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종으로 오신 왕, 예수(마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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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dout
Handout
고백 : 왕-종이신 예수 그리스도 / 우리도 권세로 남을 섬기자
헌금 :
예배를 위하여
하나님 아버지, 오늘 예배를 통해 영광 홀로 받아 주옵소서. 우리 청년부가 주님을 예배합니다.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예배하기 원합니다. 우리의 예배를 받아 주옵소서.
봉헌을 위하여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가진 돈과 수입의 일부를 주님께 다시 돌려드립니다. 교회와 이 민족과 열방의 복음화를 위해 내어드립니다. 우리의 드리는 헌금을 받으시고, 부흥의 역사가 충만케 하여 주옵소서.
기도 찬양 : 주의 피로 이룬 샘물(266장)
본문 : 마 3:13-17
13 이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로부터 요단 강에 이르러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려 하시니
14 요한이 말려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서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15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시니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
16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17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세례 요한이 외칩니다.
하나님이 오신다.
하나님이 곧 오시니까, 준비해라.
그러니까 누가 오십니까?
오늘 읽은 13절을 함께 읽습니다.
“이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로부터 요단 강에 이르러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려 하시니”
때가 되어 예수님이
자기 일을 내려놓고
공생애를 시작하시는데
갈릴리에서
요단 강까지 걸어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러 오십니다.
갈릴리에서 요단 강 세례 받는 데까지 100KM 정도니까,
여기서 제천 덕동자연생터쉼터까지 112km 나오는데,
비슷하죠?
아주 오랜 시간 걸어서
내려오셨다 라는 것을 알 수 있죠.
예수님의 직업이 목수인데,
그 당시 목수는 대단한 직업이 아니라서,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미래 없는 일용직 같은 직업이라고 생각하시면 되고,
아마도,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예수님은
어릴 때부터
아버지 없이 살았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리고 가정의 부양을 위해서
목수로서
이리저리 아르바이트처럼 일을 하러 다니면서 생활했을 가능성이 크고,
예수님 당시,
헤롯 대왕의 후손
헤롯 안디바가 갈릴리 지역을 통치했는데
도시와 공공 건물을 많이 지었어요.
그래서
예수님이 태어나시고 25살 정도 되었을 때에,
헤롯 안디바가
갈릴리 해변을 따라서,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고, 그 도시 이름을 디베랴 라는 이름으로 명명했는데
성경에도 나오죠.
그리고 궁전을 화려하게 짓고
로마식 경기장을 세웠는데
이 시기가,
다 예수님이 20대 시절이기 때문에
예수님이 헤롯의 건축 프로젝트에 따라서,
노동자로 도시 건설이나 건축 프로젝트에 참여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예수님은 일용직 노동자로서,
모든 일용직 노동자들의 삶을 실제로 다 체험했고,
말 그대로, 하루 벌어 하루 먹는 삶을 다 살아본 것이죠.
*이제 예수님은
때가 되어서,
갈릴리에서 요단 강으로 세례를 받으러 요한에게 나아오고 계십니다.
13절을 다시 보시면,
요한이 세례를 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요한에게 세례를 받는 것입니다.
굉장히 독특한 행동이죠.
보통 왕들은 자신을 높이는 활동을 하는데,
예수님은, 자신을 내려놓고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십니다.
자신을 낮추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려고 하십니다.
자기 뜻은 없고,
오직 하나님의 뜻만 이루겠다는 결심이,
요한의 세례 받는 것으로 나타나는 것이죠.
*요한은 예수님과 사촌지간입니다
마리아가 세례 요한 어머니랑 친척 사이인데,
누가복음, 1장을 보면 나옵니다.
둘이 친한데
이제
나이가 들고,
세례 요한은
갑자기 모든 것을 내려놓고,
광야 생활을 시작하고,
예수님도, 가정을 부양해야 하니까,
목수 일에 몰두하고,
그러면서 서로 만날 기회가 적었을 것이고,
그런데
어린 시절에 같이 보내지 않았을까 추측해보건데
세례 요한은
예수님이 얼마나 정결하시고 깨끗하신 분이신지 훤히 알고 있었을 것인데,
갑자기
자신이 설교하고 세례 베푸는 장소로 찾아와서,
세례를 달라고 하니까,
당황스러운 것입니다.
14절입니다.
“요한이 말려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서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예수님, 내가 죄인입니다.
내가 죄인인데, 내가 어떻게 당신에게 세례를 줍니까?
내가 당신에게서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에 나에게 와서 세례를 받으려고 합니까?
당황하는 장면이 나오죠.
그러니까, 예수님이 대답하시는데,
여기서 ‘의’라는 단어가 굉장히 어렵고,
마태복음에서 ‘의’라는 단어는,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순종을 말하는 것입니다.
모든 의가 무엇인가?
하나님이 무너진 하나님 나라를 세우시겠다.
특별히,
구약에서 예언된,
하나님께서 이루고자 하시는 뜻,
아브라함의 제라,
제라 라는 단어가 후손, 씨 라는 뜻입니다.
아브라함의 제라를 통해 천하 만민이 복을 얻게 하겠다.
모든 다민족이 함께 잘 사는 나라,
그리고, 다윗의 후손,
우리가 마태복음, 1장에서
예수님은 다윗의 후손이라 했는데,
하나님이 약속하셨습니다.
사무엘하, 7장 13절에
내가 너의 왕권을 영원히 견고한 왕권이 되게 해주겠다.
또한 영원한 나라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이 뭐냐면,
아브라함의 후손을 통해,
온 세상이 복을 받는 나라를 건국하겠다.
다윗의 후손을 통해,
영원히 망하지 않는 나라를 건국하겠다. 라는 뜻입니다.
요즘 다민족 국가 많죠.
우리 나라도 다민족 국가 되려고 하는데,
정확히는 모르는데,
총인구의 몇 프로까지는 다문화 사회이고,
몇 프로가 넘어가면,
다문화 국가라고 정의를 하는데,
우리나라도 지금 2024년이 되면은, 총 인구의 5%;’가 넘어서 다민족 국가가 되는데
얼마나 반발이 심합니까?
죄 용서 하지 못하는
일반세상에서
모든 민족이 함께 복을 받는 나라는 존재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갈라치기가 많고,
분열이 많고,
서로 자기 자신의 이권과 권리를 주장하는 사회에서는
다문화 국가도 어렵고,
자신의 민족끼리도 내부에서 분열하고 다투기가 십상인 것입니다.
가까운 나라끼리도 잘 지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이 만드시는 것이고, (사람이 만들 수 없습니다.)
그 나라는,
모든 민족이 함께 복을 받는 이상적인 사회가 될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그 나라는,
모든 민족이 함께 더불어 살고,
함께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의 복을 누리며 사는 세상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나라를 세우시기 위해서, 왕으로 오셨다.
또한 이 나라에 들어갈 길을 열기 위해, 종으로 오셨다.
이 두가지를 이야기하는데,
이 뜻을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기 위해서,
왜?
죄인은 못 들어갑니다.
죄인은 자신의 죄 때문에 들어갈 수 없는데,
오직 자신의 죄를 대신해서 죽으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 나라에 입국절차가 완료가 되는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뜻을 성취하기 위해서,
갈릴리에서,
100km가 넘는 거리를 걸어서,
요단 강에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려고 하시는 것이죠.
15절을 같이 읽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시니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
*자신을 통해 성취될 하나님의 뜻
하나님은
무너진 하나님 나라를
예수님을 통해 건국하고 싶으셨는데,
아브라함의 자손,
다윗의 자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무너진 하나님 나라를 건국할 뿐 아니라,
그 나라에 들어갈 백성을 선발하여,
그 나라에 들어가게 하고 싶으셨는데,
그 뜻을 성취하기 위해서,
예수께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것이고,
세례를 받으셨다는 것은,
왕이신 예수님이,
자신이 구원할 죄인들과,
자기 자신을 똑같은 존재로 취급하겠다는 의미로 볼 수 있는데,
나는 죄인이 아니지만,
내가 구원할 수많은 죄인들을 위해,
그들의 죄를 나의 죄로 알고, 내가 그 죗값을 대신 치르겠다.
라는 대속의 의미가,
예수님의 세례에 있다고 많은 학자들이 주석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 믿어야 천국 가는 것이고,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는 그 누구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예수님을 믿는 은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애석하게도 많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았는데,
그들이 성경은 알고,
말씀은 읽었지만,
자기 의를 추구하다가,
예수님을 통해
세우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은혜를 상실한 것이죠.
그래서 자기 의가 무서운 것입니다.
내가 옳다는 착각이,
예수님도 죽이게 만드는, 끔찍한 죄악인 것이죠.
그래서 은혜란 무엇인가?
내가 죄인임을 아는 것입니다.
어떤 방식으로도 갚을 수 없는 죄인임을 아는 것입니다.
이걸 아는 사람이 은혜 받은 사람이죠.
또한 은혜 받은 사람은,
드디어
자신의 주도권을 포기하기 시작하는데,
심지어 고난 앞에서도
하나님께 대한 충성심을 상실하지 않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에 대한 하나님의 변치 않는 사랑을 확신하기 때문에,
아픔과 고난이 있어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삶을 살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구원이란 무엇입니까?
성경은 내가 하고 싶은대로 사는 것이 구원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아담이,
먹고 싶은 선악과를 마음대로 따 먹은 것은 구원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정확히 그 반대로 이야기하고 있고,
그것은 하나님께 죄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구원이란
내가 주인된 삶에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삶으로 변화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순종이 없이는 구원이 증명되지 않는 것이죠.
심지어는 끔찍한 고난 앞에서도,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이 구원받은 사람인 것입니다.
*왕이신 예수님도, 자기 뜻을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사적 생활 가운데서,
묵묵히 자신의 역할에 충성하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를 져야 하는 상황에서도,
묵묵히 그 길을 걸어가셨습니다.
이게 구원받은 사람의 이상적인 표본인 것이죠.
예수님은 자기 뜻이 아니라
하나님이 계획하신 모든 뜻을 이루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에게 말씀하셨죠.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하나님의 모든 계획을 성취하는 것이 옳은 일이다.
예수님은 자기 뜻을 과감히 포기하고,
하나님이 이루시겠다고 하신 뜻,
그 뜻을 이루는 데에 자신이 도구가 되기로 결단하고 헌신합니다.
그러자 무슨 일이 일어납니까?
16절을 보니까,
하늘이 열립니다.
하늘이 열렸다는 것은, 드디어 하나님의 역사가 임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닫혔던 하늘의 문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께서,
이 땅 가운데 임재하셔서,
새로운 하나님의 창조 의 역사를 이루시겠다는 의미입니다.
여러분,
순종할 때 하늘 문이 열리는 것입니다.
하늘 문이 열려야 하나님이 역사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쓰임받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죄악된 세상에,
드디어,
하나님이 그토록 세우시고 싶으셨던
하나님 나라가 임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세례 요한이 자기 뒤에 오실 분은 위대하신 하나님이시다.
라고 했는데,
그분은 13절에서,
놀랍게도 인간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심으로,
하나님의 모든 의를 성취하려고 하시는데,
첫째,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것이고,
둘째,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백성들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해 예수님은
죄인들과 같아지기로 결정하셨습니다.
죄가 없으신 그분은,
요한의 세례 의식을 통해, 죄인들의 죄를 대신지고 죽으실 것을 미리 표현하십니다.
여러분,
예수를 믿어야 합니다.
예수를 믿어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오시리라고 예언된 그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께서 인간으로 오셔서,
우리의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자기를 위해 살지 않고,
하나님을 위해 자신을 도구로 드리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믿음이 있어,
이 믿음을 따라,
순종하는 삶을 살게 되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기도합시다.)
먼저는 예수님처럼 순종하는 삶을 살게 해달라고 기도하겠습니다. 반역이란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것이고, 구원이란 하나님께 복종하는 삶으로 변화된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 자신을 두고 기도할 때, 순종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살도록, 이 마음으로 이웃과 사람들을 섬기는 삶을 살게 해달라고 기도하겠습니다.
2. 또한, 특별히 다음 세대를 위해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다음 세대가 될 수 있도록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을 닮는 유치부에서 청년대학부까지 이를 수 있도록 역사해 달라고 기도하겠습니다. 이 일에 우리를 사용하여 주시고, 우리가 모본이 되어 다음세대를 하나님 닮은 세대로 잘 이끌어갈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살아가는 은혜를 더하여 주시옵소서. 홀로 개인적으로 기도할 때에, 성령의 충만함으로 더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다음세대가 주님을 닮아, 주님의 인격으로 살아가는 성숙한 다음세대가 다 되게 하여 주옵소서. 무엇보다, 우리 다음 세대가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여 변화되는 은혜가 있게 하여 주옵소서.
병약한 지체들의 질병을 치료하시고 회복의 은혜를 더하여 주옵소서. 감사드리오며 거룩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연구
1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자 곧 내가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영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정의를 베풀리라
이 두 암시의 결합은 적어도 기독교 이전의 유대교()의 일부가 이 두 구절을 모두 메시아로 받아들였다는 점에서 특히 중요합니다(참조: 4Q174 1 I, 10-14와 사 42:1).
이 둘은 함께 예수의 이중적 역할에 대한 하늘 아버지의 이해를 반영합니다. 언젠가는 왕 메시아이지만 지금은 고난받는 종 - 둘 다 신성한 아들로서의 그의 독특한 정체성에 적합합니다.
여기서 마태는 예수님이 이스라엘의 역할, 특히 실패한 부분을 성공적으로 반복하는 것을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은 새로운 창조물을 만들고 계십니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2
예수님은 요한에게 세례를 받은 사람 중 한 사람이었음을 나타냅니다.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예수님이 의도적으로 요한의 세례를 받기로 선택했음을 나타내며, 14-15절은 이것을 더욱 강조합니다. 따라서 예수님은자신을 요한의 메시지와 그 메시지가 만들어 낸 부흥 운동과 동일시하여 정화되고 준비된 하나님의 백성의 일원으로 등록하려고 하셨습니다.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 요단 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니
(요한복음 1장 31절과 33절은 아마도 예수의 사명의 본질에 대한 요한의 이해가 아직 불완전했음을 나타냅니다.)
그의 말은 11절에 비추어 보면 아마도 '나는 당신의 성령과 불 세례를 필요로 하지, 나의 물 세례가 필요하지 않다'는 의미일 것이다.
예수님은 요한의 세례를 받음으로써,
요한이 선포한 메시지 “하나님의 길을 준비하는 자”를 이어 받아서, 자신이 곧 요한이 준비한 길을 따라오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드러내신다.
이것이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다.
마태복음에서 의는 '선함', 즉 법적인 올바름이 아니라 순종에 초점을 맞춘 하나님과의 관계로 간주되는 그리스도인의 삶과 동의어입니다.
이제 예수님은 자신의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회개하는 하나님의 백성들과 자신을 동일시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여기서 이사야에 나오는 종의 모습, 즉 백성을 대표하고 그들의 죄를 짊어지는 종의 영향력을 보았습니다.
이는 명시적이지는 않지만 의로움이라는 용어에서 암시될 수 있는데, 이는 이사야 53:11에서 두드러진 특징이며, 특히 17절에서 서번트 주제를 명확하게 소개할 것입니다.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하게 여길 것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로다
의로움은 곧 = 자신의 희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만드는 것이다.
의로움은 나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타인을 세우는 것이다.
상대방을 세우는 것이 곧 의로움이다.
예수님은 자신의 목숨을 버리심으로, 죄인을 의롭게 하심으로 의인이 되셨다.
하늘이 열린 것은 에스겔의 첫 번째 환상(겔 1:1)과 강을 연상시킵니다.
서른째 해 넷째 달 초닷새에 내가 그발 강 가 사로잡힌 자 중에 있을 때에 하늘이 열리며 하나님의 모습이 내게 보이니
하나님의 영의 강림은 오랫동안 사라졌던 예언적 영감의 선물이 돌아왔음을 나타낼 수도 있지만, 더 분명하게는 메시아의 약속된 임재를 나타냅니다(예: 사 11:2, 42:1, 61:1). 우리는예수님이 이전에 성령을 경험한 적이 없다고 가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 환상은 새로운 영적 지위가 아니라 메시아 사역을 위한 그의 위임을 상징합니다.
이 단어는 일반적으로 다윗 왕 을 하나님의 아들이자 메시아로 이해한 시편 2:7과 종을 하나님의 영을 덧입힌 하나님의 선택된 자로 소개한 이사야 42:1에서 가져온 것으로 이해됩니다.
3
14절
현재 문맥에서 동사는 행동을 시도했지만 달성하지 못했음을 나타내며(엄밀히 말하면 의미상 불완전), "막고 싶었다, 막으려 했다"(TEV "그의 마음을 바꾸게하려고 했다")로 번역될 수 있습니다.
필요한 경우 "John은 '당신 이러면 안 돼요'라고 말했습니다."와 같이 직접 말로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요한은 더 중요한 분인 예수님이 덜 중요한 분인 자신으로부터 세례를 받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신에게 세례를 받아야 할 사람은 바로 나입니다." "당신에게 세례를 청해야 할 사람은 바로 나입니다." 또는 "당신이 나에게 세례를 주어야 합니다."라고 말해야 합니다.
15절
이는 "이번에는 내가 요구하는 대로 하라", "이번에는 반대하지 마라", "지금은 내가 요구하는 대로 하라"는 뜻입니다. 사실 예수님은 요한이 옳다는 데 동의하시지만, 이번에는 요한에게 자신의 요청을 따르라고 요청하십니다.
모든 의를 이루라는구절의 해석과 관련된 중요한 문제가 있는데, TEV는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모든 것을 하라"로 표현합니다.
하나님의 율법의 성취와 구체적으로 연관시키는 반면("우리가 율법의 모든 요구를 충족시키는 것이 옳다")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의 의"라는 구절은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의로운 행위"를 의미합니다. 사실 "의"는 "구원"의 동의어가 되며, 메시아는 "주님은 우리의 의"라고 불릴 수 있습니다(렘 23:6; 33:16; 사 11:1-4 참조).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때가 이르리니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 그가 왕이 되어 지혜롭게 다스리며 세상에서 정의와 공의를 행할 것이며
그의 날에 유다는 구원을 받겠고 이스라엘은 평안히 살 것이며 그의 이름은 여호와 우리의 공의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그 날에 유다가 구원을 받겠고 예루살렘이 안전히 살 것이며 이 성은 여호와는 우리의 의라는 이름을 얻으리라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 = 예수 그리스도
그가 왕이 되어 = 예수 그리스도
유다는 구원 = 여호와 우리의 공의
마태복음에서는 일반적으로 의를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을 행함" 또는 "하나님의 뜻을 행함"과 같은 용어로 표현하는 것이 적절합니다. 실제 표현은 해당 표현이 나오는 개별 문장의 구조에 따라 달라집니다.
4
마태만이 이 행위에 대한 요한의 반대를 기록했습니다: 나는 당신에게 세례를 받아야 하는데, 당신이 나에게 오시겠습니까? 요한은 예수의 세례가 죄로부터의 회개를 위한 것이었기 때문에 예수가 세례의 요건에 맞지 않다는 것을 인식했습니다.예수님은 무엇 때문에 세례를 받으셔야 했나요? 예수님은 죄를 지은 적이 없었기 때문에(고후 5:21, 히 4:15, 7:26, 요일 3:5) 요한에게 세례를 받고자 했음에도 불구하고 공식적으로 요한에게 세례를 받을 수 없었습니다.
요한은 예수님이 죄가 없다고 인정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 순종”하기 위해, 스스로 죄인의 자리에 서셨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비둘기처럼 내려오신 것은 예수님이 메시아이시며 선지자들이 예언한 성령의 시대가 공식적으로 시작되었다는 신호였습니다(이사야 61:1). 성령의 강림은 세상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의미하므로 메시아의 도래는 성령의 강림으로 표시되었을 것입니다.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아버지께서 아들을 통해 큰 기쁨과 즐거움, 만족을 느끼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구절은 구약성경의 두 구절(시편 2:7, 이사야 42:1)을 반영합니다. 하늘 보좌에서 들려온 음성은 예수의 지위를고난과 죽음을 당할 종이자 영원히 통치할 왕으로 묘사했습니다.
요한은 자신의 세례를 메시아가 인도할 새로운 출애굽을 위한 준비로 해석한 것 같습니다(3:5-12).
그리고 예수님은 죄인들을 죄의 강에서 안전한 약속의 땅으로 도강시키는 새로운 모세적 존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