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레몬! 너 T(in ChrisT)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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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 안에서 용서하기

빌레몬서 8–21 NKRV
이러므로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아주 담대하게 네게 마땅한 일로 명할 수도 있으나 도리어 사랑으로써 간구하노라 나이가 많은 나 바울은 지금 또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갇힌 자 되어 갇힌 중에서 낳은 아들 오네시모를 위하여 네게 간구하노라 그가 전에는 네게 무익하였으나 이제는 나와 네게 유익하므로 네게 그를 돌려 보내노니 그는 내 심복이라 그를 내게 머물러 있게 하여 내 복음을 위하여 갇힌 중에서 네 대신 나를 섬기게 하고자 하나 다만 네 승낙이 없이는 내가 아무 것도 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너의 선한 일이 억지 같이 되지 아니하고 자의로 되게 하려 함이라 아마 그가 잠시 떠나게 된 것은 너로 하여금 그를 영원히 두게 함이리니 이 후로는 종과 같이 대하지 아니하고 종 이상으로 곧 사랑 받는 형제로 둘 자라 내게 특별히 그러하거든 하물며 육신과 주 안에서 상관된 네게랴 그러므로 네가 나를 동역자로 알진대 그를 영접하기를 내게 하듯 하고 그가 만일 네게 불의를 하였거나 네게 빚진 것이 있으면 그것을 내 앞으로 계산하라 나 바울이 친필로 쓰노니 내가 갚으려니와 네가 이 외에 네 자신이 내게 빚진 것은 내가 말하지 아니하노라 오 형제여 나로 주 안에서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얻게 하고 내 마음이 그리스도 안에서 평안하게 하라 나는 네가 순종할 것을 확신하므로 네게 썼노니 네가 내가 말한 것보다 더 행할 줄을 아노라
여러분은 가까운 사람에게 배신을 당한 적이 있는가? 누구나 한번쯤은 친구에게, 가족에게, 믿었고 사랑했던 누군가에게 배신을 당한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럴 때 마음이 어떤가? 억장이 와르르 무너질 것이다. 아주 산산조각나듯이 가슴 아프다. 그렇다면 누군가에게 진심으로 용서를 구해본 적이 있는가? 나 같은 경우에는 학창 시절에 매를 맞는게 당연했던 낭만의 시대였다. 그럴 때마다 선생님께 잘못했을 때, 숙제를 안했을 때, 성적이 떨어졌을 때 살려달라고 용서를 구하면서 매를 맞았던 기억이 있다. 국가 간에 용서를 구하는 나라가 있다. 독일 빌리 브란트 수상이 폴란드를 방문해 무릎을 꿇고 유대인에게 저질렀던 국가의 잘못에 대해 현 시대에서도 역사의 악행한 것을 용서를 구한다. 그러나 일본은 2차 세계대전 때 독일과 같은 만행을 한국에서 저질렀지만, 그렇게 악랄했던 역사에 대해 용서를 구했던 적이 없었다. 또 일본선교를 할 때, 사람들은 처음에 친절을 베푸다가도 복음을 전하면 ‘우리보다 가난한 나라가 왜 이런 일을 하냐’고 하거나, 이상한 눈빛으로 바뀌며 무시한다고 한다. 참 재밌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에 더욱 일본 선교에 대한 마음이 커져간다고 한다. 어떻게 이런 나라와 사람들을 용서를 할 수 있을까? 이처럼 용서란 다른 사람이 지은 죄나 잘못에 대하여 꾸짖거나 벌하지 않고 너그럽게 봐주는 것을 의미한다. 여러분 같으면 사죄할 마음이 없어보이는 친구나, 가까운 사람 또는 일본에 대해 너그럽게 용서해주는 것이 쉬운 일일까? 오늘 사도 바울이 쓴 편지를 함께 살펴보자.
오늘 말씀은 빌레몬서이다. 빌레몬서를 읽어보거나 설교를 들어본 사람이 있는가? 나는 살면서 한번도 빌레몬서에 관한 설교를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러나 빌레몬서가 신약성경에서 제일 짧지만, 임펙트가 강하다. 오늘 말씀에 편지를 받는 사람은 빌레몬이라는 사람이다. 그는 사도 바울의 친구이면서 에바브라라는 사람과 골로세 교회를 세운 사람이다. 어느 날 오네시모라고 하는 젊은 종이 빌레몬을 속였던지 아니면 물건을 훔쳤는지는 자세히 설명은 나오지 않지만, 어쨌든 빌레몬에게 잘못을 하고 감옥에 있던 사도 바울을 찾아가 도움을 구하며 바울이 오네시모를 용서해주고 그를 사랑 받는 형제로 받아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사실 로마법으로 오네시모는 죄값을 치루게 하기 위해 감옥에 보내도 시원치 않을 판이다. 왜냐하면 자기 집의 종이라면 신뢰 관계가 너무나도 중요한데, 그 신뢰를 완전히 깨뜨리고 주인에게 잘못을 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 모든 잘못을 사도 바울 자신이 오네시모를 대신해 잘못한 빚을 지겠다고 이야기하면서 더욱 빌레몬에게 간청한다.
구약에 대표적으로 사도 바울처럼 자신이 죄를 대신 지겠다는 모습으로 살았던 사람이 있다. 첫 번째로 유다이다. 열 두 지파의 가장 작은 지파였던 유다는 요셉이 총리가 되고 기근이 찾아오자 요셉의 형들과 베냐민이 이집트로 가서 곡식을 구하러 떠났다. 거기서 형들과 자신의 동생 베냐민을 알아본 요셉은 몰래 베냐민의 가방에 은잔을 넣고 바로 형들을 도둑으로 몰아 자신의 아버지 야곱이 요셉을 잃고 그가 가장 사랑하는 아들 베냐민을 인질로 삼으려고 했다. 그때 유다가 자신의 아버지가 베냐민을 너무 사랑하기에 그가 없으면 죽는다고 아주 큰 일이 난다면서 차라리 자신이 여기에 남아 종이 되어 살겠다고 베냐민은 꼭 집으로 돌려보내주라고 간청하게 된다. 이로 인해 지파 중에서 작지만 유다의 자손을 통해 메시아, 곧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하게 되는 위대한 지파가 되었다.
두 번째로 모세이다. 모세는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들고 그 제단 앞에서 춤추며 찬양하고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우상을 숭배하는 모습을 보고 하나님을 분노하셨다. 얼마나 분노하셨나면, 이스라엘 백성을 완전히 없애버리려고 하셨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애굽 땅에서 인도해주신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하나님 앞에서 범죄한 것이 아주 큰 문제였기 때문이다. 그 때 모세가 백성을 대신하여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출 32:31-32
출애굽기 32:31–32 NKRV
모세가 여호와께로 다시 나아가 여짜오되 슬프도소이다 이 백성이 자기들을 위하여 금 신을 만들었사오니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그러나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아니하시오면 원하건대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
이처럼 모세는 먼저 우상을 가장 혐오하시고 마음 아파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함께 느끼며, 자신의 생명을 하나님께 드리면서 백성의 죄를 사해달라고 간청한다. 그렇게 백성을 너무나 사랑하는 것을 가장 잘 알고 있는 모세는 그렇게 이스라엘을 대표하여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며 금송아지 우상숭배로 인해 깨진 언약을 다시 세우게 된다.
유다, 모세, 바울을 보면 공통점이 무엇인가? 한 사람 또는 백성을 위해 자신을 희생을 각오하며 대신하여 용서를 구하는 모습이다. 이를 보았을 때, 가장 떠오르는 사람이 누구인가? 그렇다.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주님은 온 인류를 위해 자신을 십자가에서 희생하여 이 세상의 모든 저주를 끊으시고, 죄의 결박에서 자유함을 주셨다. 우리가 주기도문에 그렇게 고백하지 않는가? ‘우리가 우리의 죄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그러면서 우리의 신분을 죄의 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라는 어마어마한 권세를 우리에게 주셨다. 오네시모는 이전에는 무익한 사람이었으나, 사도 바울을 통해 그리스도를 만나 유익한 사람이 되고, 그 안에서 빌레몬에게 용서를 구하는 것 종의 신분에서 자유인의 신분으로 바뀌게 되는 놀라운 일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도망친 오네시모와 빌레몬과의 관계가 끝나는 것이 아닌 다시 그 곳으로 돌아가라고 한다. 그러면서 빌레몬에게는 사랑으로 용서해주고 그를 형제로 받아달라고 말한다. 이처럼 우리는 유다, 모세, 사도 바울을 통해 일하신 예수님처럼 우리는 세상 가운데 화평을 이루어 나가야하는 직분을 받았다.
나는 어릴 때 동생과 자주 싸웠다. 컴퓨터를 사용하고 있는 동생에게 나 컴퓨터 쓰게 나오라고 했더니 나에게 짜증을 내면서 그걸 보는 나는 무슨 말투가 그따위냐고 화내기 시작하고, 그러면서 서로 언성을 높여가며 싸웠던 기억이 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부모님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당연히 억장이 무너지고 마음이 아플 것이다. 똑같이 사랑하는 두 자녀가 싸우는 모습을 즐기면서 기뻐하는 부모는 이 세상에서 없을 것이다. 그랬기에 오빠로써 동생에게 다가가 용서를 구한 것이 아니라, 이러한 모습을 마음 아파하시는 부모님을 생각하며 이기적인 마음을 내려놓고 먼저 용서를 구하게 되었다. 하나님의 마음도 마찬가지이다. 교회 안에 있는 우리와 바깥에 잃어버린 세상의 사람들 또한 모두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소중한 사람들이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우리가 공동체 안에서 서로 용납하고 사랑으로 용서하기를 원하시고, 잃어버린 세상의 사람들을 여러분을 통해 하나님과 세상 가운데 화평을 이루시길 원하시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은 우리 같은 이방인들을 보고 구원 받을 대상이 아니라 지옥의 던져질 장작 또는 뗄감과 같은 모습으로 바라본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유대인들과 다르다. 고전12:13
고린도전서 12:13 NKRV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만약 우리가 복음 전파하기를 꺼려한다면 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마음과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유대인과 다른 것이 무엇인가? 하나님은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돈이 많거나 가난하거나 사람을 어떠한 계급, 인종, 국가로 나누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는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과 하나님을 모르고 방황하는 사람으로 나누어져있다. 이 교회 공동체 안에서도 함께 예배의 자리에는 있지만 하나님의 뜻에는 관심이 없고, 아무 생각 없이 앉아있거나 내가 어떻게 살지를 고민하면서 살아가는 사람 또한 하나님께서 돌아오기를 기다리신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유대인들처럼 자신들만이 구원을 얻을 것이라고 착각하면 안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구약에서 이미 아브라함의 약속에서 모세와의 약속에서 다윗과의 약속에서 예레미야와의 약속에서 온 인류와 열방을 향하신 하나님의 계획을 말씀하셨다. 성경을 자신이 읽고 싶은대로 성경책을 읽으면 유대인과 같이 다윗의 강력한 통치 제국을 꿈꾸며 하나님의 참 아들이신 예수님, 곧 하나님을 죽이는 아이러니한 사건이 십자가 사건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주님이 온 인류를 구하시기 위해 모든 죄를 지시고 홀로 모든 저주를 감당하신 주님이 온 열방이 주님께 돌아오는 것이 곧 하나님이 이 땅을 향하신 뜻이자 마음이시다. 어떻게 하면 주님처럼 용서를 베푸는 삶을 살 수 있을까?
첫 번째로 ‘내가 괜찮은 사람’이라고 착각하면 안된다. 우리에게 율법이 왜 주어졌는가? 여기서 모세의 613개의 율법을 온전하게 지킬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우리는 율법을 지키고자 할 때, 실패를 맛보게 된다. 왜냐하면 우리는 예수님을 만나고 변화되었지만, 여전히 우리 안에 어두움과 죄의 본능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우리는 살인하지말라고 해서 하지 말라는 것만 안하면 되는가? 아니다. ‘네 이웃을 사랑하라’처럼 ~을 하라는 계명을 지키지 않는 것도 법을 지키지 않은 것이다. 우리는 한 가지를 지키지 않는 것은 율법 전체를 지키지 않은거나 다름이 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하나님 말씀에 나의 마음을 비추어볼 때, 부끄러운 것 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날마다 우리는 십자가 앞에 나아가 애통하며 죄를 돌이켜 조금씩 예수님을 닮아가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한 주님을 닮아가려고 살아갈 때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사도 바울처럼 죄인 중에 괴수라고 고백하게 되는 것이다. 나 또한 군대에서 크게 극대노를 2번 한 적이 있다. 살면서 한번도 그렇게까지 화난 적이 없었는데, 나의 이러한 모습을 보고 누군가를 향해 정죄하는 손가락질을 멈추고 지금까지 하나님 앞에 나같이 더러운 죄인 용서해달라고 늘 기도하게 되었다. 내가 괜찮은 사람이라고 착각할 때, 누군가 나를 기분 나쁘게 하면 ‘쟤가 뭔데?’라는 마음이 든다. 우리는 이러한 교만한 마음을 내려놓고, 날마다 죄를 고백하며 십자가 앞에 나아가야한다.
두 번째로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더러운 죄악을 씻어주시고 용서하셨다는 사실을 믿는가? 그렇다면 이 땅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날마다 구하고 기도해야한다. 우리가 새벽모임을 기도한 이유가 무엇인가? 앞으로 여러분들과 금요일에 기도회를 하려고 하는데, 왜 기도모임이 필요한가? 하나님의 뜻을 구하기 위해서이다. 세상 여러 종교는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 기도한다. 우상에게 절을 하며 자신의 뜻과 소원이 이루어질 때까지 열심을 낸다. 그러나 그 종교들은 자신들이 섬기는 신에 대해 관심은 하나도 없고, 오직 자신을 위해 종교 생활을 한다. 절에서도 수능 100일 기도를 열심히 기도한다. 우리도 만약에 하나님에 대한 관심은 하나도 없고, 자신의 뜻을 위해서 이 자리에 있다면 다른 종교와 다른 것이 무엇인가? 다른 종교와 기독교와 다른 기도의 고백은 ‘그럼에도 불구하고’이다. 상황과 처지가 어떠하던지 하나님의 뜻이라면 이루어질 것이고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면 응답하시지 않는 것 또한 기도응답이라고 믿으며 나아가는 것이다. 그렇기에 하나님을 알기를 힘써야 한다. 나는 학교에서 공부하면서 저녁마다 기도할 때, 성경의 인물을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게 해달라고 늘 기도했다. 그 마음이 느껴지기 때문에 새벽기도모임을 열었고, 앞으로 금요기도회를 열어가려고 한다. 여러분도 하나님의 마음을 깨달아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귀한 사람들이 되길 소망한다.
마지막으로 성령으로 충만해야 한다. 갈 5:22-23
갈라디아서 5:22–23 NKRV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여러분의 삶 속에서 이러한 것들을 이루어가고 있는가? 만약에 삶 속에서 한 가지라도 부족하다면 날마다 성령님을 구하며 내 안에 가득하기를 기도해야한다. 나 또한 내 마음에 한 가지라도 없으면 당장 하나님 앞에 나아가 무릎을 꿇고 기도하러 간다. 왜냐하면 성령님을 의식하지 않으면 마치 방을 가만히 놔두면 먼지가 쌓이면서 집이 더러워지는 것처럼 곧장 하나님 앞에 나아가려고 한다. 열매는 무엇을 심는가에 따라 얻는 결과이다. 내 마음에 무엇으로 심겨져 있는가? 탐심인가? 성령인가? 우리는 날마다 주님 앞에 내가 공부하는 동기를 돌아보며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 삶인지 점검해야한다. 이러한 사람이 결국 주님과 같이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을 용서할 수 있는 주님께서 반드시 주시리라 믿는다.
오늘의 말씀의 제목은 ‘빌레몬! 너 T야?’이다. 요즘 유행어이다. 이 말을 사용할 때는 보통 MBTI가 F인 사람이 T인 사람에게 마음의 공감을 받지 못할 때 쓰는 말이다. F는 보통 감정을 공감하고, T는 상황을 공감하기 때문에 서로 공감의 포인트가 달라 쓰이게 된 말이다. 그러나 빌레몬과 사도 바울은 무슨 시대였는가? 로마 시대이다. 그때 당시에는 MBTI가 없었다. 여기서 말하는 T는 무엇인가? 예수님의 십자가와 Christ의 마지막 스펠링 T를 뜻한다. 요즘 말을 변형해서 ‘너 C야?’라고 말하는데, 들으면 안되지만 혹여나 그 말을 듣게 된다면 Christ의 C를 생각하면서 주님을 찾길 바란다. 썸네일 제작을 담당하시는 은비 쌤께서 MBTI가 T이신걸로 아는데, 설교 제목과 본문을 보냈을 때 재밌다고 말씀해주셔서 오해하셨을까 살짝 무서웠다.(웃음) 오늘 말씀 빌레몬서에서 등장하는 빌레몬과 사도 바울은 친구이다. 그렇기에 사도 바울은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를 크게 받고 변화를 받은 빌레몬이 분명히 오네시모를 용서할 것이라는 강한 확신이 있었기에 오늘 읽은 빌레몬서의 편지를 로마 감옥에서 작성하여 보낸 것이다. 빌레몬서를 요약하자면 이렇다. “빌레몬아, 나다. 바울. 요즘 교회 사역하느라 고생한다고 들었다. 너가 이전에 예수님으로부터 죄를 용서 받았잖아. 그거 내가 알려줘서 너가 깨달았잖아? 기억하지? 내가 정말 아끼는 오네시모가 비록 너에게 배신을 때렸지만, 너가 진정 예수님께 용서 받은 사람이라면 그 친구 용서해주고, 종으로 생각하지말고 사랑스러운 형제로 받아줘. 죄 값은 내가 대신 낼게. 너 내가 긴 말 안해도 뭔 말인지 알거라 믿어. 조만간 내가 너네 동네 갈테니까 호텔 잡아줘. 조만간 갈테니까 기다려. 수고해라!”이다.
여기에 있는 저와 여러분도 사도 바울처럼 누군가의 잘못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는 사람인가? 아니면 잘못에 대해 비판하는 사람인가? 우리는 옆에 있는 친구와 더 나아가 학교에 미워하는 친구 또는 가족, 믿지 않는 사람을 위해 얼마나 기도하는가? 원수를 사랑하라고 명령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왜냐하면 나를 화나게 하고 힘들게 하는 사람, 배신한 사람을 어떻게 사랑하는가?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를 먼저 찾아오셨고, 원수같은 나를 사랑하셨다. 그렇기에 우리는 어떻게 기도해야하는가? 우리의 마음을 솔직하게 드려야한다. 고상한 척하며 그 사람을 사랑하지도 못하는데, ‘원수를 사랑하게 하옵소서.’가 아니라 미워하는 사람에 대한 솔직한 마음을 하나님께 온전히 기도해야한다. 나는 아르바이트하다가 진상 손님을 만날 때 화가 잔뜩 났다. 반말이며, 태도며 말할 것도 없이 너무나 무례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그럴 때마다 속으로 어떤 기도를 했냐면, ‘아 하나님 저것들 아주 그냥 줘패버리고 싶습니다.’, ‘저 자식들 때문에 미치겠습니다.’ 등 필터링을 거쳤지만, 친한 친구에게 말하듯이 속마음을 기도드렸더니, 마음에 평안함으로 화났던 것들이 싹 내려가는 것을 경험했다. 하나님은 이러한 기도를 원하신다. 여러분이 가식적인 친구를 좋아하지 않는 것처럼 하나님도 마찬가지이다. 시편의 다윗이 원수를 향해 기도했던 것도 이와 같은 내용이다. 여기 있는 저와 여러분은 진정으로 예수님으로부터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하심을 경험했는가? 참된 용서를 받았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된 삶으로 내가 미워하는 친구와 가족에게 주님이 나를 사랑하셨듯, 그들을 용서를 하는 것이 어떻겠는가? 또 일본을 바라보면서 저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주님 만나길 기도하자. 그리하여 날마다 주님이 주시는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함을 영원히 누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간절히 소망한다. 또 누군가 T냐고 물어보면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 없이는 살 수 없다고 고백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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