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사랑 설명서
Notes
Transcript
요약
요약
36page.
“공동체를 가로막는 장애물”
감각주의
많은 그리스도인이 강한 자극에 중독돼 버렸다. 우리는 대규모 집회, 다른 교회의 목사, 최신 논쟁거리에 흥분한다. 자극을 좇는 이들은 단순히 교회에 소속되어 활동하는 삶으로는 만족하지 못한다.
교회에서 어르신을 돌보는 일, 다루기 힘든 성도를 회복시키는 일, 싱글 맘을 돕는 일, 아이들을 돌보는 일은 대개 감각주의자들을 자극하지 못한다. 이런 일들은 많은 사람의 눈에 감각적이지 않지만, 우리가 살아내기만 한다면 세상을 뒤집을 수 있는 일이다(교회 내부에 있는 fan을 뒤집어야 하는지, 교회 밖 전도해야 할 세상을 뒤집어야 하는지 바르게 분별해야 한다). 더 크고 훌륭하며 새로운 자극을 끊임없이 찾아다니다 보면 결국 탈진한다. 기독교의 기본을 온전히 살아 내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회복해야 한다.
3. 이상주의
디트리히 본회퍼는 “성도의 공동생활”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공동체에 대한 꿈을 공동체 자체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은, 그의 개인적인 의도가 너무나 정직하고 성실하며 희생적일지라도, 공동체를 파괴하는 사람이 된다.”
이상주의자들이 “교회가 1세기 때의 모습으로 돌아가면 좋겠어요. 그들은 모든 것을 통용했잖아요.”라고 말할 때 저자는 혼자 웃곤 했다고 한다.
신약성경에 나오는 편지들은 계속 교회 안의 문제를 다룬다.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일곱 통의 편지만 보아도 일곱 교회 중 다섯 교회를 향해 질책하고 있다. 1세기 교회가 오늘날 교회의 모범이 되는 건 맞지만, 흠이 없지는 않다. 그러니 허황된 꿈은 버려야 한다. 그리고 교회 비평가처럼 굴지 말고, 교회 안에서 은혜의 증거를 찾아보아야 한다.
4. 개인주의
“내가 네게 쓸 것이 많으나 먹과 붓으로 쓰기를 원하지 아니하고 속히 보기를 바라노니 또한 우리가 대면하여 말하리라” (요삼 1:13, 14).
요한은 먹과 붓(우리에게는 컴퓨터, 문자, 영상)에는 한계가 있다고 말한다. 친밀한 관계를 위한다면, 이메일과 문자, 전화는 변변찮은 대체물이다. 대면하여 소통하지 않으면 확실히 무언가 허전하다.
형제자매와 공동체를 이루는 것은 특권이다. 당신이 외향적이건 내향적이건, 활발하건 수줍음이 많건 전혀 상관없다. 그것은 그리스도인이 되는 핵심이다. 본회퍼는 이를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이 세상에서 성도들이 눈에 보이게 모여서 하나님의 말씀과 성찬을 나누도록 허락되다니, 하나님의 은혜다. 그리스도인이라고 누구나 이런 복을 누리진 앟는다.
감옥에 갇힌 자, 병든 자, 외로이 흩어진 자, 이방 땅에서 복음을 전파하는 자는 홀로 서 있다. 그들은 눈에 보이는 교제가 복임을 안다. … 다른 그리스도인의 물리적인 존재 자체가 신자에게는 견줄 수 없는 기쁨과 힘의 원천이 된다. … 감옥에 갇힌 자, 병든 자, 추방된 그리스도인은 동료 그리스도인과의 동행에서 삼위일체 하나님의 은혜로운 임재의 물리적인 표지를 본다. … 우리가 그리스도인 형제들과 더불어 공동체로 살아가도록 허락된 것은 은혜다. 오직 은혜다.”
우리에겐 서로가 필요하다.
45page.
2. 환대: 은혜 중심의 환대
“교회가 성장해 교인들이 많아지길 원하십니까?”
“성장의 75퍼센트가 백인이 아닌 사람들에게서 온다면 어떻겠습니까?”
그 순간 매우 어색한 장면이 펼쳐졌다. 몇몇은 환호했지만, 누군가는 밖으로 나가기까지 하고, 고함을 지르는 사람도 있었다.
저자의 사명은 자신의 교회가 수적으로 성장하는 것뿐만 아니라 동네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하게 하는 것이기에(동산교회는 이 비전을 잘 실천하는 것 같다. 한국인들만 모여야 된다는 고정관념을 버리고, 지역에 있는 우크라이나 난민들, 러시아인들, 서양인들 등 많은 외국인들이 예배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주기 위해 부단히 애쓴다), 교인들을 더욱 밀어붙였다고 한다.
그리고 또 질문을 던졌다고 한다.
“여러분은 우리가 정말 교회로서 성장하기를 원하십니까? 아니면 그냥 우리와 생김새가 같고 관심사와 견해, 계층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더 늘어나기를 원하십니까?”
이렇게 간단히 질문할 수도 있겠다.
“당신은 진심으로 당신의 교회가 환대하는 교회가 되기를 원하십니까?”
우리에게는 예수님의 환대를 받고 그분의 가족이 될 권리가 없었다. 하지만 예수님은 우리를 은혜로, 기쁘게, 온전히 받아 주셨다.
이제 교회에 속한 우리는 복음을 중심에 둔 공동체, 신자들을 환대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실 때, 그분의 형상을 따라 만드셨다. 그래서 모든 사람은 어떤 인종, 어떤 출신이건 똑같이 가치 있고 존엄하며 존귀하다. 하지만 타락이 있었고, 우리는 죄로 인해 하나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도 멀어졌다. 지금은 인종과 계층, 세대, 부족 간에 분열과 적대감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나님과, 다른 사람과 화목하게 되었다. 이런 하나됨이 복음의 능력을 증명한다. 예수님은 막힌 담을 허무신다. 우리는 교회 안에서 그 증거를 볼 수 있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