다. 천국을 비추는 태양이 있을까 없을까이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없다’ 주님의 영광의 광채가 모든 곳에 비추이기 때문이다. 우리 주님은 빛이시다. 태양보다 더 밝은 빛 그자체시다. 오늘 그분의 빛이 우리 삶에 비춰지길 소망한다. 할렐루야
우리의 예배 가운데 주님의 영광을 가장 먼저 구해야한다. 그분의 영광이 임재할때, 모든 어두움은 떠나가고 은혜와 진리를 분명하게 알게 된다. 사도바울도 이 빛을 보니까 진리가 무엇인지 바로 보게 되고,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된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가 우리의 모든 예배 위에 비춰지길 소망한다.
찬양팀과 다윗의 장막이란 책으로 북쉐어링으로 했었다. 그 책에서 토미테니 사역자는 우리가 구해야 할 궁극적인 것은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영광은 그분 자체이시다. ‘기름부음'을 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궁극적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구해야 한다. 그분의 영광이 우리의 예배 가운데 임재하실때, 그분의 영광의 광채가 우리에게 비춰질 때, 우리는 변화된다.
주님의 영광이 임하면, 설교자도 역할도 필요없다고 한다.. 그분의 영광이 우리의 마음과 심령을 만지고 고치시고 치유하시고 변화시켜주시기 때문이다. 할렐루야!
14절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라”라는 표현에서 “가시채”란 짐승을 몰기 위하여 사용하는 끝이 뾰족한 막대기 같은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라”라는 말은 소가 농부의 막대기를 걷어차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뜻이다. 즉 바울이 하나님의 뜻을 거역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곧 16절에서처럼 바울을 콜링하시고 부르시는 예수그리스도의 음성이다.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내가 네게 나타난 것은 너를 내 일꾼으로 삼아 네가 본 것과 앞으로 내가 네게 보여 줄 것을 사람들에게 증언하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말씀하신다.
사도행전 9 장 15절에서는 당시 주님의 영광의 빛을 보고 눈이 먼 바울에게 아나니아를 보내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사도행전 9:15 (DKV)
그러자 주께서 아나니아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가거라! 이 사람은 이방 사람들과 왕들과 이스라엘 사람들 앞에서 내 이름을 전하도록 선택한 내 도구다.
예수님은 바울을 콜링하신다. 그가 본 것과 앞으로 보여줄 것을 증언하는 ‘증인’이다. 성경에서 ‘증인'이란 보고 들은 것을 전하는 자다. 이로 인해 바울은 자신이 사도직과 그리스도의 종이 되었음 서신서 앞부분에 늘상 소개하고 있다. 사도라는 것은 예수님을 직접 보고 함께한 제자들을 의미한다.
우리는 사도들처럼 예수님을 직접 눈으로 목도하고 함께하진 못했지만, 예수님이 그분의 영을 보내신 성령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알수있고, 그분이 구원자임을 믿고 있다. 성경에 아무도 성령을 통하지 않고서 예수를 주라, 그리스도라 시인 할 수 없고, 죄인임을 깨닫지 못한다. 우리에게 예수가 구원자라고 고백하고, 죄를 돌이켜 회개하고, 믿어지는 역사는 분명한 성령의 역사이다.
그리고 이 복음을 믿는 자들 모두에게 복음의 일꾼과 증인으로 부르셨다. 이 사명은 바울에게만 주신 부르심이 아니다. 예수님을 믿는 모든 성도에게 그리스도의 일꾼과 증인의 사명이 부여받았다.
디모데후서 1:9 (DKV)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고 거룩한 부르심으로 불러 주셨다. 그것은 우리의 행위에 따른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계획과 은혜에 따른 것이다. 이 은혜는 영원 전에 이미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것인데
하나님께서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거룩한 부르심으로 불러 주셨다. 그것은 우리의 행위에 따른 것이 아니다. 오직 하나님의 계획과 은혜에 따른 것이다.
이 부르심을 발견하길 바란다. 이 부르심 위에 우리의 인생의 방향을 설정하길 바란다. 부르심은 어떠한 고난과 어려움도 돌파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 우리가 하나님의 비전을 위해 달려가다가 왜 중도에 포기하는가? 그것은 부르심 위에 서있지 않다는 것일 것이다. 부르심은 힘들고 어려워도 돌파할 수 있는 ‘힘'이 있다.
특별히 선배 목사님들이 후배 목사님들에게 많이 하는 조언도 바로 이것이다. ‘부르심'위에 서야 한다는 것이다. 그 부르심이 없으면,, 고난의 때에 쉽게 포기할지도 모른다.
예수님을 만난 이후 ‘사도바울'의 삶을 보라. 그 무엇도 그를 멈출 수 없게 한다. ‘감옥도, 재판도, 채찍질도, 돌로 내려 찍어도, 핍박과 박해도’ 사도바울을 멈출 수 없게 한다. 이것이 너무 멋있다. 세상의 그 무엇도 바울의 복음을 향한 엔진을 꺼트릴 수 없었다. 심지어 ‘죽음'조차 그의 복음의 엔진을 멈추게 하지 못했다.
저는 지난주 아웃리치 그 짧은 일정속에서도 피곤해서 잠이 고프고, 날이 너무 더워서 시원한 에어컨이 고프고, 쉬고싶을때도 많았ㄷㅏ.. 그런데 그 일정 속에서 바울의 삶을 큐티하니.. 바울은 하루 이틀도 아니고 기나긴 시간 동안, 잠도 제대로 된 곳에서 못자고, 씻지 못할때도 많았고, 양치도 못하고, 감옥에 갇혀서, 끼니도 제대로 먹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고난들은 바울을 멈추게 할 수 없었다.
왜? ‘부르심'위에 서있었기 때문이다. 내 열정과 힘에는 반드시 한계가 찾아온다. 그러나 그것을 넘어가는 것은 주님의 콜링이다. ‘부르심’이다. 예수님은 오늘 우리를 부르시고, 그분의 일꾼과 증인으로 콜링 하셨다. 이 부르심을 옷입고 우리는 각 영역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미디어, 교육 등등 모든 영역으로 복음 일꾼과 증인의 부르심을 갖고 나아가야 한다..
1-1)적용질문: 예수님이 ‘일꾼'과 ‘증인’으로 부르신 사명을 내 삶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천할 수 있나요?
2. 복음을 전하는 사명
2)바울이 증언하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리키나요?(17-18절)
특별히 이 말씀 구절을 읽는데 누가복음의 예수님 말씀이 생각났다.
누가복음 4:18–19 (DKV)
“주의 영이 내게 내리셨다. 이는 하나님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셔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하나님께서는 포로 된 사람들에게 자유를, 못 보는 사람들에게 다시 볼 수 있음을, 억눌린 사람들에게 해방을 선포하기 위해 나를 보내셨다.
주의 은혜의 해를 선포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복음은 이론이 아니다. 가설이 아니다. 복음은 선포된 진리이고, 실제이다. 그래서 성경대로라면 반드시 복음에는 능력이 나타나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평상시에 복음을 성경의 이론으로 여기는 것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예수님 믿으니까 구원! 그러니까 끝.. 거기에서 머무를 때가 많다. 나만 구원받고 끝나는 것인가? 절대 그렇지 않다. 구원이 내 안에만 머무르고 있다면,, 복음을 전하고 있지 않다면.. ‘복음을 하나의 이론으로 믿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점검해봐야한다.
눅 4 장 18-19를 보면… 예수님이 취임설교를 하시면서 뭐라고 말씀하시는가.. 성령이 임하시고, 기름부으시는 이유를 무엇이라 말하는가? ‘복음 전파'이다. 단순한 ‘복음 전파'가 아니다. 능력 있는 복음전파이다.
복음서에서의 예수님의 사역과 또 사도행전을 보면 바울을 비롯하여, 베드로 요한, 제자들의 사역 가운데 복음의 역사가 강력히 일어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복음이 단순히 어떤 이론이 아니라, 실제적인 능력임을 볼 수 있다.
현재 청년, 청소년 복음화율은 3%이하라고 합니다. 선교학에서 보통 복음화율이 3%대 이하면 미전도 종족이라고 하는데요, 그 만큼 상황이 심각한 것이죠. 우리 청년, 청소년 세대들이 현재 미전도 종족이 되어 버렸다.
이 시점에서 우리가 회복해야 할 것은 복음의 능력이라고 믿는다.
이 시대는 점점 적그리스도 문화와 악의 증가, 흉악범죄, 성적 문란함, 마약, 우울증과 중독 문제 등 세상은 그 날이 가까울수록 더욱 악해지는 것 같다. 이와 같은 때일수록 성령의 충만을 받아 그분의 능력으로 복음을 전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말씀의 복음의 능력을 실제적으로 실천하고자 기도 합니다. 병고침의 은사가 있고 없고를 떠나서,, 귀신을 쫓아내는 은사가 있고 없고를 떠나서 실제적으로 영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는 분들이 계시면 함께 기도하자고 합니다.
왜요? 실제적인 복음의 능력을 선포하기 위해서입니다.
여러분의 순에서도 어려운 지체들이 있다면, 육체적 고난이 있는 분들이 있다면, 긴급기도제목을 나누신 분들이 있다면 그 자리에서 다함께 손을 뻗어 기도해보시기 바랍니다. 크게 기도하지 않아도 됩니다. 함께 마음모아 그 자리에서 복음의 능력을 믿으며 기도해보세요~ 복음의 능력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7-18절 이 구절을 다시한번 읽어봅시다.
사도행전 26:17–18 (DKV)
내가 이 백성과 이방 사람들에게서 너를 구원해 이방 사람들에게로 보낼 것이다.
이제 너는 그들의 눈을 뜨게 하고 그들을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해 그들이 죄 용서를 받고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사람들 가운데 기업을 얻게 할 것이다.’
바울의 사명이 무엇입니까? 바울의 부르심이 무엇입니까? 복음의 ‘일꾼과 증인'입니다. 복음을 전할 때 왜 이런 놀라운 일들이 일어납니까? ‘복음의 능력'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왜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많은 부분 복음을 수식하는 단어는 ‘하나님 나라'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 천국복음'이란 말이 굉장히 많이 나타납니다.
복음을 믿는다는 것은 내 안에 하나님 나라가 임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내 안에 삶의 주인이 ‘예수 그리스도'가 되는 것이죠! 주인이 예수 그리스도가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예수님이 내 삶을 통치하신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이 통치하실때, 마음의 묶임과 포로된 부분들이 자유케 되고, 영적인 눈이 띄어지고,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에게로 돌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오늘도 복음을 전파의 일꾼과 증인된 정체성을 잃지 않고, 복음의 능력을 믿으며 각 영역으로 나아가시길 바랍니다. 그곳에서 복음의 능력을 부어달라고 기도하고 전하십시요. 할렐루야!
특별히 22절에서 사도바울은 “그러나 저는 바로 이날까지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 왔기에 여기 서서 높고 낮은 모든 사람들에게 증언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여러분의 삶의 영역 곳곳에서 높은 분들이나 낮은 분들이나, 심지어 재판정에서까지 복음을 전하는 기회로 삼고 있는 바울처럼 복음 전하는 사명자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2-2)나는 복음 전파를 삶의 우선순위로 삼나요? 복음을 전하는데 복음의 능력을 경험한 사례가 있다면 무엇인가요?(아웃리치 간증도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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