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설교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8 viewsNotes
Transcript
아담아 아담아
아담아 아담아
3장 “그런데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이르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열매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그들이 그 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이르시되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알렸느냐 내가 네게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먹었느냐 아담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여자가 이르되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
창세기는 우리 신앙인들에게는 없어서는 안될 성경책입니다.
오늘 본문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내용입니다.
이 세상 모든 인간의 조상인 아담과 하와의 죄악으로 인해 죄악속에서 태아났고, 우리 스스로는 구원받을 수 없기에 죄가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상의 죽음과 부활로 그의 대속의 사실을 믿는 모든 자는 구원의 약속을 받을 수 있게 되었지요.
이 사실은 변함없는 정확한 사실입니다.
이 본문으로 여러가지의 설교주제가 설정될 수 있습니다.
그중 오늘은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를 풀어가는 첫번째 질문을 다같이 생각해 보길 소원합니다.
제가 초등학교 주일학교에서 사탄을 그리라면 까만색 이나 빨간색에 뿔이 두개 달린 괴물을 그리곤 했습니다. 저만 그런 것이 아니라 주일학교 학생 누구든지 마귀를 그리라면 그렇게 그렸던것이 생각납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사탄은 타락한 천사들이라 이야기 합니다.
네 그렇다면 천사가 뿔이 두 개난 괴물의 모습은 아니겠지요.
물론 우리들이 생각하는 천사의 모습과 실제적인 천사의 모습은 사못 다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뿔난 모습은 아닐것으로 생각합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뱁의 모습으로 나옵니다. 사탄이 뱀이 아니라 뱀의 모습으로 변신해서 나타난 것이랍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사탄은 우리에게 나타날 때 결코 뿔난 모습은 아닙니다.
어떤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지요.
하와에게 뱀의 모습으로 나타난 사탄은 우리에게 죄를 소개합니다.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하고 탐스럽고 지혜스럽다고 표현 합니다.
보기에 너무 좋았다고 합니다. 참으로 맛있게 느껴지기 합니다.
그것을 먹으면 지혜가 많이 생길 것 같다고 표현합니다.
이 표현이 사탄이 하와에게 다가간 죄의 모습이었습니다.
사탄과 만나기전에는 수십번 그 앞을 지나갔다 왔다 했었지만 전혀 느끼지 않았던 그져 무 관심했던, 하나님께서 건드리지도 말라 하셨기에 아에 쳐다 보지도 않았었는데,
뱀의 모습을 한 사탄을 만났을 때 그 전에 가지지 못했던 감정이 나왔던 것이지요.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라 여겹집니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사탄과 죄는 결코 뿔난 모습도 아니고, 까맣거나 빨갛지도 않습니다.
우리를 착각하게 만들지요.
괜찮겠지. 이 정도까지는 괜찮겠지. 이것은 괜찮아, 다들 그렇게 사는데.
네.
자기 생각, 자기가 가지고 있는 가치, 자기가 가지고 있는 규모, 자기가 가지고 있는 능력,
이런것들이 조금씩 아주 조금씩 우리의 감각을 무너뜨리고 결국엔 죄를 짖게 만들지요.
그 다음을 하나님은 기다리십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가 선과 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을 것을 몰랐을까요.
야 나는 몰랐다, 너가 진짜 그것을 먹을 것을 몰랐다. 라고 하나님꼐서 말씀하신다면 그 하나님은 하나님이 아니지요.
하나님께서 다 아시고 계셨지요.
사탄이 유혹할 것을, 그 유혹에 넘어갈것을, 그리고 결국엔 죄에 빠질것을
하나님은 다 아시고 계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방관하신것인가요
?아닙니다. 하나니은 분명하게 경고하셨습니다. 정녕 죽으리라. 그 열매를 따 먹는 순간 정녕 죽으리라. 경고 하셨습니다. 한번만 하셨을까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에게 수없이 경고하셨을 것입니다. 먹지마라. 정녕 죽으리라. 그 많은 시간동안에 그 사랑하는 아들과 딸에게 수없이 말씀 하셨지요. 하지만 사탄의 유혹에 넘어갈것을 아시면서 말씀 하시지요.
그래서 성경은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 기도하신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로봇으로 만들지 않으시고 자유의지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인간에게 선택권을 주시면서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과 재림까지 다 계획하시고 계십니다.
때문에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도 알고 짓는 죄 모르고 짖는 죄를 수없이 반복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혹 나는 죄를 안 짖고 살고 있는데 라고 생각하신다면 그 생각이 죄입니다.
인간은 죄악속에 태어나서 죄악속에 살고 죄악속에서 죽어가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우리에게 희망이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내 맘속에 품고 살아갈 때 그 죄악을 이길 수 있는 힘을 내 안에 계신 예수님께서 주신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희망이 있고 이 땅에서도 저 하늘에서도 소망을 품고 살아 갈 수 있는 존재 입니다.
죄지은 인간에게 처음 부르신 말씀은 무엇인가요.
하나님께서 부르십니다.
아담아 아담아.
너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 아담이 어디 있는지 몰라서 물으신것인가요?
하나님과 아담이 숨바꼭질하고 계신 것 인가요?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죄의 전과 후 그리고 현재까지 다 알고 계시면서 물으십니다.
네가 어디 있느냐?
장소에 대한 물으심이 아니라 위치에 대한 물으심입니다.
너의 죄를 내가 안다 그런데 너는 현재 어디에 있느냐.
아직도 죄악속에 있느냐, 하나님안에 있느냐.
그러시면 죄의 과정속에서 있었던 일들을 반추하시면서 21절에서 가죽옷을 입혀 주십니다.
가죽옷을 만들기 위해서는 반드시 짐승 한마리를 죽어야 합니다.
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모형을 보여 주십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죄악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죄인들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을 우리를 부르십니다.
아담아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우리의 삶의 위치를 묻고 계십니다.
우리는 어느 위치에서 살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백성의 위치에서, 하나님의 소명받은자의 위치에서, 하나님의 청지기로서의 위치에
하나님의 제자로서의 위치에서 사람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매 순간 순간 우리에게 묻습니다.
너가 무엇을 하고 있냐가 아닌 네가 어디에 있느냐에 대한 질문을 수없이 던지 십니다.
잠시 잠깐 교회에 와서 예배 드리는 것으로 우리의 삶의 위치가 정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눈을 떠서 눈을 감는 그 순간까지 매 순간 우리는 하나님의 질문 앞에서 대답하셔야 합니다.
네가 어디에 있느냐. 네 주님 주 안에서 숨쉬고 있습니다.
네 주님 주님 안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네 주님 주안에서 걷고 있습니다.
네가 어디에 있느냐.
이 질문에 아름다운 대답하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길 축원 드립니다.
저희 부부는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 헝가리로 세번째 사역을 위해 파송받아 나아 갑니다.
1. 한국에서의 생활
2. 볼리비아
3. 캄보디아.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 모두의 각자의 삶의 태동부터 죽음까지 다 아시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에 태초 이전부터 재림까지 한순간 보듯이 다 보시고 계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하사 선택권을 주셨습니다.
내가 선택할 권리를. 그러나 동시에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 기도하시고 계십니다.
그러시면서 묻습니다. 네가 어디에 있느냐.
지금 네가 어느 위치에 서서 삶을 살아가고 있느냐.
지금 너는 누구와 함께 삶을 공유하고 있느냐.
제발 나와 함께 살아 가 다오.
지금도 우리의 살의 문 앞에서 서시어셔 우리의 삶의 문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내가 너의 삶에 들어가 함께 하길 원한다.
사랑하는 광성교회 성도 여러분.
주님의 이 질문에 우리는 아멘 하면서 삶의 문을 활짝 열고 매일 매일 매 순간 주님과 동행하시는 귀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