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저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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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성(모더니티)

1. 일차적인 중대한 왜곡은 현대 세계가 우리를 ‘권위의 지배를 받는 입장’에서’선호의 입장’으로 바꿈으로 생긴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여호와께서 명하시되”
하나님의 권위를 강조합니다.
요한복음 20:28 NKRV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스스로 창조된 존재가 아니며 자아 추족적이지 않고 자율적인 존재가 아님을 기브게 인정합니다.
기독교의 자유는 ‘하나님의 생활 방식’이라는 진리의 형식 안에서 누리는 자유입니다.
비판자들은 권위에 대한 이런 시각을 현대성의 세계에서 받아들기 힘든 경직되고 낡은
고루한 생각으로 치부합니다.
끝도 없는 선택 가운데 놓입니다.(다원화)
그렇다. 하나님도 소비자의 한 섵개 품목으로 전락해 버렸다.(88)
진리, 선함, 권위는 선택과는 연관이 없다.
예수님의 권위와 성경을 거부하는 듯한 수많은 입장과 해석들이 나무하게 될
될 것이다.
로마인들에게 있는 사크라멘툼 서약은 기독교인들이 하는 세례식과 같아야
한다.
욕망을 성경 진리에 맞추기보다 욕망에 진리를 맞추려고 성경을 왜곡한다.
샌프란시스코의 한 복음주의 교회 목사는 지금 이대로라면 예수의 길은 인류 번영에 ‘파괴적’이라고 생각한다고 선언하였다. 따라서 수위를 낮추어 더 ‘온정적이고’ ‘현대적인 생활 방식의 동성애 결혼을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기독교 마케팅 컨설턴트
“가장 중요한 것으 메시지가 아니라 처중이라는 기독교적 커뮤니케이션의 기본 원리를 마음에 되새겨야 할 것이다.”

2. 종교가 통합이 아닌 분리의 입장에 서도록 부추기는 ‘현대 세계의 경향성’

-그리스도의 주되심 / 무슬림(코란, 샤리아),
하나님이 하늘과 땅의 주가 되신다면 그분의 주 되심에 모든 영역이 포함되어야 하며 그렇지 않다면 아무 의미가 없다. 그분의 말씀과 삶의 통치가 세상 모든 영역에 적용되어야 한다.
존R. 모트 “예수 그리스도가 모든 일의 주가 아니시라면 정말 주가 아니다.”
현대성의 핵심은 ‘다원화’와 ‘분화’라는 두 가지 과정이다.
ex) 피임약과 도도한 성혁명이 낳은 방종에 가까운 자유 덕분에 현대 세계는 성과 사랑을 분리할 수 있게 되었고 사랑과 헌신, 결혼과 출산, 출산과 양육을 별개의문제로 독립시킬 수 있게 되었다. 한때는 하나의 통홥된 영역이자 사상이 이제는 개인의 자유와 선택의 독자적 문제가 되었다. 이것은 믿음으로 온전히 통합된 삶을 그 어느 대보다 살아내기 어려워졌다는 뜻이다. 따라서 통합ㅈ적인 삶을 살고 싶어도 이제는 의도적이고 의식적으로 노력하지 않으면 어렵게 되었다.
3. 초자연적 영역에서 세속적인 영역으로 사람들의 의식이 전반적으로 이동한 것이다.
근대 이전의 사람들이 초자연적 구름을 머리에 이고 늘 경건하게 기도했다거나 실제로 우리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일상을 살았으리라는 생각은 말도 안 된다. 그들 역시 저녁식사를 준비하고 쓰레기통을 비워야 했다. 그러나 그들의 세계와 우리 세계의 수많은 큰 차이점 중 하나를 꼽는다면, 보이지 않는 세계가 그들에게는 시실재적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과학주의의 자연주의적 세계관과 세속주의를 강화시키고 기독교의 초자연적 세계관을 무의미한 것으로 만든다. 니케아 신조 “우리는 한 분 하나님, 아버지이시자 전능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만물과 천지의 창조주를 믿는다.”
골로새서 1:15–16 NKRV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열왕기하 6:17 NKRV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원하건대 그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그 청년의 눈을 여시매 그가 보니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
초창기 어거스틴은 거의 은사 중지론자에 가까웠고, 그리스도인들은 더 이상 기적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쳤으나 부정할 수 없는 엄중한 사실들 앞에 마음을 바꾸어 나중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이 시대에도 많은 기적들이 일어나고 있다. 나는 그것들이 옛날에 일어난 기적과 흡사하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나는 이런 신적 능력의 깆적들에 대한 기억이 이 시대 사람들에게서 사라지도록 방치하는 것은 참으로 큰 실수임을 깨달았다.”
정통 그리스도인들이라고 하는 많은 사람들이 사실상 실제적 무신론자이거나 무의식적 무신론자이다.
다니엘 4:26 NKRV
또 그들이 그 나무뿌리의 그루터기를 남겨 두라 하였은즉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줄을 왕이 깨달은 후에야 왕의 나라가 견고하리이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쉐퍼의 표현대로 ‘두 번 절한다음 영원히 순종하는 것’이다. 우리 스스로 하나님을 발견할 수 없을 때 주님은 그분 스스로를 계시해주셨다. 따라서 우리는 그분의 계시에 한 번 절한다. 우리 힘으로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을 때 그분은 우리를 구원해 주셨다. 따라서 우리는 다시 그분의 구속하심에 또 한번 절한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하나님을 추구하는데 우리가 해야할 몫과 그것이 의미하는 바와 요구하는 대가를 다 잘 알고 있다.
요한복음의 판토크라토르는 두 헬라어 단어를 합성한 것으로 그리스도의 전능하심과 통치를 표현하는 말이다.
키에르케고르 “입맞춤하는 유다”
미국의 무신론자들 중 4분의 1이상이 스스로를 ‘영적인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고 10분의 1이상이 하나님이나 ‘보편적 영’을 믿는다고 합니다.
니체 “신은 죽었다. 그러나 인간의 방식이 그렇듯이 앞으로도 그의 그림자를 비추어 주는 동굴은 수천 년 동안 존재할 것이다. 우리는 그의 그림자와도 싸워 이겨야 한다.”
그러나 그의 말년의 사상들은 너무나 비관적이었고 승리에 찬 차라투스트라의 노래들과는 전혀 거리가 멀었다. 따라서 ‘자기가 던진 돌에 맞는 사람’이라는 그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부정하기 어렵다. 그는 친구 프란츠 오버벡에게 쓴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네에게 사실을 숨기지 않을 걸세 상황이 너무 나빠지고 있네. 밤이 되면 점점 더 나를 짓누른다네. 마치 막 번개가 치는 것 같아. 그러면 한순간 나는 원소나 빛으로나 자신이 떨어지는 걸 발견하지. 이 모든 게 지나가고 있어. 피할 수 없는 멸망으로 걸아가고 있다고 믿고 있어....총은 내게 어느 정도 기분 좋은 위안처럼 보이는 것이지. 모든 상황에 대한 감각이 없어지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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