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30 viewsNotes
Transcript
도입: 난처한 명령
도입: 난처한 명령
성경의 명령을 가능하면(?) 순종하려 하지만 생각해 보았을 때 난처한 경우가 있다. 우리의 감정과 관련된 경우다.
16 항상 기뻐하라
짧지만 단호하지 않은가? 그런데 어떻게 감정에 관한 명령에 순종할 수 있을 것인가? 너희가 기쁘거든 충분히 기쁨을 표현하라는 것도 아니고, 기뻐할 일이 있으면 기뻐하라는 말도 아니고 “항상” 기뻐해야 하기 때문에 문제다. 그런데 특별히 옥중에서 기쁨의 비결을 이야기하고 있는 빌립보서의 사도 바울 말씀을 통해 그 열쇠가 어디있는지 알 수 있다. 한 번 잘 살펴보자.
기쁨의 방법: 슬프거나 괴롭지 않으면 된다.
기쁨의 방법: 슬프거나 괴롭지 않으면 된다.
지난 주 하고 말씀이 살짝 겹쳐있다. 어떤 말씀이었는지 기억나는가? 바로 유오디아와 순두게의 이야기였다. 여기에 “항상” 기뻐할 수 있는 방법의 열쇠가 하나 있다. 가장 괴롭고 힘든 문제는 뭐니 뭐니해도 인간 관계의 문제이다. 다투고 나누어지면 기쁠 수가 없다. 다른 조건이 다 충분해도 사람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어찌 편안하고 기쁠 수 있겠는가?
사람의 문제가 있을 때, 그 문제를 상황이나, 다른 사람에게 가지고 가지 말고 “주님께” 가지고 가서 “주 안에서” 풀어야 한다는 것이 중요한 지점이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우리가 염려하고 좌절하고, 때로 깊은 화나 “한”까지 생기는 이유는 사람에게 생긴 문제를 사람으로, 나 자신이 해결하려고 해서인데. 너무 분명히 “주 안에서”라고 말한다. 주님을 통하여, 나아가서는 주님께서 해결하시도록 넘겨드려야 한다는 말이다.
구체적인 실례: 유오디아와 순두게 교회의 다툼에 관한 문제에서 3절에 보니까, 다같이 생명책에 그 이름이 들어가 있는 사람이고, 또 함께 주의 일을 하는 사람임을 기억하라는 말씀이 있었다. 이것이 “주 안에서”의 한 가지 측면이다.
같은 일을 하고 있음을 잊지말고, 또한 주께서 이루어 가실 그 사람을 보라는 이야기다. 또한 주님께서 임하셨던 그 사람을 기억하라는 말씀이다(현재만이 아니라 과거, 미래).
주님께서 곁에 계시다
주님께서 곁에 계시다
우리가 “항상” 기뻐할 수 있는 비결이 있다. 그것은 주님이 우리와 함께 계심을 아는 것이다. 주님 내 안에 내 안에 주님이 계시다.
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곁에 계시다. 함께 계시다.
큰 위로와 함이 된다. 걱정하지 마라.
함부로 하면 안된다 : 유머- 수험생 교실에 “엄마가 보고 있다. ”
흔히 말하는 코람 데오의 정신과 비슷하다.
주 안에 있을 때 우리는 “넉넉함”을 가지게 된다. 곳간에서 인심나는 것 거의 맞다. 하늘 창고에 무엇을 쌓아두고 있는가? 무엇이 이미 가득 차있는지 아는가? 그리고 떨어지지 않도록 채워주시는 주님이 계심을 아는가?
그러면 우리는 어떤 상황과 사람에게도 넉넉할 수 있다.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 주님께서 보고 계시는데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하라 - 다른 사람에게 화내고 패버리겠나? 그건 주님이 안 보고 계시다는 착각 때문이지...
염려는 불신이다.
염려는 불신이다.
사람을 예수님의 눈으로 바라보기만 해도, 많은 괴로움과 슬픔의 요소들이 사라진다.
그리고 매우 구체적인 이야기를 하신다.
상황에 대한 말씀인데,
항상 기뻐할 수 있는 비결은 모든 일을 어떻게 대하는가에 달려있다.
기도와 간구로 - 주님과 함께.
불안해 하지 말고 감사함으로.
요나의 기도. -
9 나는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제사를 드리며 나의 서원을 주께 갚겠나이다 구원은 여호와께 속하였나이다 하니라
10 여호와께서 그 물고기에게 말씀하시매 요나를 육지에 토하니라
이제 건져 주셔서 바다에서 살아 나옴을 감사하는게 아니라, 감사가 먼저고 뭍에 나오게 된 것이 그 다음이다. 그런데 우리는 마치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처럼, 조금만 내 생각과 느낌, 계획대되지 않으면 기다렸다는듯이 불평한다. 소심한 성격은 마음 속으로!
왜 기뻐하지 못하나? 내 머리와 가슴으로 품으려 하기 때문에
왜 기뻐하지 못하나? 내 머리와 가슴으로 품으려 하기 때문에
7절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 모든 생각을 넘어서는 하나님의 평강이라고 보아도 좋다. 그게 더 맞다.
과거 내가 안절부절 못하고, 괴롭고 그래서 남들에게 까지 그 화살을 쏘았을 때, 왜? 내 머리로는 이래서는 안되기 때문에···.
그러나 하나님의 평강은 다르다. 주님의 평안함은 모는 상황과 경우를 뛰어넘는다. 억울함 가운데에도, 더욱 충만함과 사랑을 보여주시고, 고난 가운데도 예수님의 법칙 대로 (찬송시) 더 큰 영광을 허락해 주신다.
마음을 지켜 주신다 - 사실 가만히 보면 이성적인 상황보다도 마음에 달린 문제들이 많다. 상황이 기분 나쁘고 사람이 기분 나쁜 것. 평안함이 없고 기쁨이 없을 때. 그래서 가만히 객관적으로 따져 보는 것이 나을 때가 적지 않다.
생각을 지켜주신다 - 그런데 사실 우리는 너무 연약하여서, 아무리 합리적으로 따져보아도 진정이 되는게 아니라, 합리적으로 따져보면 마음이 편안한게 말이 안되는 상황이 있다. 하지만 주님의 역사는 그것을 뛰어넘는다.
어떤 상황에도 주님 품을 벗어나지 말고, 어떤 경우에도 주님을 내 가슴 한가운데 중심에 모셔라.
어떤 상황에도 주님 품을 벗어나지 말고, 어떤 경우에도 주님을 내 가슴 한가운데 중심에 모셔라.
8 끝으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 받을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 받을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무엇에든지가 반복된다. 어떤 경우라도 이것만큼은 주님과 상관없이가 되지 말라는 말씀. 주님을 속이거나 그분의 눈길을 피할 수 있는 경우가 있으리라 생각하지 말라는 말씀이다.
모범을 보고, 모범이 되어라.
모범을 보고, 모범이 되어라.
우리의 삶에 대해서, 느낌대로 되는대로 하지 말고...
뭐라 하시는지 늘 점검하라.
내게 배우고 - 말씀이지 무엇이겠나? 창조 때부터 마지막 날까지의 계획 사람들이 많이 몰려 가는 것이나, 다수결로 정해서는 결코 알 수 없다. 설명서 되는, 지침이 되는 말씀을 놓치지 마라
받고 듣고 본 바 - 범죄자 끼리 모여서 있으면··· 그러니까 교도소의 문제점이 서로 기술(?)을 배우고, 모의하고 작당해서 더 큰 범죄를 저지르게 되고, 서로 가까운 사람들이 하는 일, 하는 짓을 배우게 된다.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사도 바울은 자기 안에, 자기 삶에 역사하님 하나님을 소개하고 있다.
1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
실제로 말씀대로 살아볼 때 우리는 알게 된다.
아무리 생각해도 계산이 나오지 않으리라. 그냥 사람들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나를 보면 기쁨을 잊어버리기 쉽다. 그러나 주님과 더불어 동행하면 그 안에 있으면 누릴 수 있는 천국의 기쁨이 있음을 놓치지 말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