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성해지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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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학원을 참 많이 다녔던 것 같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그렇게 학원을 다녔을까 싶지만 그 때는 학원다니는게 참 재밌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에 학원을 4군데정도 다녔던 것 같아요. 공부방을 다녔었고, 태권도, 미술학원, 피아노 이렇게 다녔습니다.
그 중에 가장 재미없었던건 미술학원인데요. 제가 예술쪽에는 달란트가 없어서, 그림을 정말 못그렸습니다.
학원에서도 미술을 이렇게 해야된다라는 방향성을 배워본적이 없는 것 같아요.
그냥 학원에 가면 오늘은 이걸 그려보자. 그러면 그림을 그리곤했는데, 연차가 쌓이면 실력이 늘어야하는데 참 쉽지 않았습니다.
미술학원을 다니면 꼭 전시회를 연에 한번 정도는 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학교 다닐 때 그래도 공부를 어느정도했어서 나머지 공부라는걸 해본적이 없는데, 이 전시회를 할 때면은 나머지 미술을 했습니다.
친구들은 다 집에 갔는데, 혼자 남아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거죠.
그래서 제 추측으로는 아마 어머니께서 재능이 보여서 학원에 보낸게 아니라. 아들 둘이 학교 다녀와서 집에 있는게 감당이 안되기 때문에 그러신게 아닐까 저는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재밌는 기억들이 있는데요. 미술학원에서는 간식을 종종 주었습니다. 씨리얼과 우유를 먹고는 했는데, 그 때 참 맛있었습니다. 맛있게 먹는데 선생님이 이런 말을 하셨어요. 왜 우리가 먹는 음식이 맛있을까?
그 때 저보다 나이 차이가 좀 있는 형이 이렇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함께 나누어서 먹기 때문이라고요.
저는 아직도 그게 기억이 많이 납니다.
생각해보면 참 그런 것 같습니다. 행복과 평안은 나의 손에 있는 재물이 넉넉해 지고, 나의 배가 불렀을 때 옵니다.
그것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아요.
그러나 그것이 배가 되는 방법은요. 그것을 나눌 때 입니다.
오늘 말씀에서도 물질을 나누라는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그러나 단순히 이방인 교회와 예루살렘 교회 사이의 물질 나눔을 다룬 이야기는 아닙니다. 초대 교회 그리스도인들은 같은 지역 내의 교회만 도운 것은 아닙니다. 오늘 날로 따지만 선교헌금을 하는 것이죠. 그렇게함으로 사랑과 구제를 실천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한 이러한 헌금은 우리로 하여금 나눠야 한다는 교훈만을 이야기하지는 않습니다.
그안에는 다양한 영적 원리들이 포함되어있습니다. 바울은 가난한 자를 돕는 행위야 말로 우리를 위하여 가난하게되신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도의 관점이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의 물질이, 또한 영적으로 풍성해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소망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 1절에서 8절까지의 말씀은 바울이 연보를 독려하는 내용인데요.
예루살렘에 가난한 자들을 위해 연보하기를 권면하며 마게도냐 교회들의 모범을 예로 듭니다.
1절부터 보시면 바울은 마게도냐 지방의 교회들이 어떻게 연보를 했느냐를 이야기합니다. 그들이 연보를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다른것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여기서 은혜라는 단어는 카리스라는 단어인데요. 여기서 카리스는 하나님의 도우심이라는 의미에 가깝습니다. 타인들을 위해 연보하는 행위가 하나님의 도우심에 의해서 가능하다는 것이죠.
2절은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를 이야기하는데요. 2절에보시면 마게도냐 교회들이 환난으로 인한 심각한 시련중에서도 기쁨이 넘쳤고, 그 기쁨으로 연보를 할 수 있었다고 이야기하는데요.
바로 그 기쁨은 하나님이 주신 은혜라는 것입니다.
환난과 심각한 시련이라는 것을 직역하면 깊은 바닥에 이르는 빈곤이라는 의미인데요.
이들이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에서 비롯된 것은 환난이었습니다. 그리드소를 메시아로 인정하고부터 핍박과 고난이 있었죠.
그러나 바울은 풍성한 기쁨으로 말미암아 그들이 넉넉한 연보를 열매로 맺었음을 강조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도우심이라는 것이죠.
3절부터는 이 연보의 특징이 설명되었는데요.
첫번째는 그들이 형편을 따라 했다는 것이고, 두번째는 형편에 지나도록 자원했다라는 것입니다.
아마 여기서 자원하다라는 것은 마게도냐 성도들의 형편을 보았을 때 그 기대 이상이었다는 것으로 알 수 있습니다.
이들은 자원하여 연보를 하였고, 이것이 하나님의 도우심이라는 것이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이들은 연보를 하게된 것입니다.
4절에도 마게도냐 교회 성도들의 마음을 알 수 있는데요. 이들은 은혜와 성도섬기는 일에 간절히 구했습니다.
새번역역 성경은 참여함을 특권이라고 표현합니다. 마게도냐 성도들은 예루살렘 성도들을 구제하는 특권에 동참하게 해달라고 부탁한 것이죠.
5절은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이야기하는데요. 바울과 일행들은 그것을 구하고 있었고, 마게도냐 성도들은 물질에 앞서 자신들을 먼저 헌신했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과의 관계속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이죠. 은혜가 없이는 아무것도 될 수 없음을 이야기합니다.
그렇기에 이제 바울은 마게도냐 교회의 넘치는 연보가 하나님의 은혜와 주님에 대한 헌신이 가져온 결과라면, 고린도교회 성도들도 연보에 참여하는 과정을 통해 은혜와 헌신을 이루기를 권면하는 것이죠.
7절에 나온 것처럼 믿음과 지식이 풍성하고, 풍성한 은혜를 누리고 있는 고린도 성도들이 그 은혜를 베풀길 원한다는 것이죠.
은혜를 받은자는 다시 은혜를 베풀어야합니다. 바울 일행이 고린도에 보여줬던 사랑으로 말미암아 은혜가 풍성해졌다면 이 은혜의 일에서 더욱 풍성해질 수 있도록 권면을 하는 것이죠.
받은 은혜는 흘러보내는 것이 바로 은혜받은자의 특권입니다.
다만 이 연보에는 중요한 것은 바로 강요는 있어서는 안된다는 것인데요. 자발적인 연보가 아니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죠. 하나님이 돈이 없어서 그들을 가만히 내버려두시거나 헌금을 요구하시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한 가지 도전을 던지는데요. 8절의 말씀입니다.
그 은혜를 알고 있는 성도들이지만 사랑과 은혜가 있다면 행동으로 나아가보라는 것이죠. 지식적인 앎이 아닌 삶으로 나타내보이는 것입니다.
사랑을 흘러 보내고 은혜를 흘러보내는 우리에게는 궁극적인 모델이 있는데 그 분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9절 말씀 함께 읽도록하겠습니다
그리스도의 부요하심과 가난해지심은 그리스도의 자발적인 자기희생을 따라가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모두 영적으로 부요해졌습니다. 그처럼 누군가의 희생을 통해 물질적으로 가난함에 시달리는 형제자매들이 부요함을 경험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가난해지심은 결국 그리스도의 연약함과도 이어지는데요. 이러한 그리스도의 삶을 따라 사는 자가 바로 그리스도의 제자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과 자기희생을 지식적으로만 아니라 체험적으로, 인격적으로 알고 있다는 것은 그 사랑이 흘러나옴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율법이되면 너무나 무겁고 부담이되겠지만, 그것이 그리스도를 따라 살아가는 기쁨이 되는 사람에게는 더욱더 은혜가 풍성해지는 특권이라는 것이죠.
실제로 고린도교회는요. 물질적으로 풍요한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실제로 10절을 보면 이들이 일년전에 다른교회들보다 먼저 연보하기를 시작했을 뿐 아니라 먼저 그렇게 하려고 작정했다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일들이 마치지는 못했죠. 바울은 이에 대해서 마무리를 하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이들의 선한의도로 시작된 연보는 결과를 도출하는데 실패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바울은 12절에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고린도후서 8:12 “할 마음만 있으면 있는 대로 받으실 터이요 없는 것은 받지 아니하시리라”
받아드리는 것은 하나님께서 수용하시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고린도교회의 마음을 하나님께서 받으실 것이고 그분을 기쁘시게 한다는 것이죠.
여기서 가장 유익이되는 사람은 바로 고린도 교회 성도들입니다. 그리스도를 본받아 스스로 가난해지는 일이라면 그 이후에 올 영적인 유익이 분명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의 마음은 이렇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한 목소리로 13절부터 15절 읽도록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누군가에게 짐을 더주고 누군가의 짐을 가볍게하는 차원의 일들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균등은 이런 것이죠. 지금 넘치는 자가 부족한 자들을 채우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16:18 “오멜로 되어 본즉 많이 거둔 자도 남음이 없고 적게 거둔 자도 부족함이 없이 각 사람은 먹을 만큼만 거두었더라”
본문 15절은 출애굽 사건을 생각나게 하는데요. 하나님은 각 사람이 하루 뷴량 이상의 만나를 거두지 못하도록 금했습니다. 이러한 명령을 어기는 자는 결국 저장해둔 여분의 음식에 벌레가 생기고 냄새가 나서 먹지 못한 것이죠.
하나님이 출애굽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알려주고 싶으신 것은 삶의 문제에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불필요한 것을 움켜쥐고 있지 말라는 것이죠.
성경적인 연보는 나에게 있는 여유분을 움켜쥐고 있지 말고 필요한 자들에게 흘려보내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나아것는 부요한자와 가난한자를 모두 자녀로 삼으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심정을 이해해야합니다.
이러한 실천적인 믿음으로 나아가는 것은 결국 우리가 그리스도를 따라 사는 삶을 나타내는 것이고 우리안에 있는 은혜와 사랑을 보이는 일입니다.
사랑하는 큰은혜교회 성도여러분, 오늘 이 말씀이 우리안에 부담이 아닌 도전이 되길 소망합니다. 하나님 안에서 그 은혜와 기쁨이 충만해지기를 소망합니다. 또한 그 은혜가 충만해진다면 그것을 흘러보내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