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20: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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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8일 수요예배(행 20:13-27)
오늘 본문은 사도 바울이 에베소에서 장로들에게 고별 설교를 하는 모습이며 바울의 3차 선교여정 중 핵심이 하나 들어가 있습니다. 이는 누가가 이 내용을 자세히 기록하는 있는 것에서 알 수 있으며, 바울이 어떤 자세로 목회를 임했고, 어떤 각오로 복음을 전했는지에 대해 전달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교회의 장로들이 어떤 자세와 각오로 교회를 섬겨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말해줍니다. 따라서 우리는 바울의 고별 설교를 통해 은혜를 나누는 시간이 되길 원합니다.
먼저 13-16절의 말씀은 바울이 드로아에서 밀레도로 가는 여정이며, 밀레도에서 에베소를 지나(16절)가는 길입니다. 이 에베소를 지나갈 때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을 만나 바울이 자신의 생각을 나누고, 오순절에 예수살렘에 도착하기 위해 급히 가는 길이었습니다.
17절에서 바울은 에베소 교회 장로들을 청하였습니다. 17절에서 나오는 장로들을 28절에서 나타나는 감독자들과 같은 의미입니다. 이는 유대적 배경으로 바라보고 이야기 하는 것인지, 헬라적 배경을 가지고 이야기를 하는지에 따라 다르게 표현된 것입니다. 따라서 교회의 지도자들과 리더, 미래에 리더가 될 사람들에게 바울이 전해주고 싶은 말을 했습니다.
18절에서 바울은 자신의 행한 일들을 이야기합니다. 여기서 행하다라는 말로 사용된 원어는 바울이 행했던 모든 일들을 말합니다. 이는 바울이 예수님을 만나기 전의 모습과 예수님을 만나고 난 뒤의 모습을 솔직하게 자신의 입으로 털어놓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난 바울의 생애는 18-21절(함께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18 여러분 가운데서 어떻게 행하였는지 여러분도 아는 바니 19 곧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유대인의 간계로 말미암아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과 20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거리낌이 없이 여러분에게 전하여 가르치고 21 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언한 것이라.
여기서 바울은 예수님을 만나고 난 뒤의 3가지의 변화된 모습을 가집니다. 19절에서 나타난 ‘겸손’, ‘눈물’, ‘시험’ 입니다. ‘겸손’은 빌 2:5-8에서 복음을 전하기 위해 자신의 권리와 영광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이는 바울이 예수님이 보여주신 겸손을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 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부족합니다. 하며 몸을 숙이신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권리를 주장하지 않고 예수님의 영광을 추구하지 않는 자세를 의미합니다. 즉, 삼위하나님의 영광과 권리를 우선시하며 하나님의 영광과 권리 안에서 우리 자신의 자아를 내려놓는 것과 복음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바울도 이러한 모습을 에베소 교회에서 보여주었기에 이러한 말을 할 수 있었습니다.
‘눈물’은 우리의 죄와 부족 때문에 흘린 눈물이 아니라, 성도들을 위하여 흘린 눈물입니다. 성도들을 위해 기도와 심방이 없이는 교회의 역할을 제대로 감당할 수 없다고 바울은 말하고 있는데, 이 기도가 무너지지 않도록 먼저 저 자신부터 바로 세울 수 있도록 노력하며, 이러한 모습이 저 뿐만 아니라 성도 모두에게 넘쳐서 기도로 바로 서는 교회가 되길 기원합니다. ‘시험’은 하나님의 복음이 전해질 때 복음이 전해지지 않도록 주변에서 핍박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바울의 선교여정과 예수님의 생애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20-21절에서는 바울의 목회를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줍니다. 20절에서 유익한 것은 무엇인든지 공중에서나 각 집에서나 거리낌이 없이 여러분에게 전하여 가르쳤다 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복음을 전할 때 정규적인 모임 시간을 만들거나, 예배시간만을 통해서 전한 것이 아니라 시간이 날 때마다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쉴 새 없이 전했습니다. 그렇다면 바울은 무슨 내용을 전했느냐 했을 때 21절에서 나타납니다. 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거하였다고 합니다. 복음을 전할 때 왜 회개와 믿음을 전했을까요?
‘회개’는 우리 삶의 중심이 하나님이심을 인정하고, 우리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하면 세상으로 향하던 삶의 방향을 하나님께로 향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 회개는 믿음이 바탕이 되지 않고서는 일어날 수가 없는 일입니다. 삼위하나님께서 살아계셔서 일하심(경륜)과 예수님을 통해주신 그 크신 사랑을 믿는 믿음을 기초로 합니다. 일반적으로 언론에서 나타나는 여러 가지 안 좋은 사건들을 보면서 그래 나는 이정도면 괜찮게 살았지. 이렇게만 살아도 괜찮아 라고 위안을 얻는데, 나 자신이 중심이 되었기 때문에 이렇게 판단하고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 삶의 기준이 되고 그 분이 살아계시며 우리의 죄로 인해 예수님이 죽으신 사건을 생각해보면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러한 깨달음은 믿음에 기반되어 있고, 이러한 믿음이 바로 서게 되게 회개가 자연스레 따라오게 됩니다. 그렇다면 회개 없는 믿음은 있을 수 있느냐? 라는 의문이 생길 수 있는데, 회개 없는 믿음은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느끼고 그 사랑 안에 거하려고 하는데, 레위기에서 하나님의 전에 들어오기 전에 먼저 거룩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하나님 앞에 나아오기 위해서 회개를 하고 나아오라고 우리에게 말씀하시는데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의 당연한 모습입니다.
즉, 회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고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은 회개를 전제로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 교회의 모습을 보면 회개 없는 믿음을 전하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성화에 대해서 이야기하면 또 도덕적인 이야기를 하구나,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천국에 갈 수 있는거 아니야? 라는 이러한 생각을 가진 사람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우리는 참된 믿음에는 회개가 따라와야 함을 우리는 명심해야 합니다. 이는 오늘 본문에서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마 3:2, 막 1:15, 히 6:1 등 여러 곳에서도 동일하게 계속 나타납니다.
이러한 바울의 생애를 이야기 하고 난 뒤에 바울은 자신이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갈 지에 대해서 22절부터 나타납니다. 22절에서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그 곳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나 23절에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라고 말합니다. 이는 이후에 나타나는 21장 11절에서도 똑같이 나타나는데, 이 띠 임자를 결박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겨 주리라라고 되어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24절의 고백을 합니다. 우리가 많이 들어본 말씀 중 하나인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에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라고 고백합니다. 이 말씀은 21장 12-13절에도 나타나는데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받을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라고 다시 한 번 말해줍니다.
이 고백을 보며 우리 교단은 참 축복 받은 교단이다.라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재건교단을 세워 신앙생활을 하신 분들의 모습에서 바울의 고백같은 모습이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 분들의 신앙을 우리가 따라가지 못하는 부분도 있지만, 그 분들께서 그러한 삶을 사셨기에 성경말씀이 살아있고 역동력을 가지고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이러한 신앙의 유산을 어떻게 다음세대에게 물려줘야 할지 고민하는 것도 우리가 맡은 일 중 하나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바울은 왜 이러한 고백을 했을까요? 사도바울이 생각하기에 매우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했기에 이 고백을 장로들에게 털어놓았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바울은 선교 여정 중 많은 이적과 기사가 나타나고 기도생활을 열심히 했던 귀한 사역들이 중요한 요소들로 보지만, 선교사역에 있어서만큼은 자신의 안위를 생각하기보다 복음이 더욱 더 널리 전파되는 것에 목숨을 다했다는 것입니다. 부활의 신앙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에 바울은 죽음을 각오하고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24절의 고백 후 25절에서 에베소 사람들을 다시 못 볼 것이라 말하며 바울이 가슴 속에 있던 이야기를 26-27절에서 말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너희에게 증거하노니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내가 깨끗하니 이는 내가 꺼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다 너희에게 전하였음이라.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하여 깨끗하다는 것은 에스겔 3:18-21을 통해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한 절씩 교독하면서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18절 가령 내가 악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꼭 죽으리라 할 때에 네가 깨우치지 아니하거나 말로 악인에게 일러서 그의 악한 길을 떠나 생명을 구원하게 하지 아니하면 그 악인은 그의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내가 그의 피 값을 네 손에서 찾을 것이고, 19절 네가 악인을 깨우치되 그가 그의 악한 마음과 악한 행위에서 돌이키지 아니하면 그는 그의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너는 네 생명을 보존하리라 20절 또 의인이 그의 공의에서 돌이켜 악을 행할 때에는 이미 행한 그의 공의는 기억할 바 아니라 내가 그 앞에 거치는 것을 두면 그가 죽을지니 이는 네가 그를 깨우치지 않음이니라 그는 그의 죄 중에서 죽으려니와 그의 피 값은 내가 네 손에서 찾으리라 21절 그러나 네가 그 의인을 깨우쳐 범죄하지 아니하게 함으로 그가 범죄하지 아니하면 정녕 살리니 이는 깨우침을 받음이며 너도 네 영혼을 보존하리라
바울은 이 말씀을 기억하면서 말씀을 전하고 고전 9:16에서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 라고 강한 의무감을 가지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복음을 전하는데 있어서 많은 이들이 몸을 사리고 있습니다. 코로나 시기로 인해 무너진 교회의 모습은 우리가 우리 주변에 있는 가까이 있는 사람들부터 삶의 모습으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지헤롭게 복음을 전하며 이 복음이 우리에게서 끊어지는 것이 아니라 복음이 우리를 통하여 많은 이들에게 전하여 지고, 그 복음이 끊임없이 전파되도록 기도하며 전도하고, 또한 우리의 삶 가운데 그리스도의 향기를 뿜어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받은 은사와 재능은 각기 다 다르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은 우리 모두가 하나님 앞에서 받은 사명이고, 그 사명을 잘 감당하며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며, 그리스도의 모습이 드러나도록 살아가는 우리 성도님들이 되시길 기원합니다.
준비찬양 446장, 434장, 461장,
예배후 찬양 사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