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이기는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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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짜증나게 하는 방법이 두가지가 있다고합니다 첫번째는요 말을 하다가 마는것이고,
두번째는 같은 말을 반복하는것이라고합니다
이와 관련되어 하버드대 집단연구에 의하면 말을 하다마는것과 같은 말을 하는것 외에도 사람의 신경을 날카롭게하는것이 있는데
첫번째는 같은 말을 반복하는것이고, 두번째는 말을 하다가 마는것입니다
이 은혜로운밤에 짜증나게 했다면 죄송합니다.
어렸을때 친구들하고 놀게되면 아주옛날은 아니지만 그때도 오늘날처럼 핸드폰을 갖고놀지는 않기때문에, 말꼬리를 잡는 장난을 많이쳤던것 같습니다.
그래서 예를 들면, 어쩌라고를 줄여서 상대방이 말할때마다 어쩔 저쩔
1-2년정도 되었나요. 최근에는 뒤에다가 tv를 붙여서 어쩔티비 저쩔티비 어쩔 냉장고 뭐 다양하게 사용하는걸 저의 두눈과 두귀로 목격했습니다.
그리고 또 말끝마다 왜?를 붙이는거죠
그런데 이 왜?라는 질문은 꽤나 유익합니다. 실제로 어린 아이들은 수도없이 질문을 던집니다. 왜?라는질문을통해서 인지능력을 키우죠
왜 밥을 먹어? 왜 배고파? 왜 움직여?
이러한 질문을통해 아이는 생각이 넓어진다고 합니다
우리의 신앙에도 당연한 것은 없습니다. 왜라는 질문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가진 신앙에는 정통과 전통이 있습니다.
정통은 다른 말로 하면 본질적인 부분들입니다. 예를들어서 사랑이란 우리가 가진 신앙안에서 본질적인 것입니다. 사랑의 나타나는 형태는 바뀔지 모르지만 그것이 문화와 만나서 다르게 표현될지는 모르지만 그 안에 본질적인 사랑이라는 것은 변하지 않습니다.
고린도전서에서 사랑을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13장 말씀인데요.
고린도전서 13:4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고린도전서 13:5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고린도전서 13:6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고린도전서 13:7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이는 본질적인 우리가 가진 신앙입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희생적인 사랑 그것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전통은 어떠한가요? 전통은 변해갑니다.
현재 유대교에서 지키는 율법들은 바탕이 구약의 성경이겠지만 아닌것들이 더 많습니다.
우리나라 기독교에도 여러 전통들이 있죠. 심지어는 교회마다도 전통들이 있습니다. 전통이 무조건적으로 나쁘지 않습니다. 전통에는 신앙을 연결해주는 힘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전통이 무조건적으로 좋지도 않습니다. 그럼 언제 전통이 좋지 않느냐하면 왜?라는 것이 빠졌을 때입니다. 의미가 사라져버렸을 때입니다.
의미는 사라지고 그것을 지켜야만 한다는 율법으로 변해져갔을 때 전통은 우리의 신앙의 무너뜨리게됩니다.
만약 한 사람이 건강한 신앙으로 가는데에 있어서 이 전통이 유의미하다면, 의미를 분명히 가르쳐줄 필요가 있는 것이죠.
오늘 말씀을 통해서 저와 여러분이 다시 한번 우리의 신앙을 되짚어보는 시간이 되길 소망합니다. 다시한번 그 의미를 찾고, 우리가 무엇을 위해 그렇게 열심히 사역을 감당해왔으며, 또 나아가야할지에 대해서 다시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나아가는 시간이 되길 소망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요한일서 오장의 말씀은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과 사랑의 계명에 대한 순종을 함께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 말하는 대상은요. 계속해서 반복되고 있는데요. 1절과 4절, 5절, 10절 이렇게 반복되고 있습니다.
그 표현은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자라는 표현입니다. 그리고 그 믿는자를 하나님께로부터 난자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동일하게 요한복음 일장에서도 이를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요한복음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이들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성도를 향한 권면이죠.
성도는 어떠한 사람들입니까?
첫번째는요.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그 사랑하는 대상은 1절 후반부를 보시면 낳으신 이를 사랑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자를 사랑하느니라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적인 자녀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우리는 영적 생명을 받았습니다. 이는 개인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자녀가 있습니다. 우리의 영적 형제들입니다.
부모로부터 태어난 자들은 자신에게 생명을 부여한 부모를 사랑하게 되어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부모를 사랑하는 자는 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난 다른 형제 자매들 또한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할 수 밖에 없는 것이죠. 마찬가지로 이를 영적으로 형제 자매된 자들에게도 적용을 합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긴밀하게 사랑을 나누어야 할 영적으로 동일한 가족임을 강조하는 것이죠.
요한1 4:11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따라서 예수를 그리스도로, 메시야로 믿는 자는 하나님을 사랑하게되고, 하나님의 자녀인 다른 그리스도인들을 사랑하는 것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2절에서는 이 사랑이 또 하나의 모습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을 말하는데요. 그것은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여기서 계명이라고 표현된 것은 서로 사랑하라는 요한1 4:21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 에 관계되는데요.
여기서 계명이 복수로 사용되고 있는데요. 이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을 포함하여 그리스도인이 지켜야 될 모든 계명들을 지칭하고 있음을 나타냅니다.
또한 지키다라는 의미로 번역된 포이오멘의 원형 포이에오는 마음을 기울일 뿐 아니라 몸을 통해 실천하는 것을 의미하는 동사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정리를 하면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메시야라고 믿는 자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계명을 지킨다라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계명을 지키는 것은 때로 무겁기도 합니다. 계명을 지키는 것은요. 우리 자신을 때로는 절제해야하며, 스스로를 억제해야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요한1 5:3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3절에는 그의 계명은 무거운 것이 아니라고 이야기합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마태복음 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태복음 11: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마태복음 11: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이는 하나님께서 먼저 그리스도인들을 사랑하셨고,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사랑의 계명을 지킬 수 있는 능력을 허락해주셨으며, 설사 그 계명을 만족시키지 못하더라도 하나님께서는 은혜로 용서해주시기 때문입니다.
백성이 되기 위해서 계명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자발적인 순종을 통해 계명을 지키는 것이므로 그것은 가벼운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선택하셔서 그들을 부르시고 출애굽기 십구장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출애굽기 19:4 “내가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출애굽기 19:5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출애굽기 19:6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이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향해 어떻게 하나님께서 사용하실지에 대한 부르심의 말씀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무엇을 했기 때문이아닙니다.
율법은 출애굽기 이십장이후로부터 나오기 때문이에요. 계명은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너무나도 사랑하는 마음으로 지키는 것이죠. 그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겠다라는 말인 것이죠.
그래서 온 열방이 이스라엘 백성을 보고 돌아오는 것.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볼 수 잇는 것이죠.
요한1 4:12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
하나님을 본 사람은 없지만 믿는 성도들을 통해, 서로를 볼 때 하나님을 볼 수 있는 것이죠.
하나님을 안다면은요.
우리 양 옆 사람들 보시면서 당신을 볼 때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봅니다.
그런 저와 여러분 되길 소망합니다. 그런가 하면은요.
두번째로 성도는요. 세상을 이기는 사람들입니다.
요한1 5:4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함께 읽도록하겠습니다.
여기서 세상이라는 단어는 하나님을 대적하고 교회를 대적하는 부정적인 의미의 인간적 욕망을 의미합니다. 세속적인 사상과 가치가 포함됩니다. 악으로 물든 도덕적 체계와 같은 모든 것들은 성도가 싸워 이겨야할 대상인 것이죠.
우리는 공감과 이해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관용이 많이 넓어진 시대입니다. 장점이 참 많습니다. 그러나 이는 동의와는 다릅니다. 시대가 힘들기 때문에 사람들이 먹고 사느라 바빠서 주일에 못나오고, 말씀을 지키며 사는 것이 어렵고 예배에 참여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저도 이해와 공감은 합니다. 그러나 동의를 해야합니까?
저는 직업이 목회자로 갈거니까, 이런 이야기를 앞에서 쉽게 이야기 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함부로 무조건 예배지켜야해. 너 기독교인인데. 교회 사역이 중요하지 너 인생에 스펙이 중요해? 이런 말들을 함부러 못합니다.
얼마나 고민하는지 저도 옆에서 종종 지켜보기 때문이에요. 그러나 동의를 하는 순간. 그 기준이 무너지면은 끝도 없어지는 것이죠.
세상의 것들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품어주고 기다릴 수는 있어요. 이해할 수도 있어요. 모두가 연약한 인간이기 때문에요. 우리에게 세상에서 살았던 적이 없었던게 아니잖아요.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으로 덮어졌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싸워서 이겨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죠.
야고보서 4:4 “간음한 여인들아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
디모데후서 4:10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흔히 데마가 되지 말자고 이야기하는데요.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서 바울을 떠났습니다. 바울을 떠났다는 것이 바울을 그냥 떠나 다른 사역을 했따는게 아니라 세상으로 갔다는 것입니다.
세상을 이길 수 있는 사람은 택함받은 성도입니다.
요한1 5:5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시고 메시야이심을 믿는자가 아니면 즉,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면 세상을 이길자가 누구냐고 사도요한은 묻고 있습니다. 이 말은요. 예수그리스도의 능력이 아니고서는 세상을 이길 수가 없음을 이야기합니다.
예수님의 능력으로 우리가 세상을 어떻게 이깁니까?
요한복음 16: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예수님이 이미 세상을 이기셨습니다. 그 승리를 또한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으로부터 난 새로운 피조물이라면 이 승리를 누리게 됩니다.
죽음에 대한 잠재적인 공포와 두려움이 모든 인간에게는 있습니다. 그러나 사망의 권세를 깨드리신 주님의 부활은요. 어떠한 도전과 영향령 앞에도 넘어지지 않을 수 있게 하는 힘이됩니다.
예수님이 이미 세상을 이기셨다면 우리가 가져야할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믿음입니다.
요한1 5:4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믿음으로 번역된 피스티스는 어떤 것에 대하여 흔들리지 않는 확신을 가질뿐만 아니라 그 대상을 깊이 신뢰하고 의뢰하는 것을 나타냅니다.
로마서 8: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우리가 예수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을 가지고 나아갈 때에 이길 수 있는 것이죠.
찬양도 있는데요. 세상의 유혹과 시험이 내게 몰려올 때에 나의 힘으론 그것들 모두 이길 수 없네
전쟁과 폭풍가운데 위축된 나의 영혼 어찌할바를 몰라 헤메이고 있을 때
주를 찬양 손을 들고 찬양 전쟁은 나에게 속한 것아니니 주를 찬양 손을 들고 찬양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성도의 승리적 삶이 바로 확고한 믿음입니다. 우리로 할 수 없지만 주님께 손을 들고 찬양할 때, 주님 앞에 기도할 때 우리 주님이 우리를 승리케 하시는 것이죠.
그런가하면 우리는 완전한 승리의 삶을 살아가는 것은 아닙니다. 완전한 성취, 완정한 승리는 주님 다시 오실 그 날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미 왔으나 아직 오지 않은 하나님나라를 기다리며 나아가는 것처럼, 우리는 긴장을 늦추지 말고 남아 있는 전쟁과 같은 싸움속에서 승리하도록 우리는 더 나아가야 합니다.
비록 완전하지 못한 우리이지만 주님께서 우리에게 믿음을 주시고, 사랑을 부어주셔서 결국에 승리까지 우리를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세번째로 성도는요. 생명이 있는 사람입니다.
요한1 5:11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요한1 5:12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사도요한은요. 믿음의 대상인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증거하는데요. 요한이 밝히는 자기 아들에 대한 하나님의 증거로는 첫째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 영생을 주신 것이고 둘째는 그 생명이 하나님의 아들 안에 있는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예수그리스도가 물로 세례를 받고, 십자가에서 피흘리는 것을 성령님이 증거하십니다. 성령님이 세례받으실 때 나타나시고 십자가에 못박히실 때도 함께 하셨으며 그 이후에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이 사도들을 통해 전파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생명이 오늘 우리에게 까지 전해져왔습니다.
여기서 영생이라는 의미는 영원히 지속되는 생명이라기 보다는 하나님을 알고 그와 교제할 수 있는 생명, 하나님이 주시는 풍성한 것들을 누릴 수 있는 생명, 하나님 앞에서 담대히 살 수 있는 생명을 의미합니다.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영원한 생명을 얻었는데 그것은 우리가 죽지않고 영생한다는 것도 있지만 그 영생은 하나님과 함께 교제할 수 있는 하나님의 자녀가되는 하나님과 함께 살 수 있는 특권이 주어졌다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죠.
12절에 아들이 있는자에서 있는자는 모시다란 말로 번역을 할 수 있는데 마음속에 아들을 모신 자를 가리킵니다.
예수님자체가 생명이시며 예수님을 마음속에 받아드린자는 영생을 소유하게 되며 말씀에 순종하여 예수님을 닮아 살아가게 된다는 것이죠.
말씀을 맺으면서요.
저는 요즘 가장 공감이되는 말이 우리가 신앙의 경주에 서있다는 말인 것 같습니다. 이 신앙의 경주의 끝은 어디이죠? 천국입니다 예수님 다시 오실 그 날입니다.
그날은 반드시오고, 우리는 그 날을 향해 나아갑니다. 그래서 경주에 서있다는 표현이 참 잘 맞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나아가는 이 길 앞에서 바라보지 않고요. 그 목적지에서부터 반대로 우리가 서 있는자리를 바라본다면요.
상상을 해보니까 당장 우리 눈 앞에 있는 것은 굉장히 작아보이더라고요. 눈 앞에 있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 내가 이뤄야하는 것들 커보이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정말로 최종 승리는 주님 만날 그날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당장 우리는 매일을 살아가야하는 존재입니다. 신앙을 갖고 매일을 살아갑니다.
그 때에 우리는 무엇을 생각해야합니까? 우리에게 주어진 영생을 생각해야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사랑을 생각해야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믿음을 생각해야합니다.
때로는 우리가 가장 편하게 신앙생활을 하는 방법은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고, 참고 살아가는 것일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는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길에 큰 걸림돌이 됩니다. 참고, 그냥, 습관적으로 하는 신앙생활은 결국에 우리의 신앙생활을 병들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은 오직 예수그리스도와의 친밀한 교제속에 나오기 때문입니다. 사랑할 수 있는 것도, 사역을 할 수 있는 것도 오직 예수그리스도안에 있는 생명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성도는 하늘의 소망을 품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소망이 저 하늘에 있음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 세상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예수그리스도와 늘 함께함으로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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