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의 수준의 신앙 (빌립보서2:2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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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900 --
제목: 군사의 수준의 신앙
본문: 빌립보서2:25-30
찬송: 546장 주님 약속하신 말씀 위에서
25 그러나 에바브로디도를 너희에게 보내는 것이 필요한 줄로 생각하노니 그는 나의 형제요 함께 수고하고 함께 군사 된 자요 너희 사자로 내가 쓸 것을 돕는 자라
26 그가 너희 무리를 간절히 사모하고 자기가 병든 것을 너희가 들은 줄을 알고 심히 근심한지라
27 그가 병들어 죽게 되었으나 하나님이 그를 긍휼히 여기셨고 그뿐 아니라 또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내 근심 위에 근심을 면하게 하셨느니라
28 그러므로 내가 더욱 급히 그를 보낸 것은 너희로 그를 다시 보고 기뻐하게 하며 내 근심도 덜려 함이니라
29 이러므로 너희가 주 안에서 모든 기쁨으로 그를 영접하고 또 이와 같은 자들을 존귀히 여기라
30 그가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여 죽기에 이르러도 자기 목숨을 돌보지 아니한 것은 나를 섬기는 너희의 일에 부족함을 채우려 함이니라
1. 도입
앞서 새벽시간 빌립보서 2장 19절에서 24절을 통해서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동역자 ‘디모데’에 관해 말씀을 나누었었습니다.
디모데는 바울의 2차 전도여행부터 동행하게 되었는데 사도바울에게 인정받는 동역자로 성장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를 향해 동역자, 형제, 함께하는 종, 신실한 자녀, 믿음 안에서 진정한 아들 디모데로 인정합니다.디모데가 사도 바울에게 인정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주님과 뜻을 같이 하는 진실한 마음’이 그에게 있었끼 때문입니다. 자신의 성향과 자신의 뜻을 넘어서 주님과 뜻을 같이 했습니다. 또 다른 이유는 자기 일을 넘어 예수님의 일에 관심을 두는 자였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 일에만 몰두하며 살아가는데 디모데는 주님의 필요와 주님의 일에 마음을 쏟았습니다.
사도바울은 이런 디모데의 섬김을 “자식이 아버지에게 함같이 나와 함께 복음을 위해 수고했다”라고 표현합니다.사도 바울에게 인정받고 성경에 기록된 것은 하나님께도 인정받은 동역자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주님의 일에 뜻을 같이하고, 우리를 넘어 주의 일을 바라볼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 길 소망합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빌립보서에서 사도바울이 언급하고 있는 또 다른 인물 ‘에바브로디도’가 나옵니다. 사도바울은 빌립보 교회에 디모데를 보내면서 에바브로디도를 보내느 것에 필요성을 느끼며 빌립보서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앞서 디모데를 빌립보 교회에 소개할 때는 2장 20절에 “너희 사정을 진실히 생각할 자”, 22절에 “나와 함께 복음을 위하여 수고한 자”라고 표현합니다. 그런데 ‘에바브로디도’를 표현할 때에는 25절 중반에 “수고하고 함께 군사된 자요”라고 소개합니다.
여기서 ‘군사’라는 표현은 원어의 의미에서 전사, 군인 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에바브로디로를 생각할 때에 그리스도의 일에 군사의 수준의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신앙의 수준을 이야기할 때 어린아이의 신앙, , 청년의 신앙, 장년의 신앙이라 신앙의 수준을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에바브로디도는 장년의 신앙을 넘어 군사 사도 바울과 함께 하는 ‘군사’의 수준으로 인정받습니다.
어떻게 그의 신앙과 삶은 군사로서 여겨질 정도의 신앙은 표현되어질 수 있을까요?
사도 바울이 그의 삶에서 어떤 부분을 보고 그를 이와 같은 군사의 신앙의 수준으로인정할 수 있었을까요? 본문의 말씀을 중심으로 3가지로 살펴보겠습니다.
2. 본론
첫 번째 어떤 신앙이 군사의 수준의 신앙일까요?
에바브로의 신앙은 삶의 모든 이유를 넘어 사도 바울의 사역의 함께 동참하는 신앙이었습니다.
25절에서 26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25 그러나 에바브로디도를 너희에게 보내는 것이 필요한 줄로 생각하노니 그는 나의 형제요 함께 수고하고 함께 군사 된 자요 너희 사자로 내가 쓸 것을 돕는 자라
26 그가 너희 무리를 간절히 사모하고 자기가 병든 것을 너희가 들은 줄을 알고 심히 근심한지라
27 그가 병들어 죽게 되었으나 하나님이 그를 긍휼히 여기셨고 그뿐 아니라 또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내 근심 위에 근심을 면하게 하셨느니라
아멘.
25절 말씀을 보시면 에바브로에 대해 “그는 나의 형제요”라고 하면서 ‘함께’ 수고하고, ‘함께’ 군사 된 자요. 너희 사자로 내 쓸 것을 돕는 자라라고 표현합니다.
‘함께’라는 단어가 반복해서 나오는데요.여러분 함께하는 것이 쉬운 일일까요?
상황에 따라 다릅니다.
첫째 아이가 키즈카페에 가면 처음보는 아이들과도 금방 친해지고 함께 잘 노는 것을 종종 보게 됩니다. 그런데 얼마 전 군산시에서 하는 문화센터에서 ‘전통놀이’라는 것을 체험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아내가 신청해서 데려다 놓았는데 함께 어울리지도 못하고,우무커니 의자에 앉아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면 아내가 하는 말이 키즈카페나 놀이터에서는 처음 보는 아이와도 친근감있게 지내며 잘 어울리는데, 왜 전통놀이 체험활동에 가서는 어울리거나 참여하지 못할까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아이가 함께하기 쉬운 장소와 성향의 사람이 있고, 또 함께 하기 어려운 장소와 환경,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 어른은 다를까요? 어른도 마찬가지입니다.
바울과 바나바의 1차 전도 여행 때 동행한 ‘마가’라고하는 ‘요한’ 이 있었습니다. 그는 바울과 함께 전도여행을 가다가 ‘소아시아’로 들어가려 할 때에 마가는 그들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 이유를 한 주석에는 이렇게 추측합니다.
1) 리더립 변화에 대한 적응 실패일 것이다.
(원래 지도자 바나바는 사촌이었는데 바울로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2) 이방인에 대한 새로운 강조가 유대인 마가에게는 너무 적응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3) 바울이 안디옥으로 가기로 결심했던 길이 위험한 길로 여겨졌을 것이다.
4) 바울이 버가에서 말라리아로 인해 상당히 아팠다는 증거가 있는데, 당시 버가는 말라리로 감염된 도시였을 수 있다. 선교여행이 말라리아를 피하기 위해 내륙 고지대로 갔는데 마가는 이에 낙담하고 돌아갔을 것이다.
5) 마가의 향수병 때문일 것이다.
함께 전도여행을 하다가 함께 하기 어려운 장소와 환경, 사람이 나타나니, 어려운 이유들이 생기니 함께 하는 것을 마가는 포기했습니다.
이에 사도 바울은 사도행전 15장 36절에서 37절에서 바나바에게 ‘우리가 주의 말씀을 전한 각 성으로 다시 가서 형제들이 어떠한가 방문하자“라고 말하고, 바나바가 ’마가‘도 데리고 가자라고 말할 때 거절합니다.
그런데 에바브로디도는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모든 이유를 넘어서서 ‘함께’할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우리의 삶에 이유들을 찾으려면 얼마나 많이 있을까요? 그런데 에바브로디도는 그 모든 이유를 넘어서서 ‘함께’하는 사람이었습니다.
26절에서 27절 말씀을 다시 보시면,
26 그가 너희 무리를 간절히 사모하고 자기가 병든 것을 너희가 들은 줄을 알고 심히 근심한지라
27 그가 병들어 죽게 되었으나 하나님이 그를 긍휼히 여기셨고 그뿐 아니라 또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내 근심 위에 근심을 면하게 하셨느니라
26절 “자기가 병든 것을 알고”
27절 “그가 병들어 죽게 되었으나”
에바브로디도는 자신이 병든 것을 알고, 또 그 병이 죽게 된 것을 알고도 함께하는 자였음을 사도 바울은 기록합니다. 우리의 신앙이 ‘그리스도의 군사“의 신앙으로 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의 인생에서 생겨나는 모든 이유들을 뒤로하고 주님의 일에 함께 할 수 있는 자입니다.
우리의 인생의 이유들을 뒤로하고 주의 일에 “함께”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소망합니다.
두 번째 어떤 신앙이 군사의 수준의 신앙일까요?
에바브로디도의 신앙은 죽음 앞에서도 교회와 주님의 일을 생각하는 신앙이었습니다.
26절~27절을 보시겠습니다.
26 그가 너희 무리를 간절히 사모하고 자기가 병든 것을 너희가 들은 줄을 알고 심히 근심한지라
27 그가 병들어 죽게 되었으나 하나님이 그를 긍휼히 여기셨고 그뿐 아니라 또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내 근심 위에 근심을 면하게 하셨느니라
26절을 보시면 “그가 너희 무리를 간절히 사모하고 자기가 병든 것을 너희가 들은 줄 알고 심히 근심”하였다라고 기록합니다.
여기서 ‘무리’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빌립보 교인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여러분 교회의 사전적인 의미를 살펴보면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고백하는 성도들의 모임”을 의미합니다. ‘성도들의 모임’이 교회입니다. 그래서 26절에 “너희 무리”는 빌립교 교인들을 넘어 빌립보 교회를 가리켜 하는 말입니다.
에바브로디도가 자기가 병든 것을 빌립보 교회가 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마음에 근심합니다.
에바브로디도에게 빌립보 교회를 향한 진실한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을 사랑하기에 빌립보 교회가 자신으로 인해 걱정과 염려 가운데 있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간혹 부모님들이 병원에 입원하시거나 어떤 사고로 인해 어려움이 있는 것을 자녀들에게 숨기시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왜입니까? 자녀들을 사랑하기에 자신으로 인해 자녀들이 걱정과 염려 가운데 있지 않고,그 삶을 흔들림 없이 살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입니다.자녀들을 위하고 진실히 생각하는 마음입니다.
에바브로디도에게 교회를 이와 같이 생각하는 마음이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는 죽음 앞에 질병으로 고통받으면서도 교회를 위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남을 생각할 수 없는 죽음 앞에서도 군사 된 에바브로디도는 교회를 생각합니다. 27절 하반절에 하나님은 이런 에바브로디도의 건강을 회복해 주십니다.
이것은 에바브로디도의 군사된 신앙의 수준입니다.
그리고 에바브로디도의교회를 향한 마음입니다.
그러면 빌리보 교회에서 입장에서는 에바브로디오의 상황과 신변에 대해서 알아야 되나요? 몰라야 될까요? 알아야 됩니다. 그들이 바울이 감옥의 갇혔을 때 바울을 돕기 위해 파송한 신실한 성도였기 때문입니다. 알아야 기도하고 알아야 도울 수 있습니다.
에바브로디도와 같은 교회를 향한 진실한 마음을 가지시되 입원하시거나 기도의 제목이 있으실 때에 교회로 알려주셔서 함께 기도할 수 있는 믿음의 공동체가 되시길 권면드립니다.
3. 결론
그리스도인의 ‘군사’된 신앙의 수준은 인생의 모든 이유, 죽음의 이유까지도 넘어서서 주의 일을 생각합니다.사도 바울은 30절에서 그를 이렇게 표현합니다.
30 그가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여 죽기에 이르러도 자기 목숨을 돌보지 아니한 것은 나를 섬기는 너희의 일에 부족함을 채우려 함이니라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여 죽기에 이르러서도 자기 목숨을 돌보지 아니하였다”라고 표현합니다. 우리가 그렇게 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모든 이유를 넘어서서 주의 일을 생각하기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넘어설 수 있는 작은 이유들을 넘어섬으로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로서의 신앙으로 나아가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