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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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827
사도행전 8장 9~25절
따르다
우리 옆 사람과 인사합시다. “예수님은 선한 목자이십니다”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은 우리를 가장 만족하게 하는 분입니다. 오늘도 그분을 따라가는 겸손한 양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무엇을 따라 살아갑니까? 모든 사람은 무엇인가를 따라 살아간다고 이야기합니다. 어떤 사람은 끊임없이 성공을 따라 살아갑니다. 어떤 사람은 명예를 따라 살아갑니다. 어떤 사람은 돈을 따라 살아갑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은 무엇을 따라 살아갑니까? 너무 쉬운 질문인가요?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따라 살아갑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분명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따라 우리가 살아간다는 것을 아는데 정말 우리는 예수님을 따라 살아갈까요? 우리는 사도행전을 통해 교회는 어떤 곳이고, 교회가 추구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나누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명지선한목자교회가 예수님을 따라야 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내가 따르고 있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을 중심으로 우리의 신앙을 점검하고 진정으로 예수를 따르는 제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저번 시간에 본문을 통해 초대교회가 핍박으로 흩어진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고난과 박해 핍박은 우리를 통해 복음의 씨앗을 널리 퍼뜨리기 위함이라는 이야기했습니다. 우리가 당하는 어려움에 집중하지 말고 예수님을 바라보며 고난 가운데 나아가자 이야기했습니다. 초대교회에 흩어진 빌립이라는 집사가 어디를 갔다고 이야기했습니까? 그렇습니다. 사마리아입니다. 사마리아에 들어가 빌립이 복음을 전하자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그들이 복음을 잘 듣고 표적과 기사와 이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것을 아주 자세하게 지켜보는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가 누구일까요?
사도행전 8장 9절입니다. “그 성에 시몬이라 하는 사람이 전부터 있어 마술을 행하여 사마리아 백성을 놀라게 하며 자칭 큰 자라 하니”시몬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가 무엇을 행했다고 이야기합니까? 마술을 행했다고 이야기합니다. 이 마술이라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마술사가 하는 그런 마술이 아닙니다. 이것은 뭔가 신비한 기적을 일으키는 것을 이야기 합니다. 오늘날로 이야기하면 하늘에서 금가루가 내리게 한다든지, 이빨을 금으로 바꾸는 이런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그렇지 않겠지만 이런 것에 정말 속지 않기를 원합니다. 하늘에서 금가루가 내리게 하고 이빨을 금으로 만드는 것이 무엇이 그렇게 중요합니까? 놀랍게도 이런 집회가 있다면 한국교회 성도들이 인산인해를 이룬 적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날은 유튜브에서 뭔가 영적 체험이라는 주제로 돌아다닙니다. 정말 이런 것에 현혹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마태복음 28장 19~20절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예수님이 승천하시면서 예수님이 제자들이 말씀하신 것입니다. 세 가지가 나옵니다. 제자 삼고, 세례를 베풀고, 가르쳐 지키게 하라 하고 말입니다. 이것이 교회인 우리가 정말 열심히 해야 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다른 것으로 신앙생활을 채우려 해서는 안 됩니다.
사도행전 8장 10절입니다. “낮은 사람부터 높은 사람까지 다 따르며 이르되 이 사람은 크다 일컫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하더라”시몬이 얼마나 사마리아 지역에 명망이 있었는지를 알 수 있는 본문입니다. 사마리아 성에 낮은 사람부터 높은 사람까지 무엇을 했다고 이야기합니까? 다 따랐다고 이야기합니다. 여기에서 오늘 우리가 집중적으로 살펴볼 단어가 등장합니다. 바로 따랐다는 말입니다. 여기에서 따랐다는 말의 뜻은 아주 가까이서 지지한다는 말입니다. 즉 시몬은 많은 사람이 그를 절대적으로 지지 한 것입니다. 그가 이렇게 사람들에게 절대적인 지지를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사람들이 뭐라고 이야기합니까? 이 사람은 크다 하는 말과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말을 했다는 것입니다. 표면적으로 이 시몬이 행하는 신비로운 일을 하나님의 어떤 능력을 부여받은 자이니깐 하는 것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여기에서 크다고 일컬었다는 말은 사실상 많은 이단 사이비들이 하는 여타 같습니다. 바로 자신이 무슨 하나님의 대리인이다. 하는 식으로 자신은 큰 존재다 하면서 높인 것입니다. 이에 따라 사람들은 어떻게 했다고 이야기합니까?
사도행전 8장 11절입니다. “오랫동안 그 마술에 놀랐으므로 그들이 따르더니”사람들이 오랫동안 그런 신비한 일을 행하는 마술사 시몬에 대해 놀라며 따랐다고 이야기합니다. 이런 시몬의 모습에 대해서 초대 교부들은 영지주의자의 창시자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영지주의가 무엇입니까? 영지주의는 신적인 어떤 체험을 받아야만 구원받는다는 사상입니다. 그러니깐 우리가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이 사마리아 사람들은 그냥 시몬을 따른 것이 아닙니다. 이 시몬을 통해 영적인 신비로운 체험을 하면서 구원받았다는 확신하기 위해 따른 것입니다. 여러분 솔직히 이런 모습은 지금도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지금도 영적인 체험을 하지 않으면 구원받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아직도 천국에 이르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성경은 그렇게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요한복음 1장 12~13절입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마음의 문을 열면 예수님이 들어옵니다. 그 마음을 문을 여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이름을 믿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에게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가 주어진다고 이야기합니다. 그 권세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예수님의 손만 놓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나라에 이르는 권세입니다. 구원과 영생은 오직 예수님을 믿었기에 주어지는 것입니다. 신비로운 체험을 한다고 해서 구원받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우리 한번 따라 해보기를 원합니다. “나는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받았습니다. 예수님의 손을 붙잡고 천국에 이를 것입니다”이것에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 있기를 원합니다.
사도행전 8장 12절입니다. “빌립이 하나님 나라와 및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하여 전도함을 그들이 믿고 남녀가 다 세례를 받으니”사마리아 땅에서 가장 영적으로 영향력을 가졌다는 빌립에게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어떤 일입니까? 빌립이 무엇을 하는지 잘 보시기 바랍니다. 빌립은 사마리아 성에 들어와서 신비한 일을 먼저 했다는 말이 나오지 않습니다. 제일 먼저 무엇을 합니까? 하나님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해 전합니다. 즉 복음을 증거한 것입니다. 그 복음을 듣고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믿었다고 이야기합니다. 시몬의 처지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자신은 지금까지 뭔가 신비로운 일을 행해야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빌립은 너무나 평범합니다. 빌립은 하나님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대해서 전합니다. 더 이상한 것은 그것을 듣겠다고 사람들이 나오고 뿐만 아니라 그 빌립의 이야기를 믿는 것입니다. 이게 시몬의 눈에는 어떻게 비취어줬을까요? 시몬이 사람들을 모으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바로 돈입니다. 사람들에게 신비로운 것을 보여주고 자기 재산을 축적하는 것입니다. 빌립은 자신보다 쉽게 사람을 모으는 것입니다. 이 모습을 보고 빌립이 어떻게 합니까?
사도행전 8장 13절입니다. “시몬도 믿고 세례를 받은 후에 전심으로 빌립을 따라다니며 그 나타나는 표적과 큰 능력을 보고 놀라니라”여기에서 다시 한번 따랐다는 말이 나옵니다. 시몬이 왜 빌립에게 세례를 받고 빌립을 따랐을까요? 속셈이 확 보이지 않습니까? 시몬은 빌립에게서 뭔가 사람을 끌어모으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빌립을 따라다니면 뭔가 사람들을 매혹할 수 있는 능력을 습득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빌립이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기 위해서 어떤 일을 먼저 행합니까? 병든 사람들의 병을 고칩니다. 귀신에 들린 사람들의 귀신을 내쫓습니다. 예수님이 하신 일들을 그대로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빌립이 이렇게 하는 목적은 정확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정말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지금도 의료의 혜택이 잘 안 들어가는 아프리카 오지에 들어가면 진짜 병을 위해 기도하면 낫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뿐만 아니라 귀신에 들린 사람들이나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들도 인수하면 낫습니다. 이런 일을 행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이런 일을 통해서 선교사님들이 돈을 축적하기 위함입니까? 아니지요? 하나님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생각을 해보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나 예수님을 그냥 전하면 강퍅한 심령을 가진 자들이 예수를 어떻게 믿습니까? 하나님은 때로는 그런 강퍅한 심령을 깨뜨리기 위해 예수님이 행하신 일을 그대로 선교사들에게 일어나게 합니다. 근데 이런 일들은 많은 경우 의료혜택이 충분한 곳에서 잘 나타나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충분히 고치도록 의사를 두신 것도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에서 신앙의 균형이 필요합니다. 분명 하나님의 표적과 기사들이 나타납니다. 그 목적은 하나님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것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사도행전 8장 14~16절입니다.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 사마리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매 그들이 내려가서 그들을 위하여 성령 받기를 기도하니 이는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 내리신 일이 없고 오직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만 받을 뿐이더라”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 왜 사마리아에 왔을까요? 사마리아는 복음이 열리지 않는 땅이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일부만이 복음을 믿었습니다. 빌립이 복음을 전함으로 복음의 문이 활짝 열린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빌립은 더 많은 도움이 필요했습니다. 빌립이 아무리 뛰어난 집사라고 말씀에 대해서는 쉽지 않았습니다. 그런 점에서 예루살렘 교회에 요청했고, 이에 따라 베드로와 요한이 사마리아로 가게 된 것입니다. 또한 한가지 목적이 더 있었습니다. 사도들이 오기 전까지 사마리아는 성령을 받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사도들이 당도하자 아주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사도행전 8장 17절입니다. “이에 두 사도가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을 받는지라”베드로와 요한이 안수하자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성령을 받았다고 이야기합니다. 사실 이 부분이 많은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부분입니다. 많은 분이 보편적인 이야기로 생각합니다. 성경에서는 우리가 성령을 받는 것에 대해서 세례를 받으면 성령세례를 동시에 받았다고 증언합니다. 그렇다면 왜 사마리아 땅에 이런 모습으로 성령이 임재하신 것일까요? 이것을 잘 보여주는 말씀이 있습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을 보겠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하신 당부입니다. 성령이 임하면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어디까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복음이 증거된다고 이야기합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표현이 바로 예루살렘과 온 유대를 하나로 묶습니다. 이처럼 사마리아와 땅끝을 묶습니다. 초대교회를 통해 예루살렘과 온 유대에는 성령을 통해 복음이 전해집니다. 하지만 초대교회의 박해가 있기 전에 더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전해져야 하는 복음은 전해지지 않습니다. 초대교회에 박해로 빌립을 통해 사마리아에 복음이 전해집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사마리아를 시작으로 복음의 땅끝까지 전해짐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사마리아 땅에 성령세례의 사건은 그런 사실을 알리는 축포와 같은 것입니다. 이 이야기가 이렇게 아름답게 끝나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지만 이 이야기는 이렇게 끝나지 않습니다.
사도행전 8장 18~19절입니다. “시온이 사도들의 안수로 성령 받는 것을 보고 돈을 드려 이르되 이 권능을 내게도 주어 누구든지 내가 안수하는 사람은 성령을 받게 하여 주소서 하니”사도들이 사람들에게 안수하자 성령을 받는 것입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시온이 돈을 가지고 나아가 베드로와 요한에 주며 이야기합니다. “내게도 그 능력을 주어 내가 안수하면 사람들이 성령을 받게 해주세요”시몬의 의도가 보입니까? 시몬은 빌립이 전하는 복음을 전해 듣고 따르던 사람이 아닙니다. 어쩌면 빌립도 속았을지 모릅니다. 시온이 자신이 세례를 받고 빌립을 따른 이유가 정확하게 밝혀집니다. 무엇입니까? 돈을 주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 말은 성령세례를 돈으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아니 더 적난하게 이야기하면 성령세례를 돈을 사서, 자신도 성령을 부려서 더 많은 돈을 벌 생각입니다. 이것을 정확하게 베드로와 요한은 꿰뚫습니다.
사도행전 8장 20절입니다. “베드로가 이르되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살 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지어다”당연한 반응이라고 생각합니까? 사실 그럴 수도 있는 것이 아닙니까? 시몬이라는 사람이 성령에 대해서 뭘 몰라서 그러는 것이라면 베드로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시온이 그렇게 나오자 베드로는 따뜻한 말로 성령세례는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야기했다. 이렇게 나와야 합니다. 베드로는 매우 강한 어조로 저주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도행전 8장 21~23절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네 마음이 바르지 못하니 이 도에는 네가 관계도 없고 분깃 될 것도 없느니라 그러므로 너의 이 악함을 회개하고 주께 기도하라 혹 마음에 품은 것을 사하여 주시리라 내가 보니 너는 악독이 가득하며 불의에 매인 바 되었도다”이런 이야기입니다. ‘너는 지금까지 하나님 앞에서 올바르게 살아가지 않았다. 하나님을 들먹이면서 기적을 행했지만, 그것은 하나님과 상관이 없는 일이다. 네가 지금까지 그런 일로 모은 돈은 다 사라질 것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당신은 회개하고 주님께 용서를 구하라, 행여 그렇게 하면 당신을 하나님이 용서해줄지도 모른다.’우리는 여기에서 매우 중요한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사려는 시몬입니까? 베드로와 요한과 같은 예수님의 제자입니까? 이것을 알기 위해서는 진정한 따름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마태복음 4장 20절을 찾아보겠습니다. 25절까지 눈으로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읽은 본문과 같이 똑같이 반복되는 단어가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20, 22, 25절에 따른다는 말이 나옵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가 보는 본문에 따른다는 말과 다른 단어를 사용합니다. 20절을 보면 뭐라고 이야기합니까? “그들이 곧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를 따르니라”하고 이야기합니다. 여기에서 따르다는 말은 함께 같은 길을 가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니깐 어떤 사람이 그 일을 하는 것에 환호만 하는 것이 아닌 함께 그 길을 가는 것을 말하는 단어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예수님이 가시는 길을 보면서 참 예수님 대단하시다. 이야기하면서 예수님은 참 좋으신 분이야. 예수님은 능력 있는 분이야 하고 감탄하는 것을 신앙으로 생각하지는 않습니까? 그것은 엄밀하게 이야기하면 그것은 신앙이 아닌 지식입니다. 우리가 정말 그리스도를 향한 바른 신앙이 있다면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걷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걷는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삶의 목적이 바뀌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 제자들의 삶의 목적은 저마다 달랐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제자들은 하나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에도 나오는 하나님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 우리는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 가운데 이런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이런 것은 목사님들이나 하는 것이 아니야? 하고 말입니다.
성경은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을 제자라고 이야기합니다. 제자들은 스승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가신 길이 하나님의 나라와 복음을 증거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아무리 어떤 직업을 가지고 있든 우리는 그 일을 하는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만약 여러분의 직장이라면 직장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가 전해져야 합니다. 만약 학생이라면 학업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가 전해져야 합니다. 저와 같이 말씀을 전하는 자라면 말씀을 전하는 일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가 전해져야 합니다. 이것이 진정 예수님을 따르는 삶입니다. 그렇다면 질문은 이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를 전해야 하는 일을 어떻게 온전히 수행할까요?
마태복음 28장 20절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예수님은 제자 되고자 하는 우리에게 사명을 주시고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고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어떤 일을 하든 하나님의 나라와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일을 어떻게 온전히 수행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지금 예배드리는 이 자리에도 함께하시는 예수님, 내가 고통과 눈물 가운데 있는 그 자리에 함께하시는 예수님, 도저히 풀 수 없는 삶의 문제 가운데 함께 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우리가 함께하시는 예수님만 바라본다면 우리는 넉넉히 예수님을 온전히 따르는 삶으로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이 사실을 잊지 않기를 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