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배고플 때 순종하심(마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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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do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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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 :
대표기도 : 우리를 예배자로 부르신 하나님 아버지, 온전히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옵소서. 이 시간 드리는 예배를 통해 천국의 비밀을 맛보게 하시며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죄를 깨닫게 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사랑하는 마음으로 주시는 말씀에 자복과 회개로 반응하게 하시고, 주께서 기뻐하실만한 거룩한 그릇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필요를 아시고 문제를 해결하실 능력의 하나님, 우리 각자의 삶에서 겪는 갖가지 질병들과 아픔, 고난과 슬픔들을 헤아려주시고, 하나님의 크신 능력으로 이끄사, 주의 은혜를 경험하게 하여 주옵소서. 이 시간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만 의지하여 예배하오니, 우리 예배를 받아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헌금 :
예배를 위하여
모든 시험 가운데 우리를 승리케 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이 시간 예배를 통해 우리 가운데 있는 시험에서부터 승리하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예배받으시기에 합당하신 하나님,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사랑하다가 겪는 유혹과 시험이 있다면 과감하게 내려놓는 은혜를 주시고, 오직 주만 경배하게 하여 주옵소서.
봉헌을 위하여
우리에게 풍성한 물질을 공급하시고 먹이시는 하나님 아버지, 주의 공급하심에 감사를 드리며, 우리의 믿음에 따라 드리는 십일조와 감사예물과 주정헌금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인색함으로나 억지로가 아니라, 하나님을 예배하는 마음으로 드리는 헌금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기도 찬양 : 세상의 유혹 시험이
본문 : 마 4:1-25 (1-11)
1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2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3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5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6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되었으되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7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8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9 이르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10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11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
*마태복음, 3장에서
세례 요한이 하나님이 오신다.
하나님이 곧 오셔서, 천국을 건국하실 것이다.
그러자 누가 왔습니까?
인간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갈릴리에서 요단 강가로 세례를 받으러 오시면서,
세례를 주라.
너에게 세례를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다.
그러자,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예수님 위에 계시면서,
하나님 아버지께서,
자신의 사랑하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게,
통치권을 이양하시는 작업이,
3장, 16절에서 17절까지 이루어진 것입니다.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내가, 이제
선언한다.
나는 이 아들에게, 나의 통치권을 이양하겠다.
이제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 기뻐하는 자를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다스리며,
하나님 나라를 세우겠다.
엄청난 말씀이죠?
그러면 이제 승승장구하고,
정복하고,
승리하고,
대단한 업적을 남기고,
그러면서,
대단한 나라를 세워야 하는데,
하나님 나라는 인간의 힘으로 세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는, 십자가로 세워지는 거에요.
순종으로 세워지는 거에요.
그래서, 어려운 것입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하나님 나라가 세워지지 않습니다.
인간의 힘으로 유토피아를 세우려고 하니까 어떻게 됩니까?
북한 정권이 독재를 시작하면서,
모든 부르주아 계급을 철폐하게,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평등하게 사는 나라를 세우겠다고 하니까 어떻게 됩니까?
더욱더 심각한 부패와 독재가 이루어지는 거 아닙니까?
하나님 나라를, 인간의 힘으로,
정치로,
이념으로 이루려고 할 때 나타나는 부작용인 것이죠.
우리나라처럼 유토피아를 추구하는 나라가 어디있나요?
유교의 인의예지가 무엇입니까?
위대한 덕 있는 군주가 나타나서,
그 군주가 세상을 다스릴 때,
그 나라는 평온하며, 형통한 나라가 될 것이다.
이것이 유교가 말하는,
정치이념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어떻게 되요?
모든 사람들이,
속으로는 아닌데,
겉으로만 괜찮은 척 사는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유교는, 인간이 죄인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충분히 스스로 의로워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겉으로는 괜찮은 척 좋은 척 하지만, 속으로는 온갖 비리와 혐오스러운 죄를 다 짓는, 이중적인 인간이 생산되게 되는 것이죠.
그런데,
너무도 깊이 새겨진 나머지,
아무도 우리가 유교의 가르침 대로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마치 물고기가,
자신이 살고 있는 바닷속이 너무나 익숙해서,
마치 자신이 호흡하고 있는 물 자체를 의식하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게 무의식이죠.
겉과 속이 다르고,
겉으로 드러나는 예를 중시하지만,
속으로 남모르게 짓는 범죄에 대해서는 관대한 것이,
유교적 인간관입니다.
*아무튼 다 잊어버리시고,
마태복음, 3장에서
세례 요한이,
하나님이 가까이 왔다.
그 하나님이, 하나님 나라를 건국할 것이다.
그런데 누가 왔습니까?
예수께서 갈릴리에서부터 요단 강에 내려오셔서,
세례를 받으시자,
하늘이 열리며,
하늘의 하나님께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천하만국의 통치권을,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인, 예수 그리스도께 성령을 통하여 이양하시면서,
이가 나를 대신하여,
하나님 나라를 통치할,
아들이다.
라고 선언하신 것이죠.
그런데, 이후로
잘 되는 것이 아니라,
고난이 시작됩니다.
광야에 가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는 시련이 시작되는 것이죠.
*마태복음, 4장 1절 말씀을 읽어보시겠습니다.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그 때에는
현재적 용어입니다.
마치, 우리 자신이 그 시험 현장에 있는 것처럼,
그 때에 라는 표현을 쓰면서,
지금, 이순간, 현재
이런 느낌으로,
예수의 시험 현장에,
말씀을 듣는 우리 자신이 참여하고 있는 것처럼, 표현하는, 독특한 마태의 기법입니다.
같은 내용을 담고 있는,
마가복음이나, 누가복음은 ‘그 때에’라는 표현이 없어요.
마태는
듣는 이로 하여금,
생생하게
예수님의 시험 가운데,
자신이 그 시험 현장에 있는 사람인 것처럼 느끼도록,
이야기를 펼쳐나가고 있는 것이죠.
특별히 마태복음을 읽는 독자들은,
유대교와, 회당의 핍박을 받는 그리스도인들이었습니다.
어떻게 예수가 그리스도냐?
어떻게 하나님이 사람이 되실 수가 있냐?
하나님이 예수를 통해 하나님 나라가 오게 하였다고? 그게 말이 되는 이야기냐?
유대교와 회당의 핍박을 받으면서,
믿음과 신앙이 흔들리는
수많은 교회들에게,
마태는, 생생하게 시험 현장을 전하면서,
아니다.
예수 또한, 동일한 시험을 겪었다.
동일한 핍박을 받았다.
예수는 구약에서 예언된 그 하나님 나라를 건국할 메시아이자,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마태복음은,
구약성경의 성취 구절을 많이 인용합니다.
예수님이 동정녀 마리아에게 태어나신 것은, 이사야서를 성취한 사건이다.
예수님이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신 것은, 미가서를 성취한 사건이다.
예수님이 애굽으로 내려갔다가 올라온 것은,
구약의 출애굽한 백성들을 향하여, 너는 내 아들이다. 라고 말씀하신 그 정체성을 성취한 것이다.
등등,
여러가지를 이야기하면서,
마태는,
예수가 오실 그 하나님이시고,
이루리라고 하신 그 하나님 나라의 건국자라는 사실을 끊임없이 되뇌이고 있는 것이죠.
그런 관점에서,
마치는,
지금 핍박을 당하고 있는 모든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에게,
예수가 겪는 시련과 시험이,
마치 자기 자신이 겪고 있는 시련과 시험인 것처럼 느낄 수 있도록,
그때에,
이에,
이 때에,
이런 현재적 시점을 표현하는 용어를 자주 사용한 것입니다.
*첫번째 시험입니다.
3절입니다.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첫번째 시험은,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냐?
그렇다면,
경제적인 어려움이 없어야지.
굶주리고 배고픈 것이 말이 되느냐?
구약의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떠올려보거라.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이라 불리던 자들이었다. 그들은 하나님이 친히 이슬처럼 내리는 만나로 배고픔이 없도록 도우셨다.
그러므로, 예수야, 이 돌들을 명하여 떡덩이가 되게 하여라.
첫번째 시험의 핵심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믿는 자의 삶에는 경제적인 어려움이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으면 잘 되고, 부유하고 잘 살아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여기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이 무엇입니까?
나 떡 먹어야 사는 것 맞아.
그러나, 사탄아,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야.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올 수 있어. 시련이 올 수 있어.
그러나, 그것이 나를 죽게 하는 것이 아니야.
사람이 사는 것은 떡에도 달려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말씀으로 사는 것이야.
라고 하면서 시험을 이긴 것입니다.
그러니까,
유대교의 핍박과, 회당의 배척 아래,
사회적, 경제적 어려움을 당하고 있던, 수많은 마태복음을 듣는 그리스도인 독자들의 입장에서는,
엄청난 위로가 되었을 수도 있지만,
반대로, 예수님처럼 살아야 한다는 권면과 결단의 촉구로 들렸을 수도 있겠죠.
*첫번째 시험에 실패한 마귀는
이제 두 번째로 예수님을 시험하는데,
5절과 6절입니다.
거룩한 성이라는 단어는,
누가복음을 보면,
예루살렘 성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고,
마귀가 지금,
하나님의 말씀을 이용해서,
자기 이득을 취하려고 애를 쓰는 것을 볼 수 있는데,
5-6절을 함께 읽습니다.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되었으되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예루살렘 성에 있는
성전으로
거기다가
성전의 특별히 왜 꼭대기라는 단어를 썼을까요?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은,
자기가 사랑하는 자를
그의 날개로 보호하신다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히브리어로 ‘날개’라는 단어가,
헬라어로 번역되면 ‘프테뤽스’ ‘프테뤽스’라고 읽는데,
꼭대기가 ‘프테뤼기온’이라고 읽는데,
프테뤽스랑
프테뤼기온이랑
발음이 매우 유사하죠.
그러니까,
예수님 입장에서는,
거룩한 성에,
그것도 하나님의 강력하게 임재하시는 성전에,
그것도, 그 성전에서,
마치 날개라는 발음과 유사한,
성전꼭대기로 자신을 데려갔다는 것은,
이곳이야 말로,
하나님의 강력한 보호하심이 발동할 수 밖에 없는,
가장 보호받기 좋고,
가장 안전하고,
가장 고난이 없고,
가장 행복해야만 할 것 같은,
그런 장소에서,
마귀가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너 뛰어내려라.
하나님이 천사들을 명하사,
네가 절대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도록,
완벽하게 너를 보호해줄 것이다.
라고 예수님을 시험한 것입니다.
가장 안전할 것 같은 성전 꼭대기, 하나님의 날개 아래와 같은 장소에서,
예수야, 너의 인생에는 고난이 없어야 해.
심지어 네가 여기서 뛰어내린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이 너를 보호해주셔야 해.
라고 하면서,
하나님은 절대 네 인생에 고난을 허락하셔서는 안된다는 시험을 걸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 믿으면 다 잘 되는 것이 아닙니다.
번영신학자들은,
급진적인 하나님 나라 신학을 전파하면서,
마치 예수 믿으면,
이 땅에서 모든 병이 다 낫고,
모든 아픔이 다 사라지고,
모든 경제적인 문제가 다 해결될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성경은,
예수님이 재림하셔야,
모든 질병과,
아픔과,
눈물이 사라진,
하나님 나라가,
재림하셔야만 완성될 것이라고 분명하게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에,
예수 믿으면, 고난이 없고,
질병이 없고,
아픔이 없고,
물론, 우리가 고난 가운데 기도하고,
질병이 낫기를 위해 기도하는 것도 하나님 뜻이고,
아프면 당연히 부르짖고 기도하고 도우심을 구해야 하지만,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하는 것은,
예수 믿는다고 무조건 고난이 없고, 하나님이 항상 보호하고 완벽하게 고난이 없도록 지켜주시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예수도 십자가에서 죽었습니다.
예수 믿는 신앙의 선배들도, 믿음 때문에 화형을 당하고, 굶주리고 헐벗고 매맞고, 수많은 고난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라고 그런 아픔과 고난이 없겠습니까?
*세번 째로 마귀는 부동산 중개업자처럼 행동합니다.
심지어는,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창세기, 13장에서,
롯이 아브라함을 떠납니다.
좋은 땅을 찾아 떠납니다.
약속의 땅을 받지 못하고,
아직도 기다리고 있는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너는 눈을 들어,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무슨 말입니까?
보이는 땅을 아브라함아, 너와 네 자손에게 줄 것인데, 영원히 줄 것이다.
고대 근동에서는,
부동산 중개업자들이,
땅을 보여 준다는 것은,
곧 그 땅을 매매하겠다는 의미였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마치,
아브라함에게 그 땅을 보여주면서,
너 이 땅 봤으니까,
반드시 너는 이 땅을 차지하게 될 것이야.
라고 말씀하는 것과 같죠.
마귀가 이것을 따라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하셨던 것처럼,
지극히 높은 산으로 예수를 데리고 가서,
천하 모든 나라들과, 그 나라들의 아름다움과 영광스러움을 보여주면서,
너 나한테 절해라.
나한테 절하면, 네가 보고 있는 모든 것을 다 너에게 줄게.
굉장히 악한 것이죠.
마귀는 하나님을 모방합니다.
하나님처럼 행동합니다.
그러나, 항상 우리 자신을 위해 살라고 유혹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지만,
항상 하나님 중심이 아니에요.
항상 자기 중심입니다.
예수야, 나한테 절 한번만 해라.
그러면 너 십자가 지지 않게 해줄게.
너 십자가 안져도, 천하 만국을 다스리는 왕이 되게 해줄게.
*말씀을 맺습니다.
여러분, 세 가지 시험의 핵심은,
마귀는 인간의 육신의 욕심을 대적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수야, 배고프지? 돌로 떡 만들어 먹어.
거룩한 성전 꼭대기에 세워서, 하나님이 너 보호하시는지 아닌지 시험해봐.
천하 만국을 보여주면서,
너 십자가 지지마, 널 위한 나라를 내가 세워줄게.
마귀는 인간의 육신의 욕심을 대적하지 않습니다.
마귀는, 하나님 나라가 세워지는 것을 극도로 미워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죠.
예수야, 순종하지 마.
하나님께 왜 순종하니?
하나님께 순종하지 말고,
너를 위한 인생을 살아.
하나님 나라를 세우지 말고,
예수 너를 위한, 네가 주인이 되는 나라를 세워.
마태는,
그 때에, 이에, 이때에 이라는, 역사적 현재
생생하게 오늘 내가 그 시각, 그 장소에 있는 것처럼,
예수의 시험을 묘사하면서,
너는 어떻게 할래?
이런 시험이 다가올 때, 너는 무엇으로 이길 수 있을까?
너는 이 시험들을 이길 수 있는 영적 지식과 분별력과, 말씀에 대한 확신과
하나님께 대한 충성심을 가지고 있니?
라고, 그리스도인 독자들에게 물어보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가기 위해서 부름 받은 사람들인 것입니다.
우리는 동일하게 시험에 반응해야 하는 것입니다.
떡도 중요하지만, 하나님 말씀보다 중요하지는 않습니다.
내 인생도 중요하지만,
나를 통해 이루실 하나님의 계획과 뜻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순종이 그 일을 하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만 예배하고, 오직 그만 경배하라!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처럼 사칭하면서,
자기 나라를 세우는 자가 마귀입니다.
우리는 마귀처럼 살면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이어야 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하나님 나라 백성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자기 나라를 세우라는 유혹,
자기를 위해서 살라는 유혹 앞에,
예수님처럼, 말씀으로 분별하며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함께 찬양하겠습니다.)
들은 말씀을 생각하면서 찬양합시다.
우리가 겪는 갖가지 시험 가운데, 해결책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굳이 이 시간에 하나님을 예배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 말씀이 우리 인생의 해답이 되기 때문인 것이죠.
이 찬양 드리면서,
내가 헛되게 추구했던 모든 것들 과감히 내려놓고,
주님만으로 만족하겠다는 결단으로,
이 찬양합니다.
(함께 기도합시다.)
고마우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겪는 시험 가운데 능히 이길 힘을 주시는 하나님 아버지, 이 시간 시험을 이길 은혜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우리 삶, 각자 가운데, 하나님이 도와주지 않으면 안 되는 고난과 시험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수님처럼 경제적인 어려움, 배고픔, 고난, 십자가와 같은 괴로움이 우리 가운데 있사오니, 주님 이 시기를 이길 수 있는 지혜와 능력을 주시고, 오히려 이것보다 더 큰 영적인 복이 우리 삶 가운데 임하게 하여 주옵소서. 같이 기도하시겠습니다.
마지막으로, 교회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우리에게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을 주시고, 교회를 위해 십자가 지신 예수님처럼, 교회를 위해 십자가 지는 마음으로 헌신하는 주의 자녀들이 다 되게 하여 주옵소서. 교회의 리더이신 강인철 담임목사님과 사모님의 영육의 강건을 붙잡아주시고, 무엇보다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위해서라면 어떤 것도 감당할 수 있는 우리 열방교회, 그리고 청년부가 다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진실한 기도에 귀 기울이시는 하나님,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고 귀 기울여 주옵소서. 우리의 아픔과 고난 가운데 위로와 회복으로 함께 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고난을 이길 힘을 주시고, 시험 가운데에서도 하나님만 예배하는 지혜를 더하여 주시옵소서. 병약한 지체들의 질병을 치유하시고 회복의 은혜를 더하여 주옵소서. 육신의 욕심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하심 대로 살아가는 저와 청년부 지체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원어사역
1 이 때에, 예수께서, 그에게 이끌렸다(아나고 / 이끌다, 올라가다 / 수동태). 광야로, 그 영에 의해서. 시험을 당하기 위해서, 디아볼로스에 의하여.
성령은 시험을 이기게 하시는 분이시고,
마귀는 시험에 빠지게 하는 존재이다.
성령은 시험을 피하게 하는 존재가 아니라, 시험을 이기게 하는 존재이다.
예수님은 유혹 속에서도 χωρὶς ἁμαρτίας를 유지하셨습니다.
(죄는 없으시니라 /히4:15)
첫째, 예수님은 모든 면에서 시험을 받는 사람들과 같으시며,
둘째, 시험 속에서도 χωρὶς ἁμαρτίας에 머물지 않는 사람들과는 완전히 다르시다.
πειράζων이 예수님께 직접 찾아오는 장면은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신 이야기 바로 뒤, 그리고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기 직전에 배치되어 있습니다. 이 순서는 이미 그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πειράζων(→ 32, 5-22)은 하나님께서 세례 때 예수님께 맡기신 임무에서 예수님을 멀어지게 하고, 그로 인해 그분의 사명을 불가능하게 만들려고 시도합니다. 그는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예수님이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게 하려고 애씁니다.58 이런 점에서 유혹이 40일 밤낮이 끝날 때(마 4:2 f.)에 오든, 이 기간 중에 오든(막 1:13과 눅 4:2),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 그 본질, 즉 예수님이 메시아의 임무에 충실해야한다는 본질은 동일하게 유지됩니다. 그러므로 이 이야기는 예수님이 순종하신다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메시아적 임무를 알고 계시고, 개별적인 유혹은 예수님이 순종하신다는 사실을 세 번 반복하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세번 부인’하였다.
예수님을 불순종으로 몰기 위해 세 가지 시도를 합니다. 첫 번째로 그는 예수님의 능력을 시험하고, 그분이 그분의 신성한 사명에 부합하지 않는 목적( )에 사용하도록 유도하려고 합니다(→ 19, 12 ff ). 예수님은 본문으로 그를 거절하십니다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지 않는 이기적인 이유로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는 것은 하나님을 유혹하는 것이며,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 과 계명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 유혹은 가장 포괄적인 유혹입니다. διάβολος(마 4:8; 눅 4:6)는 예수님으로 하여금 하나님에 대한 순종을 포기하고 자신, 사탄을 따르도록 유도하기 위해g를 아주 명백하게 찾고 있습니다. 세 번째에도 예수님은 본문(신 6:13)으로 대답하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에 대한 자신의 충성을 확인하십니다. 그는 하나님과 연합된 상태를 유지하며, 그분의 신성한 아들됨, 즉 메시아의 권위를 남용하지 않으십니다.
마귀의 유혹 = 그 당시 사람들이 기대했던 메시아의 모습
신자들은 끊임없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려는 유혹을 받습니다. 신자들은 "이 세상의 왕자"(요 12:31, 14:30, 16:11, 참조: 마 9:34, 12:24, 고전 2:6, 8, 엡 2:2)의 공격에 맞서 영적 갑옷(엡 6:10-17)으로 자신을 보호해야 하며, 항상 기도하며(엡 6:18) 굳건히 서서 근신하고 깨어있어야 합니다.
예수님 생애에서 이러한 경험의 본질은 공생애 사역에 앞서 있었던 유혹에 대한 이야기에서 잘 드러납니다(마 4:1-11 , 막 1:12-13, 눅 4:1-13). 세 공관복음 모두 예수님을 광야로 인도하여 사탄의 시험을 받게 하신 분은 성령이셨음을 지적하고 있으며, 마태복음의 절(πειρασθῆναι ὑπὸ τοῦ διαβόλου, 마 4:1)은 이것이 실제로 성령의 인도 목적이었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 이 유혹의 장면은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전 광야에서 방황하던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시험을 떠올리게 합니다(참조, 신 6-8장). 40년간의 광야 방황과 예수님이 광야에서 보낸 40일 사이에는 분명 유사점이 있습니다( 민 14:3 4, 신 8:2, 9:18, 왕상 19:8, 겔 4:5-6 참조 ). 예수님의 행동은 하나님을 섬기기 위한 시험과 준비에 대한 구약의 선례를 요약한 것으로, 마태가 언급한 성취의 다른 사례 와 비교할 수 있습니다(πληρόω G4444 참조).
(a) 첫 번째 유혹은 단순히 돌을 빵으로 바꾸어 이기적인 목적을 위해 화려한 기적을 행하라는 권유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야훼께서 자녀들에게 양식을 공급하신다는 구약의 약속( 신 2:7; 28:1-14; 느 9:21; 시 34:10[33:11] 등참조 )을 배경으로에 대한 것입니다. 야훼께서는 자기 백성에게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셨지만, 백성들은 당장 필요한 것이 충족되면주어진 것을 돌려보냈습니다(출 16:2-12; 민 11:4-6, 33-34; 21:4-5; 시 78:18-32[77:18-32]). 이 유혹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광야 방황과 야훼의 만나 공급을 회상하는구절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그가 너를 낮추사 주리게 하시고 너와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 )으로 사는 것을 가르쳐 주려 하심이라"(신 8:3; 참조. 마 4:4, 눅 4: 4절 ). 게르하르트손(시험, 51)은 이 유혹을 "하나님의 아들을 단련하고 그의 마음속에 있는 것을 드러내기 위한 시험 설계()로 본다. 이스라엘은 이 유혹을 견디지 못했습니다. 백성들은 갈망과 불만, 의심과 불신에 사로잡혀 하나님이 주시는 신성한 양식과는 다른 종류의 음식을 원했기 때문에 불평했습니다. 그들은 갈망과 불신앙으로 마음이 분열되어 있었고, 후기 유대인의 용어를 사용하자면 악한 성향이 그들의 마음에서 우위를 차지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유혹자는 예수님을 이 죄에 빠지게 하려고 했습니다." 산상수훈에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는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 하나라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마 7:9).
(b) 마태의 기록에서 두 번째 유혹(누가복음에서는 세 번째)은 성전()의 꼭대기(πτερύγιον G4762, lit., "[작은] 날개")에서 일어났습니다(마 4:5 par. 눅 4:9). 그 배경으로 게르하르트손은 광야 방랑에서 신의 보호 약속을 봅니다. 하나님은 아들 이스라엘 앞에 축복과 저주를 두셨습니다(신 11:26-2 9; 27:14-30:20). 축복에는 모든 종류의 위험으로부터의 보호가 포함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언약을 지킨다면 이 보호는 그의 것이었습니다(참조: 1:31; 8:4; 29:4; 32:10-14; 느 9:21; 참조: 사 46:3-4; 호 11:3). 그러나 그 보호는 광야 세대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성전은 신성한 임재가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이러한 보호가 가장 효과적으로 이루어지는 탁월한 장소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성전의 역할이 신명기의 광야 구절에서 예고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모든 여정의 목적은 가나안에 도달하는 것이며, 특히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실 장소'를 안식처로 삼는 것입니다."(게르하르트손, 시험, 56; 신 12:18, 21; 참조 ).
성전은 불가침의 성역이었습니다. 야훼의 보호는 시편에서 반복되는 주제이며, 때로는 거룩함, 건강, 능력의 초점으로서 성전과 명시적으로 관련되기도 합니다(예: 시 36:8-9[35:9-10]).특히 랍비들의 성전과 광야 방랑(미드르 테힐림. 91)과 관련된 시편 91편이 그렇습니다. 그리고 시 91:11-12(90:11-12)에 근거하여 사탄은 예수님에게 성전의 "날개"에서 자신을 던지라는 유혹을합니다: "그가 너에 관하여 그의 천사들에게 명하여 그들의 손으로 너를 들어 올려 돌에 발을 부딪히지 않게 하리라"(참조, 마 4: 6절, 눅 4:10-11). 성전의 πτεγύριον과 시 91:4의"그의 날개 아래[LXX πτέρυξ G4763] 너희가 피난처를 찾을 것이다"라는 구절 사이에는 단어의 비유가 있습니다.
프테뤼기온 = 꼭대기, 끝
카나프 = 날개 = 프테뤽스
(c) 세 번째 유혹(누가복음에서 두 번째)에 대해서는 "마귀가 예수를 아주 높은 산으로 데리고 가서 천하만국과 그 화려함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는 '내게 절하고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겠다'고 말했습니다."(마 4:8-9 , 눅 4:5-6). 이 구절은 구약의 연관성이 풍부합니다. 신 34:1-3에 따르면 모세는 모압 평야에서 느보산( )으로 올라가 야훼께서 약속의 땅을 보여주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너희 후손에게 주겠다'고 맹세하면서 약속한 땅이 바로 이 땅이다. 내가 너희에게 눈으로 보게 하였으나 너희는 그 땅으로 건너가지 못할 것이다."(34:4). 앞서 모세는 그 땅을 눈으로 볼 수는 있었지만 요단강을 건너는 것은 금지되었습니다(3:27) . 다베(D. Daube)는 부동산을 양도할 때 판매자가 구매자를 어떤 유리한 지점으로 데려가는 고대의 법적 관습에 주목했습니다. 구매자는 땅을 봄으로써 판매자의 양도 의사를 확신하고 어떤 의미에서 눈으로 땅을 받게 됩니다(성서법 연구 [1947], 24-39). 다른 맥락에서 산은 시내산의 경우처럼 계시의 현장이 될 수도 있지만(출 19:3, 34:2-3), 우상우상 숭배의 현장이 되기도 합니다(신 12:1-3).
말씀이 아니라, 항상 결과를 주목하게 하는 것이 사탄이다.
말씀 < 현상(결과)
사탄은 지금 ‘하나님처럼’ 행동한다.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모세에게 했던 것처럼 행동한다.
약속의 땅의 풍요로움에 대한 거짓 약속을 거부하신 예수님은 십자가의 길 을 통해 하나님의 아들로서 진정한 유업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약속의 성취는 사탄이 제안한 것과는 매우 다른 방식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예수의 유혹은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개인적 삶에서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공동체적 삶에서 겪었던 유혹을 요약한 것입니다. 세 가지 형태의 유혹()은 약속의 땅을 찾는 언약 순례자 백성으로서 이스라엘에게 필수적이었던 세 가지 삶의 영역, 즉 생계, 보호, 그리고 그 땅이 번영과 안전의 측면에서 상징하는 모든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유혹을 거부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호소하고 실제로 그 말씀에 따라 살아감으로써 자신이 진정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명하셨습니다( 참조, 마 4:4 및 5:17-18). 바로 이 지점에서 이스라엘은 실패했습니다(참조, 사 15:7-9, 사 29:13 인용). 따라서 유혹 이야기는 유혹 이야기 바로 앞에 나오는그는 예수님 세례 직후에 들었던 "하늘로부터의 음성"에 대한 선언을 입증합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가 그를 기뻐하노라"(마 3: 17절, 막 1:11, 눅 3:22, 참조: 시 2:7, 사 42:1, 44:2).
공생애가 시작됨으로써, 예수님의 시험은 개인적 시험이 아니라 ‘공동체를 위한 시험’이 된다.
시험을 이기심으로 “하나님이 사랑하시고 기뻐하시는 아들”이라는 것을 입증하신다.
The Exegetical Dictionary of the New Testament διάβολος, 2
διάβολος, 2 diabolos slanderous
slanderous
마귀(διάβολος )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질병(행 10:38; 참조, 고후 12:7-9)과 죽음( ;히 2:14; 참조, 계 20:10, 13f.)의 주인이 됩니다. 유혹( 욥 1:6-2 참조 : 7)을 통해 인류를 배교와 하나님에 대한 불순종으로 이끌고(마 4:1, 5, 8, 11 참조 . 눅 4:2, 3, 6, 13; 계 2:10; 12:9; 20:10), 잡초를 심고(마 13:39) 하나님의 말씀의 좋은 씨앗을훔칩니다(눅 8:12). 그는 올무를 놓으며(딤전 3:7, 딤후 2:26) "태초부터"(요 8:44, 요일 3:8b) 살인자, 거짓말쟁이, 죄인으로서 인간의 죄를 유도합니다(요일3:8a). 따라서 그는 유다의 배신(요 13:2)과 자만(딤전 3:6), 형제에 대한 미움(요일 3:8)을 일으킵니다.
유혹에 굴복하는 사람은 누구나 διάβολος( 유대인,요 8:44, 마술사 바-예수-엘리마, 행 13:10, 요일 3:8, 10)의 자녀이며, 심지어 자신이 διάβολος(요 6:70, 유다, 참조 . 마 16:23, 막 8:33)가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용감하게 διάβολος(엡 4:27, 6:11, 요일 4:7, 벧전 5:8f.)와 맞서야 하며, 그러면 διάβολος는 달아날 것입니다(요일 4:7). διάβολος의 무서운 일은 제한된 기간 동안 만 지속됩니다(계 12:12). 천년이 오기 전에 διάβολος는 천년 동안 묶일 것입니다(계 20:2). 결정적인 종말론적 전투( 10절) 또는 최후의 심판(마 25:41) 후에 그는 영원히l 불로 멸망할 것입니다( 딤전 3:6 참조).
예수님이 마귀의 일을 멸하기 위해 나타나셨기 때문에(요일 3:8c) 세상에 대한 그의 주권은 이미 깨졌습니다(참조: 요 12:31, 14:30, 16:11).
2 그리고 그가 40일 밤낮을 금식하셨다. 마침내 그가 배가 고프셨다.
3 시험하는 자가 나아와서 말하였다,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말하라(에이폰 / 명령)! 이 돌이 아르토스(빵)이 되기 위해서.
4 그런데 그가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자오 / 미래)이 아니다. 도리어 하나님의 입을 통하여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떡 / 말씀
5 이 때에 디아볼로스가 그를 데려다가(파라람바노 / 현재), 거룩한 폴뤼스(도시, 마을)로, 그리고 그가 그를 세우고, 그 히에론(성전)의 프테뤼기온(꼭대기, 정점, 끝)에
프테뤽쓰 - 프테뤼기온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은, 천사의 날개와 같다.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에서 보호받기를 기대했던 구약의 기대치를 따라, 사탄은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자의적으로 강요하도록 유혹하였다.
6 그리고 그가 그에게 이르기를, 만일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너는 던지라(발로 /명령). 네 스스로를, 밑으로. 기록되었으되 그의 사자(앙겔로스)들에게 그가 명령할 것이다(엔텔로 / 미래 명령), 너를 위하여. 그리고 그들이 손으로 들어올릴 것이다(아이로 / 미래), 너를, 돌이 때리지 못하도록, 너의 발을
너는 네 스스로를 던지라
기록되었으되, 그의 사자들에게 그가 너를 위하여 명령할 것이다.
그리고 그의 사자들이 너를 손으로 받들 것이다.
너의 발을 돌이 때리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
7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팔린) 기록되었으되, 너는 시험하지 말 것이다(에크페이라조 / 시험하다, 유혹하다 / 미래), 주님을, 너의 하나님.
8 또(팔린) 디아볼로스가 그를 데려다가, 매우 휘프셀로스(높은, 의기양양한) 오로스(산, 언덕)으로, 그리고 그가 그에게 보이며, 모든 코스모스(세상)의 바실레이아(나라, 왕권)를, 그리고 그들의 독사(영광)을
모든 세상의 나라를 보여주며
또한 그 나라들의 영광스러움을
9 그리고 그가 그에게 이르되, 이 모든 것들을 너에게. 내가 디도미(미래 / 주다, 선사하다)할 것이다, 만일 당신이 프로스퀴네오(경배하다, 절하다, 예배하다)한다면, 나에게
마귀는 죽지 말고 ‘살라’는 유혹을 한다.
먹을 것,
보호하심,
땅(영토)과 권세
그러나 예수님은 ‘죽으라’는 명령에 순종한다.
10 이 때에,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시되, 너는 물러가라(휘파고 / 명령), 사탄아,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너는 프로스퀴네오(경배하다 / 미래)할 것이다, 그리고 오직 그를 너는 라트류오(섬기다 / 미래)할 것이다.
동사 λατρεύω (명사 λάτρις, "고용된 일꾼/하인"에서 유래했으며, 희귀한 용어 λάτρον, "임금, 급여"에서 유래)는 원래 "고용을 위해 일하다"라는 뜻이지만 "봉사하다"라는 의미로 더 자주 사용되며, 종종 부정적인 뉘앙스로 "노예가 되다"라는 의미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예배는 주로 컬투스를 통해 수행되었습니다. 그러나 구약 저자들은 참된 예배를 세심한 컬트 행위의 수행이 아니라 주님의 음성에 대한 순종으로 식별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이스라엘아, 이제 주 너희 하나님이 너희에게 무엇을 요구하시느냐? 오직 주 너희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모든 도를 행하며, 그분을 사랑하고,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LXXλατρεύειν]주 너희 하나님을 섬기고, 오늘 내가 너희의 안녕을 위하여 너희에게 명령하는 주 너희 하나님의 계명과 그분의 명령을 지키는 것입니다."(신 10:12-13 NRSV).
너는 물러가라
너는 예배할 것이다.
너는 섬길 것이다.
사탄이 예배하고 섬기겠는가?
그러나 예수님은 사탄에게 주 너의 하나님만 예배하고 섬기라고 말씀하고 계시다.
11 이때에, 디아볼로스는 그를 떠나고, 보라! 앙겔로스(천사, 사자)들이 나아왔다, 그리고 그들이 그를 디아코네오(수종들다, 섬기다, 봉사하다 / 미완료)하고 있었다.
마귀는 떠나가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봉사하고 있었다.
개요
I. 예수와 마귀 (4:1-11): 예수님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광야로 가셔서 사탄의 시험을 받으십니다.
A. 공격 (4:1-10)
1. 첫 번째 라운드 (4:1-4)
a. 유혹 (4:1-3): "이 돌들을 빵 덩어리로 바꾸어라!"
b. 승리(4:4): "사람들은 생명을 위해 빵보다 더 많은 것이 필요하며,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먹어야 한다."
2. 두 번째 라운드 (4:5-7)
a. 유혹 (4:5-6):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려라!"
b. 승리 (4:7): "주 너희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3. 세 번째 라운드 (4:8-10)
a. 유혹 (4:8-9): "무릎을 꿇고 내게 경배하기만 하면 [세상의 모든 영광을] 네게 주겠다."
b. 승리 (4:10): "사탄아, 여기서 나가라. 성경에 '너희는 주 너희 하나님께 경배하고 그분만 섬겨야 한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B. 천사들(4:11): 유혹을 받은 후 천사들이 와서 예수님을 돌봅니다.
II. 예수님과 절망한 자들(4:12-17, 23-25): 예수님은 공식적으로 모든 곳에서 궁핍한 사람들을 위한 사역을 시작하십니다!
A. 영적으로 어두워진 자들에게(4:12-17): 예수님은 백성들에게 죄에서 돌이키라고 촉구하며 설교하십니다.
B. 육체적 장애인들에게(4:23-25): 예수님은 가는 곳마다 병자들을 고치십니다.
III. 예수님과 제자들(4:18-22): 예수님은 이제 미래의 사도 네 명을 부르십니다.
A. 베드로와 안드레 (4:18-20)
1. 어부들(4:18): 예수님은 갈릴리 바닷가에서 이 형제들을 만나십니다.
2. 사람을 낚는 어부들(4:19-20): 예수님은 그들을 성공적인 영혼의 승리자로 만들겠다고 약속하십니다.
B. 야고보와 요한 (4:21-22)
1. 그물을 고치다(4:21): 예수님은 그들에게 하던 일을 그만두고 함께 가자고 부르십니다.
2. 그물을 버림 (4:22): 베드로와 안드레처럼 이 형제들도 예수님을 따릅니다.
주석
예수님 앞에 놓인 미끼는 인간 본성의 세 가지 정욕, 즉육신의 정 욕 ( 욕구), 안목의 정욕(욕구), 이생의 자랑(욕구) 에 호소하도록 고안되었습니다( 요일 2:16). 사탄은 하와에게도 동일한 세 가지 욕망에 호소했습니다( 창 3:6).
떡보다 말씀이 달아야 한다.
세상보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더 크게 보여야 한다.
세상에서 유명해지는 것보다 하나님 앞에서 인정받는 것이 더 중요해야 한다.
12절 - 유대로부터의 예수님의 출발(4:12)-예수님은 요한이 감옥에 갇혔다는 소식을 들으시고 왕국이 가까이 왔다는 예수님의 공개적인 선포를 위한 요한의 준비 작업이 끝났다는 것을 아시고 이 선포를 시작하기 위해 유대를 떠나 갈릴리로 가셨습니다. 왜 예수님은 갈릴리가 아닌 유대에서 이 선포를 시작하지 않으셨을까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1) 유대의 사람들은 이미 그리스도의 공생애 첫해에(이 해의 사역은 그리스도의 세례와 그리스도의 광야 유혹이라는 두 가지 시작 사건을 제외하고는 공관복음서 기자들에 의해 생략되었지만 요한복음에 부분적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1:19-4:42), 예수님을 왕으로 거부했기 때문에(요한복음 2:18, 24; 3 :32; 4:1-3) 그들이 왕국에 대한 그분의 제안도 거부할 것을 알고 계셨고, (2) 성경은 그리스도의 공적 설교에서 오는 빛을 볼 곳이 갈릴리라고 예언했다( 사 9. 9:1, 2; Matt. 4:14-16. 그래서 서기 27년 12월, 예수님은 유대를 떠나 갈릴리로 가 그곳에서 공적 사역과 공개 설교를 시작하셨습니다.
그가 친히 보고 들은 것을 증언하되 그의 증언을 받는 자가 없도다
전에 고통 받던 자들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이 멸시를 당하게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 길과 요단 저쪽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
1) 유대는 이미 예수의 사역을 거부
2) 성경은 이방 땅 갈릴리에 빛이 비치리라고 예언하였기 때문
나사렛(그분의 소년후d와 청년들의 도시)에서의 예수님에 대한 거부(4:13)-이 거부는 누가복음 4:16-30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태복음은 이 거절을 암시할 뿐입니다. 나사렛에서 예수님이 거절당하신 것은 나중에 가릴리 전체에서 받으실 거절을 상징합니다.
그러나 예수는 ‘나사렛’ (고향)에서도 거절 당하셨다.
예수님을 가버나움으로 옮기심(4:13-16)- 예수님은 나사렛에서 가버나움으로 옮기시고 16개월 동안의 갈릴리 사역을 위해 가버나움을 본부로 삼으셨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1) 고향 나사렛에서 거절당하셨고 (2) 가버나움이 온 갈릴리의 중심 도시이며, 복음 사역의 큰 빛을 볼 것이라고 예언된 지역이라는 것을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사 9:1, 2; Matt. 4:14-16.
왕국이 가까웠다는 예수님의 설교(4:17)-예수님은 가버나움으로 이사하신 후 공개 설교를 시작하셨습니다(공생애 첫해에 예수님이 공개 설교를 하신 기록은에 없습니다). 그는 오랫동안 기다려온 천국이 가까이 왔으니 청중들이 회개해야 한다고 설교했습니다. 그는 이전에 요한이 설교한 것과 동일한 왕국( 3:2)을 설교했고, 나중에 열두 제자가 설교한 왕국(10:7), 구약의 예언 왕국, 창세로부터 예비된 왕국( 마 25:34), 모든 유대인이 기다리는 왕국( 마 25:34)을 설교했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였으니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이 왔다 하고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
세례 요한이 설교한 나라
열두 제자들이 설교한 나라
창세로부터 예비된 나라
모든 유대인들이 기대하고 기다리는 나라
18-22절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은 거의 1년 전에 이미 신앙으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요 1:35-51). 이제 그들은 제자로 부름을 받습니다( 4:18-22). 나중에 그들은 봉사로 부름을 받습니다( 10:1).
예수께서 그의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2.이 부름의 대상 - 예수님은이 네 명의 어부들을 부르셔서그들을 "사람을 낚는 어부"로 삼으셨습니다.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려면 주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제자를 얻는 그분의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3.이 부르심에 대한 즉각적인 순종 -네사람은예수님의 부르심에 즉시 순종하여 자신과 가족의 물질적 필요를 공급해 주실 것을 신뢰했습니다.
예수님의 온 갈릴리 순회(4:23)-예수님은 이 순회에서 세 가지 일을 하셨습니다: (1) 회당에서 가르치셨고, (2) 하나님 나라의 복음 ( 은혜의 복음이 아니라)을 전파하셨으며, (3) 모든 종류의 병과 질병을 고치셨습니다.
수님은 이 세 가지 일을 행하시면서 메시아가 자신의 왕국을 세우러 오실 때 하실 일에 관한 예언을 성취하셨습니다(사 35:5, 6; 사 61:1, 2)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4장
23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24 그의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진지라 사람들이 모든 앓는 자 곧 각종 병에 걸려서 고통 당하는 자, 귀신 들린 자, 간질하는 자, 중풍병자들을 데려오니 그들을 고치시더라
25 갈릴리와 데가볼리와 예루살렘과 유대와 요단 강 건너편에서 수많은 무리가 따르니라
그 때에 맹인의 눈이 밝을 것이며 못 듣는 사람의 귀가 열릴 것이며
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 같이 뛸 것이며 말 못하는 자의 혀는 노래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갈릴리 지방에서 예수님을 영접하다(4:24, 25) - 예수님은 유명하고 인기가 많으셨고, 가까이서나 멀리서나 많은 무리가 따랐는데, 왜 많은 무리가 박수를 치고 그를 찾고 따랐는지는 본문 을 보면 분명합니다. 그들은 그분이 주시는 것을 받기 위해 그분을 따랐지 그분이 원하시는 것 (복종과 순종)을 주기 위해 그분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영적 메시아가 아닌 정치적 메시아로 영접하기를 열망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구세주로 받아들일 의향은 있었지만 주님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았습니다.
영적 메시아 < 정치적 메시아
잘 살게 해주는 메시아 o
죄에서 구원하실 메시아 x
UBS
마태복음 4:2
모세가 시내산에서 40일을 보내며 율법을 받았던 것처럼 예수님도 광야에서 40일을 보내셨습니다.
바클레이는 "그는 배고픔의 고통에 시달렸다."입니다.
템터가 사용되는 경우번역자는 "사람들을 유혹하는 자" 또는 "사람들이 잘못하도록 하려는 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유혹하는 자 = 마귀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용어는 천사 또는 신적 존재(창 6 :2, 요 b 38:7), 이스라엘 민족(호 11:1) 또는 선택된 왕(시 2:7)을 지칭할 때 사용되기도 합니다. 유대인들은 메시아의 칭호로 하나님의 아들을 거의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마귀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인지 아닌지 궁금해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는 그가 그렇다고 가정합니다."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므로 ..."로 번역하는 것이 더 좋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으로 증명하십시오."라고 말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아들 됨의 “본질”이 무엇인가?
기적인가, 순종인가
이 돌들을 빵 덩어리가 되게 하소서는 예수님이 "신성한 아들됨을 기적을 행할 수 있는 능력으로 오해"하려는 유혹을 물리칩니다.
아들 됨의 핵심은 ‘배고픔이 없는 풍부한 공급’이 아닌가?
아니라는 것이다.
Brc ("사람을 살리려면 빵보다 더 많은 것이 필요하다. 사람의 생명은 하나님의 모든 말씀에 달려 있다")와 NEB ("사람은 빵만으로는 살 수 없다. 그는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말씀에 의지하여 산다")를 비교해 보세요.
이 인용문에서 예수님이 인류와 어떻게 동일시되는지 주목하는 것이 흥미롭습니다.
안쓰로포스 = 인류
예수님은 ‘인류’가 사는 길은 빵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여기서 ' 산다 '는 것은 물리적 존재 그 이상을 의미합니다. "인간의 생명은 음식에만 의존하지 않는다" 또는 "인간의 존재는 음식이 있는 것에만 의존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람이 진정한 생명을 가지려면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 즉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 또는 "하나님이 명령하는 것"을 가져야 합니다.
산다 = 물리적으로 존재하는 것 이상
인간의 생명은 음식에만 의존하지 않는다.
잘 먹는다고 잘 사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잘 사는 것이다.
"인간이 진정한 생명을 가지려면 음식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말씀도 필요하다." 또는 "인간이 진정으로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모든 말씀이 필요하다."가 있습니다. 음식만으로는 인간을 지탱하기에 충분하지 않습니다."
5-10절에서 마태는 과거의 사건을 생생하게 서술하는 방법인 소위 "역사적 현재"를 여러 번 사용합니다.
이때에
거룩한 도시 = 예루살렘
또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가서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여기서 뛰어내리라
A Handbook on the Gospel of Matthew Matthew 4:5
pinnacle
피나클(TEV "가장 높은 지점")로 번역된 단어의 정확한 의미는 논란의 여지가 있습니다. 이 단어는 문자 그대로 "작은 날개"를 의미하며, 신약성경에서 이 단어가 사용된 유일한 경우는 누가복음4장 9절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다음 구절에는 시편 91:11-12가 인용되어 있으며, 한 주석가는 시편 91:4의 칠십인역에는 이 기록에서 사용된 단어와 매우 유사하게 들리는 "날개"라는 단어가 등장한다고 지적합니다.
그가 너를 그의 깃으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의 날개 아래에 피하리로다 그의 진실함은 방패와 손 방패가 되시나니
카나프 (히) - 프테뤽쓰(헬) - 프테뤼기온(꼭대기, 끝)
"하나님은 그의 천사들에게 당신을 책임지게 할 것입니다." 또는 "하나님은 그의 천사들에게 당신을 돌보라고 말할 것입니다."
본문에서는 발에 대해 언급하고 있지만, 여기서 발은 아마도 온몸을 나타내며, 모든 부상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그들은 목이 말라서 하나님께 기적을 베풀어 달라고 요구했지만, 여기서 예수님은 기적을 요구함으로써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을 거부하십니다.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여호와의 명령대로 신 광야에서 떠나 그 노정대로 행하여 르비딤에 장막을 쳤으나 백성이 마실 물이 없는지라
백성이 모세와 다투어 이르되 우리에게 물을 주어 마시게 하라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나와 다투느냐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를 시험하느냐
거기서 백성이 목이 말라 물을 찾으매 그들이 모세에게 대하여 원망하여 이르되 당신이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서 우리와 우리 자녀와 우리 가축이 목말라 죽게 하느냐
많은 학자들은 마태복음에서 이 경험과 모세가 "온 땅"(신 34:1-4)을 보기 위해 높은 산에 올라갔을 때의 경험을 유사하게 묘사하고 있다고 확신합니다.
마태는 예수의 사역 중 몇 가지 중요한 사건()을 산 정상에 배치합니다: 설교(5:1), 변화(17:1), 승천(28:16).
열한 제자가 갈릴리에 가서 예수께서 지시하신 산에 이르러
사탄 : "그는 그들이 얼마나 위대하고 아름다운지 보여주었습니다."
마귀는 꼭 “하나님처럼” 행동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이 아니라, “개인의 욕망”을 자극한다.
"악마"라는 단어는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것이고, 사탄이라는 단어는 히브리어에서 유래한 것이지만, 같은 존재에 대한 언급입니다.
주요 칠십인역 전통에서는 동사 예배가 "두려움"으로 나타납니다(마태복음에서는 "예배"라는 단어가 자주 사용됩니다: 2:2, 8, 11; 4:9; 8:2; 9:18; 14:33; 15:25; 1 8: 26; 28:9).
현재 문맥에서는예배하다와 섬기다를 같은 의미로 사용하며, 두 번째 동사는 첫 번째 동사와 평행을 이룹니다.
반복 강조 : 하나님만 예배해야 한다. 하나님만 예배해야 한다.
마태복음 4:12
이 섹션 전체에서 예수님에 대한 대명사만 사용되었으므로 그리스어 본문에서 예수님과 유혹의 이야기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암시합니다.
마태는 예수의 활동이 하나님의 목적의 성취이며, 예수의 사역이 예루살렘과 유대가 아닌 갈릴리의 "이방인" 사이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예수가 살았던 곳을 식별합니다( ).
구약성경의 성취다.
사역장소도
이 구절은 독자들이 이미 요한의 체포 사실을 잘 알고 있음을 나타냅니다.
체포되었다. : 다가 예수를 배신할 때 사용된 동사(26:15)와 동일하며, 신자들을 체포할 때도 사용되었습니다( 마 10:17, 19, 21; 24:9, 10 참조).
마태복음 4:13
이 구절의 그리스어 본문에서 나사렛은 일반적인 철자인 "나사렛"(2:23; 21:11)과 달리 "나자라"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나사렛을 떠난 후 가버나움은 예수님의 영원한 고향이 된 것이 분명합니다(마가복음 2:1 참조).
이 구절은 이때까지 예수의 고향이 그의 가족이 살던 나사렛이었으며, 이제 가버나움에 집을 짓기 위해 이사했다는 사실을 반영하는 것일 가능성이 더 큽니다.
14절
"이사야 선지자가 말한 일이 일어나도록 예수님이 가버나움에 사시러 가셨다." 또는 "이사야 선지자가 말한 것을 실현하기 위해 예수님이 가버나움에 사시러 가셨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4:15-16
스불론과 납달리는 갈릴리와 나란히 배치되어 있으며 요단강 건너편에 있는 바다(TEV "바다로 가는 길") 쪽으로 위치하고 있습니다.
신약 시대에 "이방인의 갈릴리"는 "비유대인의 지역"을 의미했습니다.
이방인 거주지역 = 차이나 타운같은 지역
이방인의 갈릴리는 "이방인이 사는 갈릴리" 또는 "이방인이 머무는 갈릴리 영토"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스불론과 납달리 지파의 영토는 유대인이 아닌 사람들이 사는 갈릴리 영토와 같은 지역입니다.
즉 유대인이 아닌 사람들이 살고 있는 그 영토에 사는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그는 '어둠 속에 앉은 사람들...'이라고 말했습니다."
구원을 의미하는 빛은 이제 마태가 예수님에게 적용합니다. 유대인들 사이에서는 (빛과 여명)이라는 두 개념이 모두 구원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을 것입니다.
어둠은 밤과 같은 물리적 어둠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 도덕적 어둠을 의미합니다. 모든 문화권에서 이 그림을 사용하거나 이해하는 것은 아니며, 번역가들은 "도덕적 어둠", "죄의 어둠" 또는 "어둠 속에 있는 것처럼 살았던 사람들은 올바른 삶의 길을 볼 수 없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빛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에게 주시는구원을 의미합니다.
죽음의 지역과 그늘에 사는(또는 앉아있는) 것은 영적으로 죽은 사람들의 상태를 말합니다.하나님과 떨어져 산다는 것은 "진정한 생명을 갖지 못한 채 살아가는 사람들" 또는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을 갖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생명이 전혀 없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이 새벽 빛처럼 그들에게 임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빛을 가져다 주셨다.", "하나님의 빛이 그들 안에 일어났다.".
마태복음 4:18-22
섹션 제목: "예수께서 네 명의 어부를 부르시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네 명의 어부에게 자신을 섬기도록(또는 제자가 되도록) 초대(또는 명령)하신다."라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나중에 시몬에게 주신 이름이지만, 마태는 아마도 독자들이 시몬을 알고 있던 이름이었기 때문에 복음서 처음부터 을 사용한 것 같습니다.
앤드류는 그리스어로 흔한 이름입니다. 기원전 169년경 올림푸스의 비문에 유대인의 이름으로 등장합니다.
베드로가 먼저 지명되었기 때문에 베드로가 연장자라고 추측할 수는 있지만 증명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결정을 내려야 한다면 앤드류를 "동생"이라고 불러야 합니다( ).
나를 따르라 (o 대부분의 현대 영어 번역은 TEV, GeCL 1판, FRCL에서 "나와 함께가자"로 번역됨) 이 부르심은 제자도로의 부르심입니다. 유대 랍비들은 제자들을 두어 함께 다니며그들의 행동을 관찰하고 가능한 모든 상황에서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사람을 잡는다"는 개념은 예레미야 16:16에서처럼 랍비어와 헬라어()에서 일반적으로 부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었지만, 예수님은 사람을 구원에 이르게 한다는 긍정적인 개념으로 바꾸셨습니다.
이 구절에서 21절과 마찬가지로 마태는 부사인 '즉시'를 그들이 떠났다는 사실과 연결합니다.
20절에서와 같이, 즉시는 "즉시", "즉시", 또는 "지체 없이"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와 함께 가기 위해(또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 배를 버리고 아버지를 떠났다."
23절
마태는 예수님이 이사야 9:1-2의 성취자이시며 종말론적인 선의 사자라고 확언합니다
"그는 갈릴리 영토 전체를 여행(또는, 갔다)" 또는 "갈릴리의 모든 곳"이라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몇몇 학자들은이 두 구절이 5-9장의 내용을 요약하고 있다고 결론지었습니다. 이 결론이 타당하다면 5-7장은 메시아의 가르침 사역에 대해, 8-9장은 치유 사역에 대해 말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느 주석가는 4:23-9:34 전체를 "예수 그리스도의 말과 행동의 사역"이라고 표현합니다.
왕국에 대한 설명은 3:2을 참조하세요. 그렇다면 왕국 복음은 "하나님의 통치에 관한 좋은 소식" 또는 "하나님이 곧 그의 통치(또는, 통치)를 확립하실 것이라는 좋은 소식"입니다.
텍스트에서 두 단어를 함께 사용하면l 모든 종류의 신체적 질병을 포괄하는 효과가 있으므로 번역자는 해당 언어에서 실제로 동일한 의미로 사용할 수 있는 표현을 사용해야 합니다.
24절
텍스트는 그의 명성이 퍼졌다고, 즉 "그의 명성이 퍼졌다", "그에 대한 뉴스가 퍼졌다"( TEV에서와 같이) 또는 "사람들이 그에 대해 점점 더 많이 듣고(또는 이야기하기 위해)에간"이라고 말합니다.
시리아는 아마도 갈릴리 북쪽 지역을 가리키지만, 1세기에는 팔레스타인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신약성경에서 "시리아(ria)"는 일반적으로 팔레스타인을 포함하는 같은 이름의 로마 지방을 의미하지만(눅 2:2, 행 15:23, 41, 갈 1:21 등), 여기서는 아마도 갈릴리 북쪽과 접경한 지역, 즉, 즉 유대인의 용법에 따라 "시리아"를 의미할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은 예수 사역의 치유 측면이 과소평가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질병과 고통에 대한 긴 목록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질병은 23절에서 논의된 첫 번째 명사를 번역합니다. 고통(TEV "장애")은 심한 고통이나 고문에 가장 자주 사용되는 단어로, 여기서는 일종의 신체적 장애를 가리킵니다
"사람들은 그에게 아프거나 고통스러워하는 모든 사람들" 또는 "질병과 신체적 질병(또는, 장애)으로 고통받는 모든 사람들"을 데려왔습니다.
간질은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널리 퍼져 있는 장애입니다. 많은 사회에서 간질 환자는 귀신 들린 것으로 간주됩니다(참조). 해당 언어에 이 장애에 대한 특정 명칭이 있는 경우 해당 명칭을 사용해야 하며, 그렇지 않은 경우 "일종의 신경 장애가 있는 사람" 또는 "발작을 일으키는 장애가 있는 사람"이라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마비는 "마비된 사람"( NEB, NAB 참조), "걷지 못하는 사람" 또는 "다리를 움직일 수 없는 사람"으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이 모든 질병을 가진 사람들을 예수님께 데려왔고, 예수님은 그들을 고치셨습니다.
25절
복음서 말미에 이르러서야 종교 지도자들의 영향을 받아 군중은 예수님을 적대시하게 됩니다.
군중은 갈릴리와 언급 된 다른 장소에서 왔습니다. 예수님이 그곳에 갔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갈릴리와 열 도시, 예루살렘과 유대, 요단강 건너편 지역,에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이 가시는 곳으로 함께 갔습니다."
여기서 따랐다는 것은 "제자가 되었다"가 아니라 "그와 함께 갔다" 또는 "그가 가는 곳으로 갔다"는 의미입니다.
NIV Cultural Backgrounds Study Bible
4-10절에서 예수님은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시험을 받았을 때 주어진 세 가지 본문을 인용합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아들"(신 8:5)이라고 표현한을 언급하는 신 8 :3을 인용합니다. 마귀는 예수님의 아들 됨에 대해 다른 해석을 제시하려고 할 수 있지만( 3절, 참조. 3:17), 예수님은 성경에 호소하여 이 아들 됨을 정의하십니다.
마귀는 ‘현상’을 가지고 아들됨을 정의하려고 하지만
예수님은 ‘말씀’으로 자신의 아들됨을 정의하고 계신다.
예수의 세례를 둘러싼 사건들은 세례 요한의 사역 초기의 격렬한 종교적 흥분과 사회적 발효를 드러냅니다. 헤롯은 잔인했고로마 군대의 점령은 가혹했습니다. AD 26년에 총독이 그라투스에서 빌라도 총독으로 바뀌면서 일부 동요가 일어났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불안한 정치 상황에 대한 종교적 해결책을 바랐고새로운 선지자에 대한 소식을 듣고 그의 말을 듣기 위해 사막으로 몰려들었습니다.
4:11 천사들이 ... 그에게 참석했습니다. 빵을 만들거나( 3-4절) 천사를 의지하는 대신( 6-7절) 아버지를 신뢰하신 예수님은 금식 후 천사의 도움을 받으십니다(참조, 26:53).
빵, 천사 의지
하나님 의지 —> 천사, 빵
가버나움. 갈릴리 바다에 있는 인구 1,000명 또는 2,000명 정도의 어촌 마을. 예수님이 갈릴리에서 가장 큰 두 도시인 세포리아와 디베랴에서 사역하셨다고 언급된 적은 없지만, 가버나움은 갈릴리의 다른 지역과 접촉하기에 좋은 위치에 있었습니다. 후대의 자료에 따르면 가버나움은 예수를 따르는 갈릴리 제자들의 거점이 되었습니다.
4:15-16 인용된 구절(사 9:1-2)의 문맥은 분명히 메시아론적입니다(사 9:6-7). 또한 이 구절을 통해 마태는 예수님을 다시 (참조: 1:3, 5-6, 2:1-2)와 이방인 선교를 연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갈릴리의 이방인들과의 역사적 관계에도 불구하고 유대인 도시와 마을은 모세의 율법을 준수했습니다.
성경에서영어로 "왕국"으로 번역된 용어는 일반적으로 "통치", "통치" 또는 "권위"를 의미합니다. 유대인들은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을 왕으로 다스리신다는 사실을 인정했습니다(시 22:28, 145:12-13, 다 4:3, 34). 어떤 사람들은 쉐마를 암송할 때마다 이를 확인하며 오직 한 분의 참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인정했다고 믿었습니다(신6:4).
그러나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현재 통치를 인정하면서도 대부분 다가올 시대에 하나님의 도전받지 않는 통치를 기대했습니다(다 2:44-45, 7:14, 27).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미래 왕국()을 위해, 즉 하나님이 반대받지 않고 통치하시며 세상을 위한 정의와 평화의 목적을 이루시도록 정기적으로 기도했습니다. 매일 기도하게 된 친숙한 기도 중 하나는 고대 형식의 카디쉬()였습니다: "그의 위대한 이름이 높임을 받으시고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그의 왕국이 다스리게 하소서."
예수님 당시 많은 사람들이 네 왕국에 대한 다니엘의 예언을 잘 알고 있었으며, 네 번째이자 마지막 왕국 이 현재의 로마 제국이라고 믿었습니다(다 2:37-43). 다니엘은 그 네 번째 왕국 시대에 하나님께서 다른 왕국을 무너뜨리고 영원한 왕국을 세우실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다 2:44). 이 왕국은 "인자", 즉 인간의 통치를 의미하며, 그 통치는 하나님의 백성의 구원과 관련이 있고 짐승과 비교되는 이전의 제국들과 대조됩니다(다 7:12-14, 17-18, 21-22). 다니엘은 이러한 진리를 "신비"라고 말했습니다(다 2:28-29; 참조, 2:47). 따라서 복음서에서 왕국의 "비밀" 또는 "비밀"에 대해 말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마 13:11; 막 4:11; 눅 8:10).
신약성경에 등장하는 예수의 첫 번째 제자들은 장차 오실 메시아 왕이 이미 한 번 오셨고 미래 부활의 첫 열매가 일어났다고 믿었으며, 종종 미래 왕국도 현존하는 것으로 취급했습니다. 우리는 왕이 이미 오셨고 다시 오실 것처럼, 그의 왕국이 이미 이 세상에 침입했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4:19 따라오라. 존경할 만한 스승들은 보통 제자들이 그들을 선택하기를 기다렸습니다. 가장 급진적인 현자들만이 자신의 제자를 선택하기로 유명했습니다. 나를 따르라. 제자는 스승의 "뒤"에 오거나 뒤에 걸어가곤 했습니다. 사람을 낚습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은 때때로 목자처럼 사람들의 배경을 사용하셨습니다(출 3:1, 삼상 17:15, 삼하 5:2, 사 63:11).
4:22 즉시 그들은 배와 아버지를 떠났습니다. 가족과 생계를 떠난다는 것은 드물고 심각한 결단이었습니다. 제자들은 보통 10대였으며, 예수의 제자들 중 상당수가 이 범위에 속했을 것입니다.
4:24 시리아 전역. 유대와 갈릴리는 로마의 시리아 지방에 속해 있었으며, 심지어 시리아의 주요 이방인 도시(다마스커스, 특히 안디옥 등)에는 유대인 거주자가 많았습니다. 갈릴리 인근 시리아의 헬레니즘 도시 그룹인 데카폴리스에는 가다라, 게라사, 히포스, 펠라 같은 도시가 포함되었습니다. 연결되는 이 도시들의 주요 특징은 헬레니즘(그리스)적 성격이었지만, 이 시기에는 많은 유대인들이 그곳에 살았습니다. 모두 병에 걸렸습니다. 질병 이 만연해 있었고 사람들은 온천이나 치료법을 찾을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모였습니다.
4:25 많은 군중. 기적을 일으킨다는 소문이 퍼진 곳에는 군중이 몰려드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심지어 치료 효과가 있는 온천()에도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구약성경의 신약성경 사용
모자이크 유형학은 계속됩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40년 동안 시내 광야에서 방황하며 죄에 대한 형벌을 받아야 했던 것처럼(신 8:2-3), 예수님도 성령에 이끌려 유대 광야로 40일 동안 마귀의 유혹을 받으십니다(4:1-2).
돌을 빵으로 바꾸려는 유혹은 돌을 쳐서 물이 나오게 하려는 모세의 반항을 연상시킬 수도 있습니다(민20:1-13). 그러나 두 경우 모두 백성으로서의 이스라엘이나 지도자로서의 모세가 시험에 실패한 반면, 예수님은 시험을 통과하셨습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면"(4:3, 6)이라는 구절은 그리스어로 일급 조건이며, 마귀가 예수의 아들 됨을 의심한다는 뜻이 아니라 예수( )가 어떤 아들인지 알아보고 싶어한다는 뜻입니다. 각각의 경우에 마귀는 예수님에게 하나님이 그에게 표시하신 고난을 우회하고 승리주의적이고 자기 영광을 돌리는 방식으로 자신의 힘을 사용하도록 유혹합니다 (Blomberg 1988 참조).
첫 번째 유혹에 대해 예수님은 본질적으로 육체적 배고픔의 만족은 하나님의 말씀이 제공하는 영적 배고픔의 만족만큼 인간의 생계에 중요하지 않다고 대답하십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신 8:3에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방황하던 시기(8:2)를 회상하고 있는데, 이때 하나님은 빵만으로는 살 수 없다는 원칙을 가르치기 위해 초자연적으로 그들에게 먹을 만나와 반지?를 주셨습니다! 물론 요점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스스로를 부양 할 수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기적적으로 개입해야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40년 동안 옷이 닳거나 발이 붓지 않았습니다(8:4).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육체적 필요를 충족시키는 것을 막지 않으 셨지만, 전적으로 그에게 의존해야 할 필요성을 극적으로 상기시키는 방식으로 그들을 부양하셨습니다.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이것이 음식을 모으는 일반적인 수단을 배제하지 않지만, 정상적이든 비정상적이든 모든 상황에서 영적 영양은 육체적 생계보다 우선합니다.
예수님에 대한 세 가지 유혹의 독특한 교훈은 결국 십자가로 이어지는 고난의 길을 우회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 백성의 경험을 되풀이하지만 그들이 실패한 곳에서 성공합니다
하나님 아들의 삶에는
배고픔이 있어서는 안 된다.
고통이 있어서는 안 된다.
낮아짐이 있어서는 안 된다. (자신이 높아져야 된다.)
신 6:16의 문맥은 모세가 시내산 언약에서 나온 하나님의 가장 근본적인 명령을 재확인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마침내 약속의 땅을 차지할 준비를 하면서 야훼에 대한 가장 핵심적인 의무를 상기해야 합니다(6:1-3). 여기에는그분만을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모든 존재와 함께 그분을 사랑할 것(6:4-5)이 포함됩니다. 그들의 옷차림과 대화는 정기적으로 그분의 교훈을 상기시켜야 합니다(6:6-9). 그들은 새로운 고향에 정착하여 주님의 축복을 경험한 후에도 주님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6:10-12). 그리고 그들은 감히 그들이 쫓아낸 이방 신들을 쫓아가지 말아야 합니다(6:13-15).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모세는이스라엘 백성에게 마사에서 했던 것과 같은 종류의 시험(또는 시련, 유혹)을 받지 말 것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6:16). 이 암시는 출애굽기 17:7과 백성들이 모세가 하나님이 그들을 돌보실 것이라고 믿지 않았을 때 그들에게 음료를 제공하도록 요구 한 사건에 대한 암시입니다.
기원전 8세기에 이미 많은 외국인들이 이스라엘 북부를 침략하여 이 지역을 "이방인의 갈릴리"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오스왈트 1986-1998: 2:237).
유배로부터의 육체적 해방은 메시아 시대의 영적 해방으로 절정에 이릅니다.
그리스도를 따름으로써 어느 배경을 가진 사람이라도 죽음이 아닌 영적인 삶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이 아니라, 갈릴리가 먼저 ‘빛’을 보게 되었다.
예수님이 ‘평범한 목수’라면, 돌로 빵을 만들어 먹으라는 유혹에 쉽게 넘어갔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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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 Testament (Second Edition)
4:3. 고대인들은 자신을 동물로 변신시키고 돌을 빵으로 만드는 등 다른 물질을 변형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 마술사들에게 이러한 종류의 업적을 기인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많은 유대인들은 새로운 모세가 이끄는 새로운 출애굽, 즉 하늘에서 내려진 새로운 만나, 즉을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4:4. 마귀는 하나님의 "아들"(4:3)이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 세상적인 모델을 제시하지만, 예수님은 아버지의 음성(3:17)을 신뢰하면서 성경에서 자신의 사명을 대신 정의합니다.
마귀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예수를 메시아를 기대하는 대부분의 유대인들이 기대하는 정치적, 군사적 종류의 *메시아로 만드는 것입니다.
4:14-16. 여기서 이사야 9:1-2을 인용하면서 마태는 의심할 여지없이 문맥을 알고 있습니다. 이 말씀이 가리키는 빛은 다윗의 왕(사 9:6-7)이 될 것이라는 약속()과 관련이 있습니다.
갈릴리의 많은 비 유대인들은 기원전 2세기에 강제로 유대교로 개종했으며, 이전에는 유대의 페니키아 적들과 연합해 있었습니다(마카베오 5:15). 그러나 그 후 많은 유대인들이 갈릴리에 정착했고, 갈릴리 주민들은 주로 종교적 유대인일 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유대인이었습니다.
마카베오 5:15
14 유다와 그의 형제들이 이 편지를 읽고 있을 때, 갈릴래아에서 또 전령들이 도착하였다. 그들은 다 떨어진 옷을 입고 있었는데, 전하는 말이
15 프톨레매오와 띠로와 시돈에 사는 주민들과 갈릴래아에 사는 전 이방인들이 합세하여 그들을 멸망시키려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4:21-22. 어부들은 갈릴리 지역의 평균적인 사람들보다 수입이 많았기 때문에 야고보와 요한은 수입이 적다고 해서 직장을 그만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갑자기 아버지와 가업을 버리고 떠났으며, 그러한 포기는 지역 사회에서 쉽게 불명예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과 그리스인 모두 비슷한 이야기를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갑작스러운 이탈을 급진적인 제자도의 확실한 신호로 인식할 것입니다.)
Life Application New Testament Commentary
40일간의 금식이 끝났을 때 예수님은 분명히 배가 고팠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신분은 금식을 더 쉽게 만들지 못했고, 육신은 생계가 끊기는 극심한 배고픔과 고통을 겪었습니다. 여기에 기록된 세 번의 유혹은 예수님이 육체적으로 가장 쇠약해진 상태에서 일어났습니다.
성전은 유대 민족의 종교적 중심지이자 백성들이 메시아가 오실 것을 기대하는 장소였습니다(말라기 3:1). 성전은 지역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으며, 가장 높은 지점은 아마도 산비탈에서 튀어나온 모퉁이 벽이었을 것입니다. 이번에는 사탄이 성경을 사용하여 예수님이 죄를 짓도록 설득하려고 했습니다. 사탄은 시편 91:11-12의 말씀을 인용했습니다:
사탄을 이기신 후에, 말씀 사역을 시작하셨다.
구약의 선지자들은 다윗 왕의 후손이 통치하는 미래의 왕국이 이 땅에 세워져 영원히 존재할 것이라고 자주 이야기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천국이 가까웠다" 고 말씀하셨을 때 유대인들은 메시아가 오랫동안 기다려온 지상 왕국을 개국하기 위해 오셨다는 의미로 이해했습니다. 이것은 사람들 사이에 큰 흥분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그러나 문제는이 왕국의 본질과 그 도착 시기를 오해하는 데 있었습니다. 천국은 하나님이 인간으로 역사에 들어오시면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천국의 정점은 세상의 모든 악이 심판받고 제거될 때까지 완전히 실현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고난받는 종으로 먼저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분이 다시 오시면 온 땅을 다스리는 왕과 재판관으로 오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재정적으로 생산적인 직업에서 벗어나 영적으로 생산적인 사람이 되라고 부르셨습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모든 사람은 영혼을 낚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