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830 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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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 433 귀하신 주여 날 붙드사
본문 빌 2:3
자비하신 아버지 하나님, 날마다 성실하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를 드립니다. 늘 우리의 연약함에도 오래 참아주시고 한없는 자비와 사랑을 부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받은 은혜를 생각하며 늘 하나님 앞에 겸손케 하시고, 그 사랑으로 가정을 세우고 공동체를 세우며 교회를 세우는 이 자리 모든 주의 백성들 되도록 은혜 베풀어 주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빌 2:5-11 까지의 말씀은 우리에게 참 익숙한 본문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찬미가 라고 불리우는 곳이기도 하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보이신 겸손을 찬양하며, 모든 성도들이 이를 마땅히 닮아가야 함을 강조한다. 본문에서 말씀하시는 ‘겸손’ 이라는 주제는 참으로 명확하다. 그리고 사도바울은 빌2:5 를 통해서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라고 권면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 단지 그리스도께서 나타내 보이셨던 겸손의 본을 따라서 나 자신을 낮추기만 하면 되는 것일까? 이에 대하여 사도바울은 오늘 본문의 말씀 3절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겸손의 본을 따라 행해야 한다는 사실을 보다 명확하게 보강 설명하고 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의 말씀을 다시한번 읽어보자.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주님께서는 우리 안에 품기 쉬운 두 가지 마음을 버리라고 말씀하신다. 그것이 무엇인가? '다툼'과 '허영'이다. 오늘 이 새벽의 시간에 우리가 버려야 할 이 두 가지 마음에 대해 말씀을 전하려 한다. 많은 은혜와 도전의 시간 되시기를 바란다.
먼저 다툼에 대해 생각해보자. 우리가 읽은 성경에 '다툼'이라고 하는데, 흔히 다툼을 생각하면 서로 분쟁하거나 싸우는 일들을 쉽게 연상하게 된다. 그런데 다툼이라고 번역된 'ἐριθεία(에리데이아)' 라는 단어는 이러한 싸움을 의미하지 않는다. 아마도 한글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그에 적절한 단어를 찾기가 쉽지 않았을 것으로 추측된다만, 본래 이 단어의 사전적인 의미는 '대가를 얻기 위해 일하다' 라는 의미인데, 신약 성경 안에서는 '이기적인 야망을 품은 생각'을 의미하는 단어로 사용된다. 뭔가를 내가 얻고자 하여 일한다는 것이다.
야심, 야망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국어 사전에서는 이 단어를 이렇게 번역한다. '무엇을 이루어 보겠다고 마음 속에 품는 욕망', 혹은 '순하게 길이 들어있지 않고 걸핏하면 해치려는 마음' 또는 '야비한 마음'등등. 대충 살펴보아도 전혀 긍정적인 의미가 아님을 볼 수 있다. 내 야망을 충족하기 위해서 남들을 경쟁자로 여기고 어떻게 해서든지 그들을 밟아서 나 홀로 정상에 오르고자 하는 마음, 그것이 '다툼' 이라고 번역된 헬라어 원어의 의미이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는 이러한 '야망'의 마음을 버려야 한다. 이 마음이 여전히 우리 마음에 있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닮을 수 없다. 그리스도께서 보이신대로 나보다 남을 더 낫게 여기고, 내가 섬김을 받는게 아니라 도리어 그들을 섬겨주어야 할 자로 부르심을 받은 성도가 오히려 다른 성도들을 짓밟으려 하고, 깔아 뭉개려하고, 그들을 경쟁자로 여기어 그들보다 나의 의를 드러내려 하고, 우리의 형제들의 허물을 덮어주어야 할 우리가 그들의 잘못을 들추어내며, 그들의 연약함을 감싸주어야 할 우리가 오히려 그들을 정죄하여 처참히 쓰러지게 만들고, 죽기까지 보여주신 그 사랑으로 서로를 사랑해야 할 우리가 오히려 분쟁을 만들고 화평을 깨뜨리는 모습으로 살아간다면, 이것은 결코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 아닐 뿐더러, 그 마음 가지고서는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갈 수도 없다. 그러므로 '다툼과 경쟁'의 마음, 야망의 그 마음을 여러분들 가운데 지속적으로 몰아내시길 바란다.
이어서 두번째로, 우리는 무슨 마음을 버려야 하는가? '허영'의 마음이다. 한글성경에서는 ‘허영' 이라고 번역된 헬라어 'κενοδοξία(케노독시아)'는 '오류'라는 단어와 '생각하다' 라는 단어의 합성어로서, 잘못된 생각, 잘못된 견해 라는 의미이며 여기서 더 나아가 ' 헛된 영광'이라는 의미까지 발전하게 된다. 이 단어가 다른 성경번역본에서는 '우상 숭배의 허무함'을 가리킬 때 사용되기도 했다. 우리 말의 '허영'이라는 단어는 대부분 물질적인 사치와 의미가 연결되는데, 본문의 헬라어의 본래의 의미는, 아무 의미없는 헛된 것들을 추구하는 것, 헛된 자존심 등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본문에 번역된 허영심, 케노독시아에 빠진 사람은 어떻게 되는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의 영광을 구함으로 자만심에 빠지고 망상에 사로 잡히게 된다. 나의 의를 내세우고, 나의 이름을 높이며, 나의 인지도를 높이고자 하는 등, 모든 섬김과 헌신의 그 중심에 하나님이 아니라 나를 내세운다. 말로는 하나님을 위해서, 그분의 영광과 그분의 나라를 위하여 한다고 하지만, 실상 그 중심에는 나 자신이 서있는 것이다.
성도 여러분, 이것은 우리 중 누구라도 쉽게 빠질 수 있는 유혹이기도 하다. 내가 주를 위해 열심히 섬겼고, 주를 위해 열심히 봉사했는데 어느 순간 돌아보니 예수는 안보이고 나만 보이는 경우들이 있더라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헛된 영광을 추구하는 마음'을 매순간마다 버려야 한다. 이 마음이 여전히 우리 마음에 있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닮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삶을 통해 오직 하나님만 드러내셨던 것처럼, 성령께서 자신을 감추시고 오직 성부와 성자를 드러내시는 것처럼, 우리도 헛된 영광을 추구하는 허영심을 우리 안으로부터 몰아내야만 한다. 오직 모든 영광의 근원이신 하나님만이 존귀와 경배와 찬양을 받으시도록 말이다.
우리의 눈 앞에 거대한 수조가 있다고 가정해 보자. 이 안에 물고기가 살기좋은 1급수의 물을 가득채워 담는다. 이제 물고기만 담으면 이 안에서 정말 건강하게 자랄 것 같다. 그런데 누군가 이 수조의 물에 독극물을 한 방울 떨어뜨렸다. 이 안에 물고기를 넣을 수 있는가? 그럴 수 없다. 우리의 눈으로 보기에는 똑같아 보이는 투명한 물이지만 분명 이 물은 생명이 살 수 없는 물이다. 그러므로 이 수조를 다시 사용하기 위해서는 기존에 담겼던 물들을 남김없이 빼내어야만 한다. 기존의 오염된 물과 또 다른 1급수물을 섞어서 사용할 수 없다. 남김없이 제거해야만 한다.
우리가 이와 같다. 우리의 마음이 마치 이 수조와도 같아서, 기존의 죄로 인하여 오염되었던 '다툼과 경쟁의 마음'과 '헛된 영광을 추구하는 마음'을 내가 여전히 품고 있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우리 안에 채워넣을 수 없다. 아무리 주님의 성품을 내 안에 담아내려 한다 할지라도, 아무리 주님의 거룩한 성품을 내 안에 붓는다 할지라도, 내 안에 남아있는 더러운 마음들 곧 다툼과 경쟁의 마음, 헛된 영광을 추구하는 마음을 제거하지 않는다면 주님의 성품을 닮아갈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사도는 무슨 일에든지 이러한 마음으로 하지 말라고 말한다. 더 나아가 이러한 마음을 우리 안에서 제거하라고 말한다. 이것 외에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여러분, 우리의 모습들을 한번 돌아보자. 과연 나는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궁극적인 목표를 가지고 매순간마다 살아가고 있는가? 혹시 하나님의 영광이 아닌 나의 영광, 그 허망하고도 헛된 영광을 추구하며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가? 그 헛된 것들을 추구하며 우리의 형제들을 사랑치 못하고 경쟁하고 깎아내리며, 밟고 일어서려 하지는 않는가? 우리의 신앙이 이처럼 겸손치 못하여 남보다 나를 낫게 여기고 있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닮아갈 수도, 품을 수도 없음을 기억하자.
이 새벽의 시간, 이 말씀을 붙들고 함께 기도하자. 주님, 우리 안에 이처럼 부정하고 부패한 마음들을 제거하여 주옵소서. 내 죄성을 불쌍하게 여겨주시고, 나도 모르게 내 안에 자리잡는 교만한 마음들, 다툼과 경쟁의 마음들, 헛된 것들을 추구하는 마음들을 물리쳐 주옵소서. 오직 주님께서 본을 보이신 겸손한 마음으로 서로를 섬기며, 그리스도의 마음을 닮아가는 우리가 될 수 있기를, 우리 양문교회가 될 수 있도록 은혜 베풀어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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