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903 새벽] 친절, 긍휼, 용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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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 452 내 모든 소원 기도의 제목
본문 엡 4:32
자비하신 아버지 하나님, 억만 죄악 가운데 우리를 건져내시고 거룩하신 아버지의 자녀로 삼아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죄와 진노의 자녀에서 의와 생명의 자녀로 우리를 변화시켜주셨으니 이제는 사랑받는 아버지의 자녀답게 거룩함을 맺어가는 우리의 삶이 되도록 붙들어주시기를 원합니다. 놀라우신 은혜를 입은자로서 그 은혜에 합당한 행실들로 아버지의 마음을 시원케 해드리는 주의 자녀들 되도록 은혜베풀어 주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성도의 삶에 대하여 3가지 교훈의 말씀을 살펴보려 한다. 오늘 말씀에서 우리에게 3가지를 권면하고 있다. 이제 이 세 가지 권면의 말씀을 좀 더 자세하게 살펴보자.
첫째로, 우리는 서로 친절해야 한다. 친절하다라는 의미가 무엇인가?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대하는 태도가 매우 정겹고 고분고분한' 상태를 “친절한" 상태로 설명한다. 그런데 성경 원문에서 “친절하다”라고 번역된 헬라어(크레스토이)는 여러 의미가 담겨 있는데 '인자한', '선한', '사용하기에 좋은' 등의 의미를 가진다. 따라서 서로에게 친절하라는 말씀의 의미는, 서로에게 인자하게 대하여야 하고, 서로에게 선을 행해야 하며, 서로에게 쓰임받기 좋은 상태가 되어주라는 것이다.
만일 우리 형제 중 누군가가 뭔가를 매우 필요로 하고 있는데, 그것을 주변의 눈치를 보며 요청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말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필요를 공급해 주지 않는다거나, 외면한다거나, 그리고 요청했음에도 불구하고 모른척 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닮은 성도의 모습에 합당하지 않다. 또한 도움의 손길을 베풀어주었지만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신 것이기에 자발적인 기쁨으로 따라야 하는데, 이를 기쁨으로 따르지 않고 억지로 행하였다거나, 하나님의 영광이 아닌 나의 영광을 위하여 도운 것도 성도의 모습에 합당하지 않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성도의 삶의 모습을 기쁨으로 순종하되,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나를 드러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이 드러날 수 있도록 친절해 야 한다.
또한 이 '친절하다'라는 단어의 마지막 의미가 '사용하기에 좋은' 이라고 말씀드렸다. 이 의미는 도구적인 개념이다. '형제가 어떤 일을 수행하는데 필요한 도구로 너 자신을 드리라' 는 것이다. 교회에서 이런 저런 봉사와 헌신을 요구하는 일들이 있다. 우리는 쉽게 누군가에게 봉사와 헌신을 강요하고, 그 직무를 맡겨버린 이후에는 쉽게 관심을 끊어버린다. 그러나 친절한 사람이 된다는 것은 그 사람이 그 봉사의 직무를 감당하는데 필요한 도구로 나 자신을 내어주는 사람이다. 언제든 나를 사용하여 그 일을 감당할 수 있도록 나를 내어주는 사람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이자리의 모든 성도 여러분들이 친절한 성도가 되길 바란다. 그렇게 인자하고, 선하며, 서로에게 쓰임받는 여러분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둘째로, 우리는 서로 불쌍히 여겨주어야 한다. 고대 근동 사회에서 헬라인들은 인간의 감정이 사람의 내장 가운데에서부터 흘러나온다고 믿었다. 여기서 '불쌍히 여기다' 라는 단어 역시도 비슷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마음의 중심, 우리의 장기들로부터 쏟아져나오는 상대에 대한 배려와 동정심을 갖는 것을 의미한다.
이 말의 의미가 무엇인가? 우리가 나보다 어려운 이웃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고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는 행위에는 이와 같이 마음으로부터 쏟아져나오는 긍휼함, 내 중심에서부터 터져나오는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떠한 정치적인 목적으로, 아니면 나 개인의 이름을 높이기 위하여, 혹은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기 위한 수단으로 남을 돕는 것은 성도로서 합당한 행실이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그 사람이 겪는 아픔에 대해 견딜 수 없어서 돕는 마음. 나보다 딱한 처지에 있는 이웃들을 향한 그 안타까워하는 마음을 도저히 억누를수가 없어서 불쌍히 여기고 아파하는 마음. 이 마음에 대하여 우리 주님께서도 잘 보여주시지 않았는가? 아무런 소망도 빛도 없이 살아가는 병자들, 소외층들을 보시며 얼마나 가슴아파 하셨던가. 마치 창자가 끊어지는 듯한 아픔으로 그들을 불쌍히, 긍휼히 여기시지 않았는가.
마찬가지로 성도 여러분, 주님과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룬 우리도 이와 같은 긍휼을 베풀어야 한다. 주변의 어려운 형제들을 그저 마음으로만 불쌍히 여기고 끝날 것이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에서 물심양면으로 그들을 도울 수 있어야 한다. 내 힘이 필요한 분들에게는 힘이 되어 드리고, 나의 경험이 필요한 자들에게는 아낌없이 지식을 쏟아부어 주며, 나의 물질이 필요한 자들에게는 물질도 나누어 줄 수 있고, 나의 관심과 애정이 필요한 자들에게는 아낌없이 사랑을 쏟아부어 줄 수 있어야 한다.
우리 주님은 말만 번지르르한 사랑을 보이지 않으셨다. 친히 자기 백성을 사랑하시되 죽기까지 사랑하셨다. 그 위대한 사랑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를 골고다 언덕에서 증명하시지 않았던가.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성도들은 마땅히 주님을 본받아 긍휼을 흘려보내주어야 한다. 남을 불쌍히 여기고, 할수 있는 한 나의 것들로 그들을 부요하게 해야 한다. 주님께서 하늘의 부요하심으로 우리를 부요하게 하신 것처럼 말이다. 바라옵기는 이자리의 모든 성도들의 삶이 주님의 긍휼을 이 땅에 흘려보내주며, 주님의 자비하심을 우리의 형제들에게 흘려보내줄 수 있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서로 용서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특별히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면 어떻게 용서해야 하는가에 대해 추가적으로 설명하고 있는데,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용서하라고 말씀하신다. 이 마지막 부분을 잘 보시면, 이 짧은 한 절의 말씀 가운데 '용서하기를'과 '용서하심과 같이' 라고 말씀하시며 용서라는 말이 두번이나 등장한다. 여기에 사용된 헬라어 '카리조마이' 는 우리 말로 '은혜'라고 번역된 '카리스' 라는 단어에서 유래된 말이다.
따라서 이 의미를 살리자면 '은혜를 베풀라' 라는 것이다. 성도가 다른 지체들에게 은혜를 베풀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용서하심이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은, 무죄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 희생이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실 수 있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 모두는 예수 그리스도께 그야말로 은혜의 빚을 지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우리의 형제를 용서하지 못한다는 것은 대속적 희생을 통해 자신이 하나님께 받은 그 용서의 은혜를 모르는 척 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일만 달란트 받은 종의 비유를 통해 우리는 이 말씀을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일만 달란트라는 것은 그 가치로만 따진다면 천문학적인 액수이다. 그런데 이것을 순전히 왕의 은혜로 탕감받았다. 측량할 수 없는 빚을 왕은 은혜로 탕감해 준 것이다. 이러한 은혜를 입은 자가 탕감을 받았던 액수와는 비교 할 수 없는, 약소한 빚을 진 형제를 용서하지 못했을 때 왕은 어떻게 하였는가? 그를 다시 잡아다가 탕감받은 은혜들을 상환할 때까지 가두질 않았던가?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크신 은혜를 입은 우리에게 그 은혜에 합당한 삶을 요구하시니 나도 용서의 은혜를 베푸는 삶을 살길 바라신다는 것이다.
물론 내가 받은 수치, 내가 받은 피해, 내가 받은 감정들 얼마나 분하고 원통한가? 그 사실만 놓고보면 용서하는 것이 쉽지 않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일곱 번 만이 아 니라 일흔일곱번까지라도 용서해 주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토록 우리의 형제를 도무지 용서하지 못하겠을 때, 도무지 용납할 수 없을 때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하여 어떠한 고난과 수치의 길을 걸으셨는지를 기억하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시기 위하여 사랑하시는 독생자까지 아끼지 않으시고 보내셨음을 기억하라.
성도 여러분, 말씀을 정리한다.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하여 3가지를 살펴보았다. 서로 친절해야 할 것과, 불쌍히 여겨 줄 것과, 서로 용서해야 한다는 것이다. '친절하다'라는 말의 의미는 인자하고 선하며 사용하기 좋은 상태를 의미한다고 말씀드렸다. 우리가 서로에게 인자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인자하시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가 서로에게 선하게 행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선하시기 때문이다. 우리가 서로에게 사용하기 좋은 상태가 되어주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의 필요를 채우시고 공급하시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가 서로를 불쌍히 여겨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한없는 자비하심과 무조건적 사랑으로 우리를 긍휼히 여기셨기 때문이다. 우리가 서로 용서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리스도의 피로 우리가 값없이 용서함을 받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은혜 입은 자답게 살아가자. 물론 쉽지 않다. 나의 죄성과 나의 옛 자아를 꺾고 찍어누르며 은혜를 흘려보내주는 삶을 사는 것은 정말 쉽지 않다. 그렇기에 우리에게 기도가 필요한 것이 아닌가? 주여, 우리에게 하나님 원하시는 거룩한 삶의 열매들이 맺혀지게 인도하여 주옵소서. 주께서 한 몸을 이루게 하신 성도들에게 친절한 행실로 나아가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신 것처럼 우리도 서로를 긍휼함 가운데 돌보게 하시고, 늘 하나님의 용서하시는 은혜를 기억하며 우리도 용서하는 삶을 살게 인도하여 주옵소서.
