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종으로 오신 왕, 예수(마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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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dout
Handout
고백 : 왕-종이신 예수 그리스도 / 우리도 권세로 남을 섬기자
헌금 :
예배를 위하여
하나님 아버지, 오늘 예배를 통해 영광 홀로 받아 주옵소서. 우리 청년부가 주님을 예배합니다.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예배하기 원합니다. 우리의 예배를 받아 주옵소서.
봉헌을 위하여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가진 돈과 수입의 일부를 주님께 다시 돌려드립니다. 교회와 이 민족과 열방의 복음화를 위해 내어드립니다. 우리의 드리는 헌금을 받으시고, 부흥의 역사가 충만케 하여 주옵소서.
기도 찬양 : 보혈을 지나
본문 : 마 3:13-17
13 이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로부터 요단 강에 이르러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려 하시니
14 요한이 말려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서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15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시니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
16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17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세례 요한이 외칩니다.
하나님이 오신다.
하나님이 곧 오시니까, 준비해라.
그러니까 누가 오십니까?
오늘 읽은 13절을 함께 읽습니다.
“이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로부터 요단 강에 이르러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려 하시니”
때가 되어 예수님이
자기 일을 내려놓고
공생애를 시작하시는데
갈릴리에서
요단 강까지 걸어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러 오십니다.
갈릴리에서 요단 강 세례 받는 데까지 100KM 정도니까,
여기서 제천 덕동자연생터쉼터까지 112km 나오는데,
비슷하죠?
아주 오랜 시간 걸어서
내려오셨다 라는 것을 알 수 있죠.
예수님의 직업이 목수인데,
그 당시 목수는 대단한 직업이 아니라서,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미래 없는 일용직 같은 직업이라고 생각하시면 되고,
아마도,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예수님은
어릴 때부터
아버지 없이 살았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리고 가정의 부양을 위해서
목수로서
이리저리 아르바이트처럼 일을 하러 다니면서 생활했을 가능성이 크고,
예수님 당시,
헤롯 대왕의 후손
헤롯 안디바가 갈릴리 지역을 통치했는데
도시와 공공 건물을 많이 지었어요.
그래서
예수님이 태어나시고 25살 정도 되었을 때에,
헤롯 안디바가
갈릴리 해변을 따라서,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고, 그 도시 이름을 디베랴 라는 이름으로 명명했는데
성경에도 나오죠.
그리고 궁전을 화려하게 짓고
로마식 경기장을 세웠는데
이 시기가,
다 예수님이 20대 시절이기 때문에
예수님이 헤롯의 건축 프로젝트에 따라서,
노동자로 도시 건설이나 건축 프로젝트에 참여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예수님은 일용직 노동자로서,
모든 일용직 노동자들의 삶을 실제로 다 체험했고,
말 그대로, 하루 벌어 하루 먹는 삶을 다 살아본 것이죠.
*이제 예수님은
때가 되어서,
갈릴리에서 요단 강으로 세례를 받으러 요한에게 나아오고 계십니다.
13절을 다시 보시면,
요한이 세례를 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요한에게 세례를 받는 것입니다.
굉장히 독특한 행동이죠.
보통 교주들은 자신이 중심이 되어 활동을 하는데,
예수님은, 자신을 내려놓고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십니다.
자신을 낮추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려고 하십니다.
자기 자신을 주장하고,
자신을 높여서,
자신의 뜻대로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은 없고,
오직 하나님의 뜻만 이루겠다는 결심이,
요한의 세례 받는 것으로 나타나는 것이죠.
*요한은 예수님과 사촌지간입니다
마리아가 세례 요한 어머니랑 친척 사이인데,
누가복음, 1장을 보면 나옵니다.
둘이 친한데
이제
나이가 들고,
세례 요한은
갑자기 모든 것을 내려놓고,
광야 생활을 시작하고,
예수님도, 가정을 부양해야 하니까,
목수 일에 몰두하고,
그러면서 서로 만날 기회가 적었을 것이고,
그런데
어린 시절에 같이 보내지 않았을까 추측해보건데
세례 요한은
예수님이 얼마나 정결하시고 깨끗하신 분이신지 훤히 알고 있었을 것인데,
갑자기
자신이 설교하고 세례 베푸는 장소로 찾아와서,
세례를 달라고 하니까,
당황스러운 것입니다.
14절입니다.
요한이 말려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서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예수님, 내가 죄인입니다.
내가 죄인인데, 내가 어떻게 당신에게 세례를 줍니까?
내가 당신에게서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에 나에게 와서 세례를 받으려고 합니까?
당황하는 장면이 나오죠.
그러니까, 예수님이 대답하시는데,
여기서 ‘의’라는 단어가 굉장히 어렵고,
마태복음에서 ‘의’라는 단어는,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순종을 말하는 것입니다.
모든 의라는 것은,
특별히,
구약에서 예언된,
하나님께서 이루고자 하시는 뜻,
아브라함의 제라,
제라 라는 단어가 후손, 씨 라는 뜻입니다.
아브라함의 제라를 통해 천하 만민이 복을 얻게 하겠다.
그리고, 다윗의 후손,
우리가 마태복음, 1장에서
예수님은 다윗의 후손이라 했는데,
하나님이 약속하셨습니다.
사무엘하, 7장 13절에
내가 너의 왕권을 영원히 견고한 왕권이 되게 해주겠다.
이 뜻,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이 뭐냐면,
아브라함의 후손을 통해,
온 세상이 복을 받는 나라를 건국하겠다.
온 열방의 민족들이 함께 복을 받는 나라를 건국하겠다.
요즘 다민족 국가 많죠.
우리 나라도 다민족 국가 되려고 하는데,
정확히는 모르는데,
총인구의 몇 프로까지는 다문화 사회이고,
몇 프로가 넘어가면,
다문화 국가라고 정의를 하는데,
우리나라도 지금 2024년이 되면은, 총 인구의 5%;’가 넘어서 다민족 국가가 되는데
얼마나 반발이 심합니까?
죄 용서 하지 못하는
일반세상에서
모든 민족이 함께 복을 받는 나라는 존재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갈라치기가 많고,
분열이 많고,
서로 자기 자신의 이권과 권리를 주장하는 사회에서는
다문화 국가도 어렵고,
자신의 민족끼리도 내부에서 분열하고 다투기가 십상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이 만드시는 것이고,
그 나라는,
모든 민족이 함께 복을 받는 이상적인 사회가 될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그 나라는,
모든 민족이 함께 더불어 살고,
함께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의 복을 누리며 사는 세상이 될 것입니다.
이 뜻을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기 위해서,
왜?
죄인은 못 들어갑니다.
죄인은 자신의 죄 때문에 들어갈 수 없는데,
오직 자신의 죄를 대신해서 죽으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 나라에 입국절차가 완료가 되는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뜻을 성취하기 위해서,
갈릴리에서,
100km가 넘는 거리를 걸어서,
요단 강에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려고 하시는 것이죠.
15절을 같이 읽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시니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
요한이 이해하지는 못했습니다.
마태복음, 11장을 보시면,
요한이 질문을 합니다.
온다고 했던 그분이 당신입니까?
오실 그이가 당신입니까?
당신이 오실 그 분이 정말 맞습니까?
그러니까,
확신이 없었던 것이죠.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이제 허락하라.
내가 너에게 세례를 받는 것이,
하나님의 모든 예정된 뜻을 성취하는 일에 합당하다.
다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정확하게 몰랐지만,
예수님을 통해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세례를 주기로 한 것이죠.
*자신을 통해 성취될 하나님의 뜻
하나님은
무너진 하나님 나라를
예수님을 통해 건국하고 싶으셨는데,
아브라함의 자손,
다윗의 자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무너진 하나님 나라를 건국할 뿐 아니라,
그 나라에 들어갈 백성을 선발하여,
그 나라에 들어가게 하고 싶으셨는데,
그 뜻을 성취하기 위해서,
예수께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것이고,
세례를 받으셨다는 것은,
왕이신 예수님이,
자신이 구원할 죄인들과,
자기 자신을 똑같은 존재로 취급하겠다는 의미로 볼 수 있는데,
나는 죄인이 아니지만,
내가 구원할 수많은 죄인들을 위해,
그들의 죄를 나의 죄로 알고, 내가 그 죗값을 대신 치르겠다.
라는 대속의 의미가,
예수님의 세례에 있다고 많은 학자들이 주석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 믿어야 천국 가는 것이고,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는 그 누구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는데,
가장 위대한 황제일지라도,
가장 탁월한 정치인일지라도,
현명하고 지혜로운 학자라고 할지라도,
예수님을 믿지 않고는,
그 누구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예수님을 믿는 것이 금수저이고, 신의 축복을 듬뿍받은 사람인 것이죠.
*애석하게도 많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이 성경은 알고,
말씀은 읽었지만,
그 말씀이 예언하고 있는
하나님이 세우실 그 나라에
들어갈 은혜는 상실해버린 것이죠.
은혜란 무엇인가?
나 자신의 죄인됨을 깊이 자각하는 것이 은혜인 것입니다.
나의 어떠함으로도,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음을 깊이 인식하는 상태가 은혜인 것입니다.
나의 죄인됨을 깊이 인식하는 사람은,
결코 다른 사람을 정죄할 수 없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며 살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
내가 원하는 뜻이 아니라,
당신이 원하시는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대로 이루어 주시옵소서.
이게 은혜를 아는 사람이고,
구원받아, 자신의 주도권을 포기하고, 하나님께 주권을 내맡긴 사람의 특징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얼마나 하나님께 주도권을 내어맡겼는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하고,
정확한 상황에서보다도,
불확실하고,
부정확한 상황속에서,
자신의 주도권과,
하나님의 주도권 사이의 갈등과 격돌에 대해
더욱 세밀하게 살펴볼 수 있다는 것은,
많은 신앙의 선배들을 통해 증명된 것인데,
쉽게 말해서,
고난 앞에서,
당신은 얼마나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까?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어려움과 절망 가운데서 얼마나 하나님을 의지하고 있습니까?
이 질문에 어느 정도 답변할 수 있어야,
구원받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내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상황이 구원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성경은,
아담이,
먹고 싶은 선악과를 마음대로 따 먹은 것은 구원이라고 말하지 않는다는,
아이러니한 개념에 대해
정확하게 수용하고 있어야 하는 것인데,
구원이란
내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상황이 펼쳐지는 것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라게 되는 것,
그런 사람으로 거듭나는 것,
하나님이 선하시고,
나는 악하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겸손하게 자신의 권리와 주장을 내려놓는 것이 구원이라고 말한다는 사실을 잊어버리면 안 됩니다.
*예수님조차, 자신의 권리과 주장을 내려놓고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하나님의 모든 계획을 성취하는 것이 옳은 일이다.
라고 하신 것은,
예수님조차,
자신의 권리보다,
하나님이 이루실 그 뜻에 더 주목했다는 사실을 볼 때,
구원이란,
내 뜻을 과감히 포기할 줄 알고,
하나님이 계획을 믿음으로 수용할 수 있는 영적 변화가 일어난 것이라고 볼 수 있죠.
그러자 무슨 일이 일어납니까?
16절을 보니까,
닫혔던 하늘의 문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께서,
창조의 영이신 성령께서
비둘기같이 예수님의 머리 위에 임재하시면서,
새로운 하나님의 창조
파괴되고,
무너진,
피조세계를 새롭게 건설할,
새로운 창조의 역사가,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을 통해,
예수님과 함께 시작되었다는 것을, 말씀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순종해야 하늘 문이 열리는 것입니다.
하늘 문이열려야 하나님이 역사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죄악된 세상에,
드디어,
하나님 나라가 세워지기 시작했다.
*여러분,
단순합니다.
되는 사람은 되는 짓만 합니다.
짓이라니까, 좀 그런데
되는 행동만 합니다.
되는 행동만 하니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되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도 되는 행동만 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인정하실 만한 행동,
말, 삶
생각,
하나님이 기뻐하실만한 행동만 하는 사람은, 되는 사람인 것입니다.
성경 어디를 살펴보십시오.
우리가 은혜로 구원받았으나,
그 은혜가 너무 값싸서, 마음대로 살았더라.
라고 되어 있는가?
사도 바울이,
그 값비싼 은혜를 받아 어떻게 살았는가를 보십시오.
자기 자신을 내어던지며 살았습니다.
은혜는 말그대로 은혜인데,
그 은혜가 말그대로 은혜이기 때문에,
사도 바울이 심령을 감동시키고,
하나님이 시키지도 않은 일을 위해서,
스스로 자발적으로 그 일을 찾아서 할 정도로,
자기 자신의 주도권을 포기하는 역사가,
구원받은 사람을 통해 일어났다는 것이죠.
저는, 청년의 때에 이런 일이 일어나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아무 것도 준비되지 않아 보이고,
아무 것도 없어보일 때에,
하나님을 위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위해서,
자기 자신을 헌신하고 투자하는 일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른들을 봐도 마찬가지입니다.
청년의 때에 헌신과 수고를 해본 사람은,
신앙생활도 다릅니다.
청년의 때처럼, 열정적으로 폭발적으로 살기는 어렵지만,
그 마음 속에는
언제나 청년 시절의 불타는 열기와 하나님을 향한 순수한 애정이 있는 것을 봅니다.
그 상태 자체가, 은혜이고 복인데,
은혜는 삼투압현상이 강해서,
높은 데서 낮은 데로 거저 흐릅니다.
자녀를 키우거나,
관계를 맺거나,
일을 하거나,
모든 일을 해낼 때에,
하나님은 그 사람에게 풍부한 은혜를 베푸시고,
그 은혜로 말미암아,
그 인생이 최고로 잘 되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믿음직 하지 않다고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 한번 믿어봅시다.
그리고,
되는 행동을 하는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저 친구 참 될만한 친구다.
라고 생각하게 행동해봅시다.
그러면 되는 것이죠.
(찬양합시다.)
보혈을 지나,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없이는 나아갈 수 없는 곳이 하나님 나라,
그 하나님 나라
입국 절차 핵심 요소가 바로,
예수의 보혈입니다.
이 보혈 힘입어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간절히 바라며, 찬양합시다.
(기도합시다.)
절망이 소망으로 변화되는 것을 기대하며 마친 여름MT위에 하나님이 크신 복을 허락하셨습니다. 받은 복을 따라서 기도합시다. 세상 소망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는 청년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영원한 것을 바라보는 청년이 되게 하소서. 하나님이 기뻐하는 삶은 거룩한 삶입니다. 그 누구도 보지 않을 때 깨끗하게 사는 삶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이런 삶 살아가게 하옵소서. 하나님 보시기에 되는 인생되게 하여 주옵소서. 같이 기도합시다.
2. 두 번째로 하나님이 세우신 교회를 위해서. 특별히 다음 세대와, 주일학교 아이들을 위해. 여러분도 다음 세대이지만, 여러분의 행동이 다음 세대에게 영향을 주게 됩니다. 여러분은 다음 세대 우리 어린 친구들에게 어떤 신앙인으로 서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여러분은 유년부, 초등부, 중고등부 친구들에게 어떤 모습의 신앙인이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님께 주도권을 내어드리고,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교사로 있든 그렇지 않든 상관없이 우리는 영향을 끼치고 있는데, 얼마나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지 생각해보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 살게 해달라고, 우리 뒤에 있는 다음 세대에게 건강한 신앙인격을 물려주는 청년들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는 죄인이라 내가 주인이 되어서, 내가 원하는 대로 삶을 살아가려고 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은 그것이 옳다고 부추기가 때문에 더욱 죄라는 인식을 하기가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가장 거룩하고 위대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도 하나님이 뜻을 이루기 위해서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셨는데, 그분의 제자인 우리는 내 조그마한 자존심 하나 버리지 못해 분노하며 갈등하기 일쑤입니다. 이런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예수님을 닮아가는 저와 청년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이번 한주 살아갈 동안 세상 욕심에 빠져 살지 않게 하시고, 오직 주의 은혜 힘입어 거룩함을 지키며 살아가는 저와 청년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연구
1
Psalm 2:7 NKRV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Isaiah 42:1 NKRV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자 곧 내가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영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정의를 베풀리라
이 두 암시의 결합은 적어도 기독교 이전의 유대교()의 일부가 이 두 구절을 모두 메시아로 받아들였다는 점에서 특히 중요합니다(참조: 4Q174 1 I, 10-14와 42:1).
이 둘은 함께 예수의 이중적 역할에 대한 하늘 아버지의 이해를 반영합니다. 언젠가는 왕 메시아이지만 지금은 고난받는 종 - 둘 다 신성한 아들로서의 그의 독특한 정체성에 적합합니다.
여기서 마태는 예수님이 이스라엘의 역할, 특히 실패한 부분을 성공적으로 반복하는 것을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은 새로운 창조물을 만들고 계십니다.
Genesis 1:2 NKRV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2
예수님은 요한에게 세례를 받은 사람 중 한 사람이었음을 나타냅니다.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예수님이 의도적으로 요한의 세례를 받기로 선택했음을 나타내며, 14-15절은 이것을 더욱 강조합니다. 따라서 예수님은자신을 요한의 메시지와 그 메시지가 만들어 낸 부흥 운동과 동일시하여 정화되고 준비된 하나님의 백성의 일원으로 등록하려고 하셨습니다.
Matthew 3:6 NKRV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 요단 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니
(요한복음 1장 31절과 33절은 아마도 예수의 사명의 본질에 대한 요한의 이해가 아직 불완전했음을 나타냅니다.)
그의 말은 11절에 비추어 보면 아마도 '나는 당신의 성령과 불 세례를 필요로 하지, 나의 물 세례가 필요하지 않다'는 의미일 것이다.
예수님은 요한의 세례를 받음으로써,
요한이 선포한 메시지 “하나님의 길을 준비하는 자”를 이어 받아서, 자신이 곧 요한이 준비한 길을 따라오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드러내신다.
이것이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다.
마태복음에서 의는 '선함', 즉 법적인 올바름이 아니라 순종에 초점을 맞춘 하나님과의 관계로 간주되는 그리스도인의 삶과 동의어입니다.
이제 예수님은 자신의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회개하는 하나님의 백성들과 자신을 동일시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여기서 이사야에 나오는 종의 모습, 즉 백성을 대표하고 그들의 죄를 짊어지는 종의 영향력을 보았습니다.
이는 명시적이지는 않지만 의로움이라는 용어에서 암시될 수 있는데, 이는 이사야 53:11에서 두드러진 특징이며, 특히 17절에서 서번트 주제를 명확하게 소개할 것입니다.
Isaiah 53:11 NKRV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하게 여길 것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로다
의로움은 곧 = 자신의 희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만드는 것이다.
의로움은 나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타인을 세우는 것이다.
상대방을 세우는 것이 곧 의로움이다.
예수님은 자신의 목숨을 버리심으로, 죄인을 의롭게 하심으로 의인이 되셨다.
하늘이 열린 것은 에스겔의 첫 번째 환상(겔 1:1)과 강을 연상시킵니다.
Ezekiel 1:1 NKRV
서른째 해 넷째 달 초닷새에 내가 그발 강 가 사로잡힌 자 중에 있을 때에 하늘이 열리며 하나님의 모습이 내게 보이니
하나님의 영의 강림은 오랫동안 사라졌던 예언적 영감의 선물이 돌아왔음을 나타낼 수도 있지만, 더 분명하게는 메시아의 약속된 임재를 나타냅니다(예: 사 11:2, 42:1, 61:1). 우리는예수님이 이전에 성령을 경험한 적이 없다고 가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 환상은 새로운 영적 지위가 아니라 메시아 사역을 위한 그의 위임을 상징합니다.
이 단어는 일반적으로 다윗 왕 을 하나님의 아들이자 메시아로 이해한 시편 2:7과 종을 하나님의 영을 덧입힌 하나님의 선택된 자로 소개한 이사야 42:1에서 가져온 것으로 이해됩니다.
3
14절
현재 문맥에서 동사는 행동을 시도했지만 달성하지 못했음을 나타내며(엄밀히 말하면 의미상 불완전), "막고 싶었다, 막으려 했다"(TEV "그의 마음을 바꾸게하려고 했다")로 번역될 수 있습니다.
필요한 경우 "John은 '당신 이러면 안 돼요'라고 말했습니다."와 같이 직접 말로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요한은 더 중요한 분인 예수님이 덜 중요한 분인 자신으로부터 세례를 받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신에게 세례를 받아야 할 사람은 바로 나입니다." "당신에게 세례를 청해야 할 사람은 바로 나입니다." 또는 "당신이 나에게 세례를 주어야 합니다."라고 말해야 합니다.
15절
이는 "이번에는 내가 요구하는 대로 하라", "이번에는 반대하지 마라", "지금은 내가 요구하는 대로 하라"는 뜻입니다. 사실 예수님은 요한이 옳다는 데 동의하시지만, 이번에는 요한에게 자신의 요청을 따르라고 요청하십니다.
모든 의를 이루라는구절의 해석과 관련된 중요한 문제가 있는데, TEV는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모든 것을 하라"로 표현합니다.
하나님의 율법의 성취와 구체적으로 연관시키는 반면("우리가 율법의 모든 요구를 충족시키는 것이 옳다")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의 의"라는 구절은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의로운 행위"를 의미합니다. 사실 "의"는 "구원"의 동의어가 되며, 메시아는 "주님은 우리의 의"라고 불릴 수 있습니다(렘 23:6; 33:16; 사 11:1-4 참조).
Jeremiah 23:5–6 NKRV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때가 이르리니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 그가 왕이 되어 지혜롭게 다스리며 세상에서 정의와 공의를 행할 것이며 그의 날에 유다는 구원을 받겠고 이스라엘은 평안히 살 것이며 그의 이름은 여호와 우리의 공의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Jeremiah 33:16 NKRV
그 날에 유다가 구원을 받겠고 예루살렘이 안전히 살 것이며 이 성은 여호와는 우리의 의라는 이름을 얻으리라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 = 예수 그리스도
그가 왕이 되어 = 예수 그리스도
유다는 구원 = 여호와 우리의 공의
마태복음에서는 일반적으로 의를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을 행함" 또는 "하나님의 뜻을 행함"과 같은 용어로 표현하는 것이 적절합니다. 실제 표현은 해당 표현이 나오는 개별 문장의 구조에 따라 달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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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만이 이 행위에 대한 요한의 반대를 기록했습니다: 나는 당신에게 세례를 받아야 하는데, 당신이 나에게 오시겠습니까? 요한은 예수의 세례가 죄로부터의 회개를 위한 것이었기 때문에 예수가 세례의 요건에 맞지 않다는 것을 인식했습니다.예수님은 무엇 때문에 세례를 받으셔야 했나요? 예수님은 죄를 지은 적이 없었기 때문에(고후 5:21, 히 4:15, 7:26, 요일 3:5) 요한에게 세례를 받고자 했음에도 불구하고 공식적으로 요한에게 세례를 받을 수 없었습니다.
요한은 예수님이 죄가 없다고 인정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 순종”하기 위해, 스스로 죄인의 자리에 서셨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비둘기처럼 내려오신 것은 예수님이 메시아이시며 선지자들이 예언한 성령의 시대가 공식적으로 시작되었다는 신호였습니다(이사야 61:1). 성령의 강림은 세상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의미하므로 메시아의 도래는 성령의 강림으로 표시되었을 것입니다.
Isaiah 61:1 NKRV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아버지께서 아들을 통해 큰 기쁨과 즐거움, 만족을 느끼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구절은 구약성경의 두 구절(시편 2:7, 이사야 42:1)을 반영합니다. 하늘 보좌에서 들려온 음성은 예수의 지위를고난과 죽음을 당할 종이자 영원히 통치할 왕으로 묘사했습니다.
요한은 자신의 세례를 메시아가 인도할 새로운 출애굽을 위한 준비로 해석한 것 같습니다(3:5-12).
그리고 예수님은 죄인들을 죄의 강에서 안전한 약속의 땅으로 도강시키는 새로운 모세적 존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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