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에 열등감이 찾아올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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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18: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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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故 옥한흠 목사님이 개척 초창기 때 이야기입니다. 이분이 동료분들과의 자리에서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신 은혜에 대해 말씀하실 일이 있었는데요. 그 당시 옥목사님이 받은 은혜는 ‘열등감으로부터의 자유로운 은혜’였다고 합니다.
당시에 옥목사님은 신학교를 마친 후에 미국 유학까지 다녀오셨기 때문에 남들보다 늦게 개척하셨거든요. 이미 그때는 신학교 동기들도 번듯한 지역교회에서 자리를 잡았을 때였다고 합니다. 물론 한 300명쯤 되는 기성교회에서 청빙이 들어오기도 했지만, 제자훈련 목회의 뜻을 이루고자 허름한 상가건물에서 개척을 시작하셨던 것입니다.
실제로 당시에 교회학교도 제대로 구성되어 있지 못해서, 교회학교 교사들의 역할이 애들을 데리고 옆 교회에 가서 예배드리고 오는 것이었고, 심지어 교회 건물이 2층이었는데, 1층이 중국집이었다고 합니다. 여러분, 그 짜장면 냄새가 얼마나 또 올라왔겠습니까? 도무지 예배를 제대로 드릴 수가 없었다고 그래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옥목사님이 동료 목사님들을 만날 때마다 만약 자신이 그들과 비교의식에 빠지게 되었다면 열등감으로 인해 자신만의 목회의 길을 가지 못했을 것이고, 지금의 옥한흠은 없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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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그러고 보면 우리 내면에 흐르는 비교의식과 열등감이라는 게 얼마나 우리를 힘들게 합니까? 목회자들끼리도요. 만나면 ‘누구 교회가 더 교인 수가 많냐?’ ‘재정이 얼마냐?’ 이런 걸로 비교하면서 괜히 작은 교회 목회자들은 열등감을 갖기도 합니다.
3년 전에 코로나가 막 터지고 온라인예배로 드려야 할 때, 각 교회 담임목사님들이 은근히 신경 쓰였던 게 뭔지 아십니까? 바로 자신의 설교 영상 조회 수입니다. 당연히 한국 교회에 영향력이 있는 유명한 설교가들의 조회 수는 몇천, 몇만 회까지도 나오겠죠. 은혜받은 분들이 ‘좋아요’도 많이 눌러주시고요. 그런데 대부분의 평범한 목사님들은 그렇지 않잖아요? 조회 수가 100회도 안 되고, 어떤 분은 10회 이러니까 그게 신경 쓰이는 거예요. ‘내 설교가 그렇게 별로인가?’ 이런 생각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물론 저도 여기에 자유로울 수가 없어요. 그래서 저는 의도적으로 제 설교 영상 조회 수가 얼마인지 보질 않습니다. 괜히 거기에 마음을 두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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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관점에서 오늘 본문에 나오는 사울 왕을 모습을 보면 이런 열등의식이 갖는 어려운 점이 무엇인지를 알게 됩니다. 오늘 본문 18장 6-7절
6 무리가 돌아올 때 곧 다윗이 블레셋 사람을 죽이고 돌아올 때에 여인들이 이스라엘 모든 성읍에서 나와서 노래하며 춤추며 소고와 경쇠를 가지고 왕 사울을 환영하는데
7 여인들이 뛰놀며 노래하여 이르되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한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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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상황을 머릿속으로 그려보면 참 재미있는 것 같아요. 이전까지의 사울의 모습을 보면 다윗을 참 좋아했었던 것 같습니다. 자기 곁에 두기를 원했고 여러 가지 배려를 많이 했는데, 이 노래 한 곡에 마음이 무너져 버린 것이 사울이더라는 것입니다.
저는 이 본문 말씀을 가만히 들여다보면서 인간의 연약한 모습 두 가지를 발견하게 되는데요. 지금부터 말씀드릴 인간의 연약한 모습 두 가지를 두고 설교 후에 같이 기도하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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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연약한 모습 첫 번째는 ‘여인들의 지혜 없음’입니다. 다윗을 칭찬해주고 세워주고 골리앗을 물리친 공로를 인정해 주는 것은 너무도 귀한 일입니다. 그런데 거기에 사울을 왜 끼워 넣느냐는 것입니다. 그냥 “다윗이 만만이로다” 이러고 끝냈으면 아무 일도 없었을 거예요. 그런데 비교의식을 가지고 왜 거기에 사울을 끼워 넣느냐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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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비교의식이라는 게 얼마나 상대방을 다치게 만드는 것인지를 자녀를 키우시는 부모님들 특히 명심하셔야 합니다. 저도 그렇고 저희 아내도 그렇고 모든 부모가 비슷한 성향을 가지고 있는데, “왜 그렇게 공부 안 하니?” 하면 되는데, “네 형은 공부를 잘하는데 너는 왜 그러니?” “옆집에 누구누구는 그렇게 공부를 열심히 하는데 너는 왜 그러니?” 이러는 거죠. 이건 정말 지혜 없음입니다.
그 여인들이 다윗을 칭송하기 위해 좋은 마음에서 그런 노래를 지어 불렀지만, 그것이 결과적으로 얼마나 다윗을 힘들게 하는 요인이 되었는지를 우리가 그 이후의 이야기를 다 알지 않습니까? 저는 이게 인간의 한계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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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부목사 시절에 전도사님 한 분과 차를 타고 심방을 가는데, 저희 차 앞에 웬 자동차 한 대가 깜빡이도 안 켜고 갑자기 끼어들기를 한 거예요. 둘 다 얼마나 놀랐는지 차를 거의 멈출 정도였는데, 운전하던 전도사님이 ‘구시렁구시렁’ 뭐라고 한 거죠.
그래서 제가 그런 말 해봤자 저 사람은 자기가 무슨 일을 했는지도 알지 못할 거라고 했거든요. 그러면서 이때다 싶어서 잠깐 목회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갔는데요.
여러분, 우리 목회자들이 성도들을 향해서 상처를 줄 때, 목회자가 악해서 상처 주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만난 목회자들을 보더라도 성도들에게 일부러 상처를 주는 사람을 만난 적이 한 번도 없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상처 주는 일이 일어나는가? 악해서 그런 게 아니고 지혜가 없어서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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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을 칭찬하기 위해서 노래를 만들어 주는 것은 너무 좋은 일이에요. 그러나 그것이 또 다른 한 사람인 사울을 죽이는 일이고 그 결과로 다윗마저도 궁지로 몰아갈 수 있다는 것을 모르는 이 인간의 지혜 없음.
의도적이지는 않았지만, 이간질하고 궁지로 몰아가면서도 자기가 그렇게 했다는 것 자체도 인식하지 못하는 게 이게 우리 인간이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날마다 기도해야 하는 것은, ‘살인자 되지 않게 해달라’ ‘강도질하지 않게 해달라’ 이런 기도는 안 하잖아요? 그 정도로 악한 사람은 아니지만, 날마다 구해야 하는 것은 지혜를 달라는 것입니다.
내 입술에 지혜를 주셔서 나도 모르게 그 갑자기 끼어들기 한 운전자처럼 자기가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뒷사람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며 살아가는 이런 인생은 되지 말자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실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민해져야 할 일에 예민하고 좀 둔감해도 되는 일에는 둔감해져야 합니다. 사울이 여인들의 그 노래를 둔감하게 들었다면 그냥 흘려듣고 말았을 겁니다. 그러나 너무 예민해서 다윗을 향한 열등감이 강해져서 심지어 다윗을 죽이려고까지 하지 않습니까? 예민해야 할 때 예민하고 둔감해져도 되는 일에는 둔감한 저와 우리 교우님들 되시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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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가하면 인간의 연약한 모습 두 번째는 사울의 질투심입니다. 8-9절 합독
8 사울이 그 말에 불쾌하여 심히 노하여 이르되 다윗에게는 만만을 돌리고 내게는 천천만 돌리니 그가 더 얻을 것이 나라 말고 무엇이냐 하고
9 그 날 후로 사울이 다윗을 주목하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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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 없던 여인들이 그런 노래를 만들어 부른다고 하더라도 ‘뭐 저런 노래가 다 있나? 언제나 철이 들까?’ 뭐 이러고 넘어갔으면 아무 일도 없었을 겁니다. 그런데 그 작은 것 하나도 포용하지 못하는 사울을 보면서 큰 교회 목사님이라고 해서 다 그릇이 큰 것은 꼭 아니더라는 겁니다. 작은 교회를 목회한다고 해서 작은 그릇과 마음을 가진 것도 아닙니다. 큰 교회 목사님들 중에 사울처럼 질투의 화신이 되어서 부교역자를 견제하는 분들도 계시거든요.
반면에 작은 교회를 하시지만 넓은 포용력을 가지고 이 정도의 말에 흔들리지 않는 큰 그릇을 가진 목사님들도 계시더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 자리가 사람을 말해 주는 게 아닙니다. 저는 성도님들이 자녀들을 축복하실 때, ‘하나님, 우리 자녀가 사울 왕처럼 높은 자리 차지하도록 해주세요.’ 여러분, 이렇게 기도하지 마시고요. ‘하나님, 우리 아이가 큰 그릇이 되게 해 주옵소서’ ‘저런 지혜 없는 말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 버릴 줄 아는 포용력이 있고 대범한 마음을 가진 그런 큰 그릇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런 기도를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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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 한 가지가 있습니다. 8절, 9절을 새번역 성경으로 보니까 정말 재미있게 번역했더라고요. 8-9절 혼자
8 이 말에 사울은 몹시 언짢았다. 생각할수록 화가 치밀어올랐다. "사람들이 다윗에게는 수만 명을 돌리고, 나에게는 수천 명만을 돌렸으니, 이제 그에게 더 돌아갈 것은 이 왕의 자리밖에 없겠군!" 하고 투덜거렸다.
9 그 날부터 사울은 다윗을 시기하고 의심하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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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이 본문을 읽으시면서 딱 떠오르는 사자성어 없으십니까? 침소봉대(針小棒大) ‘작은 일을 크게 불리어 떠벌린다’라는 뜻 아닙니까?
여러분, 이 여인들이 다윗은 만만이고 사울은 천천이라고 해서 왕의 자리가 정말 넘어가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죠. 설령 그런 노래를 몇몇 사람이 불렀다고 하더라도 권력은 여전히 사울 자신이 가지고 있습니다.
다윗은 골리앗을 무찔렀다고 하지만, 아무것도 주어진 것이 없어요. 이 질투심을 많이 느끼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항상 모든 일을 침소봉대 한다는 사실입니다. 과장하고, 크게 해석합니다. 저도 없지 않아 그런 성향을 가지고 있거든요. 여러분들은 어떠세요? 이제 왕의 자리밖에 남지 않았다고 하는 이 확대 해석.
그래서 이 질투심이라는 사탄의 공격 앞에 면역력이 어떤지 점검할 수 있는 잣대 중의 하나가 내가 어떤 상황을 ‘침소봉대’하고 있는가? 아무것도 아닌 일에도 위기감을 느끼고 화가 많이 나고 상대방에 대해 자꾸 그런 마음들이 생겨나고 있다면 이것은 심각한 상태입니다. 내버려 두면 사울처럼 악한 영에게 사로잡힐 위험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가져야 할 마음은 내가 처한 상황을 침소봉대하지 않을 영적인 직관력을 주시도록 그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열등감을 가져가 주는 이 지혜 없음의 문제와 질투심의 문제. 지혜가 부족해서 한 사람을 세워준다는 게 한 사람을 질투하게 만들고 사기를 꺾어놓고도 그렇게 한 것을 인식조차 못 하는 이런 모습들이 우리가 해결 받아야 할 모습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오늘 말씀에서 진짜 중요한 포인트가 그다음부터 나오는데요. 10절에 바로 오늘 다루고자 하는 핵심이 담겨 있습니다. 우선 9절부터 다시 보세요.
9 그 날 후로 사울이 다윗을 주목하였더라 10절
10 그 이튿날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사울에게 힘 있게 내리매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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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 구절이 굉장히 두렵게 다가오더라고요. 그날부터 사울이 다윗을 의심하고 시기하기 시작했고 악한 눈으로 주목하는 데 그치지 않고 내면에 문제가 생기자마자 악령이 그것을 덥석 물어서 정말 심각한 상황으로 흘러갔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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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제주도 서귀포에 살 때요. 마침 사택이 해안가에서 멀지 않아서 집에 곰팡이가 많았거든요. 해안가에서 올라오는 습기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1년만 지나도 하얀 곰팡이가 집에 곳곳에 올라와 있어요. 그래서 서귀포 쪽에 사는 분들은 꼭 제습기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서귀포에 있는 집이라고 해서 다 곰팡이가 스는 것이 아니더라고요. 아무리 해안가 근처에 있다 하더라도 집안을 잘 건조시키고 관리하면 곰팡이가 안 생깁니다. 그런데 장판 같은데는 습기가 있는지 잘 모르잖아요? 이미 그 이전부터 습기가 낄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 있더라는 거예요. 그래서 장마철만 되면 곰팡이가 생기더라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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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사울의 상황이 인간적인 질투심으로 끝날 수도 있는 상황이에요. 그러나 영적인 세계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내 마음에 옳지 않은 생각. 내 마음에 합당하지 않은 생각을 장판 속 습기처럼 계속 품고 있으면 장마철처럼 찾아오는 악한 영이 그것을 내버려 두지 않고 곰팡이로 만들어 버리더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런 경험 혹시 없으십니까?
저는 날마다 이런 것들이 두렵습니다. 제가 한 교회를 담임하는 목사로서 자꾸 이렇게 마음에 생기는 연약함을 떨쳐 내 버리고 그냥 공개해 버려요. 목사로서 잘못한 게 있으면 누구에게라도 잘못했다고 사과를 합니다. 왜 그래야 합니까?
내 마음에 장판 속 습기처럼 자꾸 품고 있다 보면 어느 날 악한 영이 제 이 못된 마음을 사로잡아 버리면 사울처럼 침소봉대하게 되죠. 그런 악한 영에 사로잡힌 목사가 강단에 서서 무슨 성령의 역사를 가지고 올 수 있겠냐는 것입니다. 악한 영들이 비집고 들어오지 않도록 자꾸 점검해야 합니다. 자꾸 자신을 드러내세요. 표현하시고요. 기도해달라고 부탁하십시오.
오늘 직장동료 중에 아니면 가족이나 교회에서 함께 신앙생활을 하는 누구에겐가 불편한 마음이나 질투심까지는 아니더라도 인간관계에서 어려운 마음이 있을 때 그것을 털어 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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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오늘 말씀을 준비하면서 기억에 남는 권사님 한 분이 계세요. 제가 어메이징터치 영성훈련을 국내 아웃리치 1기 수료생이라고 했잖아요? 그다음 해부터는 지도 목사로 섬기게 되었는데, 제주 2기 때 참가자로 들어온 권사님 한 분이 계셨어요. 작은 백반집 식당을 오랫동안 운영하시면서 주일마다 저희 교역자들에게 죽을 끓여 주셨던 정말 고마운 분이셨거든요.
그런데 이분이 마지막 날 밤 참가자들, 봉사자들 모두가 모인 자리에서 간증을 하면서 사실은 자기가 그동안 누구누구 권사님을 너무 부러워하고 질투했다는 거예요. 모두 얼마나 당황했는지 모릅니다. 이 두 권사님은 서로 연배는 비슷한데 한 분은 작은 식당을 어렵게 운영하시는 분이시고, 또 다른 한 분은 서울에 사무실을 두고 일주일에 한 번씩 비행기를 타고 왔다 갔다 해야 할 정도로 보험설계사로서 크게 성공하신 분이셨어요.
그런데 이 식당을 운영하시는 권사님이 보험 하시는 권사님을 보니 멋진 옷을 입고 사람들에게 자신감 있게 대하는 태도나 그런 모습들을 보면서 오랫동안 침소봉대하신 것 같아요. 이 권사님이 막 울면서 그것을 고백하시니까 그 질투를 받으셨던 권사님이 앞으로 가서 안아주시면서 서로 미안하다고 하고 고맙다고 그러고 그러면서요. 그날 밤에 마음에 있던 습기를 완전히 제거해 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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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여러분! 저는 물론이고 여러분들 내면에 사탄에게 빌미를 제공하는 습기 찬 마음들을 이따가 기도하시면서 다 제거하시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용서를 구하든지, 용서를 선언하든지 해서 무서운 결과가 오기 전에 차단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에베소서 4장 26-27절이 참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엡4:26-27 합독
26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27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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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 구절에서 진짜 중요한 하나님의 원리를 발견합니다. 분을 내어도 즉 “화를 내어도 죄를 짓지 말고” 이게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은 화를 내는 것을 허용하신다는 겁니다. 그것은 괜찮다는 거예요. 혹시 우리 가운데 다혈질인 분들 계십니까? 여러분, 오늘부로 자유하시길 바랍니다. 분노해도 괜찮대요. 화는 낼 수 있습니다. 인간이 약하기 때문에 분노를 낼 수밖에 없는 존재라고 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
해가 질 때까지 분을 품지 말라는 것입니다. ‘목사님, 해가 진 다음에 화가 나면 어떻게 합니까?’ 여러분, 제가 무슨 말씀 드리는 건지 아시죠?
분노를 낼 수 있어요. 감정이 통제 안 될 때 쏟아 놓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즉각 깨달았으면 용서를 구하고 사과를 해야 하는데, 해가 질 때까지 품고 있으면 마귀에게 틈을 주는 것입니다.
부부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안 싸우는 부부가 꼭 건강한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죄성을 가진 인간이다 보니 서로 안 싸울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싸우시더라도 지혜롭게 잘 싸우셔야 합니다. 어떤 부부는 한번 싸우면 서로 자존심이 강해서 열흘 동안 얘기를 안 한 적도 있더라고요. 한집에 같이 살면서 그게 가능할까 싶은데 정말 그런 집이 있더라고요.
여러분, 부부관계에 그런 것 없습니다. 해가 지기 전까지 풀어야 해요. 분을 내는 것은 하나님께서 허용하신 일이에요. 그러나 분을 푸는 것은 내가 해야 할 일입니다. 왜? 마귀에게 틈을 주지 않기 위해서 그렇습니다. 사울이 그 영적으로 습기 찬 마음을 가지고 다윗을 주목하던 상황을 악한 영이 놓치지 않고 덥석 물었다는 그 사실을 꼭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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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하면 이런 열등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있을까요? 이제 말씀의 적용을 하고 마치려고 합니다.
저는 이 해답을 앞서 말씀드린 옥한흠 목사님이 쓰신 <소명자는 낙심하지 않는다>라는 책에서 얻었는데요.
이제 다음 주면 옥목사님이 소천하신지 13주기가 되거든요. 한 주간 목사님의 책들을 뒤적거리다가 주사 한 대 맞은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었다는 것 아닙니까? 고전 15:9-10 합독
9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
10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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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저에게 옥목사님을 통해 열등감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을 주셨는데요. 한 교회의 담임목사로서 저에게 주신 중요한 것은 사도 바울과 같이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은혜를 아는 사람만이 열등감에서 자유로울 수가 있거든요.
우리가 잘 알다시피 바울은 “나는 사도 중의 지극히 작은 자”라고 고백하지 않았습니까? 실제로 바울은 베드로와 비교해 볼 때 열등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같은 사도지만 베드로는 예수님이 직접 불러 3년간 훈련받은 진짜 성골 중의 성골 아닙니까?
이 반면에 바울은 자신이 개척한 교회에서조차도 늘 사도직에 대해 의심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결코 열등감에 빠져 있지 않았습니다. 왜 그렇죠? 자신이 지극히 작은 자임에 불구하고 하나님이 자신을 불러주셨음을 그가 고백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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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여러분! 은혜를 아는 사람은 결코 비교하지 않습니다. 바울은 ‘지극히 작은 자’, ‘만삭되지 못한 자’와 같은 자신을 부르신 데는 이유가 있다고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로마서의 말씀에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결코 후회함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여러분과 제가 부르심에 대한 확신이 분명하다면, 우리는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서 침소봉대할 필요도 없고 열등감에 빠질 필요도 없습니다.
그래서 이번 한 주간 우리 성도님들이 묵상해야 할 것은 다른 게 아니에요. ‘나는 얼마나 은혜를 아는 사람인가?’ 은혜를 아는 자가 열등감을 질투심을 이길 수가 있습니다.
이번 한 주간 우리 각 사람에게 찾아온 하나님의 은혜를 다시 한번 회복하여서 열등감으로부터 자유할 수 있는 저와 우리 교우님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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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단찬양 : 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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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심기도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들은 어떤 인간적인 연약함을 갖고 계십니까? 혹시 그 다윗과 사울을 비교하면서 다윗만을 높였던 여인들처럼 지혜가 부족하십니까? 아니면 사울이 다윗을 너무 질투한 나머지 침소봉대에 빠져버린 것처럼 우리에게 그런 연약함이 있지는 않습니까? 이 시간 우리가 자유하길 원합니다. 내면에 스며든 습기들을 제거해 버리세요.
이 시간 함께 기도하실 때, ‘주님, 제가 사울의 길을 걷지 않고 바울의 길을 걷길 원합니다. 나의 나 된 것은 다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합니다’ 우리 오늘 말씀을 기억하면서 주신 은혜를 기억하며 간절한 마음으로 합심하여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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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인간적인 연약함을 두고 기도합니다. 그 여인들의 지혜 없는 모습이 혹시 우리에게 있지는 않는지요? 사울처럼 다윗을 향한 질투심과 열등감에 사로잡혀서 침소봉대 하고 있지는 않은지요? 주님, 작은 습기가 온 집안에 곰팡이가 피게 하는 것처럼 우리의 이런 약한 마음에 교묘하게 스며든 악한 영들이 우리를 열등감과 자괴감에 빠지게 할 때가 있습니다.
주여! 이런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시고 바울과 같이 지극히 작은 자임에도 하나님께서 부르신 은혜를 기억하고 한 주간 은혜의 발걸음을 걷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것을 주님께 맡겨 드리며 사랑이 많으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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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도
이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아버지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성령님의 교통 하심이, 우리 삶에 열등감이 찾아왔을 때 우리를 은혜로 부르신 하나님과 함께 믿음의 발걸음을 내디디며 살아가길 다짐하는 사랑하는 교우들 머리 머리 위에 저들의 가정과 일터와 기도제목 위에 지금부터 영원히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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